아버지의아들 (EP11.바꾸어지는 꿈)
Author
yeongbeome2
Date
2024-07-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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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길네 집 건너편에 있는 준석이네 집은 동네 주막처럼 울도 담도 없다. 마루에는 동네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며 더위를 식힌다.
종아리를 무릎 위에까지 걷어 올리고 마루에 겉터앉은 사람, 앞가슴을 열어 놓고 마루에 벌렁 드러누운 사람들이 잡담을 늘어놓는다.
상길이는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간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까지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부끄러움이 올라오는 통에 눈을 내려뜨고 땅만 보고 걷는다. 그는 준석이네 집 마루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있는 것을 훔치듯 찾는다. 그리고 맘을 놓는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그곳에 있지 않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저의 집으로 들어간다.
“잘 다녀왔냐?”
은부인은 삽짝으로 들어서는 아들을 보고 반긴다. 상길인 꾸벅하고 절을 한다. 뜰방에 앉아서 널벅지에 씻은 감자를 담아 놓고 수저로 감자의 껍질을 벗기던 그녀는 아들을 보자
‘어쩐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소리가 목구멍 위로 뛰어 올라 얼굴을 적신다.
“당숙 어른들은 안녕하시더냐?”
“예.”
“갈 때 고생은 안했냐?”
“예? 예.”
“그래 서울 가보니 어떻든?”
“그저 그래요.”
상길이는 마지못해 기운 없는 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더운데 어서 씻어라.”
상길이는 운동화를 벗고 고무신을 찾아 신고 우물로 가서 세수도 하고 발도 씻는다.
“당숙 어른은 호인이시지. 그래 당숙께 이야기 해봤냐?”
“안된데요.”
“그 어른은 바쁘신 어른이시라...”
그녀는 체념하고 좋은듯 말을 한다.
“바쁘면 밥도 안 먹나?”
그는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원망이 범벅된 소리로 지껄인다. 점점 기가 살아나는 것 같다.
“일이란 그렇게 쉽게 떡먹듯이 되는게 아니란다.”
“힘도 안 쓰고 되지 않는다면 누가 곧이 들어. 시골 가서 농사나 지으래. 나는 대대루 농사 지어야 될 사람으루 보더라구. 자기네만 서울에서 살아야 되나봐. 맘보가 꼬였어요. 말할게 없어. 고만 물어요.
글쎄 나를 무슨 거지 취급하는데 비위가 상해 간신히 참았다구.
나는 콩나물국 주구 자기 아들은 소고기국 주더라구. 치사하게 겸상이나 안했음 몰라. 그런 것들이 사람이야?”
“상길아.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네 육촌형은 몸이 아파서 요양을 한다구 했었다. 그래서 마침 국이 모자라 그랬나 보다. 그리고 남자는 그런 먹은 이야기는 안하는거다. 그런 말을 하면 사람이 가치없어 보이는 거란다.”
“심보가 그러니 자손이 그런 병에 걸리지. 호인이 다 없어지면 호인 되겠지.”
“사람이란 잘 참구 그래야 훌륭한 사람 된단다. 길을 가다 보면 닭도 보구 소두 보구 하는 거란다. 그게 네게 약이 되는 거여. 서운할 것두 욕할 것두 없지. 남자는 그런걸 잘 잊어버릴 줄 알아야 장부가 되는 거다. 옛글에두 나에게 칭찬하구 잘하는 사람은 적이 되구, 나에게 욕두 하구, 멸시두 하구, 천대두 하는 사람은 나의 선생이라는 말이 있단다.”
은부인은 아들을 타이르면서 어른들이 하던 말들이 진하게 연기처럼 몰려와서 눈 놓을 자리를 찾느라 긁던 감자도 수저도 놓친다.
‘자식은 겉만 낳지 속은 못 낳는다더니 언제나 저 녀석이 철이 들까?’
상길이는 다음날부터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닌다. 그는 친구 만천이를 따라 다니며 나무하는걸 배우고 푸정나무를 해 나른다.
“만천아, 너는 황충이 쏘이지 않냐?”
“나라구 별 수 있간?”
“그 정도는 약과다. 내 팔좀 봐라.”
상길이는 긴 소매를 훌쩍 걷어 올린다. 그의 팔뚝은 빨간 송충이가 덕지덕지 달라 붙은 것 같이 빨갛게 툭툭 불거졌다.
“상길아, 이따가는 음달로 가서 나무하자.”
“음달은 괜찮냐?”
“괜찮긴, 조금 낫지.”
“그럼 음달로 가자.”
그들은 매일처럼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닌다. 푸정나무를 해서 냇가에 널고 다음날에는 마른 나무를 짊어져다가 헛청에 쌓는다.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목에다가 긴 수건을 꼭 동여 매고 손목도 발목도 옷 끝에다가 고무줄을 넣고 병마개처럼 모자를 눌러 썼다.
그들은 낫질을 몇번 하다가 참질 못하고 샅타구니를 긁적댄다. 끙끙대며 낫질을 한다. 또 사납게 긁는다.
“만천아, 황충이가 옷에 묻지도 않았는데 쏘냐?”
“그건 황충이 털이 달라붙어 그런 거야. 바람에 날리거던.”
상길인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들은 나무를 짊어지고 산을 내려가면서도 긁는다. 그들은 몸뚱이를 긁을 때마다 마음속 바닥에서 두드러기가 따라 일어나는 것을 삭이느라 끙끙댄다. 군소리가 되어 투덜댄다.
서로 약속이나 한양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되나?’ 하는 소리가 나오며 불만이 그들의 가슴속에서 장을 지지느라 부글거린다.
산을 내려온 그들은 지게를 세워 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오금도 긁고 겨드랑이도 긁는다.
“내가 왜 이렇게 작은지 아냐? 지게에 치여서 그렇다구. 지게라면 이제 진저리가 쳐진다. 넌 할만 하냐?”
“할만 하긴 잠시 하는 거지.”
“너는 아예 지게 질 생각 마라. 도시로 가서 기술 배워야지. 그래야 바라볼게 있다. 너.”
“이끌어 줄 사람이 있어야 배우지. 우리도 언젠가는 좋은수가 생기겠지뭐.”
“언제? 늙어서?”
“누구던지 먼저 나가서 기반이 잡히면 끌고 나가면 될게 아니냐?”
“우선 너는 예수 믿어라. 그래야 우리가 앞길이 열린단다. 그러면 약속도 지킬 거다.”
“웃기지 마라. 너나 믿어.”
“너 교회에 나가면 배우는게 많다.”
“너나 많이 배워라.”
“너는 아는 체 하지만 교회 전도사님은 굉장하다야.”
“뭐가 굉장하냐?”
“너 같이 고집쟁이는 한 번 만나면 꼼짝 못하게 한다더라.”
“흥! 힘깨나 쓰는 모양이지?”
“왜 아녀. 너 같은건 납작코 될거다.”
“잘 해봐라.”
“너 자신 있음 한 번 만나 볼래?”
“내가 뻥긋하면 전도사가 챙피해서 도망칠 거다.”
“아주 큰소리치네. 그럼 오늘 만나볼래?”
“일 없다. 그만 가자.”
“꽁무니 사냥하냐?”
그들은 지게를 지고 냇가로 가서 푸정나무를 자갈 밭에 메다 꽂는다.
그리고 지게 고리를 끌러놓고 푸정나무를 꺼내 얇게 널어 놓는다.
그리고 마른 나무를 짊어지고 흥얼거리며 집을 향한다.
“너, 아까 꽁무니 사냥 잘 치던데. 또 사냥하자. 챙피줘서 쫓아버려.”
“듣기 싫다. 너나 열심히 복이 터지게 믿어라. 난 질렸다.”
“그러니까 교회 가보자.”
“일 없어. 밥 먹고 잠이나 자자.”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날도 그들은 나무하러 산으로 간다. 만천이는 계속 충동질하여 상길이를 예배당에 데려가려고 열심히 전도한다. 상길이 귀속에서는 ‘예수’ 소리가 참 벌이 되어 앵앵거리기 시작한다.
“야! 예수쟁이들은 부모도 모르는 것들 아니냐? 그거나 알구 믿어라. 딱한 놈아!”
“누가 딱한지 모르겄다. 그러니 예배당에 가서 배워. 배워야 알지.
“제사도 안지내는 것들이.”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성경 읽으면 해답이 나온다. 너 알구나 비방해라. 넘이 헐 뜯으니까 덩달아 바보짓 하지 말아야.”
“나두 당숙이 준 서경책 있어야!”
“읽어보구 까불어라. 에수 믿는 사람들이 너보다 못해서 예수 믿는줄 아냐? 서양 사람들이 문화가 얼마나 발달했냐? 그들 모두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천당만 가는게 아니라 이 땅에서두 복 받아 잘 산다구.
전도사님이 그러는데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마다 가난에서 벗어났단다. 우리나라두 그렇지. 학교두 거반 선교사들이 세워 민족의 눈을 띄웠단다. 넌 모르냐? 알아보구 네게 유익될 것 같으면 예수 믿어. 그래야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 건지 성경이 가르쳐 준다구 하더라. 사람이 고생하는 이유도 난 알았다. 넌 아냐?”
“난 지게 다리나 두드리다가 죽을란다. 나무나 하자.”
“예수 믿으면 빈둥대는 줄 아냐? 일하기 싫으면 먹지두 알라구 했어.
넌 전도사님에게 많이 배워야겠다. 그래야 무식을 면하지. 네가 찾아가면 인생이 불쌍해서 괄세는 안 할거다. 넌 뛰어봐야 벼룩여.”
만천이는 앉아서 이기죽거려 말을 시킨다.
“고만 떠들어. 나무 못하겠다. 자식, 떠들긴.”
“왜, 말이 막히냐? 열심이구나. 한 번 교회 가서 해봐라. 이놈아.”
“그래 본관이 출도 할란다. 납작코 되게.”
“어딜 출도냐? 너 같은게.”
“전도사 망신시키러. 왜 찔리냐?”
“언제 갈래? 내년...”
“오늘 저녁에 갈테니 앞장 서라. 이놈아.”
“널 신용해도 되겠냐?“
“언제, 거짓말하든? 사내자식이 의심은.”
만천이는 콧노래를 하다 찬송가를 부르며 나무를 한다. 그들은 푸정나무를 짊어지고 산을 내려간다. 상길이는 끙끙대며 토끼 걸음으로 만천이 걸음을 따라 산을 내려간다.
일동이네 집은 한삼내 북쪽으로 동네 끝에 있으며 큰길 왼편에 자리잡았다. 행길따라 길다랗게 마루가 있어 길가는 사람들이 길게 마루가 있어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가 가고 동네 아이들이 모여 노는 놀이터 구실도 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모여들어 일동이네 집 마루를 메우고 떠들고 행길에서 줄넘기도 하고 행길가에 세워놓은 평행봉에서 매달려 노느라고 동네가 들썩거린다.
일동이네 집 행길 건너편 뒤쪽에는 일동이네 집과 비슷하게 삼간 짜리 초가집이 세워져 있다. 그 집은 행길따라 담장으로 집을 가렸다.
담장 높이는 어린아이 키와 엇비슷하게 생겼다.
초가지붕은 언제부터인가 볼상 사납게 홀랑 벗겨놓았다. 여름날 병아리가 더위를 이기느라 털을 벗어 제치고 고기 덩어리만 뛰고 기는 것을 생각케 한다. 그리고 판자집 지붕에나 씌우는 루삥을 억지로 씌워서 볼먹은 소리를 내느라 울근불근거려 볼따구니가 잔뜩 부어오른 곳도 많다.
벽은 백토를 파다가 언 손으로 발라놓은양 볼품이 없다. 아기 포대기처럼 여기 저기 지도를 그려 놓아 금방이라도 지린내가 달려들 낌새다. 지붕 위에 올려놓은 넓적넓적한 돌이 무겁다고 밤나무 기둥이 몸을 꼬고 비트는 바람에 벽도 울퉁불퉁하게 생겼다.
삽짝을 달았던 자리 옆에다 까죽나무 기둥 두 개를 간격을 두고 땅을 파고 세웠다. 까죽나무 사이를 연결하느라 길다란 몽둥이로 사람키 높이 되게 굵은 쇠사줄로 붙들어 맸다. 몽나무가 도망 못가게 다시 철사로 새끼를 꼬아 붙들어 앉혔다.
몽나무엔 폭탄 덩어리 같은 걸 매달았다. 한삼내 사람들은 재주도 용타고 징그럽지도 무서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인가 보다고 궁금한 채 떨떠름한 마음으로 6.25 난리를 생각하며 소름끼쳐 주눅이 들어 행길을 지나 다닌다.
“땡땡 땡땡 땡땡.”
땅거미가 들자 교회 전도사가 삽짝 옆에 달아 놓은 폭탄같은 산소통을 친다. 일동이네 마루에는 동네 아이들이 종소리따라 하나 둘 모여든다.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민준이는 만천이가 성경책을 들고 나타나자 기다리기 힘들었다고 반색을 하며 놀린다.
“예수쟁이가 모이는구나. 천당 가냐?”
“이 녀석아 쟁이가 뭐냐?”
“너 같은 놈은 쌍놈이니까 쟁이지.”
“너는?”
“너희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말짱 형님 동생 하니까 쌍놈 아니냐?”
“궁금하면 교회가서 배워라.”
“임마, 아나 마나야.”
“아무것두 모르는 놈이 덮어놓구 흉보긴...”
“저기 상길이가 온다. 쟤 한번 데려가 봐라.”
만천이는 고개를 돌려 상길이를 기다렸다는 얼굴로 반긴다. 그는 약속대로 예배당에 가자고 다구친다. 핑계가 궁해진 상길이는 뒤통수를 긁고는 만천이를 따라 예배당으로 들어간다.
그는 두말하면 일구이언이 된다는 말에 코가 꿰어 예배당안 맨 뒷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예배드리는 사람은 국민학생 예닐곱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부엌을 가로 막았던 아랫목 벽을 헐어내고 웃목 벽을 헐어내어 부엌까지 길다랗게 통해졌다. 부엌자리엔 마루를 깔고 가운데엔 강대상이 자리했다. 남포등을 세 개 걸어놓아 그런대로 예배당을 밝혔다.
상길이는 전도사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단정히 앉아서 흐트러지지 않고 예배를 마친다.
“제 친구입니다.”
만천이는 상길이를 전도사에게 소개한다.
“만천씨를 통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속 나오시면 궁금하신 것을 자연 알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일 날에도 만천씨와 같이 꼭 나오시길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전도사의 정성스런 인사말에 화롯가에 부쳐놓은 엿이 되어 버린다. 그는 삽짝까지 따라 나온 전도사의 배웅을 받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예배당을 나간다.
전도사 부인은 신기한 일을 구경하였다고 그녀의 남편에게 상길이를 지켜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사람 시비나 걸려고 교회 온 사람같이 보여요.”
“별 걱정을 다 하누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우린 하나님 말씀만 가르쳐 주면 되는 거야. 딱딱거리던 불량한 사람이던 하나님 말씀만 먹으면 녹아지는 거야. 세상 지식은 초등학문이라 육신 보존법만 배우지. 그러니 영원한 것을 모르니까 우쭐대고 으시대지. 그게 다 몰라서 그런거거든. 인생은 회개라는 걸 모르니까 가르쳐 줘야 한다구.
그를 위해서 기도하자구.”
전도사는 스스로 다짐하는 말을 아내에게 힘내라고 용기를 돋우는 말을 해준다.
“너 들어가서 따졌냐?”
만준이와 웅남이는 상길이와 만천이가 교회 담장을 끼고 행길로 나온걸 보고 다그쳐 묻는다. 상길이는 열적은 얼굴이 된다. 그리고 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들키기나 한 것처럼 대답도 않고 마루로 다가와 슬그머니 걸터 앉는다.
“큰 소리는 온통 치더니 흰소리만 했었구나?”
“만천이 너 상길이를 교회 끌구 가더니 금방 버려 놨구나. 벙어리를 만들구.”
“어, 이자식 보게. 예수 믿는 놈을 욕하네. 너, 천당 가긴 날이 새도 한참 샜다.”
“너도 만천이 따라 다니다간 멀쩡한 병신 된다.”
“나라고 속도 없는 줄 알아? 그동안 예수교 비방을 많이 했지만 아는게 있어야지. 모르고 지껄이면 촌놈이라 그렇다구 할 거구. 챙피할일 생각해서 교회가서 듣고 성경도 읽어보고 난 후 비판해야 된다구 생각했다. 덮어놓구 욕할순 없잖냐? 배워서, 믿어서, 유익이 되는지 너희들도 교회 다녀보자. 배우는건 좋다구 본다.”
“너나 실컷 배워라. 금방 물이 들었네. 빠르다 빨러.”
“금방 전도사가 한놈 생겼네.”
“약장수가 또 생겼네.”
“그래 가지구 지게 면하겠냐?”
“너, 잘 해봐라. 쟁이 후보야!”
그들은 밤 늦도록 떠든다. 신나게 자기 주장을 세우고 놀리느라 밤이 가는 것도 잊는다.
해가 바뀐 정월 초 하룻날이다.
동네 사람들은 떡국을 끓여 조상들에게 차례의 제사를 지낸다.
상길네도 안방 웃목에 차례상을 차려 놓느라 아침 일찍부터 집안이 바쁘게 움직인다.
대전에서 살고있는 윤수가 상길네 집 삽짝을 들어선다. 부엌에서 심부름하던 상길이는 뛰어나와 삼촌에게 인사를 한다. 은부인도 부엌에서 나와 반긴다. 동생이 왔다는 소리에 윤공도 방문을 열고 그를 맞는다. 상길이 동생들도 우루루 마루로 나와서 삼촌에게 꾸벅꾸벅 절을 한다.
“오느라 수고했어요.”
윤공은 동생의 열심에 고마워한다.
윤수는 정월 초 하룻날은 어김없이 차례 지내러 형을 찾아온다. 간혹 늦게 오는 때도 윤공은 동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다. 그리고 동생이 오면 동생과 같이 차례를 지낸다.
“다 소용없다구. 제사 지내면 대순가? 그게 부모에게 효도하는건가?
나는 이제 제사 지내는건 헛되다는 걸 알았어. 돈만 쳐들이구 그게 뭐 하는 거여.”
부엌으로 다시 들어온 상길이는 가소로운 얼굴로 혼잣말하듯 들어 보라고 비아냥거린다.
“너, 그런 소리 하면 아버지한테 혼난다.”
은부인은 걱정스럽게 말한다. 말하는 그녀의 얼굴엔 불안이 넘실거린다.
“나는 제사 안 지낸다구.”
상길이는 힘주어 말하고 삽짝 밖으로 휭하니 나가버린다.
윤공은 동생과 같이 차례를 지냈다. 윤공의 얼굴은 불이 서렸다. 아침을 먹은 윤공은 성묘하러 가느라 윤수와 같이 방을 나선다. 뜰방에 내려서서 고무신을 신는다.
때맞춰 상길이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어떤 일도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돈독하게 돋아났다.
윤공은 뜰방에 내려서 고무신을 신고 돌아서다 아들을 보고는 들입다 호령을 한다.
“이놈! 지난번에도 할아버지 제사도 안 지내더니, 또 그래?”
윤공은 화가 불끈거려 작대기를 찾아들고 마당으로 내달린다. 그는 상길이 어깻쭉지를 사정없이 갈긴다.
상길이는 비실거리며 한발짝 물러난다. 그리고 버틴다. 그의 얼굴은 찬웃음이 스쳤다.
윤수와 은부인은 그들을 지켜본다. 상길이 동생들도 겁에 질린 눈으로 흘끔거린다.
“이 망할놈!”
그는 다시 자식을 후려친다.
“또 그럴래?”
“나는 절할 수 없어요. 이 땅에선 끝났으니 천당이나 가야지요. 제사 안지내요.”
상길이는 또박또박 아주 힘주어 당돌하게 말한다.
“나도 나 좋은대로 살 것이며 틀린 것은 고쳐야 되구 잘못한 걸 알면 바르게 잡구 살아야지 왜 맹종합니까? 그렇게는 못 합니다.”
하는 말이 그의 몸뚱아리에서 세차게 풍겨나온다. 평소 그는 아버지에게 주눅이 들어서 그의 아버지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를 못했었다.
“저 놈이 이젠 어린애가 아니구나.”
윤공은 속으로 탄식하듯 읊조린다.
그는 우격다짐으로는 안된다는 걸 읽고 조금은 서글퍼짐을 달게 받아들이느라 자식을 노려보며 기를 꺾으려 든다. 그의 얼굴에도 분함과 인생의 무능함이 진하게 묻어 나오느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그래도 이놈이!”
그는 소리따라 갈긴다.
은부인의 속에선 뭉클한게 철렁하고 떨어진다. 그리고 뒹굴다가 찢어지느라 얼굴을 찡그린다.
“나도 잘 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겁니다. 아버지도 예수믿고 천당가세요. 그게 잘 사는 길입니다.”
그는 두려움 없는 얼굴로 사람이 사는 목적을 깨우쳤다는 태도로 분명하게 신앙을 전도하여 나타낸다.
상길이의 당돌한 언행을 지켜보는 윤수는 버릇없는 놈이라고 글러도 한참 글렀다고 매도를 한다.
“저런 놈의 버릇을 못 고치나? 내 자식이라면 당장에 요절을 내서라도 항복을 받지. 그냥...”
상길이는 저주를 담은 눈으로 윤수를 사납게 흘긴다. 그 눈속엔 역겹다, 뻔뻔스럽다는 말이 포개져 부글거린다.
“망할 놈, 썩 나가!”
윤공은 아들을 나가라고 호통친다. 상길이는 아버지의 호통에 반사적으로 홱 돌아선다. 그리곤 삽짝 밖으로 마지못한 걸음으로 어슬렁거려 나간다.
“자식 하나 있는게 저 지경이 되다니?”
윤공은 독백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본다.
“둘이 머슴애 하나 버리누먼. 저런이들이...자식은 자식대로 어긋나서 저렇구 애비는 애비대로 저렇구. 집안이 편해야지. 내버려두면 될것을 왜 저이는 속을 썩히는지. 그냥 놔 두면 제 풀에 사그라 들것을 가지구....
죽은 사람이 음식 차린 것 먹으면 누가 죽었다구 해. 모두 제 낯 내느라구 돈 쳐들이지. 도로 제입에 넣으면서 제사 지냈다구 해?
아이들이야 저희 좋을대루 하면 되지. 죽어서두 간섭 할건가? 때린다구 듣나? 씨 도둑은 못한다더니. 녀석이 고집만 세어 가지구...”
은부인은 설날 아침부터 집안이 불장이 나고 자식이 매맞고 쫓겨남을 가슴 아파한다.
‘일년 개시를 왜 그렇게 하나? 참았다 혼내면 안되냐? 참을성두 그렇게 없느냐?’ 고 그녀는 혼자 나무란다.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와 삼촌이 산소에 성묘하러 동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본 후 집안으로 들어간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들을 안스럽게 바라보던 은부인은 자식을 타이른다.
“다치지 않았냐? 너두 어지간하다. 왜 매를 자청하냐?”
“할 수 없지 뭐. 언젠가는 당하는 거지. 그런다구 내가 굽힐 줄 알구.
이젠 나두 다르다구. 우격다짐에 꼼짝 못할 줄 알구.”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맞지. 잘만 하면 괜찮을걸 가지구 그러냐? 밥이나 먹어라.”
“쓸데없는 소리말어. 엄니는 모르면서? 언제 내가 제사 안지냈어?
소용없는 일이니까 안하지.”
“아프진 않어? 엄마는 네가 죽는 줄 알았다.”
“죽기는,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풍습이 나쁘면 고쳐야 된다구. 부모가 살았을 때 봉양을 잘 하면 되구. 부모가 천당가게 하는게 효도라는걸 알었어. 죽은 다음은 소용이 없어요. 엄니는 예수 믿구 천당갈 준비나 해요.
예수 믿는 사람들 보니께 날마다 나라 위해서 기도하구, 자기 부모 위해서 기도하구, 자기 자식 위해서 울면서 기도하더라구요. 기도원 가서 봤어. 사람은 밥만 먹다가 죽으면 고만이 아녀요.”
“그래, 어서 밥이나 먹어라.”
은부인은 아들이 걱정스러워 다독거리며 맘을 놓지 못한다.
상길인 떡국을 떠먹다가 말을 잇는다.
“옳은 일이구. 참 사는 길을 알구 가는데 못가게 혼낸다구 안가? 난 누가 말려두 내가 갈 길을 정한 이상 가구 말거야. 그런데 꼴두 보기싫은 삼촌은 왜 자주 와?”
“누가 삼촌 보구 그러냐?”
“낯 가죽두 좋아.”
“넘이 들으면 어쩌겠냐? 네 얼굴에 똥칠이다. 네 삼촌만치 하기두 어렵다.”
“흥! 그런게, 난 아주 상종 안할 거여. 나를 깡패라구 하는 새끼...”
“어허, 그만 입 다물지 못하니?”
상길이는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난다.
“어디 갈래? 삼촌 갈 때 인사하려므나.”
상길이는 아무 대답을 않는다.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간다.
“조금만 놀다 오너라. 조카놈이 인사는 해야지.”
은부인은 아들 뒤에다 대고 타이른다.
“서로 필요 없는데 기다릴 것 없구 급할 것 없다구.”
“삼촌은 삼촌인게야.”
“우둥지를 꺾어놓구 한 이가 뻔뻔하게...”
상길이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말꼬리를 흐리며 삽짝을 나간다.
그의 얼굴은 인정이 말라 버려 서슬이 퍼렇게 아주 일그러졌다. 불맞은 돼지꼴로 금방 무슨 일을 저지르고 말 것 같이 보이다가 걸음 따라 조금씩 분을 가라앉힌다.
윤공과 윤수는 성묘를 하고 돌아와 마당으로 들어선다. 윤수는 마당으로 들어서다가 가겠다고 그의 형에게 말한다.
“갈래? 방에 들어가 몸이나 녹이구 좀 쉬었다가 가지 그러냐?”
윤공은 안방에다 소리쳐 알린다.
은부인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서방님, 잠깐 들어왔다가 가지 그래요. 날씨두 추운데.”
“바쁜 일이 있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뭣좀 갖다가 아이들 주세요.”
“그냥 두세요.”
윤수는 말을 하며 삽짝 밖으로 나간다.
윤공은 아쉬워하며 동생의 뒤를 따라 걷는다.
은부인도 부리나케 뜰방으로 내려와 고무신을 끌면서 마당으로 내려서서 고무신을 바로 신고 잰 걸음을 놓는다.
“그럼, 조심해 가거라.”
“예, 형님! 언제 한번 나오세요.”
“그래, 나가마.”
“동서한테 내가 안부하더라구 하세요.”
“예.”
신작로까지 나와 동생을 작별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윤공의 마음은 허전하고 쓸쓸한게 살속 깊이 파고든다.
‘인생이 무엇인데 이렇게 살아야 되나? 인생살이가 결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 속을 감아돈다. 점점 사나와 숨가쁘게 만든다. 아주 눈을 감는게 편코 좋다고 다듬이질을 친다.
“그래 나도 더 보고 싶은게 없다. 내가 언제 오래 산다든. 넘이 좋다구 홀리는건 맛이라두 보았는데 미련이 있겠냐?
그렇담 응어리진 것은 무엇이지? 내가 못한건 남은 사람이 할테구 부질없이 안고 지고 할게 없는 거지. 짊어지려 안해두 엎치구 안기는데 낸들 어쩌겠어? 원래가 그런 것을...”
그는 중얼거리며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슴을 풀어 헤치고 가슴을 내리쓸고는 아랫목에 벌렁 눕는다.
“부자간에 누가 이기나 내가 볼거구먼. 이이가 환갑은 넘게 살아야 되는데...”
은부인은 아랫목에 누워있는 남편을 내려다보며 지난일이 생각나 괜한 걱정을 한다. 팔 베개를 하고 돌아누운 남편에게 베개를 내려 베어주고 이불을 내려 덮어 준다.
“누구를 고생시키려구 그런 몸을 해가지구...
제발 좋은일 하느라구 술좀 그만 잡숴요. 생으루 죽겠어요.”
“내가 술을 먹고 싶어 먹나? 오래 살구 싶지두 않어. 자식이 지게 지구 벌어주는 밥은 안 먹어. 사는게 짐스럽다구.”
“하긴, 굶어죽는게 불쌍하지. 먹구 죽는 거야 동정이나 받겠수. 당신은 당신만 위해서 살구 죽는 거유? 어린 새끼들은 어쩌구. 사람이 되어 타조 닮으면 되겠수?”
그들 부부는 가끔 입씨름을 하며 몇 년을 살아왔다. 요즈음 그녀는 남모르는 걱정으로 맘을 조여 왔다. 윤공이 뜻도 잃어버리고 어서어서 세상살이를 청산하려는 자학적인게 보여서다.
이 동네 사람들은 좀 유별스런데가 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으례 술을 사준다. 흥정을 할 때도 으례 술좌석을 만든다. 동네 유지들끼리 동네의 일을 상의 할 때도 술잔이 가운데 있어야만 입이 떨어져 용건을 말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이 인사가 되어 내려왔다.
술집은 낮이나 밤이나 술렁거린다.
면에 볼일이 있어 오는 사람, 지서에 볼일이 있어 오는 사람들은 거의가 윤공을 찾는다. 그리고 부탁을 한다. 그런 날은 윤공이 술에 취하는 날이다.
동네에 누구 생일이다, 잔치다 하는 날도 술 대접을 받는다. 매일처럼 허우적거리는 것을 말리지 못하는 은부인은 그냥 가는데 까지 도리가 없다고 체념을 했다가 원망스러워 한다.
“무쇠라도 녹을텐데...이제까지 산 것이 용치. 다 큰 자식 하나 없는 이가 모든 짐을 나에게 맡기려 들다니...만나서부터 고집대루만 살다가 겨우 철이 든다 싶더니, 저 지경이니.
내가 뭐랬어. 술 먹으면 명대루 못산다니까? 흰 얼굴이 저렇게 검으니 이젠 칠홉 송장이 되었구먼.”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헤집고 다님을 말리느라 크게 심호흡을 한다.
삼월달이 되었다.
윤공은 정초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아예 몸져 누운지도 한달이 넘었다. 동네 사람들은 윤공이 아프다는 소릴 듣고 찾아와 위로를 하고 돌아간다.
“상길이 아버지가 술병이 났다면서?”
을순이 엄마는 근심어린 얼굴로 은부인에게 문병을 한다.
“술병이라면 걱정두 않게. 배가 붓구 소변두 지금은 잘 보지 못한다구.”
“잡숫는건 잘 잡숫나?”
은부인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녀의 얼굴은 고개를 저을 때 헝크러지고 고달픈 것들이 얼굴 위로 들여다 보인다.
“무슨 병이든 잘 먹으면 사는데 혹시 소화를 못 시켜서 그런지 모르니까 보리죽을 끓여 드려봐.”
“고마워.”
“고맙긴, 너무 걱정마.”
을순이 엄마는 은부인의 손을 꼬옥 쥐었다가 놓고 돌아간다.
은부인은 보리를 볶는다. 보리를 맷돌에 갈아서 보리죽을 끓여서 남편에게 권한다. 윤공은 두어 수저 먹어보곤 더 먹으려 들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새때쯤이다.
“의장님 계세요?”
상길이는 뛰어나가 삽짝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그는 면의원을 지낸 사람이다.
“아버님 계시냐?”
“예, 방에 누워 계셔요.”
“주무시느냐?”
“아녀요. 편찮으셔요.”
“어데가 편찮으시냐?”
그는 물으면서 상길이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간다. 윤공은 고개를 들고 일어나 앉으려 든다. 그는 윤공의 손을 잡는다.
“그냥 계세요.”
윤공은 상체를 겨우 일으켜 이불에 엇비슷하게 기대 앉는다.
“이렇게 위중하신 줄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별 소릴...”
“언제부터...”
“정초부터 몸이 무겁더니 점점 배가 불러...”
“혹시 음식에 체한 것 아니에요?”
“글쎄 도무지 먹지를 못하니.”
그는 윤공의 불룩한 배를 살피면서 고창병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고창병엔 미꾸라지즙이 효험이 있다고 일러준다. 그리고 미꾸라지즙을 만드는 법도 일러준다.
얼마동안 우울하게 앉아있 던 그는 쾌유하기를 바란다면서 돌아갔다.
상길이는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미꾸라지가 많은 도랑을 막고 양동이로 물을 퍼낸다. 물을 퍼낸 그는 또랑 바닥의 수렁같은 진흙을 삽으로 퍼서 옮기고, 뒤집고, 손가락으로 갈쿠리질을 한다.
“한나절 동안 겨우 이거니 큰일이네. 개똥도 약을 할려면 귀하다더니.
미꾸라지가 다 어디루 갔어? 이상하네. 혼나게 생겼네.”
상길이는 중얼거리며 진흙속을 헤집느라 해동갑을 한다.
그는 오들오들 떨면서 체와 양동이를 챙겨들고 뚝으로 쫓겨나듯 훌쩍 나와 버린다. 그리고 집을 향해 깡충거리며 서너 걸음을 걷는다.
그는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린다. 대야를 챙기고 삽을 찾아든다.
다시 또랑에 들어선 그는 막았던 뚝을 무너뜨린다. 물길을 터놓은 그는 그릇과 연장을 들고 동동걸음을 친다.
그의 입은 바지는 걷어 올려진 채 흙탕물에 흠뻑 젖었다. 옷에도 팔뚝에도 종아리에도 수렁 흙이 덕지덕지 달라 붙었다. 흰 고무신을 신은 발은 불려져서 터질 지경이라고 발을 옮길 때마다 찌걱대며 통사정을 한다.
상길이는 삽짝으로 들어서기가 바쁘게 부엌으로 좇아 들어간다. 그는 아궁이로 들어가기나 할 것처럼 얼굴을 아궁이 속으로 들이민다.
은부인은 양동이 속을 들여다 본다. 양동이 속에는 미꾸라지가 열마리도 안 돼 보인다. 그녀는 들고 있는 부지깽이로 미꾸라지를 헤쳐 본다. 그리곤 혀를 끌끌찬다.
“엄니, 그곳에 미꾸라지가 없어. 봇또랑 다 뒤졌어.”
“겨우 요것을 잡았냐? 너도 참!”
“없는 미꾸라지도 잡아?”
상길이는 몰라주는 야속함에 뒤틀리느라 말이 곱지를 않다.
“봇또랑은 미꾸라지가 많은 곳인데 이상하구나? 내일 또 잡으면 되지.
추운데 고생했다.”
은부인은 서둘러 부드럽게 아들을 위로한다. 상길이는 더운물로 손발을 씻는다. 그는 몹시 떨면서 숭례가 내온 옷으로 갈아 입는다. 그리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내키지 않는 맘으로 안방으로 들어간다. 윤공은 아들을 보자 기다리기 지루했다는 듯 서둘러 묻는다. 상길이는 떠듬거리며 갑갑하게 겨우 말한다.
“미꾸라지가 없어서..”
“이놈아! 몇마리나 잡았어?”
윤공은 신경질을 내어 큰소리로 벼락치듯 한다.
찔끔한 그는 똑똑하게
“열마리요.”
한다.
“이 녀석아, 이제껏 고작 그거냐? 네 애비병 낫겠다.”
상길이는 무안해 방을 얼른 나가 웃방으로 올라가 버린다.
“철이 일러서 그런지 미꾸라지가 없대요. 내일 아침 일찍 구권에 있는 못에 가서 많이 잡아올게요. 거긴 미꾸라지가 많다고 합디다.”
은부인은 남편을 다독거리고 자식의 무안스러움을 씻어내려든다.
윤공은 입을 쩍쩍 다시며 혀를 차고는 입을 다문다.
다음날, 아침을 일찍 해먹은 은부인은 양동이에 작은 소쿠리를 담고 세숫대야를 들고 아들을 앞세워 구권 못을 찾아간다.
상길이는 양동이에 커다란 양푼을 담아 들고 삽을 어깨에 메고 우울한 얼굴을 씻지 못하고 걷는다. 산골짜기에서 부는 바람은 써늘한게 더욱 그들 모자의 마음속을 시리게 한다. 언제 따라 왔는지 승길이가 뒤에서 막 뛰어온다.
“추운데 집에 있지 왜 왔어? 감기 걸리려구.”
“엄마두 오는데 내가 와야지. 아버지 약 할건데.”
“착하기두 하지.”
은부인은 승길이를 앞세우고 별 말이 없이 못에 이른다.
그들은 못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논의 흙을 파서 막는다. 한쪽을 막은 상길이는 팔미터 정도 간격으로 또 막는다.
승길이는 도랑 위에 서서 대야를 들고 상길이가 막아놓은 도랑의 물을 앙증스레 퍼낸다.
“우리 승길이도 다 컸네!”
승길이는 엄마의 칭찬에 신명이 났다. 대야에다 더 많은 물을 담아 퍼내려 덤빈다.
“조금씩 퍼내야지. 그러다 다칠라!”
은부인은 승길이를 보고 맘이 여려 조심을 하라고 일러준다.
“미꾸라지가 없을 것 같네요!”
상길이는 못의 물길을 막으면서 말한다.
은부인은 아들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도랑 속을 들여다 본다. 도랑을 다 막은 상길이는 양동이를 가지고 물을 퍼내기 시작한다.
은부인도 큰 양푼을 가지고 물을 퍼낸다. 그들의 손과 발은 뻘개져 홍학다리를 닮아간다.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내려 연신 훌쩍이게 만든다.
물이 자작자작해지자 은부인은 소쿠리를 들고 미꾸라지를 찾느라 넓적넓적한 돌을 주워서 도랑 뚝 위로 올려놓는다. 그녀는 미꾸라지가 있기는 애초부터 글렀다고 여긴다. 진수렁에 사는게 미꾸라지라고 하는데 자갈과 모래 뿐인데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구석구석 뒤져서 미꾸라지를 찾는다.
“엄니, 우리가 잘못 왔어. 수렁에두 없는데 이런데 있겠어?”
“글쎄다.”
“우릴 누가 놀린 거지?”
“무슨 감정이 있다구 그러겠냐? 남을 의심하면 못쓴다. 호의는 고마워해야지.”
상길인 군말없이 돌을 뒤적이며 듣는다.
“사람의 병이 낫는건 금방 낫는 병두 있지만 너의 아버지 병은 오래된 병이란다. 십여년 전에두 사람들이 말하길 죽는다, 일어나기 어렵다는 소릴 듣다가 일어나셨었는데... 또 몸져 누웠으니 심상치가 않구나.”
상길이는 어머니의 말에 가슴이 뜨끔하고 다리가 시리고 저림을 느낀다.
“사람은 예감 같은게 있지. 지난 정초에는 엄마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후 마음이 불안하구 서운하여 개운치가 않더구나.”
“무슨 꿈인데?”
상길이는 미꾸라지 찾는 일도 잊어버리고 그의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우리집 마당에 택시가 있더라. 그런데 너의 아버지가 타구 있더라.
택시는 상거리로 달려가더라. 꿈속인데두 생시같이 그렇게 영 허전할 수가 없더구나.”
상길인 전율을 느끼며 두려움 속에 빠진다.
“엄니, 왜 그런지 집안이 횡행하구 싫은 마음이 자꾸 들구 가위가 눌려. 그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는데...”
“방태의사가 그러는데 너의 아버지는 간도 나쁘구 복막염두 생기구 또 뭐라더라, 오줌병이 생겨서 소변을 제대루 못한다면서...
그래, 어렵다구 하는 눈치더라.”
“제까짓게 뭘 안다구. 겨우 주사나 놓는 이가. 제가 의사야? 돌팔이지.
제가 뭘 안다구 기분 나쁘게.”
“넘이 뭐라든 방의사는 우리 동네서 죽을 사람 많이 살렸다..”
“도시 가서 의사노릇 하지.”
“사람 무시하는 것 아니다.”
“의사 면허두 없다니까 그라네.”
“병만 잘 고치면 되지. 옛날 의사는 그런 것이 없었단다.”
“그만둬요. 이런 것 잡아 먹으면 병 낫는다니 곧이 들을 수가 없어.”
“옛말에 병이 천이면 약은 만이라구 했다. 우리를 생각하구 일러주는 말인데 그 사람들 성의를 봐서 하는데 까지 해야잖냐.”
“병원에 안 가구 이런 것 먹어야 소용 있간디?”
“조약을 쓰다가 안되면 병원에 가야지. 돈이 있어야 병원에두 가는데!
걱정이다.”
그들 모자는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해서야 도랑에서 나온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시퍼렇다. 승길이는 젖은 옷소매를 내렸다가는 다시 걷어 올린다.
“승길아. 너 먼저 집에 가라.”
“엄마랑 갈거여.”
아홉살 난 승길이는 발이 시려워 쩔쩔매면서도 엄마랑 간다고 한다.
‘저런 어린 것을 놔두고 몸을 아끼질 않고 술을 그렇게 마시더니 끝내는 일어나지 못하는 병이 들었어......’
은부인은 속으로 남편을 탓 해본다. 자식들이 어리니 드러나게 걱정도 할 수가 없다.
상길이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깡충거리고 체조를 하며 추위를 몰아내느라 안간힘을 쓴다. 승길이도 따라서 뜀뛰기를 한다.
그릇을 주섬주섬 담아가지고 삽을 들고는 집을 향해 들입다 달음질을 친다.
얼마를 달리던 그는 양동이와 삽을 길옆에 놓고는 되짚어 달린다.
그의 어머니가 들고 오는 그릇을 받아 들고 또 달음질을 친다. 얼마를 달려가던 그는 그릇을 길옆에 놓고는 돌아서서 먼저 놓았던 삽과 양동이를 가질러 또 뛰어간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씩씩댄다.
은부인은 아들이 송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을 보고 미소를 머금는다. 그속에는 걱정도 우울함도 담기질 않았다. 든든함, 대견스러움이 시새워 오그라진 그녀의 몸을 훈훈케 한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다칠려구 그러니?”
“추워서 운동하는건데 넘어지긴 왜 넘어져요. 오늘두 조금 밖에 못 잡았으니 혼나겠네...”
“엄마랑 왔으니까 괜찮을 거여. 형.”
“괜찮다. 어제 네가 잡은 것 하구 합치면 약은 할 수 있겠다. 어서 가서 밥이나 먹자. 시장하겠다.”
“배고프지 않어. 엄니. 한끼 굶어선 괜찮어.”
그들은 집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윤공은 미꾸라지 즙을 조금 맛을 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이건 약이 아니라 소금이라고 비려서 못 먹겠다고 막무가내다. 이걸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말은 염두에 두지를 않는다. 마치 건강한 사람이 음식을 골라서 먹는 것 같다.
그는 오줌길을 통한다고 옥수수 수염도 삶아서 맛을 보았다.
달팽이도 잡아서 그것을 즙을 내서 조금만 맛을 보았다.
좋다는 약은 조금씩 맛을 보아서 이젠 맛만 보기도 지겨워 약이라면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그는 조금씩 먹는 그것도 몸 밖으로 걸러내지를 못해 그의 배는 점점 부어올라서 만삭이 된 여자 같다.
사월 초순의 어느날이다.
윤수와 윤공의 매제는 윤공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택시를 대절하여 타고 와서 병문안을 한다.
그들은 이렇게 되도록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이렇게 늦게 알리면 어쩌느냐고 안타까워한다.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자고 재촉한다.
동네 아이들은 택시를 보고 좋아라 모여든다.
아낙네들도 하나 둘 나와 서서 ‘이젠 윤공의 병이 낫겠지.’ 하는 눈빛으로 윤공이 차에 타길 기다린다.
윤수는 그의 형을 부축하여 차에 태운다.
은부인은 주섬주섬 윤공의 옷가지를 싸들고 남편을 부축하여 택시에 오른다. 저희 누나에게 업혀서 지켜보던 막내아들 옥길이는 기겁을 하여 운다.
엄마를 부르고 발버둥을 친다. 승례는 삽짝 안으로 뛰어들어 간다.
은부인은 막내 아들이 걱정이 되어 차 밖으로 나오며 손짓한다.
“옥길이를 데려와라. 그냥 가면 아이 병난다.”
윤수는 ‘어서 가야 되는데’ 하며 입맛을 다신다.
윤공의 매제도 입맛을 쩍쩍 다시며 손목의 시계를 자주 들여다 본다.
상길이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떼를 쓰며 버둥거리는 옥길이를 낚아채듯 안고서 좇아나와 저의 어머니 품에 밀어넣는다. 그리고 차문을 다시 열었다가 힘주어 닫는다.
창윤이 엄마, 돼지 엄마, 원숙이 엄마가 윤공에게 당부한다.
“꼭 낫어 오세유. 지금은 약이 좋아서 금방 고칠 거여유.”
윤공은 힘없는 눈으로 그녀들을 둘러 본다.
택시는 상거리를 향해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간다.
윤공은 동생의 집에서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다닌다. 그는 안방을 차지 했다는게 여간 거북스런게 아니다.
‘아버지가 병환이 나셨을 때도 안방에 계셨고 상길이가 병 나서 입원 했을 때도 동생에게 고생을 시키구. 지금은 내가 이러구 있으니 제수씨 보기도 죄스러워...
내병은 차도도 없구 공연스레 동생 내외한테 내가 너무 고생을 시키누먼.’
그는 민망스러워 전전긍긍한다.
윤수는 우물에서 채소를 씻는 아내에게 물을 길어 준다.
“당신이 웬일이세요. 물을 길어주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남편임을 알고는 환하게 웃는다.
“당신, 요즘 수고가 많아. 내가 나중에 몽땅 갚을께.”
“수고는 무슨, 내가 남인가요. 시아주버님이 속히 차도가 있으시면 좋겠어요.”
“당신이 애를 쓰니까 나으시겠지. 고마워.”
“당신두, 참.”
“의사가 그러는데 형님 병은 쉽지가 않다누먼. 그렇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그는 잠기는 소리로 흐릿하게 말한다.
“너무 걱정 마세요. 무슨 병이던 치료 기간이 걸리는 것 아니겠어요?”
“당신과 얘기할 시간도 갖질 못하구. 미안하다구.”
“별 소릴 다 하...”
윤수는 아내가 병 간호하랴. 아이들 키우랴. 돈 빌리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도 군말 없고 얼굴도 찡그리지 않는 것을 마냥 고마워한다.
윤공이 병원에 입원하여 대전에 온지도 한달이 훨씬 지난 어느날이다. 윤수네집 대문 앞에 은부인은 어린아이를 업고 한손으로는 어린아이를 잡고 서 있다.
어린아이도 은부인도 땀을 뻘뻘 흘린다. 그녀의 적삼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은부인은 잠시 마음과 몸을 식힌다. 은부인은 수건으로 아들의 얼굴과 머리를 닦아준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닦는다.
숨을 돌린 그녀는 초인종을 누른다. 그리곤 중얼거린다.
“벌써 한달이 넘다니...”
은부인의 얼굴엔 미안한게 조금 비쳐진다.
대문 안에서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묻는 소리가 여리게 대문 밖으로 비집고 나와 반긴다.
“큰 엄마다. 잘 있었냐?”
“예.”
대문에 매달린 방울이 요란하게 딸랑거린다.
조그만 계집아이가 대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를 한다.
“어, 착하지.”
그녀는 조카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아이구, 형님 오세요?”
윤수의 아내는 부엌에서 죽을 끓이다가 뛰어나와 반갑게 동서를 맞이한다.
“그간 동서가 고생이 많았지?”
“제가 뭘요. 형님이 고생이시지.”
은부인은 동서의 두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민망하다고 치하를 한다.
“더위에 고생 많으셨지요? 어서 씻으세요.”
“고생은 동서가 크게 하지. 매번 그래서 동서 보기가 민망하다구.
구덮만 치루게 해서.”
“형님두 그런 말씀을 왜 하세요. 어서 들어가세요.”
은부인은 동서의 손을 잡은 채 뜰방으로 오른다.
윤수 아내는 손을 빼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아랫목 쪽에 있는 방문은 닫혀 있고 웃목쪽의 방문은 활짝 여느라 벽에 문고리를 붙들어 매 놓았다. 은부인은 열린문으로 방안을 기웃한다.
윤공의 얼굴은 몹시 화가 나 있다. 그의 얼굴은 볼이 우묵하게 들어가 깊이 파여져 있다. 그리고 늘어졌다. 목은 아주 길게 뽑아져 나왔다.
그는 아랫목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휑한 생기 잃은 눈으로 그의 아내를 야속하다고 나무란다.
“서방이 죽기만 기다리냐?”
안간힘을 다해 큰소리로 나무란다.
은부인은 손을 들어 남편 입을 막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안방으로 이내 들어간다.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슈? 못오는 사람두 생각해야지.”
“서방보다 더 중한게 있냐?”
그녀는 옥길이를 방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웃목에 앉는다. 아이들은 겁먹은 눈으로 저의 엄마 무릎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눈치를 살핀다.
“당신두 참, 농사는 어떻게 하구 달려와요. 누가 집은 보구. 그러니까 내가 미안해하는 것 아니유.”
“흥, 핑계는 잘댄다. 금방 올 것처럼 하구선, 며칠이 한달이구나?”
윤공은 토라져 외면을 하느라 닫힌 방문을 마주하면서 등 너머로 말을 한다. 그는 아내에게 토라진 목소리가 되더니 떼쓰는 모습이 되느라 더 돌아앉는다. 은부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더니 웃음을 띤다.
“나두 당신 곁에 있슴 좋다는 걸 알아요. 미워두 당신두 내가 좋을께 아니유. 사정이 그런걸 어쩌겠수. 우리 논에 모는 누가 심어주구 보리는 누가 거둬요. 그렇게 바쁘구 힘들어두 맘은 병든 영감한테 있었다우. 당신 하는 걸루 하면 정나미가 떨어져두 벌써 떨어졌지만 내가 그전에 뭐라 했수? 몸을 조심하라니까. 병 생긴다니까 하구 싶은대루 하더니 당신만 고생하는 거유? 죽기는 쉬운 거유? 매일 술독을 짊어지더니...”
그녀는 자상하게 조목조목 따진다.
“누굴 약 올리는 거냐?”
“얼마나 딱하구 애가 타면 이런 소릴 하겠수.”
윤수내외는 웃방 마루에 걸터앉아 형과 형수가 주고 받는 이야기 를 듣는다.
“여보, 형님두 말을 참 잘 하시네요?”
그녀는 남편의 귀에다 속삭인다.
윤수는 아내의 묻는 말에 빙그레 웃음을 담는다. 그의 엷은 웃음에는 형수의 말 솜씨를 이제야 알겠느냐? 사리가 아주 밝고 똑똑한 양반이며 꼭 할말은 주저치 않는 양반이라고 쓰여져 나온다.
“아주버님은 아무 대답도 못하구 듣기만 하시는데, 난 형님에게 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아주버님은 젊었을 적에 형님 속깨나 썩혀드렸나 보죠? 그러니까...”
윤수의 아내는 안방을 흘끔 돌아보고는 남편의 귀에다 입을 바싹 들이밀고 속삭인다. 그리곤 물러앉아 예쁘게 눈을 흘긴다.
“당신 그러면 가만 안두겠어요. 가만 안둔다고요.”
윤수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시늉을 하며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가리고 조용히 하란다. 그는 아내가 말을 멈추지 않고 또박거리는 말에 질겁을 한다.
‘형님에게 쩔쩔매시는걸 보면 보통이 아니었어. 형님을 잡드리는 양반이 저럴 수가...
저이도 형제간인데 별수 있을라구. 능청스러운데가 많고 끼가 있어.
사내는 인물 값을 한다던데 어련할라구. 저이도 나중에 어떨지 누가 알아. 괜히 늦게 늦바람이라도 난다면... 아니, 지금도 그속을 누가 알아. 단속을 단단히 해야지...’
윤수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이 넘치는 눈길을 주며 이리저리 생각을 굴린다.
윤공은 회한의 서리속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얼굴을 오그렸다 폈다 하더니 어깨를 벽에 대고 미끄럼을 탄다. 왼손으로 몸을 바치고 천정을 향해 눕는다.
그는 입을 오무리고 울대를 디디고 줄기차게 뻗어나는 앓는 소리를 막느라 안간힘을 쓴다. 몸을 틀어 돌아누워 버리느라 낑 소리가 나오고 만다.
은부인은 남편이 자리에 눕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문다. 그리고 무릎에서 자는 아들을 쓰다듬고 곁에 앉아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녀의 눈은 남편의 구석구석을 더듬는다. 남편의 엉덩이가 젖어 는 것을 발견한다. 이내 가슴속이 철렁 내려 앉는다. 까마득한 곳을 헤맨다. 끊어지고 있는 줄에 매달린 몸뚱이를 찾고 만다.
“저이는 세상없이 아퍼두, 죽네사네 하는 고통 속에서두, 이웃이 알면 잠 못 잔다구 이를 깨물고 앓는 소리두 삼키구 땀만 뻘뻘 흘리던 저이가 옷 매무새를 흐트리다니. 저럴 수가?
정신이 없어 오줌을 지렸었나? 그런적이 없었는데!”
은부인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소리없이 중얼거리며 남편 곁으로 당겨 앉는다. 그녀의 얼굴은 검은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자리를 잡는다.
남편의 발목을 어루만진다. 발목과 발등은 있는대로 부어올라 멀룽거린다. 손가락으로 꼬옥 눌렀다간 금방 노란 물이 따라 나오게 생겼다.
수둥다리 같은 종아리를 쓰다듬는다. 은부인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기대했던 것이 송두리째 뽑혀버린다. 웅덩이를 채우는 소리는 그녀의 손끝을 떨게 한다.
‘이제는 나두 홀에미 소리를 듣게 생겼구나. 벌써 그렇게 되다니.’
하는 억울함에 시선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엊그제의 옛날 속으로 떨어지느라 혼줄을 잡았다가 곤두박질 속에 놓치곤 넋이 빠진다.
“엄마! 더워. 엄마!”
그녀는 아들이 부르고 팔을 흔드는 바람에 간신히 넋을 찾아 잡아넣는다.
“그래, 나가자.”
그녀는 남편의 다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담장 밑에 놓인 들마루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 부채를 집어들고 아이들에게 바람을 일궈준다.
윤수의 아내는 손위 동서가 밖으로 나와 들마루에 앉는 것을 보고는 마당으로 내려와 동서 곁으로 서둘러 와서 앉는다. 그리고 근심어린 눈으로 동서를 바라보며 궁금한 것을 꼬집어낸다.
“형님께서 보시긴...”
그녀는 말끝을 주저주저하다가 흐린다.
“동생 내외가 이렇게 애쓰는 공으로 해서라두 나아야지.”
은부인은 대답대신 서글픈 소리로 치하를 한다.
“상길이 아버지는 복이 너무 많은 양반이야. 남들은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실컷 먹고 했으니 원이야 없지. 누굴 한하겠어.”
“병원에 입원하려고 했는데 의사가 입원하면 입원비만 드니까 집에서 다니라구 하데요. 그래서 날마다 병원에 다녔지요.”
은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서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아주버님이 병원에 가셨다가 오시면 엉덩이 께가 젖어 있대요. 저도 처음엔 왜 그런가 했었는데 주사약이 도로 나와서 그렇구나 했어요.”
“주사를 맞으면 약이 살 속으로 들어가야지 나오다니?”
“그래서 걱정을 했어요.”
은부인은 그렇기야 할라구, 설마 했던게 가슴팍을 들이쳐 나뒹구는 소리를 토한다.
“의사가 두고 보자고 하면서도...”
“상길이 아버지의 병은 골수에 박혀서 주사가 소용이 없나봐. 그런데 고치겠어?”
“아주버님 병은 금방 알아보게 차도가 있는 병이 아니래요.”
그녀는 안방을 기웃하고 조심스럽게 속삭이듯 말한다.
은부인의 마음은 집에서 걱정할 때보다 더욱 마음이 짓눌리고 머리에 맷돌을 모자처럼 쓴 것 같다. 가느다란 소망에게 잡혀서 끌려왔던 그녀는 풀어지는 소망을 시름 속에서 잡으려 덤빈다.
은부인이 남편 곁에 온지도 삼일이 지났다. 그의 큰 아들이 왔다.
윤공은 그의 아들을 보자마자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그는 아들이 절을 하자 마지못해 절을 받는다.
윤공은 절이 끝나기 바쁘게 기운을 모두 긁어내어 호통을 친다.
“아, 이놈아! 그래 애비가 죽는다는데 꼴두 안뵈냐?”
윤공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꼬끄랑하다가 이내 풀어지고 만다.
기운이 있어야 화도 내는갑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화를 돋우던 눈도 흐느적거리다 짚불 사그라들듯 한다.
상길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벌을 기다리는 태도를 지닌다.
“이 인정머리 없는 놈, 썩 나가거라. 꼴두 보기싫다.”
그는 중얼거리다 힘을 다시 모으느라 어깨를 들먹거려 숨을 쉰다.
“당신두, 저애가 올 줄 몰라서 안 왔나요. 차비두 없구, 농사는 누가 짓구 오겠수.”
윤공은 몹시 비위가 상한듯 고개를 외면한 채 뒷문 밖을 바라만 본다.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가 꾸중을 그치자 오면서 사온 사과를 깎는다.
그는 사과를 쪼개어 접시에 담는다.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다. 용기를 얻느라 뜸을 들인다. 사과 접시를 그의 아버지 앞으로 밀어 놓는다.
“아버지 용서하세요. 이것 좀 잡수세요.”
“안 먹는다.”
윤공은 자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퉁명스레 딱 잘라 말한다.
“자식이 부모 생각하구 사가지구 온 것을 들었다가라두 놓아야지.
그렇게 냉갈스러워서야 어느 자식이 부모 위하겠수?”
윤공은 아내의 말에 삐쳤던 고개를 돌리고 아들이 꼬챙이로 꿰어들고 있는 사과 조각을 받아 쥔다. 그리곤 사과를 들여다 본다. 그의 눈엔 안개가 피어오르게 군불을 지폈다.
아내가 좋다는 말에 신물이 났다. 부부는 금슬이 좋지 않아도 어거지로 떼를 쓰면서 살아가게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섭리를 어렴풋 조금은 배웠다.
윤공은 고통이 달려들고, 외로움이 찾아 들고, 두려움이 몰아쳐 끌고 가는 것을 당하기만 하는 존재라는 것도 강제로 배웠다. 그리던 아내가 곁에 있어도 마음의 평안엔 헛일이라는 걸 체험했다.
사람은 사람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고 깨달았다. 사람은 이렇게 떨다가 아쉬워 하다가 야속해 하다가 자빠지고 만다. 그렇담 어쩌나?
내가 바라는 것은 찾을 수가 없는 건가? 그의 눈은 희뿌연한 채 몸 밖을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헤맨다.
상길이가 온 다음 다음날, 윤공은 윤수 내외의 부축을 받으며 행길에 나와 대절해 온 택시에 오른다.
‘이제는 더 바랄 수도 없지. 택시를 타고 왔으니 버스를 타구 가야 되는데...
저 녀석이나 장가 보내고 병이 났다면 좀 나으련만. 지지리도 복이 없지. 며느리 손에 밥 한그릇도 못 얻어 먹구...
택시 타고 집을 나갈 땐 좋은 의사 만나면 고칠 수 있겠지 했는데.’
은부인의 마음은 풍랑이 일고 또 밀어 닥칠 곳으로 끌고 달린다. 아찔하여 비명을 지른다. 절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되고 만다. 그녀는 가슴을 내리쓴다. 감았던 눈을 소스라쳐 든다. 남편을 흘끔 쳐다보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귀엔 남편의 숨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대장간의 풀무 소리가 된다. 무쇠가 빨갛게 불색이 된다. 대장장이는 큰 망치 작은 망치로 납작하게 두들긴다. 도끼가 되었다 괭이가 되었다 낫이 된다.
나중에는 닳아빠져 불속에도 들지 못하고 버려진다.
“나 봐, 넋 빠졌어?”
윤공은 아내가 멍청이가 되어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짜증이 담긴 말로 핀잔하여 부른다. 그는 차를 타고 자갈길을 덜컹거리며 달린다는게 죽을 맛이다. 덜컹거릴 때마다 입술을 힘주어 깨문다. 주름잡힌 얼굴에선 끙끙대는 소리가 배어 나온다.
그의 배를 가렸던 보자기 수건이 차의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은부인은 자기만의 생각에 골몰하다가 남편의 소리에 잠에서 깬양 남편을 궁금한 눈으로 바라본다.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품에 안으려 손을 내밀어 기대게 한다.
“혼 빠졌구먼, 누가 기댄대?”
그의 말은 부드럽지 못하다. 멸시와 모욕이 범벅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먼죽했던 그녀는 그제야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보고 주워 털어서 남편의 배를 덮어준다.
“잘한다. 죽을 서방은 멀쩡한데...쯧쯧, 정신을 차려.”
윤공은 보기가 답답하고 딱하다고 힘이 실리지 않은 소리로 중얼대듯 말한다.
운전사 옆자리에 앉아 있는 상길이는 만길이를 안고서 택시따라 앞만 본다.
‘아버지는 차 속에서까지 어머니한테 핀잔할게 뭐람. 우리만 있는 것두 아닌데. 삼촌네 집에서두 그러구. 누가 있으나 없으나 저러시니 아버지는 삼촌과 정 반대구먼. 병 생긴게 누구때문에 생겼는데.....’
상길이는 창피스러워 소리없이 투덜댄다.
택시가 먼지를 일구며 마주 달려온다. 택시에선 노랑, 빨강, 파랑 테이프가 펄럭거린다. 택시는 신랑, 신부의 기쁜날을 붙잡아 두기라도 했다고 신바람을 몰고 스쳐 내뺀다.
‘저이들은 좋겠지. 아들두 낳구 딸두 낳겠지. 웃었다가 울었다가 아퍼도 하겠지...’
상길이는 신랑 신부를 태우고 달리는 택시를 따라가며 구경하듯 읊조린다.
윤공은 동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택시에서 내린다. 동네 사람들은 상길네 집으로 모여든다. 그들은 윤공을 부축하여 집안으로 들어간다. 윤공을 바라보는 그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런 표정에 도리가 없다는 글씨가 쓰여져 있다.
“큰 병원에선 치료가 되었어야 하는데.”
“상길 엄마가 어쩌나? 딱두 하지.”
동네 아낙들은 기죽은 소리로 걱정들을 한다.
윤공은 가까스로 방으로 들어와 요위에 몸을 부린다.
동네 사람들은 측은한 얼굴로 이구동성으로 몸조리 잘 하라고 하며 돌아간다.
윤공은 큰 딸을 보자 놀란 가슴을 다독거리느라 애를 쓴다.
“저 아이는 언제 왔어?”
윤공은 사람들이 삽짝을 나가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성급히 묻는다.
“시집을 갔으면 시집에서 사는 거지. 고생스럽다구 친정에 오면 되냐?
그만한 참을성두 없냐? 호강하러 시집 갔냐? 어찌 했길래 친정에 오게 됐냐?” 는 소리가 매달려 버둥거린다.
“열이 땜에 신경 쓸 것 없어요. 열이가 오지 않았으면 당신한테 갈 수도 없었다우. 그 애두 할 수 없이 왔는데 너무 못 마땅해 하지 말아요.
어디루 가겠수. 에미 애비가 살아있는데. 어쩌겠수. 못본 체 하시구랴.”
윤공은 아내의 말에 아랫목 벽을 향해 끙끙대며 돌아눕는다.
“서방 빨리 죽게 하려면 붙들구 있어. 나는 모르니께.”
“그러니께 당신은 모른 체 하면 돼요. 그애만 보면 속상하니까 잊어버리구 맘이나 편히 가져요.”
윤공은 드러눕기도 힘들고 앉아 있기도 숨이 차서 이불을 내려놓고 등을 기대앉아 반은 눕고 반은 앉아서 속을 끓이다 지치면 잠을 잔다.
배가 부어오른게 못 견디게 아프면 의사를 청해서 뱃속에 잔뜩 들어있는 물을 빼낸다. 그럴 때마다 노랑물이 흰 고무 호스를 타고 세면기로 흘러내린다. 세면기에 절반 이상이 차 오르면 호스를 빼놓고 세면기의 물을 잿간에 갖다가 버린다.
물이 빠진 배는 조금 홀쭉해 보인다. 그러다가 이삼일 지나면 다시 물을 빼야만 견뎌낸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 아버지를 구원시켜 주소서.
아버지가 회개하고 예수 잘 믿어 천당가게 하소서.”
열이는 상길이를 따라 열심히 예배당에 다닌다. 그녀는 예배당에 갈 때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한다. 침 맞으러 갈 때도 예배당에 찾아간다. 그녀는 침 맞는 일을 하루라도 걸렀다간 허리가 아파서 견디질 못한다. 허리가 아픈 것은 허리에 죽은 피가 많이 모여서 그렇다고 의사가 진단을 했었다. 의사는 매일 열이의 등을 침으로 쑤시고 피를 빼낸다.
“요즘두 그애 침 맞으러 다녀?”
“다녀요. 명태국두 한그릇 먹이지 못해 안됐어요.”
“이런 답답한 꼴 봤나? 생으루 죽이는군.”
“침 맞는다구 죽나요? 의사가 어련히 알아서 할라구.”
“그몸에 피 빼구 살 것 같아? 침으루 찔러대는데 안 아프구 배겨?”
“우리가 돈 두구 약 안먹이는 것 아녀유. 당신은 그런 걱정은 말아요.
기운두 없으면서.”
“그애는 사는 게 고생이니 명대루 살아본들 탄식만 더 하지. 어디 가두 반기는 사람 없으니 죽으면 몸도 편하겠지. 그렇지 않아두 당신의 고함소리 지금두 귀에 쟁쟁하여 친정에 오구 싶은 맘이 없는데 할 수없어 왔다구 합디다.
저의 삼촌 집에두 있어보구 흥신동 고모네 집에서 이십 여일 있다가 기침이 심해져서 왔답디다. 사람 같지두 않은 것들이 글쎄, 열이가 보건소에서 진찰을 받구 약을 받아가지구 집에 오니까 폐병인줄 알구 아무두 없더래요. 아이들두 서방놈두 없어져서...
그러구 솥단지두 없더래요. 그래서 시아버지 집에 갔더니 시미가 하는 소리가 네가 그런 병에 걸렸으니 살림하겠냐? 생각다 못해 너와 따로 있게 하려고 어디 보냈다. 그러니 친정에 가서 병 고쳐가지구 와서 살으라더래요.
우리가 시집 잘 못 보낸게 죄지, 누굴 원망 하겠수? 그애가 당신 맘을 모르겠수? 당신이 그애를 키울 때 이 계집애 저 계집애 소리 하번 안했잖우...
나두 당신 보기가 싫다우. 당신이 조금 큰 소리만 내두 저 때문에 그러나 싶어 가슴이 두근거린대요. 그것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하다구.
가라구 하면 그것이 어디루 머리를 두르겠수?“
은부인의 말소리는 점점 격앙되더니 젖은 소리가 되어 목구멍 저너머에서 울먹거린다.
윤공의 열기없는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윤공은 아내의 손을 잡는다. 퉁퉁 부은 손은 아내의 손등에 얹혀졌다. 그는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싶으나 마음뿐이 됐다.
‘좀더 정성스럽게 할 것을 이젠 일어나긴 틀렸구...
내가 일방적이어서 속을 썩혔으니. 한날 한시에 어른이 되고도 나만 어른인양 윽박지르구, 업신여기구,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으니. 나같은 놈은 죽을 때나 철이 드니 한심하지.’
윤공은 이윽히 아내의 눈을 올려보며 소리없이 지껄이다가 입을 열어 불러본다.
“여보.”
은부인은 남편의 소리따라 고개를 든다.
“당신은 내가 여자들과 놀아나두 챙피주지 않고 참아줘서 고마워.
나를 남편이라구 그만큼 대접을 했는데, 내가 철이 없어 그런 거지만, 당신은 가마타구 나는 걸어 왔다구 구박한 것은 지금와서 생각하니 참 안타까운 마음 뿐이라우. 용서하구랴.”
“당신은 별걸 다 가지구. 내가 좀 느려서 당신에게 불만이 생기게 한 것두 많지 뭐...”
그들은 늦게나마 어긋 났던 남편의 마음, 남편의 도리, 아내의 마음, 아내의 도리를 찾아 바로 잡는다.
종아리를 무릎 위에까지 걷어 올리고 마루에 겉터앉은 사람, 앞가슴을 열어 놓고 마루에 벌렁 드러누운 사람들이 잡담을 늘어놓는다.
상길이는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간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까지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부끄러움이 올라오는 통에 눈을 내려뜨고 땅만 보고 걷는다. 그는 준석이네 집 마루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있는 것을 훔치듯 찾는다. 그리고 맘을 놓는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그곳에 있지 않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저의 집으로 들어간다.
“잘 다녀왔냐?”
은부인은 삽짝으로 들어서는 아들을 보고 반긴다. 상길인 꾸벅하고 절을 한다. 뜰방에 앉아서 널벅지에 씻은 감자를 담아 놓고 수저로 감자의 껍질을 벗기던 그녀는 아들을 보자
‘어쩐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소리가 목구멍 위로 뛰어 올라 얼굴을 적신다.
“당숙 어른들은 안녕하시더냐?”
“예.”
“갈 때 고생은 안했냐?”
“예? 예.”
“그래 서울 가보니 어떻든?”
“그저 그래요.”
상길이는 마지못해 기운 없는 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더운데 어서 씻어라.”
상길이는 운동화를 벗고 고무신을 찾아 신고 우물로 가서 세수도 하고 발도 씻는다.
“당숙 어른은 호인이시지. 그래 당숙께 이야기 해봤냐?”
“안된데요.”
“그 어른은 바쁘신 어른이시라...”
그녀는 체념하고 좋은듯 말을 한다.
“바쁘면 밥도 안 먹나?”
그는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원망이 범벅된 소리로 지껄인다. 점점 기가 살아나는 것 같다.
“일이란 그렇게 쉽게 떡먹듯이 되는게 아니란다.”
“힘도 안 쓰고 되지 않는다면 누가 곧이 들어. 시골 가서 농사나 지으래. 나는 대대루 농사 지어야 될 사람으루 보더라구. 자기네만 서울에서 살아야 되나봐. 맘보가 꼬였어요. 말할게 없어. 고만 물어요.
글쎄 나를 무슨 거지 취급하는데 비위가 상해 간신히 참았다구.
나는 콩나물국 주구 자기 아들은 소고기국 주더라구. 치사하게 겸상이나 안했음 몰라. 그런 것들이 사람이야?”
“상길아.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네 육촌형은 몸이 아파서 요양을 한다구 했었다. 그래서 마침 국이 모자라 그랬나 보다. 그리고 남자는 그런 먹은 이야기는 안하는거다. 그런 말을 하면 사람이 가치없어 보이는 거란다.”
“심보가 그러니 자손이 그런 병에 걸리지. 호인이 다 없어지면 호인 되겠지.”
“사람이란 잘 참구 그래야 훌륭한 사람 된단다. 길을 가다 보면 닭도 보구 소두 보구 하는 거란다. 그게 네게 약이 되는 거여. 서운할 것두 욕할 것두 없지. 남자는 그런걸 잘 잊어버릴 줄 알아야 장부가 되는 거다. 옛글에두 나에게 칭찬하구 잘하는 사람은 적이 되구, 나에게 욕두 하구, 멸시두 하구, 천대두 하는 사람은 나의 선생이라는 말이 있단다.”
은부인은 아들을 타이르면서 어른들이 하던 말들이 진하게 연기처럼 몰려와서 눈 놓을 자리를 찾느라 긁던 감자도 수저도 놓친다.
‘자식은 겉만 낳지 속은 못 낳는다더니 언제나 저 녀석이 철이 들까?’
상길이는 다음날부터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닌다. 그는 친구 만천이를 따라 다니며 나무하는걸 배우고 푸정나무를 해 나른다.
“만천아, 너는 황충이 쏘이지 않냐?”
“나라구 별 수 있간?”
“그 정도는 약과다. 내 팔좀 봐라.”
상길이는 긴 소매를 훌쩍 걷어 올린다. 그의 팔뚝은 빨간 송충이가 덕지덕지 달라 붙은 것 같이 빨갛게 툭툭 불거졌다.
“상길아, 이따가는 음달로 가서 나무하자.”
“음달은 괜찮냐?”
“괜찮긴, 조금 낫지.”
“그럼 음달로 가자.”
그들은 매일처럼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닌다. 푸정나무를 해서 냇가에 널고 다음날에는 마른 나무를 짊어져다가 헛청에 쌓는다.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목에다가 긴 수건을 꼭 동여 매고 손목도 발목도 옷 끝에다가 고무줄을 넣고 병마개처럼 모자를 눌러 썼다.
그들은 낫질을 몇번 하다가 참질 못하고 샅타구니를 긁적댄다. 끙끙대며 낫질을 한다. 또 사납게 긁는다.
“만천아, 황충이가 옷에 묻지도 않았는데 쏘냐?”
“그건 황충이 털이 달라붙어 그런 거야. 바람에 날리거던.”
상길인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들은 나무를 짊어지고 산을 내려가면서도 긁는다. 그들은 몸뚱이를 긁을 때마다 마음속 바닥에서 두드러기가 따라 일어나는 것을 삭이느라 끙끙댄다. 군소리가 되어 투덜댄다.
서로 약속이나 한양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되나?’ 하는 소리가 나오며 불만이 그들의 가슴속에서 장을 지지느라 부글거린다.
산을 내려온 그들은 지게를 세워 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오금도 긁고 겨드랑이도 긁는다.
“내가 왜 이렇게 작은지 아냐? 지게에 치여서 그렇다구. 지게라면 이제 진저리가 쳐진다. 넌 할만 하냐?”
“할만 하긴 잠시 하는 거지.”
“너는 아예 지게 질 생각 마라. 도시로 가서 기술 배워야지. 그래야 바라볼게 있다. 너.”
“이끌어 줄 사람이 있어야 배우지. 우리도 언젠가는 좋은수가 생기겠지뭐.”
“언제? 늙어서?”
“누구던지 먼저 나가서 기반이 잡히면 끌고 나가면 될게 아니냐?”
“우선 너는 예수 믿어라. 그래야 우리가 앞길이 열린단다. 그러면 약속도 지킬 거다.”
“웃기지 마라. 너나 믿어.”
“너 교회에 나가면 배우는게 많다.”
“너나 많이 배워라.”
“너는 아는 체 하지만 교회 전도사님은 굉장하다야.”
“뭐가 굉장하냐?”
“너 같이 고집쟁이는 한 번 만나면 꼼짝 못하게 한다더라.”
“흥! 힘깨나 쓰는 모양이지?”
“왜 아녀. 너 같은건 납작코 될거다.”
“잘 해봐라.”
“너 자신 있음 한 번 만나 볼래?”
“내가 뻥긋하면 전도사가 챙피해서 도망칠 거다.”
“아주 큰소리치네. 그럼 오늘 만나볼래?”
“일 없다. 그만 가자.”
“꽁무니 사냥하냐?”
그들은 지게를 지고 냇가로 가서 푸정나무를 자갈 밭에 메다 꽂는다.
그리고 지게 고리를 끌러놓고 푸정나무를 꺼내 얇게 널어 놓는다.
그리고 마른 나무를 짊어지고 흥얼거리며 집을 향한다.
“너, 아까 꽁무니 사냥 잘 치던데. 또 사냥하자. 챙피줘서 쫓아버려.”
“듣기 싫다. 너나 열심히 복이 터지게 믿어라. 난 질렸다.”
“그러니까 교회 가보자.”
“일 없어. 밥 먹고 잠이나 자자.”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날도 그들은 나무하러 산으로 간다. 만천이는 계속 충동질하여 상길이를 예배당에 데려가려고 열심히 전도한다. 상길이 귀속에서는 ‘예수’ 소리가 참 벌이 되어 앵앵거리기 시작한다.
“야! 예수쟁이들은 부모도 모르는 것들 아니냐? 그거나 알구 믿어라. 딱한 놈아!”
“누가 딱한지 모르겄다. 그러니 예배당에 가서 배워. 배워야 알지.
“제사도 안지내는 것들이.”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성경 읽으면 해답이 나온다. 너 알구나 비방해라. 넘이 헐 뜯으니까 덩달아 바보짓 하지 말아야.”
“나두 당숙이 준 서경책 있어야!”
“읽어보구 까불어라. 에수 믿는 사람들이 너보다 못해서 예수 믿는줄 아냐? 서양 사람들이 문화가 얼마나 발달했냐? 그들 모두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천당만 가는게 아니라 이 땅에서두 복 받아 잘 산다구.
전도사님이 그러는데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마다 가난에서 벗어났단다. 우리나라두 그렇지. 학교두 거반 선교사들이 세워 민족의 눈을 띄웠단다. 넌 모르냐? 알아보구 네게 유익될 것 같으면 예수 믿어. 그래야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 건지 성경이 가르쳐 준다구 하더라. 사람이 고생하는 이유도 난 알았다. 넌 아냐?”
“난 지게 다리나 두드리다가 죽을란다. 나무나 하자.”
“예수 믿으면 빈둥대는 줄 아냐? 일하기 싫으면 먹지두 알라구 했어.
넌 전도사님에게 많이 배워야겠다. 그래야 무식을 면하지. 네가 찾아가면 인생이 불쌍해서 괄세는 안 할거다. 넌 뛰어봐야 벼룩여.”
만천이는 앉아서 이기죽거려 말을 시킨다.
“고만 떠들어. 나무 못하겠다. 자식, 떠들긴.”
“왜, 말이 막히냐? 열심이구나. 한 번 교회 가서 해봐라. 이놈아.”
“그래 본관이 출도 할란다. 납작코 되게.”
“어딜 출도냐? 너 같은게.”
“전도사 망신시키러. 왜 찔리냐?”
“언제 갈래? 내년...”
“오늘 저녁에 갈테니 앞장 서라. 이놈아.”
“널 신용해도 되겠냐?“
“언제, 거짓말하든? 사내자식이 의심은.”
만천이는 콧노래를 하다 찬송가를 부르며 나무를 한다. 그들은 푸정나무를 짊어지고 산을 내려간다. 상길이는 끙끙대며 토끼 걸음으로 만천이 걸음을 따라 산을 내려간다.
일동이네 집은 한삼내 북쪽으로 동네 끝에 있으며 큰길 왼편에 자리잡았다. 행길따라 길다랗게 마루가 있어 길가는 사람들이 길게 마루가 있어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가 가고 동네 아이들이 모여 노는 놀이터 구실도 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모여들어 일동이네 집 마루를 메우고 떠들고 행길에서 줄넘기도 하고 행길가에 세워놓은 평행봉에서 매달려 노느라고 동네가 들썩거린다.
일동이네 집 행길 건너편 뒤쪽에는 일동이네 집과 비슷하게 삼간 짜리 초가집이 세워져 있다. 그 집은 행길따라 담장으로 집을 가렸다.
담장 높이는 어린아이 키와 엇비슷하게 생겼다.
초가지붕은 언제부터인가 볼상 사납게 홀랑 벗겨놓았다. 여름날 병아리가 더위를 이기느라 털을 벗어 제치고 고기 덩어리만 뛰고 기는 것을 생각케 한다. 그리고 판자집 지붕에나 씌우는 루삥을 억지로 씌워서 볼먹은 소리를 내느라 울근불근거려 볼따구니가 잔뜩 부어오른 곳도 많다.
벽은 백토를 파다가 언 손으로 발라놓은양 볼품이 없다. 아기 포대기처럼 여기 저기 지도를 그려 놓아 금방이라도 지린내가 달려들 낌새다. 지붕 위에 올려놓은 넓적넓적한 돌이 무겁다고 밤나무 기둥이 몸을 꼬고 비트는 바람에 벽도 울퉁불퉁하게 생겼다.
삽짝을 달았던 자리 옆에다 까죽나무 기둥 두 개를 간격을 두고 땅을 파고 세웠다. 까죽나무 사이를 연결하느라 길다란 몽둥이로 사람키 높이 되게 굵은 쇠사줄로 붙들어 맸다. 몽나무가 도망 못가게 다시 철사로 새끼를 꼬아 붙들어 앉혔다.
몽나무엔 폭탄 덩어리 같은 걸 매달았다. 한삼내 사람들은 재주도 용타고 징그럽지도 무서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인가 보다고 궁금한 채 떨떠름한 마음으로 6.25 난리를 생각하며 소름끼쳐 주눅이 들어 행길을 지나 다닌다.
“땡땡 땡땡 땡땡.”
땅거미가 들자 교회 전도사가 삽짝 옆에 달아 놓은 폭탄같은 산소통을 친다. 일동이네 마루에는 동네 아이들이 종소리따라 하나 둘 모여든다.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민준이는 만천이가 성경책을 들고 나타나자 기다리기 힘들었다고 반색을 하며 놀린다.
“예수쟁이가 모이는구나. 천당 가냐?”
“이 녀석아 쟁이가 뭐냐?”
“너 같은 놈은 쌍놈이니까 쟁이지.”
“너는?”
“너희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말짱 형님 동생 하니까 쌍놈 아니냐?”
“궁금하면 교회가서 배워라.”
“임마, 아나 마나야.”
“아무것두 모르는 놈이 덮어놓구 흉보긴...”
“저기 상길이가 온다. 쟤 한번 데려가 봐라.”
만천이는 고개를 돌려 상길이를 기다렸다는 얼굴로 반긴다. 그는 약속대로 예배당에 가자고 다구친다. 핑계가 궁해진 상길이는 뒤통수를 긁고는 만천이를 따라 예배당으로 들어간다.
그는 두말하면 일구이언이 된다는 말에 코가 꿰어 예배당안 맨 뒷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예배드리는 사람은 국민학생 예닐곱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부엌을 가로 막았던 아랫목 벽을 헐어내고 웃목 벽을 헐어내어 부엌까지 길다랗게 통해졌다. 부엌자리엔 마루를 깔고 가운데엔 강대상이 자리했다. 남포등을 세 개 걸어놓아 그런대로 예배당을 밝혔다.
상길이는 전도사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단정히 앉아서 흐트러지지 않고 예배를 마친다.
“제 친구입니다.”
만천이는 상길이를 전도사에게 소개한다.
“만천씨를 통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속 나오시면 궁금하신 것을 자연 알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일 날에도 만천씨와 같이 꼭 나오시길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전도사의 정성스런 인사말에 화롯가에 부쳐놓은 엿이 되어 버린다. 그는 삽짝까지 따라 나온 전도사의 배웅을 받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예배당을 나간다.
전도사 부인은 신기한 일을 구경하였다고 그녀의 남편에게 상길이를 지켜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사람 시비나 걸려고 교회 온 사람같이 보여요.”
“별 걱정을 다 하누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우린 하나님 말씀만 가르쳐 주면 되는 거야. 딱딱거리던 불량한 사람이던 하나님 말씀만 먹으면 녹아지는 거야. 세상 지식은 초등학문이라 육신 보존법만 배우지. 그러니 영원한 것을 모르니까 우쭐대고 으시대지. 그게 다 몰라서 그런거거든. 인생은 회개라는 걸 모르니까 가르쳐 줘야 한다구.
그를 위해서 기도하자구.”
전도사는 스스로 다짐하는 말을 아내에게 힘내라고 용기를 돋우는 말을 해준다.
“너 들어가서 따졌냐?”
만준이와 웅남이는 상길이와 만천이가 교회 담장을 끼고 행길로 나온걸 보고 다그쳐 묻는다. 상길이는 열적은 얼굴이 된다. 그리고 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들키기나 한 것처럼 대답도 않고 마루로 다가와 슬그머니 걸터 앉는다.
“큰 소리는 온통 치더니 흰소리만 했었구나?”
“만천이 너 상길이를 교회 끌구 가더니 금방 버려 놨구나. 벙어리를 만들구.”
“어, 이자식 보게. 예수 믿는 놈을 욕하네. 너, 천당 가긴 날이 새도 한참 샜다.”
“너도 만천이 따라 다니다간 멀쩡한 병신 된다.”
“나라고 속도 없는 줄 알아? 그동안 예수교 비방을 많이 했지만 아는게 있어야지. 모르고 지껄이면 촌놈이라 그렇다구 할 거구. 챙피할일 생각해서 교회가서 듣고 성경도 읽어보고 난 후 비판해야 된다구 생각했다. 덮어놓구 욕할순 없잖냐? 배워서, 믿어서, 유익이 되는지 너희들도 교회 다녀보자. 배우는건 좋다구 본다.”
“너나 실컷 배워라. 금방 물이 들었네. 빠르다 빨러.”
“금방 전도사가 한놈 생겼네.”
“약장수가 또 생겼네.”
“그래 가지구 지게 면하겠냐?”
“너, 잘 해봐라. 쟁이 후보야!”
그들은 밤 늦도록 떠든다. 신나게 자기 주장을 세우고 놀리느라 밤이 가는 것도 잊는다.
해가 바뀐 정월 초 하룻날이다.
동네 사람들은 떡국을 끓여 조상들에게 차례의 제사를 지낸다.
상길네도 안방 웃목에 차례상을 차려 놓느라 아침 일찍부터 집안이 바쁘게 움직인다.
대전에서 살고있는 윤수가 상길네 집 삽짝을 들어선다. 부엌에서 심부름하던 상길이는 뛰어나와 삼촌에게 인사를 한다. 은부인도 부엌에서 나와 반긴다. 동생이 왔다는 소리에 윤공도 방문을 열고 그를 맞는다. 상길이 동생들도 우루루 마루로 나와서 삼촌에게 꾸벅꾸벅 절을 한다.
“오느라 수고했어요.”
윤공은 동생의 열심에 고마워한다.
윤수는 정월 초 하룻날은 어김없이 차례 지내러 형을 찾아온다. 간혹 늦게 오는 때도 윤공은 동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다. 그리고 동생이 오면 동생과 같이 차례를 지낸다.
“다 소용없다구. 제사 지내면 대순가? 그게 부모에게 효도하는건가?
나는 이제 제사 지내는건 헛되다는 걸 알았어. 돈만 쳐들이구 그게 뭐 하는 거여.”
부엌으로 다시 들어온 상길이는 가소로운 얼굴로 혼잣말하듯 들어 보라고 비아냥거린다.
“너, 그런 소리 하면 아버지한테 혼난다.”
은부인은 걱정스럽게 말한다. 말하는 그녀의 얼굴엔 불안이 넘실거린다.
“나는 제사 안 지낸다구.”
상길이는 힘주어 말하고 삽짝 밖으로 휭하니 나가버린다.
윤공은 동생과 같이 차례를 지냈다. 윤공의 얼굴은 불이 서렸다. 아침을 먹은 윤공은 성묘하러 가느라 윤수와 같이 방을 나선다. 뜰방에 내려서서 고무신을 신는다.
때맞춰 상길이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어떤 일도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돈독하게 돋아났다.
윤공은 뜰방에 내려서 고무신을 신고 돌아서다 아들을 보고는 들입다 호령을 한다.
“이놈! 지난번에도 할아버지 제사도 안 지내더니, 또 그래?”
윤공은 화가 불끈거려 작대기를 찾아들고 마당으로 내달린다. 그는 상길이 어깻쭉지를 사정없이 갈긴다.
상길이는 비실거리며 한발짝 물러난다. 그리고 버틴다. 그의 얼굴은 찬웃음이 스쳤다.
윤수와 은부인은 그들을 지켜본다. 상길이 동생들도 겁에 질린 눈으로 흘끔거린다.
“이 망할놈!”
그는 다시 자식을 후려친다.
“또 그럴래?”
“나는 절할 수 없어요. 이 땅에선 끝났으니 천당이나 가야지요. 제사 안지내요.”
상길이는 또박또박 아주 힘주어 당돌하게 말한다.
“나도 나 좋은대로 살 것이며 틀린 것은 고쳐야 되구 잘못한 걸 알면 바르게 잡구 살아야지 왜 맹종합니까? 그렇게는 못 합니다.”
하는 말이 그의 몸뚱아리에서 세차게 풍겨나온다. 평소 그는 아버지에게 주눅이 들어서 그의 아버지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를 못했었다.
“저 놈이 이젠 어린애가 아니구나.”
윤공은 속으로 탄식하듯 읊조린다.
그는 우격다짐으로는 안된다는 걸 읽고 조금은 서글퍼짐을 달게 받아들이느라 자식을 노려보며 기를 꺾으려 든다. 그의 얼굴에도 분함과 인생의 무능함이 진하게 묻어 나오느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그래도 이놈이!”
그는 소리따라 갈긴다.
은부인의 속에선 뭉클한게 철렁하고 떨어진다. 그리고 뒹굴다가 찢어지느라 얼굴을 찡그린다.
“나도 잘 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겁니다. 아버지도 예수믿고 천당가세요. 그게 잘 사는 길입니다.”
그는 두려움 없는 얼굴로 사람이 사는 목적을 깨우쳤다는 태도로 분명하게 신앙을 전도하여 나타낸다.
상길이의 당돌한 언행을 지켜보는 윤수는 버릇없는 놈이라고 글러도 한참 글렀다고 매도를 한다.
“저런 놈의 버릇을 못 고치나? 내 자식이라면 당장에 요절을 내서라도 항복을 받지. 그냥...”
상길이는 저주를 담은 눈으로 윤수를 사납게 흘긴다. 그 눈속엔 역겹다, 뻔뻔스럽다는 말이 포개져 부글거린다.
“망할 놈, 썩 나가!”
윤공은 아들을 나가라고 호통친다. 상길이는 아버지의 호통에 반사적으로 홱 돌아선다. 그리곤 삽짝 밖으로 마지못한 걸음으로 어슬렁거려 나간다.
“자식 하나 있는게 저 지경이 되다니?”
윤공은 독백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본다.
“둘이 머슴애 하나 버리누먼. 저런이들이...자식은 자식대로 어긋나서 저렇구 애비는 애비대로 저렇구. 집안이 편해야지. 내버려두면 될것을 왜 저이는 속을 썩히는지. 그냥 놔 두면 제 풀에 사그라 들것을 가지구....
죽은 사람이 음식 차린 것 먹으면 누가 죽었다구 해. 모두 제 낯 내느라구 돈 쳐들이지. 도로 제입에 넣으면서 제사 지냈다구 해?
아이들이야 저희 좋을대루 하면 되지. 죽어서두 간섭 할건가? 때린다구 듣나? 씨 도둑은 못한다더니. 녀석이 고집만 세어 가지구...”
은부인은 설날 아침부터 집안이 불장이 나고 자식이 매맞고 쫓겨남을 가슴 아파한다.
‘일년 개시를 왜 그렇게 하나? 참았다 혼내면 안되냐? 참을성두 그렇게 없느냐?’ 고 그녀는 혼자 나무란다.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와 삼촌이 산소에 성묘하러 동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본 후 집안으로 들어간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들을 안스럽게 바라보던 은부인은 자식을 타이른다.
“다치지 않았냐? 너두 어지간하다. 왜 매를 자청하냐?”
“할 수 없지 뭐. 언젠가는 당하는 거지. 그런다구 내가 굽힐 줄 알구.
이젠 나두 다르다구. 우격다짐에 꼼짝 못할 줄 알구.”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맞지. 잘만 하면 괜찮을걸 가지구 그러냐? 밥이나 먹어라.”
“쓸데없는 소리말어. 엄니는 모르면서? 언제 내가 제사 안지냈어?
소용없는 일이니까 안하지.”
“아프진 않어? 엄마는 네가 죽는 줄 알았다.”
“죽기는,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풍습이 나쁘면 고쳐야 된다구. 부모가 살았을 때 봉양을 잘 하면 되구. 부모가 천당가게 하는게 효도라는걸 알었어. 죽은 다음은 소용이 없어요. 엄니는 예수 믿구 천당갈 준비나 해요.
예수 믿는 사람들 보니께 날마다 나라 위해서 기도하구, 자기 부모 위해서 기도하구, 자기 자식 위해서 울면서 기도하더라구요. 기도원 가서 봤어. 사람은 밥만 먹다가 죽으면 고만이 아녀요.”
“그래, 어서 밥이나 먹어라.”
은부인은 아들이 걱정스러워 다독거리며 맘을 놓지 못한다.
상길인 떡국을 떠먹다가 말을 잇는다.
“옳은 일이구. 참 사는 길을 알구 가는데 못가게 혼낸다구 안가? 난 누가 말려두 내가 갈 길을 정한 이상 가구 말거야. 그런데 꼴두 보기싫은 삼촌은 왜 자주 와?”
“누가 삼촌 보구 그러냐?”
“낯 가죽두 좋아.”
“넘이 들으면 어쩌겠냐? 네 얼굴에 똥칠이다. 네 삼촌만치 하기두 어렵다.”
“흥! 그런게, 난 아주 상종 안할 거여. 나를 깡패라구 하는 새끼...”
“어허, 그만 입 다물지 못하니?”
상길이는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난다.
“어디 갈래? 삼촌 갈 때 인사하려므나.”
상길이는 아무 대답을 않는다.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간다.
“조금만 놀다 오너라. 조카놈이 인사는 해야지.”
은부인은 아들 뒤에다 대고 타이른다.
“서로 필요 없는데 기다릴 것 없구 급할 것 없다구.”
“삼촌은 삼촌인게야.”
“우둥지를 꺾어놓구 한 이가 뻔뻔하게...”
상길이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말꼬리를 흐리며 삽짝을 나간다.
그의 얼굴은 인정이 말라 버려 서슬이 퍼렇게 아주 일그러졌다. 불맞은 돼지꼴로 금방 무슨 일을 저지르고 말 것 같이 보이다가 걸음 따라 조금씩 분을 가라앉힌다.
윤공과 윤수는 성묘를 하고 돌아와 마당으로 들어선다. 윤수는 마당으로 들어서다가 가겠다고 그의 형에게 말한다.
“갈래? 방에 들어가 몸이나 녹이구 좀 쉬었다가 가지 그러냐?”
윤공은 안방에다 소리쳐 알린다.
은부인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서방님, 잠깐 들어왔다가 가지 그래요. 날씨두 추운데.”
“바쁜 일이 있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뭣좀 갖다가 아이들 주세요.”
“그냥 두세요.”
윤수는 말을 하며 삽짝 밖으로 나간다.
윤공은 아쉬워하며 동생의 뒤를 따라 걷는다.
은부인도 부리나케 뜰방으로 내려와 고무신을 끌면서 마당으로 내려서서 고무신을 바로 신고 잰 걸음을 놓는다.
“그럼, 조심해 가거라.”
“예, 형님! 언제 한번 나오세요.”
“그래, 나가마.”
“동서한테 내가 안부하더라구 하세요.”
“예.”
신작로까지 나와 동생을 작별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윤공의 마음은 허전하고 쓸쓸한게 살속 깊이 파고든다.
‘인생이 무엇인데 이렇게 살아야 되나? 인생살이가 결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 속을 감아돈다. 점점 사나와 숨가쁘게 만든다. 아주 눈을 감는게 편코 좋다고 다듬이질을 친다.
“그래 나도 더 보고 싶은게 없다. 내가 언제 오래 산다든. 넘이 좋다구 홀리는건 맛이라두 보았는데 미련이 있겠냐?
그렇담 응어리진 것은 무엇이지? 내가 못한건 남은 사람이 할테구 부질없이 안고 지고 할게 없는 거지. 짊어지려 안해두 엎치구 안기는데 낸들 어쩌겠어? 원래가 그런 것을...”
그는 중얼거리며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슴을 풀어 헤치고 가슴을 내리쓸고는 아랫목에 벌렁 눕는다.
“부자간에 누가 이기나 내가 볼거구먼. 이이가 환갑은 넘게 살아야 되는데...”
은부인은 아랫목에 누워있는 남편을 내려다보며 지난일이 생각나 괜한 걱정을 한다. 팔 베개를 하고 돌아누운 남편에게 베개를 내려 베어주고 이불을 내려 덮어 준다.
“누구를 고생시키려구 그런 몸을 해가지구...
제발 좋은일 하느라구 술좀 그만 잡숴요. 생으루 죽겠어요.”
“내가 술을 먹고 싶어 먹나? 오래 살구 싶지두 않어. 자식이 지게 지구 벌어주는 밥은 안 먹어. 사는게 짐스럽다구.”
“하긴, 굶어죽는게 불쌍하지. 먹구 죽는 거야 동정이나 받겠수. 당신은 당신만 위해서 살구 죽는 거유? 어린 새끼들은 어쩌구. 사람이 되어 타조 닮으면 되겠수?”
그들 부부는 가끔 입씨름을 하며 몇 년을 살아왔다. 요즈음 그녀는 남모르는 걱정으로 맘을 조여 왔다. 윤공이 뜻도 잃어버리고 어서어서 세상살이를 청산하려는 자학적인게 보여서다.
이 동네 사람들은 좀 유별스런데가 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으례 술을 사준다. 흥정을 할 때도 으례 술좌석을 만든다. 동네 유지들끼리 동네의 일을 상의 할 때도 술잔이 가운데 있어야만 입이 떨어져 용건을 말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이 인사가 되어 내려왔다.
술집은 낮이나 밤이나 술렁거린다.
면에 볼일이 있어 오는 사람, 지서에 볼일이 있어 오는 사람들은 거의가 윤공을 찾는다. 그리고 부탁을 한다. 그런 날은 윤공이 술에 취하는 날이다.
동네에 누구 생일이다, 잔치다 하는 날도 술 대접을 받는다. 매일처럼 허우적거리는 것을 말리지 못하는 은부인은 그냥 가는데 까지 도리가 없다고 체념을 했다가 원망스러워 한다.
“무쇠라도 녹을텐데...이제까지 산 것이 용치. 다 큰 자식 하나 없는 이가 모든 짐을 나에게 맡기려 들다니...만나서부터 고집대루만 살다가 겨우 철이 든다 싶더니, 저 지경이니.
내가 뭐랬어. 술 먹으면 명대루 못산다니까? 흰 얼굴이 저렇게 검으니 이젠 칠홉 송장이 되었구먼.”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헤집고 다님을 말리느라 크게 심호흡을 한다.
삼월달이 되었다.
윤공은 정초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아예 몸져 누운지도 한달이 넘었다. 동네 사람들은 윤공이 아프다는 소릴 듣고 찾아와 위로를 하고 돌아간다.
“상길이 아버지가 술병이 났다면서?”
을순이 엄마는 근심어린 얼굴로 은부인에게 문병을 한다.
“술병이라면 걱정두 않게. 배가 붓구 소변두 지금은 잘 보지 못한다구.”
“잡숫는건 잘 잡숫나?”
은부인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녀의 얼굴은 고개를 저을 때 헝크러지고 고달픈 것들이 얼굴 위로 들여다 보인다.
“무슨 병이든 잘 먹으면 사는데 혹시 소화를 못 시켜서 그런지 모르니까 보리죽을 끓여 드려봐.”
“고마워.”
“고맙긴, 너무 걱정마.”
을순이 엄마는 은부인의 손을 꼬옥 쥐었다가 놓고 돌아간다.
은부인은 보리를 볶는다. 보리를 맷돌에 갈아서 보리죽을 끓여서 남편에게 권한다. 윤공은 두어 수저 먹어보곤 더 먹으려 들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새때쯤이다.
“의장님 계세요?”
상길이는 뛰어나가 삽짝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그는 면의원을 지낸 사람이다.
“아버님 계시냐?”
“예, 방에 누워 계셔요.”
“주무시느냐?”
“아녀요. 편찮으셔요.”
“어데가 편찮으시냐?”
그는 물으면서 상길이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간다. 윤공은 고개를 들고 일어나 앉으려 든다. 그는 윤공의 손을 잡는다.
“그냥 계세요.”
윤공은 상체를 겨우 일으켜 이불에 엇비슷하게 기대 앉는다.
“이렇게 위중하신 줄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별 소릴...”
“언제부터...”
“정초부터 몸이 무겁더니 점점 배가 불러...”
“혹시 음식에 체한 것 아니에요?”
“글쎄 도무지 먹지를 못하니.”
그는 윤공의 불룩한 배를 살피면서 고창병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고창병엔 미꾸라지즙이 효험이 있다고 일러준다. 그리고 미꾸라지즙을 만드는 법도 일러준다.
얼마동안 우울하게 앉아있 던 그는 쾌유하기를 바란다면서 돌아갔다.
상길이는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미꾸라지가 많은 도랑을 막고 양동이로 물을 퍼낸다. 물을 퍼낸 그는 또랑 바닥의 수렁같은 진흙을 삽으로 퍼서 옮기고, 뒤집고, 손가락으로 갈쿠리질을 한다.
“한나절 동안 겨우 이거니 큰일이네. 개똥도 약을 할려면 귀하다더니.
미꾸라지가 다 어디루 갔어? 이상하네. 혼나게 생겼네.”
상길이는 중얼거리며 진흙속을 헤집느라 해동갑을 한다.
그는 오들오들 떨면서 체와 양동이를 챙겨들고 뚝으로 쫓겨나듯 훌쩍 나와 버린다. 그리고 집을 향해 깡충거리며 서너 걸음을 걷는다.
그는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린다. 대야를 챙기고 삽을 찾아든다.
다시 또랑에 들어선 그는 막았던 뚝을 무너뜨린다. 물길을 터놓은 그는 그릇과 연장을 들고 동동걸음을 친다.
그의 입은 바지는 걷어 올려진 채 흙탕물에 흠뻑 젖었다. 옷에도 팔뚝에도 종아리에도 수렁 흙이 덕지덕지 달라 붙었다. 흰 고무신을 신은 발은 불려져서 터질 지경이라고 발을 옮길 때마다 찌걱대며 통사정을 한다.
상길이는 삽짝으로 들어서기가 바쁘게 부엌으로 좇아 들어간다. 그는 아궁이로 들어가기나 할 것처럼 얼굴을 아궁이 속으로 들이민다.
은부인은 양동이 속을 들여다 본다. 양동이 속에는 미꾸라지가 열마리도 안 돼 보인다. 그녀는 들고 있는 부지깽이로 미꾸라지를 헤쳐 본다. 그리곤 혀를 끌끌찬다.
“엄니, 그곳에 미꾸라지가 없어. 봇또랑 다 뒤졌어.”
“겨우 요것을 잡았냐? 너도 참!”
“없는 미꾸라지도 잡아?”
상길이는 몰라주는 야속함에 뒤틀리느라 말이 곱지를 않다.
“봇또랑은 미꾸라지가 많은 곳인데 이상하구나? 내일 또 잡으면 되지.
추운데 고생했다.”
은부인은 서둘러 부드럽게 아들을 위로한다. 상길이는 더운물로 손발을 씻는다. 그는 몹시 떨면서 숭례가 내온 옷으로 갈아 입는다. 그리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내키지 않는 맘으로 안방으로 들어간다. 윤공은 아들을 보자 기다리기 지루했다는 듯 서둘러 묻는다. 상길이는 떠듬거리며 갑갑하게 겨우 말한다.
“미꾸라지가 없어서..”
“이놈아! 몇마리나 잡았어?”
윤공은 신경질을 내어 큰소리로 벼락치듯 한다.
찔끔한 그는 똑똑하게
“열마리요.”
한다.
“이 녀석아, 이제껏 고작 그거냐? 네 애비병 낫겠다.”
상길이는 무안해 방을 얼른 나가 웃방으로 올라가 버린다.
“철이 일러서 그런지 미꾸라지가 없대요. 내일 아침 일찍 구권에 있는 못에 가서 많이 잡아올게요. 거긴 미꾸라지가 많다고 합디다.”
은부인은 남편을 다독거리고 자식의 무안스러움을 씻어내려든다.
윤공은 입을 쩍쩍 다시며 혀를 차고는 입을 다문다.
다음날, 아침을 일찍 해먹은 은부인은 양동이에 작은 소쿠리를 담고 세숫대야를 들고 아들을 앞세워 구권 못을 찾아간다.
상길이는 양동이에 커다란 양푼을 담아 들고 삽을 어깨에 메고 우울한 얼굴을 씻지 못하고 걷는다. 산골짜기에서 부는 바람은 써늘한게 더욱 그들 모자의 마음속을 시리게 한다. 언제 따라 왔는지 승길이가 뒤에서 막 뛰어온다.
“추운데 집에 있지 왜 왔어? 감기 걸리려구.”
“엄마두 오는데 내가 와야지. 아버지 약 할건데.”
“착하기두 하지.”
은부인은 승길이를 앞세우고 별 말이 없이 못에 이른다.
그들은 못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논의 흙을 파서 막는다. 한쪽을 막은 상길이는 팔미터 정도 간격으로 또 막는다.
승길이는 도랑 위에 서서 대야를 들고 상길이가 막아놓은 도랑의 물을 앙증스레 퍼낸다.
“우리 승길이도 다 컸네!”
승길이는 엄마의 칭찬에 신명이 났다. 대야에다 더 많은 물을 담아 퍼내려 덤빈다.
“조금씩 퍼내야지. 그러다 다칠라!”
은부인은 승길이를 보고 맘이 여려 조심을 하라고 일러준다.
“미꾸라지가 없을 것 같네요!”
상길이는 못의 물길을 막으면서 말한다.
은부인은 아들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도랑 속을 들여다 본다. 도랑을 다 막은 상길이는 양동이를 가지고 물을 퍼내기 시작한다.
은부인도 큰 양푼을 가지고 물을 퍼낸다. 그들의 손과 발은 뻘개져 홍학다리를 닮아간다.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내려 연신 훌쩍이게 만든다.
물이 자작자작해지자 은부인은 소쿠리를 들고 미꾸라지를 찾느라 넓적넓적한 돌을 주워서 도랑 뚝 위로 올려놓는다. 그녀는 미꾸라지가 있기는 애초부터 글렀다고 여긴다. 진수렁에 사는게 미꾸라지라고 하는데 자갈과 모래 뿐인데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구석구석 뒤져서 미꾸라지를 찾는다.
“엄니, 우리가 잘못 왔어. 수렁에두 없는데 이런데 있겠어?”
“글쎄다.”
“우릴 누가 놀린 거지?”
“무슨 감정이 있다구 그러겠냐? 남을 의심하면 못쓴다. 호의는 고마워해야지.”
상길인 군말없이 돌을 뒤적이며 듣는다.
“사람의 병이 낫는건 금방 낫는 병두 있지만 너의 아버지 병은 오래된 병이란다. 십여년 전에두 사람들이 말하길 죽는다, 일어나기 어렵다는 소릴 듣다가 일어나셨었는데... 또 몸져 누웠으니 심상치가 않구나.”
상길이는 어머니의 말에 가슴이 뜨끔하고 다리가 시리고 저림을 느낀다.
“사람은 예감 같은게 있지. 지난 정초에는 엄마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후 마음이 불안하구 서운하여 개운치가 않더구나.”
“무슨 꿈인데?”
상길이는 미꾸라지 찾는 일도 잊어버리고 그의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우리집 마당에 택시가 있더라. 그런데 너의 아버지가 타구 있더라.
택시는 상거리로 달려가더라. 꿈속인데두 생시같이 그렇게 영 허전할 수가 없더구나.”
상길인 전율을 느끼며 두려움 속에 빠진다.
“엄니, 왜 그런지 집안이 횡행하구 싫은 마음이 자꾸 들구 가위가 눌려. 그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는데...”
“방태의사가 그러는데 너의 아버지는 간도 나쁘구 복막염두 생기구 또 뭐라더라, 오줌병이 생겨서 소변을 제대루 못한다면서...
그래, 어렵다구 하는 눈치더라.”
“제까짓게 뭘 안다구. 겨우 주사나 놓는 이가. 제가 의사야? 돌팔이지.
제가 뭘 안다구 기분 나쁘게.”
“넘이 뭐라든 방의사는 우리 동네서 죽을 사람 많이 살렸다..”
“도시 가서 의사노릇 하지.”
“사람 무시하는 것 아니다.”
“의사 면허두 없다니까 그라네.”
“병만 잘 고치면 되지. 옛날 의사는 그런 것이 없었단다.”
“그만둬요. 이런 것 잡아 먹으면 병 낫는다니 곧이 들을 수가 없어.”
“옛말에 병이 천이면 약은 만이라구 했다. 우리를 생각하구 일러주는 말인데 그 사람들 성의를 봐서 하는데 까지 해야잖냐.”
“병원에 안 가구 이런 것 먹어야 소용 있간디?”
“조약을 쓰다가 안되면 병원에 가야지. 돈이 있어야 병원에두 가는데!
걱정이다.”
그들 모자는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해서야 도랑에서 나온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시퍼렇다. 승길이는 젖은 옷소매를 내렸다가는 다시 걷어 올린다.
“승길아. 너 먼저 집에 가라.”
“엄마랑 갈거여.”
아홉살 난 승길이는 발이 시려워 쩔쩔매면서도 엄마랑 간다고 한다.
‘저런 어린 것을 놔두고 몸을 아끼질 않고 술을 그렇게 마시더니 끝내는 일어나지 못하는 병이 들었어......’
은부인은 속으로 남편을 탓 해본다. 자식들이 어리니 드러나게 걱정도 할 수가 없다.
상길이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깡충거리고 체조를 하며 추위를 몰아내느라 안간힘을 쓴다. 승길이도 따라서 뜀뛰기를 한다.
그릇을 주섬주섬 담아가지고 삽을 들고는 집을 향해 들입다 달음질을 친다.
얼마를 달리던 그는 양동이와 삽을 길옆에 놓고는 되짚어 달린다.
그의 어머니가 들고 오는 그릇을 받아 들고 또 달음질을 친다. 얼마를 달려가던 그는 그릇을 길옆에 놓고는 돌아서서 먼저 놓았던 삽과 양동이를 가질러 또 뛰어간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씩씩댄다.
은부인은 아들이 송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을 보고 미소를 머금는다. 그속에는 걱정도 우울함도 담기질 않았다. 든든함, 대견스러움이 시새워 오그라진 그녀의 몸을 훈훈케 한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다칠려구 그러니?”
“추워서 운동하는건데 넘어지긴 왜 넘어져요. 오늘두 조금 밖에 못 잡았으니 혼나겠네...”
“엄마랑 왔으니까 괜찮을 거여. 형.”
“괜찮다. 어제 네가 잡은 것 하구 합치면 약은 할 수 있겠다. 어서 가서 밥이나 먹자. 시장하겠다.”
“배고프지 않어. 엄니. 한끼 굶어선 괜찮어.”
그들은 집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윤공은 미꾸라지 즙을 조금 맛을 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이건 약이 아니라 소금이라고 비려서 못 먹겠다고 막무가내다. 이걸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말은 염두에 두지를 않는다. 마치 건강한 사람이 음식을 골라서 먹는 것 같다.
그는 오줌길을 통한다고 옥수수 수염도 삶아서 맛을 보았다.
달팽이도 잡아서 그것을 즙을 내서 조금만 맛을 보았다.
좋다는 약은 조금씩 맛을 보아서 이젠 맛만 보기도 지겨워 약이라면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그는 조금씩 먹는 그것도 몸 밖으로 걸러내지를 못해 그의 배는 점점 부어올라서 만삭이 된 여자 같다.
사월 초순의 어느날이다.
윤수와 윤공의 매제는 윤공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택시를 대절하여 타고 와서 병문안을 한다.
그들은 이렇게 되도록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이렇게 늦게 알리면 어쩌느냐고 안타까워한다.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자고 재촉한다.
동네 아이들은 택시를 보고 좋아라 모여든다.
아낙네들도 하나 둘 나와 서서 ‘이젠 윤공의 병이 낫겠지.’ 하는 눈빛으로 윤공이 차에 타길 기다린다.
윤수는 그의 형을 부축하여 차에 태운다.
은부인은 주섬주섬 윤공의 옷가지를 싸들고 남편을 부축하여 택시에 오른다. 저희 누나에게 업혀서 지켜보던 막내아들 옥길이는 기겁을 하여 운다.
엄마를 부르고 발버둥을 친다. 승례는 삽짝 안으로 뛰어들어 간다.
은부인은 막내 아들이 걱정이 되어 차 밖으로 나오며 손짓한다.
“옥길이를 데려와라. 그냥 가면 아이 병난다.”
윤수는 ‘어서 가야 되는데’ 하며 입맛을 다신다.
윤공의 매제도 입맛을 쩍쩍 다시며 손목의 시계를 자주 들여다 본다.
상길이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떼를 쓰며 버둥거리는 옥길이를 낚아채듯 안고서 좇아나와 저의 어머니 품에 밀어넣는다. 그리고 차문을 다시 열었다가 힘주어 닫는다.
창윤이 엄마, 돼지 엄마, 원숙이 엄마가 윤공에게 당부한다.
“꼭 낫어 오세유. 지금은 약이 좋아서 금방 고칠 거여유.”
윤공은 힘없는 눈으로 그녀들을 둘러 본다.
택시는 상거리를 향해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간다.
윤공은 동생의 집에서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다닌다. 그는 안방을 차지 했다는게 여간 거북스런게 아니다.
‘아버지가 병환이 나셨을 때도 안방에 계셨고 상길이가 병 나서 입원 했을 때도 동생에게 고생을 시키구. 지금은 내가 이러구 있으니 제수씨 보기도 죄스러워...
내병은 차도도 없구 공연스레 동생 내외한테 내가 너무 고생을 시키누먼.’
그는 민망스러워 전전긍긍한다.
윤수는 우물에서 채소를 씻는 아내에게 물을 길어 준다.
“당신이 웬일이세요. 물을 길어주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남편임을 알고는 환하게 웃는다.
“당신, 요즘 수고가 많아. 내가 나중에 몽땅 갚을께.”
“수고는 무슨, 내가 남인가요. 시아주버님이 속히 차도가 있으시면 좋겠어요.”
“당신이 애를 쓰니까 나으시겠지. 고마워.”
“당신두, 참.”
“의사가 그러는데 형님 병은 쉽지가 않다누먼. 그렇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그는 잠기는 소리로 흐릿하게 말한다.
“너무 걱정 마세요. 무슨 병이던 치료 기간이 걸리는 것 아니겠어요?”
“당신과 얘기할 시간도 갖질 못하구. 미안하다구.”
“별 소릴 다 하...”
윤수는 아내가 병 간호하랴. 아이들 키우랴. 돈 빌리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도 군말 없고 얼굴도 찡그리지 않는 것을 마냥 고마워한다.
윤공이 병원에 입원하여 대전에 온지도 한달이 훨씬 지난 어느날이다. 윤수네집 대문 앞에 은부인은 어린아이를 업고 한손으로는 어린아이를 잡고 서 있다.
어린아이도 은부인도 땀을 뻘뻘 흘린다. 그녀의 적삼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은부인은 잠시 마음과 몸을 식힌다. 은부인은 수건으로 아들의 얼굴과 머리를 닦아준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닦는다.
숨을 돌린 그녀는 초인종을 누른다. 그리곤 중얼거린다.
“벌써 한달이 넘다니...”
은부인의 얼굴엔 미안한게 조금 비쳐진다.
대문 안에서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묻는 소리가 여리게 대문 밖으로 비집고 나와 반긴다.
“큰 엄마다. 잘 있었냐?”
“예.”
대문에 매달린 방울이 요란하게 딸랑거린다.
조그만 계집아이가 대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를 한다.
“어, 착하지.”
그녀는 조카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아이구, 형님 오세요?”
윤수의 아내는 부엌에서 죽을 끓이다가 뛰어나와 반갑게 동서를 맞이한다.
“그간 동서가 고생이 많았지?”
“제가 뭘요. 형님이 고생이시지.”
은부인은 동서의 두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민망하다고 치하를 한다.
“더위에 고생 많으셨지요? 어서 씻으세요.”
“고생은 동서가 크게 하지. 매번 그래서 동서 보기가 민망하다구.
구덮만 치루게 해서.”
“형님두 그런 말씀을 왜 하세요. 어서 들어가세요.”
은부인은 동서의 손을 잡은 채 뜰방으로 오른다.
윤수 아내는 손을 빼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아랫목 쪽에 있는 방문은 닫혀 있고 웃목쪽의 방문은 활짝 여느라 벽에 문고리를 붙들어 매 놓았다. 은부인은 열린문으로 방안을 기웃한다.
윤공의 얼굴은 몹시 화가 나 있다. 그의 얼굴은 볼이 우묵하게 들어가 깊이 파여져 있다. 그리고 늘어졌다. 목은 아주 길게 뽑아져 나왔다.
그는 아랫목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휑한 생기 잃은 눈으로 그의 아내를 야속하다고 나무란다.
“서방이 죽기만 기다리냐?”
안간힘을 다해 큰소리로 나무란다.
은부인은 손을 들어 남편 입을 막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안방으로 이내 들어간다.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슈? 못오는 사람두 생각해야지.”
“서방보다 더 중한게 있냐?”
그녀는 옥길이를 방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웃목에 앉는다. 아이들은 겁먹은 눈으로 저의 엄마 무릎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눈치를 살핀다.
“당신두 참, 농사는 어떻게 하구 달려와요. 누가 집은 보구. 그러니까 내가 미안해하는 것 아니유.”
“흥, 핑계는 잘댄다. 금방 올 것처럼 하구선, 며칠이 한달이구나?”
윤공은 토라져 외면을 하느라 닫힌 방문을 마주하면서 등 너머로 말을 한다. 그는 아내에게 토라진 목소리가 되더니 떼쓰는 모습이 되느라 더 돌아앉는다. 은부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더니 웃음을 띤다.
“나두 당신 곁에 있슴 좋다는 걸 알아요. 미워두 당신두 내가 좋을께 아니유. 사정이 그런걸 어쩌겠수. 우리 논에 모는 누가 심어주구 보리는 누가 거둬요. 그렇게 바쁘구 힘들어두 맘은 병든 영감한테 있었다우. 당신 하는 걸루 하면 정나미가 떨어져두 벌써 떨어졌지만 내가 그전에 뭐라 했수? 몸을 조심하라니까. 병 생긴다니까 하구 싶은대루 하더니 당신만 고생하는 거유? 죽기는 쉬운 거유? 매일 술독을 짊어지더니...”
그녀는 자상하게 조목조목 따진다.
“누굴 약 올리는 거냐?”
“얼마나 딱하구 애가 타면 이런 소릴 하겠수.”
윤수내외는 웃방 마루에 걸터앉아 형과 형수가 주고 받는 이야기 를 듣는다.
“여보, 형님두 말을 참 잘 하시네요?”
그녀는 남편의 귀에다 속삭인다.
윤수는 아내의 묻는 말에 빙그레 웃음을 담는다. 그의 엷은 웃음에는 형수의 말 솜씨를 이제야 알겠느냐? 사리가 아주 밝고 똑똑한 양반이며 꼭 할말은 주저치 않는 양반이라고 쓰여져 나온다.
“아주버님은 아무 대답도 못하구 듣기만 하시는데, 난 형님에게 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아주버님은 젊었을 적에 형님 속깨나 썩혀드렸나 보죠? 그러니까...”
윤수의 아내는 안방을 흘끔 돌아보고는 남편의 귀에다 입을 바싹 들이밀고 속삭인다. 그리곤 물러앉아 예쁘게 눈을 흘긴다.
“당신 그러면 가만 안두겠어요. 가만 안둔다고요.”
윤수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시늉을 하며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가리고 조용히 하란다. 그는 아내가 말을 멈추지 않고 또박거리는 말에 질겁을 한다.
‘형님에게 쩔쩔매시는걸 보면 보통이 아니었어. 형님을 잡드리는 양반이 저럴 수가...
저이도 형제간인데 별수 있을라구. 능청스러운데가 많고 끼가 있어.
사내는 인물 값을 한다던데 어련할라구. 저이도 나중에 어떨지 누가 알아. 괜히 늦게 늦바람이라도 난다면... 아니, 지금도 그속을 누가 알아. 단속을 단단히 해야지...’
윤수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이 넘치는 눈길을 주며 이리저리 생각을 굴린다.
윤공은 회한의 서리속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얼굴을 오그렸다 폈다 하더니 어깨를 벽에 대고 미끄럼을 탄다. 왼손으로 몸을 바치고 천정을 향해 눕는다.
그는 입을 오무리고 울대를 디디고 줄기차게 뻗어나는 앓는 소리를 막느라 안간힘을 쓴다. 몸을 틀어 돌아누워 버리느라 낑 소리가 나오고 만다.
은부인은 남편이 자리에 눕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문다. 그리고 무릎에서 자는 아들을 쓰다듬고 곁에 앉아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녀의 눈은 남편의 구석구석을 더듬는다. 남편의 엉덩이가 젖어 는 것을 발견한다. 이내 가슴속이 철렁 내려 앉는다. 까마득한 곳을 헤맨다. 끊어지고 있는 줄에 매달린 몸뚱이를 찾고 만다.
“저이는 세상없이 아퍼두, 죽네사네 하는 고통 속에서두, 이웃이 알면 잠 못 잔다구 이를 깨물고 앓는 소리두 삼키구 땀만 뻘뻘 흘리던 저이가 옷 매무새를 흐트리다니. 저럴 수가?
정신이 없어 오줌을 지렸었나? 그런적이 없었는데!”
은부인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소리없이 중얼거리며 남편 곁으로 당겨 앉는다. 그녀의 얼굴은 검은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자리를 잡는다.
남편의 발목을 어루만진다. 발목과 발등은 있는대로 부어올라 멀룽거린다. 손가락으로 꼬옥 눌렀다간 금방 노란 물이 따라 나오게 생겼다.
수둥다리 같은 종아리를 쓰다듬는다. 은부인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기대했던 것이 송두리째 뽑혀버린다. 웅덩이를 채우는 소리는 그녀의 손끝을 떨게 한다.
‘이제는 나두 홀에미 소리를 듣게 생겼구나. 벌써 그렇게 되다니.’
하는 억울함에 시선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엊그제의 옛날 속으로 떨어지느라 혼줄을 잡았다가 곤두박질 속에 놓치곤 넋이 빠진다.
“엄마! 더워. 엄마!”
그녀는 아들이 부르고 팔을 흔드는 바람에 간신히 넋을 찾아 잡아넣는다.
“그래, 나가자.”
그녀는 남편의 다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담장 밑에 놓인 들마루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 부채를 집어들고 아이들에게 바람을 일궈준다.
윤수의 아내는 손위 동서가 밖으로 나와 들마루에 앉는 것을 보고는 마당으로 내려와 동서 곁으로 서둘러 와서 앉는다. 그리고 근심어린 눈으로 동서를 바라보며 궁금한 것을 꼬집어낸다.
“형님께서 보시긴...”
그녀는 말끝을 주저주저하다가 흐린다.
“동생 내외가 이렇게 애쓰는 공으로 해서라두 나아야지.”
은부인은 대답대신 서글픈 소리로 치하를 한다.
“상길이 아버지는 복이 너무 많은 양반이야. 남들은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실컷 먹고 했으니 원이야 없지. 누굴 한하겠어.”
“병원에 입원하려고 했는데 의사가 입원하면 입원비만 드니까 집에서 다니라구 하데요. 그래서 날마다 병원에 다녔지요.”
은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서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아주버님이 병원에 가셨다가 오시면 엉덩이 께가 젖어 있대요. 저도 처음엔 왜 그런가 했었는데 주사약이 도로 나와서 그렇구나 했어요.”
“주사를 맞으면 약이 살 속으로 들어가야지 나오다니?”
“그래서 걱정을 했어요.”
은부인은 그렇기야 할라구, 설마 했던게 가슴팍을 들이쳐 나뒹구는 소리를 토한다.
“의사가 두고 보자고 하면서도...”
“상길이 아버지의 병은 골수에 박혀서 주사가 소용이 없나봐. 그런데 고치겠어?”
“아주버님 병은 금방 알아보게 차도가 있는 병이 아니래요.”
그녀는 안방을 기웃하고 조심스럽게 속삭이듯 말한다.
은부인의 마음은 집에서 걱정할 때보다 더욱 마음이 짓눌리고 머리에 맷돌을 모자처럼 쓴 것 같다. 가느다란 소망에게 잡혀서 끌려왔던 그녀는 풀어지는 소망을 시름 속에서 잡으려 덤빈다.
은부인이 남편 곁에 온지도 삼일이 지났다. 그의 큰 아들이 왔다.
윤공은 그의 아들을 보자마자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그는 아들이 절을 하자 마지못해 절을 받는다.
윤공은 절이 끝나기 바쁘게 기운을 모두 긁어내어 호통을 친다.
“아, 이놈아! 그래 애비가 죽는다는데 꼴두 안뵈냐?”
윤공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꼬끄랑하다가 이내 풀어지고 만다.
기운이 있어야 화도 내는갑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화를 돋우던 눈도 흐느적거리다 짚불 사그라들듯 한다.
상길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벌을 기다리는 태도를 지닌다.
“이 인정머리 없는 놈, 썩 나가거라. 꼴두 보기싫다.”
그는 중얼거리다 힘을 다시 모으느라 어깨를 들먹거려 숨을 쉰다.
“당신두, 저애가 올 줄 몰라서 안 왔나요. 차비두 없구, 농사는 누가 짓구 오겠수.”
윤공은 몹시 비위가 상한듯 고개를 외면한 채 뒷문 밖을 바라만 본다.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가 꾸중을 그치자 오면서 사온 사과를 깎는다.
그는 사과를 쪼개어 접시에 담는다.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다. 용기를 얻느라 뜸을 들인다. 사과 접시를 그의 아버지 앞으로 밀어 놓는다.
“아버지 용서하세요. 이것 좀 잡수세요.”
“안 먹는다.”
윤공은 자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퉁명스레 딱 잘라 말한다.
“자식이 부모 생각하구 사가지구 온 것을 들었다가라두 놓아야지.
그렇게 냉갈스러워서야 어느 자식이 부모 위하겠수?”
윤공은 아내의 말에 삐쳤던 고개를 돌리고 아들이 꼬챙이로 꿰어들고 있는 사과 조각을 받아 쥔다. 그리곤 사과를 들여다 본다. 그의 눈엔 안개가 피어오르게 군불을 지폈다.
아내가 좋다는 말에 신물이 났다. 부부는 금슬이 좋지 않아도 어거지로 떼를 쓰면서 살아가게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섭리를 어렴풋 조금은 배웠다.
윤공은 고통이 달려들고, 외로움이 찾아 들고, 두려움이 몰아쳐 끌고 가는 것을 당하기만 하는 존재라는 것도 강제로 배웠다. 그리던 아내가 곁에 있어도 마음의 평안엔 헛일이라는 걸 체험했다.
사람은 사람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고 깨달았다. 사람은 이렇게 떨다가 아쉬워 하다가 야속해 하다가 자빠지고 만다. 그렇담 어쩌나?
내가 바라는 것은 찾을 수가 없는 건가? 그의 눈은 희뿌연한 채 몸 밖을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헤맨다.
상길이가 온 다음 다음날, 윤공은 윤수 내외의 부축을 받으며 행길에 나와 대절해 온 택시에 오른다.
‘이제는 더 바랄 수도 없지. 택시를 타고 왔으니 버스를 타구 가야 되는데...
저 녀석이나 장가 보내고 병이 났다면 좀 나으련만. 지지리도 복이 없지. 며느리 손에 밥 한그릇도 못 얻어 먹구...
택시 타고 집을 나갈 땐 좋은 의사 만나면 고칠 수 있겠지 했는데.’
은부인의 마음은 풍랑이 일고 또 밀어 닥칠 곳으로 끌고 달린다. 아찔하여 비명을 지른다. 절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되고 만다. 그녀는 가슴을 내리쓴다. 감았던 눈을 소스라쳐 든다. 남편을 흘끔 쳐다보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귀엔 남편의 숨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대장간의 풀무 소리가 된다. 무쇠가 빨갛게 불색이 된다. 대장장이는 큰 망치 작은 망치로 납작하게 두들긴다. 도끼가 되었다 괭이가 되었다 낫이 된다.
나중에는 닳아빠져 불속에도 들지 못하고 버려진다.
“나 봐, 넋 빠졌어?”
윤공은 아내가 멍청이가 되어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짜증이 담긴 말로 핀잔하여 부른다. 그는 차를 타고 자갈길을 덜컹거리며 달린다는게 죽을 맛이다. 덜컹거릴 때마다 입술을 힘주어 깨문다. 주름잡힌 얼굴에선 끙끙대는 소리가 배어 나온다.
그의 배를 가렸던 보자기 수건이 차의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은부인은 자기만의 생각에 골몰하다가 남편의 소리에 잠에서 깬양 남편을 궁금한 눈으로 바라본다.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품에 안으려 손을 내밀어 기대게 한다.
“혼 빠졌구먼, 누가 기댄대?”
그의 말은 부드럽지 못하다. 멸시와 모욕이 범벅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먼죽했던 그녀는 그제야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보고 주워 털어서 남편의 배를 덮어준다.
“잘한다. 죽을 서방은 멀쩡한데...쯧쯧, 정신을 차려.”
윤공은 보기가 답답하고 딱하다고 힘이 실리지 않은 소리로 중얼대듯 말한다.
운전사 옆자리에 앉아 있는 상길이는 만길이를 안고서 택시따라 앞만 본다.
‘아버지는 차 속에서까지 어머니한테 핀잔할게 뭐람. 우리만 있는 것두 아닌데. 삼촌네 집에서두 그러구. 누가 있으나 없으나 저러시니 아버지는 삼촌과 정 반대구먼. 병 생긴게 누구때문에 생겼는데.....’
상길이는 창피스러워 소리없이 투덜댄다.
택시가 먼지를 일구며 마주 달려온다. 택시에선 노랑, 빨강, 파랑 테이프가 펄럭거린다. 택시는 신랑, 신부의 기쁜날을 붙잡아 두기라도 했다고 신바람을 몰고 스쳐 내뺀다.
‘저이들은 좋겠지. 아들두 낳구 딸두 낳겠지. 웃었다가 울었다가 아퍼도 하겠지...’
상길이는 신랑 신부를 태우고 달리는 택시를 따라가며 구경하듯 읊조린다.
윤공은 동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택시에서 내린다. 동네 사람들은 상길네 집으로 모여든다. 그들은 윤공을 부축하여 집안으로 들어간다. 윤공을 바라보는 그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런 표정에 도리가 없다는 글씨가 쓰여져 있다.
“큰 병원에선 치료가 되었어야 하는데.”
“상길 엄마가 어쩌나? 딱두 하지.”
동네 아낙들은 기죽은 소리로 걱정들을 한다.
윤공은 가까스로 방으로 들어와 요위에 몸을 부린다.
동네 사람들은 측은한 얼굴로 이구동성으로 몸조리 잘 하라고 하며 돌아간다.
윤공은 큰 딸을 보자 놀란 가슴을 다독거리느라 애를 쓴다.
“저 아이는 언제 왔어?”
윤공은 사람들이 삽짝을 나가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성급히 묻는다.
“시집을 갔으면 시집에서 사는 거지. 고생스럽다구 친정에 오면 되냐?
그만한 참을성두 없냐? 호강하러 시집 갔냐? 어찌 했길래 친정에 오게 됐냐?” 는 소리가 매달려 버둥거린다.
“열이 땜에 신경 쓸 것 없어요. 열이가 오지 않았으면 당신한테 갈 수도 없었다우. 그 애두 할 수 없이 왔는데 너무 못 마땅해 하지 말아요.
어디루 가겠수. 에미 애비가 살아있는데. 어쩌겠수. 못본 체 하시구랴.”
윤공은 아내의 말에 아랫목 벽을 향해 끙끙대며 돌아눕는다.
“서방 빨리 죽게 하려면 붙들구 있어. 나는 모르니께.”
“그러니께 당신은 모른 체 하면 돼요. 그애만 보면 속상하니까 잊어버리구 맘이나 편히 가져요.”
윤공은 드러눕기도 힘들고 앉아 있기도 숨이 차서 이불을 내려놓고 등을 기대앉아 반은 눕고 반은 앉아서 속을 끓이다 지치면 잠을 잔다.
배가 부어오른게 못 견디게 아프면 의사를 청해서 뱃속에 잔뜩 들어있는 물을 빼낸다. 그럴 때마다 노랑물이 흰 고무 호스를 타고 세면기로 흘러내린다. 세면기에 절반 이상이 차 오르면 호스를 빼놓고 세면기의 물을 잿간에 갖다가 버린다.
물이 빠진 배는 조금 홀쭉해 보인다. 그러다가 이삼일 지나면 다시 물을 빼야만 견뎌낸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 아버지를 구원시켜 주소서.
아버지가 회개하고 예수 잘 믿어 천당가게 하소서.”
열이는 상길이를 따라 열심히 예배당에 다닌다. 그녀는 예배당에 갈 때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한다. 침 맞으러 갈 때도 예배당에 찾아간다. 그녀는 침 맞는 일을 하루라도 걸렀다간 허리가 아파서 견디질 못한다. 허리가 아픈 것은 허리에 죽은 피가 많이 모여서 그렇다고 의사가 진단을 했었다. 의사는 매일 열이의 등을 침으로 쑤시고 피를 빼낸다.
“요즘두 그애 침 맞으러 다녀?”
“다녀요. 명태국두 한그릇 먹이지 못해 안됐어요.”
“이런 답답한 꼴 봤나? 생으루 죽이는군.”
“침 맞는다구 죽나요? 의사가 어련히 알아서 할라구.”
“그몸에 피 빼구 살 것 같아? 침으루 찔러대는데 안 아프구 배겨?”
“우리가 돈 두구 약 안먹이는 것 아녀유. 당신은 그런 걱정은 말아요.
기운두 없으면서.”
“그애는 사는 게 고생이니 명대루 살아본들 탄식만 더 하지. 어디 가두 반기는 사람 없으니 죽으면 몸도 편하겠지. 그렇지 않아두 당신의 고함소리 지금두 귀에 쟁쟁하여 친정에 오구 싶은 맘이 없는데 할 수없어 왔다구 합디다.
저의 삼촌 집에두 있어보구 흥신동 고모네 집에서 이십 여일 있다가 기침이 심해져서 왔답디다. 사람 같지두 않은 것들이 글쎄, 열이가 보건소에서 진찰을 받구 약을 받아가지구 집에 오니까 폐병인줄 알구 아무두 없더래요. 아이들두 서방놈두 없어져서...
그러구 솥단지두 없더래요. 그래서 시아버지 집에 갔더니 시미가 하는 소리가 네가 그런 병에 걸렸으니 살림하겠냐? 생각다 못해 너와 따로 있게 하려고 어디 보냈다. 그러니 친정에 가서 병 고쳐가지구 와서 살으라더래요.
우리가 시집 잘 못 보낸게 죄지, 누굴 원망 하겠수? 그애가 당신 맘을 모르겠수? 당신이 그애를 키울 때 이 계집애 저 계집애 소리 하번 안했잖우...
나두 당신 보기가 싫다우. 당신이 조금 큰 소리만 내두 저 때문에 그러나 싶어 가슴이 두근거린대요. 그것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하다구.
가라구 하면 그것이 어디루 머리를 두르겠수?“
은부인의 말소리는 점점 격앙되더니 젖은 소리가 되어 목구멍 저너머에서 울먹거린다.
윤공의 열기없는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윤공은 아내의 손을 잡는다. 퉁퉁 부은 손은 아내의 손등에 얹혀졌다. 그는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싶으나 마음뿐이 됐다.
‘좀더 정성스럽게 할 것을 이젠 일어나긴 틀렸구...
내가 일방적이어서 속을 썩혔으니. 한날 한시에 어른이 되고도 나만 어른인양 윽박지르구, 업신여기구,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으니. 나같은 놈은 죽을 때나 철이 드니 한심하지.’
윤공은 이윽히 아내의 눈을 올려보며 소리없이 지껄이다가 입을 열어 불러본다.
“여보.”
은부인은 남편의 소리따라 고개를 든다.
“당신은 내가 여자들과 놀아나두 챙피주지 않고 참아줘서 고마워.
나를 남편이라구 그만큼 대접을 했는데, 내가 철이 없어 그런 거지만, 당신은 가마타구 나는 걸어 왔다구 구박한 것은 지금와서 생각하니 참 안타까운 마음 뿐이라우. 용서하구랴.”
“당신은 별걸 다 가지구. 내가 좀 느려서 당신에게 불만이 생기게 한 것두 많지 뭐...”
그들은 늦게나마 어긋 났던 남편의 마음, 남편의 도리, 아내의 마음, 아내의 도리를 찾아 바로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