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8.쫓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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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gbeome2
작성일
2024-07-0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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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해가 바뀐 사월의 어느 날 저녁이다. 윤수네 안방의 공기는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윤수는 뒷문을 향하고 돌아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느긋하게 있는 모습이 흡사 부자가 가난뱅이의 간청을 듣기만 하는 것 같다.
윤수의 아내는 앞문을 바라보며 왼쪽 무릎을 세우고 왼손 바닥으로 턱을 받치고 앉은 모습은 불쾌한 건덕지는 보기도 싫고 볼까 무섭다는게 풍긴다.
상길이는 무릎을 꿇고 윤수를 향해 앉았다.
“작은 아버지, 제가 기술이라도 배우게 공장에 넣어 주세요. 넣어 주시면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일 할께요.”
상길이는 떠듬거리며 간청을 한다. 그는 말을 하며 외면한 삼촌을 바라보고 대답을 기다리다가 다시 다시 말을 잇는다.
그의 얼굴은 가난뱅이가 차압하러 덤비는 부자에게 구걸하는 양이다.
윤수는 담배 연기만 뿜어 낼 뿐 옆도 돌아 보지 않는다. 윤수의 아내는 상길이의 말이 멈출 때마다 흥흥 콧방귀를 뀐다. 그녀는 흥 하는 소리에 걸맞게 하느라 입을 메기 주둥이처럼 해가지고 앞으로 내민다.
‘어림없는 수작 떨지 마라. 내가 짧지 않은 삼년을 어떻게 산 지 아냐?
한 번 데었으면 그만이지. 네 꼴은 신물이 난다. 우리도 너에게 아쉬운 소리 안할테니 너도 누구 의지할 생각은 버려라. 넌 똑똑한 놈 아니냐? 네가 구해라. 네 삼촌두 모른 체 하기루 했다. 그리 알고 귀찮게 굴지말고 어서 내 앞에서 없어지기나 해라. 사람 보기 싫은건 마주하기두 진저리가 쳐진단다.’
하는 말이 그녀의 얼굴에 꼴 사납게 달라 붙었다.
윤수는 계속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만다.
“너는 내가 넣어 줄 수가 없다. 너를 어데 넣었다가는 내 얼굴에 먹칠할 일이 생겨. 넌, 어데가서 단 하루도 못 있는다. 난 모른다.”
“넣어만 줘 보세요. 오래 있을테니까요. 한 번만 넣어 주세요. 삼촌 욕먹게 안할테니까요. 넣어만 줘...”
상길이는 애가 달아서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어깨를 들먹인다. 양쪽 손등이 번갈아 얼굴을 닦는다.
“한번만 넣어주면 두 번 다시 넣어 달라고 안 할께요. 두고 보세요. 이런 소리 앞으로 안할테니...”
윤수는 입을 다문 채 턱을 조금 들고 담배만 피운다.
‘언제 삼촌이 나를 어데다 넣어 주기나 해 본 것처럼 말을 하다니. 내가 삼촌 숙모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었나. 그러니까...
숙모가 돈을 두고 돈 빌리러 나가길래 벽장에 있는 돈다발에서 백원을 훔쳐 쓴게 두 번 있었다구...
자기네는 나를 생으로 도둑놈 만드느라 무당을 데려다 점을 치고 법석을 떨구선...
세수할 때 빼놓은 금반지가 없어졌다구 수근거리다가는 식모 제쳐 두고 나를 더 의심하더니...
내 방 창문 옆 굴뚝 옆에서 찾았다고 삼촌이 그러더니...
나를 붙들고 보내지도 않구 애를 먹이니까 나도 삼촌을 미워하지.
내가 잘못되는게 그렇게도 좋은가? 그렇담 좋다구...’
“땡땡.”
벽에 걸린 괘종 시계는 상심하여 마음을 할퀴고 앉아있는 상길이를 일깨운다. 그는 흐릿한 눈으로 시계를 올려다본다. 그의 눈에는 시간이 자리잡지 못해 어른거린다.
입술을 깨물고 있던 그는 삼촌과 숙모를 실망과 저주를 담은 눈으로 못을 박는다. 손등으로 눈을 신경질적으로 훔쳐낸다. 그리고 벌떡 일어난다. 방문을 밀치고 후다닥 나간다.
윤수 내외는 그냥 앉은 채 손도 까딱하지 않는다. 상길이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나온것 같다.

유월달이 잦아지는 어느날 밤이다. 상길이는 하늘의 별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 가득한 들을 향하여 선 채 그냥 눈만 껌벅거리며 보려고도 않고 궁금해 하는 빛도 없이 그냥 끌려가고 있다. 밤비는 주룩거린다. 빗물은 튕겨 그의 옷에 달라 붙는다. 얼굴에도 덕지덕지 대롱거린다.
그는 승강구 벽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 얼굴을 수그려 비바람에 열기를 식힌다. ‘체’ 그는 금방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이 된다. 그리고 어젯밤의 일을 떠올린다. 상길이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는다.
“가운이 비색하여 너를 공부를 못시키는구나. 그러니 딴 생각 말고 아버지와 같이 농사 짓고 살자. 너 하나 뿐이라면 논이라도 팔아서 너를 공부시키겠다. 네 동생들이 있으니, 너 혼자만 생각할 수가 없구나.
아버지가 조금만 젊었어도, 난리에 망하지만 않았어도, 아버지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만...”
그는 자식의 손을 두손으로 꼬옥 쥔 채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상길이도 아버지를 따라 울어 버린다.
“학교만 다닌다고 공부하는 것은 아니란다. 집에서도 부지런히 공부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란다. 옛날 사람들은 사십 문장도 있었단다. 네가 요즘 서울 가고 싶은 모양인데 어데 가면 별수 있겠냐?
공연히 마음만 상하지. 들뜰 때는 바람 쏘이는 것도 약이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 네가 무슨 고생을 해 봤냐? 어데든 가서 일자리를 구하면 참고 진실하게 해야 한다. 고생이 된다구, 꼬까웁다구 성질 부리면 안된다. 사람은 어딜 가나 신용을 얻어야 살수 있는 거란다. 우리 우리 집은 밥은 먹고 산다. 내가 무엇이 아쉬워서 이런데 왔나 하는 생각은 빼내 버려야 성공한다.”
그는 아버지의 부탁하시던 말씀을 생각하며 차근차근 생각해 본다.
스며드는 불안감을 지우고 지우느라 씨름을 한다.
‘잘 되겠지. 나 하나 어데 일자리 없으려고. 어쩌면 구하게 될 거야. 당숙이 삼촌처럼 모른 체 하면 모르되 모른 척이야 할라구?
당숙네 집은 찾을수 있을까? 서울은 대문 밖에만 나와도 어디가 더딘지 몰라 집을 잃어버린다던데. 육촌 누이는 똑똑히 좀 가르쳐 주지.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주소도 모르고 청 무슨동에 중앙교회만 찾으면 그곳에 당숙네 집이라니...
알려주기 싫어서 하는 소린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가? 가 보는 수밖에. 서울 바닥이 넓다고 하지만 청 무슨동이 몇 개나 되려구. 샅샅이 뒤지면 중앙교회가 나오겠지. 당숙을 한번 밖에 못 보았는데 나를 알아보기나 할라나? 찾는데까지 찾으면 되지...“
그는 좋게만 생각하려 덤빈다.

윤공 내외는 상길이를 서울로 보내고는 걱정이 모락거리며 일어나는 것을 누르지 못하고 일어난 것을 쓸고 밀어 내느라 잠자리에 들지못한다.
“여보, 상길이가 서울에 가서 기술이라도 배울 곳에 들어가야 될텐데 걱정이네요.”
“종형 찾아 간다고 했다면서?”
“대전에 사는 제 육촌 누이가 당숙 주소를 일러줬나 봅디다. 그나 저나 당신 사촌 형님이 상길이 앞을 좀 열어 주었으면 좋겠군요. 그러면 그 애 걱정은 한숨 돌리겠는데...
상길이 갈 때 당신이 사촌 형님께 부탁하는 편지 한 장 써서 보냈으면 좋았을걸 그랬어요. 그랬슴 상길이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미덥고 좋을건데. 그 양반이 상길이의 말을 듣고 신용을 할까요? 나중에 당신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건지 나쁜 소리를 들을건지 몰라서 취직을 시켜줄지 의문이네요. 지금이라두 주소를 알면 써서 보냈으면 좋겠네요.”
“쓰긴 뭘 써, 그냥 두고 보는거지.”
“그래 가지고 자식 잘 되길 바라시겠수.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우. 제 부모가 관심이 없고 둘러 봐 주지도 않구 밀어 주지도 않는데 어찌 자식이 앞길이 열리고 집안이 흥하길 바라겠수. 그러고들 있는데 누가 안타까워 이끌어 주겠수? 있는게 되레 원수지. 원수가 따로 있남. 심술 부리고 가로 막는게 원수지.”
“내가 부탁을 하고 안하고 간에 종형의 마음에 달린거지. 내 얼굴을 생각한다면 어데라두 넣어줄 것이고 귀찮으면 그냥 보내겠지.”
“당신은 태평도 하시구려. 나도 당신처럼 속이나 편했음 좋겠구려.”
“그이는 부탁 한다구 들어주는 양반이 아냐. 한 번 거절을 당했슴 그만이지. 또 당해?”
“그거야 당신이 당신일로 겪은 것이고 지금은 어린애의 일이니까 경우가 다르잖우. 그때는 우리집을 이사시키는 일이니까 잘못되면 크게 원망을 듣게 되는 일이라 그 양반이 선뜻 대답을 못 하신것 아니유.
조금 서운한 일이 있었다구 ‘꽁’ 하는 성질은 버려야 돼요. 당신두 그 양반의 입장을 생각 하시구 이해를 해야지. 처자식 위해서는 궂은 일도 사양 않는다면서 옛날 일로 하여 아쉬운 소리 한 번 못해요?”
“나는 그런 사람과는 상종도 하기 싫어요. 의리 부동한 사람과 무슨 말을 한다구 그래. 당신이 나보다두 더 잘 알잖아? 종형은 나와 같이 공부도 하구 아버지가 장가두 보내주구...”
“그거야 어디 당신이 한 것이유?”
“그러니까 내 말을 다 들어 보구 나서요. 듣지두 않구서 나서기는 내가 공치사 하자는 줄 알아?”
윤공은 불쾌하고 답답하다는 게 잔뜩 담긴 소리로 언성을 높여 말한다.
“넘이 들으면 밤 늦게 잠도 안자구 싸운다구 하겠네. 그만 저만 해 둬요.”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구 정두 들었을 것인데, 그이는 그런게 없는 이라구. 예수에 미친 사람인지 뭔지 그래서 상종 못할 인생이라구. 당신 몰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곧 바로는 못 왔을지라도 나중에는 오겠지 오겠지 했는데 삼년상이 나도록 꼴 한 번 안보인 사람에게 내가 사람 취급하겠어? 잠시 왔다가 가면 되는걸. 그런 배은망덕하는 축생에게 무슨 소릴 해.
그뿐인 줄 알아? 제 서모의 무덤이 여기 있으니까 한 번 쯤은 돌아 보아야지. 무덤에서 뼉다구가 나왔나 몇 년에 한 번이라도 살피는게 후손 된 자의 도리일진데. 그걸 아는 사람이, 누가 제사 지내고 안지내고 그런걸 말 하는게 아냐. 예수 믿는 자체를 험담하는게 아니라구.
그런 인륜을 저버리는 이가 누구를 천당가게 한다구 야단인지.
모르는 사람두 아니구 제 삼촌이 죽었는데 조문을 안해? 그런이를. 내 더러워서, 그만 둬야지.“
그는 못 먹을거라두 먹은 얼굴이 되어 몹시 역겨워 한다.
“지나간 일은 끄집어 내어 무엇 하겠수. 다 덮어 둬야지. 그런분은 그이 나름대루 살아가구 우리 같은 사람은 우리대루 살아 가는걸. 이제 그걸 들썩이다 보면 마음만 상하지. 이것저것 보기 싫다구 돌아 앉다보면 모두가 벽이 될게 아니유? 나도 상길이 땜에 시동생을 원망하구 욕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지. 내 자식 내가 키웠으면 그런 일이 안 생겼을 것인데. 왜 내가 시동생을 야속하게 여기나 싶어 잊기루 했어요.
내가 시동생을 키우고 돌본 것은 형수니까 형수 노릇 한거구. 그렇다구 그 품삯으루 내 자식을 돌보라구 하면 경우에 틀리는 일이지.
그러니 당신두 그런갑다 여기구 털어 내어 버리세요.”
“그만, 시끄러!”
“영웅두 시대에 따라 산답디다. 넘에게 굽실댈 줄두 알구 모욕두 당할 줄 알아야 넘에게 얻어 먹을 줄두 알구 해야 뭐가 되는거지...
내 것만 옳다구 내 세우기만 할게 아니라, 좀 지세요.”
“알았으니 잠이나 자자구.”

밤비가 쉬지도 않고 차창을 때린다. 그리고 발치를 감아쥐고 좇아든다. 삼등 열차의 통로 바닥은 흙탕물이 질펀하여 칙칙하기만 하다.
꾀죄죄한 지린내가 코를 쑤셔댄다. 기차는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정거장으로 들어간다.
승강구로 나와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차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 겨우 여기밖에 못 왔나 하며 투덜거리는 사람, 쌀 자루를 짊어진 사람,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인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듯 뒤뚱대며 기차에 오른다. 기차는 소걸음을 친다. 계속 빗 속을 헤집는다.
기차 속의 사람은 서울이 가까울수록 불어만 간다. 열차 속은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거리고 끈끈하기만 해진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 통로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잠을 못이겨 꾸벅거린다. 고개를 벌렁 제끼고 입을 헤 벌리고, 세상 모르게 자는 여자,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떨구고 부부인양 자는 여자, 마주 앉은 사내의 무릎을 파고들며 자는 처녀, 의자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끼고 흔들거리며 꾸벅거리는 남자, 보따리를 통로 바닥에 아주 내려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자는 여자, 복잡한 통로는 콩나물 시루가 됐다.
옴짝달싹도 하기 힘든 곳을 용케도 헤집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보리차! 시원한 보리차 있어!”
“아이스크림 있어!”
“사이다 있어!”
“땅콩이요!”
“계란이여!”
사정없이 헤집는다. 부딪치고 밀친다. 잡아 제낀다. 잠을 깬 사람은 얼굴을 찡그린다. 욕을 한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가 지쳐 잠 속으로 도망간 사람을 덜미를 잡고 끌어내고 끌려 나오는 차 속은 조용해지는 듯 하다가 시끌법석을 떤다.
“무슨 비가 이렇게 오나? 내가 어데 가는 날은 비가 온단 말이야.
재수 없게...”
상길이는 투덜거리며 통로를 들여다 보고 비가 들이치는 승강구를 내다본다. 그의 얼굴은 찡그렸다가 폈다 뒤 따라 침침해진다.
“저렇게 질퍽거리는데 잠이 오나? 저렇게 골아 떨어졌으니 다 가져가도 모르지. 어둠침침한 속이라 잠도 잘오겠지. 나 보다는 다 나은 사람들이겠지...”
열차 승무원들이 차표 검사를 한다. 그들은 기세가 당당한 것이 순경 같다. 잠자는 사람들을 쿡쿡 찌른다. 흔들어 댄다.
“여보, 차표, 차표 꺼내!”
사납게 호령한다.
“또 귀찮게 구누먼. 차표 없는 사람 있을라구.”
그들은 못 마땅하여 투덜거린다.
차표 검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던 상길인는 엷은 웃음을 짓는다.
그는 삼촌네 집에서 시골집에 다닐 때 차표 없이 차를 탔다가 차장에게 모자를 빼앗겼던 일, 그후부터 돈 달라, 차비 달라 할 것 없이 속 편하게 차장과 숨박꼭질 하면서 다닌 일을 떠올린다.
‘수학 선생님, 저는 중학교 다니는 것도 무척 힘들었어요. 나중에 꼭 찾아 뵙겠어요. 용하세요. 선생님의 기대를 깼어요.’
속살거리는 그의 얼굴은 희망을 덮은 두껍고 침침한 것들을 헤집고 밀치느라 꿈틀거린다.

새벽 5시가 넘었다. 비오는 속에서도 먼동이 트기 시작하자 캄캄한 물이 많이 빠졌다. 소걸음 치던 열차도 어김없이 서울역에 도착한다.
그러자 열차는 알맹이가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는다. 사람이 만든 것이라 사람 흉내를 내는 것 같다.
상길이는 서울역을 빠져 나와 역 광장을 건너 큰 길을 따라 그냥 걷는다. 그가 신은 검은 운동화에선 찔걱찔걱 언짢은 소리를 내면서 걸음따라 떼를 쓴다.
그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휩쓸린다. 고개를 돌려 서울역 역사를 눈여겨 본다. 그리곤 비내리는 서울 거리를 반기는 눈으로 두리번댄다.
그가 입은 하얀 남방 샤쓰는 비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어 꾀죄죄를 만든다.
“서울이 크긴 크구나! 높은 집들이 굉장 하구나!”
그는 그런 생각도 길게 가져보지 못한다. 당숙 집을 찾아야 한다는 걱정에 등을 떠밀리기만 한다.
“청 무슨동, 그게 아마 청량리를 말하는 것일 거야...
육촌 누이가 잘 모르고 잊어버리고 한 말일 거야. 좌우간 어디로 가던지 가서 찾아 봐야지. 우선 청량리로 가서 찾아 본 후에 없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그는 지도 책에서 본 청량리를 들먹거린다. 그리고 길가는 사람에게 청량리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묻는다. 그는 길을 건너간다. 정류장에 들어오는 버스의 유리창을 살핀다. 유리창은 김이 서려 흐릿하다.
안내양들은 목쉰 소리로 열심히 떠든다. 그는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한다. 이내 안내양에게 달려들어 묻는다. 그는 안내양의 말따라 성큼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맨 앞자리에 가 앉는다. 버스가 출발 한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버스 앞에 달려있는 유리창닦개는 쉬지 않고 저어댄다. 버스는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많아진다.
상길이는 조바심에 벌떡 일어나 승강구로 나온다.
“청량리 멀었나요? 나를 청량리에 꼭 내려줘요.”
그는 안내양의 끄덕거림에 안심을 한다.
승강구 옆에 붙어 섰던 그는
“청량리 내려요. 청량리요.”
하는 안내양 말따라 버스에서 내린다.
안내양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걸 잊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린 그는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는 가고 싶은 방향으로 발길따라 걷는다.
예배당을 발견하곤 걸음을 빨리 한다. 빗줄기는 가늘어져 가랑비로 내린다. 그는 예배당에 가서 물으면 당숙이 있다는 교회를 찾을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걱정했던 것보다는 쉽다고 여긴다. 그리고 서울에 온 목적을 절반쯤 해 냈다고 여기며 자신감에 젖어 든다. 예배당 앞에 선 그는 철대문 사이로 예배당 안을 기웃거린다. 누가 나오길 은근히 기다리는게 그의 얼굴에 씌어졌다. 대문을 쿵쿵 두드린다.
잠시 후
“누구십니까?”
묻는 소리가 철대문을 넘어온다.
소리따라 예배당 안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난다. 젊은이가 소리따라 계단을 내려온다. 그는 철대문을 흘끔거린다. 그는 추녀 밑에 서서 대문 밖을 철문 사이로 내려다만 볼 뿐 문을 열고 내다볼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저, 말씀좀 묻겠어요.”
젊은이는 계속 물으라는 듯 빤히 내려다만 보고 있다.
“저기, 저, 중앙교회 아시면 좀 알려주세요.”
그는 쇠창살 같은 대문 사이로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있는 상길이를 아래 위로 훑어 내리느라 급한 게 없다.
“중앙교회 찾습니까?”
그는 아주 느리게 되 묻는다. 그의 말 속에는
‘너도 고생 문이 열렸구나. 어쩌려고 시작이냐? 얼마나 고생을 더 하려고. 그냥 시골에 있슴 고생이나 덜 하지. 너 같이 어리석은 아이는 올 곳이 못된다.
어떻게 하려고 교회에 찾아 오냐? 교회는 너같은 사람으로 골머리를 앓는단다. 그래도 넌 손은 벌리지 않으니 다행이구나. 나는 아침부터 김이 새나 하고 몸을 사렸다.’
하는 게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하느라고 시접잖게가 얼굴에 많이 솟아나 매달렸다.
상길이는 푸르뎅뎅한 얼굴에 흘러내리는 빗물 너머로 반가움이 반짝한다.
뒤따라 “예” 하고 부푼 대답을 한다.
젊은이는 아주 느리게 일러준다.
“그러니까 여기서 뭐냐. 곧장 큰길이 나올 때까지 가서 큰길이 나오면 큰길을 건너서 왼편으로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교회가 중앙교회라구.”
“감사합니다.”
상길이는 꾸벅하고 대문 사이로 인사를 하고는 기분이 좋아서 부지런히 걷는다.
운동화 뒤축에서는 바지 가랑이로 흙탕 물을 튀겨낸다.
“어서, 빨리 가서 찾아야지. 나를 알아 보실라나? 가보면 알겠지.”
그는 중얼거리며 흥얼거리며 큰 길을 건넌 후 뾰족하게 솟아있는 십자가만 바라보고 걷는다.
그는 아주 커다란 예배당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예배당 앞 뜰을 기웃거린다. 조그만 간판을 찾아 읽는 그는 안도의 숨을 깊게 내뿜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옷 차림에 관심을 가져본다.
“물에 빠졌다가 금방 나온 것 같고 바지가랑이가 흙 범벅처럼 되었는데... 어데가서 옷을 말려 가지고 와야 하나?”
주저하던 그는 예배당 문을 두드린다.
“누구요?”
쉰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예배당 대문 안에서 묻는다.
그는 묻는 소리에 어리둥절하여 기웃거려 소리나는 곳을 더듬는다.
그리고 망설인다.
“저기, 저, 말씀 좀 묻겠어요.”
“어서 말하기요.”
“여기가 중앙교회인가요?”
“그래요. 간판이 있질 않소.”
상길이는 말을 하면서도 홀리는 기분이다. 산 속에서 메아리를 듣는 기분을 가져본다.
“여기에 혹시 태윤구 목사님이 계신가요? 저의 당숙 되는 분인데요.
중앙교회에 계시다구 해서 찾아 왔습니다.”
그는 책을 읽듯이 숨도 쉬지 않고 용건을 말한다.
“그런 사람 여긴 없으니 그리 알고 딴데 가 보기요.”
“그럼 태목사님이 계신 곳 아세요?”
“딱하구만. 서울에 교회가 하나 둘인가? 중앙교회가 하나가 아냐.”
“그냥 청량리 중앙교회라고 하던데요.”
“그렇게 알아선 못 찾아.”
상길이 마음은 덜컥하는 소리가 나며 착 가라앉아 버린다.
“중앙교회라구 해도 어느동 중앙교회 또 중앙교회라 해도 교파가 다 달라요.”
“실례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그는 터벅거리는 발걸음으로 되돌아 나온다. 큰 길을 향하여 걷는다.
“어떻게 찾아야 찾을까? 큰일이네! 서울역으로 다시 갔다가 찾아 볼까? 누이도 참! 알려줄려면 제대루 알려줄 일이지.
내가 뭐 당숙 찾아가 귀찮게 굴까봐 그러는 모양인데 내가 자존심도 없는 놈인줄 아나?
내가 어디가 어떻다고 전부를 그 모양이야.
나중에 보라지. 넘을 골탕 먹이면 저희들도 당할테니. 내가 무슨 깡패야. 기가 막혀서!
나 같은 게 깡패노릇 할 주제나 되나?
덩치가 크길래 주먹 쓰는걸 배우길 했어? 배울 돈이 있어야 배우지.
그런데두 나를 모함하구. 미우면 그냥 밉지. 그냥 데리고 있기 싫다구 솔직히 말하지. 비겁하게 깡패라구. 거짓말로 제 형에게 고자질하여 나를 못살게 굴어.
개같은 새끼. 잡놈의 새끼. 지지배 치마 속을 헤어나지 못하는 새끼가 뭣을 한다구.
제 친누이에게 대 놓고 욕을 하는 새끼가 사람이라구.
누이가 제 집에 찾아와도 본체만체 하는 것들이 밥을 먹고 살으니 나같은 놈이 고생이라구. 누굴 고생 못시켜 환장한 년놈들여!
두고 보자! 네 놈이 잘 되나 내가 잘 되나. 거짓말하는 인간은 아주 없어져야 세상이 좋아진다. 좋아져. 중앙교회면 중앙교회지 무슨 놈의 중앙교회가 그렇게 많아. 예수교라면서 예수교 중앙이면 되지. 참 복잡하구먼. 중앙이 하나지 둘인가?
그 영감택이가 꼴도 안 보이고 사람을 정신없게 만들어. 좋다는 세상이라 그런건가? 종류도 많구먼. 골치도 안 아픈가?
예수 믿으면 다 한가지지 뭣이 달라서 장로교니, 감리교니, 뭐 성결교가 있고 장로교도 가닥지가 여러개라니. 오징어 다리나 문어쯤 되나?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면서 자동차 타고 가는 것 마냥 어떤 것이든 좋을대루 골라 타라는건가? 가짓수가 많으니 찾기는 틀렸지.’
그는 투덜거리며 원망스러워 집히지도 않는 답답을 끄집어 내려 씩씩댄다. 그러면서도 두리번거리며 십자가를 찾으면 좇아가 간판을 읽는다. 그리곤 야속해 한다.
“십자가가 보이는 곳은 어지간히 다녔는데 당숙있는 교회는 알수 없고. 어데가서 밥을 먹어야 하겠는데...
옷이 이러니 밥을 어떻게 사먹나? 빨리 서울역으로 가보자. 거기 가서 찾아도 못찾으면 내려가야지.’
골목을 찾아 허둥대던 그는 지치고 허기진 뱃 속을 채우려는 식욕을 짓누르고 묻고 물어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그는 안내양 곁에 서서 서울역에서 내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는 창 밖을 기웃거리며 칙칙한걸 이기느라 찰싹 달라붙은 바지 가랑이를 떼어본다. 빈자리가 있는데두 의자에 앉지를 못한다.
그는 버스가 두어 정거장 지나면
“서울역 멀었나요?”
하고 안내양에게 묻는다.
“가만히 있음 내가 서울역에서 내리게 해 줄께요.”
안내양은 딱하다는 얼굴로 초조해서 안절부절하는 그를 안심시킨다.
안내양의 말을 듣고 얼마동안 잠자코 창 밖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또 묻는다.
두 정류장 남았다는 안내양의 말에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기가 바쁘게 서둘러 내린다.
“여기서부터 다시 찾아 봐야지. 찾아보고 내려가도 내려가야지.”
그는 중얼거리며 큰길을 따라 걷다가 골목길이 보이면 골목 안을 기웃거린다. 뾰족히 서있는 십자가를 찾으면 부지런히 찾아간다. 예배당 앞에 우뚝 서서 살피듯 하고는 멍청한 빛을 보인다. 그리고 힘들게 돌아서서 걷는다.
“확실히 알아가지고 올걸, 제대루 모르면 모른다고 했으면 이렇게 헛걸음질 치지는 않는데...”
그는 쓰디쓴 입맛을 다시곤 서둘러 걷는다. 골목길을 뛰어 들어간다.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담벼락 밑에 소변을 한다. 천천히 골목 안을 빠져 나오며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어데 가서 무얼 사 먹어야 하겠는데 어데서 사먹는다?
음식점은 비싸고...”
그는 포장마차를 발견하고는 포장마차를 향해 걷는다.
“아저씨 국수 한그릇 얼만가요?”
“어서 오라구, 백원이야. 이리와 앉아요.”
“저 국수 한그릇 주세요.”
포장마차 주인은 퉁퉁 불어터진 국수를 조그만 양은 대접에 담는다.
그리고 국수물을 붓고 파를 듬성듬성 썰어서 두 조각을 국수 위에 올려놓고 간장을 한수저 떠서 국수에 넣는다. 그리고는 국수 그릇을 건네준다.
상길이는 얼른 받아서 젓가락을 들기가 무섭게 단숨에 그릇을 비운다. 그리곤 젓가락을 들고 망설인다. 겨우 젓가락을 놓는다.
“아저씨, 지금 몇시나 되었나요?”
“세시 이십분이 지났는데.”
“이제 비가 안 올까요?”
“글쎄, 구름이 벗어지고 했으니 그치겠지.”
포장마차 주인은 포장밖 하늘을 기웃하며 말한다.
“잘 먹었어요.”
상길이는 꼬깃거리고 젖어있는 백원짜리 중에서 백원을 하나 떼어 건네준다. 그리고 포장마차를 나간다.
포장마차 앞에서 그는 크게 심호흡도 하고 기지개를 켠다.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쪼그리고 바지 가랑이에 묻은 흙을 털어본다. 흙은 털어지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걷는다.
“해가 지기 전에 중앙교회를 찾아야 하는데...
저기 저 교회는 굉장히 큰 교회구나. 그런데 왜 지붕이 새까만하지?”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예배당 앞으로 다가간다. 그의 등뒤 멀찍이서 젊은이가 그를 감시하듯 지켜본다.
“아, 천주교구나! 성당은 지붕이 새까만한 건가?”
그는 성당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리고 커다란 간판을 쳐다본다. “여기가 명동 성당이구나!”
상길이는 천주교란 이름에 친근감을 느껴본다. 이웃 동네 산양에 천주교의 성당이 있어 언젠가 읍에서 시커먼 옷을 입은 늙은 불란서 신부가 찾아오는걸 보았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교회가 또 있나? 시간은 자꾸 가고 중앙교회는 있어두 당숙이 있는 교회는 아니구. 이러다가는 못 찾고 말겠는데. 이러다가 그냥 집으로 내려가...?
누가 나를 취직시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은공을 잊지 않고...
나를 어느 누가 일자리를 구해주겠어. 나에게 그런 행운이 있을라구.
부질없는 생각이야. 이쪽으로 가보자. 가보면 교회가 또있겠지.’
상길이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청히 서서 성당을 올려다 본다.
시름에 잠긴 그는 허물어져 내리는 속을 다짐하며 지친 다리를 끌면서 또 찾아 걷는다.
“어이, 학생! 어이, 학생!”
상길이는 소리쳐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흘끔하고는 경사진 퇴계로 길을 올라간다.
“학생! 학생!”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보곤 걸음을 멈춘다. 조금 어색한 얼굴로 의문스러운 눈으로 돌아서서 지켜본다.
청년은 손짓을 하곤 잰걸음으로 다가온다. 청년은 웃음을 띠었다.
키도 후리후리하다. 눈도 크고 멋쟁이 같이 생겼다. 얼룩덜룩한 엷은 밤색을 띤 남방샤쓰를 입었다. 카키색 바지를 입고 밤색 구두를 신었다. 첫 눈에 호감을 갖게 한다.
“학생은 시골에서 올라 왔나?”
젊은이는 부드럽게 웃음을 담고 정스레 묻는다. 친절이 넘치는 것이 상길이의 옷을 끈끈하게 붙잡고 싫지 않게 잡아당긴다.
“예, 오늘 새벽에 서울에 왔어요.”
그는 조금은 부풀어져 대답한다.
“고향은?”
“충남 한삼내인데요.”
“충청도가 고향이군. 충청도 사람은 마음씨가 곱다면서?”
“착한 사람은 착하지요.”
“그렇겠지. 그런데 학생은 지금 어델 가는 거야?”
“예.”
상길이와 젊은이는 다정 다감하게 말을 주고 받으며 천천히 걷는다.
상길이는 젊은이의 걸음을 따라 걷는다. 상길이는 망설이다가 말을 떠듬거리며 당숙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알려준다.
“그냥 무작정 상경 한 거야? 주소를 가지고도 못 찾으면 내가 알려 주려고 했는데. 서울은 주소 가지고도 집 찾기가 쉽질 않아요. 그냥 돌아다녀야 고생만 하게 돼. 더 고생말고 집에 가지 그래. 그러다가 나쁜 사람 만나면 고생 한다구.”
청년은 안스러운 얼굴로 동정하는 말을 한다. 상길이는 뜹뜰한 심정이 되어진다.
“나는 말야. 저기 보이는 교회에서 일을 보고 있어.”
“그럼 태윤구 목사님 모르세요?”
상길인 교회라는 말에 귀가 번쩍 하여 다그치듯 묻는다.
“모르겠는데, 서울은 교회가 많아서 알 수가 없어.”
상길인 그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청년이 교회에서 일을 본다구 하니까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해볼까? 어쩜 도와 줄지도 모르지...’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충동에 맘을 조린다.
“당숙을 찾는 이유는?”
“고학할 수 있는 직장에 넣어 달라구 하려구요.”
상길이는 제 맘을 알고 묻는 것 같아 반가워 선뜻 대답한다.
“딱하게 됐구먼.”
“못 찾으면 그냥 내려 가야지요.”
그는 풀이 죽어 말한다.
젊은이는 상길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걸음을 멈춘다. 상길이도 따라서 멈춘다.
“내가 아까부터 학생을 눈여겨 보았었는데 순진하게 생기고 정직하게 보여서 내가 도와 줄 수 있으면 도우려고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상길이는 금방 얼굴이 밝아진다.
그는 다시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말을 계속한다.
“그럼, 서울에서 지낼 용돈은 두둑하게 가져왔겠네.”
“아니요.”
“서울 오는데 비상금도 없이 왔어? 간도 크네! 서울이 어딘줄 알고 그냥 오다니.”
“비상금은 천원 밖에 없어요.”
청년은 믿기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는 걷던 걸음을 다시 멈춘다.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걷는다.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이 다음에 꼭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상길이는 수중에 보증금이 될 정도의 돈이 없음을 인하여 청년이 망설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까와 한다.
“제게 차비하고 남은게 있는데요.”
“얼마인데.”
청년은 반사적으로 귀가 번쩍하여 묻는다.
“이백원이요.”
그는 금새 어처구니가 뭉개진 얼굴이 되어 얼굴 놓을 자리를 찾아 헤맨다.
청년은 상길이를 데리고 그가 근무하고 있다고 말한 교회 앞으로 데리고 간다.
그는 상길이의 이름을 묻는다. 공부를 잘 했었느냐고도 묻는다. 신원이 증명될 증명서가 있느냐고도 묻는다.
상길이는 떳떳스런게 갉아먹힌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고 입술만 달싹거리고 만다.
물끄러미 딱하게 내려다보던 그는 믿을게 없지만 믿음성이 있어보여 그가 근무하는 곳에 청소하는 사람으로 우선 취직시켜 줄테니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을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틈틈이 공부를 하라는 말로 다짐을 받는다.
상길이는 금방 얼굴이 밝아진다. 옷 주제가 그를 따르질 못한다. 그들은 예배당 앞에 다다랐다.
젊은이는 무엇을 골몰하게 생각한다. 망설이던 그는 입맛을 다신다.
주저주저하는 망설임이 배어 나왔다.
“난, 잠깐 다녀 올데가 있는데 어떡한다. 자네 먼저 예배당에 들어가 잠시만 기다려.”
“밖에서 기다릴께요,”
“그럼 그래.”
그는 오던 길로 내려 간다. 상길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마움이 실린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서서 있다. 청년은 주머니를 뒤적이며 내려간다.
그는 돌아서서 손짓한다. 상길이는 잽싸게 뛰어간다.
“너, 돈좀 줘야겠다. 마침 내가 돈이 떨어져서...”
“여기 있어요.”
상길이는 새끼 주머니에서 접힌 천원짜리를 급히 꺼내 준다.
청년은 ‘신원보증서, 이력서 용지를 사 가지고 온다’ 고 말한다. 그리고 ‘도장이 있느냐’고 묻는다. 없다는 말을 들은 그는 ‘도장을 새겨 올테니 기다려라. 예배당으로 들어 가서 기다려라. 어려워마라’ 고도 말한다. 상길이는 괜찮다고 사양한다.
“그럼, 좋도록 하라구!”
상길이는 젊은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섰다가 그가 보이질 않자, 서성거린다. 그는 교회당 공터에서 왔다갔다 한다.
부로크 담장 밑에 있는 돌 위에 앉는다. 청년이 내려간 길을 눈 익히듯 지킨다. 그리곤 중얼거린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더니...도장을 파고 자기 볼일을 보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서울이 넓다고 하더니 여기서 보니까 그렇게 넓은 것도 없구먼. 사람들은 괜히 서울 갔다 오면 허풍을 떠는지...”
그는 중얼거리며 을지로 교차로가 보이는 언덕진 곳에서 턱을 고이고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 보며 마음의 나래를 마음껏 펴본다.
그는 눈을 껌벅거린다. 졸음이 오는 것을 이기려고 눈에다 힘을 주고는 눈동자가 아프다고 할 때까지 질끈 감았다 떴다 한다. 앉아서는 견딜 수 없다고 일어나 왔다갔다한다.
교회 담장 모서리에 등을 기대고 서서 졸음과 씨름을 하며 청년이 내려간 길을 지켜본다. 얼마동안 서 있던 그는 부숴진 세면부록을 주워다가 담장 밑에 붙여 놓고 그 위에 앉는다.
고개를 옆으로 하고 길을 내려다 보던 그는 고개를 이기지 못하고 졸음에 끌려들어 담장에 기댄 채 잠에 빠진다.
하늘은 구름이 활짝 개어 햇빛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의 이마와 목에서는 땀방울이 송골거리다가는 흘러내리고 또 맺힌다. 얼굴은 햇빛에 익어 빨갛게 물이 들었다. 후줄근하던 옷도 뻣뻣해져 구겨진 것이 황토물이 들어서 붉고 너절너절하기만 하다. 얼마동안 잠에 빠졌다.
그는 무엇에 쫓겨 후다닥 소스라쳐 벌떡 일어난다. 누가 불총을 놓아서 정신없이 일어나 두리번거리는 것 같다. 이내 하늘을 쳐다보고 해를 찾아 고개를 돌리다가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젊은이가 내려간 길을 잃어버리면 안된다는 눈으로 살핀다.
“시간이 오래된 것 같은데. 가서 물어볼까? 혹시 왔었나? 왔다가 내가 곤히 자는걸 보고는 딴 볼일이 있어 또 내려간 것은 아닌지. 내가 물어보러 갔었다는 걸 알면 그 사이를 못 참아서 미덥지다 못해서 물어 보았구나 한다면... 앉아서 기다리느니 한 바퀴 돌고 올까?”
그는 젊은이가 내려간 길을 따라 내려간다. 내려가면서도 고개를 자주 돌려 예배당을 돌아다본다. 퇴계로 큰길까지 내려온 그는 한쪽에 우뚝 서서 길가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또 본다. 그리곤 중얼거린다.
“그이가 오는걸 몰랐다가는 큰일이지. 그냥 교회에 가서 기다리자.
침착하지 못하다고 한다면 인상이 흐려질테니...”
상길이는 발걸음을 돌려 예배당 길로 올라간다.
“이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 친척은 하나도 없나? 우리 집이 서울 변두리에 있다면 어데든지 다녀서 야간 학교에 다닐 수도 있을텐데...”
그는 다시 담장 밑으로 가서 부숴진 부로크 위에 앉는다. 그리고 바지가랑이에 말라붙은 흙을 손으로 비비고 턴다. 구겨진 바지가랑이를 다시 다리기라도 하듯 한손으로 바지끝을 모아 잡고 엄지와 인지로 주름을 잡느라 훑어 내린다.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다. 피로에 지친 눈에는 초조가 찾아 들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는 예배당 문 앞으로 걸어간다. 대문 앞에 다가선 그는 오른손을 들었다가 손을 내리고 돌아서 앉았던 담장 밑으로 걸어간다.
“나 같은 놈에게 설마... 자기 볼일을 보느라 늦는거겠지...”
그는 하늘을 쳐다보고 너울거리는 해를 보더니 쫓기듯 당황해 한다.
“나 같은 놈에게...
아냐, 더 늦기 전에 물어보고 기다려도 기다리자. 이러다간 해 넘어가겠어.”
그는 불안에 갈팡질팡거리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대문 앞으로 간다.
그리고 가볍게 대문을 두드린다. 예배당 안에서 가냘픈 여자의 묻는 소리가 겨우 대문을 넘어온다.
“저 말씀좀 묻겠어요!”
신발 끌리는 소리가 멈추자
“아주머니, 말씀 좀 묻겠어요.”
그는 소리나온 곳을 찾느라 잔뜩 목마른 눈을 문틈으로 들여밀듯 덤빈다.
“저기 혹시 이곳에 키 크고 젊은 분이 계신가요? 젊잖게 생기고 아주 잘 생긴 분이시던데요.”
그는 풀기 없는 목소리로 초조가 휘감겨 떠듬거린다. 그 여자는 물끄러미 상길이의 말을 들으며 팔짱을 낀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천천히 젓는다.
“그런 사람 없어요.”
“그 청년이 저를 이 예배당에 청소하는 사람으로 넣어 준다고 했었어요. 아까부터 기다리다가 오지 않아서...”
상길이는 입이 바싹 말라 침마른 말을 겨우 꺼내곤 말을 잇지 못한다.
그 여자는 대문의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쭉 훓어본다. 그녀의 얼굴에는 안됐다는 말이 입 언저리에 조금 묻었다.
“여기는 학생 같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녜요. 학생이 그 사람한테 뭐 준 것이라도 있나요? 이곳은 사람이 필요치 않아요.”
“그 청년이 여기 교회 목사님을 친척이라구 하면서 이곳에 넣어준다구 서류에 필요한 용지를 산다면서 제게서 천원을 가져갔어요.” “쯔쯔, 저걸 어째! 학생이 그 사람에게 속은 거야.”
상길이는 벼랑으로 밀려 떨어지느라 아찔하여 휘청한다.
“며칠 전에도 학생 같이 시골에서 올라온 학생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에게 속아서 돈을 빼앗기고 우리 교회에 학생처럼 왔었다구. 그때도 그러더니 또 사람을 사기쳤군. 아주 나쁜 사람 같으니. 서울이란 사람을 믿을 수가 없는 곳이예요. 모르는 사람 말을 믿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구. 또 돈을 속여서 빼앗다니. 우리 교회를 이용하여 사기꾼 노릇을 하고, 몹쓸 사람 같으니...”
그녀의 말을 고개를 떨구고 듣던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아주머니, 혹시 중앙교회와 태윤구 목사님 아세요?”
그녀는 갑작스런 질문에 어리둥절 한다.
“저의 당숙인데 주소를 몰라서요.”
그는 또박또박 말한다. 그리고 가냘픈 기대를 해본다.
“모르겠는데.”
“아주머니 실례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그는 돌아서서 길을 내려간다. 그의 모습은 뒤꼭지의 부끄러움을 물어 뜯긴 사람처럼 몹시 흥분하였다. 낭패를 당한 것이 모두 씻긴 사나운 얼굴로 변해졌다.
“부모는 무얼하는 사람들인데 주소두 가르쳐 주지 못하나?...”
그녀는 혀를 끌끌차며 쪽문으로 들어가 버린다.
“내가 사기를 당하다니? 병신은 큰 병신이지. 겉똑똑이야. 이제 차비도 없고 집엘 어떻게 간다...
걸어서 열흘이면 가겠지. 밥은 얻어 먹고 간다. 더러워서!
세상에 별 추잡한 새끼도 다 있지. 나 같은 놈에게 사기를 치다니.
쌀 두말 값도 안 되는걸 빼앗아 먹어? 더러운 새끼. 한 번 찾으면 만나기만 하면 그냥... 재수 옴 붙는다더니...”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방향도 없이 시내 길을 헤맨다. 그는 퇴계로, 을지로, 삼일로를 원을 그리듯이 알지도 못하며 그냥 걷는다.
명동 입구로 들어 간다.
“저 교회당은 까만게 아까 내가 지나간 예배당이구나. 내가 시내를 한 바퀴 돌았군...
어두워졌는데 어데서 잠을 잔다. 우선 국수나 한 그릇 사먹고 잠을 자도 자야지. 쓸데없이 쏘다니기만 했어.”
그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길가 포장친 곳을 찾으며 걷는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던 그는 포장마차를 찾아 들어간다.
그는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서 서울역은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느냐고 묻는다. 포장마차 주인은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는 국수 값을 내고 밖으로 나와 또 걷는다.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그는 그냥 길 바닥에 드러눕고 싶은 고달픔에, 눈꺼풀을 붙들어 올리느라 기를 쓴다.
“추녀가 있는 집 밑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길가의 상점들은 휘황하여 사람을 홀린다. 그는 마냥 어둡고 침침하게만 보일 뿐 관심조차 가져 보질 못한다.
“몇시나 되었을까?
저 건물이 괜찮을 것 같은데 저리 가보자.”
그는 마침내 잠을 잘 수 있겠다 싶은 곳을 찾았다. 현관 지붕이 넓게 만들어져 있다. 우묵하고 깊은게 두꺼비집 같이 생겼다.
그는 조금 안심을 한다. 그는 다가가 누울 곳을 찾는다. 불빛이 들지 않는 곳, 캄캄한 곳에 한 사람이 누워 있는걸 발견한다. 모로 누워 안쪽을 향하고 길을 등지고 자고 있다. 왼팔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다.
‘저이도 나처럼 시골에서 올라왔나? 나보다 못한 사람인가? 내 주제에...’
그는 시멘트 바닥에 드러눕지를 못한다. 바닥이 너무 차웁기 때문이다. 현관 기둥에 등을 기대고 털썩 앉았다. 엉덩이를 써늘한 기운이 자꾸 밀어 올린다. 그는 참고 눌러 앉아 길가는 사람을 부러워하다가 잠속으로 빠져 버린다. 그는 모로 쓰러져 팔베개를 하고 달게 잔다.
그는 부시시 일어난다. 두리번거리던 그는 쓰레기통 옆으로 다가가 소변을 한다. 냠냠 거린다. 하품도 늘어지게 한다. 소 오줌을 누고는 다시 현관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시 다시 잠을 찾는다. 냉큼 잠을 청하지 못한 그는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 본다. 써늘해진 팔뚝을 비벼 문지른다. 누워 자는 사람을 동정의 눈으로 쳐다 본다.
“이게 뭐야! 하루 종일 돌아만 다니구. 돈만 빼앗기구. 몇푼 안되 는 돈을, 차비 할 것을 갉아먹는 더러운 새끼!”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쓰게 웃다가 노려보다가 걸맞지 않게 한숨도 내뱉는다.
‘저 사람은 길가는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등을 지고 자는 것인가? 사람들이 보기가 싫어서...
나와 무슨 상관이람. 나의 갈 길도 몰라서 허둥대는 주제에...
그나저나 하룻밤 신세지러 왔으니 집이나 알고 잠을 자야지. 그래야 기념도 되고...’
그는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간판을 찾은 그는 아는 사람이나 만난듯 기쁜 얼굴이 돼 버린다.
“내가 연합 신문사 정문에서 자게 되다니!”
그의 표정은 친구네 집에 찾아온 것 같이 보인다. 어색함도 서글픔도 지워졌다. 다시 기둥에 기대어 두다리를 쭉 뻗고 앉는다.
“어머니는 궁금해하시겠지. 서울 온 첫날 새벽부터 날비를 흠뻑 맞으며 쏘다니구, 사기를 당하구, 길바닥에서 잠을 자구, 아침, 점심도 굶고 진짜 고생문이 열리는 신호인가?
중앙교회 찾다가 날새는 내 꼴이 이게 뭐람. 사람들은 꽤나 중앙을 좋아해. 변두리도 중앙이래. 음식점이 큰게 있다고 했었는데.... 중앙교회 옆에 아주 큰 음식점이 있는데 이름만 대면 서울 사람은 안다고 한 것 같은데. 뭐라더라, 황 뭐라구 말했는데...
내일 아침에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제일 큰 음식점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 봐야지. 신신 백화점이라던가? 백화점 옆에 있다고 들은것도 같고, 내일 아침 물어보고 내려가도 내려가자. 왜 내가 그걸 못 찾을 것 같이 우왕좌왕하다가 헛걸음만 열심히 쳤지?”
그는 육촌 누나가 하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고 한가닥 빛살을 좇다가 잠속으로 끌려든다.
길가는 사람들은 두 사람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지나간다. 혀를 차고 지나가는 사람, 깜짝 놀라서 욕을 하고 가는 사람, 걱정하며 가는 사람, 게으름뱅이는 할 수 없다고 군말하며 지나는 사람, 동정하며 지나는 사람, 시내가 더러워진다는 사람, 초 저녁에는 실컷 자고 한밤중엔 도적질 하겠지 하는 사람,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하는 사람, 난리 때 피난가던 생각이 난다고 징그런 난리를 떠올리며 지나는 사람, 죽은 사람은 아닌가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