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4.아버지 마음 어머니 마음)

작성자
yeongbeome2
작성일
2024-07-08 22:09
조회
80
은부인과 윤공은 딸이 돌아온 날부터 얼굴에 시커멓게 그늘이 져서 가시질 않는다.
안방에 나란히 앉아서 천정만 바라보던 은부인은 떨어지질 않는 입을 간신히 열어 조그만 소리로 “여보” 하고 부른다. 남편의 귓가에 겨우 달까말까한 목소리로 남편을 목소리로 부르고는 남편의 눈치를 살핀다.
윤공은 아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벌떡 일어난다. 잊고 있던 일이 갑자기 생각이 난 것처럼 벽장문을 열고 커다란 장부책을 꺼내 놓고 뒤적인다. 윤공은 아내가 다시 부르자 담배를 한모금 깊이 빨고는 땅이 꺼져라 하고 연기를 몰아낸다. 그리고는 꼬까운 눈으로 아내를 응시한다.
그의 눈은
‘세상이 이젠 모두가 귀찮다. 어디로 훌쩍 가서 모두를 잊어버리고 살았음 좋겠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몰골이 저주스러운 판인데 얼마나 더 애를 태워야 삶을 마치게 되느냐?
어서어서 끝났슴 좋겠다. 나는 자식둔게 남같지 못하고 지지리 속을 썩이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올 자식은 계속 죽더니 이젠 미친꼴을 보다니...
남들은 나를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우리 동네에 꼭 있어야 될 사람이다 하는데 하는데 난 이게 뭐람. 남에게 해꼬지도 않았는데...
이 무슨 재앙이란 말이냐? 인생살이 반 평생을 살았어도 도무지 알수가 없으니...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자식을 잘 키우고 자녀의 즐거움도 누리는데.
나만 무슨 죄가 많아서 이꼴인가? 이 한스럼을 어디다 풀어놓고 시원한 꼴을 보게 될 것인가? 억울하게 죽게 된 사람도 배고픈 사람도 외면하고 모른 체 안했는데. 이건 너무 억울하다’ 고 앙탈을 부린다.
“저기 건너 마을 순희 할머니가 그러는데 박수를 데려다 경을 읽어 보라고...”
은부인은 조심조심 살얼음을 디디듯이 하고는 말끝을 더 잇지 못하고 삼킨고 만다.
“쓸데없는 소리말어. 그게 무슨 소용이야? 황당무계한 짓이라구!”
“그래두 자식 위하는 일인데.”
“그 따위 소리 집어 치워!”
윤공은 더 이상 말시키지 말라고 못을 박는다.
“그만 두시구랴. 나도 답답할거 없으니...”
“시끄러워! 고만 지껄여.”
윤공은 언성을 높여 윽박지른다.
“집구석에 장이 끓는지 국이 끓는지 남이 먼저 아니 원, 내가 말을 말아야지. 두고 보라지. 누가 더 답답한가?”
은부인은 중얼거리는 소리로 오금을 박으며 안방을 나간다. 그리고는 딸이 있는 웃방으로 올라간다. 그녀는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며 잔뜩 화가 쏟아지는 얼굴로 아랫목에 석상처럼 앉아 있는 딸을 저주하는 눈으로 흘긴다.
“내가 뭐라던. 네 신세는 네게 달렸다고 했지?
에미 말을 듣지 않으면 네 신세는 조진다구 하니까 에미 말을 발삿에 때만큼도 여기지 않더니 꼴 한번 좋구나!
괘씸한년!
제 애비를 닮아서 남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고집통만 터지게 세어가지고, 이렇게 될 줄 몰랐더냐?
친정에도 꼬리표 달려서 온 년. 네 발등이나 찍어라. 누굴 원망하겠냐?
당초에 내가 뭐라던? 아주 죽어 없어지기나 해라. 그래야 편치.
누구 속에다가 불을 지르냐?
씨정머리 닮아서... 소 죽은 넋이 씌웠냐?
너 같은 것은 살아도 남의 속이나 썩이고 애만 태우느니 죽기나 해라.
그게 제일 상책이다.”
은부인은 남편에 대한 불만을 훌훌 턴다.
열이는 저의 어머니가 욕을 하던 흘기던 무슨 말을 하던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누가 왔던 보아서는 안되고 들어서도 안된다는게 그녀를 얽어매었다.
은부인은 딸이 반응이 없자 제풀에 사그라든다. 스스로를 자책한다.
딸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돌로 만들어 놓은듯 하던 열이는 갑자기 머리를 좌우로 도리질을 한다. 파마 자국 있는머리, 고삐 풀린 머리칼은 졸지에 갑자기 폭풍을 만났다. 머리칼 빠지고 혼 빠지게 도리질치던 그녀는 딱 멈춘다. 그녀의 두손은 핏줄이 툭 불거졌다. 잔뜩 거머쥔 두 주먹은 무릎 위에서 부르르 떤다. 그리고 고개를 발딱 제쳐 얼굴을 천정과 나란히 놓는다.
머리 정수리가 아랫목 벽에 달락말락하게 하고 앉아 애를 태운다.
“내가 괜한 소릴했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에게. 불쌍한 것, 다 에미 탓이다. 에미가 죄가 많아서 네가 고생을 하는구나...”
은부인은 넋을 잃고 열이를 지켜보다가 탄식을 하면서 방을 나간다.
은부인은 저녁을 하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간다. 밥이 끓어 밥물이 넘쳐 솥전에 흘러내린다. 은부인은 솥뚜껑을 급히 열어 제친다.
“이런 보리밥도 못 얻어 먹어서... 낳기만 하면 자식인가? 내가 물려받은 죄가 얼마나 많기에 죄값을 치루느라...”
그녀는 설움이 북받친다. 치맛자락으로 코를 닦는다. 치맛자락이 내려오질 못한다. 어깨를 감싼 저고리가 파르르 떤다.

열이가 친정에 와 있는지도 보름이 지난 어느날이다.
상길네 집 안방에는 방 가운데를 가로질러 앞 방문에서 뒷문 위로 줄을 매 놓았다. 줄에는 창호지를 네모지게 길다랗게 썰어서 연이어 달아 놓았다. 마치 국민학교 운동회 날 본부석 천막 앞에 기부금 낸 사람들의 이름을 써서 달아놓은 것 같다.
웃목에는 떡시루가 여러개 놓여 있다. 큰시루는 가운데 놓였고 작은 것은 큰시루 양쪽에 놓였다. 큰시루에는 팥고물이 가득 담겨있고 작은 것은 백설기가 가득하다. 작은 시루 밖으로는 큰 함지박에 쌀이 하나 가득 담겨 있다. 큰함지박 한가운데엔 참나무 몽둥이를 쌀 속 깊이 꽂아 놓았다. 참나무 몽둥이는 창호지를 가늘게 썰어서 참나무 꼭대기에 붙들어 매여져 미친 여자 머리칼을 흉내낸 것처럼 만들었다.
돼지 대가리 삶은 것도 큰시루 앞에 자리잡았다. 돼지 대가리 주둥이에 백원짜리 하나를 물려 놓았다. 떡 시루 속엔 접시 하나씩 놓였고 접시 위에는 촛불을 켜 놓았다.
앞마루에도 뜰에도 굿 구경을 하느라 동네 아낙네들이 모두 모여 법석을 떤다. 방안은 개미가 기어가는 것도 보일만큼 걸맞지 않게 휘황하다. 돼지대가리 앞에는 박수가 앉았다. 그는 무릎 앞에 북도 놓고 꽹과리도 놓았다. 북은 서있고 꽹과리는 자빠져있다. 박수 뒤 아랫목에는 열이가 벽을 기대고 앉아 있다. 그녀는 눈을 꼬옥 감고 있다. 이따금 머리를 도리질 한다. 박수는 경을 읽는다. 꽹과리도 두드리고 북도 치면서 장단을 맞춘다.
열이는 웃목을 흘끔 쳐다보고는 중얼거린다.
경을 읽으니까 열이가 말을 하려고 중얼거린다고 붙은 입이 떨어졌다고 아낙네들은 수근거린다.
동네 아이들은 상길네 집 삽짝 앞으로 모여든다. 삽짝 안을 기웃거린다.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는 박수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정성이 부족하여 호박떡이 설었는가? 명태 두 마리 꼼짝마라. 날만 새면 내 차지다. 깽깽 깽깨깽 깽깽 깽깨깽...”
윤공은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아 시름에 빠져든다.
‘인생살이가 왜 이다지도 고달프고 애달픈가?
인생은 외로운 것인가?
인생살이를 길게 살아야 할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인생은 이세상 뿐인가?
누구는 복스럽게 살다 가는데 이유는 어디에 있나?
나 라는 사람은 고생을 하다가 죽을 것인가?
죽으면 그만인가?
내세가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내세에도 고생한다면 나 라는 존재는 없어지는게 바람직한 일 아닌가?
내가 죽어 없어지고 싶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죽을 수가 없다면, 계속 살아있다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닌가?
짧은 인생살이 고통도 이기지 못해 죽음으로 도망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헛일이라면...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말따라 사람에겐 누구나 영혼이 있어 내세에 가서 인생살이의 선행과 악행에 대한 재판을 받고 형벌을 받는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큰일이 아닌가!
영혼이 나에게도 있을까?
그곳에 가서는 죽을수가 없다는 말이 사실일까?
착하게 살으라는...도우며 살으라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이 미치는건 무엇인가?
귀신이 들린 것인가? 아니면 뭐란말인가?
속을 많이 썩히는 사람이 미친다.. 그렇담 공부 잘하던 아이 똑똑한 아이가 졸지에 미쳐 산으로 들로 밤이나 낮이나 뛰쳐다니는건 뭔가?
멀쩡하던 부인네가 남편도 자식도 모르는걸 보면 뭔가?
사람이 알지 못하는 힘에 의해서 끌려 다니는 것은 부인 못할 현실이야!
사람을 괴롭히는게 있긴 있지. 글자에도 ‘귀신 귀’ 자가 있으니, 아내 말마따나 아버님 유택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그런가?
어린것들이 제대로 커 보지도 못하고 죽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내가 죄가 많아서 그런가? 조상적부터 물려받은 죄가 많아서 그게 응보를 나타내는 것인가?
조상들이 양반 행세하느라 못할 짓도 많이 했겠지. 남 등쳐 먹은 일도 있겠지. 죄를 씌워서 생으로 죽이기도 했겠지. 남의 계집도 빼앗아 놀아나기도 했겠지. 하필이면 이런 죄가 모두 내게만 와서 떨어진담.
조카가 불구가 된 것도, 모자란 자식이 생긴 것도...’
그는 가까운 집안 식구들을 돌아보다가 무섭기만한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는 느낌에 허우적거린다.
그는 삽짝 밖에서 떠드는 소리, 아이들의 흉내 소리에 혼이 붙잡힌듯 강제로 끌려나와 겨우 정신을 가다듬는다.
“에끼, 이놈들! 어디서 떠드냐?”
윤공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목에다 힘을 주어 외마디 소리를 내지른다. 아이들은 우르르 도망친다.
“호박떡은 설었어도 맛있게는 생겼단다. 이놈 먹고 물러가고 너도 먹고 물러가라.. 쉐 깽깽 깽깽 깽깽 깽깨깽...”
동네 아이들의 무당 흉보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방 가운데에 넓고 두꺼운 떡판을 갖다 놓았다. 떡판 위에는 신장대 하나가 올라섰다. 성근이 아버지가 오른손으로 신장대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은 신장대를 바라본다. 잔뜩 호기심에 부풀었다.
박수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부지런히 경문을 주워 섬긴다. 꽹과리도 뒤질세라 콩을 볶는다. 북도 북북거려 방정을 떤다. 박수는 신명이 터지게 올랐다. 두손은 귀신 씌워 날뛴다. 북도 꽹과리도 정신없게 미쳐 날뛰어 소리친다. 사람들은 박수에 취하고 얼이 빠졌다.
순덕이 엄마와 창순이 엄마는 귓속말을 주고 받는다. 귀신 놀음이 시작되니까 정신은 차리고 보자고 똑똑히 보자고 한다. 궁금한 것을 말한다.
“왜, 신장이 놀지를 않지?”
“저이는 신이 오르지 않는것 같아!”
“신장이 누구한테는 놀구 안 노는감!”
“그럼!”
“신이 오르는 사람이 있다구?”
그녀들은 입을 다물고 긴장한 눈으로 지켜만 본다.
“어머 저것좀 봐. 성근이 아버지 손이 떠네.”
“뚝딱” 하는 소리에 소근거리던 아낙네들은 찔끔한다.
신장대 잡은 팔뚝이 갑자기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신장대가 떡판을 내려쳤다. 조금 뜸을 들이고 잠자코 있던 신장대가 성근이 아버지 팔을 따라 뚝딱 뚝딱 연속 올라갔다 내려왔다 한다.
산발한 머리칼 같은 창호지는 쉐쉐 소리를 낸다. 창호지는 덜덜거린다.
박수는 “좌정!” 하고 소리친다.
성근이 아버지 팔뚝은 박수의 박수의 명령에 꼼짝을 못한다. 신장대 잡은 팔은 계속 덜덜 거린다. 좌우로 흔든다. 그러다간 팔뚝이 올라갔다 내려온다.
그때마다 박수는 “좌정” 하고 소리친다.
떡판 위에는 창호지로 만든 조그마하고 가늘게 꼬아 만든 쌀벌레만한 것이 나와있다.
신장대는 북소리 꽹과리 소리에 귀신물이 흠뻑 들었다. 신장대 잡은이는 고이춤이 벗어지라 껑충거린다. 드세게 돌아간다. 성근이 아버지는 신장대로 방안 구석구석을 찔러댄다. 열이의 머리 위에서도 때릴 것처럼 겁주고 어른다. 신장대의 종이 수술은 열이의 머리와 어깨를 훔쳐내고 털어낸다. 금방 후려 갈기려다 돌아선다. 거칠게 숨을 쉬는 성근이 아버지 얼굴은 벌개져 있다. 열이는 눈을 딱 감고 앉아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태순이 엄마는 순덕이 엄마에게 귓속말을 한다.
“떡판에 떨어진게 잡귀여.”
순덕이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떡판 위를 골똘히 지켜본다.
박수를 따라온 무당은 왼손에 한되짜리 소주병을 잡고 오른손은 복숭아나무 회초리를 들고 쌀 버러지만한 종이 조각을 병속에 몰아 넣는다. 종이 조각은 쉽게 병속으로 들어가려 하질 않는다. 박수는 호령을 하듯 경문을 크게 외운다.
신장대는 성근이 아버지 팔뚝따라 열심히 뚝딱거린다. 종이 조각은 꿈틀거린다. 마치 살아있는 벌레같다. 이리 튕겨나고 저리 튕겨난다.
병속으로 들어가기 싫어 병 주둥이에서 달아나듯 한다.
동네 사람들은 종이 조각에 넋이 빠졌다. 숨소리도 작아졌다. 종이조각은 떡판 위에서 벼룩처럼 팔딱거린다. 재주를 넘는다. 살기 위해 내빼는 양이다.
까딱 않던 열이가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든다. 풀어진 머리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저것이 병에 들어가면 병이 낫나?”
“저 종이가 열이에게 붙었던 귀신인가?”
“손으로 집어서 넣으면 안 되는지?”
아낙네들은 궁금 답답을 떡판에다 내뱉느라 소신증이 났다.
무당은 아낙네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냥 종이 조각을 병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는 종이로 병 마개를 만들어 병 주둥이를 꼭꼭 틀어막는다.
무당은 병을 들고 나간다.
그의 모습은 상 씨름에 이긴 사람같다.
신장대를 잡고 있던 사람도 따라 나선다.
무당은 뒷뜰 구석구석을 기웃거리고 헛간, 잿간, 외양간, 변소를 기웃거린다. 그리고 삽짝 밖으로 후다닥 달려간다. 삽을 들고 좇아 가라고 박수가 급하게 소리친다. 젊은이 하나가 허둥지둥 삽을 찾아들고 삽짝 밖으로 좇아간다.
상길네 집에서 2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는 비탈진 밭이 상길네 집을 마주한다. 그들은 밭두덕을 따라서 이리가고 저리간다. 무엇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삽을 든 젊은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는 밭두덕을 따라 그들을 좇아 다니다가 밭두덕 가운데 우뚝 서서 쓰게 웃으면서 중얼거린다.
“달밤에 체조 한다더니...어스름 달밤에 체조하누먼...”
무당은 밭두덕을 왔다갔다 하다가 멈추어 선다. 그리고 밭두덕 밑을 파는 시늉을 한다.
젊은이는 마지못해 뛰어간다. 그리고 땅을 깊이 파고 병을 묻는다
시끌 법석대던 굿은 잡귀를 잡은 것으로 첫 닭이 울 때쯤 끝을 냈다.
굿 구경 하던 사람들은 윤공 내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무당들도 아침에 짐을 챙겨 떡도 쌀도 싸 가지고 떠나갔다.
‘오늘부터는 열이가 나으련는지? 아프더라도 정신이나 차려 속 시원히 입이나 열고 말이나 하였으면 좋으련만. 남의 말에 푸닥거리를 하다니...시집 보낼 때 아내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렇진 않았을걸.’
윤공은 미욱하여 미련을 떨었던 자신이 저주스러워 괴로움에 부대낀다. 그의 초췌한 얼굴은 소나기 구름에 씌워졌다. 그의 발걸음은 들어오나 나가나 한곳에 진득암치 서있지도 앉지도 못한다. 자발맞은 꼴이 되었다.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다 덫에 걸렸다.
문 앞에 앉았던 열이가 갑자기 횡설수설한다. 그는 질겁을 하여 노려본다.
“죽으려면 곱게 죽어!”
호령따라 들고 있던 담뱃대로 갈긴다. 열이의 손등은 대번 시퍼래진다. 그의 손에 들렸던 담뱃대는 인정이 말랐다. 열이는 대꼬바리로 손등을 호되게 맞고서 아픈것을 모르는지 입만 조금 내민 채 가만히 앉아 있다. 윤공은 벼락치듯 하고는 삽짝 밖으로 휑하니 나간다.
열이의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며칠이 지난 후 복수면에서 용하다는 의원이 왔다. 열이의 병세를 보이기 위해 사십리가 넘는 곳에서 데려왔다. 열이의 외갓집 동네에서 사는 의원이라고 한다. 열이는 침도 맞고 약도 먹었다. 의원은 열이의 병이 간경이 허해서 생긴 병이라고, 아주 심하게 놀란 것을 풀어주지 못해서 생긴 병이며 거기다 속을 많이 썩혀서 울적하여 생긴 벼이나 안심시키는 약을 쓰면 한달 이내에 회복될 테니 걱정말라고 말한다.
열이는 날마다 조금씩 차도가 있다. 홍수에 잠긴 들판이 조금씩 물이 빠지는걸 보는 것처럼 열이는 넉달만에 회복되어 건강해져 시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바뀐 봄
상길이는 대전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형제간에 우애가 좋다고 동네 사람들은 윤공에게 칭찬하는 말들을 한다.
은부인은 오늘도 집에 온 아들에게 한달에 한 번씩만 집에 오라고 타이른다. 집에 자주 오면 공부는 언제 하겠냐? 집에 오려면 차비는 안드느냐? 너의 숙모가 네 차비 대주기도 힘들겠다. 너는 삼촌과 숙모가 너 때문에 애쓰고 있는 공이나 알고 고맙게 여기라고 훈계를 한다.
상길이는 뾰루퉁한 채 어이없어 한다.
“알기는 뭘 안다고 그래? 차비 이야기하면 돈꾸러 가는데.”
“돈이 없으니까 빌리러 가지. 돈이 있는데 빌리러 가겠냐?”
“돈이 있어두 빌리러 가는데 뭘!”
“돈이 있어두 그 돈이 쓸게 아니면 빌리러 간단다.”
“나는 작은 아버지네 집에서 있기 싫다구!”
“너는 어째서 못 마땅하냐?”
“삼촌네 집에서 공부하기도 싫구 있기도 싫어.”
“왜 그렇게 싫으냐?”
“날 싫어하는데 왜 있어?”
상길이는 퉁명스레 깡충 뛴다. 내집을 두고 뭣땜에 남의 집에 가서 미운 물건이 되게 하냐고 천덕꾸러기를 만드냐고 펄쩍거린다.
은부인은 고집스런 자식의 앞날이 걱정스러워 오그라드는 마음을 피려고 허둥거린다.
저녁을 먹고 난 은부인은 남편과 마주 앉았다. 은부인은 저녁상을 윗목에 밀어놓고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말을 한다. 윤공은 아내의 말에 심드렁하게 듣는다.
“당신두 어지간 하슈. 자식을 동생에게 맡기고서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은부인은 조금 화가 난 얼굴로 들이대듯 말한다.
“그 애가 집에 자주 오는데두 아무렇지도 않아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어리니까 그렇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싶으면 가는거지.”
“자식은 제 손으로 기르는 것인데 상길이가 철이 없어 제 삼촌 숙모 속을 썩힐텐데 염려가 안돼요?”
“그러니까 애들이지. 삼촌도 부모야.”
“제 속으로 안 낳았는데 무슨 부모유?”
“우리 형제는 달라!”
“그러니까 우애가 상하기 전에 방을 얻어서 자취를 시키던지 집으로 데려다가 연산 중학교에 보내요. 상길이는 그렇게 해 달래요.”
“그냥 놔두라구. 자는불 일구지 말구.”
“그 애가 공부를 하는줄 아남.”
“공부는 철이 들어야 하는거라구. 상이나 갖다 치워.”
윤공은 아내의 말을 듣고 마음이 상하여 씁쓸한 채 동네 사랑을 찾아 집을 나선다.
그들 내외는 아들을 동생네 집에 보내고 나서 아들 걱정으로 얼굴이 피질 못한다.
윤공은 그의 딸 열이의 정신이상 증세가 있은 후부터는 아내의 말에 시원스레 상의하는 말투는 아니나 아내의 말에 질질 끌려 정이 담기지 않은 덜 벗겨진 말로 대답을 한다. 무조건 핀잔부터 하고 보는 버릇은 많이 고쳐졌다.
‘내가 저녀석을 공부시키게 될지...
공부를 제대루 시키면 똘똘은 하겠는데 이 농사 지어서는 어림도 없구, 가끔 혼은 냈어두 싹수는 있어. 제 어머니 약을 다 사오구. 기특한 녀석! 누가 병이 났다하면 총념 했다가 꼭 약을 사 오고...’
‘후회할 때가 있을거유. 동생과 약속했다고 그게 어디 쉬운거유?
한다리가 천리지.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치자고? 그런 말이 어딨어요? 될 일을 가지고 약속해야지. 내것 모두 가져다가 동생 줬다구 당신네 형제 우애 좋은것만 믿으시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구.
동생이 의리가 없어져서 못하게 되남. 돈이 없으면 할 수 없지. 돈이 항상 있남. 동생은 자기 살 도리 안하나? 나중에 두고 봅시다. 나중에 귀로 눈물 날테니...’
‘아내 말이 옳은점도 있어. 아내 말을 따랐으면 아무 걱정이 없었을건데. 괜스레 동생의 거동이나 보는 꼴이 되었으니. 의리가 상길이 공부시키는게 아니지. 돈이 시키고 돈 없으면 허사여.’
그는 상념에 사로잡혀 걷는다.
윤공의 친구 양춘이가 사랑으로 마실 가다 앞서 가는 윤공을 보고는 그를 부른다. 어슬렁어슬렁 걷는 윤공은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걷는다. 그는 다시 부른다. 윤공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는 큰 소리로 다시 부른다. 그제야 윤공은 누구를 누가 부르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아! 자네 오는가?”
“자네 무얼 그리 골몰하게 생각하시나?”
“아닐세.”
“뭐가 아닌가? 혼자 좋은일 만났나?”
“자네 어데 가는 길인가?”
“가긴 어딜 가겠나? 사랑에 놀러가지.”
“우리 주막에 가서 약주나 한잔 하세나!”
“저녁에 술은?”
“저녁이니까 한잔 하게.”
양춘이는 윤공에게 끌려서 주막집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여보게 양춘이, 내 자식을 동생 집에서 공부시키는데...”
“나두 알고 있네.”
“자네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무엇을 말인가?”
“그만 두세. 주모 여기 술 한되 줘요.”
“싱겁긴 말을 끄내다 말어. 자네나 나나 못할 말이 뭐 있겠나?”
탁자 위에는 김치, 깍두기가 접시에 널부러져 날 잡어 잡수한다. 꾀죄죄한 누런 주전자가 흉이 뭔지도 모르고 멍청스레 놓였다.
“우리 잔이나 비우세.”
“싱거운 사람 같으니. 이야기 하기 싫으면 그만두게. 억지로 듣고 싶지 않으니께...”
양춘이는 막걸리 잔을 들고 친구 얼굴을 살핀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양춘이는 대답대신 술을 벌컥벌컥 먹는다.
“내 이야기 계속 하겠네. 나는 이제껏 농사를 지어 왔으면서도 제 때에 파종할 줄도 모르잖는가? 심고 나면 비료는 언제 주고 언제쯤 김을 매는지도 모르고 여벌로 농사를 지어왔어.”
“딴 소리는 왜 하나? 자네 정신이 오락가락 하나? 자네야 선비니까 그럴 수밖에 더 있나? 입이 서울인데 모르면 묻고 하면 되지. 새똥 빠지는 소리 말게. 이제껏 농사 짓고서는. 물론 딴 사람보다는 못 하겠지. 자네는 동네 일이다 하면 열일 제쳐놓고 좇아 다니니까. 나부터도 아쉬우면 자네를 불러내니 그럴 수밖에 없는거 나도 잘 알지. 그러나, 어쩌겠나? 일 볼 사람이 없는걸. 제일 다 해놓고 동네 일 할 수는 없는거지. 하나는 기울기 마련 아닌가? 그게 좋은 일이지 보람도 있고...”
“내 일도 못 하면서 남의 일을 한다는 게 내 자신이 우습구먼, 남들은 양석먹게 농사를 짓는데 난 양석이 뭔지도 모르고 지내니...”
(양석은 200 평 논에서 벼 4가마니 수확하는것)
“그렇다구 굶어죽나? 조금 덜 먹기로 어떤가? 자네가 조금 손해보고 면내 사람이, 동네 사람이 많은 이익을 보면 되는거지. 안 그런가?
사람은 그릇대로 사는거지. 다 그런줄 아네.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냐. 동네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구 보네.
강 아무개가 우리 동네를 어떻게 만들었나? 동네 사람들을 빚장이로 만들고 동네가 어수선하여 타관으로 이사도 많이 가고, 손해도 많이 보고, 고생도 많이 한걸 보았잖은가? 그래서 자네가 나서서 수습을 했잖은가? 세상 일이 모두 농사 짓는거지. 손이 자주 가야 되니까. 품삯 주고 일 시키면 자기 일처럼 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지. 그나저나 하루 세끼를 제대루 찾아먹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세끼만 먹으면 되고 더 있다고 더 못 먹는거 알지?”
“그건 그려. 평생동안 하루 세끼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먹는 사람은 아마 없을걸세.”
“죽을 때까지 그렇게 먹는 이는 복인이지. 가끔 굶는 사람도 죽지 않고 산다구.”
“맞는 말이지.”
“쌀밥 먹는 사람이나 보리밥 먹는 사람이나 사는건 모두 제명대로 사는 거야. 그런데 괜히들 으시대고 아귀다툼이지. 안 그런가?“
“이 사람아! 어서 잔이나 비우게.”
“모나게 살면 못마땅한게 너무 많아 편할 날이 없어요. 둥글게 살아야지. 우리가 우리 힘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가? 아니지? 우린 뭣에게 끌려서 여기까지 살아왔는데 뭘 걱정하나? 또 끌려갈 것을...”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내가 요즘 자네를 보니까 자네 요즘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서 우거지를 쓰고 다니나? 나에게 알려주겠나? 속 태운다고 일이 잘되면 모르되 속을 생으로 썩히지 말게나. 힘써도 안되는 일은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두게나?”
“자네, 벌써 취했나?”
“취하긴, 우리가 얼마나 산다고 걸걸거리나?”
“그게 어디 인력으로 되는 일인가?”
“답답하구먼, 맘을 편히 가짐 되는거지.”
“그것도 팔자 좋은 사람이나 할 소리지.”
“이 사람아 나보고 취했다더니 자네는 벌써 팔자타령인가?”
“어거지로는 살 수가 없더라구. 나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 힘으루 사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 어느 놈이 속건데기 만들어 속썩이고 걱정할 놈 있겠나?”
“하기는 그려.”
“나도 얼마 동안은 우쭐대고 살 때도 있었지. 항상 잘되는 줄 알고,그게 잠깐이더라구.”
“그런게 없다면 재미가 없겠지. 어서 잔이나 비우세.”
그들은 공허감을 메우려고 술잔을 기울여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