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3.아들 마음 딸 마음)
작성자
yeongbeome2
작성일
2024-07-0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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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은부인은 요즘에 와서 딸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싸늘해지자 어쩔수 없이 생리처럼 생기는 걱정이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굶지는 않고 사는지. 남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구. 한집에서 두 사람이 시집을 가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하나는 못 산다고, 나쁘다고 그러더니 그래서 그런거나 아닌지...
집은 판잣집이라는데 겨울에는 얼마나 추울까? 얇은 판자로 바람을 막고 산다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한데서 자는 거나 마찬가지지.
불이라도 났다가는 금방 활활 타버려서 나오지도 못하는건 아닌가?
많고 많은 사람가운데 그집에서 살다니.
사람 사는 게 맘먹은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숙고 뒤잖는다더니 애시당초에 일을 글렀으니 가봐야 얼마나 가겠어. 그게 보통 힘든 일인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그 사정을 어찌 안담.’
저녁을 지어먹은 그녀는 바느질 그릇을 앞에 놓고 아이들의 닳아빠져 구멍나고 뒤꿈치가 달아난 양말을 헝겊 대고 꿰맨다. 바느질을 하면서도 마음은 시집간 딸네집을 찾아갔다.
“여보, 열이는 잘 살겠지요?”
그녀는 돌아 앉아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면서 뭔가 골똘히 빠져있는 남편을 향해 궁금함을 나누어 가지려 든다. 윤공은 아내의 말을 들으며 계속 안간힘을 쓴다.
“여보, 듣수?”
“듣긴 뭘 들어?”
그는 벌컥 성을 낸다. 생각하기도 싫은 잊으려던 것이 아내에게 덜미를 잡혀 버둥거리며 눈 앞에 나타나자 그것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고 만다. 그는 시집간 딸 이야기가 나오면 아내가 아픈 곳을 건드리며 놀리기라도 한양 윽바지른다. 그는 평소에 속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생 병을 앓느라 끙끙댄다.
그는 딸을 시집 보낸 후 며칠 동안 밥도 안먹고 술로 세월을 모냈었다. 남편의 생 병 앓는 것을 보다 못한 은부인은 남편에게 위로하는 말을 했었다.
“금년 농사 지은 것은 흉작으로 끝이 났으니 우리가 상심한다고 광이 불어 나겠어요? 이제 명년 농사나 흉작이 안되게 잘 지어 봅시다.
당신 몸이 건강해야 내년 농사도 기약을 할 수 있지. 당신이 그러시면 내년 농사는 아주 볼 것두 없을게 아니유. 비가 제때에 오구 날씨도 좋아야 되는거지. 어찌 당신만 책임질 일이겠수? 제 팔자 소관이지.
남은 자식들은 우리 눈으로 보고 여웁시다. 열이는 초년 고생을 할 팔자라서 그렇게 시집 간 것으로 치부해 버립시다.”
“쓸데없는 소리 말어!”
그는 소리를 버럭지르곤 아무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었다. 그는 괴벽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아주 괴벽쟁이가 되어져 버렸다. 은부인은 남편이 핀잔을 하고 고함을 칠 때마다,
‘평생을 살아도 저 버릇은 못 버리지. 저런이가 어떻게 자기 부모에겐 껌벅 죽는지... 부모 위하는 일에는 제 정신이 아닌가?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속은 모르는 것인가? 저런 독선적인 태도, 여자는 사람도 아니라는 말투, 왜 내가 여자가 되어 이런 삶을 살아야 되나?’
하는 소리가 그녀의 마음 속으로 쓸쓸함을 끌고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할퀴고 잡고 찢는다.
‘원 세상에 남자들이란 모두 저이처럼 저런가? 양반 뼈다귀라고 자랑하는 집안이라서 그런 것인지. 자기 기분에 조금 언짢으면, 속상하는 일이 있으면, 여편네가 참견해서 빼앗아라도 가는지 여편네 입을 막느라구 소두방으로 자라 잡듯하니. 그래야 남자의 체통이 세워지나? 내가 위하고 높여줘야 되는거지. 자기가 올라갈라구 아무리 버둥대도 그것만은 나 없이는 안되는 줄도 모르구. 그래봐야 자기 속만 더 쓰리고 아프지. 쓸데없는 고집은 버려야지.’
은부인은 남편의 못마땅함을 질겅거리며 씹어 뱉기라도 하듯 실밥을 계속 깨문다.
윤공에게도 은부인에게도 ‘언제까지 시집간 딸 걱정만 하겠느냐?
이젠 그만저만하고 끙끙대지 말라는 일이 생겼다. 윤공의 아버지는 날씨가 추워져 움츠리기 시작하는 때부터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아주 몸져 누워버렸다.
윤공의 아버지는 병이 나 누워 있으면서 밥은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술만 마신다. 밥대신 약주를 조금씩 마신다. 술만 마시다가 죽기로 아주 작정 한 사람같다. 그는 아무 술이나 마시지 않는다. 쌀로 만든 술만 좋아한다. 쌀로 빚은 술독에 용수를 박아가지고 용수 안에 고이는 맑은 술만 즐겨 마신다. 동네 사람들은 이 술을 젖내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동동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동주라고 부르는 것은 술에 쌀 삭은 것이 둥둥 뜬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술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은 동동주라고 하면 군침을 삼킨다. 밥을 먹기 전에 이 술을 한잔씩 먹으면 몸에 아주 좋아 보약 먹는 것보다도 났다는 말이 뿌리도 없이 떠다니며 사람을 홀린다.
‘인삼 녹용도 좋지만 술약이 으뜸이지. 마셔야 건강하고 재미보고 오래 산다구.’
사람들은 술속에서 삶을 찾느라고 헐떡거린다.
윤공네 집 옆 행길은 공판하는 날이 되면 벼 가마니가 길 양옆으로 다섯 가마니씩 포개져 보기좋게 나란히 줄지어 쌓인다. 사람들은 공판을 하기 위해 벼 가마니를 지게에 한 가마니도 지고, 두 가마니도 지고, 소 달구지에 실어 오고 하느라 법석댄다.
면 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한삼내에 모인 것같이 시끌시끌한게 마치 돗대기 시장이 선것 같다. 공판이 끝날 때쯤 해가 질려고 너울거릴 때쯤 되면, 술에 취하여 떠드는 사람, 혼자서 욕지거리를 해대는 사람, 남과 시비를 하는 사람이 생겨 동네가 온통 정신을 가누느라 뒤뚱거린다. 한달에 두 번씩은 동네가 피어 오르는 술독처럼 술렁거려서 사람들의 넋을 취하게 만든다.
은부인은 평소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꽥괭이 짓을 한다는거 익히 안다. 술이란 사람을 사람이길 싫어하게 만드는 아주 못된 것이라서 멀쩡한 사람도 술집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눈이 멀게 되다는걸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병석에 누워있는 시아버지를 위해서 술을 담근다.
은부인은 남들로부터
‘주모가 되었데.’
‘윤공의 아내가 술 장사 한대.’
그런 말을 듣게끔 되었다.
은부인은 쌀로 술을 빚어서 동동주는 따로 두고 막걸리는 헐값으로 주막집에 넘겨 주어 왔다.
오늘 뒷집에 살고 있는 자환이 엄마가 찾아왔다.
자환이 엄마는 부엌을 향해
“아줌마 계세요?”
하고는 후다닥 쫒기듯 부엌으로 들어간다.
“아주머니, 조심하셔야 되겠어요.”
자환이 엄마는 은부인을 보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주책을 떨고, 호들갑스레 말하며 마루에 걸터 앉는다.
은부인은 그녀의 호들갑에 놀라고, 말 뜻을 몰라 어리벙벙이 된다.
“동네에서 소문이 쫙 돌았어요. 아주머니가 밀주 장사한다구.”
그녀의 말을 듣는 은부인의 얼굴에서는 벙벙한게 밀려나 버린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대수롭지 않은걸 가지고 그 야단이냐는 투다.
“고마워, 말해 줘서. 내가 술장사 하니까 그런 소리 듣는거지. 동네사람들이 괜한 소리 하는게 아니지.”
“누가 고자질 하면 벌금 물고 챙피도 당할텐데...”
“할 수 없지. 당해야지 어쩌겠어.”
“아주머니는 몇번이나 하셨는데 그런 소문이 나지요?”
“세 번 했어.”
“그런데두 주모 취급을 하다니 인심도 참!”
“양조장을 두고서 술을 해 먹으니 나쁘지. 허지만 할 수 있어야지.
자환이 엄마도 알다시피 병석에 계신 아버님이 밥은 못 잡숫고 술만 찾으시는데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아버님이 소원하시니까. 그리구 양조장 술을 잡숴야지. 잡순다면야 얼마나 좋겠어. 이제 얼마나 더 사신다구. 이젠 술로만 사셔. 어데 많이나 잡숫나 뭐. 갈증이 나시면 겨우 두어모금 삼키시곤 마는걸. 그것두 누우신 채 빨아서 잡숴요.
그러니 내가 내 낯만 세우자고 그냥 있을 수 있어야지. 무슨 소리로 미역을 감더라도 할 수 없고 무슨 벌을 받아도 내가 당연히 받아야지.
남의 흉은 삼년을 가지 못한다니까. 입 아프면 하래도 않겠지. 돌아가시는 날까지 조금씩 해 드릴참이야.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는 우리 상길이 아버지가 지서에 불려가서 혼이 나셨다는구먼.”
자환이 엄마는 지서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는 바싹 다가 앉는다. 그녀의 얼굴은
‘어떻게 한다. 큰 탈이나 없어야 될텐데. 날벼락이 났구나.’
하는게 대번에 쓰여진다.
이동네 사람들은 지서에 불려 가기만 하면 금방 요절이라도 나는 것으로 알고 지서를 몹시 두려워하고 미운 물건 보듯한다.
“상길이 아버지가 지서에 불려가서 반나절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창피도 당하고 하셨나봐. 중거리에 사는 승우 엄마가 이야기 해줘서 어제 알았다구. 상길이 아버지는 글쎄, 그런 망신을 당하구두 나에겐 아무말도 안하셔서 까맣게 몰랐지뭐. 어제 저녁에는 내가 상길이 아버지에게 사과하는 말을 했다구.”
자환이 엄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신기하다는 눈초리로 듣고 싶은 말을 꺼내라고 은부인의 입을 다그쳐 바라본다.
“나 때문에 우세를 당해서 미안하다구 했지.”
“그랬더니 뭐라세요?”
“부모 위한다구 한 짓이지만 상길이 아버지 얼굴 보기가 민망하였었지. 나쁜놈, 어디 두고보자 하시잖아. 아주 몹시 분하신가봐. 내가 괜스레 자는 불을 일궜구나 했지. 술 장사를 내가 해서 그런것 아니겠수?
막걸를 내버렸으면 그런일이 없을건데. 아까워서 누룩값이라도 뽑는다구 그리됐으니 그들이 나쁠게 있어유? 우리가 아버님이 계시니까 그런 수모를 당하는 것이지. 아버님 안 계시면 당하고 싶다구 당하겠수? 이해하시구랴. 당신이 동네에서 말깨나 한다면서 여편네는 밀주장사 한다고 소문이 났으니. 순경들도 체면이 있으니 그런것 아니겠수? 그만 하기 다행이지. 남들이 부러워할 수모라고 이해하세요. 하니까 잠자코 계시더라구.”
“상길이 아버지는 딴 말은 안 들어두 그런말은 여편네 소리라고 밀어부치질 않아서 자기에게 좋은가봐.”
그녀는 은부인의 말을 들으면서 감회가 어리는지 대견해 하는게 얼굴에 괴어오른다.
“아주머니는 참 착하셔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시아버지 시중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다 들으시니 부러워요.”
“별소릴... 시부모가 계시면 효부소릴 들을 이가...”
“저는 성질이 지랄같아서 그렇게 못해요. 상길이 할머니가 젊으신데두 꼭 친시어머니처럼 모시고 내색도 않고 잘 하셔유. 메주왈 고주왈 해서 집안을 벌집 쑤시듯 하는데두 잘 참으시구 잘 해드리니...”
“친 시모님이 따로 있나?”
“아녀유. 내가 보니까 아주머니댁이 겨울이 되면서 조용해졌어요.
할아버지 소리가 울타리를 안 넘어서. 우리 친정 올캐가 하는걸 보면 기가 막혀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올케 좋다는 시누 없다지. 시집간 딸이 친정 아버지한테 잘한다 잘한다 해두 못하는 올케만큼 할 수 있남. 냉수 한그릇을 떠나 드려도 딸이 할 수 있남. 저 살기 바빠서 친정 생각이나 하겠어? 아쉬우면 친정 엄마 불러대고 좋은건 모두 혼자 먹기밖에 더하남. 올케에게 고마워해야지. 못한다 못한다 구박하였던 며느리가 집안을 꾸려나가고 병든 시부모를 봉양하지. 사람들은 그걸 몰라.
나를 내가 보더라두 일년이 아니라 몇 년에 한 번두 친정 부모님 진지 한 번 제대루 해 드린적이 없어요. 그전에 우리 상길이가 병이 나서 대전 병원에 입원 했을 때 보니까, 어떤 할머니가 입원했었는데 병간호하는 사십여세 된 딸은 와서 쿨쿨 잠이나 자고 가는데 다음날에 온 젊은 며느리는 밤을 꼬박 새우고 가더라구. 간호원들이 흉을 보더라구.
그때 많은 것을 배웠지.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딸은 내딸이라도 남이요, 며느리는 남이라도 내 자식을 낳는게 아니겠어? 그런줄도 모르구 고부간에 괜히 울퉁불퉁 내민다구. 잘되라구 하겠지만 이 다음에 친정에 가면 올케에게 치사나 하라구.“
“그렇구먼유, 그러시니까 할머니가 우리 상길어메 같은 사람 없지 하시지유.”
“별소릴 다 하셨나보군. 상길아! 얘야!”
은부인은 부엌에서 소두방을 후다닥 밀치고 또 밀치는 소리에 아들인가 짐작하고 부른다.
“왜?”
상길이는 부엌을 나가려다 짜증섞인 소리로 마지못해 질질 끌리듯 덜미잡힌 채 대답한다.
“너 배가 출출한 모양이구나. 부엌방 솥에 고구마 찐 것 먹고 할아버지 방에 가서 할아버지 시중 들어 드려라.”
“엄마 어디 가?”
“그래 새터에 갔다 올란다. 집도 보고 할아버지가 부르시면 빨리 깡통을 가지고 변 보시게 대 드려라.”
“알았어.”
상길이는 마지못한 얼굴로 대답을 심드렁하게 한다.
“어데 나가면 안 된다.”
“알았어.”
그는 아주 볼먹은 소리로 대답을 한다.
은부인은 자환이 엄마와 같이 삽짝 밖으로 나간다.
상길이는 한삼내 국민학교 3학년이다.
그는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아 먹던 고구마 반쪽을 마저 먹는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아랫목에는 두꺼운 요가 깔려있다. 요 위에는 낡은 누런 담요가 기저귀 포대기처럼 펴져있다. 담요 위에는 상길이 할아버지가 옆으로 누워있다. 그는 담요를 덮고 이불을 덮었다. 그의 머리맡에는 화로가 놓여졌다. 화로 위에는 조그만 주전자가 올려져 있다. 화로에는 불이 삭아서 재가 수북하게 조그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았다. 불손은 손이 닿기 쉽게 손잡이가 아랫목을 향해서 놓여있다.
방안은 똥냄새, 술냄새, 늙은이 냄새, 담배냄새, 지린내가 범벅이 되어 상길이에게 달려든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할퀸다. 사는게 이런거다. 너도 늙으면, 너도 병들면 하며 다짐을 하고 강제로 겁을 먹인다.
상길이는 찡그린 얼굴로 방에 들어가 화로에 바싹 다가 앉고는 화로를 사타구니에 끼고 물그러미 내려다 본다. 눈은 감고 입은 힘없이 축 처져 이빨이 썰렁하게 불거진걸 바라보며 찡그린 얼굴이 펴지더니 근심스런 얼굴이 된다.
‘할아버지가 아프니 어떡하지. 할아버지는 천자책을 읽지 않는다고 종아리를 때리고 했지만 아버지가 혼내고 때리려고 하면 아버지를 혼내고 내편을 들었는데, 저렇게 밥도 못 먹고 아프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건가? 할아버지가 저러고 있으면 내편 들어줄 사람도 없구. 할아버지는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데...’
상길이는 화롯불을 헤집고는 얼굴을 화로속으로 들어가라고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불을 쪼인다.
“상길이 왔냐? 아이들과 놀지않구.”
그는 졸다가 깼다. 그는 힘없는 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한다. 그러면서도 힘잃은 눈은 손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듯 한다.
그는 어데 갈 때마다 손자를 꼭꼭 데리고 다녔었다. 술을 먹을 때는 손자에게 술을 조금씩 먹이고 먹으며 즐거워했다. 6.25 난리 때는 손자 하나만 피난시키면 온 가족이 피난하는양 손자만 달랑 데리고 애지중지하며 난리를 잘도 견디어냈었다.
“상길아!”
“예.”
“화로에다 주전자 올려노온.”
“올려 있어요.”
“그러냐?”
“이왕이면 큰주전자를 올려놓지 쪼그만걸 올려놨네.”
상길이는 조그만한게 장난스러운지 어루만져본다.
“괜찮다. 할아버지는 많이 못 먹는다.”
상길이는 불손으로 재를 뒤적이며 알불을 나오게 한다.
“불을 까면 못 쓴다.”
“그래야 빨리 데워지지.”
“조금만 따뜻해지면 된다.”
“지금도 미지근한데.”
“따끈따끈 해야지. 불을 뒤집으면 머리가 아픈거란다.”
상길이는 할아버지 말대로 불을 다독거려 놓고는 주전자를 화로 가운데 올려놓는다. 그리곤 주전자를 골똘하게 내려다 본다.
상길이 할아버지는 양쪽 다리로 화로를 끼고 앉아 있는 손자를 힘없이 흘근해진 눈으로 이윽히 쳐다본다.
‘저녀석 언제나 철이 든담. 손자라고는 저 녀석 하나뿐이니. 그래두 저 녀석은 내 앞에서 무럭무럭 자라니...
손자 구경도 못하고 죽을 뻔했지. 손자복이 그렇게도 없었나. 잃지만 않았어두 간당거리지는 않는데. 하나라 맘이 놓여야지...
자손이 여럿이라야 볼게 있는건데, 윤수한테서 손자를 하나 더 보고 죽으려 했더니만 그 녀석은 계속 딸만 낳아제끼니. 이제는 영 글렀지.
내가 죽을 병이 들었으니 틀렸어. 아들은 두놈인데 손자는 하나뿐이니 이러다가 집구석 문 닫는건 아닌지. 내가 바라는건 저희들이 아들을 여럿 낳아 기르는 것을 보는 것이었는데...’
그는 손자를 여러명 두고 죽으면 손자를 통해서 다시 움돋는 참나무 등걸이라도 되는양 못내 한스런것들이 그의 얼굴에 배어 나왔다.
그리고 조금은 요에 떨어져 있다.
“상길아!”
“예.”
“공부 열심히 하거라.”
“....................”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
“...................”
“상길아!”
“예.”
“술이 따뜻해졌나 보거라.”
“따뜻하네.”
“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넣어 보거라.”
상길이는 오른손 소매를 걷어올린다. 그리고 오른손을 주전자 속으로 넣어본다.
“따뜻하네요.”
“따끈따끈하냐?”
“응.”
“이리 다오.”
상길이는 주전자를 들어 그의 할아버지 얼굴 앞으로 내려 놓는다.
상길이 할아버지는 주전자를 잡고서 입으로 가져가려 한다. 주전자를 잡은 그의 손은 후들거리느라 입으로 냉큼 가져가지를 못한다.
상길이는 주전자를 잡는다. 그러자 그는 가만히 있으라고 왼손을 흔든다. 그리고는 주전자를 놓고 주전자 뚜껑을 벗긴다. 그리고 손가락을 넣었다 꺼낸다. 손가락은 미역을 감았다고 번질거린다. 뜨거운걸 확인한 그는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는 쪽쪽 빨아서 술을 마신다.
술을 두어모금 마시고는 입을 주전자에서 뗀다. 그리고 손자를 쳐다본다.
“너도 좀 먹을래?”
“안 먹어요.”
“깡통 가져온.”
상길이는 깡통을 찾느라고 방안을 두리번거린다.
“내 뒤에 있다. 어서 대거라.”
상길이는 급한 소리에 이불을 훌렁 걷어치고 깡통을 할아버지 엉덩이에 바싹 댄다. 깡통이 닿기가 무섭게 누런 물이 터져 좔좔거린다.
상길이는 코를 찡그리고 할아버지의 엉덩이를 내려다본다.
상길이 할아버지는 윗도리만 내복을 입고 아랫도리는 어린아이 마냥 홀랑 벗었다. 똥물이 튀겨 상길이의 손등에 누렇게 여기저기 방울졌다. 엉덩이에도 튀기고 담요에도 튀겼다. 삐쩍 말라 붙은 엉덩이와 허벅다리는 나무 등걸을 심술사납게 뽑아 제끼고 또 껍질을 홀랑 벗겨 뙤약볕에 사정없이 비비꼬이게 말려 놓은 것 같다.
쭈글거린 거무티티한 살갗은 가뭄을 이기지 못해 갈라터진 논바닥처럼 하얗게 금이 가서 깊은 골을 이루며 이리가고 저리로 좇아간다.
들고 일어난 살갗은 모로 서고 바로 서고 두꺼비집을 짓고 그나마 손놓친 것은 떨어져 뒹군다. 상길이는 할아버지 다리를 좇아 아래 위로 헤맨다.
“그만 됐다.”
상길이는 깡통을 떼어내고 마른 걸레로 엉덩이를 닦아준다. 그리고 이불을 덮는다.
깡통을 들고 밖으로 나와 잿간으로 가 잿무더기 위에 깡통을 쏟아버린다. 그리고 깡통을 들고 구정물통으로 가서 구정물로 깡통을 헹군다. 그리고 우물로 가서 두레박으로 샘물을 떠서 손도 씻고 깡통도 씻는다. 마루 걸레로 깡통 겉을 닦는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방구석에 깡통을 세워 놓는다.
상길이 할아버지는 잠을 자는지 눈을 감고 있다.
상길이는 다시 화로를 끼고 앉아서 저희 할아버지를 흘끔 보고는 화로에 얼굴을 들이밀고 불을 쪼인다.
상길이 할머니는 상길이 동생 순이를 데리고 사랑방으로 들어온다.
“상길이가 와 있었구나.”
그녀는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조금은 어색하게 말한다.
“어데 갔다 왔어?”
상길이는 할머니를 올려다 보며 퉁명스레 묻는다.
“순이랑 건너 마을 가서 놀다가 왔다. 놀다 오면 안되냐?”
라부인은 언성을 높여서 나무라듯 영감도 들으라는듯 말한다.
“집에서 놀지.”
상길이는 볼멘 소리로 비위를 건드린다. 할머니가 놀러 다니니까 할아버지 시중은 누가 드느냐? 할아버지를 혼자 두면 어떻게 하자는거냐? 할머니가 없으니까 내가 대신 할아버지 시중을 든다는 말이 포개져 나왔다.
“괜히 놀러 다니고 싶으니까...”
“내가 놀러 다니고 싶어서 다니냐? 저누무 자식, 역성만 들구 오냐오냐 길러서 어린게 버르장머리가 하나도 없다구. 어린게 콩콩 덤비구.”
“내가 언제 콩콩 덤볐어?”
“이눔의 자식, 어데서 쫑알거려!”
라부인은 눈을 고추 세우고 언성을 높여 때릴 기세다. 대번 험상궂은 얼굴이 되느라고 일그러져 씩씩댄다.
“에헴!”
상길이 할아버지는 크게 기침을 하고는 눈을 뜬다.
라부인은 영감님의 기침소리에 찔끔한다.
“저런 저런, 쯧쯧, 어린아이를 데리고 입씨름이나 하구 앉았으니 언제나 철이 든담.”
그는 아내에게 핀잔할 일이 생겨서 없던 기운이 솟는다고 하듯 입은 건강하다고 찔끔거리게 한다. 라부인은 손자에게 눈을 흘긴다.
상길이는 할머니의 동자없는 뿌연한 시선에 쫓겨나 떠밀려서 방문을 밀치고 나간다. 그는 고무신을 신기가 바쁘게 삽짝으로 뛰어간다.
“상길아!”
은부인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다가 삽짝으로 뛰어나가는 아들을 불러 세운다. 상길이는 소리따라 고개를 돌리고는 반색을 하며 부엌을 바라본다.
“엄니, 언제 왔어?”
그는 부엌으로 다가간다.
“할머니한테 누가 그런다데?”
“내가 뭐 어쨌는데?”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면 가만히 듣기만 하는거란다. 누가 너처럼 할머니한테 따지고 덤빈다데? 어데서 그런 못된 버릇 배웠냐?”
“나는 그렇게 못해!”
“네가 엄마 말 안들으면 남들이 못된 자식 두었다구 엄마와 아버지가 욕을 먹는단다.”
“어떤 놈이 욕을 해? 내가 아가리를 찢어 놓을테야!”
“그래두, 저 놈이. 엄마말 안 들을래?”
그녀는 말을 하며 부지깽이를 찾아들고 부엌문 앞으로 쫓아간다.
상길이는 삽짝 밖으로 냅다 도망을 친다.
‘무슨 아이가 저럴까? 저래가지고 커서 무엇에 쓴담. 어린게 말을 함부로 하고...
누굴 닮아서 저럴까? 저의 아버지나 나나 말을 함부로 안하는데 그 새부터 에미 말이라면 듣지 않고 저의 아버지말이나 듣는 체를 하니 저 하나라고 오냐오냐 키웠더니 조동이가 아주 되버렸으니 어쩐다?
자식은 거죽만 낳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내 발등에 떨어진 것은 아닌가? 그랬다가는 큰 일이지. 어른 앞이라고 내버려 놔둬서 그렇지. 종아리를 때리지 않으면 그건 자식을 사랑하는게 아니라던데.
조금 더 크면 닦달을 해서 버릇을 들여야지.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사람 대접을 받게 만들어야지.’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한삼내 북쪽에는 동네와 조금 떨어진 곳에 국민학교가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뛰논다. 오늘은 겨울 날씨 치고는 매섭게 춥지를 않다. 제기 차는 아이들도 있고, 술래잡기 하는 아이들도 있고, 공치기, 사방치기 하는 아이들도 있다. 운동장은 꽃밭 속의 벌집같이 아이들 소리따라 앵앵거린다.
술래잡기를 하고 놀던 상길이가 갑자기 땅에 픽 쓰러진다. 그는 땅에서 일어나려 한쪽무릎을 세우다가는 도로 땅에 엎어진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쥐고 잔뜩 꼬부라져서 신음을 한다. 술래잡기 하던 아이들이 상길이 곁으로 모여든다. 근심스레 바라본다. 닭 싸움을 하며 놀던 아이들도 뛰어와 빙 둘러 서서 근심에 빠진다. 제기를 차고 있던 6학년 일동이가 뛰어오며 아이들에게 소리쳐 묻는다.
“누가 다쳤냐?”
아이들은 아무도 대답을 안한다. 일동이는 아이들을 헤집고 상길이 곁으로 다가간다.
“너 어데 다쳤냐?”
일동이는 말을 하며 상길이의 팔꿈치 사이로 얼굴을 들여다보고 이마를 짚어본다.
“집에 가야지. 집에 가자.”
일동이는 그를 일으켜 세우려다가 멈춘다. 상길이는 머리를 감싼 채 웅크렸던 허리를 조금 펴면서 움직인다.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워서.”
말을 떠듬거리는 상길이의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이 노래졌다.
“집에 가자. 내가 업고 갈께.”
일동이는 손을 잡고 일으켜서 업으려 든다.
“가만, 가만 있어봐. 조금 더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정말 괜찮을 것 같냐?”
상길이는 고개를 조금 끄덕여 보인다. 얼마동안 뜸을 들인 상길이는 어설프게 일어선다. 만천이는 상길이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고 등을 쓰다듬는다. 상길이는 머리를 감싼 채 흐트러진 걸음으로 금방 주저앉을 것처럼 보이면서 학교 변소쪽으로 띄엄띄엄 걷는다.
만천이는 그를 지켜보다가 좇아가 상길이의 한쪽 팔을 붙잡고 따라간다. 만천이는 부축을 해 주고 변소 밖으로 나와 서성거린다.
아이들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상길이를 지켜본다. 그리고 안심한 그들은 마음이 놓이는지 다시 뛰논다. 상길이는 변소에 그냥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이제 좀 괜찮냐?”
만천이는 변소 안에다 대고 소리쳐 묻는다.
“응.”
잠시후 상길이가 변소에서 터벅대며 걸어 나온다. 만천이는 다시 그의 손을 잡아 주려 한다.
“이제는 많이 나았어. 나 혼자라도 집에 갈 수 있어.”
“너 정말 혼자 갈 수 있겠냐?”
“응.”
만천이는 맘이 놓이지 않아 교문 밖까지 바래다 주고는 상길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본다.
상길이는 저의 집 삽짝을 들어선다. 그의 걸음은 더듬거리고 눈은 퀭해져 있다. 그는 어른들의 이상스런 행동에 어리둥절한다.
사랑방 앞에는 승근이 아버지가 서 있다. 그의 오른손에는 흰 저고리가 들려있다. 그는 떠듬거리듯 천천히 무어라고 지껄인다.
“태-근-식-보-오”
하고는 오른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가는 내린다. 그렇게 세 번을 외친다. 그리고 저고리를 사랑방 지붕 위로 훌쩍 던져버린다. 흰 저고리는 지붕 위에 올려졌다가는 이내 굴러져 차양 위에 멈춘다.
‘별일이네! 할아버지 이름을 부르고 흰저고리를 지붕에 던지고 어머니는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이상하지? 할아버지가 어떻게 됐나?’
은부인은 안방 마루에서 뜰방으로 내려선다. 상길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일러준다.
승이 엄마는 삽짝 옆에 조그만 상을 갖다 놓는다. 상 위에는 조그만 접시가 세개 놓였고 접시 위에는 밥이 솝복하게 주먹밥처럼 담겼다.
밥알이 허물어져 상으로 흘러내렸다. 접시 밥도 담을 탓이라는 말을 생각게 한다. 접시 앞에는 백원짜리 지폐 두장이 조그만 접시에 눌러져 있다. 밥상 아래에 짚신을 한 켤레 갖다 놓는다.
이 밥상은 사자 밥이라고 한다. 저승에서 사람을 잡으러 온 사자를 대접하느라 차려 놓았다. 사람을 잡아가는 세 명의 사자가 저승까지 데리고 갈 때 너무 재촉하지 말고, 너무 성화대지 말고, 너무 때리지 말고, 질질 끌고 가지 말고, 천천히 쉬어가며 인정을 베풀어 달라고, 사정을 봐 달라고 사자에게 대접하는 것이라 한다.
저승 사자가 사람의 영혼을 잡아가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 죽는 것이다. 그렇게 이동네 사람들은 믿어 내려왔다. 저승 사자가 사람을 잡아갈 때는 사람의 목을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가지고 개처럼 질질 끌고 간다고 한다. 마치 시장에서 젖송아지 사올 때 에미 따라온 송아지를 강제로 떼어서 끌어오듯 앞에서 고삐를 잡고 끌고 뒤에서 밀고 또 때리고 저승으로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을 인정사정 없이 가시가 숭설숭설한 쇠 몽둥이로 갈겨대는 통에 피투성이로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하고 죽어지지 않아 죽을 수가 없어 끌려간다고 그렇게들 믿는다.
저승까지 가려면 차도 타고 음식도 사먹고 배도 타야 가는 곳으로 믿어 사람이 운명하기 전에 돈이 든 지갑을 손에 꼬옥 쥐어준다. 저승 사자에게 갑자기 붙잡혀 끌려가기 때문에 신도 못 신고 끌려갈 때 대문 앞에 차려놓은 사자밥을 사자가 먹는 동안 죽은 사람이 짚신을 재치있게 신는다고 생각한다.
살았을 때 착하게 살아온 사람은 저승 사자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고 공손하게 모시고 간다고 믿는다.
저녁 때가 되었다. 동네 아낙네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서 상길네 집으로 들어간다. 물동이 위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오른다.
그녀들은 부엌으로 다가가 물동이를 내려 놓는다. 동이 안에는 뜨거운 팥죽이 하나 가득히 담겨 있다. 한삼네 사람들은 상을 당하는 집에 계를 하듯 팥죽을 끓여다가 돕는게 풍습처럼 되어 왔다. 팥죽은 귀신을 몰아내어 산 사람을 보호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으며 초상집에 있는 사람, 오는 사람에게 권하고 먹인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흰 눈발이 날리며 날씨가 몹시 쌀쌀해진다.
바람도 코를 에이려 덤빈다. 마당 가운데에 화톳불(통나무를 쌓아놓고 태우는것)을 피워 놓았다. 통나무를 쌓아서 아주 커다랗게 불을 놓아 집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뻘건것이 팥죽을 너무 많이 먹은것이 아닌가 하도록 물들어 있다. 문상 온 사람들이 화톳불 앞에 삥 둘러서서 추위를 이기느라 빨간 얼굴을 비비며 불을 쪼인다.
집안 기둥마다 돌아가며 등을 걸어 놓았다. 동네에 있는 등을 모두 갖다 걸어 놓은 것 같다. 화톳불 옆으로 큰 멍석을 두 닢 깔아 놓았다.
멍석 위에서는 화투판이 벌어졌다. 안방 마루에서도 화투놀이를 한다.
문상객들은 팥죽도 먹고 막걸리를 한사발씩 벌떡벌떡 마시고 두사발 세사발도 마신다. 경사집에서 먹는 것처럼 게걸스레 먹고 지붕이 들썩거리고 방구들이 떨게 신명나게 떠든다. 죽음을 몰아내는 일이나 되는 것처럼 열심히 떠든다.
사랑방 방문은 닫혀 있다. 사랑방 마루 위에는 가마니를 뜯어서 자리를 깔듯이 깔아 놓았다. 마루 왼쪽 끝에는 상길이 아버지와 상길이 삼촌이 나란히 벽을 등지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들 무릎 앞에는 둥근 짚단이 하나씩 놓였다. 아주 큰 베개 같다. 그들은 짚단에 손을 얹고 곡을 한다. 굵은 베옷을 입었다. 건도 썼다. 짚과 삼으로 동아줄을 꼬아서 만든 허리띠를 두르고 머리에도 둘렀다.
문상객이 없으면 앉아서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한다.
문상객이 뜰방에 올라서면 일어나서 대나무 지팡이을 짚고 허리를 구부리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한다.
문상을 온 사람은 마루에 올라서서 방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어이, 어이.”
하길 서너번 하고는 방문에다 대고 절을 두 번 한다. 그리고 돌아 서서 상주와 맞절을 한다.
문상객은
“상사 말씀...”
말 끝을 흐린다.
상주는 작은 소리로
“망극합니다.”
짧게 대답한다.
어떤 사람은
“천붕지퉁을 당하신데 위로 말씀 없습니다.”
유식하게 문자를 쓰며 또박또박 조문한다. 상주는 한결 같다.
“망극합니다.”
할뿐이다.
상주와 친한 사람들 가운데 장난을 즐기는 사람들은 상주를 놀리고 골려준다. 그들은 문상을 하고는 다시 문상 온 사람처럼 겉옷을 바꿔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문상을 한다.
“너네 애비 죽어서 시원하지?”
아주 작은 소리로 얼버무린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난다.
“이놈이 시원하다네.”
뜰에 서 있던 친구가 반주를 한다.
“그 놈은 원래 그래.”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상주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잠자코 앉았다
“야, 이사람아 상주를 골리면 쓰나? 손님 오셨어. 어서 비켜.”
그들은 물러나서 싱글거린다. 상주와 문상객이 인사를 한다. 물러났던 그들은 잽싸게 달려들어 문상객의 엉덩이를 밀어부친다. 상주와 문상객은 ‘쿵’ 하는 소리가 나게 박치기를 해댄다.
“예끼, 순 망할놈들 같으니...”
문상객은 욕을 하며 이마를 문지르며 뜰방으로 내려간다.
상주는 ‘아야’ 소리도 못하고 “어허” 하고는 그만이다.
아픈 곳을 쓰다듬지도 못한다. 뒤이어 또 문상을 한다.
“좀 더 사셨으면...”
“제가 복이 없어서...”
“저놈 거짓말 하는 것 보게.”
“고려장할 놈이 복이 없다네...”
“알고보니 고얀놈이구먼, 아이고는 왜 찾누.”
“남이 하니께 하는거지.”
“야, 이놈들아. 고만 까불구 술이나 먹어라.”
멍석에서 화투를 치던 성근이 아버지가 집안이 들썩하게 소리친다.
이 동네 사람들은 부모가 칠십이 넘게 살았고 아들이 장성하여 손자까지 보았고 의식주가 그런대로 남부럽지 않게 살 때 부모의 상을 당하면 호상이라 한다. 호상에는 으레 장난질을 치므로 축하 아닌 위로를 한다. 문상객이 문상을 하고 내려오면 태방이와 성근이는 안내를 하여 멍석 위에 앉히고 막걸리 한 주전자, 생명태국, 두부 지진 것을 조그만 상에 담아 가지고 대접을 한다.
“조카 오냐? 어서 온.”
먼저 와서 술을 먹는 문상객이 친구를 보자 반기는 말을 한다.
“예끼, 순 고얀놈. 너도 저놈처럼 ‘아이고 대고’ 할께 아니라 이 애비 속좀 썩히지나 말아라.”
“언놈아, 어서 갖다 온.”
문상객은 밤 가는줄 모르고 찾아온다.
상갓집은 웃음소리, 곡 하는 소리, 흥이 나서 떠드는 소리가 범벅이 되어 온 동네를 똥방게 걸음을 시킨다.
동네 아낙네들과 꼬마들이 길가에 나와 서서 상여 구경을 한다. 상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만사를 들고 앞서가고, 다음에 혼백 든 사람이 따라가고 상여가 따라간다. 상여 뒤에는 굴건제복을 한 상주 둘이 따라가고 테만 두른 상길이가 따라간다. 상주들 뒤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길을 에우며 따라간다.
“아이 추워! 날씨가 갑자기 춥지?”
“고추 같은 날씨야.”
“상길이 할아버지가 꽤나 독하신가봐. 그러길래 날씨가 매웁지.”
“별소릴 다 하네.”
“망인이 독하면 그렇데.”
“소한 추위라구.”
“하필 소한 추위를 이때 하누.”
“길택이 엄마, 저것 좀 봐! 상여 앞에 웬 깃발이 저렇게나 많어?”
창섭이 엄마는 의아스러워 혼잣말처럼 지껄인다.
“저건 깃발이 아니고 만사라는 거여.”
“나는 입때껏 깃발이 두 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상길이 할아버지는 깃발이 많기도 하구먼.”
“그거야 뻔한거 아녀? 조문하는 글이지 뭐.”
“흥! 뭘 알아야 면장을 하지.”
“나도 나중에 많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네.”
“죽은 다음에 그게 무슨 소용이람.”
“그럴라면 아들을 잘 둬야지.”
“누가 잘 두기 싫어 안두나?”
“잘 가르치면 된다구.”
“자식 잘 둘려면 조상들이 덕을 많이 쌓아야 되는거여.”
“그렇겠지. 지가 못하는 게 그 농사여.”
상길이 할아버지 묘자리를 파는 사람들은 손을 불어가며 곡괭이로 꽁꽁 얼어붙은 땅을 찍어댄다. 불을 피워놓고 불을 쪼이며 교대로 땅을 찍는다.
“이것 보게나. 이쪽으로 파래두 그러네.”
관이 들어갈 자리를 파는걸 지켜보는 늙수그레한 이가 참견한다.
“허허, 이사람, 이쪽으로 파라는데.”
땅을 파는 젊은이들은 무슨 소리를 하던 대답도 않고 지관이 표시해준대로 곡괭이로 땅만 파헤친다.
묘자리 파고 있는 아래 한쪽으로 상여가 놓여 있다. 문상을 집에서 못한 사람들은 산으로 따라와서 문상을 한다. 문상하는 그들은 상여를 향해 절을 두 번씩 한다. 그리고 상주와 인사를 나눈다.
상여가 놓인 곳에서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골짜기 평평한 곳에 솥을 걸어놓고 국을 끓인다. 술독도 있고 그릇도 쌓였고 상도 놓였다.
멍석 두 잎을 깔아놓고 문상객을 대접하느라고 법석댄다.
“저...저, 돌 굴러요!”
“돌 굴러!”
졸지에 찢어지는 외마디 소리가 골짝을 찢는다. 유택을 만드는 곳에서 호박덩어리만한 돌이 미끄러져 사납게 튄다. 잡아찢는 소리에 술을 먹던 사람들, 국을 끓이던 사람들은 도망치느라 허둥댄다.
“저런, 저런!”
사람들은 구르는 돌을 바라보며 함성을 지른다.
돌은 단지와 그릇이 있는 가운데로 달려든다. 술 단지에서 ‘탁’ 소리가 난다. 사기 그릇이 사방으로 튀기며 부숴진다. 술이 허옇게 멍석을 넓게 갈라 놓는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그만하기 다행이야!”
“사람 다쳤으면 어쩔뻔 했나? 다행이여.”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느라 한마디씩 지껄인다.
윤공의 아버지가 침식을 하던 사랑방에는 제청을 만드느라 분주하게 열심이다. 흰 광목 천으로 웃목 오른쪽 벽에서부터 왼쪽으로 2폭정도 되게 간격을 두고 방바닥에서 천정까지 막아 놓았다.
그리고 조그만 제삿상을 들여놓았다. 제삿상 다리를 이어서 껑충하게 만들어 책상 높이 되게 만들어 놓았다.
제삿상 뒤 벽에는 빨간 만사가 떨떠름하게 천정에서부터 방바닥까지 길게 늘여졌다. 은색이 나는 걸로 ‘통훈대부’ 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다. 빨간 망사 앞 상 위에는 장난감 같은 의자를 벽에 기대어 놓았다.
의자엔 네모진 조그만 상자, 흰 두꺼운 종이로 만든 상자가 뚜껑을 쓴 채 올라 있다.
제삿상 좌 우벽에는 조문하는 글을 쓴 비단천을 포개어 걸어 놓았다.
제삿상 앞에는 흰 광목으로 천정에서 방바닥까지 가로 막아 놓았다.
광목천을 두 쪽으로 만들어 양 쪽으로 갈라지게 문처럼 만들어 놓았다.
은부인은 저녁에 제청에 다리 없는 상으로 밥상을 차려서 갖다 놓는다. 그리고 의자를 덮은 흰 천을 걷어올리고 종이 상자의 뚜껑을 조금 벗겨서 놓는다. 뾰족이 보이는 삼베로 만든 지갑 같은 게 묶여 있는 것처럼 생겨 가지고 그녀를 떨떠름하게 만든다.
그녀는 제청 문을 닫고 부엌으로 나와서 놋 대접에다 냉수를 떠가지고 들어가 국그릇을 내려놓고 물 대접을 국을 놓았던 자리에 놓는다.
그리고 수저를 들어 밥 그릇 가운데서 밥을 떠서 물그릇에 밥을 만다.
그러기를 세 번 한다. 그리고 벗겨 놓았던 혼백 뚜껑(종이뚜껑)을 덮고 흰천을 의자에 다시 덮고 상을 내려 방바닥에 놓는다.
그리고 제청 문을 닫아 끈을 매고는 밥상을 내간다.
오늘은 상길이 할아버지가 죽어 땅에 묻힌지 3일이 되는 날이다.
집안 식구 모두가 윤공의 아버지 무덤을 찾아간다. 그들은 무덤을 밟기도 하고 돌멩이를 주워내고 무덤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 가지고온 음식을 무덤 앞에 놓고 두 번씩 절을 한다.
사모제를 마친 그들은 무덤 앞에 둘러 서서 주위를 살펴본다. 먼산도 바라본다.
“아버지가 생전에 유택을 정하신 곳이라 그런지 아늑한 게 좋은것 같구나.”
윤공은 동생 윤수를 향해 입을 연다.
“아버님이 원하신 곳이니 어련하시겠어요.”
“자리야 어떻든 아버님이 생전에 원하시던 자리에 모셨으니 여한은 없으시겠지. 아버님이 복이 있으신 분이신지 동네 뒷산이라 못 얻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동네 사람들이 승낙해 주어 고맙더구나.”
“형님이 애 많이 쓰셨어요.”
윤공 형제는 묘 자리를 둘러보며 아버지의 유지를 이루어 드리게 됨을 고마워한다.
식구들은 음복을 하기 위해 무덤 앞에 모여 쪼그리고 앉는다.
“형님, 잔 받으세요.”
윤수는 윤공에게 술잔을 건네준다. 그리고 술을 술잔 가득히 따른다.
윤공은 동생이 주는 술잔을 받아 들고 산소 주위를 다시 살핀다.
“형님, 잔 비우세요.”
윤공은 동생의 권하는 소리따라 술을 마신다. 그리고 윤수에게 잔을 건네준다. 이어 술을 따라준다. 윤수는 술을 마시고는 잔을 다시 형에게 건네준다. 그리고는 상길이를 시켜 술을 따르게 한다. 상길이는 삼촌의 잔에도 술을 따른다.
“집안이 모두 평안하면 되는것 아니겠냐?”
“그러믄요, 집안이 편안한 게 첫째지요.”
윤공은 아버지의 유택이 그런대로 쓸만한 곳이라고, 좋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거라고 좋게만 여기려 든다.
은부인은 시아버지의 산소를 두루 살펴보고는 유택이 별로 좋게 생각이 안된다고 탐탁히 여길 수 없다는 불만이 얼굴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좀더 당겨서 올려 썼으면 좋을건데...”
은부인은 혼잣말처럼 말한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남편에게 가르쳐 줄 기회를 찾느라 작게 더듬거린다.
“뭣을 안다고 그러냐? 주제 넘게스리.”
윤공은 그의 아내가 중얼거리듯 하는 말을 못 들은 체 해도 되겠지만 핀잔할 건덕지를 찾았다는듯 멸시하는 눈으로 풀쐐기처럼 쏜다.
“괭이자루 길이만큼 올려 썼으면 잠시 쉬어 갈 곳은 되지만...”
은부인은 남편이 핀잔을 하자 용기를 얻었다고 불에 기름 끼얹은듯 더듬지도 않고 또박또박 자기의 견해를 내세운다.
“고만두지 못 하니?”
윤공은 언성을 높여 아내의 말을 막는다.
은부인은 이왕 내친걸음을 걷는다. 대나무 지팡이로 가리키며 이쪽은 어떻고 저쪽은 어떻다고 설명을 한다. 윤공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아내의 설명을 듣느라 송충이가 얼굴에 달라붙은 꼴이 된다.
“그게 뭣 하는 작대기냐?”
윤공은 아내가 거침없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아는 체를 하자 자존심이 몹시 상하여 화를 버럭내고 언성을 높여 꾸짖는다. 산까지도 덩달아 꾸짖는다.
은부인은 남편의 호통소리에 작대기를 슬그머니 내린다.
“형님, 고만 앉으세요.”
윤수의 아내는 은부인의 치맛자락을 잡아 당긴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시아주버니의 성난 얼굴을 훔쳐보며 앉으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오금저린 소리로 말린다.
은부인은 마지못해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는다.
윤공은 아내를 잡드리게 흘기고는 산등성이로 올라가 산의 지세를 살핀다.
은부인은 동서에게 산소의 위치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그렇다면 내년에나 후년에 산소를 올려쓰면 되겠네요.”
“그렇게 했다가는 집안에 큰 일이 난다고 내려오는 말이 있으니까 걱정이지. 이장했다가 다시 올려쓰면 된다지만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자네에게 다시 말하지만 이 곳은 잠시 쉬어 갈 자리도 못되는 곳이라네. 이런 곳에 산소를 쓰고서 뭣을 볼 것이 있다고 좋아하는건지.
아버님이 생전에 내가 묻힐 곳 치표를 해 뒀다고 하시기에 쓸만한 자리가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유택자리가 될 수가 없는 곳이구먼.
웬만한 자리라면 내가 말을 않겠어. 우리 두 집을 위해서 하는 소리지.
그냥 지켜보기가 딱해서 하는 소리지...”
산등성이에서 내려온 윤공은 내려가자고 하고는 앞서서 성큼성큼 내려간다. 주섬주섬 그릇을 챙긴 은부인과 윤수 아내도 남편의 뒤를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상길이는 그릇 싼 보자기를 들고 뒤에 처져 따라 걷는다. 그는 입을 쩍 벌리고 사방으로 찢어져 알맹이를 쏟아 버린 밤송이를 툭 차서 길 밖으로 내동댕이 쳐버린다. 그리고 을씨년스런 하늘을 보고 앙상한 밤나무를 보곤 고개를 돌린다. 산골 끝에 묻힌 할아버지의 산소를 불만스레 흘긴다.
“아버지는...괜히...”
중얼거리는게 밀치고 당기느라 볼이 메었다.
“여보게나, 공도 덕도 적으면서 명당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지.
조금은 기대를 했더니. 허사가 됐구먼. 아버님이 인정은 많으신데 성미가 불 같으셔서...”
윤수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님은 그게 흠이셨어요.”
“이런 소리도 우리 자손이 잘 되자구 하는거지. 덕을 쌓아야 끝이 여문다는 말이 빈말이 아녀.”
“여부가 있나요.”
해가 두 번 바뀐 늦은 봄 어느날 저녁 때였다.
“상길이 누나 오네유. 누구랑 같이 오네유.”
동네 꼬마들이 상길네 집 삽짝을 뛰어 들어오며 외친다.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은부인은 딸이 온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음을 느끼며 웬지 모르게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딸을 마중하러 삽짝 밖으로 나간다.
열이는 커다란 남학생과 같이 오고 있다. 열이의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럽고 아주 힘들어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오느냐?”
은부인은 딸을 가까이 희뿌연한 눈으로 살피며 묻는다. 열이는 피곤하여 아주 지친 모습을 하고 걸어올 뿐 아무 대답을 않는다. 그녀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은부인을 흘끗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쳐 삽짝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얼굴은 모양만 사람 같다. 기쁨도 슬픔도 담길 곳이 부숴져 버린지 오래인 것 같이 보인다.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랫목 벽을 기대고 앉는다. 두손은 양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눈은 꼬옥 감았다. 입술은 앞으로 밀려 나왔다. 턱이 뾰쪽하게 날이 섰다. 몸도 따라 홀쭉하고 얼굴은 노리끼리하게 물이 배어 나왔다.
딸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온 은부인은 두손으로 딸의 두손을 꼬옥 잡는다.
“이것아, 어데가 아프냐?”
은부인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울먹거리며 묻는다.
열이는 잡힌 손을 홱 뿌리친다.
“아이구! 이것아. 이게 웬일이냐? 어미도 몰라? 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속시원히 말해봐라.”
은부인은 목이 메어 묻는다.
열이는 어머니의 안타까워하는 말도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미동도 않는다. 그녀는 눈도 꼭 감고 입도 꽉 다물고 있는게 누가 강제로 꼼짝달싹 못하게 붙들고 쇠를 채우고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열이를 데리고 왔던 남학생은 방에 들어와 보지도 않고 그 길로 돌아갔다.
동네 가운데 우물가에서는 아낙네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큰 널벅지를 하나씩 앞에 놓고 널벅지 안에 있는 저녁 할 보리쌀을 팔을 걷어 붙이고 저마다 열심히 닦는다. 그녀들은 열이가 시집에서 미쳐서 왔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겨울에는 이레도 안된 핏덩이를 안고 오더니 사람들이 너무 하는구먼.”
“그때는 몸조리하러 왔다고 그러더니.”
“그러길래 여자는 네 팔자 내 팔자 해도 서방을 잘 만나야 고생을 않는거라구.”
“그러길래 여자는 두룽박 팔자라고 하잖아.”
“서방이 시원치 않으면 팔자를 고쳐야지.”
“고생한다구 어떻게 팔자를 고치나?”
“답답해서 하는 소리지.”
“세상에 사람을 버려놔두...쯧쯧, 착한 아이를...”
“저희 아버지도 몰라본다면서?”
“그렇다나봐!”
“그러길래 애시당초 사윗감 얼굴도 모른 채 불쑥 딸을 내준다 했지.”
“어디 맘이 조려서 딸년 시집이나 보내겠어?”
“어떻게 했길래 멀쩡한 사람이 생으루 미친담.”
“며느리가 병이 났으면 약을 먹여 고칠 것이지, 친정으루 쫓아보내는게 뭐람.”
“싸가지 없는 것들! 그러구두 무슨 양반?”
“양반 타령에 딸년이 죽누먼.”
“딸년을 도시로 시집 보내면 무슨 수가 생긴다구, 큰 코 다치지.”
“이 여편네들 보리쌀은 닦지 않고 무엇들 하고 앉았어?”
승우 엄마는 물동이를 내려놓으며 게걸스레 떠든다.
“앉았긴 누가 앉아. 한축 끼고 싶어서... 감초가 왜 빠졌나 했다.”
“끼긴, 물 길러왔다. 왜? 누군 보리쌀을 입으루 닦냐? 동네가 시끄러워서 왔다.”
아낙네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화풀이라도 하듯 보리쌀을 으깨져라 박박 문지른다.
“열이 엄마는 열이를 시집 보내구서 눈병이 나더니...”
“딸 자식은 시집을 보내두 걱정이라구.”
“그나 저나 열이 엄마는 애간장 다 녹누먼.”
“그러니까 끼리끼리 살아야지.”
“도시 사람에게 혹 하면 신세를 조진다구.”
“자식도 부모를 잘 만나야지.”
“고집 피우는 자식은 어쩔수 없는 거야.”
“그나저나 열이가 쉬 나아야 될텐데 걱정이구먼.”
한숨을 들이쉬며 내쉬며 사발공론을 하던 그녀들은 널벅지를 머리에 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굶지는 않고 사는지. 남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구. 한집에서 두 사람이 시집을 가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하나는 못 산다고, 나쁘다고 그러더니 그래서 그런거나 아닌지...
집은 판잣집이라는데 겨울에는 얼마나 추울까? 얇은 판자로 바람을 막고 산다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한데서 자는 거나 마찬가지지.
불이라도 났다가는 금방 활활 타버려서 나오지도 못하는건 아닌가?
많고 많은 사람가운데 그집에서 살다니.
사람 사는 게 맘먹은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숙고 뒤잖는다더니 애시당초에 일을 글렀으니 가봐야 얼마나 가겠어. 그게 보통 힘든 일인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그 사정을 어찌 안담.’
저녁을 지어먹은 그녀는 바느질 그릇을 앞에 놓고 아이들의 닳아빠져 구멍나고 뒤꿈치가 달아난 양말을 헝겊 대고 꿰맨다. 바느질을 하면서도 마음은 시집간 딸네집을 찾아갔다.
“여보, 열이는 잘 살겠지요?”
그녀는 돌아 앉아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면서 뭔가 골똘히 빠져있는 남편을 향해 궁금함을 나누어 가지려 든다. 윤공은 아내의 말을 들으며 계속 안간힘을 쓴다.
“여보, 듣수?”
“듣긴 뭘 들어?”
그는 벌컥 성을 낸다. 생각하기도 싫은 잊으려던 것이 아내에게 덜미를 잡혀 버둥거리며 눈 앞에 나타나자 그것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고 만다. 그는 시집간 딸 이야기가 나오면 아내가 아픈 곳을 건드리며 놀리기라도 한양 윽바지른다. 그는 평소에 속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생 병을 앓느라 끙끙댄다.
그는 딸을 시집 보낸 후 며칠 동안 밥도 안먹고 술로 세월을 모냈었다. 남편의 생 병 앓는 것을 보다 못한 은부인은 남편에게 위로하는 말을 했었다.
“금년 농사 지은 것은 흉작으로 끝이 났으니 우리가 상심한다고 광이 불어 나겠어요? 이제 명년 농사나 흉작이 안되게 잘 지어 봅시다.
당신 몸이 건강해야 내년 농사도 기약을 할 수 있지. 당신이 그러시면 내년 농사는 아주 볼 것두 없을게 아니유. 비가 제때에 오구 날씨도 좋아야 되는거지. 어찌 당신만 책임질 일이겠수? 제 팔자 소관이지.
남은 자식들은 우리 눈으로 보고 여웁시다. 열이는 초년 고생을 할 팔자라서 그렇게 시집 간 것으로 치부해 버립시다.”
“쓸데없는 소리 말어!”
그는 소리를 버럭지르곤 아무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었다. 그는 괴벽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아주 괴벽쟁이가 되어져 버렸다. 은부인은 남편이 핀잔을 하고 고함을 칠 때마다,
‘평생을 살아도 저 버릇은 못 버리지. 저런이가 어떻게 자기 부모에겐 껌벅 죽는지... 부모 위하는 일에는 제 정신이 아닌가?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속은 모르는 것인가? 저런 독선적인 태도, 여자는 사람도 아니라는 말투, 왜 내가 여자가 되어 이런 삶을 살아야 되나?’
하는 소리가 그녀의 마음 속으로 쓸쓸함을 끌고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할퀴고 잡고 찢는다.
‘원 세상에 남자들이란 모두 저이처럼 저런가? 양반 뼈다귀라고 자랑하는 집안이라서 그런 것인지. 자기 기분에 조금 언짢으면, 속상하는 일이 있으면, 여편네가 참견해서 빼앗아라도 가는지 여편네 입을 막느라구 소두방으로 자라 잡듯하니. 그래야 남자의 체통이 세워지나? 내가 위하고 높여줘야 되는거지. 자기가 올라갈라구 아무리 버둥대도 그것만은 나 없이는 안되는 줄도 모르구. 그래봐야 자기 속만 더 쓰리고 아프지. 쓸데없는 고집은 버려야지.’
은부인은 남편의 못마땅함을 질겅거리며 씹어 뱉기라도 하듯 실밥을 계속 깨문다.
윤공에게도 은부인에게도 ‘언제까지 시집간 딸 걱정만 하겠느냐?
이젠 그만저만하고 끙끙대지 말라는 일이 생겼다. 윤공의 아버지는 날씨가 추워져 움츠리기 시작하는 때부터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아주 몸져 누워버렸다.
윤공의 아버지는 병이 나 누워 있으면서 밥은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술만 마신다. 밥대신 약주를 조금씩 마신다. 술만 마시다가 죽기로 아주 작정 한 사람같다. 그는 아무 술이나 마시지 않는다. 쌀로 만든 술만 좋아한다. 쌀로 빚은 술독에 용수를 박아가지고 용수 안에 고이는 맑은 술만 즐겨 마신다. 동네 사람들은 이 술을 젖내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동동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동주라고 부르는 것은 술에 쌀 삭은 것이 둥둥 뜬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술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은 동동주라고 하면 군침을 삼킨다. 밥을 먹기 전에 이 술을 한잔씩 먹으면 몸에 아주 좋아 보약 먹는 것보다도 났다는 말이 뿌리도 없이 떠다니며 사람을 홀린다.
‘인삼 녹용도 좋지만 술약이 으뜸이지. 마셔야 건강하고 재미보고 오래 산다구.’
사람들은 술속에서 삶을 찾느라고 헐떡거린다.
윤공네 집 옆 행길은 공판하는 날이 되면 벼 가마니가 길 양옆으로 다섯 가마니씩 포개져 보기좋게 나란히 줄지어 쌓인다. 사람들은 공판을 하기 위해 벼 가마니를 지게에 한 가마니도 지고, 두 가마니도 지고, 소 달구지에 실어 오고 하느라 법석댄다.
면 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한삼내에 모인 것같이 시끌시끌한게 마치 돗대기 시장이 선것 같다. 공판이 끝날 때쯤 해가 질려고 너울거릴 때쯤 되면, 술에 취하여 떠드는 사람, 혼자서 욕지거리를 해대는 사람, 남과 시비를 하는 사람이 생겨 동네가 온통 정신을 가누느라 뒤뚱거린다. 한달에 두 번씩은 동네가 피어 오르는 술독처럼 술렁거려서 사람들의 넋을 취하게 만든다.
은부인은 평소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꽥괭이 짓을 한다는거 익히 안다. 술이란 사람을 사람이길 싫어하게 만드는 아주 못된 것이라서 멀쩡한 사람도 술집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눈이 멀게 되다는걸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병석에 누워있는 시아버지를 위해서 술을 담근다.
은부인은 남들로부터
‘주모가 되었데.’
‘윤공의 아내가 술 장사 한대.’
그런 말을 듣게끔 되었다.
은부인은 쌀로 술을 빚어서 동동주는 따로 두고 막걸리는 헐값으로 주막집에 넘겨 주어 왔다.
오늘 뒷집에 살고 있는 자환이 엄마가 찾아왔다.
자환이 엄마는 부엌을 향해
“아줌마 계세요?”
하고는 후다닥 쫒기듯 부엌으로 들어간다.
“아주머니, 조심하셔야 되겠어요.”
자환이 엄마는 은부인을 보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주책을 떨고, 호들갑스레 말하며 마루에 걸터 앉는다.
은부인은 그녀의 호들갑에 놀라고, 말 뜻을 몰라 어리벙벙이 된다.
“동네에서 소문이 쫙 돌았어요. 아주머니가 밀주 장사한다구.”
그녀의 말을 듣는 은부인의 얼굴에서는 벙벙한게 밀려나 버린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대수롭지 않은걸 가지고 그 야단이냐는 투다.
“고마워, 말해 줘서. 내가 술장사 하니까 그런 소리 듣는거지. 동네사람들이 괜한 소리 하는게 아니지.”
“누가 고자질 하면 벌금 물고 챙피도 당할텐데...”
“할 수 없지. 당해야지 어쩌겠어.”
“아주머니는 몇번이나 하셨는데 그런 소문이 나지요?”
“세 번 했어.”
“그런데두 주모 취급을 하다니 인심도 참!”
“양조장을 두고서 술을 해 먹으니 나쁘지. 허지만 할 수 있어야지.
자환이 엄마도 알다시피 병석에 계신 아버님이 밥은 못 잡숫고 술만 찾으시는데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아버님이 소원하시니까. 그리구 양조장 술을 잡숴야지. 잡순다면야 얼마나 좋겠어. 이제 얼마나 더 사신다구. 이젠 술로만 사셔. 어데 많이나 잡숫나 뭐. 갈증이 나시면 겨우 두어모금 삼키시곤 마는걸. 그것두 누우신 채 빨아서 잡숴요.
그러니 내가 내 낯만 세우자고 그냥 있을 수 있어야지. 무슨 소리로 미역을 감더라도 할 수 없고 무슨 벌을 받아도 내가 당연히 받아야지.
남의 흉은 삼년을 가지 못한다니까. 입 아프면 하래도 않겠지. 돌아가시는 날까지 조금씩 해 드릴참이야.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는 우리 상길이 아버지가 지서에 불려가서 혼이 나셨다는구먼.”
자환이 엄마는 지서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는 바싹 다가 앉는다. 그녀의 얼굴은
‘어떻게 한다. 큰 탈이나 없어야 될텐데. 날벼락이 났구나.’
하는게 대번에 쓰여진다.
이동네 사람들은 지서에 불려 가기만 하면 금방 요절이라도 나는 것으로 알고 지서를 몹시 두려워하고 미운 물건 보듯한다.
“상길이 아버지가 지서에 불려가서 반나절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창피도 당하고 하셨나봐. 중거리에 사는 승우 엄마가 이야기 해줘서 어제 알았다구. 상길이 아버지는 글쎄, 그런 망신을 당하구두 나에겐 아무말도 안하셔서 까맣게 몰랐지뭐. 어제 저녁에는 내가 상길이 아버지에게 사과하는 말을 했다구.”
자환이 엄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신기하다는 눈초리로 듣고 싶은 말을 꺼내라고 은부인의 입을 다그쳐 바라본다.
“나 때문에 우세를 당해서 미안하다구 했지.”
“그랬더니 뭐라세요?”
“부모 위한다구 한 짓이지만 상길이 아버지 얼굴 보기가 민망하였었지. 나쁜놈, 어디 두고보자 하시잖아. 아주 몹시 분하신가봐. 내가 괜스레 자는 불을 일궜구나 했지. 술 장사를 내가 해서 그런것 아니겠수?
막걸를 내버렸으면 그런일이 없을건데. 아까워서 누룩값이라도 뽑는다구 그리됐으니 그들이 나쁠게 있어유? 우리가 아버님이 계시니까 그런 수모를 당하는 것이지. 아버님 안 계시면 당하고 싶다구 당하겠수? 이해하시구랴. 당신이 동네에서 말깨나 한다면서 여편네는 밀주장사 한다고 소문이 났으니. 순경들도 체면이 있으니 그런것 아니겠수? 그만 하기 다행이지. 남들이 부러워할 수모라고 이해하세요. 하니까 잠자코 계시더라구.”
“상길이 아버지는 딴 말은 안 들어두 그런말은 여편네 소리라고 밀어부치질 않아서 자기에게 좋은가봐.”
그녀는 은부인의 말을 들으면서 감회가 어리는지 대견해 하는게 얼굴에 괴어오른다.
“아주머니는 참 착하셔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시아버지 시중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다 들으시니 부러워요.”
“별소릴... 시부모가 계시면 효부소릴 들을 이가...”
“저는 성질이 지랄같아서 그렇게 못해요. 상길이 할머니가 젊으신데두 꼭 친시어머니처럼 모시고 내색도 않고 잘 하셔유. 메주왈 고주왈 해서 집안을 벌집 쑤시듯 하는데두 잘 참으시구 잘 해드리니...”
“친 시모님이 따로 있나?”
“아녀유. 내가 보니까 아주머니댁이 겨울이 되면서 조용해졌어요.
할아버지 소리가 울타리를 안 넘어서. 우리 친정 올캐가 하는걸 보면 기가 막혀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올케 좋다는 시누 없다지. 시집간 딸이 친정 아버지한테 잘한다 잘한다 해두 못하는 올케만큼 할 수 있남. 냉수 한그릇을 떠나 드려도 딸이 할 수 있남. 저 살기 바빠서 친정 생각이나 하겠어? 아쉬우면 친정 엄마 불러대고 좋은건 모두 혼자 먹기밖에 더하남. 올케에게 고마워해야지. 못한다 못한다 구박하였던 며느리가 집안을 꾸려나가고 병든 시부모를 봉양하지. 사람들은 그걸 몰라.
나를 내가 보더라두 일년이 아니라 몇 년에 한 번두 친정 부모님 진지 한 번 제대루 해 드린적이 없어요. 그전에 우리 상길이가 병이 나서 대전 병원에 입원 했을 때 보니까, 어떤 할머니가 입원했었는데 병간호하는 사십여세 된 딸은 와서 쿨쿨 잠이나 자고 가는데 다음날에 온 젊은 며느리는 밤을 꼬박 새우고 가더라구. 간호원들이 흉을 보더라구.
그때 많은 것을 배웠지.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딸은 내딸이라도 남이요, 며느리는 남이라도 내 자식을 낳는게 아니겠어? 그런줄도 모르구 고부간에 괜히 울퉁불퉁 내민다구. 잘되라구 하겠지만 이 다음에 친정에 가면 올케에게 치사나 하라구.“
“그렇구먼유, 그러시니까 할머니가 우리 상길어메 같은 사람 없지 하시지유.”
“별소릴 다 하셨나보군. 상길아! 얘야!”
은부인은 부엌에서 소두방을 후다닥 밀치고 또 밀치는 소리에 아들인가 짐작하고 부른다.
“왜?”
상길이는 부엌을 나가려다 짜증섞인 소리로 마지못해 질질 끌리듯 덜미잡힌 채 대답한다.
“너 배가 출출한 모양이구나. 부엌방 솥에 고구마 찐 것 먹고 할아버지 방에 가서 할아버지 시중 들어 드려라.”
“엄마 어디 가?”
“그래 새터에 갔다 올란다. 집도 보고 할아버지가 부르시면 빨리 깡통을 가지고 변 보시게 대 드려라.”
“알았어.”
상길이는 마지못한 얼굴로 대답을 심드렁하게 한다.
“어데 나가면 안 된다.”
“알았어.”
그는 아주 볼먹은 소리로 대답을 한다.
은부인은 자환이 엄마와 같이 삽짝 밖으로 나간다.
상길이는 한삼내 국민학교 3학년이다.
그는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아 먹던 고구마 반쪽을 마저 먹는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아랫목에는 두꺼운 요가 깔려있다. 요 위에는 낡은 누런 담요가 기저귀 포대기처럼 펴져있다. 담요 위에는 상길이 할아버지가 옆으로 누워있다. 그는 담요를 덮고 이불을 덮었다. 그의 머리맡에는 화로가 놓여졌다. 화로 위에는 조그만 주전자가 올려져 있다. 화로에는 불이 삭아서 재가 수북하게 조그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았다. 불손은 손이 닿기 쉽게 손잡이가 아랫목을 향해서 놓여있다.
방안은 똥냄새, 술냄새, 늙은이 냄새, 담배냄새, 지린내가 범벅이 되어 상길이에게 달려든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할퀸다. 사는게 이런거다. 너도 늙으면, 너도 병들면 하며 다짐을 하고 강제로 겁을 먹인다.
상길이는 찡그린 얼굴로 방에 들어가 화로에 바싹 다가 앉고는 화로를 사타구니에 끼고 물그러미 내려다 본다. 눈은 감고 입은 힘없이 축 처져 이빨이 썰렁하게 불거진걸 바라보며 찡그린 얼굴이 펴지더니 근심스런 얼굴이 된다.
‘할아버지가 아프니 어떡하지. 할아버지는 천자책을 읽지 않는다고 종아리를 때리고 했지만 아버지가 혼내고 때리려고 하면 아버지를 혼내고 내편을 들었는데, 저렇게 밥도 못 먹고 아프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건가? 할아버지가 저러고 있으면 내편 들어줄 사람도 없구. 할아버지는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데...’
상길이는 화롯불을 헤집고는 얼굴을 화로속으로 들어가라고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불을 쪼인다.
“상길이 왔냐? 아이들과 놀지않구.”
그는 졸다가 깼다. 그는 힘없는 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한다. 그러면서도 힘잃은 눈은 손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듯 한다.
그는 어데 갈 때마다 손자를 꼭꼭 데리고 다녔었다. 술을 먹을 때는 손자에게 술을 조금씩 먹이고 먹으며 즐거워했다. 6.25 난리 때는 손자 하나만 피난시키면 온 가족이 피난하는양 손자만 달랑 데리고 애지중지하며 난리를 잘도 견디어냈었다.
“상길아!”
“예.”
“화로에다 주전자 올려노온.”
“올려 있어요.”
“그러냐?”
“이왕이면 큰주전자를 올려놓지 쪼그만걸 올려놨네.”
상길이는 조그만한게 장난스러운지 어루만져본다.
“괜찮다. 할아버지는 많이 못 먹는다.”
상길이는 불손으로 재를 뒤적이며 알불을 나오게 한다.
“불을 까면 못 쓴다.”
“그래야 빨리 데워지지.”
“조금만 따뜻해지면 된다.”
“지금도 미지근한데.”
“따끈따끈 해야지. 불을 뒤집으면 머리가 아픈거란다.”
상길이는 할아버지 말대로 불을 다독거려 놓고는 주전자를 화로 가운데 올려놓는다. 그리곤 주전자를 골똘하게 내려다 본다.
상길이 할아버지는 양쪽 다리로 화로를 끼고 앉아 있는 손자를 힘없이 흘근해진 눈으로 이윽히 쳐다본다.
‘저녀석 언제나 철이 든담. 손자라고는 저 녀석 하나뿐이니. 그래두 저 녀석은 내 앞에서 무럭무럭 자라니...
손자 구경도 못하고 죽을 뻔했지. 손자복이 그렇게도 없었나. 잃지만 않았어두 간당거리지는 않는데. 하나라 맘이 놓여야지...
자손이 여럿이라야 볼게 있는건데, 윤수한테서 손자를 하나 더 보고 죽으려 했더니만 그 녀석은 계속 딸만 낳아제끼니. 이제는 영 글렀지.
내가 죽을 병이 들었으니 틀렸어. 아들은 두놈인데 손자는 하나뿐이니 이러다가 집구석 문 닫는건 아닌지. 내가 바라는건 저희들이 아들을 여럿 낳아 기르는 것을 보는 것이었는데...’
그는 손자를 여러명 두고 죽으면 손자를 통해서 다시 움돋는 참나무 등걸이라도 되는양 못내 한스런것들이 그의 얼굴에 배어 나왔다.
그리고 조금은 요에 떨어져 있다.
“상길아!”
“예.”
“공부 열심히 하거라.”
“....................”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
“...................”
“상길아!”
“예.”
“술이 따뜻해졌나 보거라.”
“따뜻하네.”
“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넣어 보거라.”
상길이는 오른손 소매를 걷어올린다. 그리고 오른손을 주전자 속으로 넣어본다.
“따뜻하네요.”
“따끈따끈하냐?”
“응.”
“이리 다오.”
상길이는 주전자를 들어 그의 할아버지 얼굴 앞으로 내려 놓는다.
상길이 할아버지는 주전자를 잡고서 입으로 가져가려 한다. 주전자를 잡은 그의 손은 후들거리느라 입으로 냉큼 가져가지를 못한다.
상길이는 주전자를 잡는다. 그러자 그는 가만히 있으라고 왼손을 흔든다. 그리고는 주전자를 놓고 주전자 뚜껑을 벗긴다. 그리고 손가락을 넣었다 꺼낸다. 손가락은 미역을 감았다고 번질거린다. 뜨거운걸 확인한 그는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는 쪽쪽 빨아서 술을 마신다.
술을 두어모금 마시고는 입을 주전자에서 뗀다. 그리고 손자를 쳐다본다.
“너도 좀 먹을래?”
“안 먹어요.”
“깡통 가져온.”
상길이는 깡통을 찾느라고 방안을 두리번거린다.
“내 뒤에 있다. 어서 대거라.”
상길이는 급한 소리에 이불을 훌렁 걷어치고 깡통을 할아버지 엉덩이에 바싹 댄다. 깡통이 닿기가 무섭게 누런 물이 터져 좔좔거린다.
상길이는 코를 찡그리고 할아버지의 엉덩이를 내려다본다.
상길이 할아버지는 윗도리만 내복을 입고 아랫도리는 어린아이 마냥 홀랑 벗었다. 똥물이 튀겨 상길이의 손등에 누렇게 여기저기 방울졌다. 엉덩이에도 튀기고 담요에도 튀겼다. 삐쩍 말라 붙은 엉덩이와 허벅다리는 나무 등걸을 심술사납게 뽑아 제끼고 또 껍질을 홀랑 벗겨 뙤약볕에 사정없이 비비꼬이게 말려 놓은 것 같다.
쭈글거린 거무티티한 살갗은 가뭄을 이기지 못해 갈라터진 논바닥처럼 하얗게 금이 가서 깊은 골을 이루며 이리가고 저리로 좇아간다.
들고 일어난 살갗은 모로 서고 바로 서고 두꺼비집을 짓고 그나마 손놓친 것은 떨어져 뒹군다. 상길이는 할아버지 다리를 좇아 아래 위로 헤맨다.
“그만 됐다.”
상길이는 깡통을 떼어내고 마른 걸레로 엉덩이를 닦아준다. 그리고 이불을 덮는다.
깡통을 들고 밖으로 나와 잿간으로 가 잿무더기 위에 깡통을 쏟아버린다. 그리고 깡통을 들고 구정물통으로 가서 구정물로 깡통을 헹군다. 그리고 우물로 가서 두레박으로 샘물을 떠서 손도 씻고 깡통도 씻는다. 마루 걸레로 깡통 겉을 닦는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방구석에 깡통을 세워 놓는다.
상길이 할아버지는 잠을 자는지 눈을 감고 있다.
상길이는 다시 화로를 끼고 앉아서 저희 할아버지를 흘끔 보고는 화로에 얼굴을 들이밀고 불을 쪼인다.
상길이 할머니는 상길이 동생 순이를 데리고 사랑방으로 들어온다.
“상길이가 와 있었구나.”
그녀는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조금은 어색하게 말한다.
“어데 갔다 왔어?”
상길이는 할머니를 올려다 보며 퉁명스레 묻는다.
“순이랑 건너 마을 가서 놀다가 왔다. 놀다 오면 안되냐?”
라부인은 언성을 높여서 나무라듯 영감도 들으라는듯 말한다.
“집에서 놀지.”
상길이는 볼멘 소리로 비위를 건드린다. 할머니가 놀러 다니니까 할아버지 시중은 누가 드느냐? 할아버지를 혼자 두면 어떻게 하자는거냐? 할머니가 없으니까 내가 대신 할아버지 시중을 든다는 말이 포개져 나왔다.
“괜히 놀러 다니고 싶으니까...”
“내가 놀러 다니고 싶어서 다니냐? 저누무 자식, 역성만 들구 오냐오냐 길러서 어린게 버르장머리가 하나도 없다구. 어린게 콩콩 덤비구.”
“내가 언제 콩콩 덤볐어?”
“이눔의 자식, 어데서 쫑알거려!”
라부인은 눈을 고추 세우고 언성을 높여 때릴 기세다. 대번 험상궂은 얼굴이 되느라고 일그러져 씩씩댄다.
“에헴!”
상길이 할아버지는 크게 기침을 하고는 눈을 뜬다.
라부인은 영감님의 기침소리에 찔끔한다.
“저런 저런, 쯧쯧, 어린아이를 데리고 입씨름이나 하구 앉았으니 언제나 철이 든담.”
그는 아내에게 핀잔할 일이 생겨서 없던 기운이 솟는다고 하듯 입은 건강하다고 찔끔거리게 한다. 라부인은 손자에게 눈을 흘긴다.
상길이는 할머니의 동자없는 뿌연한 시선에 쫓겨나 떠밀려서 방문을 밀치고 나간다. 그는 고무신을 신기가 바쁘게 삽짝으로 뛰어간다.
“상길아!”
은부인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다가 삽짝으로 뛰어나가는 아들을 불러 세운다. 상길이는 소리따라 고개를 돌리고는 반색을 하며 부엌을 바라본다.
“엄니, 언제 왔어?”
그는 부엌으로 다가간다.
“할머니한테 누가 그런다데?”
“내가 뭐 어쨌는데?”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면 가만히 듣기만 하는거란다. 누가 너처럼 할머니한테 따지고 덤빈다데? 어데서 그런 못된 버릇 배웠냐?”
“나는 그렇게 못해!”
“네가 엄마 말 안들으면 남들이 못된 자식 두었다구 엄마와 아버지가 욕을 먹는단다.”
“어떤 놈이 욕을 해? 내가 아가리를 찢어 놓을테야!”
“그래두, 저 놈이. 엄마말 안 들을래?”
그녀는 말을 하며 부지깽이를 찾아들고 부엌문 앞으로 쫓아간다.
상길이는 삽짝 밖으로 냅다 도망을 친다.
‘무슨 아이가 저럴까? 저래가지고 커서 무엇에 쓴담. 어린게 말을 함부로 하고...
누굴 닮아서 저럴까? 저의 아버지나 나나 말을 함부로 안하는데 그 새부터 에미 말이라면 듣지 않고 저의 아버지말이나 듣는 체를 하니 저 하나라고 오냐오냐 키웠더니 조동이가 아주 되버렸으니 어쩐다?
자식은 거죽만 낳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내 발등에 떨어진 것은 아닌가? 그랬다가는 큰 일이지. 어른 앞이라고 내버려 놔둬서 그렇지. 종아리를 때리지 않으면 그건 자식을 사랑하는게 아니라던데.
조금 더 크면 닦달을 해서 버릇을 들여야지.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사람 대접을 받게 만들어야지.’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한삼내 북쪽에는 동네와 조금 떨어진 곳에 국민학교가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뛰논다. 오늘은 겨울 날씨 치고는 매섭게 춥지를 않다. 제기 차는 아이들도 있고, 술래잡기 하는 아이들도 있고, 공치기, 사방치기 하는 아이들도 있다. 운동장은 꽃밭 속의 벌집같이 아이들 소리따라 앵앵거린다.
술래잡기를 하고 놀던 상길이가 갑자기 땅에 픽 쓰러진다. 그는 땅에서 일어나려 한쪽무릎을 세우다가는 도로 땅에 엎어진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쥐고 잔뜩 꼬부라져서 신음을 한다. 술래잡기 하던 아이들이 상길이 곁으로 모여든다. 근심스레 바라본다. 닭 싸움을 하며 놀던 아이들도 뛰어와 빙 둘러 서서 근심에 빠진다. 제기를 차고 있던 6학년 일동이가 뛰어오며 아이들에게 소리쳐 묻는다.
“누가 다쳤냐?”
아이들은 아무도 대답을 안한다. 일동이는 아이들을 헤집고 상길이 곁으로 다가간다.
“너 어데 다쳤냐?”
일동이는 말을 하며 상길이의 팔꿈치 사이로 얼굴을 들여다보고 이마를 짚어본다.
“집에 가야지. 집에 가자.”
일동이는 그를 일으켜 세우려다가 멈춘다. 상길이는 머리를 감싼 채 웅크렸던 허리를 조금 펴면서 움직인다.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워서.”
말을 떠듬거리는 상길이의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이 노래졌다.
“집에 가자. 내가 업고 갈께.”
일동이는 손을 잡고 일으켜서 업으려 든다.
“가만, 가만 있어봐. 조금 더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정말 괜찮을 것 같냐?”
상길이는 고개를 조금 끄덕여 보인다. 얼마동안 뜸을 들인 상길이는 어설프게 일어선다. 만천이는 상길이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고 등을 쓰다듬는다. 상길이는 머리를 감싼 채 흐트러진 걸음으로 금방 주저앉을 것처럼 보이면서 학교 변소쪽으로 띄엄띄엄 걷는다.
만천이는 그를 지켜보다가 좇아가 상길이의 한쪽 팔을 붙잡고 따라간다. 만천이는 부축을 해 주고 변소 밖으로 나와 서성거린다.
아이들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상길이를 지켜본다. 그리고 안심한 그들은 마음이 놓이는지 다시 뛰논다. 상길이는 변소에 그냥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이제 좀 괜찮냐?”
만천이는 변소 안에다 대고 소리쳐 묻는다.
“응.”
잠시후 상길이가 변소에서 터벅대며 걸어 나온다. 만천이는 다시 그의 손을 잡아 주려 한다.
“이제는 많이 나았어. 나 혼자라도 집에 갈 수 있어.”
“너 정말 혼자 갈 수 있겠냐?”
“응.”
만천이는 맘이 놓이지 않아 교문 밖까지 바래다 주고는 상길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본다.
상길이는 저의 집 삽짝을 들어선다. 그의 걸음은 더듬거리고 눈은 퀭해져 있다. 그는 어른들의 이상스런 행동에 어리둥절한다.
사랑방 앞에는 승근이 아버지가 서 있다. 그의 오른손에는 흰 저고리가 들려있다. 그는 떠듬거리듯 천천히 무어라고 지껄인다.
“태-근-식-보-오”
하고는 오른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가는 내린다. 그렇게 세 번을 외친다. 그리고 저고리를 사랑방 지붕 위로 훌쩍 던져버린다. 흰 저고리는 지붕 위에 올려졌다가는 이내 굴러져 차양 위에 멈춘다.
‘별일이네! 할아버지 이름을 부르고 흰저고리를 지붕에 던지고 어머니는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이상하지? 할아버지가 어떻게 됐나?’
은부인은 안방 마루에서 뜰방으로 내려선다. 상길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일러준다.
승이 엄마는 삽짝 옆에 조그만 상을 갖다 놓는다. 상 위에는 조그만 접시가 세개 놓였고 접시 위에는 밥이 솝복하게 주먹밥처럼 담겼다.
밥알이 허물어져 상으로 흘러내렸다. 접시 밥도 담을 탓이라는 말을 생각게 한다. 접시 앞에는 백원짜리 지폐 두장이 조그만 접시에 눌러져 있다. 밥상 아래에 짚신을 한 켤레 갖다 놓는다.
이 밥상은 사자 밥이라고 한다. 저승에서 사람을 잡으러 온 사자를 대접하느라 차려 놓았다. 사람을 잡아가는 세 명의 사자가 저승까지 데리고 갈 때 너무 재촉하지 말고, 너무 성화대지 말고, 너무 때리지 말고, 질질 끌고 가지 말고, 천천히 쉬어가며 인정을 베풀어 달라고, 사정을 봐 달라고 사자에게 대접하는 것이라 한다.
저승 사자가 사람의 영혼을 잡아가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 죽는 것이다. 그렇게 이동네 사람들은 믿어 내려왔다. 저승 사자가 사람을 잡아갈 때는 사람의 목을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가지고 개처럼 질질 끌고 간다고 한다. 마치 시장에서 젖송아지 사올 때 에미 따라온 송아지를 강제로 떼어서 끌어오듯 앞에서 고삐를 잡고 끌고 뒤에서 밀고 또 때리고 저승으로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을 인정사정 없이 가시가 숭설숭설한 쇠 몽둥이로 갈겨대는 통에 피투성이로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하고 죽어지지 않아 죽을 수가 없어 끌려간다고 그렇게들 믿는다.
저승까지 가려면 차도 타고 음식도 사먹고 배도 타야 가는 곳으로 믿어 사람이 운명하기 전에 돈이 든 지갑을 손에 꼬옥 쥐어준다. 저승 사자에게 갑자기 붙잡혀 끌려가기 때문에 신도 못 신고 끌려갈 때 대문 앞에 차려놓은 사자밥을 사자가 먹는 동안 죽은 사람이 짚신을 재치있게 신는다고 생각한다.
살았을 때 착하게 살아온 사람은 저승 사자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고 공손하게 모시고 간다고 믿는다.
저녁 때가 되었다. 동네 아낙네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서 상길네 집으로 들어간다. 물동이 위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오른다.
그녀들은 부엌으로 다가가 물동이를 내려 놓는다. 동이 안에는 뜨거운 팥죽이 하나 가득히 담겨 있다. 한삼네 사람들은 상을 당하는 집에 계를 하듯 팥죽을 끓여다가 돕는게 풍습처럼 되어 왔다. 팥죽은 귀신을 몰아내어 산 사람을 보호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으며 초상집에 있는 사람, 오는 사람에게 권하고 먹인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흰 눈발이 날리며 날씨가 몹시 쌀쌀해진다.
바람도 코를 에이려 덤빈다. 마당 가운데에 화톳불(통나무를 쌓아놓고 태우는것)을 피워 놓았다. 통나무를 쌓아서 아주 커다랗게 불을 놓아 집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뻘건것이 팥죽을 너무 많이 먹은것이 아닌가 하도록 물들어 있다. 문상 온 사람들이 화톳불 앞에 삥 둘러서서 추위를 이기느라 빨간 얼굴을 비비며 불을 쪼인다.
집안 기둥마다 돌아가며 등을 걸어 놓았다. 동네에 있는 등을 모두 갖다 걸어 놓은 것 같다. 화톳불 옆으로 큰 멍석을 두 닢 깔아 놓았다.
멍석 위에서는 화투판이 벌어졌다. 안방 마루에서도 화투놀이를 한다.
문상객들은 팥죽도 먹고 막걸리를 한사발씩 벌떡벌떡 마시고 두사발 세사발도 마신다. 경사집에서 먹는 것처럼 게걸스레 먹고 지붕이 들썩거리고 방구들이 떨게 신명나게 떠든다. 죽음을 몰아내는 일이나 되는 것처럼 열심히 떠든다.
사랑방 방문은 닫혀 있다. 사랑방 마루 위에는 가마니를 뜯어서 자리를 깔듯이 깔아 놓았다. 마루 왼쪽 끝에는 상길이 아버지와 상길이 삼촌이 나란히 벽을 등지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들 무릎 앞에는 둥근 짚단이 하나씩 놓였다. 아주 큰 베개 같다. 그들은 짚단에 손을 얹고 곡을 한다. 굵은 베옷을 입었다. 건도 썼다. 짚과 삼으로 동아줄을 꼬아서 만든 허리띠를 두르고 머리에도 둘렀다.
문상객이 없으면 앉아서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한다.
문상객이 뜰방에 올라서면 일어나서 대나무 지팡이을 짚고 허리를 구부리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한다.
문상을 온 사람은 마루에 올라서서 방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어이, 어이.”
하길 서너번 하고는 방문에다 대고 절을 두 번 한다. 그리고 돌아 서서 상주와 맞절을 한다.
문상객은
“상사 말씀...”
말 끝을 흐린다.
상주는 작은 소리로
“망극합니다.”
짧게 대답한다.
어떤 사람은
“천붕지퉁을 당하신데 위로 말씀 없습니다.”
유식하게 문자를 쓰며 또박또박 조문한다. 상주는 한결 같다.
“망극합니다.”
할뿐이다.
상주와 친한 사람들 가운데 장난을 즐기는 사람들은 상주를 놀리고 골려준다. 그들은 문상을 하고는 다시 문상 온 사람처럼 겉옷을 바꿔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문상을 한다.
“너네 애비 죽어서 시원하지?”
아주 작은 소리로 얼버무린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난다.
“이놈이 시원하다네.”
뜰에 서 있던 친구가 반주를 한다.
“그 놈은 원래 그래.”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상주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잠자코 앉았다
“야, 이사람아 상주를 골리면 쓰나? 손님 오셨어. 어서 비켜.”
그들은 물러나서 싱글거린다. 상주와 문상객이 인사를 한다. 물러났던 그들은 잽싸게 달려들어 문상객의 엉덩이를 밀어부친다. 상주와 문상객은 ‘쿵’ 하는 소리가 나게 박치기를 해댄다.
“예끼, 순 망할놈들 같으니...”
문상객은 욕을 하며 이마를 문지르며 뜰방으로 내려간다.
상주는 ‘아야’ 소리도 못하고 “어허” 하고는 그만이다.
아픈 곳을 쓰다듬지도 못한다. 뒤이어 또 문상을 한다.
“좀 더 사셨으면...”
“제가 복이 없어서...”
“저놈 거짓말 하는 것 보게.”
“고려장할 놈이 복이 없다네...”
“알고보니 고얀놈이구먼, 아이고는 왜 찾누.”
“남이 하니께 하는거지.”
“야, 이놈들아. 고만 까불구 술이나 먹어라.”
멍석에서 화투를 치던 성근이 아버지가 집안이 들썩하게 소리친다.
이 동네 사람들은 부모가 칠십이 넘게 살았고 아들이 장성하여 손자까지 보았고 의식주가 그런대로 남부럽지 않게 살 때 부모의 상을 당하면 호상이라 한다. 호상에는 으레 장난질을 치므로 축하 아닌 위로를 한다. 문상객이 문상을 하고 내려오면 태방이와 성근이는 안내를 하여 멍석 위에 앉히고 막걸리 한 주전자, 생명태국, 두부 지진 것을 조그만 상에 담아 가지고 대접을 한다.
“조카 오냐? 어서 온.”
먼저 와서 술을 먹는 문상객이 친구를 보자 반기는 말을 한다.
“예끼, 순 고얀놈. 너도 저놈처럼 ‘아이고 대고’ 할께 아니라 이 애비 속좀 썩히지나 말아라.”
“언놈아, 어서 갖다 온.”
문상객은 밤 가는줄 모르고 찾아온다.
상갓집은 웃음소리, 곡 하는 소리, 흥이 나서 떠드는 소리가 범벅이 되어 온 동네를 똥방게 걸음을 시킨다.
동네 아낙네들과 꼬마들이 길가에 나와 서서 상여 구경을 한다. 상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만사를 들고 앞서가고, 다음에 혼백 든 사람이 따라가고 상여가 따라간다. 상여 뒤에는 굴건제복을 한 상주 둘이 따라가고 테만 두른 상길이가 따라간다. 상주들 뒤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길을 에우며 따라간다.
“아이 추워! 날씨가 갑자기 춥지?”
“고추 같은 날씨야.”
“상길이 할아버지가 꽤나 독하신가봐. 그러길래 날씨가 매웁지.”
“별소릴 다 하네.”
“망인이 독하면 그렇데.”
“소한 추위라구.”
“하필 소한 추위를 이때 하누.”
“길택이 엄마, 저것 좀 봐! 상여 앞에 웬 깃발이 저렇게나 많어?”
창섭이 엄마는 의아스러워 혼잣말처럼 지껄인다.
“저건 깃발이 아니고 만사라는 거여.”
“나는 입때껏 깃발이 두 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상길이 할아버지는 깃발이 많기도 하구먼.”
“그거야 뻔한거 아녀? 조문하는 글이지 뭐.”
“흥! 뭘 알아야 면장을 하지.”
“나도 나중에 많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네.”
“죽은 다음에 그게 무슨 소용이람.”
“그럴라면 아들을 잘 둬야지.”
“누가 잘 두기 싫어 안두나?”
“잘 가르치면 된다구.”
“자식 잘 둘려면 조상들이 덕을 많이 쌓아야 되는거여.”
“그렇겠지. 지가 못하는 게 그 농사여.”
상길이 할아버지 묘자리를 파는 사람들은 손을 불어가며 곡괭이로 꽁꽁 얼어붙은 땅을 찍어댄다. 불을 피워놓고 불을 쪼이며 교대로 땅을 찍는다.
“이것 보게나. 이쪽으로 파래두 그러네.”
관이 들어갈 자리를 파는걸 지켜보는 늙수그레한 이가 참견한다.
“허허, 이사람, 이쪽으로 파라는데.”
땅을 파는 젊은이들은 무슨 소리를 하던 대답도 않고 지관이 표시해준대로 곡괭이로 땅만 파헤친다.
묘자리 파고 있는 아래 한쪽으로 상여가 놓여 있다. 문상을 집에서 못한 사람들은 산으로 따라와서 문상을 한다. 문상하는 그들은 상여를 향해 절을 두 번씩 한다. 그리고 상주와 인사를 나눈다.
상여가 놓인 곳에서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골짜기 평평한 곳에 솥을 걸어놓고 국을 끓인다. 술독도 있고 그릇도 쌓였고 상도 놓였다.
멍석 두 잎을 깔아놓고 문상객을 대접하느라고 법석댄다.
“저...저, 돌 굴러요!”
“돌 굴러!”
졸지에 찢어지는 외마디 소리가 골짝을 찢는다. 유택을 만드는 곳에서 호박덩어리만한 돌이 미끄러져 사납게 튄다. 잡아찢는 소리에 술을 먹던 사람들, 국을 끓이던 사람들은 도망치느라 허둥댄다.
“저런, 저런!”
사람들은 구르는 돌을 바라보며 함성을 지른다.
돌은 단지와 그릇이 있는 가운데로 달려든다. 술 단지에서 ‘탁’ 소리가 난다. 사기 그릇이 사방으로 튀기며 부숴진다. 술이 허옇게 멍석을 넓게 갈라 놓는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그만하기 다행이야!”
“사람 다쳤으면 어쩔뻔 했나? 다행이여.”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느라 한마디씩 지껄인다.
윤공의 아버지가 침식을 하던 사랑방에는 제청을 만드느라 분주하게 열심이다. 흰 광목 천으로 웃목 오른쪽 벽에서부터 왼쪽으로 2폭정도 되게 간격을 두고 방바닥에서 천정까지 막아 놓았다.
그리고 조그만 제삿상을 들여놓았다. 제삿상 다리를 이어서 껑충하게 만들어 책상 높이 되게 만들어 놓았다.
제삿상 뒤 벽에는 빨간 만사가 떨떠름하게 천정에서부터 방바닥까지 길게 늘여졌다. 은색이 나는 걸로 ‘통훈대부’ 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다. 빨간 망사 앞 상 위에는 장난감 같은 의자를 벽에 기대어 놓았다.
의자엔 네모진 조그만 상자, 흰 두꺼운 종이로 만든 상자가 뚜껑을 쓴 채 올라 있다.
제삿상 좌 우벽에는 조문하는 글을 쓴 비단천을 포개어 걸어 놓았다.
제삿상 앞에는 흰 광목으로 천정에서 방바닥까지 가로 막아 놓았다.
광목천을 두 쪽으로 만들어 양 쪽으로 갈라지게 문처럼 만들어 놓았다.
은부인은 저녁에 제청에 다리 없는 상으로 밥상을 차려서 갖다 놓는다. 그리고 의자를 덮은 흰 천을 걷어올리고 종이 상자의 뚜껑을 조금 벗겨서 놓는다. 뾰족이 보이는 삼베로 만든 지갑 같은 게 묶여 있는 것처럼 생겨 가지고 그녀를 떨떠름하게 만든다.
그녀는 제청 문을 닫고 부엌으로 나와서 놋 대접에다 냉수를 떠가지고 들어가 국그릇을 내려놓고 물 대접을 국을 놓았던 자리에 놓는다.
그리고 수저를 들어 밥 그릇 가운데서 밥을 떠서 물그릇에 밥을 만다.
그러기를 세 번 한다. 그리고 벗겨 놓았던 혼백 뚜껑(종이뚜껑)을 덮고 흰천을 의자에 다시 덮고 상을 내려 방바닥에 놓는다.
그리고 제청 문을 닫아 끈을 매고는 밥상을 내간다.
오늘은 상길이 할아버지가 죽어 땅에 묻힌지 3일이 되는 날이다.
집안 식구 모두가 윤공의 아버지 무덤을 찾아간다. 그들은 무덤을 밟기도 하고 돌멩이를 주워내고 무덤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 가지고온 음식을 무덤 앞에 놓고 두 번씩 절을 한다.
사모제를 마친 그들은 무덤 앞에 둘러 서서 주위를 살펴본다. 먼산도 바라본다.
“아버지가 생전에 유택을 정하신 곳이라 그런지 아늑한 게 좋은것 같구나.”
윤공은 동생 윤수를 향해 입을 연다.
“아버님이 원하신 곳이니 어련하시겠어요.”
“자리야 어떻든 아버님이 생전에 원하시던 자리에 모셨으니 여한은 없으시겠지. 아버님이 복이 있으신 분이신지 동네 뒷산이라 못 얻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동네 사람들이 승낙해 주어 고맙더구나.”
“형님이 애 많이 쓰셨어요.”
윤공 형제는 묘 자리를 둘러보며 아버지의 유지를 이루어 드리게 됨을 고마워한다.
식구들은 음복을 하기 위해 무덤 앞에 모여 쪼그리고 앉는다.
“형님, 잔 받으세요.”
윤수는 윤공에게 술잔을 건네준다. 그리고 술을 술잔 가득히 따른다.
윤공은 동생이 주는 술잔을 받아 들고 산소 주위를 다시 살핀다.
“형님, 잔 비우세요.”
윤공은 동생의 권하는 소리따라 술을 마신다. 그리고 윤수에게 잔을 건네준다. 이어 술을 따라준다. 윤수는 술을 마시고는 잔을 다시 형에게 건네준다. 그리고는 상길이를 시켜 술을 따르게 한다. 상길이는 삼촌의 잔에도 술을 따른다.
“집안이 모두 평안하면 되는것 아니겠냐?”
“그러믄요, 집안이 편안한 게 첫째지요.”
윤공은 아버지의 유택이 그런대로 쓸만한 곳이라고, 좋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거라고 좋게만 여기려 든다.
은부인은 시아버지의 산소를 두루 살펴보고는 유택이 별로 좋게 생각이 안된다고 탐탁히 여길 수 없다는 불만이 얼굴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좀더 당겨서 올려 썼으면 좋을건데...”
은부인은 혼잣말처럼 말한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남편에게 가르쳐 줄 기회를 찾느라 작게 더듬거린다.
“뭣을 안다고 그러냐? 주제 넘게스리.”
윤공은 그의 아내가 중얼거리듯 하는 말을 못 들은 체 해도 되겠지만 핀잔할 건덕지를 찾았다는듯 멸시하는 눈으로 풀쐐기처럼 쏜다.
“괭이자루 길이만큼 올려 썼으면 잠시 쉬어 갈 곳은 되지만...”
은부인은 남편이 핀잔을 하자 용기를 얻었다고 불에 기름 끼얹은듯 더듬지도 않고 또박또박 자기의 견해를 내세운다.
“고만두지 못 하니?”
윤공은 언성을 높여 아내의 말을 막는다.
은부인은 이왕 내친걸음을 걷는다. 대나무 지팡이로 가리키며 이쪽은 어떻고 저쪽은 어떻다고 설명을 한다. 윤공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아내의 설명을 듣느라 송충이가 얼굴에 달라붙은 꼴이 된다.
“그게 뭣 하는 작대기냐?”
윤공은 아내가 거침없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아는 체를 하자 자존심이 몹시 상하여 화를 버럭내고 언성을 높여 꾸짖는다. 산까지도 덩달아 꾸짖는다.
은부인은 남편의 호통소리에 작대기를 슬그머니 내린다.
“형님, 고만 앉으세요.”
윤수의 아내는 은부인의 치맛자락을 잡아 당긴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시아주버니의 성난 얼굴을 훔쳐보며 앉으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오금저린 소리로 말린다.
은부인은 마지못해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는다.
윤공은 아내를 잡드리게 흘기고는 산등성이로 올라가 산의 지세를 살핀다.
은부인은 동서에게 산소의 위치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그렇다면 내년에나 후년에 산소를 올려쓰면 되겠네요.”
“그렇게 했다가는 집안에 큰 일이 난다고 내려오는 말이 있으니까 걱정이지. 이장했다가 다시 올려쓰면 된다지만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자네에게 다시 말하지만 이 곳은 잠시 쉬어 갈 자리도 못되는 곳이라네. 이런 곳에 산소를 쓰고서 뭣을 볼 것이 있다고 좋아하는건지.
아버님이 생전에 내가 묻힐 곳 치표를 해 뒀다고 하시기에 쓸만한 자리가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유택자리가 될 수가 없는 곳이구먼.
웬만한 자리라면 내가 말을 않겠어. 우리 두 집을 위해서 하는 소리지.
그냥 지켜보기가 딱해서 하는 소리지...”
산등성이에서 내려온 윤공은 내려가자고 하고는 앞서서 성큼성큼 내려간다. 주섬주섬 그릇을 챙긴 은부인과 윤수 아내도 남편의 뒤를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상길이는 그릇 싼 보자기를 들고 뒤에 처져 따라 걷는다. 그는 입을 쩍 벌리고 사방으로 찢어져 알맹이를 쏟아 버린 밤송이를 툭 차서 길 밖으로 내동댕이 쳐버린다. 그리고 을씨년스런 하늘을 보고 앙상한 밤나무를 보곤 고개를 돌린다. 산골 끝에 묻힌 할아버지의 산소를 불만스레 흘긴다.
“아버지는...괜히...”
중얼거리는게 밀치고 당기느라 볼이 메었다.
“여보게나, 공도 덕도 적으면서 명당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지.
조금은 기대를 했더니. 허사가 됐구먼. 아버님이 인정은 많으신데 성미가 불 같으셔서...”
윤수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님은 그게 흠이셨어요.”
“이런 소리도 우리 자손이 잘 되자구 하는거지. 덕을 쌓아야 끝이 여문다는 말이 빈말이 아녀.”
“여부가 있나요.”
해가 두 번 바뀐 늦은 봄 어느날 저녁 때였다.
“상길이 누나 오네유. 누구랑 같이 오네유.”
동네 꼬마들이 상길네 집 삽짝을 뛰어 들어오며 외친다.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은부인은 딸이 온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음을 느끼며 웬지 모르게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딸을 마중하러 삽짝 밖으로 나간다.
열이는 커다란 남학생과 같이 오고 있다. 열이의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럽고 아주 힘들어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오느냐?”
은부인은 딸을 가까이 희뿌연한 눈으로 살피며 묻는다. 열이는 피곤하여 아주 지친 모습을 하고 걸어올 뿐 아무 대답을 않는다. 그녀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은부인을 흘끗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쳐 삽짝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얼굴은 모양만 사람 같다. 기쁨도 슬픔도 담길 곳이 부숴져 버린지 오래인 것 같이 보인다.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랫목 벽을 기대고 앉는다. 두손은 양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눈은 꼬옥 감았다. 입술은 앞으로 밀려 나왔다. 턱이 뾰쪽하게 날이 섰다. 몸도 따라 홀쭉하고 얼굴은 노리끼리하게 물이 배어 나왔다.
딸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온 은부인은 두손으로 딸의 두손을 꼬옥 잡는다.
“이것아, 어데가 아프냐?”
은부인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울먹거리며 묻는다.
열이는 잡힌 손을 홱 뿌리친다.
“아이구! 이것아. 이게 웬일이냐? 어미도 몰라? 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속시원히 말해봐라.”
은부인은 목이 메어 묻는다.
열이는 어머니의 안타까워하는 말도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미동도 않는다. 그녀는 눈도 꼭 감고 입도 꽉 다물고 있는게 누가 강제로 꼼짝달싹 못하게 붙들고 쇠를 채우고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열이를 데리고 왔던 남학생은 방에 들어와 보지도 않고 그 길로 돌아갔다.
동네 가운데 우물가에서는 아낙네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큰 널벅지를 하나씩 앞에 놓고 널벅지 안에 있는 저녁 할 보리쌀을 팔을 걷어 붙이고 저마다 열심히 닦는다. 그녀들은 열이가 시집에서 미쳐서 왔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겨울에는 이레도 안된 핏덩이를 안고 오더니 사람들이 너무 하는구먼.”
“그때는 몸조리하러 왔다고 그러더니.”
“그러길래 여자는 네 팔자 내 팔자 해도 서방을 잘 만나야 고생을 않는거라구.”
“그러길래 여자는 두룽박 팔자라고 하잖아.”
“서방이 시원치 않으면 팔자를 고쳐야지.”
“고생한다구 어떻게 팔자를 고치나?”
“답답해서 하는 소리지.”
“세상에 사람을 버려놔두...쯧쯧, 착한 아이를...”
“저희 아버지도 몰라본다면서?”
“그렇다나봐!”
“그러길래 애시당초 사윗감 얼굴도 모른 채 불쑥 딸을 내준다 했지.”
“어디 맘이 조려서 딸년 시집이나 보내겠어?”
“어떻게 했길래 멀쩡한 사람이 생으루 미친담.”
“며느리가 병이 났으면 약을 먹여 고칠 것이지, 친정으루 쫓아보내는게 뭐람.”
“싸가지 없는 것들! 그러구두 무슨 양반?”
“양반 타령에 딸년이 죽누먼.”
“딸년을 도시로 시집 보내면 무슨 수가 생긴다구, 큰 코 다치지.”
“이 여편네들 보리쌀은 닦지 않고 무엇들 하고 앉았어?”
승우 엄마는 물동이를 내려놓으며 게걸스레 떠든다.
“앉았긴 누가 앉아. 한축 끼고 싶어서... 감초가 왜 빠졌나 했다.”
“끼긴, 물 길러왔다. 왜? 누군 보리쌀을 입으루 닦냐? 동네가 시끄러워서 왔다.”
아낙네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화풀이라도 하듯 보리쌀을 으깨져라 박박 문지른다.
“열이 엄마는 열이를 시집 보내구서 눈병이 나더니...”
“딸 자식은 시집을 보내두 걱정이라구.”
“그나 저나 열이 엄마는 애간장 다 녹누먼.”
“그러니까 끼리끼리 살아야지.”
“도시 사람에게 혹 하면 신세를 조진다구.”
“자식도 부모를 잘 만나야지.”
“고집 피우는 자식은 어쩔수 없는 거야.”
“그나저나 열이가 쉬 나아야 될텐데 걱정이구먼.”
한숨을 들이쉬며 내쉬며 사발공론을 하던 그녀들은 널벅지를 머리에 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