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13.가는 길)
Author
yeongbeome2
Date
2024-06-2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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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길이는 웃방 뒷문 가까이 앉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주님! 나의 아버지를 회개시켜 예수믿고 천당가게 합소서. 이 일로 아버지의 마음이 녹아지게 하시어 회개하고 예수믿게 하여 주세요.
불쌍히 여기세요. 저는 아버지를 원망도 하고 욕도 많이 했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기를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의 앞에는 양은 대접과 작은 면도칼이 놓여 있다.
“너도 이 다음에 살아보면 알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 잘 되길 싫어한다던. 자나깨나 내 자식 잘되길 바라고 걱정하는게 부모란다. 지금은 네가 몰라서 욕한다만...”
그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르며 깊이깊이 찌르르함을 맛본다. 그의 얼굴은 붉어진다. 양쪽 볼이 불거져 나온다. 양은 그릇으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종아리를 움켜쥔 왼손도 칼을 든 손도 덜덜거린다. 살이 떨어져 손에 잡혔다. 그는 덜덜거리며 그릇에 담는다. 살점이 떨어져 움푹 패인 곳에서는 피가 녹아 내린다. 거긴 수수 모가지처럼 옹글 몽글하게 생겼다. 그는 광목 헝겊을 길게 찢어 상처를 여러겹으로 동여맨다. 헝겊은 감길 때마다 붉게 물을 들이운다.
뒷방문이 열린다.
“너...”
열이는 웃방에 들어가려고 문을 열고는 흠칫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양은 그릇에는 검붉은 피가 절반이 넘게 담겨 있다.
“누나, 이것 아버지께 드려.”
상길이는 양은 그릇을 누나에게 건네어 준다. 그의 손은 빨갛게 피범벅이 되었다.
그릇을 들고 있는 손은 가늘게 떤다.
열이는 그릇을 냉큼 받지 못한다. 손을 밀어내고 밀어내어 겨우 받는다.
다음날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다. 집안 공기는 장마철도 아닌데 사람을 안팎으로 짓눌러 답답하게 한다. 상길이는 마루에 앉았다가 아버지가 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르자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아버지 곁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윤공은 윤기 잃은 눈으로 그의 아들을 이윽히 올려다본다. 그의 숨소리는 고르지 못하다.
“상길아!”
“예.”
“정신차려 살아라.”
그는 말을 간신히 입밖으로 밀어낸다. 그리곤 힘에 겨워 헐떡인다.
눈꺼풀도 이내 덮여진다.
상길이는 쿵하는 소리따라 먼 하늘을 쳐다보곤 아득한 곳으로 떨어지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상길이는 부채를 찾아 들고 바람을 조금씩 일군다.
파리도 쫓아 준다. 편안하게 앉아서 그의 아버지를 간호한다.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죽으면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마는가?
새로운 세상으로 돌아가는가?
천당과 지옥은 있는 것인가?
아무것도 없다면 좋으련만.
지옥은 불속이라던데.
불속에서 죽지도 않고 영원히 고통만 당하는 곳이라던데.
죽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없다면 기가 막히고...
참으로 무서운 곳이지.
내가 거기에서...
아냐, 난 아냐. 없는 소릴 지어낸 거지.
나는 조금은 선하게 살았다구. 넘들과 설마 똑같을라구?
내가 없다고 우긴다구 있는게 없어지는 것두 아닌데...
그렇담 어쩐다.
그런데 저건 뭣하는 놈이여?
누굴 놀려.
야, 너는 무엇하는 놈이냐?
네 꼴을 보니 우습구나.
빤스 입은 것두 아니구 너절거리는걸 옷이라구 입었냐?
밑천이 보이겠다.
얼굴이 왜 시커먼 하냐?
배는 아이가 뱃냐?
돈이 많이 들었냐?
그런데 저것은 어데 많이 본놈 같네. 낯이 익은데.
나와 비슷하게 생겼네.
왜, 저기 누워있나?
이상하네.
금방 상해서 썩고 있구먼.’
“너는 깨끗한 놈 같구나? 그게 너란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윤공은 고개를 들 엄두도 못내고 두려움에 잠겨 웅덩이에 있는 시신을 내려다만 볼 뿐이다.
‘너는 죽게 된 사람을 구해준게 있다고 하는구나.
너는 네 아내를 두고도 딴 여자와 놀아난게 하나냐? 둘이냐?
남의 아내를 찝쩍거려 간음한게 한 번이냐? 두 번이냐?
너는 원래 거짓말을 모르느냐?
속여 빼앗은건 몇번이냐?
망할놈 죽일놈이라고 저주한게 몇 번이냐?
축복은 얼마나 했느냐?
네 자식에겐 얼마나 복을 빌었느냐?
넌 남 위해 몇 번이나 울어봤느냐?
자식들이 잘되라고 몇 번이나 울어봤느냐?
동포를 위해서도 울어봤느냐?
넌 이땅에서 열심히 한게 무엇이냐?
넌 너를 만든 분이 누구신지 그를 경외한 적이 있느냐?
넌 부모에게 불효한게 죄중엔 으뜸이라면서 너와 네 부모를 만든분을 업신여기고 모른 체 하는건 불효가 아니더냐?
너는 너를 구해 준 사람에게 결초 보은 한다면서 너를 먹이고 입히고 즐겁게 해주고 호흡하게 한 분에겐 은혜가 아니더냐?
너는 지금 어데로 가려느냐?
네가 갈곳은 헐렁한 곳이 아니란다.
천당은 올라가는 곳이다.
넌 네몸이 가볍다고 생각하느냐?
사람을 죽인 일, 뱃속의 자식을 죽인 일, 남의 아내와 간음한 일, 도적질 한 일, 거짓말 한 일, 속여 빼앗는 일, 개 같은 짓, 점치는 일, 무엇을 만들어 놓고 절한 일, 조물주를 무시하고 네 맘대로 신을 만들어 섬긴 죄가 하나라도 있으면 네 몸이 무거워서 올라갈 수 없느니라.
넌 전쟁, 난리 때문이라 한다만 그게 왜 생기는지 알기나 하느냐?
죄 없는 사람은 죄를 씌워서 죽이고 속여 빼앗는 일이 생기고 네계집 내남편이 흐려지고, 음란하고 술취해 방탕하고 조물주를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그게 무너져 내리는게 난리란다.
넌 너의 그 무거운 죄짐을 벗겨준다고 한 이를 무시하던 너.
천당이 어데있냐? 조롱하던 너.
왜 그리 우짖느냐?
네 소리에 좇아올 사람이 있는게냐?
어느 누가 네 대신 지옥 가겠느냐?
네 대신 죽어 주겠느냐?’
“무서워요. 무서워요. 어쩌면 좋아요.”
윤공의 머리속에선 방황, 갈등, 초조, 공포, 고통, 회한이 뒤범벅되어 윤공을 채찍질한다.
“아이구머니!”
윤공은 아이구머니만 찾는다. 점점 소리가 굵어지기 시작한다.
상길네 식구들은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별 수가 없어 대신할 수 없는 죽는 것이 쏘아 대는 걸 찾아 꺼낼양 윤공을 초조히 지켜본다.
등잔불은 희미한게 등경위에서 가냘프게 방안을 밝힌다. 마루의 기둥에도 유리등을 걸어 놓았다. 유리등은 뜰방과 마당을 어스름하게 밝힌다.
모기, 불나방은 유리등을 뚫고 들어가려 기를 쓴다. 띄엄띄엄 불나방이 등에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욱툭거린다. 불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 논 것인양 사정없이 달려들어 유리에 부딪친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좀더 약삭빠른 것들은 눈이 좀 밝은 것은 방안의 등잔불로 쏜살같이 뛰어든다.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그때마다 등잔불은 껌벅거리길 자주 한다.
바람은 더위에 늘어져 어데 갔는지 끝도 보이질 않는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가슴이 짓눌려 호떡마냥 납작해졌다. 불거진 눈망울들은 가냘픈게 모기소리보다 굵어지기 시작하는 윤공의 숨소리를 쫓아다닌다. 윤공은 얼굴을 조금씩 움직인다. 조금씩 떤다. 그는 동산같은 벌거숭이 배를 두손으로 잔뜩 끌어 안는다.
얼굴을 찡그렸다 폈다 하길 빨리한다. 몸을 좌우로 요동하기 시작한다.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야단이다.
“나 죽네, 나 죽네!”
신음 소리는 몸을 움직일 때부터 외마디 소리로 변했다.
은부인은 상길이에게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라고 시킨다.
상길이는 불이 나게 뛰어나간다.
의사는 상길이를 따라 상길네 집으로 들어온다. 은부인은 뜰방에 내려서서 의사를 반겨 맞는다. 상길네 식구들은 의사를 반기느라 자리에서 일어나 맞는다.
의사가 윤공 곁에 앉자 그를 지켜보며 자리에 모두 앉는다. 의사는 누런 소가죽 가방에서 필통같은 걸 꺼내고 그속에서 주사기를 꺼내 놓고 조그만 상자를 꺼내서는 그 속에서 조그만 약병을 꺼내 천천히 약병 주둥이를 깬다. 그리고는 주사기로 약물을 빨아낸다.
상길네 식구들은 의사의 손끝따라 고개가 따라 다닌다. 그들의 눈에는 의사의 손끝에서 기적 같은게 일어나길 고대하는게 가득가득 담겨졌다.
의사는 윤공의 팔을 잡는다.
윤공은 질겁한다. 잡힌 팔을 빼내려 왼손으로 의사의 손을 밀쳐 거머리 떼어내듯 떼어 떨친다. 그의 입에서 는 애간장 녹이는 구슬픈 비명소리가 사람을 말리느라 불을 지핀다.
상길인 지켜보다 사정없이 그의 아버지의 팔을 두손으로 움켜잡는다.
의사는 주사를 놓는다.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주사기와 약병을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서둘러 방을 나간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은부인과 열이는 의사에게 인사를 한다.
의사는 고개만 조금 끄덕하고 돌아간다.
의사가 삽짝을 나간 후 윤공은 신음을 뚝 그치고 잠잠해졌다. 잠에 취한 것처럼 보인다. 얼마동안 그러고 있던 그는 가슴을 들먹거리기 시작한다.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밥 한 그릇 먹을 시간이 또 지났다. 그는 퉁겨져 벌떡 일어난다. 양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뭉그러지라고 움켜잡고 또 긁어 잡는다. 그리고 뭉기적거린다. 이리 돌고 저리 돈다.
“어머니! 나 죽네, 나는 죽어요.”
그의 외마디 소리는 길게 꼬리를 달고 내뺀다.
윤공의 식구들은 찔끔하여 두리번거려 그의 얼굴을 살펴 찾는다.
그는 두 팔을 허우적댄다. 몸뚱아리는 천천히 맷돌질을 친다. 그는 주사 맞기 전보다 더 크게 소리친다. 잔뜩 힘이 실렸다.
상길이는 의사에게 뛰어간다.
“선생님, 저의 아버지를 봐주세요.”
그는 의사네 집 삽짝에서부터 소리치며 뛰어든다.
“내가 가도 아버지께 아무 소용이 없구나.”
의사는 심드렁해서 엉덩이를 들 낌새를 보이질 않는다. 계란으로 바위 깨려는 짓이나 다를게 없다는게 입언저리에 흘렸다.
“아버지가 안 아프게만 해 주세요. 예! 어서요. 선생님!”
의사는 상길이의 간청에 못이겨 맥없이 다시 상길네 집으로 그를 따라 들어간다. 은부인은 방에서 나와 마루에 서서 그를 맞는다.
윤공은 그의 딸 열이와 상길이의 부축을 받아 힘들게 주사를 맞는다.
의사는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은부인에게 위로를 한다.
은부인은 의사가 뭐라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건성건성 “예, 예” 한다. 의사는 측은한 얼굴을 하고 상길네 집을 나간다.
윤공은 아까와 다르다. 빈 주사침만 맞은 사람같다. 그는 계속 “어머니, 나는 죽어.” 하는 절규만 계속한다. 그의 식구들은 모두가 괴로운 눈물로 씻겨지느라 쓰리고 아파 끙끙거린다.
윤공의 신음 소리는 조금씩 잦아든다. 방안을 헤매이던 몸둥아리도 소리를 따라간다. 그는 뒷문을 향헤 멈춰 섰다. 그리고 두손을 번갈아 휘젓는다.
그는 손으로 목에서 무엇을 잡아뗀다. 떼어서는 방바닥에 내던진다.
이제는 왼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오른손으로만 떼어 낸다. 목을 할퀴어 잡는다. 그리고는 잡아 당긴다. 손에 잡힌 껍질은 손을 따라 끌려나온다. 그러다간 홱 뿌리친다. 그는 또 잡고 끌어낸다.
목줄기는 고무줄이 되어 그의 손을 뿌리친다. 그리고 도망친다. 그의 손가락은 목에 씌워져 조여대는 올가미를 벗기는 시늉을 계속한다.
목울대 껍데기는 견디기 힘들다고 빨개져 버렸다. 그는 올가미를 손가락에 겨우 걸은듯 목을 잡은 채 헐떡거린다. 코에서는 풀무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소린 사람을 통째 삼키려 덤비는 불소리 같이 강제로 겁을 먹인다.
열이는 마루에 앉아 그녀의 아버지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아버지, 천국 가실 준비 되셨나요?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찾으세요. 믿으세요...”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을 말하지 못한다. 주눅들어 버린 입술은 엄두를 못낸다.
웃방에는 윤공의 어린 자녀들이 활개를 치고 잠을 잔다.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가 풀무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임을 멈추자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불러 본다.
윤공은 고개를 떨군 채 칠자 모양을 하고 팔을 짚고 앉아 있다.
상길이는 다가간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부축해 뒤에서 끌어안는다.
그는 윤공의 얼굴을 보려 오른쪽으로 몸을 수그리고 고개를 돌려 올려다본다.
그는 대번 흠칫하고 소스라쳐 놀란다. 윤공의 눈에는 검은 눈동자가 없어졌다. 그는 난생 처음 눈동자가 없는 눈을 보았다. 이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두려워 겁에 질린다. 그는 윤공을 뒷문을 향해 모로 뉘인다. 열이는 베개를 상길이에게 건네준다. 상길이는 베개를 받아 아버지를 베어 준다. 그리고 지체 않고 물러나 앉는다. 그는 계속 그의 아버지를 지켜보며 아무 말이 없다.
이윽히 아들의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은부인은 아들을 부른다.
상길이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본다.
“고단한데 웃방에 가서 자거라.”
“괜찮아, 엄니나 주무세요.”
“나는 괜찮다. 내가 있을테니 열이 너도 올라가 자거라.”
“어머니나 좀 쉬세요.”
“새벽이라 스산하구나! 방으로 들어오거라.”
열이는 방으로 들어와 앉는다. 그러자 은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들이 잘자고 있는지...”
그녀는 혼잣말처럼 지껄이며 마루로 나가 웃방으로 올라간다. 은부인은 배를 내놓고 아무렇게 자고 있는 자녀들에게 베게도 베어주고 걷어차 버린 홑이불도 덮어 주고 다독거려준다.
“이것들이 언제 커서 사람 노릇을 할까?”
그녀는 일어나 방을 나가려다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곤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그녀는 치마자락으로 코밑을 훔쳐댄다.
“너는 착해서 늦게라도 자식을 서넛은 더 둘 줄 안다. 우리 집이 잘 되려고 네가 내 며느리가 되었다는 것을 내가 안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하던 말을 떠올리며 앞으로 혼자 키워야 할 어린 자식들의 앞날을 복빌어준다.
“땡땡, 땡땡, 땡땡.”
교회당의 종소리는 한삼내의 새벽을 일깨운다.
은부인은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종소리에 벌떡 일어나 남편 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을 넘겨다 본다. 조금 길게 살펴본다. 그리고는 남편의 어깨와 팔을 쓰다듬어준다.
“낮에는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구나!”
말하는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남편의 얼굴을 지켜본다.
그녀의 태도는
‘이제 당신두 내 말을 더 못듣게 되었구려.’
하는 게 서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가?’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가 죽는다는게 도무지 실감이 가지 않는다.
“열이야, 나가서 밥좀 하려므나. 오늘은 일찍 밥을 해먹고 치우자.”
열이는 부엌으로 나간다. 은부인은 딸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열이는 휘청거려 걷는다.
은부인의 귀에는
“이를 어째!”
하는 외마디 소리가 벼락치듯 한다.
그녀는 크게 가슴이 메어지게 숨을 들이마신다.
윤공의 눈, 희기만 하던 뽀얀하던 것은 눈에 뜨이지 않게 도는게 강냉이 자라듯 한다. 눈꺼풀은 내려올 것을 잊어버렸다.
그는 친구로부터 정성스러운 물세례를 받았다. 그의 친구가 삽짝을 나간 조금 후의 일이다. 윤공의 눈동자는 제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앉는다. 할딱거리던 혀도 눈을 따라 드러눕고 만다.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열이는 소리를 내어운다.
열이의 동생들도 따라서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고, 아이고 아버지...
불쌍한...”
상길이는 입을 꼭 다물고 그의 아버지를 내려다만 본다. 그는 어른들의 시키는대로 아버지의 눈을 감겨주려고 오른손으로 눈꺼풀을 쓸어 내린다. 눈꺼풀은 내려왔다 올라간다. 도무지 내려올 낌새는 아예 없어진 것 같다.
얼마 동안 손자가 하는 짓을 바라보던 라부인은 입을 연다.
“그만 두거라. 할 일을 다 못하고 죽는 사람은 죽어도 눈을 못 감는단다.
에고 에고, 상길아베가 죽다니. 상길아베 나좀 보라구. 아이구 이게 무슨 벼락이냐?
에고 에고, 우린 어째 살라고 혼자만 먼저 가나...”
그녀는 넋두리를 하며 방성대곡 한다. 손바닥으로 마루를 꽝꽝 두드린다.
“어머님, 어머님. 참으세요. 진정하세요.”
은부인은 라부인을 위로한다.
“아이구...하늘도 무심하지. 죄 많은 년이나 데려가지. 우린 누굴 믿고 살으라구...”
“어머님, 자식 노릇 하기 싫어 혼자 도망갔는데 서러우세요?”
은부인은 시어머니를 위로하며 따라 울어버린다.
“우리 동네 일꾼이 가버렸어. 사람이 산다는게 무엇인지. 원?”
“안방 용마루 밑이 웅덩이가 생겼으니 살 수가 없지.”
“아들 때문에 속을 썩히더니 결국 죽었구먼.”
“윤공의 여편네가 예수 믿는 아들만 감싸더니.”
동네 영감들은 상길네 집 삽짝밖 행길가에 둘러앉아 한마디씩 지껄인다. 동네 가운데 우물가에서 저녁 보리쌀을 닦는 아낙네들도 초상집 이야기다.
“서방이 죽었는데두 곡을 안한다며?”
“제 딸이 우는데 못 울게 했다면서?”
“상길이 그 놈은 곡을 않는다며.”
“그런 것들이 있담.”
“동네가 챙피하네.”
동네 정자나무 아래서도 상길네를 매도하느라 게거품이 일고 있다.
“문상두 안받는다며. 제 애비가 죽었는데. 그러다니! 망할놈 같으니!”
“자네는 넘의 일에 열내지 말게나.”
“이친구 답답하긴.”
“누가 답답한지 모르겠네. 엣말에두 넘의 제사에는 건을 쓰고 덤비지 말고 감놔라 대추 놔라고도 말랬어.”
“동네가 챙피스러워유. 동네에서 내쫓으면 쓰겠네.”
“나중에 내 자식은 어떨지 아는가?”
“이 사람들아, 엔간히 떠들어. 정자나무 뽑히겠어.”
상길네집 안방 가운데에는 병풍이 쳐져 남과 북을 갈라 버렸다. 병풍 앞에는 은부인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무릎에는 막내 아들을 안고 있다. 옥길이는 아까부터 더욱 칭얼거린다.
은부인은 막내 아들의 부어오른 오른쪽 허벅지를 쉬지 않고 쓰다듬는다. 그녀의 이마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열심히 송글거린다. 땀방울은 그녀의 얼굴에 고랑을 내기라도 할양 꼬리를 물고 흘러내린다.
옥길이 얼굴은 뚱뚱 부어올라 빨갛게 기승을 부리는 다리보다 진하게 달아올라 있다. 땀으로 목욕을 한다.
은부인은 열심히 중얼거린다.
“여보, 내말이 들리세요. 우리 옥길이 다리를 낫게 해줘요. 아픈 것을 모두 가져가요.”
그녀는 시어머니의 권에 못 이겨 방문이 모두 닫혀진 가운데 홀로 누워있는 남편의 시신 앞에서 염원을 한다.
안방 아궁이는 쉬지를 못한다. 음식을 만드느라 이글거리며 방구들을 달군다. 방구들은 뜨끈거리며 삼을 굽는다. 은부인은 얼마를 견디지 못하고 안방을 나온다. 젖은 적삼소매로 얼굴을 훔친다.
“내가 바보짓을 했지. 죽은이가 무얼 안다구. 내일은 병원에 가보자.
에미가 멍청해서 너를 생으루 고생시키는구나. 우리 옥길이 착하지.
조금만 참아라. 내일은 의사 선생님한테 가보자. 어 착하지.”
그녀는 막내 아들을 동보지 못한 것을 아들에게 사과한다.
저녁때가 조금 넘었다.
닫혔던 안방의 방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는다. 시체를 가렸던 병풍도 접어 밖으로 내어놓는다. 시신을 방 가운데로 옮겨놓는다.
상길이는 아버지의 시신을 보는 순간 섬뜩하여 진저리를 친다. 하룻밤 사이에 너무나 변했기 때문이다. 감기지 못했던 눈은 꾹 눌려져서 강제로 덮여졌다. 입은 누가 잔뜩 얽어매 놓은 것 같다. 이젠 각오가 섰어도 벌써 섰다는게 보이느라, 턱이 그렇게 오그라 붙었다는 느낌을 준다.
얼굴은 온통 이마까지 먹물이 배어 나왔다. 몸뚱이도 새까만 얼룩소를 닮아졌다. 구멍뚫린 옆구리에서는 검붉은 물이 졸졸거린다.
윤공의 친구 종환팔이와 환영월이가 염습한다. 상나무 삶은 물로 솜에 적셔 세수를 시킨다. 화장시키는 흉내를 낸다.
신랑이 초례청에 섰을 때의 모습을 만드느라 비지 땀을 흘린다. 명주바지 저고리를 입힌다. 도포도 입힌다. 머리에는 윤건같은 걸 씌운다.
얼굴은 검은 망사로 가려 묶는다. 삼베 홑이불로 감싼다. 삼베를 찢어 끈을 만들어 칠등분하여 묶는다.
“엄마, 왜 묶어. 아버지를 왜 묶어. 엄마, 엄마. 끌러놔. 아버지 묶으면 죽어.”
다섯 살짜리 만길이는 저희 엄마를 붙잡고 떼를 쓰며 사정을 한다.
“아버지는 죽어서 묶는 거란다.”
그녀는 아들을 쓰다듬으며 다독거린다.
“아냐, 끌러놔. 자는 거잖아!”
만길이는 저의 엄마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자고 들어가서 끌러노라고 앙탈을 부린다.
“누이가 업어줄께.”
“싫어, 싫어. 아빠 끌러.”
열이는 힘을 다해 만길이를 들쳐업고 비실거리며 삽짝 밖으로 나간다.
윤공의 시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섯 살짜리의 떼쓰는 소리에 가슴을 저민다.
종환팔이와 환영월이는 염습을 끝내고 시신을 입관한 후 우물에 나와 손을 씻는다. 땀에 흥건한 얼굴도 씻고 팔도 씻는다. 상길이도 손을 씻는다.
동네 아낙네들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상복을 꿰맨다. 종환팔이와 환영월이는 술상을 마주하고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아 막걸리를 마신다. 종환팔이는 술사발을 들고 서너모금 마시고는 숨을 돌리느라 술사발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돼지고기 삶은 것 한점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소금을 꾹꾹 찍어 입에 넣는다. 그의 손은 안방을 가리킨다.
“저놈...”
환영월이는 젓가락을 따라 안방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어. 저놈이.”
“예끼, 후레자식. 몽둥이로 그냥...”
“때려죽일 놈!”
그들은 몹시 흥분하여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다고 언성을 크게 하여 욕을 한다.
은부인은 부엌에서 나오다 그들이 욕하는걸 듣는다. 그녀는 당황하여 안방 마루를 찾는다. 더듬거리던 그녀는 건을 쓰고 앉아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안도의 숨을 쉰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몸도 따라 돌아선다. 환영월이를 쳐다본다. 그녀의 눈은 꼬끄랑해져 있다.
“너무 빠르십니다. 죽은 사람 눈어덕도 꺼지지 않았는데 후레자식이라니. 어데다가 욕을 하는거요.”
그녀는 천천히 또박또박 나무란다.
그들은 은부인의 말에 독오른 고추 먹은 입이 되어 귓부리가 붉고만다. 마당의 사람들은 종가, 환가를 나무라는 눈으로 바라본다.
은부인은 천천히 마루로 다가간다.
“건은 장가 간 사람이나 쓰는 것이란다.”
“쓰면 되는 거지. 누가 쓰라구 해야 쓰는 건가? 왜 욕해? 내가 건 쓰면 저희들에게 손해 가나?”
“예법이 있단다.”
“그렇게 예법 찾는 것들이 저희 애비 죽었을 때 무덤에서 살았나?
집구석에서 잔 것들이. 그런 게 누굴 욕해? 족보도 없는 새끼들이 예법 좋아하네.”
상길이는 웅변 연습이나 하는 것 같다.
“어른들에게 누가 욕한다던.”
상길이는 쓰게 웃는다. 이마에 힘줄이 불거진다.
“누가 송장 치워 달랬냐? 너희들 아니라두 우리 아버지는 내가 져다가 묻을 거다. 다 가버려. 다 가라구. 누가 욕하냐? 대 놓구 욕해봐라.
사내자식답게 썩 나서봐. 뒷구멍에서 욕하는 못난 것들이. 부끄럽지두 않냐? 족보두 희미한 것들이. 내가 너희보다 열배는 양반이야...”
그는 눈을 독으리고 조소하며 큰소리로 내갈긴다.
마당에서 바느질하던 아낙들은 뜰방 위로 내려서서 호기를 부리는 상길이를 멀건히 손을 놓고 지켜본다.
문상와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 윤수, 상길이 외삼촌의 얼굴은 숨을 쉬느라 고개를 제끼고 하늘을 마주한다.
상길이는 건을 두손으로 잡아채 벗어서 상복담은 광주리에 동댕이친다.
“어린 것이 기도 안죽고, 나중에 뭐가 될꼬...”
은부인은 넋을 놓고 아들을 바라본다.
다음날 아침이다. 상길네집 마당에는 상여가 떠나려 한다. 상길이는 머리에 삼을 섞어 만든 새끼줄을 쓰고 중단을 입고 동아줄 같은 새끼로 허리를 감았다.
그는 상여 뒤에 섰다가는 변소로 달려간다. 변소에서 나오는 그의 얼굴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슬픔에 잠긴다.
상여는 삽짝을 나간다. 상길이는 상여 뒤를 따라간다. 여덟살 먹은 승길이도 저희 형의 뒤를 따라간다. 상여는 천석산을 향해 천천히 움직인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허
북망산이 멀다더니 삽짝 밖이 북망일세 어허 어허
이팔청춘 홍안들아 백발보고 웃지마라 어허 어허
이내몸도 어저께는 죽을 것을 몰랐단다 어허 어허
기를 쓰고 모았던 돈 애석하고 애닲구나 어허 어허
여보시오 친구님네 나와 같이 동행하고 어허 어허
친구친구 좋다지만 어느 친구 동행할까 어허 어허
불쌍하다 나의 인생 누가 나를 살려주나 어허 어허
여보시오 동네 사람 선행을 쌓고 오소 어허 어허
이세상을 떠날 때는 지은 죄를 가져가네 어허 어허
길고 굵게 살아본들 백년 이내 죽는다네 어허 어허”
동네 사람들은 행길에 나와 서서 윤공의 가는 길을 지켜본다.
상여에서는 검고 누런물이 한발짝 두발짝 간격으로 돔방돔방 떨어진다. 떨어진 물방울은 기름이 씌워져 있다. 상여 뒤를 따라가는 조문객들의 눈에는 보여지질 않는다. 녹두알 만한 것은 검게 반짝거린다.
“아무리 먹고 마셔도 이렇게 흐르는 것을,
흘러서 텅 비는 것을,
물까지도 못 가져가는 것을
내가 이제사 알았다네.
아침 안개같은 인생은
해가 오르면 스러지는 것을,
베짜는 북보다 빠른 것을,
어제 죽은 이내몸이 오늘에 썩는 것을
살았을제 알았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목이 곧아 몰랐다네.
상여 속의 탄식을 외면치 말아라
귀에만 들려야 소리더냐
못본 체 말아라
못본 체 한다고 없는 거냐
웅덩이에 빠질라
네 몸은 네가 위해야 하느니.”
검고 누렇고 기름진 물은 소릴 머금고 흘긴다.
상여는 상거리를 지나자 걸음을 빨리 한다.
은부인은 남편이 누워있던 방을 쓸어낸다.
‘당신은 그렇게 가고야 말 것을
죽기가 그렇게두 힘드는 것을
나와 조금 더 싸우다 가실 것을
맹물도 소화를 못 시키는 당신을
물까지도 못 가져가는 것을
죽으면 이렇게 썩은 물을 흘리고 마는 것을...’
그녀는 방을 닦아 내며 삶을 깨물어 본다.
방을 깨끗이 하느라 장판을 걷어 내다 불을 놓는다. 그리곤 그녀는 삽짝 밖으로 나간다. 그녀의 발걸음은 들판으로 향한다. 은부인은 자기 논을 둘러본다. 시퍼런 벼포기는 그녀의 마음을 에인다.
남편의 손끝을 더듬는 그녀의 눈에는 설움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물고옆 논두렁에 그냥 털썩 주저앉는다. 이내 두다리를 뻗는다. 애닯고 슬픈 것을 흐느끼며 하나씩 꺼내 놓는다. 그러던 그녀는 우는 것도 복이 있어야 운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일으켜 세워지듯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물고의 물로 세수를 한다.
그녀는 끌려가는 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저녁 새때가 조금 지났다. 상길이와 승길이는 터덕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옷은 땀으로 흠씬 젖었다.
“아이 더워! 죽을뻔 했네.”
승길이는 마루에 걸터앉으며 지껄인다.
“덥지? 덥구말구. 어서 상복 벗거라.”
승길이 할머니는 안타까운 얼굴로 손자의 상복을 벗겨 준다.
“땀띠가 솟았구나. 어서 씻자구나.”
라부인은 손자를 데리고 우물로 간다.
상길이도 중단을 벗어서 제청마루 옆에다 걸어 놓는다.
“누님은 정신이 그렇게 없으세요. 오늘 들에 가보지 않으면 안되나요?
넘들이 저보구 뭐라는지 아세요?”
상길이 외삼촌은 안방에서 은부인에게 따지듯 나무란다.
“왜!”
“매형만 불쌍하답니다.”
“별소릴 다 하는갑다. 자기네가 우리 식구 먹여 살린다던?”
“그래두, 누님, 말 안할 사람 있겠수?”
그들의 말은 점점 커진다.
마당에는 윤공 장례를 치루느라 산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 가득하다.
“내가 남편을 출상하기가 바쁘게 논에 갔다구 욕하는 모양이다만 내 입장을 모르니까 그렇지. 몇날 며칠을 논에 못 갔었다.
내가 누가 있다구 먹고 살 걱정을 않겠냐? 흉 보겠슴 보라지. 내 남편이 죽었는데 자기네가 서럽구먼. 너는 내가 퍼대구 앉아 아이고 땜이나 하구 있슴 좋겠냐?
상길이가 제사상에 절을 않는다구 죽일 놈 살릴 놈 한다마는 누가 더 가깝냐? 애비와 자식이 가깝지. 네가 더 가까워? 주제를 알구 욕을 해야지. 너희들이 죽은이에게 무엇을 해줬냐? 무엇을 했다구 욕이냐?
병들어 죽은 것두 원통한데, 멀쩡한 아이보구 죽일 놈이라니. 어디서 굴러먹던 소리야? 사상은 다른 게야. 6.25 난리 때 못봤어? 부모두 자식 생각이 옳으면 따라야 집안이 흥하지.
제 부모 제가 위하지 넘이 위해주냐?
내 남편 내가 위하지 누가 위해주냐?
넘이 이래라 저래라 한다구 주척거리는게 집나래비지.”
윤수는 마루에 걸터앉아 형수가 빗대어 동네 사람들을 나무라는 말을 하나씩 새김질 해본다. 그의 얼굴은 송충이가 목으로 기어가는 것을 떼어 내지 못하고 붙들려 있는 모습이 된다.
동네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방안을 흘끔거린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자 친척과 문상객들은 땅거미에 썰물이라도 된 듯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던 소리가 없어진 넓은 뜨락은 을씨년스런 날씨가 찾아온걸 느끼게 한다. 안방 마루 끝에는 썰렁한 집안에 난로라도 된양 유리등이 하나 덜렁 걸려 어둠에 열기를 몽땅 빨리고 있다.
방문은 활짝 열어 젖혀졌다. 안방에는 큰 멍석을 장판 대신 깔아 놓았다. 집안 식구가 모두 안방에 모였다. 상길이 동생들은 윗목에서 나란히 드러누워 잠을 자려고 뒤척거린다. 은부인과 상길이와 열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쓸려가는 사람마냥 가는데까지 가본다는 의지가 내보이게 앉았다. 열이는 더 견딜수 없다고 입을 연다.
“삼촌이 오래 사셔야 하는데...”
그녀는 중얼거리듯 말끝을 흐린다.
“삼촌 찾지마. 나는 덕 볼 생각 없으니까.”
상길이는 저의 누나 말에 쌍지팡이를 짚고 일어난다. 갑자기 뱀이라도 덤비는 양 펄쩍 뛴다. 이내 짓이겨 죽이려 든다.
“오래 살라는 거지. 너보고 삼촌 덕보라던?”
“그이 이야길 뭣하러 해? 기분 잡치게.”
“왜, 하면 안 되냐?”
“그런 놈 때문에 신세 조졌다구.”
“넌 그러고도 교회 다니냐?”
“내가 예수 믿으니까 관두지. 그냥...”
상길이는 금방 억울함을 당하기나 한 것처럼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리고는 밖으로 휑하니 나가 버린다.
은부인은 아무 말도 않고서 아들과 딸의 말을 음미한다.
‘어림없지. 어릴 때 시동생이지...
핑게가 없는 판에 예수 믿는다구 꼴도 보기싫다고 했는데 상길이 눈에는 윤수가 원수처럼 삐딱하게 보이는 판이고...’
상길이는 저의 삼촌 말만 나오면 불에 기름이다. 아주 사정없이 달려든다. 윤수 말을 누가 하던 면박을 주고 씩씩댄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풀쐐기 마냥 쏘고 달려드니 저녀석은 아주 못돼먹었어. 내가 저희집에 와 있다구 그러는데...”
“너도 네 동생과 똑 같구나. 여기는 네집 아니구 넘의 집이냐? 그애 속을 몰라?”
“사람 속을 박박 긁어놓구...
친정에 오지 않아야 저꼴을 안보는데.”
“사람은 제설움에 운다더라. 이제사 네 동생 성질 아냐? 그앤 대전가서 아주 독이 올랐다. 그애가 너 왔다구 구박하는 소리냐? 어디 친정은 네집 아냐? 그리구 너한테 욕하는 소리냐 어디?
너를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하는 녀석인데. 말을 함부로 하는게 흠이라 그게 탈이지. 나한테 혼나는 것 몰라? 철들길 기다리는 수밖에.”
“주님! 나의 아버지를 회개시켜 예수믿고 천당가게 합소서. 이 일로 아버지의 마음이 녹아지게 하시어 회개하고 예수믿게 하여 주세요.
불쌍히 여기세요. 저는 아버지를 원망도 하고 욕도 많이 했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기를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의 앞에는 양은 대접과 작은 면도칼이 놓여 있다.
“너도 이 다음에 살아보면 알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 잘 되길 싫어한다던. 자나깨나 내 자식 잘되길 바라고 걱정하는게 부모란다. 지금은 네가 몰라서 욕한다만...”
그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르며 깊이깊이 찌르르함을 맛본다. 그의 얼굴은 붉어진다. 양쪽 볼이 불거져 나온다. 양은 그릇으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종아리를 움켜쥔 왼손도 칼을 든 손도 덜덜거린다. 살이 떨어져 손에 잡혔다. 그는 덜덜거리며 그릇에 담는다. 살점이 떨어져 움푹 패인 곳에서는 피가 녹아 내린다. 거긴 수수 모가지처럼 옹글 몽글하게 생겼다. 그는 광목 헝겊을 길게 찢어 상처를 여러겹으로 동여맨다. 헝겊은 감길 때마다 붉게 물을 들이운다.
뒷방문이 열린다.
“너...”
열이는 웃방에 들어가려고 문을 열고는 흠칫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양은 그릇에는 검붉은 피가 절반이 넘게 담겨 있다.
“누나, 이것 아버지께 드려.”
상길이는 양은 그릇을 누나에게 건네어 준다. 그의 손은 빨갛게 피범벅이 되었다.
그릇을 들고 있는 손은 가늘게 떤다.
열이는 그릇을 냉큼 받지 못한다. 손을 밀어내고 밀어내어 겨우 받는다.
다음날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다. 집안 공기는 장마철도 아닌데 사람을 안팎으로 짓눌러 답답하게 한다. 상길이는 마루에 앉았다가 아버지가 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르자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아버지 곁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윤공은 윤기 잃은 눈으로 그의 아들을 이윽히 올려다본다. 그의 숨소리는 고르지 못하다.
“상길아!”
“예.”
“정신차려 살아라.”
그는 말을 간신히 입밖으로 밀어낸다. 그리곤 힘에 겨워 헐떡인다.
눈꺼풀도 이내 덮여진다.
상길이는 쿵하는 소리따라 먼 하늘을 쳐다보곤 아득한 곳으로 떨어지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상길이는 부채를 찾아 들고 바람을 조금씩 일군다.
파리도 쫓아 준다. 편안하게 앉아서 그의 아버지를 간호한다.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죽으면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마는가?
새로운 세상으로 돌아가는가?
천당과 지옥은 있는 것인가?
아무것도 없다면 좋으련만.
지옥은 불속이라던데.
불속에서 죽지도 않고 영원히 고통만 당하는 곳이라던데.
죽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없다면 기가 막히고...
참으로 무서운 곳이지.
내가 거기에서...
아냐, 난 아냐. 없는 소릴 지어낸 거지.
나는 조금은 선하게 살았다구. 넘들과 설마 똑같을라구?
내가 없다고 우긴다구 있는게 없어지는 것두 아닌데...
그렇담 어쩐다.
그런데 저건 뭣하는 놈이여?
누굴 놀려.
야, 너는 무엇하는 놈이냐?
네 꼴을 보니 우습구나.
빤스 입은 것두 아니구 너절거리는걸 옷이라구 입었냐?
밑천이 보이겠다.
얼굴이 왜 시커먼 하냐?
배는 아이가 뱃냐?
돈이 많이 들었냐?
그런데 저것은 어데 많이 본놈 같네. 낯이 익은데.
나와 비슷하게 생겼네.
왜, 저기 누워있나?
이상하네.
금방 상해서 썩고 있구먼.’
“너는 깨끗한 놈 같구나? 그게 너란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윤공은 고개를 들 엄두도 못내고 두려움에 잠겨 웅덩이에 있는 시신을 내려다만 볼 뿐이다.
‘너는 죽게 된 사람을 구해준게 있다고 하는구나.
너는 네 아내를 두고도 딴 여자와 놀아난게 하나냐? 둘이냐?
남의 아내를 찝쩍거려 간음한게 한 번이냐? 두 번이냐?
너는 원래 거짓말을 모르느냐?
속여 빼앗은건 몇번이냐?
망할놈 죽일놈이라고 저주한게 몇 번이냐?
축복은 얼마나 했느냐?
네 자식에겐 얼마나 복을 빌었느냐?
넌 남 위해 몇 번이나 울어봤느냐?
자식들이 잘되라고 몇 번이나 울어봤느냐?
동포를 위해서도 울어봤느냐?
넌 이땅에서 열심히 한게 무엇이냐?
넌 너를 만든 분이 누구신지 그를 경외한 적이 있느냐?
넌 부모에게 불효한게 죄중엔 으뜸이라면서 너와 네 부모를 만든분을 업신여기고 모른 체 하는건 불효가 아니더냐?
너는 너를 구해 준 사람에게 결초 보은 한다면서 너를 먹이고 입히고 즐겁게 해주고 호흡하게 한 분에겐 은혜가 아니더냐?
너는 지금 어데로 가려느냐?
네가 갈곳은 헐렁한 곳이 아니란다.
천당은 올라가는 곳이다.
넌 네몸이 가볍다고 생각하느냐?
사람을 죽인 일, 뱃속의 자식을 죽인 일, 남의 아내와 간음한 일, 도적질 한 일, 거짓말 한 일, 속여 빼앗는 일, 개 같은 짓, 점치는 일, 무엇을 만들어 놓고 절한 일, 조물주를 무시하고 네 맘대로 신을 만들어 섬긴 죄가 하나라도 있으면 네 몸이 무거워서 올라갈 수 없느니라.
넌 전쟁, 난리 때문이라 한다만 그게 왜 생기는지 알기나 하느냐?
죄 없는 사람은 죄를 씌워서 죽이고 속여 빼앗는 일이 생기고 네계집 내남편이 흐려지고, 음란하고 술취해 방탕하고 조물주를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그게 무너져 내리는게 난리란다.
넌 너의 그 무거운 죄짐을 벗겨준다고 한 이를 무시하던 너.
천당이 어데있냐? 조롱하던 너.
왜 그리 우짖느냐?
네 소리에 좇아올 사람이 있는게냐?
어느 누가 네 대신 지옥 가겠느냐?
네 대신 죽어 주겠느냐?’
“무서워요. 무서워요. 어쩌면 좋아요.”
윤공의 머리속에선 방황, 갈등, 초조, 공포, 고통, 회한이 뒤범벅되어 윤공을 채찍질한다.
“아이구머니!”
윤공은 아이구머니만 찾는다. 점점 소리가 굵어지기 시작한다.
상길네 식구들은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별 수가 없어 대신할 수 없는 죽는 것이 쏘아 대는 걸 찾아 꺼낼양 윤공을 초조히 지켜본다.
등잔불은 희미한게 등경위에서 가냘프게 방안을 밝힌다. 마루의 기둥에도 유리등을 걸어 놓았다. 유리등은 뜰방과 마당을 어스름하게 밝힌다.
모기, 불나방은 유리등을 뚫고 들어가려 기를 쓴다. 띄엄띄엄 불나방이 등에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욱툭거린다. 불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 논 것인양 사정없이 달려들어 유리에 부딪친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좀더 약삭빠른 것들은 눈이 좀 밝은 것은 방안의 등잔불로 쏜살같이 뛰어든다.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그때마다 등잔불은 껌벅거리길 자주 한다.
바람은 더위에 늘어져 어데 갔는지 끝도 보이질 않는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가슴이 짓눌려 호떡마냥 납작해졌다. 불거진 눈망울들은 가냘픈게 모기소리보다 굵어지기 시작하는 윤공의 숨소리를 쫓아다닌다. 윤공은 얼굴을 조금씩 움직인다. 조금씩 떤다. 그는 동산같은 벌거숭이 배를 두손으로 잔뜩 끌어 안는다.
얼굴을 찡그렸다 폈다 하길 빨리한다. 몸을 좌우로 요동하기 시작한다.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야단이다.
“나 죽네, 나 죽네!”
신음 소리는 몸을 움직일 때부터 외마디 소리로 변했다.
은부인은 상길이에게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라고 시킨다.
상길이는 불이 나게 뛰어나간다.
의사는 상길이를 따라 상길네 집으로 들어온다. 은부인은 뜰방에 내려서서 의사를 반겨 맞는다. 상길네 식구들은 의사를 반기느라 자리에서 일어나 맞는다.
의사가 윤공 곁에 앉자 그를 지켜보며 자리에 모두 앉는다. 의사는 누런 소가죽 가방에서 필통같은 걸 꺼내고 그속에서 주사기를 꺼내 놓고 조그만 상자를 꺼내서는 그 속에서 조그만 약병을 꺼내 천천히 약병 주둥이를 깬다. 그리고는 주사기로 약물을 빨아낸다.
상길네 식구들은 의사의 손끝따라 고개가 따라 다닌다. 그들의 눈에는 의사의 손끝에서 기적 같은게 일어나길 고대하는게 가득가득 담겨졌다.
의사는 윤공의 팔을 잡는다.
윤공은 질겁한다. 잡힌 팔을 빼내려 왼손으로 의사의 손을 밀쳐 거머리 떼어내듯 떼어 떨친다. 그의 입에서 는 애간장 녹이는 구슬픈 비명소리가 사람을 말리느라 불을 지핀다.
상길인 지켜보다 사정없이 그의 아버지의 팔을 두손으로 움켜잡는다.
의사는 주사를 놓는다.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주사기와 약병을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서둘러 방을 나간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은부인과 열이는 의사에게 인사를 한다.
의사는 고개만 조금 끄덕하고 돌아간다.
의사가 삽짝을 나간 후 윤공은 신음을 뚝 그치고 잠잠해졌다. 잠에 취한 것처럼 보인다. 얼마동안 그러고 있던 그는 가슴을 들먹거리기 시작한다.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밥 한 그릇 먹을 시간이 또 지났다. 그는 퉁겨져 벌떡 일어난다. 양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뭉그러지라고 움켜잡고 또 긁어 잡는다. 그리고 뭉기적거린다. 이리 돌고 저리 돈다.
“어머니! 나 죽네, 나는 죽어요.”
그의 외마디 소리는 길게 꼬리를 달고 내뺀다.
윤공의 식구들은 찔끔하여 두리번거려 그의 얼굴을 살펴 찾는다.
그는 두 팔을 허우적댄다. 몸뚱아리는 천천히 맷돌질을 친다. 그는 주사 맞기 전보다 더 크게 소리친다. 잔뜩 힘이 실렸다.
상길이는 의사에게 뛰어간다.
“선생님, 저의 아버지를 봐주세요.”
그는 의사네 집 삽짝에서부터 소리치며 뛰어든다.
“내가 가도 아버지께 아무 소용이 없구나.”
의사는 심드렁해서 엉덩이를 들 낌새를 보이질 않는다. 계란으로 바위 깨려는 짓이나 다를게 없다는게 입언저리에 흘렸다.
“아버지가 안 아프게만 해 주세요. 예! 어서요. 선생님!”
의사는 상길이의 간청에 못이겨 맥없이 다시 상길네 집으로 그를 따라 들어간다. 은부인은 방에서 나와 마루에 서서 그를 맞는다.
윤공은 그의 딸 열이와 상길이의 부축을 받아 힘들게 주사를 맞는다.
의사는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은부인에게 위로를 한다.
은부인은 의사가 뭐라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건성건성 “예, 예” 한다. 의사는 측은한 얼굴을 하고 상길네 집을 나간다.
윤공은 아까와 다르다. 빈 주사침만 맞은 사람같다. 그는 계속 “어머니, 나는 죽어.” 하는 절규만 계속한다. 그의 식구들은 모두가 괴로운 눈물로 씻겨지느라 쓰리고 아파 끙끙거린다.
윤공의 신음 소리는 조금씩 잦아든다. 방안을 헤매이던 몸둥아리도 소리를 따라간다. 그는 뒷문을 향헤 멈춰 섰다. 그리고 두손을 번갈아 휘젓는다.
그는 손으로 목에서 무엇을 잡아뗀다. 떼어서는 방바닥에 내던진다.
이제는 왼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오른손으로만 떼어 낸다. 목을 할퀴어 잡는다. 그리고는 잡아 당긴다. 손에 잡힌 껍질은 손을 따라 끌려나온다. 그러다간 홱 뿌리친다. 그는 또 잡고 끌어낸다.
목줄기는 고무줄이 되어 그의 손을 뿌리친다. 그리고 도망친다. 그의 손가락은 목에 씌워져 조여대는 올가미를 벗기는 시늉을 계속한다.
목울대 껍데기는 견디기 힘들다고 빨개져 버렸다. 그는 올가미를 손가락에 겨우 걸은듯 목을 잡은 채 헐떡거린다. 코에서는 풀무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소린 사람을 통째 삼키려 덤비는 불소리 같이 강제로 겁을 먹인다.
열이는 마루에 앉아 그녀의 아버지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아버지, 천국 가실 준비 되셨나요?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찾으세요. 믿으세요...”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을 말하지 못한다. 주눅들어 버린 입술은 엄두를 못낸다.
웃방에는 윤공의 어린 자녀들이 활개를 치고 잠을 잔다.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가 풀무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임을 멈추자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불러 본다.
윤공은 고개를 떨군 채 칠자 모양을 하고 팔을 짚고 앉아 있다.
상길이는 다가간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부축해 뒤에서 끌어안는다.
그는 윤공의 얼굴을 보려 오른쪽으로 몸을 수그리고 고개를 돌려 올려다본다.
그는 대번 흠칫하고 소스라쳐 놀란다. 윤공의 눈에는 검은 눈동자가 없어졌다. 그는 난생 처음 눈동자가 없는 눈을 보았다. 이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두려워 겁에 질린다. 그는 윤공을 뒷문을 향해 모로 뉘인다. 열이는 베개를 상길이에게 건네준다. 상길이는 베개를 받아 아버지를 베어 준다. 그리고 지체 않고 물러나 앉는다. 그는 계속 그의 아버지를 지켜보며 아무 말이 없다.
이윽히 아들의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은부인은 아들을 부른다.
상길이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본다.
“고단한데 웃방에 가서 자거라.”
“괜찮아, 엄니나 주무세요.”
“나는 괜찮다. 내가 있을테니 열이 너도 올라가 자거라.”
“어머니나 좀 쉬세요.”
“새벽이라 스산하구나! 방으로 들어오거라.”
열이는 방으로 들어와 앉는다. 그러자 은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들이 잘자고 있는지...”
그녀는 혼잣말처럼 지껄이며 마루로 나가 웃방으로 올라간다. 은부인은 배를 내놓고 아무렇게 자고 있는 자녀들에게 베게도 베어주고 걷어차 버린 홑이불도 덮어 주고 다독거려준다.
“이것들이 언제 커서 사람 노릇을 할까?”
그녀는 일어나 방을 나가려다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곤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그녀는 치마자락으로 코밑을 훔쳐댄다.
“너는 착해서 늦게라도 자식을 서넛은 더 둘 줄 안다. 우리 집이 잘 되려고 네가 내 며느리가 되었다는 것을 내가 안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하던 말을 떠올리며 앞으로 혼자 키워야 할 어린 자식들의 앞날을 복빌어준다.
“땡땡, 땡땡, 땡땡.”
교회당의 종소리는 한삼내의 새벽을 일깨운다.
은부인은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종소리에 벌떡 일어나 남편 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을 넘겨다 본다. 조금 길게 살펴본다. 그리고는 남편의 어깨와 팔을 쓰다듬어준다.
“낮에는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구나!”
말하는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남편의 얼굴을 지켜본다.
그녀의 태도는
‘이제 당신두 내 말을 더 못듣게 되었구려.’
하는 게 서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가?’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가 죽는다는게 도무지 실감이 가지 않는다.
“열이야, 나가서 밥좀 하려므나. 오늘은 일찍 밥을 해먹고 치우자.”
열이는 부엌으로 나간다. 은부인은 딸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열이는 휘청거려 걷는다.
은부인의 귀에는
“이를 어째!”
하는 외마디 소리가 벼락치듯 한다.
그녀는 크게 가슴이 메어지게 숨을 들이마신다.
윤공의 눈, 희기만 하던 뽀얀하던 것은 눈에 뜨이지 않게 도는게 강냉이 자라듯 한다. 눈꺼풀은 내려올 것을 잊어버렸다.
그는 친구로부터 정성스러운 물세례를 받았다. 그의 친구가 삽짝을 나간 조금 후의 일이다. 윤공의 눈동자는 제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앉는다. 할딱거리던 혀도 눈을 따라 드러눕고 만다.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열이는 소리를 내어운다.
열이의 동생들도 따라서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고, 아이고 아버지...
불쌍한...”
상길이는 입을 꼭 다물고 그의 아버지를 내려다만 본다. 그는 어른들의 시키는대로 아버지의 눈을 감겨주려고 오른손으로 눈꺼풀을 쓸어 내린다. 눈꺼풀은 내려왔다 올라간다. 도무지 내려올 낌새는 아예 없어진 것 같다.
얼마 동안 손자가 하는 짓을 바라보던 라부인은 입을 연다.
“그만 두거라. 할 일을 다 못하고 죽는 사람은 죽어도 눈을 못 감는단다.
에고 에고, 상길아베가 죽다니. 상길아베 나좀 보라구. 아이구 이게 무슨 벼락이냐?
에고 에고, 우린 어째 살라고 혼자만 먼저 가나...”
그녀는 넋두리를 하며 방성대곡 한다. 손바닥으로 마루를 꽝꽝 두드린다.
“어머님, 어머님. 참으세요. 진정하세요.”
은부인은 라부인을 위로한다.
“아이구...하늘도 무심하지. 죄 많은 년이나 데려가지. 우린 누굴 믿고 살으라구...”
“어머님, 자식 노릇 하기 싫어 혼자 도망갔는데 서러우세요?”
은부인은 시어머니를 위로하며 따라 울어버린다.
“우리 동네 일꾼이 가버렸어. 사람이 산다는게 무엇인지. 원?”
“안방 용마루 밑이 웅덩이가 생겼으니 살 수가 없지.”
“아들 때문에 속을 썩히더니 결국 죽었구먼.”
“윤공의 여편네가 예수 믿는 아들만 감싸더니.”
동네 영감들은 상길네 집 삽짝밖 행길가에 둘러앉아 한마디씩 지껄인다. 동네 가운데 우물가에서 저녁 보리쌀을 닦는 아낙네들도 초상집 이야기다.
“서방이 죽었는데두 곡을 안한다며?”
“제 딸이 우는데 못 울게 했다면서?”
“상길이 그 놈은 곡을 않는다며.”
“그런 것들이 있담.”
“동네가 챙피하네.”
동네 정자나무 아래서도 상길네를 매도하느라 게거품이 일고 있다.
“문상두 안받는다며. 제 애비가 죽었는데. 그러다니! 망할놈 같으니!”
“자네는 넘의 일에 열내지 말게나.”
“이친구 답답하긴.”
“누가 답답한지 모르겠네. 엣말에두 넘의 제사에는 건을 쓰고 덤비지 말고 감놔라 대추 놔라고도 말랬어.”
“동네가 챙피스러워유. 동네에서 내쫓으면 쓰겠네.”
“나중에 내 자식은 어떨지 아는가?”
“이 사람들아, 엔간히 떠들어. 정자나무 뽑히겠어.”
상길네집 안방 가운데에는 병풍이 쳐져 남과 북을 갈라 버렸다. 병풍 앞에는 은부인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무릎에는 막내 아들을 안고 있다. 옥길이는 아까부터 더욱 칭얼거린다.
은부인은 막내 아들의 부어오른 오른쪽 허벅지를 쉬지 않고 쓰다듬는다. 그녀의 이마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열심히 송글거린다. 땀방울은 그녀의 얼굴에 고랑을 내기라도 할양 꼬리를 물고 흘러내린다.
옥길이 얼굴은 뚱뚱 부어올라 빨갛게 기승을 부리는 다리보다 진하게 달아올라 있다. 땀으로 목욕을 한다.
은부인은 열심히 중얼거린다.
“여보, 내말이 들리세요. 우리 옥길이 다리를 낫게 해줘요. 아픈 것을 모두 가져가요.”
그녀는 시어머니의 권에 못 이겨 방문이 모두 닫혀진 가운데 홀로 누워있는 남편의 시신 앞에서 염원을 한다.
안방 아궁이는 쉬지를 못한다. 음식을 만드느라 이글거리며 방구들을 달군다. 방구들은 뜨끈거리며 삼을 굽는다. 은부인은 얼마를 견디지 못하고 안방을 나온다. 젖은 적삼소매로 얼굴을 훔친다.
“내가 바보짓을 했지. 죽은이가 무얼 안다구. 내일은 병원에 가보자.
에미가 멍청해서 너를 생으루 고생시키는구나. 우리 옥길이 착하지.
조금만 참아라. 내일은 의사 선생님한테 가보자. 어 착하지.”
그녀는 막내 아들을 동보지 못한 것을 아들에게 사과한다.
저녁때가 조금 넘었다.
닫혔던 안방의 방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는다. 시체를 가렸던 병풍도 접어 밖으로 내어놓는다. 시신을 방 가운데로 옮겨놓는다.
상길이는 아버지의 시신을 보는 순간 섬뜩하여 진저리를 친다. 하룻밤 사이에 너무나 변했기 때문이다. 감기지 못했던 눈은 꾹 눌려져서 강제로 덮여졌다. 입은 누가 잔뜩 얽어매 놓은 것 같다. 이젠 각오가 섰어도 벌써 섰다는게 보이느라, 턱이 그렇게 오그라 붙었다는 느낌을 준다.
얼굴은 온통 이마까지 먹물이 배어 나왔다. 몸뚱이도 새까만 얼룩소를 닮아졌다. 구멍뚫린 옆구리에서는 검붉은 물이 졸졸거린다.
윤공의 친구 종환팔이와 환영월이가 염습한다. 상나무 삶은 물로 솜에 적셔 세수를 시킨다. 화장시키는 흉내를 낸다.
신랑이 초례청에 섰을 때의 모습을 만드느라 비지 땀을 흘린다. 명주바지 저고리를 입힌다. 도포도 입힌다. 머리에는 윤건같은 걸 씌운다.
얼굴은 검은 망사로 가려 묶는다. 삼베 홑이불로 감싼다. 삼베를 찢어 끈을 만들어 칠등분하여 묶는다.
“엄마, 왜 묶어. 아버지를 왜 묶어. 엄마, 엄마. 끌러놔. 아버지 묶으면 죽어.”
다섯 살짜리 만길이는 저희 엄마를 붙잡고 떼를 쓰며 사정을 한다.
“아버지는 죽어서 묶는 거란다.”
그녀는 아들을 쓰다듬으며 다독거린다.
“아냐, 끌러놔. 자는 거잖아!”
만길이는 저의 엄마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자고 들어가서 끌러노라고 앙탈을 부린다.
“누이가 업어줄께.”
“싫어, 싫어. 아빠 끌러.”
열이는 힘을 다해 만길이를 들쳐업고 비실거리며 삽짝 밖으로 나간다.
윤공의 시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섯 살짜리의 떼쓰는 소리에 가슴을 저민다.
종환팔이와 환영월이는 염습을 끝내고 시신을 입관한 후 우물에 나와 손을 씻는다. 땀에 흥건한 얼굴도 씻고 팔도 씻는다. 상길이도 손을 씻는다.
동네 아낙네들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상복을 꿰맨다. 종환팔이와 환영월이는 술상을 마주하고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아 막걸리를 마신다. 종환팔이는 술사발을 들고 서너모금 마시고는 숨을 돌리느라 술사발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돼지고기 삶은 것 한점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소금을 꾹꾹 찍어 입에 넣는다. 그의 손은 안방을 가리킨다.
“저놈...”
환영월이는 젓가락을 따라 안방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어. 저놈이.”
“예끼, 후레자식. 몽둥이로 그냥...”
“때려죽일 놈!”
그들은 몹시 흥분하여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다고 언성을 크게 하여 욕을 한다.
은부인은 부엌에서 나오다 그들이 욕하는걸 듣는다. 그녀는 당황하여 안방 마루를 찾는다. 더듬거리던 그녀는 건을 쓰고 앉아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안도의 숨을 쉰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몸도 따라 돌아선다. 환영월이를 쳐다본다. 그녀의 눈은 꼬끄랑해져 있다.
“너무 빠르십니다. 죽은 사람 눈어덕도 꺼지지 않았는데 후레자식이라니. 어데다가 욕을 하는거요.”
그녀는 천천히 또박또박 나무란다.
그들은 은부인의 말에 독오른 고추 먹은 입이 되어 귓부리가 붉고만다. 마당의 사람들은 종가, 환가를 나무라는 눈으로 바라본다.
은부인은 천천히 마루로 다가간다.
“건은 장가 간 사람이나 쓰는 것이란다.”
“쓰면 되는 거지. 누가 쓰라구 해야 쓰는 건가? 왜 욕해? 내가 건 쓰면 저희들에게 손해 가나?”
“예법이 있단다.”
“그렇게 예법 찾는 것들이 저희 애비 죽었을 때 무덤에서 살았나?
집구석에서 잔 것들이. 그런 게 누굴 욕해? 족보도 없는 새끼들이 예법 좋아하네.”
상길이는 웅변 연습이나 하는 것 같다.
“어른들에게 누가 욕한다던.”
상길이는 쓰게 웃는다. 이마에 힘줄이 불거진다.
“누가 송장 치워 달랬냐? 너희들 아니라두 우리 아버지는 내가 져다가 묻을 거다. 다 가버려. 다 가라구. 누가 욕하냐? 대 놓구 욕해봐라.
사내자식답게 썩 나서봐. 뒷구멍에서 욕하는 못난 것들이. 부끄럽지두 않냐? 족보두 희미한 것들이. 내가 너희보다 열배는 양반이야...”
그는 눈을 독으리고 조소하며 큰소리로 내갈긴다.
마당에서 바느질하던 아낙들은 뜰방 위로 내려서서 호기를 부리는 상길이를 멀건히 손을 놓고 지켜본다.
문상와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 윤수, 상길이 외삼촌의 얼굴은 숨을 쉬느라 고개를 제끼고 하늘을 마주한다.
상길이는 건을 두손으로 잡아채 벗어서 상복담은 광주리에 동댕이친다.
“어린 것이 기도 안죽고, 나중에 뭐가 될꼬...”
은부인은 넋을 놓고 아들을 바라본다.
다음날 아침이다. 상길네집 마당에는 상여가 떠나려 한다. 상길이는 머리에 삼을 섞어 만든 새끼줄을 쓰고 중단을 입고 동아줄 같은 새끼로 허리를 감았다.
그는 상여 뒤에 섰다가는 변소로 달려간다. 변소에서 나오는 그의 얼굴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슬픔에 잠긴다.
상여는 삽짝을 나간다. 상길이는 상여 뒤를 따라간다. 여덟살 먹은 승길이도 저희 형의 뒤를 따라간다. 상여는 천석산을 향해 천천히 움직인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허
북망산이 멀다더니 삽짝 밖이 북망일세 어허 어허
이팔청춘 홍안들아 백발보고 웃지마라 어허 어허
이내몸도 어저께는 죽을 것을 몰랐단다 어허 어허
기를 쓰고 모았던 돈 애석하고 애닲구나 어허 어허
여보시오 친구님네 나와 같이 동행하고 어허 어허
친구친구 좋다지만 어느 친구 동행할까 어허 어허
불쌍하다 나의 인생 누가 나를 살려주나 어허 어허
여보시오 동네 사람 선행을 쌓고 오소 어허 어허
이세상을 떠날 때는 지은 죄를 가져가네 어허 어허
길고 굵게 살아본들 백년 이내 죽는다네 어허 어허”
동네 사람들은 행길에 나와 서서 윤공의 가는 길을 지켜본다.
상여에서는 검고 누런물이 한발짝 두발짝 간격으로 돔방돔방 떨어진다. 떨어진 물방울은 기름이 씌워져 있다. 상여 뒤를 따라가는 조문객들의 눈에는 보여지질 않는다. 녹두알 만한 것은 검게 반짝거린다.
“아무리 먹고 마셔도 이렇게 흐르는 것을,
흘러서 텅 비는 것을,
물까지도 못 가져가는 것을
내가 이제사 알았다네.
아침 안개같은 인생은
해가 오르면 스러지는 것을,
베짜는 북보다 빠른 것을,
어제 죽은 이내몸이 오늘에 썩는 것을
살았을제 알았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목이 곧아 몰랐다네.
상여 속의 탄식을 외면치 말아라
귀에만 들려야 소리더냐
못본 체 말아라
못본 체 한다고 없는 거냐
웅덩이에 빠질라
네 몸은 네가 위해야 하느니.”
검고 누렇고 기름진 물은 소릴 머금고 흘긴다.
상여는 상거리를 지나자 걸음을 빨리 한다.
은부인은 남편이 누워있던 방을 쓸어낸다.
‘당신은 그렇게 가고야 말 것을
죽기가 그렇게두 힘드는 것을
나와 조금 더 싸우다 가실 것을
맹물도 소화를 못 시키는 당신을
물까지도 못 가져가는 것을
죽으면 이렇게 썩은 물을 흘리고 마는 것을...’
그녀는 방을 닦아 내며 삶을 깨물어 본다.
방을 깨끗이 하느라 장판을 걷어 내다 불을 놓는다. 그리곤 그녀는 삽짝 밖으로 나간다. 그녀의 발걸음은 들판으로 향한다. 은부인은 자기 논을 둘러본다. 시퍼런 벼포기는 그녀의 마음을 에인다.
남편의 손끝을 더듬는 그녀의 눈에는 설움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물고옆 논두렁에 그냥 털썩 주저앉는다. 이내 두다리를 뻗는다. 애닯고 슬픈 것을 흐느끼며 하나씩 꺼내 놓는다. 그러던 그녀는 우는 것도 복이 있어야 운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일으켜 세워지듯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물고의 물로 세수를 한다.
그녀는 끌려가는 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저녁 새때가 조금 지났다. 상길이와 승길이는 터덕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옷은 땀으로 흠씬 젖었다.
“아이 더워! 죽을뻔 했네.”
승길이는 마루에 걸터앉으며 지껄인다.
“덥지? 덥구말구. 어서 상복 벗거라.”
승길이 할머니는 안타까운 얼굴로 손자의 상복을 벗겨 준다.
“땀띠가 솟았구나. 어서 씻자구나.”
라부인은 손자를 데리고 우물로 간다.
상길이도 중단을 벗어서 제청마루 옆에다 걸어 놓는다.
“누님은 정신이 그렇게 없으세요. 오늘 들에 가보지 않으면 안되나요?
넘들이 저보구 뭐라는지 아세요?”
상길이 외삼촌은 안방에서 은부인에게 따지듯 나무란다.
“왜!”
“매형만 불쌍하답니다.”
“별소릴 다 하는갑다. 자기네가 우리 식구 먹여 살린다던?”
“그래두, 누님, 말 안할 사람 있겠수?”
그들의 말은 점점 커진다.
마당에는 윤공 장례를 치루느라 산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 가득하다.
“내가 남편을 출상하기가 바쁘게 논에 갔다구 욕하는 모양이다만 내 입장을 모르니까 그렇지. 몇날 며칠을 논에 못 갔었다.
내가 누가 있다구 먹고 살 걱정을 않겠냐? 흉 보겠슴 보라지. 내 남편이 죽었는데 자기네가 서럽구먼. 너는 내가 퍼대구 앉아 아이고 땜이나 하구 있슴 좋겠냐?
상길이가 제사상에 절을 않는다구 죽일 놈 살릴 놈 한다마는 누가 더 가깝냐? 애비와 자식이 가깝지. 네가 더 가까워? 주제를 알구 욕을 해야지. 너희들이 죽은이에게 무엇을 해줬냐? 무엇을 했다구 욕이냐?
병들어 죽은 것두 원통한데, 멀쩡한 아이보구 죽일 놈이라니. 어디서 굴러먹던 소리야? 사상은 다른 게야. 6.25 난리 때 못봤어? 부모두 자식 생각이 옳으면 따라야 집안이 흥하지.
제 부모 제가 위하지 넘이 위해주냐?
내 남편 내가 위하지 누가 위해주냐?
넘이 이래라 저래라 한다구 주척거리는게 집나래비지.”
윤수는 마루에 걸터앉아 형수가 빗대어 동네 사람들을 나무라는 말을 하나씩 새김질 해본다. 그의 얼굴은 송충이가 목으로 기어가는 것을 떼어 내지 못하고 붙들려 있는 모습이 된다.
동네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방안을 흘끔거린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자 친척과 문상객들은 땅거미에 썰물이라도 된 듯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던 소리가 없어진 넓은 뜨락은 을씨년스런 날씨가 찾아온걸 느끼게 한다. 안방 마루 끝에는 썰렁한 집안에 난로라도 된양 유리등이 하나 덜렁 걸려 어둠에 열기를 몽땅 빨리고 있다.
방문은 활짝 열어 젖혀졌다. 안방에는 큰 멍석을 장판 대신 깔아 놓았다. 집안 식구가 모두 안방에 모였다. 상길이 동생들은 윗목에서 나란히 드러누워 잠을 자려고 뒤척거린다. 은부인과 상길이와 열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쓸려가는 사람마냥 가는데까지 가본다는 의지가 내보이게 앉았다. 열이는 더 견딜수 없다고 입을 연다.
“삼촌이 오래 사셔야 하는데...”
그녀는 중얼거리듯 말끝을 흐린다.
“삼촌 찾지마. 나는 덕 볼 생각 없으니까.”
상길이는 저의 누나 말에 쌍지팡이를 짚고 일어난다. 갑자기 뱀이라도 덤비는 양 펄쩍 뛴다. 이내 짓이겨 죽이려 든다.
“오래 살라는 거지. 너보고 삼촌 덕보라던?”
“그이 이야길 뭣하러 해? 기분 잡치게.”
“왜, 하면 안 되냐?”
“그런 놈 때문에 신세 조졌다구.”
“넌 그러고도 교회 다니냐?”
“내가 예수 믿으니까 관두지. 그냥...”
상길이는 금방 억울함을 당하기나 한 것처럼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리고는 밖으로 휑하니 나가 버린다.
은부인은 아무 말도 않고서 아들과 딸의 말을 음미한다.
‘어림없지. 어릴 때 시동생이지...
핑게가 없는 판에 예수 믿는다구 꼴도 보기싫다고 했는데 상길이 눈에는 윤수가 원수처럼 삐딱하게 보이는 판이고...’
상길이는 저의 삼촌 말만 나오면 불에 기름이다. 아주 사정없이 달려든다. 윤수 말을 누가 하던 면박을 주고 씩씩댄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풀쐐기 마냥 쏘고 달려드니 저녀석은 아주 못돼먹었어. 내가 저희집에 와 있다구 그러는데...”
“너도 네 동생과 똑 같구나. 여기는 네집 아니구 넘의 집이냐? 그애 속을 몰라?”
“사람 속을 박박 긁어놓구...
친정에 오지 않아야 저꼴을 안보는데.”
“사람은 제설움에 운다더라. 이제사 네 동생 성질 아냐? 그앤 대전가서 아주 독이 올랐다. 그애가 너 왔다구 구박하는 소리냐? 어디 친정은 네집 아냐? 그리구 너한테 욕하는 소리냐 어디?
너를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하는 녀석인데. 말을 함부로 하는게 흠이라 그게 탈이지. 나한테 혼나는 것 몰라? 철들길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