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1.사람의 모습)
작성자
yeongbeome2
작성일
2024-07-1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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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내 마을은 하늘만 빤히 올려다 보이는 마을이다.
이 동네에 처음 찾아오는 사람은 “꼭 우물속 같은 동네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앞산과 뒷동산이 눈을 에워싸버린다. 동서 남북 모두가 우뚝우뚝 솟아오른 산들은 병풍처럼 마을을 깊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듯 도로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뚫리다가 힘에 겨워 그런 듯 남쪽으로 구부러져 동네 가운데를 구슬을 꿰이듯 지나갔다. 마을 뒤편으로 시냇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간다. 두 시냇물은 합해져 북쪽으로 구불거리며 흘러간다.
한삼내 앞 조그만 들을 사이에 두고 뒷동산 밑에는 새터의 집들이 한줄로 게딱지를 다닥다닥 붙여 놓은 것처럼 커다란 정자나무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삼십여채의 초가집이 형님 동생하듯 높고 낮게 자리했다.
시내 건너 북쪽에도 양산 동네의 집들이 한줄 혹은 두줄로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며 산밑에 바싹 달라붙어 마냥 한가롭다.
한삼내 들에는 벼가 창대같이 빽빽히 들어서서 산도 하늘도 푸른물을 드리우고 푸른 냄새는 사람들의 옷속을 파고들어 싱싱케 만든다.
들 한가운데는 사람들이 커다란 기를 앞세우고 한줄로 논두렁을 따라간다. 젊은이, 늙은이, 홍안 소년들은 하나같이 호미를 들기도 하고 허리에 차기도 하고 걷는다.
그리고 호미를 목에 건 아이도 있다. 삼각형의 큰 깃발은 아주 커다란 대나무에 매달렸다.
깃발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라 쓰여져 있다.
기를 든 사람 뒤에는 꽹과리를 든 사람, 장고를 멘 사람, 징을 든 사람, 북을 멘 사람이 기를 따라간다.
그들은 풍물을 흥이 나게 두드리며 아기죽거리며 걸어간다.
그들은 모두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그리고 하나같이 신발을 벗었다. 종아리는 검고 붉다.
깃발 든 사람이 기를 땅에 세우자 따라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춘다.
“이제 누구네 논 매나?”
늙수그레한 사람이 냅다 소리쳐 묻는다.
그러자 소리따라 열 중간에서
“상길네꺼 맬거여!” 하며 소리친다.
“잠시 쉬었다 합시다!”
북치던 사람 뒤에 따라가던 청년회장이 큰 소리로 외친다.
그들은 논두렁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며 왁자지껄한다.
한참 쉬었나 보다.
풍물소리(사물놀이 하는 것)는 어서 논을 매라고 그들을 재촉하며 일으켜 세운다.
사람들은 상길네 논으로 들어가 장단맞춰 김을 맨다.
엎드렸다가 일어나고 일어났다간 엎드린다. 그리고 기어간다.
어정쩡 좇아 걷는 사람도 있다. 어슬렁거려 매는 시늉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다가 흐르고 또 나오고 흐르고 또 맺힌다. 풍물소리는 풍년을 만들고 기약하는 양 풍년이 든 것 마냥 흥겨웁기만하다.
마을에서 제일 큰 초가집이 상길네 집이다.
상길네 집은 행길 옆에 있다.
집의 모양은 ㄷ 자로 생겨 남쪽을 향했다. 삽짝은 서쪽으로 만들어 놓았다. 삽짝은 엉성하여 닫아도 방안이 훤히 들여다 보여 닫으나 마나라고 하듯 활짝 열어 벽에 기대 놓았다.
마당 가운데에는 우물이 소두방 뚜껑 손잡이 마냥 둥글한 게 튀어나와 있다. 허청에는 보릿짚이 하나 가득 쌓여 있고 외양간에도 보릿짚이 하나 가득 쌓여 있다. 마당에는 커다란 멍석을 한 잎 깔아 놓았다.
멍석 위에는 너 댓 사람이 안방을 향해 앉아 있다.
안방문은 양쪽으로 활짝 열어 젖혀져 있다.
뜰방(마루밖으로 토방이 나와 있는 부분)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어깨를 포개어 서서 방안을 들여다본다.
방 가운데에는 한 남자가 반듯하게 천정을 향하고 흰베개를 베고 누워있다. 그는 윗목을 향했다. 중이 적삼을 입었다. 배는 잔뜩 부풀어 올라 적삼 앞자락을 좌우로 갈라놓고 불거져서 마치 늦가을 호박같다. 몸은 방바닥에 착 달라붙은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를 않는다.
거친 숨소리도 드리지 않는다. 입은 반쯤 열려졌다.
혀가 들여다보인다. 혀는 느리게 들썩인다. 조금씩 들썩거리기도 몹시 힘겨워 한다. 혀는 고추장을 발라 놓은 것이 메말라 바싹 비틀어진 것 같은게 달싹거림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꼬르륵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참만에 나왔다 하는 물에 빠진 사람같다.
이제는 고만이라는 안타까움을 꾸역꾸역 우려낸다.
모두의 눈은 잔뜩 긴장하여 숨소리를 죽이고 느리게 달싹거리는 소리를 찾아 놓치지 않으려고 입속으로 앞서거니를 하며 좇아 들어간다.
혀는 애를 태우고 애간장을 녹이기로 작정이라도 한 양 아까보다도 더 느릿느릿 팔자걸음을 걷는다.
아들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 윤공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버지의 입과 눈을 번갈아 바라본다. 상길이 어머니 은부인도 자녀들과 함께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다.
은부인의 막내 아들 옥길이는 엄마 무릎에 앉아 있다. 옥길이는 엄마 무릎에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엄마! 아퍼! 엄마! 아야! .......”
하며 계속 칭얼댄다.
옥길이의 왼쪽 허벅다리는 퉁퉁 부었다. 옥길이는 상길이의 눈치를 살피며 칭얼댄다. 누구하나 옥길이의 아픔을 아는 체 하고 불쌍히 여기질 않는다.
돼지 엄마도 무릎에 벌거숭이 아들을 앉혀 놓고 한숨을 쉬면서 윤공을 바라본다. 돼지는 무엇을 아는지 까불지도 않고 윤공을 지켜본다.
윤공의 친구 이씨, 김씨, 박씨는 안절부절하다가 뜰방으로 다가가 아낙네들 어깨 너머로 윤공을 지켜본다. 이씨는 안타까운 눈으로 김씨, 박씨를 향해 말한다.
“동생이 오길 기다리나 보네!”
“글쎄, 그런 것도 같군!”
“사람이 태어날 때도 시를 타고 태어나니까 운명할 때도 가는 시간이 있겠지!”
그들의 말에 부인네들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윤공이 금방 운명할 듯 하면서도 끈질기게 신고를 한다고 하는 말이다.
“판수가 대전에 사는 윤수에게 연락을 하러 갔으니까 곧 올 때가 됐다구!”
그들은 말을 하며 다시 멍석으로 돌아와 앉는다.
“풍물을 치지말고 논을 매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자네가 가서 말좀 하게나!”
박씨는 마지못한 얼굴로 김씨에게 미안스런 투로 말한다.
“내가 말한다고 그들이 들을까? 괜히 좋은 말만 귀양 보내지!”
“그래두 자네가 가서 말리게! 동네의 수치라네!”
김씨는 두리번거리며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삽짝을 나간다.
동네 사람들은 상길네 집에 들려 윤공을 잠시 들여다보고는 혀를 끌끌 차면서 삽짝 밖으로 나가고 한숨을 쉬고는 서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가는 초점없는 눈을 해 가지고 삽짝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양산에 사는 윤공의 친구 김창호가 상길네 집 삽짝으로 뛰어든다.
그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흥건하다. 어깨로 숨을 몰아 쉰다. 그는 더듬거리듯 하다가는 곧장 우물로 좇아간다. 서둘러 두레박을 우물에 집어넣는다. 그리곤 이내 퍼 올린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스덴으로 된 조그만 간장종지 같은걸 꺼낸다. 그리고 그걸 씻는다. 씻은 후 그릇에 물을 하나 가득 떠서 오른손에 받쳐들고 조심스런 몸가짐으로 윤공이 있는 방으로 서둘러 들어간다.
그는 윤공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고 윤공을 내려다 본다. 그의 눈은 안타까움과 불쌍한 마음에 젖어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그는 양산에 있는 천주교회 신도들의 모임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다. 양산 사람들은 그를 김회장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다시 윤공을 내려다 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상길이를 바라본다. 그의 눈썹에는 이슬이 맺혀졌다.
“여보게나!”
그의 말소리는 깔아져 있다.
상길이는 소리따라 고개를 든다.
“자네 아버님은 평소에 천주님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셨지. 가끔 우리 성당에도 오셨지. 성경도 보시고...
내가 자네 아버지를 위해서 영세를 주려고 하는데 승낙하겠나?”
상길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김회장은 물 그릇을 받쳐든 채 속히 대답하라고 재촉하는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조급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나에게 자네 아버지를 위해 영세를 주도록 허락하게. 자네의 아버지가 영생하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 뛰어 왔다네.”
상길이는 내키지 않는 눈을 해 가지고 맥없이 대답한다.
“세례를 주세요. 아저씨 좋도록 하세요.”
김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그릇을 왼손으로 옮겨든다.
“천주님의 은총입은 도마에게 천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그는 말을 하며 오른손 바닥에 물을 조금 부어 가지고 윤공의 이마에 쏟으며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싼다. 그리고 이마에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린다.
“아버님, 아버님은 하나님의 은총 입어 속죄함 받아 영생하세요!
천국에 가세요.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상길이는 기도를 한다.
세례를 주는 김회장은 엄숙하여져서 평소 장난기가 있는 그런 모습은 간 곳이 없다. 그는 사람들을 숙연케 만든다.
상길이 누나는 김회장이 세례 주는걸 바라보면서 아는 듯 궁금해 하는 게 없어 보인다. 마루에 앉아 있는 돼지 엄마도 삼순이 엄마도 그냥, 의미를 알고 싶지 않은 눈으로 지켜만 본다.
김회장의 하는 모양을 호기심에 끌려 바라보던 이씨, 박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해한다.
‘저 사람이 저런 짓을 왜 하는지 알수 없구먼. 별일이야. 죽어가는 사람에게 냉수를 붓다니? 냉수를 부으면, 정신이라도 조금 차리라고 하는건지 알다가도 모르겠구먼.’ 하는 태도이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김회장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친구에게 안락할 수 있는 천당길을 열어 주었다고 천만다행이라고 하는 흐뭇함이 엿보인다.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지. 하마터면 세례를 못 주었을건데...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야지.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니...
감사합니다. 주님, 죽은 다음에 왔음 무슨 소용이야. 참 감사합니다. 천주님!’
그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일어나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은부인을 안스럽게 바라본다.
“아주머님, 무슨 밀씀을 드려야할지 위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복이 없어서 그런거지요.”
은부인은 힘없이 대답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바쁘신데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김회장은 위로의 말을 하고는 삽짝 밖으로 착 가라앉은 걸음으로 나간다.
“내가 윤공의 가는 것은 못 보더라도 신의는 다행히 지켰어.”
그는 중얼거리며 양산으로 돌아간다.
윤공의 큰딸 열이는 염원한다.
‘아버님, 아버님은 꼭 천국에 가셔야 해요. 아버님은 회개하셔야 돼요.
회개하지 못한 게 있으면 천국에 올라갈 수가 없어요. 예수님께 모두 용서를 비세요. 불쌍히 여기시라고 하세요. 그래야 구원을 받아요.
마음 속에 있는 죄를 모두 고백을 하여야 하늘나라에 갈 수가 있어요.
아버님,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했던 것이 죄랍니다. 혈기 부리고 신경질 낸 것도 죄랍니다. 시기하고 욕한 것, 엄마 이외의 여자 관계를 뽐낸 것이 남을 저주한 것이 죄랍니다.
그중에 제일 큰 죄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죄이지요. 아버지는 아버지를 구원해 주실 분을 욕했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형틀에서 못에 박혀 무참하게 죽으시고 그 흘린 피로 당신의 죄를 씻어 주셨는데 그분께 고마워하기는커녕 욕하셨지요.
어느 누가 아버지를 천국 가라고 일러줍디까요? 세상 학문도 세상 사람도 아버지를 구원 못해요. 허망한 신들은 아버지를 지옥으로 끌고만 가지요. 죄인인 인간은 자기 자신을 구원 할 수가 없어요.
바다 가운데서 파선 당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원 못하는 것과 같아요.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특별 사면을 받아요. 당신께서 받으실 형벌을 예수님이 받으셨거든요.’
열이는 급하게 소리없이 속삭이며 안타까와한다.
문설주에 기대앉아 숨을 몰아쉬는 그녀, 앉아 있기도 힘든 그녀,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움푹 패였다. 코가 삐쩍 말라 붙은게 덜렁하게 겨우 달라붙었다. 얼굴은 희다가 바래져서 누렇게 떠 있다.
앉아 있는 그녀의 모양은 가슴이 없어져서 그런지 앞으로 꾸부정하게 휘였다. 자꾸 꾸부러지는 것을 버티느라고 오른쪽 무릎이 어깨를 힘겹게 받치고 있다.
평소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머니와 동생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오래오래 사셔야지. 그래야 며느리도 보시고 손자도 보시며 즐거운 날을 보내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빌어 왔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 친정에 온 게 아니다. 병들었다고 시집에서 돌보지 않아 친정에 올 수밖에 없어 친정에 왔다가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했다. 그녀가 친정에 온 것은 몹쓸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뇌점이라고 부르고 폐병이라고 부르는 아주 흉한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폐병을 아주 꺼려한다. 그냥 말끝에 폐병이란 말이 튀어나와도 몹시 기분 나빠한다. 폐병에 걸리는 것은 집안이 망조가 들려고 그런 병에 걸렸다고 말들을 한다. 집안 식구 가운데 그런 병이 생기면 집구석이 결단이 나서 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며 조상에게 과오가 있지나 않았나? 조상의 죄가 많았던 게 아닌가? 조상의 묘를 잘못 써서 그런건 아닌가? 찾아보다가 산화(묘로 인한 재앙)로 돌려버린다.
그리고는 풍수지리를 잘 아는 지관을 찾아 명당을 찾아 나선다.
조상의 시신을 옮겨 묻으면 병도 낫고 복도 받아 자손이 잘된다고 자손들이 부귀를 누린다고 망인은 뼈가 황태가 된다고 말들을 한다.
명당 찾기는 별따기나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말들을 한다.
어쩌다 명당을 찾아도 명당에 묻히기가 여간 어렵지않아 명당에 묻어도 명당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면 시신조차 온데간데를 모르게 없어진다고 말들을 한다. 또 명당에 묻힐 자격이 없는 사람은 시신이 튕겨져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명당에 묻힐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생전에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이라야 되고 남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야 명당에 묻힌다고 불문율처럼 말들을 한다.
윤공은 딸이 몹쓸 병에 걸려 가지고 왔을 때
‘설상가상이 나에게 생기다니...
나야 아무래도 좋지만 혹시 어린것들에게 병이 전염되면 어쩌나?”하고 그는 마음을 몹시 끓였었다.
“아비로써 애비 노릇을 해야 하는데 내꼴이 이게 뭐람. 병원에 보내서 치료하면 고친다고 하던데 뭐가 있어야지. 어린것을 너무 일찍 시집 보내서 생으로 고생을 시키고 고생을 너무해서 그런 몹쓸병을 앓게 한 게 모두 내 잘못이지. 내가 왜 그렇게도 어리석고 미련했었나?
자식 새끼 신세 망치려고 내가 눈이 삐였었나봐. 그러고도 내가 애비라고.... 참으로 한심한 놈이지.’
그는 끙끙거리며 애석해 하다가 스스로를 미워하다 치를 떨곤 하였었다. 그리고 술이라도 먹어야 잊고 지낼수 있는 것처럼 하루가 멀다하게 술에 취한 나날을 보냈었다.
열이는 열 아홉 살에 시집을 갔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손녀 사위 보고서 죽겠다고 매일 매일 성화를 대는 바람에 어거지로 끌려 시집을 갔었다.
열이의 시집은 한산(寒山) 이씨 집안이다. 한산 이씨는 빠지지 않는 양반이라고 이런 집안과 사돈 맺기가 쉽지 않다고 그녀의 할아버지는 속히 정혼을 하라고 중매쟁이 말만 믿고 날마다 극성을 부렸었다.
은부인은 시아버지의 재촉이 사람의 넋을 빠지게 하여 갈피를 잡을수 없게 하는 것이 열이의 장래가 불길하게만 느껴져 불안 속에서 지내면서도 시아버지에게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다는 한마디 말도 못했었다.
‘세상에 사위될 사람 얼굴도 보지도 않고 어찌 손녀딸을 시집보낸다고 그러시는지?’ 하는 소리를 가슴에 묻고 그녀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냥 입술만 바싹바싹 태우기만 하였었다. 그러다가는 쫓기어 허둥거리는 암탉마냥 가냘프게 떠듬거려 소리를 낸다.
“여보, 아버님이 저렇게 열이를 시집 보내신다고 하시는데 어쩌면 좋아요? 당신이라도 관랑(사윗감 보는 것)을 하여 열이가 잘 되게 해야할 게 아녜요?”
그녀는 남편에게 저녁상을 갖다 놓고는 상머리에 앉아 걱정스레 힘을 돋우어 말한다.
윤공은 밥상을 잡아당겨 끌어안듯 하고는 머리를 푹 숙이고 밥을 먹는다. 그는 아내에게 “저녁 먹었느냐?” 고 한마디의 말도 묻지도 않고 허기졌던 사람처럼 그저 먹기에만 팔렸다. 그의 표정은 아무 소리도 들려서는 안되며 말해서도 안된다는 각오라도 한 것 같다.
“여보, 당신은 어떻게 했슴 좋겠어요. 중신애비 말만 듣고 시집 보내겠우. 세상에 자식을 여우는데 사위가 어떻게 생겼나 얼굴도 한 번 안보고 딸년을 내주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어요. 딴 것은 보지 않더라도 당자는 보아야지. 남들은 얼마나 잘사나, 얼마나 돈이 많은가, 직업은 좋은가, 세도가 얼마나 있나를 보고 있는데, 우리는 옛날 사람보다도 더 어두우면 되겠어요? 남이 하는대로 다 못하더라도 병신은 아닌지 그건 보아야지. 지금이 어느 세월인지나 아슈? 신랑감이 키는 큰가? 학교는 어데 나왔나? 학교 성적은 우수한가 본답디다.
우리 같이 어두운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우. 그래, 사윗감이 이름만 남자이면 되는거유? 비슷하게는 짝을 지워줘야지. 제가 좋아서 안달이 나서 시집을 간다면 할 수 없겠지만. 그러구서 어찌 답답한 꼴을 안본다고 하겠어요? 낳아 놓기만 하면 부모 노릇 하는거유?”
은부인은 남편이 입을 열 때까지 지껄이기로 결심한 냄새를 풍긴다.
“여편네가 나서면 될 일도 안돼.”
윤공은 쏘아대는 말에 아픈데를 찔려 버럭하고 큰 소리를 지르고만다.
“내가 나선답디까? 그래두 딴것은 다 제쳐 놓더라도 신랑 될 사람얼굴은 보아야 될 게 아니유? 당신은 궁금하지도 않아유? 당신이 대전에 가서 잠깐 보고 오세요. 그래야 내 마음이 좀 놓이겠우. 예감이 좋지 않아요.”
윤공은 꾸역꾸역 밥만 먹는다.
‘네가 그래도 내 밥은 다 먹을테니 두고보렴.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얼마나 더 지껄이나 보자꾸나. 바보스럽기는...
네 딸만 되냐? 내 딸만 되냐? 아버지의 손녀딸도 된단다. 손녀 딸을 어련히 알아서 시집 보낼건데 방정맞게 뭐? 무슨 얼어죽을 예감이고 땡감이고 찾냐? 여편네들이란 할 수 없어. 제 눈으로 꼭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나? 남의 말도 믿어줘야지, 의심하기는... 누굴 닮아가나. 잘되길 빌어도 잘되지 않는데. 떡을 할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하는 양으로 꾸역꾸역 밥 그릇을 비우고는 거드름을 피우며 방을 나간다. 그의 태도는 부자 같고 수염소 같다.
은부인은 남편이 대답을 않고 밖으로 나가자 뒤에다가 오금을 박는다.
“당신이 가기 싫으면 내가 가서 알아 보겠어요. 내일 다녀올테니 그리 아슈.”
“방정 떨지마!”
윤공은 뜰방에서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서며 일침을 놓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은 대전에 가야 한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남의 말만 듣고, 자식을 떼어주나. 우리 같은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담.
혼인치고 거짓말 하지 않음 혼인이 되지 않는다는데, 답답한 양반들 같으니. 우물 속같은 동네에서 사니까 아주 우물 속마냥 하늘밖에 모르누먼. 하늘만 바라보면 어쩌겠어. 하늘도 복을 받을 일을 해야 복을 주지. 우물에서 나오려고 하지도 않는데 누가 꺼내주나. 죽어두 여기서 죽겠수 하는 꼴이지. 누구 속을 바글바글 못 태워서 야단이야.
첫 새끼를 잘 여워야 지체도 잘 여운다는 소리도 못들었냐?’
그녀는 중얼거리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 내린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그날밤 은부인은 걱정이 못잊혀져서 벗었다 입었다 하느라 잠을 설친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 밥상을 방으로 들여갈 때쯤 되었다. 갑자기 사랑방 방문이 와장창하며 부서지는 소리를 낸다. 화로를 신경질적으로 두들기는 소리가 두 귀를 찢을듯이 덤빈다.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안방문을 열었다가는 찔끔하여 급히 닫는다.
그리고는 문틈으로 할아버지의 성난 얼굴을 훔쳐 보고는 질겁을 하여 방안으로 가제 걸음을 친다.
윤공의 아버지는 안채를 향해 소리친다.
“이놈의 집구석이 망할 때가 됐냐? 집안 망하는걸 보려느냐? 어디서 배운 못된 버릇이냐? 괘씸한것 같으니. 계집이 내주장을 하면 집안 망하는 걸 모르느냐? 에헴! 에헴!”
그는 목이 갈하여 연신 기침을 한다. 그리고는 고함치고 화로를 불손으로 깨지라 두들긴다. 앞산 뒷산이 덩달아 꽥꽥소리를 내지른다.
은부인은 시아버지의 꾸중을 들으면서 아침상을 차리다가는 사랑방 방문 앞으로 끌려가듯 걸어가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이 서서 꾸중을 듣는다. 시아버지가 기침하는 사이에 용서를 빈다.
“아버님, 고정하세요. 제가 그만 잘못했어요. 아버님, 노여움을 푸세요. 제가 미처 생각이 모자라서 그랬습니다. 아버님, 용서하세요.”
“너는 시애비가 하는 짓이 그렇게 못마땅하냐?”
“그럴리가 있겠어요.”
그의 그의 목소리는 쇠소리가 난다.
늙은이가 입심한번 좋구먼. 청춘으로 돌아가는 소리구먼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을러댄다.
“아버님, 제가 잘못했어요. 대전에 가려고 한 것은 생각이 모자랐어요.
아버님 용서하세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며느리를 고얀 것이라고 꼬끄랑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분을 삭이느라 가쁜 숨을 몰아 쉬고는 목을 가다듬는다.
“내가 죽기 전에 열이를 시집 보내서 손녀 사위를 보고 죽는다는 것이 너는 그렇게도 못마땅하냐? 어디 한 번 들어보자꾸나.”
그는 며느리가 거듭 용서를 빌자 화가 조금 풀리어 내린다고 하는 것 같이 점점 작은 소리가 되더니 늙은이 소리가 되고 자상스럽게 되어 버린다. 귀가 조금 먹은 사람은 입이나 쳐다보아야 짐작할 정도가 되고 만다. 휘번덕거리며 혼빼던 눈은 며느리의 얼굴을 더듬는다.
안방의 손자들은 방문으로 달려든다. 천둥 벼락이 치더니 소나기가 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밖을 내다보는 눈이다. 휘둥글하여 두리번거린다. 은부인은 다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빈다.
그는 며느리를 언제 나무랐느냐고 하듯 조용하게 집안의 입장을 설명한다.
“뼈대가 있는 집안이다. 권문세가의 집안이었다. 남에게 흉 잡히고 살 수 없다. 글깨나 읽고 입신도 했었다는 내가 체통을 깎이고 부끄러워 어찌 사느냐?” 고 말한다. 그리곤 조금 뜸을 들이듯 하다가 방문을 닫는다.
은부인은 코를 쑥 빠치고 시아버지의 앞을 물러난다.
열이는 솥에서 주걱으로 밥을 퍼서 사발에 담다가 부엌으로 들어오는 어머니를 흘끔 쳐다 보고는 계속 밥을 퍼담는다. 열이의 얼굴은 찌부러져 뾰루퉁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당장 시집을 가야할 나이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왜 저렇게 성화를 대나? 왜, 야단법석이야. 내가 시집 보내달라고 안달이라도 했음 몰라. 할아버지는 내가 시집가지 않으면 그걸 못보면 죽어두 저승엘 못 가는건지. 죽기 전에 손녀 사위 보고 죽으면 뭐가 그리 좋은가?
내참 기가 막혀서, 시집은 내가 가는건데 할아버지가 야단이람.
늙으면 다그런가, 노망 들어서 그런가, 주책도 자그만치 피지. 양반체통이 밥 먹이나? 양반은 꼴도 안보나? 언제 봤다구......그래서 고려장을 했나봐, 잘들 노는군. 내가 밥을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구...’
열이의 속은 밥솥에서 내뿜는 열기보다 심한 한증막이 되고 만다.
그녀의 얼굴은 뒤틀린 게 터져 나가려고 이리 불쑥 저리 불쑥 볼상 사납게 되었다.
은부인은 부엌 마루에 걸터앉은 채 뒤집힌 속을 달랜다.
‘남편의 하는걸로 해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타든지 그냥 두고 물러앉아 구경이나 해야겠다. 이러다가는 나도 내 명에 못 죽겠다. 그렇지만 그꼴을 어찌보나! 자식이 나중에 울게 될걸 뻔히 알면서 어찌 모른 체 한단 말인가? 내가 낳은 자식인데.’
그녀는 몸을 태우려고 불에 뛰어든 불나비가 된 듯 속에서부터 불덩어리에 휩싸인다.
“얘야, 내말을 들어봐라.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 너도 이제 설이 되면 스무살이 되니 남녀간의 정이 무엇인지 대강은 짐작이 갈줄 안다. 내가 시집 올 때는 너 보다도 훨씬 어렸단다.
나도 너의 외할아버지가 시집을 보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의 집에 시집왔단다. 네 나이로 해서는 시집갈 나이는 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잖느냐? 그래서 그런지 내눈에는 네가 아주 어리게만 보인단다. 너는 어떠냐? 시집 보내주면 시집 가서 잘 살수 있겠냐?”
열이는 대답도 않고 밥상을 차려 가지고 사랑방으로 가버린다.
은부인은 먼죽하니 섰다가는 안방으로 밥상을 가지고 들어간다.
열이는 부엌으로 와서 대접에다 숭늉을 떠가지고 사랑방에 들여놓고는 다시 부엌으로 와서 숭늉을 떠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얼마 후 그녀들은 빈 상을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설거지를 하면서 은부인은 딸에게 사람사는 요령을 일러준다.
“시집은 일찍 간다고 다 고생하는건 아니지만 어쩐지 엄마 맘은 불안스러워 견딜수가 없구나. 할아버지는 왜 너를 꼭 한산 이씨네 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저러시는지 모르겠구나. 너는 걱정이 안되냐? 너의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말씀에만 무조건 따르신단다. 그리고 네 신랑 될 사람 사주가 곧 올 것 같다. 사주를 받고 나면 정혼했다고 해서 옛날 사람들은 부부가 된 것처럼 여겼단다. 지금이야 신식시대니까 그렇게 생각 안하는 사람이 많겠지. 저 건너편 양산에 사는 숙이는 사주 받고서 시집 안간다고 도망을 갔다더라.
여자란 시집가면 그냥 시집에서 죽으나 사나 사는 걸로 알고 구박도 참고 견디면서 살았다. 나도 내가 왜 여자로 되어서 세상에 태어났나 하고 울기도 많이 했단다. 엄마처럼 울음도 참고 구박도 참고, 때리면 맞고 무슨 욕을 해도 내가 미련하니까 그렇지 하며 사는 여자도 있고 호강하며 대접 받으면서 사는 여자도 있단다. 여자는 남편 만나기에 따라 귀부인 대접을 받는가 하면 평생을 구덮만 치루다가 마는 여자도 있단다.
사람이 살다가 당하는 것이야 팔자소관이겠거니 한다지만 얼굴도 안보고 시집갔다가 탈이 있으면 어쩌겠냐? 나는 그게 걸려서 목구멍이 아파서 아까도 할아버지께 꾸중들을 일이 생겼었단다.
너희 외조부와 너의 할아버지는 친구 사이로 두분이 평생 내왕이 많으셨대요. 내가 너의 아버지를 못보고 결혼한 것은 거울속 같아 걱정을 할래야 할게 없었던 거지만, 너의 혼담이 있는 이씨네와는 우리 집에서 아부도 몰라요. 성씨도 처음 듣는 거라구. 집구경은 했나 보더라.
조그만 판자집이더라도 집이야 움막인들 상관있냐? 돈 벌면 나중에 좋은 집 짓고 살면 되는거니까, 상관 없지만...
너의 할아버지는 양반에 홀딱 하셨나 보더라. 양반이 무슨 소용이냐?
네 신랑 될 사람 보았다는 사람은 중신애비 뿐이다.
네 고모 형숙이를 그 사람이 중매 했다고, 괜찮은 사람에게 했다고 아주 딱 믿으니 그게 탈이지. 네 고모 신랑감은 할머니가 보시고 오셨는데, 아주 흡족해 하시면서 좋아하시더라. 문벌은 별로 안좋아도 당자가 쏙 맘에 들게 생겼나보더라. 집안도 좋고 당사자도 좋고, 가세도 좋고 하기는 쉽지 않겠지. 그러길래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은 없다는 말이 생긴게 아니겠냐? 네 생각은 어떠냐? 네가 마음 먹은것을 엄마한테 말해봐라. 네속은 어떤건지 알고나 넘어가자.”
은부인은 딸의 대답을 기다리느라고 잠시 뜸을 들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딸을 쳐다본다.
열이는 대답을 않고 부엌 바닥에 기어가는 개미만 내려다보고 있다.
은부인은 딸의 모습에 어이없어 혀를 끌끌 찬다.
‘어쩌면 제 애비를 꼭 닮아서 저러나? 곰하고 얘기 하는게 차라리 낫겠다. 씨정머리는 속일 수가 없다더니 너를 두고 하는 말이냐? 내속으로 낳았는데도 어쩌면 그러냐?’ 하는 소리 같다.
침으로 입술을 축인 그녀는 답답한 것을 꺼내느라 다시 입을 연다.
“내 말 잘들어라. 너의 앞날은 너에게 달린거란다. 어느 사람도 너를 위해서 발벗고 나설 사람이 없어요. 네 신랑이 될 사람이 바보 천치인지 병신인지, 늙은 시람은 아닌지 궁금하고 답답해서 내가 한 번 가겠다고 했더니 너희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시니 에미는 속이 터질 지경이란다. 그러니 네가 할아버지한테 얼굴도 한 번 못 본 사람한테는 시집 안간다고 하려므나. 그 소리도 못하겠으면 뒤 책임은 엄마가 질테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정혼을 하고도 맘에 안든다고 부모네의 결정을 파혼시키는 여자도 있어 이것아. 네가 보고 네가 좋으면 말리지 않는다. 네가 결정하기에 달렸어 이것아. 너만 밤에 나서 밤에만 컸냐? 왜 그렇게 미욱하냐?
약삭 빠르지 못하구. 외갓집으로 몰래 도망을 가거라. 네 동무네 집에 놀러 가는 것처럼 가거라.”
“몰라.”
열이는 모르겠다고 동작 빠르게 퉁명스레 입을 열고는 엄마의 재촉에 벌떡 일어나 부엌을 어슬렁거리며 나간다.
은부인은 딸의 뒷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는 고개를 떨군다.
“할 수 없는 일이지. 제 팔자에 타고난 것은 말릴 수가 없는 것인가?
웬 것이 커가며 속 시원하게 말도 잘 안하고.....
무슨 말을 해야 철부지가 깨닫나! 어긋나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저의 아버지가 저한테 무관심한 것 같으니까 그러는 것은 아닌지...”
그녀의 뇌리에는 푸주간으로 끌려가는 소 같은 인생이 되는 것 같아 안절부절이다.
오늘은 음력 이월 초 열흘날이다.
상길네 마당에는 차일이 바지랑대에 받혀서 높다랗게 치어졌다.
차일 친 밑에는 큰 멍석을 한 잎 깔아놓았다. 멍석 위에는 교배상을 차려 놓았다. 교배상 위에는 대나무 잎이 병에 꽂혀있고 닭도 보자기에 싸서 닭 목만 내놓았다. 닭 앞에는 조그만 접시에 쌀을 담아 놓았다. 닭은 계속 쌀을 쪼아먹는다.
신부는 안방앞을 등을 지고 상을 마주하고 삽짝을 향해 서있다.
아낙네들이 신부 양쪽에 서서 신부를 부축하고 서 있다. 그녀들은 팔자가 좋다는 여자들이다. 남편도 살아있고 자녀도 여러 남매 두고 사는 게 부자 흉내라도 낼 정도로 의식주가 넉넉한 아낙들이다.
쪽두리 쓰고 연지 곤지 바르고 원삼을 입은 상길이 고모의 자태가 예쁘다고 아낙네들은 입을 모은다.
신부는 엷은 미소를 머금은 눈을 내리뜨고 두 손을 앞에 모아 쥐고 신랑이 들어오길 기다린다.
마당 안의 모든 사람들의 눈은 기쁨에 젖어 삽짝을 바라보고 서 있다.
물을 뿌리고 물을 끼얹은듯 신부따라 잔잔하기만 하다.
“신랑 온다. 신랑 오네유.”
동네 꼬마들이 신이나서 떠들며 삽짝으로 뛰어든다.
신랑은 느릿느릿 걷는다. 좋아하고 싱글거리지도 않는다. 조금은 긴장된 게 무엇에게 눌리고 있는것 같다.
꿈에도 그려본 나의 반쪽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히 여기는 초조함도 그의 발치에 묻어간다.
이제 나도 인격자가 되는가 보구나! 의젓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흐뭇해함도 엿보인다. 현숙한 아내는 진주보다 귀하다던데, 나에게도 그런 복이 있다고 조금은 자랑하는 것이 뾰죽이 나와있다. 내가 쓴 이모자는 사모가 아니라 왕이 쓰는 면류관이라고 흡족해 한다. 신랑의 얼굴에서는 기쁨이 반짝거리는 게 점점 더해간다. 신부의 집안을 훈훈하게 만들어 봄날같이 따사롭게 만든다.
초례청에 들어설 신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눈빛은 부러움과 시새움이 소담스럽게 담겨 앞을 다툰다.
상길이 할머니 라부인은 너무 좋아서 울먹거린다. 기쁜 마음이 얼굴에서 빛이 나다 못해 뻘겋게 달궈졌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히느라 눈에서 코에서 물이 나와 찔끔거린다.
‘형숙이가 시집을 가다니, 저희 아버지가 본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당신은 지지리도 복이 없구려. 당신이 십여년만 더 살았어도 내가 팔자를 고쳤겠수? 당신은 저것 하나만 덜렁하게 남겨놓고 훌쩍 혼자서 가버리고..... 당신은 너무 야속했다우. 용서하구랴.
여보! 당신이 예뻐하던 형숙이가 시집을 간다우. 당신은 보시고 계시우? 나만 혼자 지켜보기 민망하구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 같다면 외로운 사람 불쌍한 사람만 사는 동네가 되고 말겠구려. 당신은 나를 또 울리는군요. 우리 형숙이는 진실한 신랑을 만나 정직하게 살아 오래도록 복을 받고 잘 살기를 소원한다우.
여보, 당신 보기에는 어떤가요? 내 눈엔 마냥 예쁘기만 하다우.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우. 속이 예뻐야지. 착하고 그 속에 대나무가 있어야 보람을 주는 사위가 될 게 아니겠우. 먹고 사는 거야 굶고 사는 사람이 없듯이 굶기 싫으면 열심히 일을 할테니까 그건 걱정 안하기로 했어요. 나는 당신이 아시듯, 마냥 배우진 못했어두 남이 싫어하는 짓은 안하는 성미잖우. 요사이 젊은 아이들은 가만히 보니께 저만 좋으면 그만입디다. 우리 사위가 아무개 했다가는 집안이 하루 아침에 우스개가 될 게 아니유. 사위 자식도 자식인데...
복 받을 짓만 해서 아무개처럼 살아보라는 소리만 듣는다면 바랄게 없겠어요. 여보! 당신도 그렇지유? 안그래요? 여보. 미안하구랴. 나만 혼자 낙을 누리니......’
그녀는 울먹거리다가 기쁨과 아울러 북받혀 오르는 설움을 견디지 못하고 집모퉁이로 가서 털썩 주저앉고 만다.
담 너머에서 형숙이 시집 가는걸 구경하는 순주, 태숙이, 창순이는 부끄럼을 타는 얼굴로 시새우며 기웃거린다.
“신랑 복을 타고 났구나!”
“중신애비 대접받겠다. 얘!”
“아껴주게 생겼다. 얘.”
삽짝 옆에서는 동네 아낙네들이 보낸 청춘을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신랑 신부를 하나 하나 뜯어가며 비평한다. 그녀들의 눈에는 놀려줘야지, 기념 거리를 장만해 줘야지 하는 게 포개어 담겨졌다.
“근수 엄마, 형숙이 신랑 참 잘생겼지?”
기순이 엄마는 시샘이 넘치게 말한다.
“우리도 사윗감 고를 때 형숙이 신랑 같은 맘에 쏙 드는 사윗감을 골라야지.”
“그게 어디 맘대로 돼야 말이지.”
“찾아 다니면 고를수 있지, 뭐.”
“그럼 좋게?”
“돌 많은데서 돌 고르기가 쉬운감?”
기순이 엄마는 열여섯 살 먹은 딸을 하나 두었다. 그녀는 동네에 혼인이 있다 하면 빼놓지 않고 신랑 구경을 간다. 이웃 동네도 찾아가서 신랑 구경을 하는 극성파 아낙네다. 아낙네들 사이에선 관랑쟁이로 통할 정도로 꽤 소문이 났다.
“기순이 엄마! 열이도 다음 달에 시집 보낸다면서?”
근수 엄마는 자기가 들었던 말을 다짐하듯 확인을 한다.
“그런가봐. 열이 엄마는 사윗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구. 그러면서도 잠이 오는지.”
“설마 그럴라구.”
“설마가 사람 잡는대.”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원 세상에 그라구두..... 세상을 모르누먼.”
“그러기루...병신인지는 알아야지.”
“그거야 아니깐 가만히 있지.”
“혹시 첩으로 가는건 아닌지.”
“그러기야 하겠어?”
“선을 보고도 아무개는 첩으로 갔대요.”
“저걸 어째?”
“그러니 걱정이지.”
창순이 엄마가 삽작 옆으로 웃음을 담고 유들거리는 모양으로 걸어간다. 발걸음은 가볍게 촐랑거린다.
“이, 여편네들, 거기서 무슨 주책 떨어?”
“이 떠버리, 어데갔나 했더니...약방에 감초가 빠지지.”
“넘의 경사에 실컷 구경이나 했슴 됐지. 가는 청춘 안타까워 떠벌리시나?“
“사돈 남말 하시네. 입이 근질거려 달려오구선.”
“무슨 정보야? 나도 좀 알자.”
“네 딸은 언제 손자 보냐구 했다.”
“까불지 마라. 오래오래 살란다.”
“창순인 어쩌구.”
“신식 양반한테 시집 보낼란다. 왜?”
“딸년은 종으로 보내실 참이구먼.”
“그래야 자동차 구경두 하고, 오만원짜린지 삼만원짜린지 하는 밥 도 먹을거 아냐?“
“딸년 꼴만 보다 마를 소리 말어. 말이 씨 된다는것 몰라?“
“창순이도 속깨나 태우겠네.”
“삼복 때 어디 태우겠어?”
“그러니 양반에 녹아난다구.”
“불쌍하지.”
그녀들은 걱정하듯 비아냥거린다.
열이 할아버지는 귀를 긁고 재채기를 계속하는 것 같다.
열이는 뒷방에 앉아 잠시 쉬면서 고개를 꼬고 생각을 굴려 본다.
‘나도 다음달엔 시집을 가겠지. 형숙이처럼 원삼 족두리에....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겠지. 동네에서두 복이 많은 아주머니가 시키는대루 절을 하겠지. 신랑 얼굴도 모르고 절을 한다...
한번 몰래 쳐다볼까? 그러면 새색시가 그런다고 흉보겠지. 남의 속도 모르면서 막 놀려대겠지...
형숙이는 사람들이 막 놀려대도 별로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어. 아주 좋아하는 얼굴이었어. 나도 형숙이처럼 그럴라나?
기순이 엄마가 - 색시는 참 좋겠네. 잘 생긴 신랑이 데려가니 얼마나 좋을까? 참 좋지? - 하니까 부끄럼도 안 타고 빙긋이 웃는게 아주 어른스러웠어. - 웃으면 딸난대. - 하는데두 기쁨이 넘치는걸 보면 사람이 달라지나? 원삼 쪽두리가 처녀를 금방 여자로 만들고 어른으로 변신 시키는 힘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남자가 여자의 비위를 떳떳스럽게 자연스레 만드는 힘이 있나? 나는 비위가 너무 없어. 할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도 못하는 못난이니까. 하지만 사람팔자 알 수 있나? 형숙이도 예쁜 신랑 얻어 가는데, 나라고 그만 못한 신랑 얻을라구? 엄마는 너무 남을 의심하는 것 같아. 형숙이 중매한 사람이 나도 중매 했다면서 내 신랑이라고 소홀이 하겠어? 너무 조심성이 많은 것두 탈이야. 나도 엄마가 되면 그럴까? 자식을 넷 이상 낳아서 길러봐야 에미속을 안다고 그러시는데... 엄마가 나를 염려하는 것은 다 잘되라고 그러는걸 누가 모르나.’
열이는 저의 어머니를 딱하게 여긴다. 아주 속을 태우기 위해 속건데기만 찾아 다니는 걸로 보이기만 한다.
순주 엄마는 장난기 있는 얼굴로 담장 밖에서 구경하는 말만한 처녀들에게 살금거리며 고양이 걸음을 친다.
“이것 보게! 우리 동네 이쁜이들이 모두 오셨네!”
그녀는 목소리를 아주 굵게하여 주책을 떨어 부끄럼을 살짝 덮은것을 졸지에 잡아 당겨 훌러덩하게 한다.
“아줌마도, 참!”
창순이와 순주는 눈을 흘긴다.
“우리 아가씨들이 시집 가는걸 배우러 오셨구먼! 그래야지.”
그녀는 아까보다도 목에다 힘을 더 주고 크게 말한다.
“엄마, 왜그래? 엄마들끼리 놀지않구.”
“우리 공주도 오셨네. 그래 부지런히 배워라. 엄마는 좋아서 그런다!”
순주 엄마는 딸의 눈총에 떨려나 형숙이 엄마 쪽으로 시샘나는 얼굴을 하고 다가간다. 형숙이 엄마는 부엌 옆 마루에 잠깐 앉았다가 순주 엄마가 다가오자 일어나 맞는다.
“형숙이는 복덩어리야! 복 많은 딸을 두어서 부럽구먼. 어데서 그렇게 탐나는 사위를 골랐어 그래? 나에게도 좀 일러 달라구.”
그녀는 형숙이 엄마의 손을 마주 잡고 축하 해 준다.
“글쎄 내가 뭘 알아야지. 모두가 염려 해 주는 덕택에 딸을 시집 보내게 돼서 고마워.”
“나도 당신처럼 잘 생긴 사위 얻어 주면 꼭 한턱 낼께.”
“내가 뭘 아는 게 있어야지.”
형숙이 엄마는 즐거움에 잠겨 흐뭇한게 넘실거린다.
“되게 빼네, 혼자만 으시댈 모양이지?”
그녀의 눈에는 시샘, 장난기가 범벅이 되어 흥을 부채질한다.
“별소릴 다 하네. 제 복이 있으니까 좋은 신랑 만나지. 내가 뭐 한 게 있어야지. 있다면 우리 상길이 어메가 애 많이 썼다구. 우리 상길 어메는 내가 서운해할까 보아 하느라구 했다구.”
라부인은 며느리에게 공을 돌린다.
며느리가 오늘이 있게 하느라고 정성스럽게 제 속에서 나온 자식 이상으로 보살펴서 결실을 보게 했다고 며느리 자랑을 한다.
곁에서 라부인의 이야기를 듣던 순주 엄마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녀들은 잠시 숙연한 모습을 지우지 못한다.
“이제 형숙이를 시집 보냈으니 오늘밤에는 베개를 높이고 주무시게 됐으니 좋겠네.”
“그래야지! 딸이란 날때부터 걱정거리라는데, 그래야지.”
“형숙이 같다면 걱정 할 것 없지. 고마운 일이야. 인력으로 된다면야 오죽 좋겠어.”
해가 기울어 땅거미가 드리우자 하나 둘 자기네 집으로 모두 돌아갔다.
상길이네 집안은 파장된 장터 같다. 저녁을 먹고 난 상길네 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안채의 부엌 건너편 방에는 촛불이 두 개나 켜져 있어 안방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방안 뒷문쪽에는 문을 가리우듯 병풍을 세워 놓아 방을 한결 아늑하게 만들었다.
병풍을 등지고 신부가 앉아 있다. 원삼을 입고 쪽두리를 쓰고서 다소곳하게 앉아서 기다린다. 조금은 수줍어 하는것 같다. 눈을 내리뜨고 있다. 두손은 앞에 모았다. 손까지 부끄럼을 이기지 못하는양 소매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신부는 머리가 조금은 이상하리만치 무거워졌다고 하는양 쪽두리의 수술이 방바닥을 짚고 머리를 떠받치고 있다. 신부의 모습은 내려 쪼이는 햇빛을 주섬주섬 담다가 눈알이 시어서 지그시 감은 것 같다.
고향, 내가 난 고향의 아늑함에 한시름 벗어던져 버리고 너부러진게 담겨지는 그것이다.
‘몸뚱이는 머리가 시키는대로 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부창부수가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한몸이라고 하는거겠지. 그게 남녀 동등일 거야. 몸뚱아리 된 내가 저이를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저이가 어떻게 하겠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거지. 머리가 한다는 것은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명령하는 일밖에..
그러니 몸뚱이가 된 나를 어데 가자, 이것 저것 해달라고 시키겠지.
요청하고 간청하는 것이지. 그래야 살아있는 몸이지. 인격자이고.
따로따로 머리와 몸이 간섭을 싫어하고, 듣지 않는다면 그건 자존심이 아니야. 그건 불구자던지 죽은 몸이지. 그걸 내가 이제야...
내가 이기려하면 저이는 져 주겠지. 눌려지는게 뭔가 했더니...
왜 내가 이런 생각을? 밑도 끝도 없는.......
남편을 무시해 버린다. 그건 내 머리를 무시하는 거야. 그런 여자는 똑똑하기는 해도 머리가 없어 혼자 있을때도 풍선처럼 그렇겠지.
답답하고 배고파도 속수무책이겠지. 그걸 모르고 으시대다니!
태초에 하나님이 나를 만드실 때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서 그런 거야. 그래서 내가 벌써부터 저이를 사모하고, 의지하고 머리부터 붙들어 매이고 눌리게 되나. 내가 어리석어서 그런가? 저이만 바라고 살아야지 하는 맘이 자꾸 생기는게 이상한게 아닌가? 정상일 게야. 남자에 대해선 말이 없고, 여자에게만 일부종사 해라. 한 남편만 섬겨라 하고 야단들인가? 이제부터 저이만 섬기기로 내 맘이 굳어지는 것도 야릇하다구. 아침까지도 없던 맘이 초례청에서 생기다니 내맘도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야. 그리구, 왜 남자에게는 조심하라고 가볍게 말하고, 유독 여자에겐 신신당부일까?
올캐는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남자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여자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 여자가 정조를 지킨다는건 여자를 위해서 하는 말이지. 아내가 불행해지면 남편도 따라서 불행해 진다는 말이라구. 시누는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아야 알 게 될게야. 아니지, 그건 스스로 깨달아야 되는게야. 남편과 같이 살면서도 남편이 없는 여자처럼 남편의 사랑에 감사한 생각보다 불만이 계속된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어. 그래두 몰라?
남자가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횡포 부리는 말이 아녜요. 아주 사랑하기에 그렇게 정조를 지키라고, 때리고 의처증 환자처럼 투기하는게 남자들 속에 사람 만드신 분이 여자 위해 여자가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유리하는 걸 막으시려고 넣어준 좋은 맘이라구. 여자의 거죽도 속도 상하지 않도록 하심이라구. 어른들의 말은 다 옳은 말씀들이야. 여자가 몸뚱이가 하자는대루 끌려다니면, 제딴엔 뽐내고 활개치고 다니는 것 같지만, 까딱하면 몸도 마음도 상하고, 평생을 두고 계속 방황하고 후회하게 되지요. 설마 나와 무슨 상관이람 늘 젊어요. 늘 살아요. 하다가는 걸걸하는 사람이 만들어지지. 우리동네도 여럿이 그렇게 된 딱한 사람이 많다네. 마음의 풍요로움이 없어 노상 더 좀 다오. 요걸 줘. 더 줘. 하는 사람이 되는거지요. 비교하는게 물새듯 하면 불행하다구. 맘속에 비교하는게 자리잡을 건덕지를 만들면 한심한 게야.
열이와 시누는 잘 듣고 명심하면 가슴 뜯는 일은 안 생긴다구.’
형숙이는 맛도 모르면서 머루같은 올케의 말을 계속 따서 입에 넣고 또 깨물어 삼킨다.
신부, 신랑 앞에는 자리끼 상이 차지하고 있다.
신랑은 감회어린 눈으로 신부를 건너다 본다.
‘내가 장가를 들다니...
이제는 나도 어른이 된것인가? 저 여자가 내 색시가 된것인가?
나는 저 사람의 남편이 되고, 이렇게 된 것을 연분이라고 하는 것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이런 산골에 장가를 오다니?
그건 그렇구 첫날밤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는지. 집안 사정이나 물어 볼까? 그거야 차차 알게 될거고,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음 이야기 해 달랄까? 그럼 무엇을 먼저 물어본담.
지루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건 아닐까?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어디부터 꺼내야 될지 캄캄하니.....
그냥 잔다면 웃음거리가 되겠지.
쯧쯧 오죽 못난 놈이면 첫날밤에 말도 한마디 못하고 잘까?
잠충이구먼. 이제껏 어떻게 참고 살았냐? 재주가 용타고 볼 게 없다.’ 고 하겠지.
형숙이 신랑은 머리가 벅차고 가슴이 벙벙하여 오른손 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뒤통수를 쓰다듬는다.
동네 아낙네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상길네 삽짝 안으로 들어선다.
마치 우리가 엿들으려고 왔으니 그리 알고 신랑은 재주를 피워서 실망을 당하지 않게 흥을 돋우어라. 흥을 돋우지 않으면 부끄럼 당하게 된다고 을러대는 것 같다.
그녀들은 누구의 말도 들을 것도 없고 물어 볼 것도 없이 곧바로 신방 앞으로 쪼르르 간다. 신방 뜰방에서는 고양이 걸음을 치고, 까치걸음을 하며 마루에 올라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방문에 달라붙어 앉는다. 그녀들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창호지에 바르고 또 바른다. 그리고 뜸을 들였다가 또 침을 바른다.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본다.
창호지는 침을 잔뜩 먹은뒤라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내 문구멍이 생긴다. 얼굴을 거머리처럼 해 가지고 방문 문살에 달라 붙는다. 눈을 방안으로 밀어 넣으려 덤빈다. 순주 엄마는 창순이 엄마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옷을 잡아 당긴다. 창순이 엄마는 옷 잡은 손을 거머리 떼어 던지듯 한다. 손을 설레설레 흔든다. 그녀의 오른손은 좀 가만히 있으라고 허공을 다독거린다. 순주 엄마는 소심증이 나서 이사람 저 사람을 찔러본다. 물러나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는 보고 싶은 충동을 마음에 그냥 담고 있질 못한다. 마루 위로 성큼 오른다. 까치걸음으로 방문으로 다가선다. 왼손으로 문설주를 짚고 한손으로는 방문에 구멍을 내느라 열심이다. 창호지가 침을 먹어서 군소릴 내지 않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거듭 손가락으로 침을 나른다. 침은 먹히지 않고 그냥 흘러내린다. 그녀는 손가락에 힘을 준다. 그리고 쿡 찌른다.
손가락은 찌지직 소리를 따라 방안으로 꼴 사납게 뛰어든다. 그녀들은 창호지 찢어지는 소리에 찔끔한다.
창순이 엄마는 문살에서 얼굴을 뗀다. 그리고는 순주 엄마를 눈이 찢어져라 흘긴다. 꼬집는 시늉을 한다. 그녀의 입술은 욕을 하느라 얼마동안 달싹거린다.
신랑은 창밖의 아낙네들의 수선떠는 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떠듬거린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애쓰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리는 마음은 피차 한가지겠지요. 앞으로 우리는 부모님들이 사랑해 주시는 그 사랑에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열심히 살아가야 되겠지요. 서로 양보하며 서로 아끼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노력을 하여야 비둘기 같은 부부가 되겠지요. 남들이 부러워하게 사십시다. 아끼면서, 이말은 우리만 위하는 것 가운데 첫째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딴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에 있다고 봅니다. 실망이 되실지 모르지만 나는 남처럼 그 흔한 돈도 없습니다. 있다는 것은 젊고 건강하다는 것이지요. 또 있다면 자랑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항상 삶을 거짓없이 꾸밈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가운데 있기를 좋아하는...
뭐라 할까, 보람으로 안다고 할까요. 거짓이 담기는걸 싫어하고, 언제나 있는 그대로 사는걸 닮은 체라도 해야 한다는 게 꿈이지요”
신랑은 아주 느리지 않게 또박또박 책을 읽어주는 2학년 학생같다.
기순이 엄마, 근수 엄마가 상길네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녀들은 신방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까치 걸음으로 신방을 향한다.
그녀들은 뜰방에 서 있는 순주 엄마의 어깨를 호들갑스럽게 잡는다.
“아이구머니나! 이 주책들, 애 떨어지겠다. 웬일로 안오나 했다.”
“늙은 것들이 시샘이 나서 제 서방 밥도 안주고 달려들 왔구나.”
“이 주책들 엔간히 떠들어. 신랑 듣겠다.”
조용해지길 기다렸다가 구경이나 하고 듣기나 하라고 이르듯이 다시 떠듬거려 책을 읽듯 말을 한다.
“나는 오늘밤 당신에게 한가지 부탁할게 있어요. 들어서 아실줄 압니다만 우리 집에는 어머님 아버님이 계시고, 형제도 여럿이랍니다.
출가한 누님이 둘이 있고, 형님은 두분 계시지요. 여동생도 하나 있고 남동생도 하나 있어요. 우리 집은 대가족이랍니다. 조카들도 많답니다. 형제간에 우애가 아주 좋으십니다. 형제끼리는 다투는 일이 없는데, 간혹 내가 형님께 투정을 부려서 가끔 혼날 때가 있지요. 나는 나밖에 모를 때가 많아요. 그러니 그런 기미가 보일 때는 조언을 해주길 바라겠습니다. 나 혼자만 말한 것 같은데 할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하시어서 우리의 첫날밤을 기념하도록 하시면 좋겠습니다.”
신랑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한다.
신부는 엷게 웃음을 머금은듯한 얼굴을 조금 세우는듯 하고는 잠잠함으로 대답하는 것 같이 하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일평생을 당신에게 헌신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에게 어떻게 해달라는 것보다 이렇게 하면 좋을듯 합니다. 왜 그런말을 합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는건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아내된 사람은 아내로써 아내의 본분만 지키고 삶을 누리면 되는 걸로 알고 자랐어요. 아녀자가 남자가 하는 일에 간섭하는건 도리가 아닌 줄로 압니다. 요즘은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그냥 외치는 것 같아요. 나는 배운게 많지도 않고 보고 들은게 적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알고 있어요. 여자가 아무리 남자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남자가 될 수 없고, 남자가 여자의 일을 다 한다고 변장을 하면서 여자가 된 것 마냥 날뛰어도 여자가 될 수 없듯이 여자는 여자로써 열심히 여자 노릇하는게 자유요, 평등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머리가 되는 남자는 머리노릇 열심히 하고 간섭받지 않고, 몸뚱이된 여자는 몸뚱이 노릇하는게 평등이요, 제 분수 지키는거 아니겠어요.
머리를 제 손으로 때린다면 누가 아프겠어요? 몸뚱이에 붙은 손으로 쓰다듬고 다독거리는게 평등하는 것 아닐까요? 그 일을 남자가 한다면 일거리를 놓치고 마니까 편한게 아니라 일 할 자유를 빼앗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깨먹는 것이 좋은 것 같이 보일지 모르나 불행이 뒤따라 초조, 공허, 쓸개 먹는 일이 덮어 씌워지는 것 아닐까요?
생태계가 파괴되면 큰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건 왜 모를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곤 하지요. 그건 스스로 불행으로 어둠으로 기를 쓰고 달리는 일이라 봅니다. 그렇다는걸 아시면 당신 혼자 알아서 하세요.’
하는 소리가 입속에서 맴도는 것 같이 입술을 보이게 한다.
방안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신랑의 뒷머리만 보일 뿐이다. 신랑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듣는 아낙네들은 잔뜩 목이 말랐다.
아낙네들은 다시 떠들기 시작한다.
“신랑 목소리 듣게 시시덕거리지 말라구.”
“조용히들 하라니까.”
“가는 귀가 먹었나? 귓구멍을 문속으로 들이밀어”
“신부를 깍듯이 위하는데.”
“그걸 말이라구 하냐? 한날 한시에 똑같이 어른이 됐는데 그걸 몰라.”
“신랑이 저녁을 조금만 먹었나?”
“아까보니 많이 먹던걸.”
“목소리가 작은가봐요.”
“신부가 가는 귀 먹었나 시험하나봐.”
“신랑 속에 언제 갔다 왔냐?”
“목소리가 신부 코 끝까지 밖에 못가겠어.”
“들리던 말던 우리가 속 썩일 것 없지.”
“신부는 졸리나봐. 저것 보게. 하품 하잖아.”
“색시가 예쁘면 꼭 안아주지 멀거니 있어.”
“입으로만 한몫 하시네.”
동네 아낙네들은 신방을 엿보고 엿들으며 지껄이며 좋아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랑 신부를 축복해 주는 것처럼 여긴다.
“밤이랑 대추가 우는데 그냥 보구만 있담.”
“손은 포도청에 갔나?”
“보라는게 아니라 먹으라는 거여.”
“신부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집어줄 수 있겠어? 어디.”
그녀들은 신랑 신부에게 첫날 밤의 행복을 내리 내리 품앗이를 한다.
신랑은 잠자코 아낙네들의 놀림을 받고 앉아 있다. 그는 자리를 고쳐 앞문을 향해 천천히 돌아앉는다.
“보시기 힘드시는데 제가 잘 보시게 해드리지요.”
그는 말을 하며 날렵하게 문의 창호지를 오른손으로 북북 찢는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앉는다. 조그만 구멍으로 감질나게 보느라고 나오는 군소리는 그만 하라는 투다.
잠시동안 멋없이 방안을 바라보던 그녀들은
“이제 가세.” 하며 흥깨진 얼굴로 마루를 내려간다.
누가 가라고 하기나 한것처럼 신방을 물러나 삽짝을 나간다.
아침을 짓느라 은부인과 열이는 부산을 떤다. 상길이는 아궁이에 불을 땐다. 상길이 고모는 부엌광 뜰방에 나무판자를 놓고 앉아 있다.
그녀의 검은 비로도 치마는 검은 윤기를 더 하는것 같다. 그녀의 치마폭에는 밤과 대추가 뒤섞여 있다. 그녀는 밤을 열심히 깐다. 대추를 치마자락에 슬쩍 닦아서 입에 넣는다. 밤도 열심히 까서 오도독 소리를 내면서 먹는다. 그녀는 식구들에게 먹는 자랑이나 늘어놓으면서 구경이나 하라는듯 혼자만 먹고 있다.
상길이는 고개를 돌려 고모를 쳐다보다간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는다. 그는 나무를 집어넣고는 다시 흘금하곤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의 얼굴은 ‘어처구니가 없다. 나도 하나 주고 먹지. 고모는 돼지야.’ 하는 말을 입술로 가두고 있어 커다란 사탕을 물고 있는 입이 되었다.
상길이 할머니가 부엌으로 서둘러 들어온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죄다 먹어야 한다. 그래야 시집가서 잘산다.
첫날밤에 신랑이 먹으라고 준 과일은 혼자 모두 먹어야 아들도 잘 낳고 딸도 잘 키운단다.”
상길이 할머니는 마치 상길이에게 해명을 하듯 지껄이며 부엌 문지방을 넘는다.
하룻밤 사이에 형숙이는 많이 변했다. 어제는 부끄럽고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빨개져 쩔쩔매던 그녀였다. 지금은 아주 의젓하고 어른스러움이 잔뜩 솟아 나왔다.
“나는 처녀가 아녜요. 이제는 나도 여자가 되었어요. 머리가 생겼어요.
나도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어요. 귀도 입도 있어요. 그러니까 머리를 들고 다닐 수밖에 없잖아요.”
하는 소리가 얼굴에 배어 나왔다.
아침 11시쯤 되었다.
형숙이는 그의 신랑과 같이 트럭 운전대에 앉아 있다. 트럭 짐 싣는 곳에는 형숙이가 시집가서 덮고 잘 이불보따리가 실려있다.
상길네 식구들은 운전대 옆에 일렬로 서 있다. 상길이 할머니는 한편 좋고 한편 잔뜩 서러워서 목이 메인다. 그녀의 눈에서는 안개가 보이다가 이슬이 맺힌다. 방울져 미끄럼을 탄다.
“얘야, 잘 살아야 한다.”
“엄마!.”
“잘 살아다오.”
“엄마, 걱정마.”
형숙이의 목소리는 울먹거리기만 한다. 그녀들 모녀는 눈으로 소리를 듣느라 손등이 얼굴에서 내려오질 못한다. 상길네 식구들은 형숙이를 축복하며 기쁘게 보낸다. 트럭은 신작로를 따라 이불 보따리 하나 달랑 싣고서 신바람을 내면서 달려간다. 마치 기쁨을 붙잡아 차에 매달고 가는양이다.
형숙이가 시집간지도 여러날이 되었다. 은부인은 열이를 뒷방에 불러서 앉히고 걱정스런 얼굴로 딸을 바라본다.
“엄마,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열이는 제가 먼저 궁금하여 묻는다.
“걱정은...... ”
“그럼?”
“네가 외갓집으로 도망가야 되겠다.”
“엄마는 또 그 이야기야?”
“엄마가 곰곰히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네가 외갓집에 가야겠다.”
은부인은 아주 소리를 작게 하여 숨을 죽이고 속삭이듯 말한다.
“엄마가 또 할 일이 없어서 지껄이는 소리로 듣지 마라. 나중에 엄마 원망말고.... 알았냐?”
열이는 조금 긴장하여 떨떠름한 얼굴로 엄마의 얼굴을 지켜본다.
“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위해서 하는 소리 못들었냐? 한 해에 한집에서 둘이 시집가게 되면 하나는 치인다고 하는 말 말이다.
동네 사람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이치에 안맞을런지는 몰라도,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은 그냥 귓등으로 흘려보내다가는 큰 코 다친다.
괜한 소리라고 여기다가는 딴일도 아니고 큰 낭패가 아니겠냐?
그런 말을 들으니까 괜히 마음이 꺼림직도 하고, 하기는 우리 집에서 하는 일들이 께름직하게 하니까 맘이 켕긴다만서두. 그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조심해서 손해볼게 없지 않느냐? 엄마는 바늘 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다. 음식도 께름직한 음식은 안먹는게 더 좋은 것 아니냐? 혼인은 무를 수도 없고 한 번으로 시작이요. 끝이 아니겠냐? 두 번 하는거라면 걱정할게 없겠지...”
은부인은 딸에게 타이르는 말을 하면서도 마음 구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섭섭한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내가 어떤점이 서운해서 그러시나? 내가 대전에 다녀온다고, 열이 신랑감 이야기만 나오면 무엇이 못마땅하여 그러시는가.......
원 알다가도 모를일이야. 왜 그러실까? 도무지 알수가 없으니.....
내가 내 사위 잘못 얻는게 좋아서 그러나? 뭐가 못마땅해서 영감님께 고자질을 하나? 누구 속 터져 죽는 꼴을 보려고 그러나? 내가 날이면 날마다 속썩이고 앉아 있는 꼴을 보아야 속이 시원하실라나? 열이보다 자기 딸을 옷 한가지라도 더 해주고 내 딴엔 하느라고 했는데...
당신이 섭섭해 할까 보아 하느라고 했는데 이게 뭐야?
농부가 추운날 뱀을 살리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가 뱀에게 물렸다는 꼴이 내꼴은 아닌지? 아버님께 말씀을 잘 드리지는 못해도 한마디쯤은 할 수도 있을텐데. 세상에 사위가 어떻게 생겼나 얼굴도 안보고 정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그런말도 못하는 이가 내가 대전에 관랑하러 간다는 말은 왜 했는지. 내가 대전에 못가는 게 소원이라도 되나? 당신도 딸이 있으니 내맘을 알텐데 왜 몰라라하나? 호랑이 새끼를 기른꼴인가? 왜 훼방을 놓구 야단이야?’
그녀의 마음은 일그러짐으로 뒤집어 씌워져 뻣뻣해졌다.
“넌 무서워 말고 일년 동안만 외갓집에 가 있다가 오면 좋겠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무서워 할 것 없어요. 네가 외갓집에 가 있었다고, 정혼한 처녀가 도망갔다고 나중에 시집 못 가겠냐?
지금은 그런 어리석은 세상이 아녀요. 6.25 난리 나기 전에 사람들은 어리석었지. 그렇게 어리석으니까 난리가 쳐들어 오는데두 피난 갈 줄도 모르고 돼지새끼 사놓고 돼지 새끼 먹일 것만 걱정하던 너희 할아버지셨다. 너희 아버지는 부산으로 피난가면 고생하지 않고, 난리를 피하지만 여기 있으면 잡혀 죽는다고 일러줘도 너희 아버지는 안갔다가 난리통에 죽을뚱 살뚱하며, 좌익들에게 죽을 매를 얼마나 맞고, 가슴을 피우고 태우더니 난리에 경을 친 게 몇 년이 지났다고, 벌써 까맣게 잊어버려.
그때 넋이 빠진건지 정신을 못차리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미련한것은 절구에다 넣고 공이로 아무리 찧어도 벗겨지지 않는다더니만...
동네 사람들은 개명들을 했는데, 너희 집 양반들은 6.25 나리를 겪고도 개명이 안돼서 큰 일이다. 너도 난리 때 안 보았냐? 챙피하다고 비겁하다고 어떻게 도망가고 숨느냐고, 그냥 잡혀 죽겠다고 하는 사람 보았느냐? 그걸 흉보는 사람 보았어?
급하면 우선 살 길을 찾는게 현명한 사람이라는걸 배웠잖느냐?
그건 미물도 이 세상에 생겨날 때부터 타고난 본능이란다. 어떤 사람은 자기 죽을 자리 찾아다닌 사람도 있었다는 말 나도 들어서 안다.
꼭 네가 남을 살리기 위해서, 적어도 민족을 위해서 나라를 위하는 일에 죽을 자리 찾는건 말리지 않는다. 사람으로 이땅에 태어났으면, 보람되게 열심히 살기 위해선 네 자신의 몸을 잘 간수하는게 시작이라고 본다. 너도 나중에 그렇게 가르쳐라. 이 에미는 인생을 살아온게 공부다.
학교만 다니면 공부냐? 나이 먹고 해야 하는건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공부해서는 모른다. 학교 선생님만 선생인줄 아냐? 나이 먹은 사람 이야기 귀담아 듣고 조심하면 네 인생길은 그만큼 순탄한 길이 된다. 괜히 교만해서 구식이니 기성세대니 하며, 우습게 알고 방자히 굴면 나이 먹은 사람이 겪은 온갖 고생을 또 답습하는 거란다.
현명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고생을 덜 해요. 쓸데없이 고집부리면네 고생이지 내 고생이냐.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어쩌겠냐? 시집간 뒤 울고 불고 한들 그때는 엎질러진 물사발이란다.
네가 외갓집에 간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너를 찾아내라고 야단이시겠지. 그렇지만 도리가 없는 것 아니겠냐?
형숙이가 너처럼 정혼을 했다면 벼락이 났을게다. 무식해서 가끔 푼수가 없기는 하지만, 너희 할머니는 똑똑한 분이다. 배워야 똑똑한 줄 아냐? 좀 배우면 배울 것이 있고 좋아 보일지 몰라도 배운 걸 못써먹으면 빈 강정이란다.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끌줄 알아야지. 너도 이제 시집갈 날이 안남았는데, 푸줏간으로 소처럼 끌려 갈테냐?”
열이는 고개를 숙인 채 방바닥만 바라본다.
은부인은 고개를 떨군 채 날잡아 잡수 하듯 아무 대답이 없는 딸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다가 숨을 크게 들여마신다.
“내가 어쩌다가 소 닮은 딸년을 두었담. 무슨 아이가 저 모양이람.
에미가 하는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이것아 대답 않기로 작정했냐?”
은부인은 중얼거리다가는 앙칼지게 내뱉는다.
“아무려면 중신해 주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라구. 병신한테 시집가게 하려구. 까짓거 상관없어요. 어서 시집만 보내 버릴려고 그러는데 고소할게 아니유? 한 번 데이면 정신을 차리지. 양반이네, 체면이네 하는데 잘들 해보세요. 한 뼘도 안되는 얼굴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체면 찾는거 꽤나 열심들이셔. 뼈다구가 있는 집안이면 어느 놈은 뼈도 없이 지렁이처럼 흐물거리다가 죽기나 하나?
두고보라지. 병신이 삽작안에 썩 들어서야 찔끔하겠지. 채찍에 꿈쩍하겠어? 양반 가죽인데. 여자가 사람인가? 다 큰 년이 어데를 간다구 그래. 송곳 맛을 봐야 찔끔하지. 병이 있던지 뭐가 고장이 있어두 크게 있다고 하지만 그거야 도시 사람들이니까 매일매일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집에 붙어 있을 수 있남. 집도 판자집이라면서 궁색하게 사는게 뻔한 거지. 할아버지 말대루 있네 집으로 시집 안갔다가는 벼락이 나지. 다시는 집에 들어서지도 못하게? 시키는대루 하면 서로 편할텐데. 그래야 속들이 시원하지. 내가 시원시원하게 제물이 되겠어요.
내 일로 속 썩일것 없어요.”
열이는 어머니의 말에 어긋나 돼지 발톱이 되어 간다. 건성건성으로 또 시작이라 여기며 소리도 안나게 중얼거린다. 열이는 그녀의 어머니가 말을 꺼낼 때 거죽 속에 있는 속알머리는 삽짝으로 들입다 내뺐었다.
혼인날이 바싹 다가서자 열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따로따로 냉가슴을 앓느라고 소리없이 끙끙댄다.
‘내가 사윗감을 만나보아야 될텐데. 맏딸은 시집을 잘 보내야 지체도 시집을 잘 보낸다는데. 조카딸 시집 보내는데 삼촌이 그냥 있을라구? 제 형을 보아서라두 한 번쯤 이씨네 집에 찾아가 제 조카 사위 될 사람 얼굴이라도 보았겠지. 보았으니까 어데 흠 잡을데가 없길래 아무 기별이 없지...’
은부인은 설마설마하며 좋게만 생각하려 든다.
오늘은 열이가 시집가는 삼월 초 이튿날이다.
그녀의 가슴은 답답했다가는 뚫리고, 뚫렸다가는 막힌다. 얼굴이 뻣뻣해져 손으로 비벼대며 서성거린다. 갈피를 잡느라 우왕좌왕하며 기를 쓴다. 핼쓱한 얼굴은 연지 곤지로 가리워졌다. 혼례 시간은 열한시로 정했다. 동네 사람들은 신랑이 오지 않는다고 걱정들이다. 삼십분 밖에 안 남았는데 신랑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며 야단들이다.
“신랑이 장가가는 날을 잊고 있는가?”
“세상에 저 장가가는 날도 모르는 멍청이가 있을라구.”
“형숙이 신랑처럼 아침 일찍 오지않구서 애를 태우네.”
“혼례 시간을 지켜야 마가 끼지 않는건데...”
“벌써부터 걱정이야. 시간이 있는데.”
“사모관대를 하자면 지금 해도 늦는데 큰일이네.”
“지금이니까 그렇지. 옛날에는 시계가 어딨어. 대강 짐작으로 했는데 뭘 그러냐?”
열이네 집에 모인 사람들은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혀를 차면서 꺼지게 걱정을 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금기가 있다. 장가가고 시집가는 날은 아무날이나 정해서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 결혼식날은 인륜대사 가운데 제일 큰 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혼하는 날을 정할 때는 제일 좋다고 하는 길일을 가리며 그중 한 날을 뽑는다.
사람의 생일이 365가지요. 어머니에게서 출생하는 시간이 12가지요. 출생하는 달이 12가지요. 출생한 해가 60가지요. 윤달이 있는 해의 달이 다르고, 달속의 날짜가 다르고 윤날에 출생하는 사람따라 다르다. 그러기에 자기에 맞는 길년, 길월, 길일, 길시를 찾느라 헤맨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때나 태어나는게 아니란다. 하나님이 태어나게 하시는 시간이 있고, 그 정한 시간에 태어나고, 태어나면서 저 먹을 복도 타고 난다고 믿는다. 그리고 길흉화복도 정해졌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결혼식하는 길일의 길시에 자기의 부족한 복을 다시 받는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길한 시간안에 결혼식이 끝나야 흐뭇해하고 안심을 한다.
혼례식의 시간이 어긋나서 길시에 혼례식을 못하면, 시집가서 잘 살지 못하고 평생을 부부가 해로를 못하는 것으로 믿는다. 더욱 무서워 떠는 일은 신랑 집안이나 신부 집안 식구중에 주장 맞아 죽는 사람이 생긴다고 전전긍긍댄다.
신부집 아낙네들은 안절부절하며 내가 과부가 되는건 아닌가 하며 지레 겁을 먹어 며칠 굶은 얼굴이 되느라 푸르뎅뎅으로 미역을 감는다.
남자들도 죽은 말고기 씹은 얼굴이 되어 체하면 어쩌나 하듯 안심을 찾느라 기를 쓴다. 길일을 뽑을 때는 평소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점쟁이에게 복채를 많이 주고 택일을 한다.
열이는 신부 화장을 하고서 원삼을 입고 쪽두리를 쓰고 뒷 방에 앉아서 신랑이 오기를 초조히 기다린다.
마당 안의 눈들은 삽짝을 향했다. 동네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궂은 일이나 좋은 일이나 자기 일이나 되는 것처럼 항상 앞장서서 일을 보아주는 성근이는 동구밖을 바라보다가는 삽짝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큰 길까지 나와 목을 늘인다. 그는 바보스러우면서도 우직하다.
동구밖까지 나갔던 성근이가 달음질쳐 상길네 마당으로 뛰어든다.
갑자기 성근이가 뛰어들자 모두의 가슴이 철렁한다.
휘둥글한 눈들은 금방 성근이를 나무라는 눈이 돼 버린다.
“신랑이 오고 있어요.”
그는 숨찬 소리로 크게 떠듬거리며 알한다.
“그게 정말이냐?”
“네가 어떻게 알아?”
“참, 신랑도 모를 줄 알구!”
“어떻게 네 말을 믿냐?”
“괜히 사람 깔보지 말어. 언제 거짓말 했남. 두고보면 알걸 뭐!”
아낙네들은 떠듬거리는 성근이의 말이 미덥지 않다고 한마디씩 핀잔을 한다. 그들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상길이는 신작로로 뛰쳐 나간다. 열이네 시구들은 신랑이 온다는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삽짝 밖을 내다본다.
“기왕이면 시간이나 맞추어 올 일이지.”
은부인은 쓸쓸한 입맛을 지우느라 군말을 한다.
“신랑이 들어오는디 신랑 안보고 뭣해?”
창순이 엄마는 은부인의 손목을 잡으며 밖을 내다보고 일을 해도 하자고 부추긴다.
은부인은 음식 만드는 것을 멈추고, 행주치마에 손을 넣으면서 부엌문 앞으로 다가간다. 그녀는 부엌문설주에 기대서서 마당을 내다본다.
신랑이 마당으로 들어와 잠시 서 있는걸 조목조목 바라보던 그녀는 표정없는 얼굴로 돌아선다.
“열이 엄마, 사위를 보니 어때? 맘에 쏙 들어?”
창순이 엄마는 열적게 미안한 얼굴로 묻는다.
“넘의 자식인데 첫눈에 들수 있남.”
은부인은 바람이 빠진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붙잡아 간신히 대답한다.
‘그렇겠지. 사람눈은 다 한가지야. 간혹 제 눈에 예쁘게 보이는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도 차지 않는데...’
창순이 엄마는 은부인의 마음을 자기 나름대로 헤아려본다.
안방에 있던 열이 아버지도 신랑이 온다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온다. 그는 마당으로 들어서는 신랑의 얼굴과 몸을 이윽히 바라보다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쉰다. 마치 막 안방에 쌀가마니를 들여 놓고 나온 사람 같다.
열이의 할아버지는 사랑방 방문을 열어 놓고 손녀 사위를 기다리다가 신랑이 마당으로 들어오자 얼굴에 기쁨이 가득해진다.
신랑은 열이 삼촌의 안내를 받아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방에 들어간 그는 열이 할아버지를 향해 넙죽 절을 한다.
“오느라 수고 했구나. 산골에 찾아오기 힘들지?”
그는 속없이 어루만지듯 말하며 절을 받는다. 손녀 사위를 살았을 때 보게 된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할 뿐이라는게 그의 얼굴에 흠뻑 돋아나 있다.
“편히 앉거라.”
“예”
열이 할아버지의 얼굴은 잔잔한 웃음이 하나 가득하여 손녀 사위에게 흘러내린다.
신랑을 본 아낙네들은 이구석 저구석에서 근심스런 얼굴로 쑥덕쑥덕 한다.
“며느리 속 터지는줄 모르고 손녀 사위한테 절 받으니 좋은가 보네.”
“영감님 눈에는 손녀 사위가 신통방통한 모양이지?”
“얼굴이 저렇게 생겼는데두 안보이나?“
“그게 보이겠어?”
“그러니 좋아서 싱글대지.”
젊은 사람이 왜 저렇게 떳지?“
“감옥소에서 나온지 며칠 안되남.”
“외꽃도 외꽃이지만 젊은이가 너무 말랐어.”
“형숙이 신랑보다 아주 못 하구먼.”
“고르다 고르다 삼베슥세라더니...”
“양반타령에, 쯧쯧.....”
"누구 신세 망치려 들다니.“
“떠꺼머리 귀신 면하려 작심했구먼.”
그녀들은 은부인의 마음속에 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갖기로 경쟁하듯 대신 말한다.
열이는 웃음을 잃어버린 하객들의 걱정이 담긴 시선 속에서 혼례를 치렀다. 그리고 첫날밤을 맞았다. 그녀는 우중충한 분위기에 잠겨서 새파란 날 허우적거리느라 신랑의 얼굴도 못본 채, 신방을 꾸민 안방에 시무룩한 얼굴로 기쁨이 뭔지 기쁘다고 하는 말이 왜 생겼는가를 생각해 볼 한치의 여유도 없다. 그냥 질질 끌려가는 자신을 잊고서 황량한 벌판을 헤매이는걸 쳐다보고 앉았다.
첫날밤을 차린 신랑 신부를 보기 위해 창순이 엄마, 순호 멈마가 열이네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들은 신방 앞을 기웃하고는 부엌을 지나 부엌방 쪽으로 다가간다. 그녀들은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마른 기침을 한다. 그리고는 열이 엄마를 부른다.
“상길이 엄마.”
“누가 왔어?”
은부인은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나는 누구라구, 어서 들어와.”
그녀들은 스스럼없이 방안으로 들어가 앉는다.
“저녁이나 먹고 앉았는거여?”
“그럼 이때것 굶었을까봐 걱정여?”
은부인은 안스러워 묻는 친구들의 말에 태연스레 말을 받는다.
“친구들은 저녁 먹었어?”
“신랑 구경하는데 굶고 할 수 있남.”
“어때 딸내미 여우살이 시키는 맘이?”
“이제는 내 품을 떠나는구나 하는 맘이 드누먼.”
“그러길래 딸 낳으면 서운하다고들 하지.”
“아들이라구 별수 있나? 그냥 잘 키워서 여우살이 시키면 되지.”
“저희들끼리 잘만 살면 즐거움고 말고.”
“이것이 시집가서 잘 살을까? 소박이나 맞으면 어쩌나? 하는게 에미 걱정거리라구.”
“왜 아녀, 아무것도 모르는걸 너무 일찍 시집을 보냈구나. 좀 더 가르쳐 보낼 것을... 꼬리를 무는게 잠이 안오더라구.”
“열이 신랑은 눈이 야무지게 생겼던걸, 나중에 사내 구실 할거여.”
“그렇게 보니까 그렇지, 얼굴이 병색인데 뭘.”
“얼굴이 누렇다고 그러누먼. 그거야 원래 그런지 누가 알어? 부자집 아들도 저릅(대마 속줄기)같이 말라붙어 쳇다리 같은 사람도 있는데 그런것 걱정할 것 없다구.”
“그냥 희고 누렇다면 괜찮게!”
“조금 어디가 아프더라도 염려할 것 없어요. 제 발로 걸어다니는데 뭐 어쩔라구. 처녀때 시름시름하던 사람도 시집가서는 언제 아팠느냐고 혈색 좋아져 아기 낳고 사는 사람마냥 신랑도 그렇게 될지 누가 알아?”
“지레부터 겁먹지 말라구. 지금 약이 얼마나 좋다구.”
그녀들은 억양을 높여서 은부인의 마음에 모락거리는 연기를 불어내주느라 열심이다.
“맘 푹 놓아.”
“알았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세상사 걱정하기루 들면 숨쉴 곳이 하나도 없는거여.”
“알았어. 그냥 갈거여?”
“아따 바쁘긴 딸내미 시집 보내면서 국물도 안 주기야?”
“국물이 왜 없겠어.”
은부인은 부엌으로 나가 떡 부스러기와 단술을 소반에 담아가지고 방으로 들어온다.
“준비도 못해서 있는게 없으니 어떡하지?”
그녀는 말을 하며 상을 내려놓는다.
“별소릴 다하네.”
떡을 먹은 그녀들은 방을 나와서 부엌문 옆에서 서성거린다. 흥이 나지 않는 얼굴들이다.
“신방 엿보러 왔으면 신방으로 가야지. 여기 서서 있으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겠어?”
“가만 있어봐. 올 사람이 더 있으니. 같이 볼려구.”
“놉 얻어 보게?”
“걱정 말고 방으로 들어가기나 하셔.”
“구경도 때가 있는거여.”
“안심 붙들어 매셔. 떡값 치루고 갈께.”
신방을 차린 안방은 방문이 쌍창이다. 아랫목쪽의 방문에는 네모지고 긴 유리가 방문 가운데 가로로 길다랗게 붙어 있다. 뜰에서도 조금은 방안이 들여다 보인다. 방 가운데에 촛불이 켜져있다. 방 윗목에는 신부가 앉아 있다. 신랑 앞에는 조그만 상에 자리끼가 놓여 있고 상옆으로 조그만 주전자가 보인다. 뒷 문에는 병풍이 세워져 있다. 방안은 깨끗하고 신선한 느낌을 주고 성스러움을 돋우는 것 같다.
신부는 몸도 크지만 얼굴도 둥글 넓적하다. 얼굴은 살이 쪄서 마른 미인은 없다는 말을 쏙 들어가게 하느라 너무 푸짐하게 보인다. 꼬옥 다문 입은 앞으로 불쑥 나와 웃음이 담길 여가가 없어졌다. 기쁨이 흘러내려 간지가 언제인지 흐른 자국도 엿볼수가 없다. 눈은 아예 딱 감은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겨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나도 뚝심은 있는 사람이다.
호락호락 끌려만 다니는 여자는 아니다. 나는 어쩔수 없이 이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남들은 제일 기쁘다지만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른다.
정직하지 못하고 그게 뭐냐? 부끄런줄도 모르는게 도시 사람이냐?
남이야 찬밥이 되든 말든 상관 없고....
거짓으로 심으면 거짓이 열리는걸 모르냐? 익은 밥만 먹으니까 불궈서 먹으니까 한다는 게 거짓이냐? 그러느라 칙칙하게 구는 거냐?’
하는 소리가 그녀의 양볼에 가득 담겨져 불룩하게 메주볼이 만들어졌다.
신랑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앉았다. 그는 신부를 똑바로 향해 마주앉지 않고 엇비슷하게 앉아 윗목 모서리를 바라보고 앉아 있다. 그의 얼굴은 기쁨이 있는지 없는지 짐작을 할 수 없는 얼굴이다. 시무룩한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부끄럼을 당한 얼굴 같기도 하다.
신랑을 지키던 아낙네들은 신랑이 뭐라고 입을 열지도 못한다고 지레 답답하여 한마디씩 지껄인다.
“무뚝뚝한 게 사내라더니 여기서 사내 같은 신랑을 보누먼. 무뚝뚝할 곳이 따로 있지.”
“색시를 앉혀 놓구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나?”
“저런 비위 가지고 장가는 어떻게 왔담.”
“누가 색시인지 모르겠네. 색시는 똑바로 앉아있는데.”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되는거여.”
“하나 집어서 색시에게 줘 봐요.”
“지각하느라 할 말을 몽땅 잊었나봐.”
그녀들은 신랑이 화를 발끈 내는거라도 보고 말겠다는듯 놀린다.
얼마를 떠들던 그녀들은 하나같이 머쓱하여 밀려난다.
“날 새기 전에 집에나 가세.”
아낙네들은 마당으로 내려서면서도 못내 아쉬워한다.
“신랑이 되어가지고 신부한테 말 한마디도 못하다니. 답답하게 쯧쯧... 밤을 저렇게 앉아서 샐 모양인데 안됐어.”
“그래 가지고 신부 원삼이나 벗겨 주겠어?”
“너무 꼴 틀리지 말라구.”
“그거야 배워 왔겠지.”
“이 마누라야, 신랑 같은 소리 말어.”
“내가 네 마누라냐?”
“잘난 영감탱이 하나 있다구 꽤나 으시대네.”
그녀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삽짝 밖으로 멀어져 간다.
날이 밝았다. 동이 틀 때부터 비가 부슬거리기 시작하더니 아침부터는 주룩주룩 장대 비가 되었다.
열이네 집 삽짝 밖 행길에는 신부 신랑이 타고 갈 트럭이 서있다.
짐을 싣는 곳에는 천막이 씌워져 있다. 비는 시집살이 떠나는 열이의 달궈진 마음, 얼룩진 마음, 얼음 같은 마음을 씻어내리느라 쉬지도 않는 것 같다. 열이는 받쳐주는 우산을 받으며, 무거운 걸음으로 운전석에 오른다. 열이의 얼굴은 보숭보숭하다. 눈두덩은 조금 부어 올랐다.
그녀의 얼굴은 골이 나서 두텁게 보인다. 눈을 딱 감고 앉아 있다.
신랑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 같다. 어색한 게 기가 꺾여 천덕꾸러기 노릇을 실컷 받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은부인은 딸의 모습을 근심이 어린 눈으로 올려다 본다.
‘열이야, 너는 참아야 된다. 무슨 일이든 참아야 된다. 네가 일찍부터 고생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너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네 신랑의 아픈 것은 나으면 괜찮단다.
네가 견딜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구나. 그래두 그만하기 다행이다.
그전에 에미가 이른대로 열심히 참고 살다보면, 지난 이야기 하는 즐거움이 있는 법이란다. 네가 열심히 살면 시집도 좋게 되고 너도 대접을 받게 되는 거란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 불행하여 몸을 다친 사람, 병들어 살기 힘들다고 죽을날 기다리는 사람, 첫날 밤에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사는 사람, 부자로 살면서 궁색이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이가 ‘다오 다오’ 하며 거머리처럼 사는 사람, 높은 자리에 앉아서도 떨고 있는 사람, 그보다 더 딱한 사람은 제 아내가 있는데두 제 아내를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 제 남편이 있는데두 한눈 파는 사람, 제 자식을 사랑치 못하는 사람, 제 씨를 아무데나 뿌리고 다니는 사람, 부모의 말에 순종하기 싫어하는 사람, 으시대기 좋아하는 사람, 껍데기는 양 같은 사람,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두 부끄럼을 모르는 사람, 거죽만 번드르 하면 속이야 어떻든 상관 없다고 하는 돈많고 배웠다는 사람들의 싱싱치 못한 짓들이 너를 울리고 나를 울린단다.
너는 내려다만 보고 살아라. 그러면 불만이 끼일수가 없으니 감사한 마음이 움돋고 기쁨이 핀단다. 열이야, 알았냐?
근심할 때가 있으면 즐거울 날이 있단다. 근심이나 걱정은 잠깐이고 희락은 하루가 넘는거란 말이다. 너는 뒤 돌아보지 말고 네가 바라는 것을 열심히 가꾸어라. 바람도 불고 비도 맞고 뜨거운 햇빛도 쏘이며 찬 서리도 맞다보면 웃을 여유도 생긴단다. 절대로 서둘지 마라.
이십년 농사를 지으려무나.
은부인은 눈빛으로 부지런하게 말을 건네준다. 딸에게 무슨 말이라도 했다간 오히려 딸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마음이 졸여 아무말도 못한다. 그녀는 딸이 자기의 걱정스런 마음을 읽을까 보아 좋은듯 기쁜듯이 이틀동안 감추고 덮느라고 허둥댔다. 그녀는 딸을 바라보며 지킨다. 트럭이 출발하려고 시동 건다.
신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가슴을 구부리고 처가집 식구들에게 인사를 한다.
열이는 돌로 다듬어 앉힌 물건 같이 꼼짝도 않는다. 트럭은 비 속을 헤집고 동구 밖으로 달려간다. 자동차 소리는 자동차 따라 가느라 꼬리를 감춘다.
은부인은 이내 고개를 떨군다. 곱기만 하던 희망스런 것은 빗물에 손목 잡혀 아주 가듯 따라가 버린다.
‘딸년 신세를 망쳐 놨구먼.’
은부인은 혼잣말을 내뱉듯 하고는 땅이 꺼져라 크게 한숨을 뿜어 낸다.
추녀 밑에서 서서 딸이 타고 있는 트럭을 바라보던 윤공은 트럭이 떠나버리자 멍한 눈으로 뒷동산을 바라보다가 자기 아내가 탄식하는 소리, 원망하는 소리에 찔끔한다. 그 소리는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찌르고 후빈다. 그는 서서 버티기도 힘에 부쳐 삽짝 안으로 휘청거리며 들어간다. 안방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문 그는 계속 담배만 빨아댄다.
담배 연기는 안방을 잔뜩 부풀린다. 그의 마음은 할퀸 자국 그대로 빗물에 씻겨져 고랑을 따라 황톳물이 졸졸거리기 시작한다.
‘내가 잘못 했지, 내가 잘못 했어. 지키고 앉았다가 만나보고 오는건데. 그애를 못 봤으면 혼인을 말아야 되는건데. 내가 왜 그랬나? 선을 보러 간다고 할 때 내버려 둘 것을. 내가 혼인을 못한다고 핑계를 댔으면 아버님께서 혼인을 말렸을텐데. 왜 내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나? 모르면서 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데. 세상에 나같은 멍청이도 밥을 먹고 살다니. 내가 넋이 빠졌지. 내가 홀렸었나? 내 발을 내가 찧다니. 이러고도 애비라니...’
윤공은 아내의 말을 듣고 서모를 모셔 왔을 때의 일이 떠오르며 괴로웁게 얼씬거리고 미워지기 시작한다. 머리가 무거워진다. 숨이 가빠진다. 눈알이 속으로 자꾸 파고들어 질끈 감았다 떴다 한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차고는 삽짝 밖으로 굴러가듯 흐트러진 심신으로 흙탕물을 튕기며 동네속으로 찾아든다.
뒷방에 들어온 은부인은 치마자락으로 얼굴을 닦는다. 그녀의 눈은 뻘겋게 물들었다. 눈가는 늙은 호박속을 갈라놓은 것 같이 시뻘개져 짓물러 버릴려고 자리를 잡고 있다. 그녀의 마음는 보람도 없고 설움과 실망만이 마음속 깊이 응어리져 있다. 압제 속에 그냥 빼앗긴 아픔이 할퀴고 소금을 친다.
그녀는 몇해동안 점심을 굶으면서, 저녁은 시래기죽, 김치죽을 자주 먹으면서 생활을 연명하여 왔다. 점심 때가 되면 고구마를 쪄서 어린 자녀들을 주고, 자신은 고구마 한두개로 끼니를 때웠다. 그녀는 허리끈을 졸라매고 살면서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는 밥을 빼놓지 않고 대접하였었다.
그러면서 시누이와 열이의 혼수를 준비하여 왔었다. 입으로 남긴 한가지 소망은 열이의 발치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아픔에 가슴대신 입술이 먼저 터졌다. 뒤따라 마음이 터지려 든다.
‘이게 무슨 꼴이람. 에미가 시집살이를 잘 해야 딸년도 시집을 잘 가는 것인데. 에미가 고생으로 분칠을 했으니 너도 별 수 있겠냐? 복도 없는 것이, 이제는 허사구나! 남은 것은 보고서 배워야지 이제는 어림없다.’
그녀는 터진 입술을 으깨져라 깨문다.
이 동네에 처음 찾아오는 사람은 “꼭 우물속 같은 동네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앞산과 뒷동산이 눈을 에워싸버린다. 동서 남북 모두가 우뚝우뚝 솟아오른 산들은 병풍처럼 마을을 깊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듯 도로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뚫리다가 힘에 겨워 그런 듯 남쪽으로 구부러져 동네 가운데를 구슬을 꿰이듯 지나갔다. 마을 뒤편으로 시냇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간다. 두 시냇물은 합해져 북쪽으로 구불거리며 흘러간다.
한삼내 앞 조그만 들을 사이에 두고 뒷동산 밑에는 새터의 집들이 한줄로 게딱지를 다닥다닥 붙여 놓은 것처럼 커다란 정자나무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삼십여채의 초가집이 형님 동생하듯 높고 낮게 자리했다.
시내 건너 북쪽에도 양산 동네의 집들이 한줄 혹은 두줄로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며 산밑에 바싹 달라붙어 마냥 한가롭다.
한삼내 들에는 벼가 창대같이 빽빽히 들어서서 산도 하늘도 푸른물을 드리우고 푸른 냄새는 사람들의 옷속을 파고들어 싱싱케 만든다.
들 한가운데는 사람들이 커다란 기를 앞세우고 한줄로 논두렁을 따라간다. 젊은이, 늙은이, 홍안 소년들은 하나같이 호미를 들기도 하고 허리에 차기도 하고 걷는다.
그리고 호미를 목에 건 아이도 있다. 삼각형의 큰 깃발은 아주 커다란 대나무에 매달렸다.
깃발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라 쓰여져 있다.
기를 든 사람 뒤에는 꽹과리를 든 사람, 장고를 멘 사람, 징을 든 사람, 북을 멘 사람이 기를 따라간다.
그들은 풍물을 흥이 나게 두드리며 아기죽거리며 걸어간다.
그들은 모두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그리고 하나같이 신발을 벗었다. 종아리는 검고 붉다.
깃발 든 사람이 기를 땅에 세우자 따라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춘다.
“이제 누구네 논 매나?”
늙수그레한 사람이 냅다 소리쳐 묻는다.
그러자 소리따라 열 중간에서
“상길네꺼 맬거여!” 하며 소리친다.
“잠시 쉬었다 합시다!”
북치던 사람 뒤에 따라가던 청년회장이 큰 소리로 외친다.
그들은 논두렁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며 왁자지껄한다.
한참 쉬었나 보다.
풍물소리(사물놀이 하는 것)는 어서 논을 매라고 그들을 재촉하며 일으켜 세운다.
사람들은 상길네 논으로 들어가 장단맞춰 김을 맨다.
엎드렸다가 일어나고 일어났다간 엎드린다. 그리고 기어간다.
어정쩡 좇아 걷는 사람도 있다. 어슬렁거려 매는 시늉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다가 흐르고 또 나오고 흐르고 또 맺힌다. 풍물소리는 풍년을 만들고 기약하는 양 풍년이 든 것 마냥 흥겨웁기만하다.
마을에서 제일 큰 초가집이 상길네 집이다.
상길네 집은 행길 옆에 있다.
집의 모양은 ㄷ 자로 생겨 남쪽을 향했다. 삽짝은 서쪽으로 만들어 놓았다. 삽짝은 엉성하여 닫아도 방안이 훤히 들여다 보여 닫으나 마나라고 하듯 활짝 열어 벽에 기대 놓았다.
마당 가운데에는 우물이 소두방 뚜껑 손잡이 마냥 둥글한 게 튀어나와 있다. 허청에는 보릿짚이 하나 가득 쌓여 있고 외양간에도 보릿짚이 하나 가득 쌓여 있다. 마당에는 커다란 멍석을 한 잎 깔아 놓았다.
멍석 위에는 너 댓 사람이 안방을 향해 앉아 있다.
안방문은 양쪽으로 활짝 열어 젖혀져 있다.
뜰방(마루밖으로 토방이 나와 있는 부분)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어깨를 포개어 서서 방안을 들여다본다.
방 가운데에는 한 남자가 반듯하게 천정을 향하고 흰베개를 베고 누워있다. 그는 윗목을 향했다. 중이 적삼을 입었다. 배는 잔뜩 부풀어 올라 적삼 앞자락을 좌우로 갈라놓고 불거져서 마치 늦가을 호박같다. 몸은 방바닥에 착 달라붙은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를 않는다.
거친 숨소리도 드리지 않는다. 입은 반쯤 열려졌다.
혀가 들여다보인다. 혀는 느리게 들썩인다. 조금씩 들썩거리기도 몹시 힘겨워 한다. 혀는 고추장을 발라 놓은 것이 메말라 바싹 비틀어진 것 같은게 달싹거림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꼬르륵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참만에 나왔다 하는 물에 빠진 사람같다.
이제는 고만이라는 안타까움을 꾸역꾸역 우려낸다.
모두의 눈은 잔뜩 긴장하여 숨소리를 죽이고 느리게 달싹거리는 소리를 찾아 놓치지 않으려고 입속으로 앞서거니를 하며 좇아 들어간다.
혀는 애를 태우고 애간장을 녹이기로 작정이라도 한 양 아까보다도 더 느릿느릿 팔자걸음을 걷는다.
아들 상길이는 그의 아버지 윤공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버지의 입과 눈을 번갈아 바라본다. 상길이 어머니 은부인도 자녀들과 함께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다.
은부인의 막내 아들 옥길이는 엄마 무릎에 앉아 있다. 옥길이는 엄마 무릎에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엄마! 아퍼! 엄마! 아야! .......”
하며 계속 칭얼댄다.
옥길이의 왼쪽 허벅다리는 퉁퉁 부었다. 옥길이는 상길이의 눈치를 살피며 칭얼댄다. 누구하나 옥길이의 아픔을 아는 체 하고 불쌍히 여기질 않는다.
돼지 엄마도 무릎에 벌거숭이 아들을 앉혀 놓고 한숨을 쉬면서 윤공을 바라본다. 돼지는 무엇을 아는지 까불지도 않고 윤공을 지켜본다.
윤공의 친구 이씨, 김씨, 박씨는 안절부절하다가 뜰방으로 다가가 아낙네들 어깨 너머로 윤공을 지켜본다. 이씨는 안타까운 눈으로 김씨, 박씨를 향해 말한다.
“동생이 오길 기다리나 보네!”
“글쎄, 그런 것도 같군!”
“사람이 태어날 때도 시를 타고 태어나니까 운명할 때도 가는 시간이 있겠지!”
그들의 말에 부인네들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윤공이 금방 운명할 듯 하면서도 끈질기게 신고를 한다고 하는 말이다.
“판수가 대전에 사는 윤수에게 연락을 하러 갔으니까 곧 올 때가 됐다구!”
그들은 말을 하며 다시 멍석으로 돌아와 앉는다.
“풍물을 치지말고 논을 매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자네가 가서 말좀 하게나!”
박씨는 마지못한 얼굴로 김씨에게 미안스런 투로 말한다.
“내가 말한다고 그들이 들을까? 괜히 좋은 말만 귀양 보내지!”
“그래두 자네가 가서 말리게! 동네의 수치라네!”
김씨는 두리번거리며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삽짝을 나간다.
동네 사람들은 상길네 집에 들려 윤공을 잠시 들여다보고는 혀를 끌끌 차면서 삽짝 밖으로 나가고 한숨을 쉬고는 서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가는 초점없는 눈을 해 가지고 삽짝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양산에 사는 윤공의 친구 김창호가 상길네 집 삽짝으로 뛰어든다.
그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흥건하다. 어깨로 숨을 몰아 쉰다. 그는 더듬거리듯 하다가는 곧장 우물로 좇아간다. 서둘러 두레박을 우물에 집어넣는다. 그리곤 이내 퍼 올린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스덴으로 된 조그만 간장종지 같은걸 꺼낸다. 그리고 그걸 씻는다. 씻은 후 그릇에 물을 하나 가득 떠서 오른손에 받쳐들고 조심스런 몸가짐으로 윤공이 있는 방으로 서둘러 들어간다.
그는 윤공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고 윤공을 내려다 본다. 그의 눈은 안타까움과 불쌍한 마음에 젖어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그는 양산에 있는 천주교회 신도들의 모임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다. 양산 사람들은 그를 김회장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다시 윤공을 내려다 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상길이를 바라본다. 그의 눈썹에는 이슬이 맺혀졌다.
“여보게나!”
그의 말소리는 깔아져 있다.
상길이는 소리따라 고개를 든다.
“자네 아버님은 평소에 천주님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셨지. 가끔 우리 성당에도 오셨지. 성경도 보시고...
내가 자네 아버지를 위해서 영세를 주려고 하는데 승낙하겠나?”
상길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김회장은 물 그릇을 받쳐든 채 속히 대답하라고 재촉하는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조급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나에게 자네 아버지를 위해 영세를 주도록 허락하게. 자네의 아버지가 영생하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 뛰어 왔다네.”
상길이는 내키지 않는 눈을 해 가지고 맥없이 대답한다.
“세례를 주세요. 아저씨 좋도록 하세요.”
김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그릇을 왼손으로 옮겨든다.
“천주님의 은총입은 도마에게 천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그는 말을 하며 오른손 바닥에 물을 조금 부어 가지고 윤공의 이마에 쏟으며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싼다. 그리고 이마에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린다.
“아버님, 아버님은 하나님의 은총 입어 속죄함 받아 영생하세요!
천국에 가세요.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상길이는 기도를 한다.
세례를 주는 김회장은 엄숙하여져서 평소 장난기가 있는 그런 모습은 간 곳이 없다. 그는 사람들을 숙연케 만든다.
상길이 누나는 김회장이 세례 주는걸 바라보면서 아는 듯 궁금해 하는 게 없어 보인다. 마루에 앉아 있는 돼지 엄마도 삼순이 엄마도 그냥, 의미를 알고 싶지 않은 눈으로 지켜만 본다.
김회장의 하는 모양을 호기심에 끌려 바라보던 이씨, 박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해한다.
‘저 사람이 저런 짓을 왜 하는지 알수 없구먼. 별일이야. 죽어가는 사람에게 냉수를 붓다니? 냉수를 부으면, 정신이라도 조금 차리라고 하는건지 알다가도 모르겠구먼.’ 하는 태도이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김회장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친구에게 안락할 수 있는 천당길을 열어 주었다고 천만다행이라고 하는 흐뭇함이 엿보인다.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지. 하마터면 세례를 못 주었을건데...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야지.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니...
감사합니다. 주님, 죽은 다음에 왔음 무슨 소용이야. 참 감사합니다. 천주님!’
그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일어나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은부인을 안스럽게 바라본다.
“아주머님, 무슨 밀씀을 드려야할지 위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복이 없어서 그런거지요.”
은부인은 힘없이 대답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바쁘신데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김회장은 위로의 말을 하고는 삽짝 밖으로 착 가라앉은 걸음으로 나간다.
“내가 윤공의 가는 것은 못 보더라도 신의는 다행히 지켰어.”
그는 중얼거리며 양산으로 돌아간다.
윤공의 큰딸 열이는 염원한다.
‘아버님, 아버님은 꼭 천국에 가셔야 해요. 아버님은 회개하셔야 돼요.
회개하지 못한 게 있으면 천국에 올라갈 수가 없어요. 예수님께 모두 용서를 비세요. 불쌍히 여기시라고 하세요. 그래야 구원을 받아요.
마음 속에 있는 죄를 모두 고백을 하여야 하늘나라에 갈 수가 있어요.
아버님,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했던 것이 죄랍니다. 혈기 부리고 신경질 낸 것도 죄랍니다. 시기하고 욕한 것, 엄마 이외의 여자 관계를 뽐낸 것이 남을 저주한 것이 죄랍니다.
그중에 제일 큰 죄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죄이지요. 아버지는 아버지를 구원해 주실 분을 욕했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형틀에서 못에 박혀 무참하게 죽으시고 그 흘린 피로 당신의 죄를 씻어 주셨는데 그분께 고마워하기는커녕 욕하셨지요.
어느 누가 아버지를 천국 가라고 일러줍디까요? 세상 학문도 세상 사람도 아버지를 구원 못해요. 허망한 신들은 아버지를 지옥으로 끌고만 가지요. 죄인인 인간은 자기 자신을 구원 할 수가 없어요.
바다 가운데서 파선 당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원 못하는 것과 같아요.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특별 사면을 받아요. 당신께서 받으실 형벌을 예수님이 받으셨거든요.’
열이는 급하게 소리없이 속삭이며 안타까와한다.
문설주에 기대앉아 숨을 몰아쉬는 그녀, 앉아 있기도 힘든 그녀,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움푹 패였다. 코가 삐쩍 말라 붙은게 덜렁하게 겨우 달라붙었다. 얼굴은 희다가 바래져서 누렇게 떠 있다.
앉아 있는 그녀의 모양은 가슴이 없어져서 그런지 앞으로 꾸부정하게 휘였다. 자꾸 꾸부러지는 것을 버티느라고 오른쪽 무릎이 어깨를 힘겹게 받치고 있다.
평소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머니와 동생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오래오래 사셔야지. 그래야 며느리도 보시고 손자도 보시며 즐거운 날을 보내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빌어 왔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 친정에 온 게 아니다. 병들었다고 시집에서 돌보지 않아 친정에 올 수밖에 없어 친정에 왔다가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했다. 그녀가 친정에 온 것은 몹쓸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뇌점이라고 부르고 폐병이라고 부르는 아주 흉한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폐병을 아주 꺼려한다. 그냥 말끝에 폐병이란 말이 튀어나와도 몹시 기분 나빠한다. 폐병에 걸리는 것은 집안이 망조가 들려고 그런 병에 걸렸다고 말들을 한다. 집안 식구 가운데 그런 병이 생기면 집구석이 결단이 나서 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며 조상에게 과오가 있지나 않았나? 조상의 죄가 많았던 게 아닌가? 조상의 묘를 잘못 써서 그런건 아닌가? 찾아보다가 산화(묘로 인한 재앙)로 돌려버린다.
그리고는 풍수지리를 잘 아는 지관을 찾아 명당을 찾아 나선다.
조상의 시신을 옮겨 묻으면 병도 낫고 복도 받아 자손이 잘된다고 자손들이 부귀를 누린다고 망인은 뼈가 황태가 된다고 말들을 한다.
명당 찾기는 별따기나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말들을 한다.
어쩌다 명당을 찾아도 명당에 묻히기가 여간 어렵지않아 명당에 묻어도 명당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면 시신조차 온데간데를 모르게 없어진다고 말들을 한다. 또 명당에 묻힐 자격이 없는 사람은 시신이 튕겨져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명당에 묻힐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생전에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이라야 되고 남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야 명당에 묻힌다고 불문율처럼 말들을 한다.
윤공은 딸이 몹쓸 병에 걸려 가지고 왔을 때
‘설상가상이 나에게 생기다니...
나야 아무래도 좋지만 혹시 어린것들에게 병이 전염되면 어쩌나?”하고 그는 마음을 몹시 끓였었다.
“아비로써 애비 노릇을 해야 하는데 내꼴이 이게 뭐람. 병원에 보내서 치료하면 고친다고 하던데 뭐가 있어야지. 어린것을 너무 일찍 시집 보내서 생으로 고생을 시키고 고생을 너무해서 그런 몹쓸병을 앓게 한 게 모두 내 잘못이지. 내가 왜 그렇게도 어리석고 미련했었나?
자식 새끼 신세 망치려고 내가 눈이 삐였었나봐. 그러고도 내가 애비라고.... 참으로 한심한 놈이지.’
그는 끙끙거리며 애석해 하다가 스스로를 미워하다 치를 떨곤 하였었다. 그리고 술이라도 먹어야 잊고 지낼수 있는 것처럼 하루가 멀다하게 술에 취한 나날을 보냈었다.
열이는 열 아홉 살에 시집을 갔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손녀 사위 보고서 죽겠다고 매일 매일 성화를 대는 바람에 어거지로 끌려 시집을 갔었다.
열이의 시집은 한산(寒山) 이씨 집안이다. 한산 이씨는 빠지지 않는 양반이라고 이런 집안과 사돈 맺기가 쉽지 않다고 그녀의 할아버지는 속히 정혼을 하라고 중매쟁이 말만 믿고 날마다 극성을 부렸었다.
은부인은 시아버지의 재촉이 사람의 넋을 빠지게 하여 갈피를 잡을수 없게 하는 것이 열이의 장래가 불길하게만 느껴져 불안 속에서 지내면서도 시아버지에게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다는 한마디 말도 못했었다.
‘세상에 사위될 사람 얼굴도 보지도 않고 어찌 손녀딸을 시집보낸다고 그러시는지?’ 하는 소리를 가슴에 묻고 그녀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냥 입술만 바싹바싹 태우기만 하였었다. 그러다가는 쫓기어 허둥거리는 암탉마냥 가냘프게 떠듬거려 소리를 낸다.
“여보, 아버님이 저렇게 열이를 시집 보내신다고 하시는데 어쩌면 좋아요? 당신이라도 관랑(사윗감 보는 것)을 하여 열이가 잘 되게 해야할 게 아녜요?”
그녀는 남편에게 저녁상을 갖다 놓고는 상머리에 앉아 걱정스레 힘을 돋우어 말한다.
윤공은 밥상을 잡아당겨 끌어안듯 하고는 머리를 푹 숙이고 밥을 먹는다. 그는 아내에게 “저녁 먹었느냐?” 고 한마디의 말도 묻지도 않고 허기졌던 사람처럼 그저 먹기에만 팔렸다. 그의 표정은 아무 소리도 들려서는 안되며 말해서도 안된다는 각오라도 한 것 같다.
“여보, 당신은 어떻게 했슴 좋겠어요. 중신애비 말만 듣고 시집 보내겠우. 세상에 자식을 여우는데 사위가 어떻게 생겼나 얼굴도 한 번 안보고 딸년을 내주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어요. 딴 것은 보지 않더라도 당자는 보아야지. 남들은 얼마나 잘사나, 얼마나 돈이 많은가, 직업은 좋은가, 세도가 얼마나 있나를 보고 있는데, 우리는 옛날 사람보다도 더 어두우면 되겠어요? 남이 하는대로 다 못하더라도 병신은 아닌지 그건 보아야지. 지금이 어느 세월인지나 아슈? 신랑감이 키는 큰가? 학교는 어데 나왔나? 학교 성적은 우수한가 본답디다.
우리 같이 어두운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우. 그래, 사윗감이 이름만 남자이면 되는거유? 비슷하게는 짝을 지워줘야지. 제가 좋아서 안달이 나서 시집을 간다면 할 수 없겠지만. 그러구서 어찌 답답한 꼴을 안본다고 하겠어요? 낳아 놓기만 하면 부모 노릇 하는거유?”
은부인은 남편이 입을 열 때까지 지껄이기로 결심한 냄새를 풍긴다.
“여편네가 나서면 될 일도 안돼.”
윤공은 쏘아대는 말에 아픈데를 찔려 버럭하고 큰 소리를 지르고만다.
“내가 나선답디까? 그래두 딴것은 다 제쳐 놓더라도 신랑 될 사람얼굴은 보아야 될 게 아니유? 당신은 궁금하지도 않아유? 당신이 대전에 가서 잠깐 보고 오세요. 그래야 내 마음이 좀 놓이겠우. 예감이 좋지 않아요.”
윤공은 꾸역꾸역 밥만 먹는다.
‘네가 그래도 내 밥은 다 먹을테니 두고보렴.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얼마나 더 지껄이나 보자꾸나. 바보스럽기는...
네 딸만 되냐? 내 딸만 되냐? 아버지의 손녀딸도 된단다. 손녀 딸을 어련히 알아서 시집 보낼건데 방정맞게 뭐? 무슨 얼어죽을 예감이고 땡감이고 찾냐? 여편네들이란 할 수 없어. 제 눈으로 꼭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나? 남의 말도 믿어줘야지, 의심하기는... 누굴 닮아가나. 잘되길 빌어도 잘되지 않는데. 떡을 할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하는 양으로 꾸역꾸역 밥 그릇을 비우고는 거드름을 피우며 방을 나간다. 그의 태도는 부자 같고 수염소 같다.
은부인은 남편이 대답을 않고 밖으로 나가자 뒤에다가 오금을 박는다.
“당신이 가기 싫으면 내가 가서 알아 보겠어요. 내일 다녀올테니 그리 아슈.”
“방정 떨지마!”
윤공은 뜰방에서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서며 일침을 놓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은 대전에 가야 한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남의 말만 듣고, 자식을 떼어주나. 우리 같은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담.
혼인치고 거짓말 하지 않음 혼인이 되지 않는다는데, 답답한 양반들 같으니. 우물 속같은 동네에서 사니까 아주 우물 속마냥 하늘밖에 모르누먼. 하늘만 바라보면 어쩌겠어. 하늘도 복을 받을 일을 해야 복을 주지. 우물에서 나오려고 하지도 않는데 누가 꺼내주나. 죽어두 여기서 죽겠수 하는 꼴이지. 누구 속을 바글바글 못 태워서 야단이야.
첫 새끼를 잘 여워야 지체도 잘 여운다는 소리도 못들었냐?’
그녀는 중얼거리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 내린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그날밤 은부인은 걱정이 못잊혀져서 벗었다 입었다 하느라 잠을 설친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 밥상을 방으로 들여갈 때쯤 되었다. 갑자기 사랑방 방문이 와장창하며 부서지는 소리를 낸다. 화로를 신경질적으로 두들기는 소리가 두 귀를 찢을듯이 덤빈다.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안방문을 열었다가는 찔끔하여 급히 닫는다.
그리고는 문틈으로 할아버지의 성난 얼굴을 훔쳐 보고는 질겁을 하여 방안으로 가제 걸음을 친다.
윤공의 아버지는 안채를 향해 소리친다.
“이놈의 집구석이 망할 때가 됐냐? 집안 망하는걸 보려느냐? 어디서 배운 못된 버릇이냐? 괘씸한것 같으니. 계집이 내주장을 하면 집안 망하는 걸 모르느냐? 에헴! 에헴!”
그는 목이 갈하여 연신 기침을 한다. 그리고는 고함치고 화로를 불손으로 깨지라 두들긴다. 앞산 뒷산이 덩달아 꽥꽥소리를 내지른다.
은부인은 시아버지의 꾸중을 들으면서 아침상을 차리다가는 사랑방 방문 앞으로 끌려가듯 걸어가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이 서서 꾸중을 듣는다. 시아버지가 기침하는 사이에 용서를 빈다.
“아버님, 고정하세요. 제가 그만 잘못했어요. 아버님, 노여움을 푸세요. 제가 미처 생각이 모자라서 그랬습니다. 아버님, 용서하세요.”
“너는 시애비가 하는 짓이 그렇게 못마땅하냐?”
“그럴리가 있겠어요.”
그의 그의 목소리는 쇠소리가 난다.
늙은이가 입심한번 좋구먼. 청춘으로 돌아가는 소리구먼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을러댄다.
“아버님, 제가 잘못했어요. 대전에 가려고 한 것은 생각이 모자랐어요.
아버님 용서하세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며느리를 고얀 것이라고 꼬끄랑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분을 삭이느라 가쁜 숨을 몰아 쉬고는 목을 가다듬는다.
“내가 죽기 전에 열이를 시집 보내서 손녀 사위를 보고 죽는다는 것이 너는 그렇게도 못마땅하냐? 어디 한 번 들어보자꾸나.”
그는 며느리가 거듭 용서를 빌자 화가 조금 풀리어 내린다고 하는 것 같이 점점 작은 소리가 되더니 늙은이 소리가 되고 자상스럽게 되어 버린다. 귀가 조금 먹은 사람은 입이나 쳐다보아야 짐작할 정도가 되고 만다. 휘번덕거리며 혼빼던 눈은 며느리의 얼굴을 더듬는다.
안방의 손자들은 방문으로 달려든다. 천둥 벼락이 치더니 소나기가 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밖을 내다보는 눈이다. 휘둥글하여 두리번거린다. 은부인은 다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빈다.
그는 며느리를 언제 나무랐느냐고 하듯 조용하게 집안의 입장을 설명한다.
“뼈대가 있는 집안이다. 권문세가의 집안이었다. 남에게 흉 잡히고 살 수 없다. 글깨나 읽고 입신도 했었다는 내가 체통을 깎이고 부끄러워 어찌 사느냐?” 고 말한다. 그리곤 조금 뜸을 들이듯 하다가 방문을 닫는다.
은부인은 코를 쑥 빠치고 시아버지의 앞을 물러난다.
열이는 솥에서 주걱으로 밥을 퍼서 사발에 담다가 부엌으로 들어오는 어머니를 흘끔 쳐다 보고는 계속 밥을 퍼담는다. 열이의 얼굴은 찌부러져 뾰루퉁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당장 시집을 가야할 나이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왜 저렇게 성화를 대나? 왜, 야단법석이야. 내가 시집 보내달라고 안달이라도 했음 몰라. 할아버지는 내가 시집가지 않으면 그걸 못보면 죽어두 저승엘 못 가는건지. 죽기 전에 손녀 사위 보고 죽으면 뭐가 그리 좋은가?
내참 기가 막혀서, 시집은 내가 가는건데 할아버지가 야단이람.
늙으면 다그런가, 노망 들어서 그런가, 주책도 자그만치 피지. 양반체통이 밥 먹이나? 양반은 꼴도 안보나? 언제 봤다구......그래서 고려장을 했나봐, 잘들 노는군. 내가 밥을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구...’
열이의 속은 밥솥에서 내뿜는 열기보다 심한 한증막이 되고 만다.
그녀의 얼굴은 뒤틀린 게 터져 나가려고 이리 불쑥 저리 불쑥 볼상 사납게 되었다.
은부인은 부엌 마루에 걸터앉은 채 뒤집힌 속을 달랜다.
‘남편의 하는걸로 해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타든지 그냥 두고 물러앉아 구경이나 해야겠다. 이러다가는 나도 내 명에 못 죽겠다. 그렇지만 그꼴을 어찌보나! 자식이 나중에 울게 될걸 뻔히 알면서 어찌 모른 체 한단 말인가? 내가 낳은 자식인데.’
그녀는 몸을 태우려고 불에 뛰어든 불나비가 된 듯 속에서부터 불덩어리에 휩싸인다.
“얘야, 내말을 들어봐라.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 너도 이제 설이 되면 스무살이 되니 남녀간의 정이 무엇인지 대강은 짐작이 갈줄 안다. 내가 시집 올 때는 너 보다도 훨씬 어렸단다.
나도 너의 외할아버지가 시집을 보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의 집에 시집왔단다. 네 나이로 해서는 시집갈 나이는 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잖느냐? 그래서 그런지 내눈에는 네가 아주 어리게만 보인단다. 너는 어떠냐? 시집 보내주면 시집 가서 잘 살수 있겠냐?”
열이는 대답도 않고 밥상을 차려 가지고 사랑방으로 가버린다.
은부인은 먼죽하니 섰다가는 안방으로 밥상을 가지고 들어간다.
열이는 부엌으로 와서 대접에다 숭늉을 떠가지고 사랑방에 들여놓고는 다시 부엌으로 와서 숭늉을 떠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얼마 후 그녀들은 빈 상을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설거지를 하면서 은부인은 딸에게 사람사는 요령을 일러준다.
“시집은 일찍 간다고 다 고생하는건 아니지만 어쩐지 엄마 맘은 불안스러워 견딜수가 없구나. 할아버지는 왜 너를 꼭 한산 이씨네 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저러시는지 모르겠구나. 너는 걱정이 안되냐? 너의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말씀에만 무조건 따르신단다. 그리고 네 신랑 될 사람 사주가 곧 올 것 같다. 사주를 받고 나면 정혼했다고 해서 옛날 사람들은 부부가 된 것처럼 여겼단다. 지금이야 신식시대니까 그렇게 생각 안하는 사람이 많겠지. 저 건너편 양산에 사는 숙이는 사주 받고서 시집 안간다고 도망을 갔다더라.
여자란 시집가면 그냥 시집에서 죽으나 사나 사는 걸로 알고 구박도 참고 견디면서 살았다. 나도 내가 왜 여자로 되어서 세상에 태어났나 하고 울기도 많이 했단다. 엄마처럼 울음도 참고 구박도 참고, 때리면 맞고 무슨 욕을 해도 내가 미련하니까 그렇지 하며 사는 여자도 있고 호강하며 대접 받으면서 사는 여자도 있단다. 여자는 남편 만나기에 따라 귀부인 대접을 받는가 하면 평생을 구덮만 치루다가 마는 여자도 있단다.
사람이 살다가 당하는 것이야 팔자소관이겠거니 한다지만 얼굴도 안보고 시집갔다가 탈이 있으면 어쩌겠냐? 나는 그게 걸려서 목구멍이 아파서 아까도 할아버지께 꾸중들을 일이 생겼었단다.
너희 외조부와 너의 할아버지는 친구 사이로 두분이 평생 내왕이 많으셨대요. 내가 너의 아버지를 못보고 결혼한 것은 거울속 같아 걱정을 할래야 할게 없었던 거지만, 너의 혼담이 있는 이씨네와는 우리 집에서 아부도 몰라요. 성씨도 처음 듣는 거라구. 집구경은 했나 보더라.
조그만 판자집이더라도 집이야 움막인들 상관있냐? 돈 벌면 나중에 좋은 집 짓고 살면 되는거니까, 상관 없지만...
너의 할아버지는 양반에 홀딱 하셨나 보더라. 양반이 무슨 소용이냐?
네 신랑 될 사람 보았다는 사람은 중신애비 뿐이다.
네 고모 형숙이를 그 사람이 중매 했다고, 괜찮은 사람에게 했다고 아주 딱 믿으니 그게 탈이지. 네 고모 신랑감은 할머니가 보시고 오셨는데, 아주 흡족해 하시면서 좋아하시더라. 문벌은 별로 안좋아도 당자가 쏙 맘에 들게 생겼나보더라. 집안도 좋고 당사자도 좋고, 가세도 좋고 하기는 쉽지 않겠지. 그러길래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은 없다는 말이 생긴게 아니겠냐? 네 생각은 어떠냐? 네가 마음 먹은것을 엄마한테 말해봐라. 네속은 어떤건지 알고나 넘어가자.”
은부인은 딸의 대답을 기다리느라고 잠시 뜸을 들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딸을 쳐다본다.
열이는 대답을 않고 부엌 바닥에 기어가는 개미만 내려다보고 있다.
은부인은 딸의 모습에 어이없어 혀를 끌끌 찬다.
‘어쩌면 제 애비를 꼭 닮아서 저러나? 곰하고 얘기 하는게 차라리 낫겠다. 씨정머리는 속일 수가 없다더니 너를 두고 하는 말이냐? 내속으로 낳았는데도 어쩌면 그러냐?’ 하는 소리 같다.
침으로 입술을 축인 그녀는 답답한 것을 꺼내느라 다시 입을 연다.
“내 말 잘들어라. 너의 앞날은 너에게 달린거란다. 어느 사람도 너를 위해서 발벗고 나설 사람이 없어요. 네 신랑이 될 사람이 바보 천치인지 병신인지, 늙은 시람은 아닌지 궁금하고 답답해서 내가 한 번 가겠다고 했더니 너희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시니 에미는 속이 터질 지경이란다. 그러니 네가 할아버지한테 얼굴도 한 번 못 본 사람한테는 시집 안간다고 하려므나. 그 소리도 못하겠으면 뒤 책임은 엄마가 질테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정혼을 하고도 맘에 안든다고 부모네의 결정을 파혼시키는 여자도 있어 이것아. 네가 보고 네가 좋으면 말리지 않는다. 네가 결정하기에 달렸어 이것아. 너만 밤에 나서 밤에만 컸냐? 왜 그렇게 미욱하냐?
약삭 빠르지 못하구. 외갓집으로 몰래 도망을 가거라. 네 동무네 집에 놀러 가는 것처럼 가거라.”
“몰라.”
열이는 모르겠다고 동작 빠르게 퉁명스레 입을 열고는 엄마의 재촉에 벌떡 일어나 부엌을 어슬렁거리며 나간다.
은부인은 딸의 뒷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는 고개를 떨군다.
“할 수 없는 일이지. 제 팔자에 타고난 것은 말릴 수가 없는 것인가?
웬 것이 커가며 속 시원하게 말도 잘 안하고.....
무슨 말을 해야 철부지가 깨닫나! 어긋나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저의 아버지가 저한테 무관심한 것 같으니까 그러는 것은 아닌지...”
그녀의 뇌리에는 푸주간으로 끌려가는 소 같은 인생이 되는 것 같아 안절부절이다.
오늘은 음력 이월 초 열흘날이다.
상길네 마당에는 차일이 바지랑대에 받혀서 높다랗게 치어졌다.
차일 친 밑에는 큰 멍석을 한 잎 깔아놓았다. 멍석 위에는 교배상을 차려 놓았다. 교배상 위에는 대나무 잎이 병에 꽂혀있고 닭도 보자기에 싸서 닭 목만 내놓았다. 닭 앞에는 조그만 접시에 쌀을 담아 놓았다. 닭은 계속 쌀을 쪼아먹는다.
신부는 안방앞을 등을 지고 상을 마주하고 삽짝을 향해 서있다.
아낙네들이 신부 양쪽에 서서 신부를 부축하고 서 있다. 그녀들은 팔자가 좋다는 여자들이다. 남편도 살아있고 자녀도 여러 남매 두고 사는 게 부자 흉내라도 낼 정도로 의식주가 넉넉한 아낙들이다.
쪽두리 쓰고 연지 곤지 바르고 원삼을 입은 상길이 고모의 자태가 예쁘다고 아낙네들은 입을 모은다.
신부는 엷은 미소를 머금은 눈을 내리뜨고 두 손을 앞에 모아 쥐고 신랑이 들어오길 기다린다.
마당 안의 모든 사람들의 눈은 기쁨에 젖어 삽짝을 바라보고 서 있다.
물을 뿌리고 물을 끼얹은듯 신부따라 잔잔하기만 하다.
“신랑 온다. 신랑 오네유.”
동네 꼬마들이 신이나서 떠들며 삽짝으로 뛰어든다.
신랑은 느릿느릿 걷는다. 좋아하고 싱글거리지도 않는다. 조금은 긴장된 게 무엇에게 눌리고 있는것 같다.
꿈에도 그려본 나의 반쪽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히 여기는 초조함도 그의 발치에 묻어간다.
이제 나도 인격자가 되는가 보구나! 의젓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흐뭇해함도 엿보인다. 현숙한 아내는 진주보다 귀하다던데, 나에게도 그런 복이 있다고 조금은 자랑하는 것이 뾰죽이 나와있다. 내가 쓴 이모자는 사모가 아니라 왕이 쓰는 면류관이라고 흡족해 한다. 신랑의 얼굴에서는 기쁨이 반짝거리는 게 점점 더해간다. 신부의 집안을 훈훈하게 만들어 봄날같이 따사롭게 만든다.
초례청에 들어설 신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눈빛은 부러움과 시새움이 소담스럽게 담겨 앞을 다툰다.
상길이 할머니 라부인은 너무 좋아서 울먹거린다. 기쁜 마음이 얼굴에서 빛이 나다 못해 뻘겋게 달궈졌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히느라 눈에서 코에서 물이 나와 찔끔거린다.
‘형숙이가 시집을 가다니, 저희 아버지가 본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당신은 지지리도 복이 없구려. 당신이 십여년만 더 살았어도 내가 팔자를 고쳤겠수? 당신은 저것 하나만 덜렁하게 남겨놓고 훌쩍 혼자서 가버리고..... 당신은 너무 야속했다우. 용서하구랴.
여보! 당신이 예뻐하던 형숙이가 시집을 간다우. 당신은 보시고 계시우? 나만 혼자 지켜보기 민망하구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 같다면 외로운 사람 불쌍한 사람만 사는 동네가 되고 말겠구려. 당신은 나를 또 울리는군요. 우리 형숙이는 진실한 신랑을 만나 정직하게 살아 오래도록 복을 받고 잘 살기를 소원한다우.
여보, 당신 보기에는 어떤가요? 내 눈엔 마냥 예쁘기만 하다우.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우. 속이 예뻐야지. 착하고 그 속에 대나무가 있어야 보람을 주는 사위가 될 게 아니겠우. 먹고 사는 거야 굶고 사는 사람이 없듯이 굶기 싫으면 열심히 일을 할테니까 그건 걱정 안하기로 했어요. 나는 당신이 아시듯, 마냥 배우진 못했어두 남이 싫어하는 짓은 안하는 성미잖우. 요사이 젊은 아이들은 가만히 보니께 저만 좋으면 그만입디다. 우리 사위가 아무개 했다가는 집안이 하루 아침에 우스개가 될 게 아니유. 사위 자식도 자식인데...
복 받을 짓만 해서 아무개처럼 살아보라는 소리만 듣는다면 바랄게 없겠어요. 여보! 당신도 그렇지유? 안그래요? 여보. 미안하구랴. 나만 혼자 낙을 누리니......’
그녀는 울먹거리다가 기쁨과 아울러 북받혀 오르는 설움을 견디지 못하고 집모퉁이로 가서 털썩 주저앉고 만다.
담 너머에서 형숙이 시집 가는걸 구경하는 순주, 태숙이, 창순이는 부끄럼을 타는 얼굴로 시새우며 기웃거린다.
“신랑 복을 타고 났구나!”
“중신애비 대접받겠다. 얘!”
“아껴주게 생겼다. 얘.”
삽짝 옆에서는 동네 아낙네들이 보낸 청춘을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신랑 신부를 하나 하나 뜯어가며 비평한다. 그녀들의 눈에는 놀려줘야지, 기념 거리를 장만해 줘야지 하는 게 포개어 담겨졌다.
“근수 엄마, 형숙이 신랑 참 잘생겼지?”
기순이 엄마는 시샘이 넘치게 말한다.
“우리도 사윗감 고를 때 형숙이 신랑 같은 맘에 쏙 드는 사윗감을 골라야지.”
“그게 어디 맘대로 돼야 말이지.”
“찾아 다니면 고를수 있지, 뭐.”
“그럼 좋게?”
“돌 많은데서 돌 고르기가 쉬운감?”
기순이 엄마는 열여섯 살 먹은 딸을 하나 두었다. 그녀는 동네에 혼인이 있다 하면 빼놓지 않고 신랑 구경을 간다. 이웃 동네도 찾아가서 신랑 구경을 하는 극성파 아낙네다. 아낙네들 사이에선 관랑쟁이로 통할 정도로 꽤 소문이 났다.
“기순이 엄마! 열이도 다음 달에 시집 보낸다면서?”
근수 엄마는 자기가 들었던 말을 다짐하듯 확인을 한다.
“그런가봐. 열이 엄마는 사윗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구. 그러면서도 잠이 오는지.”
“설마 그럴라구.”
“설마가 사람 잡는대.”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원 세상에 그라구두..... 세상을 모르누먼.”
“그러기루...병신인지는 알아야지.”
“그거야 아니깐 가만히 있지.”
“혹시 첩으로 가는건 아닌지.”
“그러기야 하겠어?”
“선을 보고도 아무개는 첩으로 갔대요.”
“저걸 어째?”
“그러니 걱정이지.”
창순이 엄마가 삽작 옆으로 웃음을 담고 유들거리는 모양으로 걸어간다. 발걸음은 가볍게 촐랑거린다.
“이, 여편네들, 거기서 무슨 주책 떨어?”
“이 떠버리, 어데갔나 했더니...약방에 감초가 빠지지.”
“넘의 경사에 실컷 구경이나 했슴 됐지. 가는 청춘 안타까워 떠벌리시나?“
“사돈 남말 하시네. 입이 근질거려 달려오구선.”
“무슨 정보야? 나도 좀 알자.”
“네 딸은 언제 손자 보냐구 했다.”
“까불지 마라. 오래오래 살란다.”
“창순인 어쩌구.”
“신식 양반한테 시집 보낼란다. 왜?”
“딸년은 종으로 보내실 참이구먼.”
“그래야 자동차 구경두 하고, 오만원짜린지 삼만원짜린지 하는 밥 도 먹을거 아냐?“
“딸년 꼴만 보다 마를 소리 말어. 말이 씨 된다는것 몰라?“
“창순이도 속깨나 태우겠네.”
“삼복 때 어디 태우겠어?”
“그러니 양반에 녹아난다구.”
“불쌍하지.”
그녀들은 걱정하듯 비아냥거린다.
열이 할아버지는 귀를 긁고 재채기를 계속하는 것 같다.
열이는 뒷방에 앉아 잠시 쉬면서 고개를 꼬고 생각을 굴려 본다.
‘나도 다음달엔 시집을 가겠지. 형숙이처럼 원삼 족두리에....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겠지. 동네에서두 복이 많은 아주머니가 시키는대루 절을 하겠지. 신랑 얼굴도 모르고 절을 한다...
한번 몰래 쳐다볼까? 그러면 새색시가 그런다고 흉보겠지. 남의 속도 모르면서 막 놀려대겠지...
형숙이는 사람들이 막 놀려대도 별로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어. 아주 좋아하는 얼굴이었어. 나도 형숙이처럼 그럴라나?
기순이 엄마가 - 색시는 참 좋겠네. 잘 생긴 신랑이 데려가니 얼마나 좋을까? 참 좋지? - 하니까 부끄럼도 안 타고 빙긋이 웃는게 아주 어른스러웠어. - 웃으면 딸난대. - 하는데두 기쁨이 넘치는걸 보면 사람이 달라지나? 원삼 쪽두리가 처녀를 금방 여자로 만들고 어른으로 변신 시키는 힘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남자가 여자의 비위를 떳떳스럽게 자연스레 만드는 힘이 있나? 나는 비위가 너무 없어. 할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도 못하는 못난이니까. 하지만 사람팔자 알 수 있나? 형숙이도 예쁜 신랑 얻어 가는데, 나라고 그만 못한 신랑 얻을라구? 엄마는 너무 남을 의심하는 것 같아. 형숙이 중매한 사람이 나도 중매 했다면서 내 신랑이라고 소홀이 하겠어? 너무 조심성이 많은 것두 탈이야. 나도 엄마가 되면 그럴까? 자식을 넷 이상 낳아서 길러봐야 에미속을 안다고 그러시는데... 엄마가 나를 염려하는 것은 다 잘되라고 그러는걸 누가 모르나.’
열이는 저의 어머니를 딱하게 여긴다. 아주 속을 태우기 위해 속건데기만 찾아 다니는 걸로 보이기만 한다.
순주 엄마는 장난기 있는 얼굴로 담장 밖에서 구경하는 말만한 처녀들에게 살금거리며 고양이 걸음을 친다.
“이것 보게! 우리 동네 이쁜이들이 모두 오셨네!”
그녀는 목소리를 아주 굵게하여 주책을 떨어 부끄럼을 살짝 덮은것을 졸지에 잡아 당겨 훌러덩하게 한다.
“아줌마도, 참!”
창순이와 순주는 눈을 흘긴다.
“우리 아가씨들이 시집 가는걸 배우러 오셨구먼! 그래야지.”
그녀는 아까보다도 목에다 힘을 더 주고 크게 말한다.
“엄마, 왜그래? 엄마들끼리 놀지않구.”
“우리 공주도 오셨네. 그래 부지런히 배워라. 엄마는 좋아서 그런다!”
순주 엄마는 딸의 눈총에 떨려나 형숙이 엄마 쪽으로 시샘나는 얼굴을 하고 다가간다. 형숙이 엄마는 부엌 옆 마루에 잠깐 앉았다가 순주 엄마가 다가오자 일어나 맞는다.
“형숙이는 복덩어리야! 복 많은 딸을 두어서 부럽구먼. 어데서 그렇게 탐나는 사위를 골랐어 그래? 나에게도 좀 일러 달라구.”
그녀는 형숙이 엄마의 손을 마주 잡고 축하 해 준다.
“글쎄 내가 뭘 알아야지. 모두가 염려 해 주는 덕택에 딸을 시집 보내게 돼서 고마워.”
“나도 당신처럼 잘 생긴 사위 얻어 주면 꼭 한턱 낼께.”
“내가 뭘 아는 게 있어야지.”
형숙이 엄마는 즐거움에 잠겨 흐뭇한게 넘실거린다.
“되게 빼네, 혼자만 으시댈 모양이지?”
그녀의 눈에는 시샘, 장난기가 범벅이 되어 흥을 부채질한다.
“별소릴 다 하네. 제 복이 있으니까 좋은 신랑 만나지. 내가 뭐 한 게 있어야지. 있다면 우리 상길이 어메가 애 많이 썼다구. 우리 상길 어메는 내가 서운해할까 보아 하느라구 했다구.”
라부인은 며느리에게 공을 돌린다.
며느리가 오늘이 있게 하느라고 정성스럽게 제 속에서 나온 자식 이상으로 보살펴서 결실을 보게 했다고 며느리 자랑을 한다.
곁에서 라부인의 이야기를 듣던 순주 엄마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녀들은 잠시 숙연한 모습을 지우지 못한다.
“이제 형숙이를 시집 보냈으니 오늘밤에는 베개를 높이고 주무시게 됐으니 좋겠네.”
“그래야지! 딸이란 날때부터 걱정거리라는데, 그래야지.”
“형숙이 같다면 걱정 할 것 없지. 고마운 일이야. 인력으로 된다면야 오죽 좋겠어.”
해가 기울어 땅거미가 드리우자 하나 둘 자기네 집으로 모두 돌아갔다.
상길이네 집안은 파장된 장터 같다. 저녁을 먹고 난 상길네 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안채의 부엌 건너편 방에는 촛불이 두 개나 켜져 있어 안방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방안 뒷문쪽에는 문을 가리우듯 병풍을 세워 놓아 방을 한결 아늑하게 만들었다.
병풍을 등지고 신부가 앉아 있다. 원삼을 입고 쪽두리를 쓰고서 다소곳하게 앉아서 기다린다. 조금은 수줍어 하는것 같다. 눈을 내리뜨고 있다. 두손은 앞에 모았다. 손까지 부끄럼을 이기지 못하는양 소매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신부는 머리가 조금은 이상하리만치 무거워졌다고 하는양 쪽두리의 수술이 방바닥을 짚고 머리를 떠받치고 있다. 신부의 모습은 내려 쪼이는 햇빛을 주섬주섬 담다가 눈알이 시어서 지그시 감은 것 같다.
고향, 내가 난 고향의 아늑함에 한시름 벗어던져 버리고 너부러진게 담겨지는 그것이다.
‘몸뚱이는 머리가 시키는대로 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부창부수가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한몸이라고 하는거겠지. 그게 남녀 동등일 거야. 몸뚱아리 된 내가 저이를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저이가 어떻게 하겠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거지. 머리가 한다는 것은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명령하는 일밖에..
그러니 몸뚱이가 된 나를 어데 가자, 이것 저것 해달라고 시키겠지.
요청하고 간청하는 것이지. 그래야 살아있는 몸이지. 인격자이고.
따로따로 머리와 몸이 간섭을 싫어하고, 듣지 않는다면 그건 자존심이 아니야. 그건 불구자던지 죽은 몸이지. 그걸 내가 이제야...
내가 이기려하면 저이는 져 주겠지. 눌려지는게 뭔가 했더니...
왜 내가 이런 생각을? 밑도 끝도 없는.......
남편을 무시해 버린다. 그건 내 머리를 무시하는 거야. 그런 여자는 똑똑하기는 해도 머리가 없어 혼자 있을때도 풍선처럼 그렇겠지.
답답하고 배고파도 속수무책이겠지. 그걸 모르고 으시대다니!
태초에 하나님이 나를 만드실 때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서 그런 거야. 그래서 내가 벌써부터 저이를 사모하고, 의지하고 머리부터 붙들어 매이고 눌리게 되나. 내가 어리석어서 그런가? 저이만 바라고 살아야지 하는 맘이 자꾸 생기는게 이상한게 아닌가? 정상일 게야. 남자에 대해선 말이 없고, 여자에게만 일부종사 해라. 한 남편만 섬겨라 하고 야단들인가? 이제부터 저이만 섬기기로 내 맘이 굳어지는 것도 야릇하다구. 아침까지도 없던 맘이 초례청에서 생기다니 내맘도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야. 그리구, 왜 남자에게는 조심하라고 가볍게 말하고, 유독 여자에겐 신신당부일까?
올캐는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남자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여자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 여자가 정조를 지킨다는건 여자를 위해서 하는 말이지. 아내가 불행해지면 남편도 따라서 불행해 진다는 말이라구. 시누는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아야 알 게 될게야. 아니지, 그건 스스로 깨달아야 되는게야. 남편과 같이 살면서도 남편이 없는 여자처럼 남편의 사랑에 감사한 생각보다 불만이 계속된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어. 그래두 몰라?
남자가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횡포 부리는 말이 아녜요. 아주 사랑하기에 그렇게 정조를 지키라고, 때리고 의처증 환자처럼 투기하는게 남자들 속에 사람 만드신 분이 여자 위해 여자가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유리하는 걸 막으시려고 넣어준 좋은 맘이라구. 여자의 거죽도 속도 상하지 않도록 하심이라구. 어른들의 말은 다 옳은 말씀들이야. 여자가 몸뚱이가 하자는대루 끌려다니면, 제딴엔 뽐내고 활개치고 다니는 것 같지만, 까딱하면 몸도 마음도 상하고, 평생을 두고 계속 방황하고 후회하게 되지요. 설마 나와 무슨 상관이람 늘 젊어요. 늘 살아요. 하다가는 걸걸하는 사람이 만들어지지. 우리동네도 여럿이 그렇게 된 딱한 사람이 많다네. 마음의 풍요로움이 없어 노상 더 좀 다오. 요걸 줘. 더 줘. 하는 사람이 되는거지요. 비교하는게 물새듯 하면 불행하다구. 맘속에 비교하는게 자리잡을 건덕지를 만들면 한심한 게야.
열이와 시누는 잘 듣고 명심하면 가슴 뜯는 일은 안 생긴다구.’
형숙이는 맛도 모르면서 머루같은 올케의 말을 계속 따서 입에 넣고 또 깨물어 삼킨다.
신부, 신랑 앞에는 자리끼 상이 차지하고 있다.
신랑은 감회어린 눈으로 신부를 건너다 본다.
‘내가 장가를 들다니...
이제는 나도 어른이 된것인가? 저 여자가 내 색시가 된것인가?
나는 저 사람의 남편이 되고, 이렇게 된 것을 연분이라고 하는 것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이런 산골에 장가를 오다니?
그건 그렇구 첫날밤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는지. 집안 사정이나 물어 볼까? 그거야 차차 알게 될거고,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음 이야기 해 달랄까? 그럼 무엇을 먼저 물어본담.
지루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건 아닐까?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어디부터 꺼내야 될지 캄캄하니.....
그냥 잔다면 웃음거리가 되겠지.
쯧쯧 오죽 못난 놈이면 첫날밤에 말도 한마디 못하고 잘까?
잠충이구먼. 이제껏 어떻게 참고 살았냐? 재주가 용타고 볼 게 없다.’ 고 하겠지.
형숙이 신랑은 머리가 벅차고 가슴이 벙벙하여 오른손 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뒤통수를 쓰다듬는다.
동네 아낙네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상길네 삽짝 안으로 들어선다.
마치 우리가 엿들으려고 왔으니 그리 알고 신랑은 재주를 피워서 실망을 당하지 않게 흥을 돋우어라. 흥을 돋우지 않으면 부끄럼 당하게 된다고 을러대는 것 같다.
그녀들은 누구의 말도 들을 것도 없고 물어 볼 것도 없이 곧바로 신방 앞으로 쪼르르 간다. 신방 뜰방에서는 고양이 걸음을 치고, 까치걸음을 하며 마루에 올라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방문에 달라붙어 앉는다. 그녀들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창호지에 바르고 또 바른다. 그리고 뜸을 들였다가 또 침을 바른다.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본다.
창호지는 침을 잔뜩 먹은뒤라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내 문구멍이 생긴다. 얼굴을 거머리처럼 해 가지고 방문 문살에 달라 붙는다. 눈을 방안으로 밀어 넣으려 덤빈다. 순주 엄마는 창순이 엄마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옷을 잡아 당긴다. 창순이 엄마는 옷 잡은 손을 거머리 떼어 던지듯 한다. 손을 설레설레 흔든다. 그녀의 오른손은 좀 가만히 있으라고 허공을 다독거린다. 순주 엄마는 소심증이 나서 이사람 저 사람을 찔러본다. 물러나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는 보고 싶은 충동을 마음에 그냥 담고 있질 못한다. 마루 위로 성큼 오른다. 까치걸음으로 방문으로 다가선다. 왼손으로 문설주를 짚고 한손으로는 방문에 구멍을 내느라 열심이다. 창호지가 침을 먹어서 군소릴 내지 않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거듭 손가락으로 침을 나른다. 침은 먹히지 않고 그냥 흘러내린다. 그녀는 손가락에 힘을 준다. 그리고 쿡 찌른다.
손가락은 찌지직 소리를 따라 방안으로 꼴 사납게 뛰어든다. 그녀들은 창호지 찢어지는 소리에 찔끔한다.
창순이 엄마는 문살에서 얼굴을 뗀다. 그리고는 순주 엄마를 눈이 찢어져라 흘긴다. 꼬집는 시늉을 한다. 그녀의 입술은 욕을 하느라 얼마동안 달싹거린다.
신랑은 창밖의 아낙네들의 수선떠는 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떠듬거린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애쓰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리는 마음은 피차 한가지겠지요. 앞으로 우리는 부모님들이 사랑해 주시는 그 사랑에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열심히 살아가야 되겠지요. 서로 양보하며 서로 아끼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노력을 하여야 비둘기 같은 부부가 되겠지요. 남들이 부러워하게 사십시다. 아끼면서, 이말은 우리만 위하는 것 가운데 첫째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딴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에 있다고 봅니다. 실망이 되실지 모르지만 나는 남처럼 그 흔한 돈도 없습니다. 있다는 것은 젊고 건강하다는 것이지요. 또 있다면 자랑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항상 삶을 거짓없이 꾸밈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가운데 있기를 좋아하는...
뭐라 할까, 보람으로 안다고 할까요. 거짓이 담기는걸 싫어하고, 언제나 있는 그대로 사는걸 닮은 체라도 해야 한다는 게 꿈이지요”
신랑은 아주 느리지 않게 또박또박 책을 읽어주는 2학년 학생같다.
기순이 엄마, 근수 엄마가 상길네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녀들은 신방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까치 걸음으로 신방을 향한다.
그녀들은 뜰방에 서 있는 순주 엄마의 어깨를 호들갑스럽게 잡는다.
“아이구머니나! 이 주책들, 애 떨어지겠다. 웬일로 안오나 했다.”
“늙은 것들이 시샘이 나서 제 서방 밥도 안주고 달려들 왔구나.”
“이 주책들 엔간히 떠들어. 신랑 듣겠다.”
조용해지길 기다렸다가 구경이나 하고 듣기나 하라고 이르듯이 다시 떠듬거려 책을 읽듯 말을 한다.
“나는 오늘밤 당신에게 한가지 부탁할게 있어요. 들어서 아실줄 압니다만 우리 집에는 어머님 아버님이 계시고, 형제도 여럿이랍니다.
출가한 누님이 둘이 있고, 형님은 두분 계시지요. 여동생도 하나 있고 남동생도 하나 있어요. 우리 집은 대가족이랍니다. 조카들도 많답니다. 형제간에 우애가 아주 좋으십니다. 형제끼리는 다투는 일이 없는데, 간혹 내가 형님께 투정을 부려서 가끔 혼날 때가 있지요. 나는 나밖에 모를 때가 많아요. 그러니 그런 기미가 보일 때는 조언을 해주길 바라겠습니다. 나 혼자만 말한 것 같은데 할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하시어서 우리의 첫날밤을 기념하도록 하시면 좋겠습니다.”
신랑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한다.
신부는 엷게 웃음을 머금은듯한 얼굴을 조금 세우는듯 하고는 잠잠함으로 대답하는 것 같이 하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일평생을 당신에게 헌신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에게 어떻게 해달라는 것보다 이렇게 하면 좋을듯 합니다. 왜 그런말을 합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는건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아내된 사람은 아내로써 아내의 본분만 지키고 삶을 누리면 되는 걸로 알고 자랐어요. 아녀자가 남자가 하는 일에 간섭하는건 도리가 아닌 줄로 압니다. 요즘은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그냥 외치는 것 같아요. 나는 배운게 많지도 않고 보고 들은게 적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알고 있어요. 여자가 아무리 남자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남자가 될 수 없고, 남자가 여자의 일을 다 한다고 변장을 하면서 여자가 된 것 마냥 날뛰어도 여자가 될 수 없듯이 여자는 여자로써 열심히 여자 노릇하는게 자유요, 평등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머리가 되는 남자는 머리노릇 열심히 하고 간섭받지 않고, 몸뚱이된 여자는 몸뚱이 노릇하는게 평등이요, 제 분수 지키는거 아니겠어요.
머리를 제 손으로 때린다면 누가 아프겠어요? 몸뚱이에 붙은 손으로 쓰다듬고 다독거리는게 평등하는 것 아닐까요? 그 일을 남자가 한다면 일거리를 놓치고 마니까 편한게 아니라 일 할 자유를 빼앗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깨먹는 것이 좋은 것 같이 보일지 모르나 불행이 뒤따라 초조, 공허, 쓸개 먹는 일이 덮어 씌워지는 것 아닐까요?
생태계가 파괴되면 큰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건 왜 모를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곤 하지요. 그건 스스로 불행으로 어둠으로 기를 쓰고 달리는 일이라 봅니다. 그렇다는걸 아시면 당신 혼자 알아서 하세요.’
하는 소리가 입속에서 맴도는 것 같이 입술을 보이게 한다.
방안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신랑의 뒷머리만 보일 뿐이다. 신랑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듣는 아낙네들은 잔뜩 목이 말랐다.
아낙네들은 다시 떠들기 시작한다.
“신랑 목소리 듣게 시시덕거리지 말라구.”
“조용히들 하라니까.”
“가는 귀가 먹었나? 귓구멍을 문속으로 들이밀어”
“신부를 깍듯이 위하는데.”
“그걸 말이라구 하냐? 한날 한시에 똑같이 어른이 됐는데 그걸 몰라.”
“신랑이 저녁을 조금만 먹었나?”
“아까보니 많이 먹던걸.”
“목소리가 작은가봐요.”
“신부가 가는 귀 먹었나 시험하나봐.”
“신랑 속에 언제 갔다 왔냐?”
“목소리가 신부 코 끝까지 밖에 못가겠어.”
“들리던 말던 우리가 속 썩일 것 없지.”
“신부는 졸리나봐. 저것 보게. 하품 하잖아.”
“색시가 예쁘면 꼭 안아주지 멀거니 있어.”
“입으로만 한몫 하시네.”
동네 아낙네들은 신방을 엿보고 엿들으며 지껄이며 좋아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랑 신부를 축복해 주는 것처럼 여긴다.
“밤이랑 대추가 우는데 그냥 보구만 있담.”
“손은 포도청에 갔나?”
“보라는게 아니라 먹으라는 거여.”
“신부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집어줄 수 있겠어? 어디.”
그녀들은 신랑 신부에게 첫날 밤의 행복을 내리 내리 품앗이를 한다.
신랑은 잠자코 아낙네들의 놀림을 받고 앉아 있다. 그는 자리를 고쳐 앞문을 향해 천천히 돌아앉는다.
“보시기 힘드시는데 제가 잘 보시게 해드리지요.”
그는 말을 하며 날렵하게 문의 창호지를 오른손으로 북북 찢는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앉는다. 조그만 구멍으로 감질나게 보느라고 나오는 군소리는 그만 하라는 투다.
잠시동안 멋없이 방안을 바라보던 그녀들은
“이제 가세.” 하며 흥깨진 얼굴로 마루를 내려간다.
누가 가라고 하기나 한것처럼 신방을 물러나 삽짝을 나간다.
아침을 짓느라 은부인과 열이는 부산을 떤다. 상길이는 아궁이에 불을 땐다. 상길이 고모는 부엌광 뜰방에 나무판자를 놓고 앉아 있다.
그녀의 검은 비로도 치마는 검은 윤기를 더 하는것 같다. 그녀의 치마폭에는 밤과 대추가 뒤섞여 있다. 그녀는 밤을 열심히 깐다. 대추를 치마자락에 슬쩍 닦아서 입에 넣는다. 밤도 열심히 까서 오도독 소리를 내면서 먹는다. 그녀는 식구들에게 먹는 자랑이나 늘어놓으면서 구경이나 하라는듯 혼자만 먹고 있다.
상길이는 고개를 돌려 고모를 쳐다보다간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는다. 그는 나무를 집어넣고는 다시 흘금하곤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의 얼굴은 ‘어처구니가 없다. 나도 하나 주고 먹지. 고모는 돼지야.’ 하는 말을 입술로 가두고 있어 커다란 사탕을 물고 있는 입이 되었다.
상길이 할머니가 부엌으로 서둘러 들어온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죄다 먹어야 한다. 그래야 시집가서 잘산다.
첫날밤에 신랑이 먹으라고 준 과일은 혼자 모두 먹어야 아들도 잘 낳고 딸도 잘 키운단다.”
상길이 할머니는 마치 상길이에게 해명을 하듯 지껄이며 부엌 문지방을 넘는다.
하룻밤 사이에 형숙이는 많이 변했다. 어제는 부끄럽고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빨개져 쩔쩔매던 그녀였다. 지금은 아주 의젓하고 어른스러움이 잔뜩 솟아 나왔다.
“나는 처녀가 아녜요. 이제는 나도 여자가 되었어요. 머리가 생겼어요.
나도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어요. 귀도 입도 있어요. 그러니까 머리를 들고 다닐 수밖에 없잖아요.”
하는 소리가 얼굴에 배어 나왔다.
아침 11시쯤 되었다.
형숙이는 그의 신랑과 같이 트럭 운전대에 앉아 있다. 트럭 짐 싣는 곳에는 형숙이가 시집가서 덮고 잘 이불보따리가 실려있다.
상길네 식구들은 운전대 옆에 일렬로 서 있다. 상길이 할머니는 한편 좋고 한편 잔뜩 서러워서 목이 메인다. 그녀의 눈에서는 안개가 보이다가 이슬이 맺힌다. 방울져 미끄럼을 탄다.
“얘야, 잘 살아야 한다.”
“엄마!.”
“잘 살아다오.”
“엄마, 걱정마.”
형숙이의 목소리는 울먹거리기만 한다. 그녀들 모녀는 눈으로 소리를 듣느라 손등이 얼굴에서 내려오질 못한다. 상길네 식구들은 형숙이를 축복하며 기쁘게 보낸다. 트럭은 신작로를 따라 이불 보따리 하나 달랑 싣고서 신바람을 내면서 달려간다. 마치 기쁨을 붙잡아 차에 매달고 가는양이다.
형숙이가 시집간지도 여러날이 되었다. 은부인은 열이를 뒷방에 불러서 앉히고 걱정스런 얼굴로 딸을 바라본다.
“엄마,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열이는 제가 먼저 궁금하여 묻는다.
“걱정은...... ”
“그럼?”
“네가 외갓집으로 도망가야 되겠다.”
“엄마는 또 그 이야기야?”
“엄마가 곰곰히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네가 외갓집에 가야겠다.”
은부인은 아주 소리를 작게 하여 숨을 죽이고 속삭이듯 말한다.
“엄마가 또 할 일이 없어서 지껄이는 소리로 듣지 마라. 나중에 엄마 원망말고.... 알았냐?”
열이는 조금 긴장하여 떨떠름한 얼굴로 엄마의 얼굴을 지켜본다.
“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위해서 하는 소리 못들었냐? 한 해에 한집에서 둘이 시집가게 되면 하나는 치인다고 하는 말 말이다.
동네 사람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이치에 안맞을런지는 몰라도,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은 그냥 귓등으로 흘려보내다가는 큰 코 다친다.
괜한 소리라고 여기다가는 딴일도 아니고 큰 낭패가 아니겠냐?
그런 말을 들으니까 괜히 마음이 꺼림직도 하고, 하기는 우리 집에서 하는 일들이 께름직하게 하니까 맘이 켕긴다만서두. 그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조심해서 손해볼게 없지 않느냐? 엄마는 바늘 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다. 음식도 께름직한 음식은 안먹는게 더 좋은 것 아니냐? 혼인은 무를 수도 없고 한 번으로 시작이요. 끝이 아니겠냐? 두 번 하는거라면 걱정할게 없겠지...”
은부인은 딸에게 타이르는 말을 하면서도 마음 구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섭섭한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내가 어떤점이 서운해서 그러시나? 내가 대전에 다녀온다고, 열이 신랑감 이야기만 나오면 무엇이 못마땅하여 그러시는가.......
원 알다가도 모를일이야. 왜 그러실까? 도무지 알수가 없으니.....
내가 내 사위 잘못 얻는게 좋아서 그러나? 뭐가 못마땅해서 영감님께 고자질을 하나? 누구 속 터져 죽는 꼴을 보려고 그러나? 내가 날이면 날마다 속썩이고 앉아 있는 꼴을 보아야 속이 시원하실라나? 열이보다 자기 딸을 옷 한가지라도 더 해주고 내 딴엔 하느라고 했는데...
당신이 섭섭해 할까 보아 하느라고 했는데 이게 뭐야?
농부가 추운날 뱀을 살리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가 뱀에게 물렸다는 꼴이 내꼴은 아닌지? 아버님께 말씀을 잘 드리지는 못해도 한마디쯤은 할 수도 있을텐데. 세상에 사위가 어떻게 생겼나 얼굴도 안보고 정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그런말도 못하는 이가 내가 대전에 관랑하러 간다는 말은 왜 했는지. 내가 대전에 못가는 게 소원이라도 되나? 당신도 딸이 있으니 내맘을 알텐데 왜 몰라라하나? 호랑이 새끼를 기른꼴인가? 왜 훼방을 놓구 야단이야?’
그녀의 마음은 일그러짐으로 뒤집어 씌워져 뻣뻣해졌다.
“넌 무서워 말고 일년 동안만 외갓집에 가 있다가 오면 좋겠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무서워 할 것 없어요. 네가 외갓집에 가 있었다고, 정혼한 처녀가 도망갔다고 나중에 시집 못 가겠냐?
지금은 그런 어리석은 세상이 아녀요. 6.25 난리 나기 전에 사람들은 어리석었지. 그렇게 어리석으니까 난리가 쳐들어 오는데두 피난 갈 줄도 모르고 돼지새끼 사놓고 돼지 새끼 먹일 것만 걱정하던 너희 할아버지셨다. 너희 아버지는 부산으로 피난가면 고생하지 않고, 난리를 피하지만 여기 있으면 잡혀 죽는다고 일러줘도 너희 아버지는 안갔다가 난리통에 죽을뚱 살뚱하며, 좌익들에게 죽을 매를 얼마나 맞고, 가슴을 피우고 태우더니 난리에 경을 친 게 몇 년이 지났다고, 벌써 까맣게 잊어버려.
그때 넋이 빠진건지 정신을 못차리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미련한것은 절구에다 넣고 공이로 아무리 찧어도 벗겨지지 않는다더니만...
동네 사람들은 개명들을 했는데, 너희 집 양반들은 6.25 나리를 겪고도 개명이 안돼서 큰 일이다. 너도 난리 때 안 보았냐? 챙피하다고 비겁하다고 어떻게 도망가고 숨느냐고, 그냥 잡혀 죽겠다고 하는 사람 보았느냐? 그걸 흉보는 사람 보았어?
급하면 우선 살 길을 찾는게 현명한 사람이라는걸 배웠잖느냐?
그건 미물도 이 세상에 생겨날 때부터 타고난 본능이란다. 어떤 사람은 자기 죽을 자리 찾아다닌 사람도 있었다는 말 나도 들어서 안다.
꼭 네가 남을 살리기 위해서, 적어도 민족을 위해서 나라를 위하는 일에 죽을 자리 찾는건 말리지 않는다. 사람으로 이땅에 태어났으면, 보람되게 열심히 살기 위해선 네 자신의 몸을 잘 간수하는게 시작이라고 본다. 너도 나중에 그렇게 가르쳐라. 이 에미는 인생을 살아온게 공부다.
학교만 다니면 공부냐? 나이 먹고 해야 하는건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공부해서는 모른다. 학교 선생님만 선생인줄 아냐? 나이 먹은 사람 이야기 귀담아 듣고 조심하면 네 인생길은 그만큼 순탄한 길이 된다. 괜히 교만해서 구식이니 기성세대니 하며, 우습게 알고 방자히 굴면 나이 먹은 사람이 겪은 온갖 고생을 또 답습하는 거란다.
현명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고생을 덜 해요. 쓸데없이 고집부리면네 고생이지 내 고생이냐.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어쩌겠냐? 시집간 뒤 울고 불고 한들 그때는 엎질러진 물사발이란다.
네가 외갓집에 간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너를 찾아내라고 야단이시겠지. 그렇지만 도리가 없는 것 아니겠냐?
형숙이가 너처럼 정혼을 했다면 벼락이 났을게다. 무식해서 가끔 푼수가 없기는 하지만, 너희 할머니는 똑똑한 분이다. 배워야 똑똑한 줄 아냐? 좀 배우면 배울 것이 있고 좋아 보일지 몰라도 배운 걸 못써먹으면 빈 강정이란다.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끌줄 알아야지. 너도 이제 시집갈 날이 안남았는데, 푸줏간으로 소처럼 끌려 갈테냐?”
열이는 고개를 숙인 채 방바닥만 바라본다.
은부인은 고개를 떨군 채 날잡아 잡수 하듯 아무 대답이 없는 딸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다가 숨을 크게 들여마신다.
“내가 어쩌다가 소 닮은 딸년을 두었담. 무슨 아이가 저 모양이람.
에미가 하는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이것아 대답 않기로 작정했냐?”
은부인은 중얼거리다가는 앙칼지게 내뱉는다.
“아무려면 중신해 주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라구. 병신한테 시집가게 하려구. 까짓거 상관없어요. 어서 시집만 보내 버릴려고 그러는데 고소할게 아니유? 한 번 데이면 정신을 차리지. 양반이네, 체면이네 하는데 잘들 해보세요. 한 뼘도 안되는 얼굴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체면 찾는거 꽤나 열심들이셔. 뼈다구가 있는 집안이면 어느 놈은 뼈도 없이 지렁이처럼 흐물거리다가 죽기나 하나?
두고보라지. 병신이 삽작안에 썩 들어서야 찔끔하겠지. 채찍에 꿈쩍하겠어? 양반 가죽인데. 여자가 사람인가? 다 큰 년이 어데를 간다구 그래. 송곳 맛을 봐야 찔끔하지. 병이 있던지 뭐가 고장이 있어두 크게 있다고 하지만 그거야 도시 사람들이니까 매일매일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집에 붙어 있을 수 있남. 집도 판자집이라면서 궁색하게 사는게 뻔한 거지. 할아버지 말대루 있네 집으로 시집 안갔다가는 벼락이 나지. 다시는 집에 들어서지도 못하게? 시키는대루 하면 서로 편할텐데. 그래야 속들이 시원하지. 내가 시원시원하게 제물이 되겠어요.
내 일로 속 썩일것 없어요.”
열이는 어머니의 말에 어긋나 돼지 발톱이 되어 간다. 건성건성으로 또 시작이라 여기며 소리도 안나게 중얼거린다. 열이는 그녀의 어머니가 말을 꺼낼 때 거죽 속에 있는 속알머리는 삽짝으로 들입다 내뺐었다.
혼인날이 바싹 다가서자 열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따로따로 냉가슴을 앓느라고 소리없이 끙끙댄다.
‘내가 사윗감을 만나보아야 될텐데. 맏딸은 시집을 잘 보내야 지체도 시집을 잘 보낸다는데. 조카딸 시집 보내는데 삼촌이 그냥 있을라구? 제 형을 보아서라두 한 번쯤 이씨네 집에 찾아가 제 조카 사위 될 사람 얼굴이라도 보았겠지. 보았으니까 어데 흠 잡을데가 없길래 아무 기별이 없지...’
은부인은 설마설마하며 좋게만 생각하려 든다.
오늘은 열이가 시집가는 삼월 초 이튿날이다.
그녀의 가슴은 답답했다가는 뚫리고, 뚫렸다가는 막힌다. 얼굴이 뻣뻣해져 손으로 비벼대며 서성거린다. 갈피를 잡느라 우왕좌왕하며 기를 쓴다. 핼쓱한 얼굴은 연지 곤지로 가리워졌다. 혼례 시간은 열한시로 정했다. 동네 사람들은 신랑이 오지 않는다고 걱정들이다. 삼십분 밖에 안 남았는데 신랑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며 야단들이다.
“신랑이 장가가는 날을 잊고 있는가?”
“세상에 저 장가가는 날도 모르는 멍청이가 있을라구.”
“형숙이 신랑처럼 아침 일찍 오지않구서 애를 태우네.”
“혼례 시간을 지켜야 마가 끼지 않는건데...”
“벌써부터 걱정이야. 시간이 있는데.”
“사모관대를 하자면 지금 해도 늦는데 큰일이네.”
“지금이니까 그렇지. 옛날에는 시계가 어딨어. 대강 짐작으로 했는데 뭘 그러냐?”
열이네 집에 모인 사람들은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혀를 차면서 꺼지게 걱정을 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금기가 있다. 장가가고 시집가는 날은 아무날이나 정해서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 결혼식날은 인륜대사 가운데 제일 큰 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혼하는 날을 정할 때는 제일 좋다고 하는 길일을 가리며 그중 한 날을 뽑는다.
사람의 생일이 365가지요. 어머니에게서 출생하는 시간이 12가지요. 출생하는 달이 12가지요. 출생한 해가 60가지요. 윤달이 있는 해의 달이 다르고, 달속의 날짜가 다르고 윤날에 출생하는 사람따라 다르다. 그러기에 자기에 맞는 길년, 길월, 길일, 길시를 찾느라 헤맨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때나 태어나는게 아니란다. 하나님이 태어나게 하시는 시간이 있고, 그 정한 시간에 태어나고, 태어나면서 저 먹을 복도 타고 난다고 믿는다. 그리고 길흉화복도 정해졌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결혼식하는 길일의 길시에 자기의 부족한 복을 다시 받는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길한 시간안에 결혼식이 끝나야 흐뭇해하고 안심을 한다.
혼례식의 시간이 어긋나서 길시에 혼례식을 못하면, 시집가서 잘 살지 못하고 평생을 부부가 해로를 못하는 것으로 믿는다. 더욱 무서워 떠는 일은 신랑 집안이나 신부 집안 식구중에 주장 맞아 죽는 사람이 생긴다고 전전긍긍댄다.
신부집 아낙네들은 안절부절하며 내가 과부가 되는건 아닌가 하며 지레 겁을 먹어 며칠 굶은 얼굴이 되느라 푸르뎅뎅으로 미역을 감는다.
남자들도 죽은 말고기 씹은 얼굴이 되어 체하면 어쩌나 하듯 안심을 찾느라 기를 쓴다. 길일을 뽑을 때는 평소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점쟁이에게 복채를 많이 주고 택일을 한다.
열이는 신부 화장을 하고서 원삼을 입고 쪽두리를 쓰고 뒷 방에 앉아서 신랑이 오기를 초조히 기다린다.
마당 안의 눈들은 삽짝을 향했다. 동네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궂은 일이나 좋은 일이나 자기 일이나 되는 것처럼 항상 앞장서서 일을 보아주는 성근이는 동구밖을 바라보다가는 삽짝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큰 길까지 나와 목을 늘인다. 그는 바보스러우면서도 우직하다.
동구밖까지 나갔던 성근이가 달음질쳐 상길네 마당으로 뛰어든다.
갑자기 성근이가 뛰어들자 모두의 가슴이 철렁한다.
휘둥글한 눈들은 금방 성근이를 나무라는 눈이 돼 버린다.
“신랑이 오고 있어요.”
그는 숨찬 소리로 크게 떠듬거리며 알한다.
“그게 정말이냐?”
“네가 어떻게 알아?”
“참, 신랑도 모를 줄 알구!”
“어떻게 네 말을 믿냐?”
“괜히 사람 깔보지 말어. 언제 거짓말 했남. 두고보면 알걸 뭐!”
아낙네들은 떠듬거리는 성근이의 말이 미덥지 않다고 한마디씩 핀잔을 한다. 그들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상길이는 신작로로 뛰쳐 나간다. 열이네 시구들은 신랑이 온다는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삽짝 밖을 내다본다.
“기왕이면 시간이나 맞추어 올 일이지.”
은부인은 쓸쓸한 입맛을 지우느라 군말을 한다.
“신랑이 들어오는디 신랑 안보고 뭣해?”
창순이 엄마는 은부인의 손목을 잡으며 밖을 내다보고 일을 해도 하자고 부추긴다.
은부인은 음식 만드는 것을 멈추고, 행주치마에 손을 넣으면서 부엌문 앞으로 다가간다. 그녀는 부엌문설주에 기대서서 마당을 내다본다.
신랑이 마당으로 들어와 잠시 서 있는걸 조목조목 바라보던 그녀는 표정없는 얼굴로 돌아선다.
“열이 엄마, 사위를 보니 어때? 맘에 쏙 들어?”
창순이 엄마는 열적게 미안한 얼굴로 묻는다.
“넘의 자식인데 첫눈에 들수 있남.”
은부인은 바람이 빠진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붙잡아 간신히 대답한다.
‘그렇겠지. 사람눈은 다 한가지야. 간혹 제 눈에 예쁘게 보이는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도 차지 않는데...’
창순이 엄마는 은부인의 마음을 자기 나름대로 헤아려본다.
안방에 있던 열이 아버지도 신랑이 온다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온다. 그는 마당으로 들어서는 신랑의 얼굴과 몸을 이윽히 바라보다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쉰다. 마치 막 안방에 쌀가마니를 들여 놓고 나온 사람 같다.
열이의 할아버지는 사랑방 방문을 열어 놓고 손녀 사위를 기다리다가 신랑이 마당으로 들어오자 얼굴에 기쁨이 가득해진다.
신랑은 열이 삼촌의 안내를 받아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방에 들어간 그는 열이 할아버지를 향해 넙죽 절을 한다.
“오느라 수고 했구나. 산골에 찾아오기 힘들지?”
그는 속없이 어루만지듯 말하며 절을 받는다. 손녀 사위를 살았을 때 보게 된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할 뿐이라는게 그의 얼굴에 흠뻑 돋아나 있다.
“편히 앉거라.”
“예”
열이 할아버지의 얼굴은 잔잔한 웃음이 하나 가득하여 손녀 사위에게 흘러내린다.
신랑을 본 아낙네들은 이구석 저구석에서 근심스런 얼굴로 쑥덕쑥덕 한다.
“며느리 속 터지는줄 모르고 손녀 사위한테 절 받으니 좋은가 보네.”
“영감님 눈에는 손녀 사위가 신통방통한 모양이지?”
“얼굴이 저렇게 생겼는데두 안보이나?“
“그게 보이겠어?”
“그러니 좋아서 싱글대지.”
젊은 사람이 왜 저렇게 떳지?“
“감옥소에서 나온지 며칠 안되남.”
“외꽃도 외꽃이지만 젊은이가 너무 말랐어.”
“형숙이 신랑보다 아주 못 하구먼.”
“고르다 고르다 삼베슥세라더니...”
“양반타령에, 쯧쯧.....”
"누구 신세 망치려 들다니.“
“떠꺼머리 귀신 면하려 작심했구먼.”
그녀들은 은부인의 마음속에 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갖기로 경쟁하듯 대신 말한다.
열이는 웃음을 잃어버린 하객들의 걱정이 담긴 시선 속에서 혼례를 치렀다. 그리고 첫날밤을 맞았다. 그녀는 우중충한 분위기에 잠겨서 새파란 날 허우적거리느라 신랑의 얼굴도 못본 채, 신방을 꾸민 안방에 시무룩한 얼굴로 기쁨이 뭔지 기쁘다고 하는 말이 왜 생겼는가를 생각해 볼 한치의 여유도 없다. 그냥 질질 끌려가는 자신을 잊고서 황량한 벌판을 헤매이는걸 쳐다보고 앉았다.
첫날밤을 차린 신랑 신부를 보기 위해 창순이 엄마, 순호 멈마가 열이네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들은 신방 앞을 기웃하고는 부엌을 지나 부엌방 쪽으로 다가간다. 그녀들은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마른 기침을 한다. 그리고는 열이 엄마를 부른다.
“상길이 엄마.”
“누가 왔어?”
은부인은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나는 누구라구, 어서 들어와.”
그녀들은 스스럼없이 방안으로 들어가 앉는다.
“저녁이나 먹고 앉았는거여?”
“그럼 이때것 굶었을까봐 걱정여?”
은부인은 안스러워 묻는 친구들의 말에 태연스레 말을 받는다.
“친구들은 저녁 먹었어?”
“신랑 구경하는데 굶고 할 수 있남.”
“어때 딸내미 여우살이 시키는 맘이?”
“이제는 내 품을 떠나는구나 하는 맘이 드누먼.”
“그러길래 딸 낳으면 서운하다고들 하지.”
“아들이라구 별수 있나? 그냥 잘 키워서 여우살이 시키면 되지.”
“저희들끼리 잘만 살면 즐거움고 말고.”
“이것이 시집가서 잘 살을까? 소박이나 맞으면 어쩌나? 하는게 에미 걱정거리라구.”
“왜 아녀, 아무것도 모르는걸 너무 일찍 시집을 보냈구나. 좀 더 가르쳐 보낼 것을... 꼬리를 무는게 잠이 안오더라구.”
“열이 신랑은 눈이 야무지게 생겼던걸, 나중에 사내 구실 할거여.”
“그렇게 보니까 그렇지, 얼굴이 병색인데 뭘.”
“얼굴이 누렇다고 그러누먼. 그거야 원래 그런지 누가 알어? 부자집 아들도 저릅(대마 속줄기)같이 말라붙어 쳇다리 같은 사람도 있는데 그런것 걱정할 것 없다구.”
“그냥 희고 누렇다면 괜찮게!”
“조금 어디가 아프더라도 염려할 것 없어요. 제 발로 걸어다니는데 뭐 어쩔라구. 처녀때 시름시름하던 사람도 시집가서는 언제 아팠느냐고 혈색 좋아져 아기 낳고 사는 사람마냥 신랑도 그렇게 될지 누가 알아?”
“지레부터 겁먹지 말라구. 지금 약이 얼마나 좋다구.”
그녀들은 억양을 높여서 은부인의 마음에 모락거리는 연기를 불어내주느라 열심이다.
“맘 푹 놓아.”
“알았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세상사 걱정하기루 들면 숨쉴 곳이 하나도 없는거여.”
“알았어. 그냥 갈거여?”
“아따 바쁘긴 딸내미 시집 보내면서 국물도 안 주기야?”
“국물이 왜 없겠어.”
은부인은 부엌으로 나가 떡 부스러기와 단술을 소반에 담아가지고 방으로 들어온다.
“준비도 못해서 있는게 없으니 어떡하지?”
그녀는 말을 하며 상을 내려놓는다.
“별소릴 다하네.”
떡을 먹은 그녀들은 방을 나와서 부엌문 옆에서 서성거린다. 흥이 나지 않는 얼굴들이다.
“신방 엿보러 왔으면 신방으로 가야지. 여기 서서 있으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겠어?”
“가만 있어봐. 올 사람이 더 있으니. 같이 볼려구.”
“놉 얻어 보게?”
“걱정 말고 방으로 들어가기나 하셔.”
“구경도 때가 있는거여.”
“안심 붙들어 매셔. 떡값 치루고 갈께.”
신방을 차린 안방은 방문이 쌍창이다. 아랫목쪽의 방문에는 네모지고 긴 유리가 방문 가운데 가로로 길다랗게 붙어 있다. 뜰에서도 조금은 방안이 들여다 보인다. 방 가운데에 촛불이 켜져있다. 방 윗목에는 신부가 앉아 있다. 신랑 앞에는 조그만 상에 자리끼가 놓여 있고 상옆으로 조그만 주전자가 보인다. 뒷 문에는 병풍이 세워져 있다. 방안은 깨끗하고 신선한 느낌을 주고 성스러움을 돋우는 것 같다.
신부는 몸도 크지만 얼굴도 둥글 넓적하다. 얼굴은 살이 쪄서 마른 미인은 없다는 말을 쏙 들어가게 하느라 너무 푸짐하게 보인다. 꼬옥 다문 입은 앞으로 불쑥 나와 웃음이 담길 여가가 없어졌다. 기쁨이 흘러내려 간지가 언제인지 흐른 자국도 엿볼수가 없다. 눈은 아예 딱 감은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겨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나도 뚝심은 있는 사람이다.
호락호락 끌려만 다니는 여자는 아니다. 나는 어쩔수 없이 이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남들은 제일 기쁘다지만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른다.
정직하지 못하고 그게 뭐냐? 부끄런줄도 모르는게 도시 사람이냐?
남이야 찬밥이 되든 말든 상관 없고....
거짓으로 심으면 거짓이 열리는걸 모르냐? 익은 밥만 먹으니까 불궈서 먹으니까 한다는 게 거짓이냐? 그러느라 칙칙하게 구는 거냐?’
하는 소리가 그녀의 양볼에 가득 담겨져 불룩하게 메주볼이 만들어졌다.
신랑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앉았다. 그는 신부를 똑바로 향해 마주앉지 않고 엇비슷하게 앉아 윗목 모서리를 바라보고 앉아 있다. 그의 얼굴은 기쁨이 있는지 없는지 짐작을 할 수 없는 얼굴이다. 시무룩한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부끄럼을 당한 얼굴 같기도 하다.
신랑을 지키던 아낙네들은 신랑이 뭐라고 입을 열지도 못한다고 지레 답답하여 한마디씩 지껄인다.
“무뚝뚝한 게 사내라더니 여기서 사내 같은 신랑을 보누먼. 무뚝뚝할 곳이 따로 있지.”
“색시를 앉혀 놓구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나?”
“저런 비위 가지고 장가는 어떻게 왔담.”
“누가 색시인지 모르겠네. 색시는 똑바로 앉아있는데.”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되는거여.”
“하나 집어서 색시에게 줘 봐요.”
“지각하느라 할 말을 몽땅 잊었나봐.”
그녀들은 신랑이 화를 발끈 내는거라도 보고 말겠다는듯 놀린다.
얼마를 떠들던 그녀들은 하나같이 머쓱하여 밀려난다.
“날 새기 전에 집에나 가세.”
아낙네들은 마당으로 내려서면서도 못내 아쉬워한다.
“신랑이 되어가지고 신부한테 말 한마디도 못하다니. 답답하게 쯧쯧... 밤을 저렇게 앉아서 샐 모양인데 안됐어.”
“그래 가지고 신부 원삼이나 벗겨 주겠어?”
“너무 꼴 틀리지 말라구.”
“그거야 배워 왔겠지.”
“이 마누라야, 신랑 같은 소리 말어.”
“내가 네 마누라냐?”
“잘난 영감탱이 하나 있다구 꽤나 으시대네.”
그녀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삽짝 밖으로 멀어져 간다.
날이 밝았다. 동이 틀 때부터 비가 부슬거리기 시작하더니 아침부터는 주룩주룩 장대 비가 되었다.
열이네 집 삽짝 밖 행길에는 신부 신랑이 타고 갈 트럭이 서있다.
짐을 싣는 곳에는 천막이 씌워져 있다. 비는 시집살이 떠나는 열이의 달궈진 마음, 얼룩진 마음, 얼음 같은 마음을 씻어내리느라 쉬지도 않는 것 같다. 열이는 받쳐주는 우산을 받으며, 무거운 걸음으로 운전석에 오른다. 열이의 얼굴은 보숭보숭하다. 눈두덩은 조금 부어 올랐다.
그녀의 얼굴은 골이 나서 두텁게 보인다. 눈을 딱 감고 앉아 있다.
신랑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 같다. 어색한 게 기가 꺾여 천덕꾸러기 노릇을 실컷 받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은부인은 딸의 모습을 근심이 어린 눈으로 올려다 본다.
‘열이야, 너는 참아야 된다. 무슨 일이든 참아야 된다. 네가 일찍부터 고생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너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네 신랑의 아픈 것은 나으면 괜찮단다.
네가 견딜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구나. 그래두 그만하기 다행이다.
그전에 에미가 이른대로 열심히 참고 살다보면, 지난 이야기 하는 즐거움이 있는 법이란다. 네가 열심히 살면 시집도 좋게 되고 너도 대접을 받게 되는 거란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 불행하여 몸을 다친 사람, 병들어 살기 힘들다고 죽을날 기다리는 사람, 첫날 밤에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사는 사람, 부자로 살면서 궁색이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이가 ‘다오 다오’ 하며 거머리처럼 사는 사람, 높은 자리에 앉아서도 떨고 있는 사람, 그보다 더 딱한 사람은 제 아내가 있는데두 제 아내를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 제 남편이 있는데두 한눈 파는 사람, 제 자식을 사랑치 못하는 사람, 제 씨를 아무데나 뿌리고 다니는 사람, 부모의 말에 순종하기 싫어하는 사람, 으시대기 좋아하는 사람, 껍데기는 양 같은 사람,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두 부끄럼을 모르는 사람, 거죽만 번드르 하면 속이야 어떻든 상관 없다고 하는 돈많고 배웠다는 사람들의 싱싱치 못한 짓들이 너를 울리고 나를 울린단다.
너는 내려다만 보고 살아라. 그러면 불만이 끼일수가 없으니 감사한 마음이 움돋고 기쁨이 핀단다. 열이야, 알았냐?
근심할 때가 있으면 즐거울 날이 있단다. 근심이나 걱정은 잠깐이고 희락은 하루가 넘는거란 말이다. 너는 뒤 돌아보지 말고 네가 바라는 것을 열심히 가꾸어라. 바람도 불고 비도 맞고 뜨거운 햇빛도 쏘이며 찬 서리도 맞다보면 웃을 여유도 생긴단다. 절대로 서둘지 마라.
이십년 농사를 지으려무나.
은부인은 눈빛으로 부지런하게 말을 건네준다. 딸에게 무슨 말이라도 했다간 오히려 딸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마음이 졸여 아무말도 못한다. 그녀는 딸이 자기의 걱정스런 마음을 읽을까 보아 좋은듯 기쁜듯이 이틀동안 감추고 덮느라고 허둥댔다. 그녀는 딸을 바라보며 지킨다. 트럭이 출발하려고 시동 건다.
신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가슴을 구부리고 처가집 식구들에게 인사를 한다.
열이는 돌로 다듬어 앉힌 물건 같이 꼼짝도 않는다. 트럭은 비 속을 헤집고 동구 밖으로 달려간다. 자동차 소리는 자동차 따라 가느라 꼬리를 감춘다.
은부인은 이내 고개를 떨군다. 곱기만 하던 희망스런 것은 빗물에 손목 잡혀 아주 가듯 따라가 버린다.
‘딸년 신세를 망쳐 놨구먼.’
은부인은 혼잣말을 내뱉듯 하고는 땅이 꺼져라 크게 한숨을 뿜어 낸다.
추녀 밑에서 서서 딸이 타고 있는 트럭을 바라보던 윤공은 트럭이 떠나버리자 멍한 눈으로 뒷동산을 바라보다가 자기 아내가 탄식하는 소리, 원망하는 소리에 찔끔한다. 그 소리는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찌르고 후빈다. 그는 서서 버티기도 힘에 부쳐 삽짝 안으로 휘청거리며 들어간다. 안방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문 그는 계속 담배만 빨아댄다.
담배 연기는 안방을 잔뜩 부풀린다. 그의 마음은 할퀸 자국 그대로 빗물에 씻겨져 고랑을 따라 황톳물이 졸졸거리기 시작한다.
‘내가 잘못 했지, 내가 잘못 했어. 지키고 앉았다가 만나보고 오는건데. 그애를 못 봤으면 혼인을 말아야 되는건데. 내가 왜 그랬나? 선을 보러 간다고 할 때 내버려 둘 것을. 내가 혼인을 못한다고 핑계를 댔으면 아버님께서 혼인을 말렸을텐데. 왜 내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나? 모르면서 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데. 세상에 나같은 멍청이도 밥을 먹고 살다니. 내가 넋이 빠졌지. 내가 홀렸었나? 내 발을 내가 찧다니. 이러고도 애비라니...’
윤공은 아내의 말을 듣고 서모를 모셔 왔을 때의 일이 떠오르며 괴로웁게 얼씬거리고 미워지기 시작한다. 머리가 무거워진다. 숨이 가빠진다. 눈알이 속으로 자꾸 파고들어 질끈 감았다 떴다 한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차고는 삽짝 밖으로 굴러가듯 흐트러진 심신으로 흙탕물을 튕기며 동네속으로 찾아든다.
뒷방에 들어온 은부인은 치마자락으로 얼굴을 닦는다. 그녀의 눈은 뻘겋게 물들었다. 눈가는 늙은 호박속을 갈라놓은 것 같이 시뻘개져 짓물러 버릴려고 자리를 잡고 있다. 그녀의 마음는 보람도 없고 설움과 실망만이 마음속 깊이 응어리져 있다. 압제 속에 그냥 빼앗긴 아픔이 할퀴고 소금을 친다.
그녀는 몇해동안 점심을 굶으면서, 저녁은 시래기죽, 김치죽을 자주 먹으면서 생활을 연명하여 왔다. 점심 때가 되면 고구마를 쪄서 어린 자녀들을 주고, 자신은 고구마 한두개로 끼니를 때웠다. 그녀는 허리끈을 졸라매고 살면서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는 밥을 빼놓지 않고 대접하였었다.
그러면서 시누이와 열이의 혼수를 준비하여 왔었다. 입으로 남긴 한가지 소망은 열이의 발치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아픔에 가슴대신 입술이 먼저 터졌다. 뒤따라 마음이 터지려 든다.
‘이게 무슨 꼴이람. 에미가 시집살이를 잘 해야 딸년도 시집을 잘 가는 것인데. 에미가 고생으로 분칠을 했으니 너도 별 수 있겠냐? 복도 없는 것이, 이제는 허사구나! 남은 것은 보고서 배워야지 이제는 어림없다.’
그녀는 터진 입술을 으깨져라 깨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