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14.아들 딸 부르시네)

Author
yeongbeome2
Date
2024-06-2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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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눈치 못채게 소리없이 나뭇잎의 푸르름을 야금거려 먹는다.
창대같던 벼들도 세월을 이기기 힘에 부쳐 뻣뻣하기만 하던 모가지를 조금은 구부리고 이제는 인사하는걸 배웠다고 굽실거린다.
열이는 요즘 드러누워 아침에는 저녁을 기다리고 밤에는 해뜨기를 기다린다. 그의 가슴 속은 전보다 더 아프다. 허리의 통증도 더욱 기승을 부린다. 이제는 어깨를 힘껏 들먹이지 않고는 숨도 쉬지를 못한다.
가슴 위에는 모래를 매일 조금씩 쌓아올려 짓누르는 것마냥 바짝 조여 올라오기 때문이다. 열이는 땅속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내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하늘나라는 어떻게 생겼을까?
자식이 되어 부모 앞에 가다니 나는 친정에서 죽어야만 하는가?..’
그녀는 서러움에 야속함에 뒤엉켜 베개를 적신다.
‘어머니는 오래오래 사세요. 자식들의 영화도 보세요. 좋은 일만 보세요. 예수 믿어 천국에서 저와 만나세요.
귀옥이는 저혼자 밥이라도 먹지만 명순이는...
그것들을 누가 키우려는지. 엄마 얼굴도 모르겠구나. 불쌍한 것들.
에미가 죄가 많아서 너희에게 못할 일을 시키는구나. 무럭무럭 자라거라. 착하게 살려무나! 복받게 살려무나!
당신은 복을 받게 부지런히 살아요. 좋은 아내 얻으세요.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게요. 먼저 가는...나를 용서하세요.’
은부인과 상길이는 안방에 앉아 있다.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그들 모자의 마음을 체념 속으로 몰아넣어 아득하게 만들어 어디론가 끌고 달린다. 이제는 호랑이 등어리에 탔으니 가는데까지 가는 수밖에.
정신만 빼앗기지 않으면 길이 있다는 걸 생각케 한다.

막내 아들은 엄마 무릎을 베고 잠을 잔다. 둘째딸 승례는 마루 한쪽에 걸터앉아 머리를 벽에 기대고 한쪽 무릎을 세우고 비스듬히 앉아 코를 쑥 빠치고 있어 음산한 집안을 엿보게 한다.
“어데서 돈을 빌릴 수 없을까요?”
“글쎄다. 메마른 요즘 어데서 돈을 빌리겠냐?”
“삼촌에게 빌려달랄까?”
“무슨 염치로 돈 이야길 하겠냐? 너의 아버지때 삼촌이 애썼는데.”
“나중에 갚으면 되지뭐.”
“그럼 가보긴 가보려무나.”
상길이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찬보리밥 한덩어리를 김치에 해먹고는 부리나케 집을 나간다. 그는 뛰기도 하며 걷기도 하며 4km가 넘는 황룡재를 넘어간다.
“링겔 주사를 놓으면 좀 효과가 있겠는데...”
그는 바삐 걸으며 의사의 말에 조금은 희망을 가져본다. 의사의 말은 그를 자꾸 재촉한다. 버스를 타고 있는 그를 잠시도 쉬지 못하게 안달이 나게 만든다.
‘그사이 누나가 죽지는 않았는지. 어제 아침부터 아무말도 못하고눈을 감은 채 가슴만 들먹거렸는데. 진작에 링겔주사를 맞게 해야 하는데...’
그는 버스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삼촌집을 향하여 뛰어간다. 상길이는 삼촌네집 앞 골목길을 뛰어 들어간다.
윤수는 직장에 출근하느라 집을 막 나와 서너걸음 걷다가 조카와 마주친다. 그는 조카를 보고는 찔끔하여 대번에 멍청해지고 만다.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상길이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궈져있다. 볼 옆으로는 달궈진 얼굴을 식히느라 땀줄기가 머리에서부터 줄줄이 흘러내린다. 열려진 입술은 삼복 더위에 쫓겨다니는 강아지 주둥이를 닮았다. 하얀 남방샤쓰는 바래서 누런물을 들인 것마냥 꾀죄죄가 흐른다. 군인 작업복 바지를 새까맣게 물을 들여 입은 바지는 색이 많이 날라갔다. 무릎께는 뿌옇게 닳아져 있고 흰고무신은 황토흙이 발라져서 사람까지 추잡하게 만들었다.
그는 삼촌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집에 무슨 일이 있냐?”
“예.”
상길이는 겨우 짧게 대답한다. 그리고는 어거지로 침을 삼키고는 더듬거리며 누나가 여러날 아무 것도 못먹고 누워있다고 답답스럽게 말을 잇는다.
윤수는 하늘을 보고는 침통한 얼굴로 물들어진다.
“나에겐 돈이 없으니 빌리는 수밖에...
내가 가봐야 하는데...”
윤수는 망설임에 빠졌다가 기어 나오며 중얼거린다. 그리고 조카에게 집으로 들어가자고 말한다. 그는 대문 앞에 서서 아내를 큰 소리로 부른다. 큰 딸 이름도 부른다. 대문을 흔든다. 방울 소리가 대문 꼭대기에서 법석을 떤다.
“예. 나가요.”
집안에서 고무신을 끌고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삐걱하고 빗장 벗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윤수 아내는 대문을 잡고 밖을 내다본다. 그녀는 어리둥절 한다.
상길이는 숙모에게 꾸벅하고 인사를 한다. 그녀는 조카가 갑자기 나타나 마주치자 몸을 움추린다. 한기를 느끼게 하고 불길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안스러움을 담고서 남편을 바라본다.
윤수는 아내에게 다짜고짜 돈을 빌려 오란다.
그의 아내는 어리둥절하다가 어이없는 얼굴로 변한다.
윤수는 또 재촉한다.
“이른 아침에 어데서 돈을 빌려요.”
“열이가 사경을 헤매이나봐. 링겔주사약 사오라더래.”
윤수아내는
‘진작 그렇게 말하였으면 궁금하지나 않지. 밑도 끝도 없이 돈타령이니 그럴 수밖에.’
하는 소리가 담긴 얼굴을 하고 골목 밖으로 어슬렁거려 나간다.
윤수는 아내의 모습을 못마땅한 얼굴로 골목을 다 나갈 때까지 지켜본다.
윤수 아내의 마음은 편치가 못하다.
“뒷치닥거리 언제나 끊이질 않으니 사람이 살 수가 있어야지. 조상의 묘를 잘못써서 그런가? 아니면 조상들의 죄가 많아서 그런가? 도무지 알수가 없으니 원.”
그녀는 투덜거리며 단골 쌀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윤수는 그의 아내가 골목을 나가자 상길이에게 돈 갖다 주면 빨리 약 사가지고 가라고 이른다. 그리곤 직장을 가느라고 서둘러 골목을 나간다.
싱길이는 윤수의 뒤에다 대고 인삿말을 한다.
윤수는 대답을 남기고는 뒤돌아볼 겨를 없이 골목을 빠져나간다.
상길이는 대문을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가 마루에 걸터앉는다.
조금 앉아 있던 그는 우물로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세수를 한다.
발에다 물을 부어 발로 비벼씻고 또 발로 고무신을 비비적거려 닦는다.

쌀집으로 들어간 윤수의 아내는 친구의 딸 이름을 다정스레 부른다.
그리곤 이어 돈을 빌려 달랜다. 쌀집 여자는 외상값 갚듯 선선히 앞치마 주머니에서 오십원짜리 백원짜리 십원짜리를 싸잡아 꺼낸다. 그리고 탁자 위에 놓고는 꾸겨진 돈을 펴 가지고 포개 놓는다.
“얼마나 필요한데?”
“천원만 있으면 되겠어.”
“어데 출장가시나? 마님.”
“약올리지 말어. 써보지도 못할 돈이야.”
“그래 팔백원밖에 안돼. 어쩌지?”
“됐어.”
윤수 아내는 돈을 받아 쥔다.
“이 돈은 큰집 조카딸이 죽게 생겨 꾸는 거야. 우리가 무슨 돈이 있다구 그러는지.”
“엄살 마라. 없어 봐라. 누가 얼씬도 않는단다. 있을 때 인심이나 쓰시지. 마님.”
윤수 아내는 말을 받아내느라 떠밀려 가게를 나간다.
“엔간히 쥐어짜시라구.”
쌀집 여자는 동갑네를 놀린다.
윤수 아내는 고개를 돌리고 주먹을 쥐고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가볍게 웃고는 돌아간다. 그녀는 친구도 자기 속을 몰라주고 근천만 떠는 여자로 인정하는게 야속스러 중얼대며 걷는다.

상길이는 대문을 들어서는 숙모를 보고는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내려가 그녀를 맞는다.
“이것밖에 못 빌렸구나. 팔백원이다.”
그는 숙모가 건네주는 돈을 받고 꾸벅 절을 한다.
“안녕히 계세요.”
그는 고맙다. 수고하셨다는 말을 잊어버리고 그냥 안녕히만 계시란다.
“내가 바빠서 못 가보는구나.”
그는 숙모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뒷걸음질친다.
대문을 열고 뛰어나간다. 그는 길옆 약국에서 링겔 약을 사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간다.
그는 버스에 타고 나서는 꾸벅거려 잠속을 들락거린다. 졸지 않으려 눈도 비볐다 창밖도 내다봤다 잠을 쫓느라 안절부절이다. 그는 눈꺼풀에 침도 바른다. 그는 더 이상 앉아 있질 못하고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고 비실거려 차장에게로 걸어간다.
“연산에서 꼭 내려주세요. 부탁합니다.”
“알았어요.”
차장 아가씨는 그를 아래위로 내리 훑어보곤 어서 가서 앉기나 하라는 투다. 그는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좀 일찍 약을 써야 하는데 너무 늦었어. 큰 것도 아니고 이런 것은 일찍 사다 맞았으면 좋았을걸. 우리집은 왜 이모양인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젠 누이가...
누이가 죽으면...
또 누가...
어서어서 지나가라.
폐병 걸려 죽었다구. 젊은 여자가 죽었다구 싫어들 하겠지. 그렇담 지게로 져다가 묻지. 그리되면 꼴 사납고 불쌍한 여자는 저렇다고 남편도 몰라라 부모도 몰라라 세상에서 제일 가까워 촌수가 없다는 남편도 그모양이니. 오죽 못난 놈이면 도망을 가겠어. 꿩만 보더라도 제 계집을 돌보고 지키는데. 이건 미물만도 못한 놈이지. 그런게 장가를 들다니. 그런 씨 받아서 무엇에 쓰겠냐? 그러니까 계집아이만 둘이지!
누이는 소망이 있으니 다행이라 여겨야지. 사람 보기에 딱해서 그렇겠지만. 그곳은 눈물도 걱정도 아픔도 없는 곳이니 시집 안가는 곳이라 그런 서방 만날 일 없고. 그러니 남편이 버리고 아내가 버리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일이 없으니 살맛 나겠지.
저만 아는 세상, 저만 편하려고 뱃속에 든 새끼도 긁어내 죽이면서 낯가죽 좋게 산아제한 한다니. 내 기가 막혀서! 긁어낼 일 뭣하러 하냐?
그러구서 난리날까봐 끙끙대는 것들. 그러구서 자식 잘되길 바라냐?
평화가 콧등 깨겠다.’
그는 기분 나쁜 일을 당하기나 한 얼굴로 온갖 생각을 떠올린다.
버스에서 내린다.
그는 황룡고개를 향해 부지런히 올라간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면서 이렇게 차도 다니지 않는 벽촌에서 산담.
병원도 없는 산골이 뭐가 그리 좋은지? 옛날 사람은 병도 안났나?’
상길이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복작거리는 속을 식히느라 남방샤쓰를 짜증스레 벗는다. 이내, 그것으로 신경질을 부려 얼굴을 문지른다. 그리고 군소리를 한다.
“에이참, 왜 이런 곳에 살아 나를 애를 먹여?”
하고는 어쩔수 없이 떠밀려 황룡재를 오른다.
“나는 나중에 이곳을 떠나야지. 내 대는 내가 개척해 사는 거지.”
하늘은 그의 마음을 보이듯 잔뜩 찌푸렸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남방샤쓰 앞자락을 들어 쓱 문지른다. 고개에 올라선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허둥거려 내려간다.
천석다리에 이른 그는 뒤를 흘끔거리며 내려간다. 다리가 있는 곳은 꺽쇠처럼 꼬부라져 산골짜기가 들여다보인다. 그곳엔 논이 층층대를 이루어 벼가 굽실거린다. 이름에 걸맞지 않는 천석다랭이 맨뒤엔 윤공의 무덤이 천석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버지도 조금 더 사시지. 순서대로 죽으면 좋으련만. 조상죄를 물려받아 그런 거지...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식에게 제 죄를 물려주며 잘되라니...
고아가 되고
과부가 되고
날 때부터 부모가 누군지 얼굴도 모르고
고깃덩어리가 더듬이도 없이 더듬거리게 만들고도 제죄 때문인 줄 모르고
미친 자식을 어서 죽기나 바라고
죽을병에 걸린 자식이 뉘죄인 줄도 모르고
못된 짓을 하면서도 내 자식은 잘돼야지 하니 염치도 모르고.
나부터도...
나 잘되는 길 나 복받는 길 알려준다는 사람 욕이나 했으니까.
사람은 죽는걸 싫어하여 도망가면서도 영생하는 길은 싫어하고 곧장 죽는 길은 잘도 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는 성경책 신명기 28장을 새기며 헤매이다 지쳐버린다.
터벅걸음으로 저희집 삽짝으로 들어간다.
은부인은 부엌에서 때늦은 점심밥을 짓느라 보리쌀을 삶는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보릿짚을 아궁이에 부지깽이로 밀어넣는다. 아궁이에서는 호도독 호도독 소리가 수다를 떤다. 그 소리는 그녀의 귀를 가린다. 아들이 들어오는 인기척을 깨닫지 못한다.
상길이는 왼쪽에 링겔병을 끼고 부엌문 앞에 섰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살핀다. 그리고 안심을 한다. 얼굴을 팔등으로 슬쩍 훔친다.
“다녀 왔어요.”
은부인은 고개를 돌리면서 급하지 않게 일어난다.
“빨리 다녀왔구나! 밤에나 올 줄 알았다. 안녕들 하시데?”
“예, 이것 받아요.”
그는 링겔병을 어머니에게 건네준다.
아들로부터 링겔병을 건너받는 그녀의 눈은 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다.
“세수하거라.”
“의사에게 갔다 올게요.”
그는 말을 하며 삽짝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 동네에 의사가 오기는 재작년 봄에 왔다. 몇가지 안되는 구급약을 팔면서 주사도 놓아주고 침도 놓고 간단한 수술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환자가 생기면 밤이나 낮이나 의사를 불러댄다. 그가 온 후부터 동네사람들은 한시름 놓았었다.

은부인은 링겔병을 가지고 웃방으로 들어간다. 웃목에 약병을 놓고는 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열이는 눈을 꼭 감은 채 똑바로 누워있다.
누가 건드리지 못하게 사정없이 방바닥에 사납게 못을 박아 놓은것 같다.
“내가 너를 죽게 하는구나. 네 뒤를 조금만 밀어줬어도...
생으로 너를 죽게 만들었구나. 이 에미 죄를 용서해라. 네 꼴이 이게 뭐냐?
한참 젊은 것을 먹이지를 못하고 약도 써보질 못하고 깍지동이 같던 네가 저릅(대마 속줄기 말린것)같이 말랐으니. 어찌 네가 살기를 바라겠냐? 잘먹이기만 했어도..... 이지경은 아닐 걸.”
은부인은 중얼거리며 딸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손도 만지작거린다.
땅거미가 깔린 것 같은 딸의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볼에 비벼 댄다.
“살아서 고생 고생하느니 너를 위해선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너는 믿는데가 있으니까 좋은 세상으로 가겠지. 아무렴 그래야지.
네 새끼들이 불쌍하게 되겠구나. 몹쓸 것들. 사람을 이지경을 만들다니. 인두겁을 쓰고서 그럴 수가? 망할 것들! 그런놈이...
그놈이 아니면 이렇지는 않을 건데. 하필이면 그놈에게 걸렸냐?
계집도 간수 못하는 놈.
야, 이 못난놈아! 병든 여편네가 무서워 도망을 가. 죽는 게 그렇게 무섭냐? 그런 용기도 없는 놈이 장가는 왜가냐? 네 놈 먹여 살리느라 생긴 병인데. 욕하는 줄 알기나 아냐?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 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꼴도 안보이는 못난 것들.
눈도 못뜨는 너에게 주책떠는 생각이지. 너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나 하거라.”
의사가 방문을 열고 섰다. 머뭇거리던 그는 입을 열어 말한다.
“모친님 안녕하세요?”
의사의 인삿말은 은부인의 원망에 잠긴 마음을 두드려 끌어낸다.
“어서 오세요.”
은부인은 딸의 손을 살며시 놓고 일어나 의사를 반긴다.
의사는 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의사는 은부인의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열이의 손목을 잡고서 얼마동안 진찰을 한다. 눈꺼풀도 올렸다 내린다. 그는 밝지 않은 얼굴로 링겔병을 살펴본다. 가방에서 반창고와 고무줄을 꺼내고 스텐으로 된 조그만 네모진 것을 꺼내 놓는다. 그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링겔병을 벽의 못에다 걸어 놓는다. 네모진 스텐속에서 약솜을 꺼내더니 열이의 오른팔을 문지른다. 주사 바늘을 찔러놓고는 반창고로 두겹씩 아래위로 붙여놓는다.
열이는 주사를 놓아도 아무 반응이 없다. 아픈 것이 무엇인지 오래전에 잊어버린 사람같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의사는 위로의 말을 하고는 일어나 링겔병을 살피고는 방을 나간다.
은부인은 의사의 뒤를 따라 나간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따가 주사약이 조금 남으면 연락하세요. 내가 와서 바늘을 뽑아야 하니까, 그리구 이상한 점이 있으면 상길이가 좇아오라고. 방을 비우지 말어.”
“예.”
은부인과 상길이는 삽짝까지 따라나와 배웅한다. 배웅하는 그들의 얼굴은 해가 비치고 있는데도 땅거미가 점령을 하여 짓눌렀다.
승례는 옥길이를 업고 삽짝 밖에서 왔다갔다 한다. 인순이와 승애는 아랫방에서 책을 펴놓고 배를 쭉 깔고 다리를 까닥거리며 공부를 하고 있다.
해가 뒷동산으로 잠겨 버린다. 상길네 식구들은 조용히 점심 겸한 저녁밥을 먹는다. 상길이는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하다가는 수저를 놓는다. 은부인은 큰 양푼에다 푹 퍼진 보리밥을 담아 가지고 들어와 고추장을 넣고 물김치를 여러 수저 퍼넣고 서둘러 비빈다. 비벼서 한수저를 떠서 먹어본다. 그리고는 양푼을 상 위에 올려놓는다. 상길이 동생들은 수저를 들고 달려들어 퍼먹기 시작한다. 은부인은 상길에게 비빔밥을 먹어보라고 맛있다고 권한다.
그는 밥생각이 없다고 사양하고는 웃방으로 성경책을 들고 올라간다.
그는 누나를 흘낏 보고는 링겔병을 보고 주사바늘이 꽂힌 곳을 찬찬히 살핀다.
그리고 뒷문쪽으로 걸어가 벽에 걸린 등잔대를 내려가지고 방가운데 놓고 등잔대에서 성냥을 집어들고 불을 켠다. 등잔에다 불을 붙인다.
등잔꼭지는 냉큼 불이 붙지 않는다. 성냥불은 이내 꺼진다. 방안은 아까보다 더 어둡다. 그는 다시 성냥을 켠다. 왼손으로 등잔꼭지를 자빠트린다. 다시 성냥불로 꼭지를 달군다.
그의 볼따구니는 짜증스럽게 도독하게 부어 올랐다. 불이 조금 붙었다. 조심스레 등잔꼭지를 바로 세워놓는다. 파란하던 불은 조금씩 자라나 붉어진다. 방안도 조금씩 밝아지더니 그런대로 어둠을 몰아낸다.
그는 웃목 벽에 기대앉는다.
‘누나도 등잔처럼 소생했으면. 딴 사람들의 누나들은 시집가서 잘도 사는데. 우리 누나는 왜 이런가?
매형은 어떻게 생긴 사람인데 오지도 않아? 안오는 걸 보면 사람도 아니지. 궁금하지도 않은가? 양반인지 두냥인지? 실속은 짐승인 것이.
수컷이 암컷 보호하는걸 구경도 못한 짐승. 그런 짐승 새끼는 약으로 쓰면 면역 생길 것 같다.
그약 먹는 놈은 그 지랄 않겠네. 짐승이 제 짝 병생겼다고 도망가던?
짐승이 이혼하던? 그런 것들이 뻐기고 다니니 판이 사람 판이 아니지. 짐승보다도 못한 놈.
비둘기가 너보고 그러겠다.
너는 내 구경거리구나. 어쩌면 그럴 수 있냐? 너는 죽어서 천당도 가고 지옥도 간다면서 하는 짓이 그게 뭐냐?
나는 영혼이 없어 네가 하는 소리 이해도 못하고 땅속으로 내려간다만, 그건 그렇다 치고 넌 네 아내, 남편을 나의 반쪽이라고 말은 뻔질나게 하면서 또 남편은 나의 머리요, 아내는 나의 몸뚱이라고 하면서 툭하면 서방질이요, 툭하면 계집질이요, 병들어서 실직해서 도둑질을 못하니 성격이 안맞아 병신이 되었으니 못 살겠다 이혼하자는 꼬라지. 내 새끼가 본받아 사람 노릇할까 무섭구나. 우리는 부부간에 너처럼 싸우고 때리고 울고불고 또 이뻐했다. 둔갑도 떨줄 모른다.
너는 네 새끼를 눈도 깜짝 않고 뱃속에서 죽이고. 또 새끼 안나려고 네몸을 병신 만든다면서. 그러고도 뻔뻔스레 으시대는 꼬라지. 눈이 시게 보았다만, 짐승이 그러든? 그게 어디 할 짓이냐? 지옥에 갈 때는 가더라도 네 이름이 사람이라고 하니까 조금은 사람 구실을 해야지.
그래야 짐승들이 사람 같은 놈이라고 덜할게 아니냐?
그리구 이해 못할게 또 하나 있구나. 그게 뭐냐 하면. 너는 돌을 너처럼 만들어 놓고는 쇠도 나무도 그렇게 만들었더라만, 또 비석을 만들어 놓고 거기다가 무릎이 닳도록 절하는 이유가 뭐냐? 이목구비도 없고 손도 발도 없는 것에게 절을 하고는 눈물을 찔끔거리고 하소연 하고 실성하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네가 지껄이는 소리를 들으니까 복을 주세요. 잘되게 해줘요. 지은 죄를 용서하세요. 오는 세상에는 잘살게 해줘요. 속썩이는 일 없게 하세요. 나도 신이 되게 하세요. 나는 신입니다. 하더구나.
네 말마따나 오래 살고 평안하고 즐겁게 바랄게 없이 사는게 복이라면 그 복을 만든 분에게 빌겠다. 내 말이 틀리냐? 네가 정성들여 만들어 놓고 절하는 대가리에다 내가 가끔 똥도 싸고 앉아서 놀기도 한다만, 쥐는 보니까 네가 절하는 것을 긁어대고 부수더라.
그러니 죄가 쌓여 죽이고 죽고 그것도 모자라 눈이 시뻘게 전쟁하여 떼죽음을 시키지. 어떤 짐승이 저희 동족끼리 죽이고 죽이던? 그게 네 정신으로 그러냐? 그게 너희들의 죄가 쌓여서 너희가 미쳐서 그런거다. 그러면서도 으시대지.
못난 것! 미친짓 하는 건 네 속에 귀신이 들어간 게야. 그렇지 않음 뱃속에 든 제 새끼를 죽이고 남을 죽이겠냐?”
그는 꾸벅거리다 깜짝 놀란다.
“내가 정신없이 자다니.”
그는 허둥거려 링겔병을 보고 누나를 본다. 그리곤 안도의 숨을 내 쉰다. 그는 곁에 있던 성경책을 무릎 위에 놓는다. 그리고 눈을 손으로 비비적거린다. 성경을 몇줄 읽고는 멍한 눈으로 링겔병을 바라본다.
“별일, 어디까지가 내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꿈인가...”
상길이는 두런거리며 링겔병을 쳐다본다. 주사약은 돔방거린다. 힘들게 떨어진다.
“아주 힘이 말라 떨어뜨릴 힘이 이제는 다됐나. 저런 건가? 아까는 안 그랬는데...
이상하네. 지금껏 잘 들어갔는데. 원래 들어가다가 쉬기도 하나?”
그는 성경책을 덮는다. 슬그머니 성경책을 옆으로 밀어 놓는다. 링겔병을 다시 본다. 그는 누나의 표정을 살핀다. 바늘이 꽂혀있는 팔도 눈여겨본다. 움직여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일어나서 방문고리를 잡고 뒤를 돌아보며 문을 밀친다. 한쪽 발을 들어 문지방을 넘다가는 멈칫한다. 그의 눈은 잔뜩 의혹에 물든다.
주사약이 다시 돔방거리는 짓거리를 한다. 그는 돌아와 링겔병을 만져본다. 마치 송아지가 두룸박 샘을 기웃거리는 꼴이 되어 버렸다.
주사약은 절반이 조금 못되게 남아 있다.
그는 눈을 휘둥그린다. 링겔주사는 급하게 돔방거릴 여가가 없다.
쉬지도 않고 돌아간다. 그러다가는 딱 멈춘다. 귀신들린 사람이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 같다. 겁을 먹고 서성거리던 그는 문을 밀치고 밖으로 쫓기듯 뛰쳐나간다.
“어데 가냐?”
은부인은 웃방문 소리에 놀란 소리로 묻는다.
상길이는 의사에게 간다고 크게 말한다. 그리곤 삽짝 밖으로 뛰어나간다. 의사네 집은 동네 끝에 있다.
은부인은 아들대신 웃방으로 올라가 딸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안타까움에 가슴을 저린다.
‘너도 꽤나 인덕이 없구나. 그것까지 에미를 닮았냐? 그래 내가 뭐랬어. 엄마말 들었으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을 왜 그렇게 고집을 피워 그래. 여러사람 애를 먹이고, 딸년이 에미말 안들으면 누가 듣겠냐?
그런 어리석음은 본때 뵐게 아니라 집안을 망치는 거야. 그래, 이렇게 죽으면 네 딸년들은 어쩔테냐?
애시당초 시집 가지 말라, 가지 말라 하니까 나 하나 희생되면 될 것 아니우? 하고 뜨끔하게 한다더니 이게 희생이냐? 시집에서 죽지도 못하는 것이 남편 앞에서 죽는 게 복이라고 하더라만 네 남편은 어데있냐? 그래서 에미말을 업신여기면 죄 받는다는 거다.’
은부인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소리없이 구둥거린다.
그러자 알고있었다는 듯 숨소리도 희미한 열이는 “끄응” 하는 신음소리를 낸다.
은부인은 깜짝놀라는 눈으로 소리난 곳을 찾는다.
열이는 여전할 뿐 조금도 움직이질 못한다.
“엄마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였었구나. 에미가 오죽하면 그러겠냐?
부디 회복되길 나도 하나님께 빈단다.”

의사는 앞서 걷는다.
상길이는 조금 처져 의사를 따라 걷는다.
그는 의사에게 이상했던 일을 이야기 해준다.
의사는 고개만 가볍게 끄덕인다.
상길이는 저희집 삽짝 가까이 와서는 삽짝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큰소리로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고 알린다.
은부인은 마루로 나와 의사를 맞는다.
“밤 늦게 오시라구 해서 죄송합니다..”
“아녜요.”
의사는 은부인이 미안쩍어 하자 오른손을 내저으며 말을 중단시키고는 웃방으로 들어간다.
방으로 들어간 그는 열이를 보고 약병을 눈여겨본다. 그리고 진찰을 한다. 그리고 이내 주사침을 뽑는다. 병에는 주사약이 많이 남아 있다. 그는 상길이에게 링겔병을 갖다 버리라고 이른다. 서둘러 방을 나간다.
상길이는 삽짝까지 따라나와 인사를 한다.

은부인과 상길이는 행여나 하는 기다림으로 열이를 들여다본다.
주사를 맞았으니 이제는 눈이라도 한 번 떠보겠지 하는 굵지 않은 희망의 실을 잡아당겨본다.
아랫방에서 옥길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옥길이는 엄마를 부른다.
은부인은 할 수 없어 아랫방으로 내려간다.
시간에 떠밀려 살금거려 잡아다니며 막연하고 가느다란 소망인 열이의 눈뜨길 기다리던 상길이는 지쳐서 쓰러질듯 뒤뚱거린다. 뭉기적거려 가제걸음을 친다. 가제걸음을 치면서도 잡은 것은 놓치질 않는다.
웃목 벽에다 등을 기댄다. 그는 잡았던 줄을 오른쪽으로 고개를 떨군다. 다리 하나는 길게 뻗고 하나는 오그렸다. 손 하나는 방바닥을 짚었다.
방안은 점점 희미해진다. 어둠은 등잔의 불을 야금야금 먹어 치운다.
등잔불은 조금씩 보이지 않게 말라붙는다. 쌀알을 두동강이 낸 것보다 작게 졸어든다. 방안은 푸르름이 진하게 고였다. 아주 깊은 연못이 되었다. 사람까지 시퍼렇게 물들었다.
상길이는 잠에서 급하게 뛰쳐나온다. 그는 졸지 않은 사람마냥 벌떡 일어난다. 벽에 걸린 기름병을 내린다. 등잔불은 이내 꺼진다.
그는 더듬거려 성냥을 찾아 불을 켠다. 등잔 꼭지를 벗겨 놓는다.
한 손으로 기름을 조금 붓는다. 다시 성냥을 켜 등잔꼭지를 기름에 적셔 불을 붙인다. 그리고 기름을 등잔에 가득히 채우곤 기름병을 벽에 걸어 놓는다.
“내가 잠을 자다니, 정신이 없지...”
그는 중얼거리며 누나 곁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얼마동안 지켜본다. 그의 얼굴엔 실망이 담겼다.
일어나 뒷문으로 걸어가 방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크게 심호흡을 한다. 짙은 어둠이 성큼 다가선다. 그는 외면하여 어둠을 피한다. 별이 초롱거리는 하늘을 우러러본다. 시름에 빠져든다.
“천하 모든 일이 기한이 있고 목적이 있는 거라고 하셨는데...
겨우 저렇게 살다가 죽는 건가?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하여도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면 해를 보지 못하고 죽은 아이만도 못하다고 하셨지요.
이래가지고야 어찌 제가 견딜수 있겠어요.”
그는 고개를 떨구고 읊조리며 방문을 닫는다. 그는 다시 웃목에 가 벽에 기대앉는다. 그의 눈은 반짝한다. 신기스러움을 보고 있는 눈이 되었다. 조금씩 꿈틀한다. 열이의 왼 손바닥은 힘없이 펴졌다. 손목이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점점 확실해진다.
그는 다가가 누나의 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손목은 숨쉬듯 하는걸 계속한다. 그의 얼굴에 돋아난 반가움은 점점 시들어진다. 대신 의아스런 것이 자리를 잡는다. 망설이던 그는 누나의 손바닥을 들어서 살며시 잡는다. 그리고는 손바닥이 따라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어 본다.
손목은 계속 움직인다.
손바닥도 따라서 움직이느라 들썩들썩한다. 그는 누나의 손을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오른손으로 손바닥을 힘을 가해 눌러본다. 손바닥은 상길이의 몸뚱아리까지도 들먹거리게 한다. 그는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키려 한다. 그는 엉거주춤한 채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한다.
그는 눈도 껌벅거리지 못한다. 온몸에 냉수를 끼얹는 체험을 한다.
입도 얼어붙었다. 그는 두려움의 물 속에서 강제로 목욕을 당한다.
그 속에서 저리저리하게 두려운 삶을 배운다. 애를 태우던 그의 입이 실구멍이 생겼다.
“엄니!”
그의 외침은 여리디 여려 울대 밑으로 가라앉으려든다.
“그래, 간다.”
은부인은 때를 맞춰 대답을 한다. 그녀는 아들이 무서워 주눅 들려 있는걸 느끼고 대답하는 것 같다.

은부인은 서둘러 웃방으로 들어온다. 그녀가 방문을 열자 굳어 있던 상길이의 몸이 풀어진다. 풀림을 받은 그는 처음처럼 웃목에 가서 앉는다. 그는 진저리를 친다.
“무슨 일이 있었냐?”
“아뇨, 누이 손이 저렇게 움직여서...”
“네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안방에 가서 좀 자거라.”
“어머니도 내려가요.”
“나는 이제껏 옥길이와 잤다. 어서 내려가 자거라.”
상길이는 일어나 나가려다 석유병을 내려서 등잔에 붙고는 다시 벽에 건다. 그리곤 안방으로 내려간다.
“어린 것이 너무 착잡한 일을 보니까 가위가 눌리는 모양인데...”
그녀는 깊이 숨을 들여 마신다. 더 이상의 슬픔을 당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되는 길은 없을까? 또 어떤 자식이 죽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는 그녀의 가슴은 새 가슴이 되어 팔딱거린다.
날이 밝았다. 상길이는 마당에 보릿짚을 한마당 넌다. 그리고 삽짝 밖으로 나간다. 그의 친구 만천이네 집으로 향한다. 만천이네 집은 지서 앞에 있다.
“만찬아!”
만천이 어머니가 부엌에서 내다본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냐! 어서 들어와라.”
“예.”
만천이는 제 친구의 소리에 방문을 활짝 연다.
“너, 아침 일찍 웬일이냐?”
“오늘 저녁에 나와 같이 우리집에서 자자.”
“왜?”
“적적해서...”
“너두 그런 소리 하냐?”
“꼭 와라.”
“그래, 너희 누나는 어떠시냐?”
“그렇지뭐, 그럼 간다.”
그는 상길이의 겁먹은 얼굴이 이상스러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헤아려본다.

어둑어둑할 때 만천이는 상길네 집에 왔다. 그는 상길이와 같이 안방 아랫목에 앉았다. 그들은 성경책을 읽는다.
상길이 동생들은 뒷방문 쪽에 드러누워 잠을 잔다. 은부인도 옥길이를 안고 누웠다.
웃방에서는 신음소리가 기분 나쁘게 계속 내려오고 올라갈 줄을 모른다.
그것은 만천이에게 달라붙는다. 그것은 노루가 잡혀 죽을 때 나는 소리같아 처량한 것을 어서 끄집어 내놔봐 긁어 내놔봐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그를 오싹하게 만든다. 그리고 숨도 크게 못쉬게 윽박질러 겁을 준다. 그는 잔뜩 켕기면서도 상길이와 나란히 앞문 쪽으로 드러눕는다.
열이의 신음소리는 사람의 애간장을 산산히 부수어 놓는다. 그 소리는 점점 크게 들린다.
“으응... 끄응...”
기분 나쁜 그 소린 방구들을 계속 울린다. 안방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등줄기를 떨게 한다.
은부인은 딸의 곁에서 임종을 지키고 싶으나 그러지를 못하고 주저한다. 어린 자식들에게 병을 옮길지 모른다는 동네 사람들의 말에 발목이 잡혀 있다.
“어린 것들을 못보고 죽게 됐다고 그러는 거냐?
남편이 원망스러워 그러느냐?
한 세상을 못살아서 그러느냐?
잘먹고 잘입다 죽어도 죽으면 그만이란다.
누굴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냐?
에미라고 해야 아무 쓸데가 없구나.
너는 믿는데가 있으니 그 분이 너를 살려야지.”
그녀는 딸을 위로하듯 타이르듯 잘가길, 고생 덜하고 가길 염원한다.
소리없이 지껄이던 은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막 가느라 그러는가 본데.”
그녀는 중얼거리며 방문을 밀친다.
그러나 만천이는 튕겨나듯 일어나 급하게 뜰방으로 나가 신을 신는다.
“조심해 가거라.”
“예.”
만천이는 뛰어 나간다.
은부인은 도망치듯 하는 그를 이윽히 바라본다.
“어린 것이 제 동무 위해서 왔다가는 잠 한숨 못자고 있었나 보군.
너까지 와서 고생할 거야 없지.”
그녀는 중얼거리며 딸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딸의 이마를 만져보고 손도 잡아본다. 그리고 발도 다리도 쥐어본다.
“에구 딱한 것. 손이 이렇게 싸늘해서...
주사 맞으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에미가 너를 살릴 줄 알았는데.
에미가 너를 붙들지를 못하는구나. 너를 낳을 때는 그래두...
이 무슨 일이냐? 에미가 죄가 많아서 너를 죽이는구나. 이젠 너를 언제나 보겠냐? 열이야! 이녀석아! 네가 내 앞에 가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불쌍한 우리 열이를 데려가시다니...
열이가 믿는 하나님! 우리 열이를 한 번만 살려주세요...”
은부인은 딸의 손을 흔들며 울부짖는다.
열이의 신음소리는 짚불 사그라들듯 점점 작아진다.
은부인은 얼마를 울다가 딸의 손을 놓고는 방을 나간다. 문고리를 잡고서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고 나간다. 안방에 내려온 그녀는 문설주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는다. 그녀는 천정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동네의 닭들이 홰를 치며 새벽을 알린다.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자들이 일렬로 서서 동구 밖으로 나간다.
모두가 날렵하게 생겼다. 걸음걸이는 구름을 밟는 것 같다. 하나같이 환하고 예쁘다. 처녀 하나가 걸음을 멈춘다. 모두 따라서 멈춘다.
그 처녀는 몸을 돌려 은부인을 바라본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천진스럽게 웃음을 웃는다. 그녀는 고개를 돌린다. 처녀들은 동구를 벗어나 가던 길을 가버린다.
‘별일도 다있네. 어데서 환하고 깨끗하고...
무엇으로 빨았는데 옷에서 흰빛이 나게 빨았을까? 저렇게 고울수가 있담. 속까지도 뽀얗게 보이는게 사람이 저럴 수 있나? 어데를 가는데 저렇게 기뻐들 할까? 인사한 아이는 천상 열이와 비슷한 것 같구...’
“엄마! 엄마...”
옥길이는 자다가 일어나 엄마를 찾는다.
옥길이는 저의 엄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부른다.
“응...”
은부인은 아들의 부르는 소리에 꿈속에서 끌려나오고 만다. 그녀는 옥길이를 품에 안고 다독거린다. 그러면서도 서운하고 아쉽고 허전한 마음을 지우지를 못한다.
어린 자식들의 자는 모습을 둘러보는 그녀의 마음은 억울하고 폭폭하기만 하다. 등어리에 옴짝달싹도 못하게 커다란 돌덩이를 짊어지워 놓았다고 서러워하는 그녀다.
“그래, 잘가거라. 오늘은 가려구 인사를 하는구나. 말이라도 알아들을만 하니 데려가는구나. 네 오라비가 어려서 죽더니 네 동생이 또 여물지도 못하고 정만 들이더니 삼촌도 할머니도...
이제는 우리집도 어려서 죽는 일이, 원통하게 죽는 일이 걷히나 하였던 게 박살이 나는구나. 나의 고통 위에 슬픔이 덮이는구나. 이것들이 커주는 것으로 대견하고 고마웁지. 그냥 사는게 아니더구나.”
은부인은 나만 열심히 하면 성실하면 복을 받는다는, 우연히 되었다는 의식이 모진 바람에 깨끗이 지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어주지 않은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배우느라 졸지도 않고 아침을 맞는다.

하늘에는 비구름이 떼를 지어 모여든다. 상길이와 은부인은 보릿짚을 뒷마당에 가득히 넌다. 은부인은 도리깨를 들고 보릿짚을 떤다. 상길이도 어머니를 따라 도리깨질을 한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보리가 떨어지나요?”
“어서 대강 해치우자. 비가 올 것 같구나. 해가 붉게 뜨면 비가 오더라”
그들은 말을 하며 도리깨질을 한다.
승례는 아침 밥상을 차려서 안방에 갖다 놓는다. 둥근 두레상에는 넓은 양푼에 보리밥이 그들먹하게 담겨 있다. 사발에는 무김치가 소담스럽다. 수저가 한다발 포개졌다. 쓰러진 것처럼 놓여 있다. 승례 동생들은 수저를 들고 밥상으로 달려든다.
“엄마, 진지 잡수셔요.”
“그래 너희 먼저 먹어라.”
승례는 저희 엄마를 부른다.
“잡숫고 하셔요.”
옥길이는 뒷방문으로 수저를 든 채 뒤뚱거려 좇아간다.
“엄마 밥.”
“오냐!”
그녀는 어린 것들의 권에 못이겨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침밥을 몇수저 뜬다. 그리고 어린 것의 궁둥이를 토닥거려주며 많이 먹으란다.
마루로 나와 앉았던 은부인은 딸의 방으로 가서 방문을 열어본다.
열이는 신음소리도 잦아진 채 가래가 끓기 시작한다. 그녀는 한숨을 섞은 탄식을 토하며 문을 닫는다. 그리고 부엌으로 간다.
부엌에 나온 그녀는 얼마동안 망설이고 주저한다. 마음을 도사려 먹은 그녀는 숯을 조금 놓고 불을 피운다. 그녀는 화로를 들고 웃방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왼손에는 마른 고추가 한주먹 쥐어 있다. 웃목에 화로를 놓는다.
그리고 화로 위에 고추를 놓는다. 밖으로 떠밀리듯 나오는 그녀는 폭폭에 쌓인다.
“너 하나라면 고추를 태우겠냐? 네 동생들을 위해서다. 에미를 욕해라. 네 동생들을 위하는 일이니 참아다우.”
동네 사람들은 은부인에게 여러번 말했었다.
“폐병 걸려 죽는 사람은 인정 사정없이 숨을 거둘 무렵 고추를 태워야 벌레가 못 나온다구. 벌레가 나오면 남은 식구가 병에 걸려.”
그 말에 강제로 끌려서 웃방에 들어가고 끌려나옸다.

그녀는 아들과 같이 다시 보릿짚을 두드린다. 잊어버리고 도리깨질을 하던 그녀는 도리깨질을 멈추고 도리깨를 든 채 웃방으로 걸어간다.
그녀는 뒷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본다.
상길이도 도리깨질을 멈추고 그의 어머니를 근심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방안을 우두커니 서서 얼마동안 들여다보던 그녀는 맥없이 돌아선다.
“네 누이가 갔구나...”
상길이는 어머니의 말에 숙연해진다.
그녀는 방문을 닫고 마당으로 걸어나온다.
“대강 해서 치우자.”
그들은 부지런히 보릿짚을 부엌으로 들이고 마당을 쓸어 삼태기에 담아 마루에 올려놓는다.
“관을 짜 놓은 것도 없구 장례는 어떻게 치루나...
교회에 청년들도 없으니...”
상길이는 앞마루에 걸터앉아 걱정에 휩싸인다.
그는 얼마동안 골몰하는 것 같더니 탈출구를 찾은 듯 벌떡 일어난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그는 말을 하며 일어나 삽짝 밖으로 나간다.
“무슨 팔자가 그러냐? 겨우 고걸 살고 가느라 애를 먹었냐? 너보다 못한 사람도 굳세게 열심히 살더라. 너 같으면 누가 자식 두길 원하겠냐?
부모 앞에 죽는 건 원수라더라.”
은부인은 강제로 무자식 상팔자 공부를 당하느라 안방 문지방에 기대앉아 먼 산을 붉어진 눈으로 좇아다닌다. 불쌍하게 여기는 것과 괘씸하게 여기는 것 왜 그랬을까? 그렇게 했었으면 좋았을걸...
원망과 후회스러운 것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분탕질을 친다. 목구멍 넘어서 뜨거움이 치밀어 올라 그녀는 입을 닫지도 못하고 체신머리도 잃고 앉았다.

점심때가 되자 열이의 죽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비는 오고야 만다.
비를 맞으며 상길이는 집으로 돌아온다.
“비가 청승맞게 오는지 모르겠네.”
그는 날비를 맞았다고 중얼거리며 뜰방에 오른다.
“네 누이가 시집가던 날도 비가 와서 구질거렸는데 비가 안 오겠냐?”
“걱정마세요. 교회에서 교회장으로 해준대요. 장에 갔다 오겠어요.”
“돈을 어서 빌렸냐?”
“삼촌이 준 돈에서 약사고 남은게 있어요. 못이랑 종이랑 나무를 사올게요. 상여를 만들어야 된대요.”
“비 오는데 어떻게 가겠냐?”
“괜찮아요. 빨리 갔다 올게요.”
상길이는 우의를 입고 서둘러 집을 나간다. 윤공이 죽었을 때와 너무 대조적이다. 외로운 사람은 죽어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은부인은 안방문 하나를 열어 놓고 문설주에 기대앉아 시름에 젖어 든다.
“비는 쉬지도 않고 오는지. 살아본다고 아둥바둥 하더니 겨우 그걸 살려구 그렇게두 속을 태웠냐? 너는 착해서 좋은 곳에 갔겠지. 저 세상에서도 울면 쓰겠냐?
너는 나보고 예수 믿으라 했지. 그래야 구원 받는다구. 죽음으로 떠내려가는 인생, 괴로움에 허덕이는 인생을 건져줄 분은 오직 예수님이라고. 나도 네말따라 그분을 만나 봐야겠다. 너를 만나기 위해서라두...”
“모친님!”
은부인은 전도사가 뜰방에 서서 부르는데도 듣지를 못한다.
전도사는 목에 힘을 주어 다시 부른다.
“엄마! 와.”
“으응.”
그녀는 천천히 막내아들 손가락따라 고개를 돌린다. 순간 얼떨떨해졌다. 이내 깜짝 반겨 문지방을 짚으며 허둥대다 일어나 전도사를 반긴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좀 앉으세요.”
“예.”
그는 마루에 걸터앉는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당하는 건데 상길이 누님은 조금 일찍 당하셔서...
그렇지만 좋은 곳에 가셨으니까 복되게 살겠구나 여기세요.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착하게, 의롭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라고 보내신 거지요. 그리고 그렇게 사나 지켜보시지요. 때가 되면 데려가신답니다.
농사 짓는 것처럼 올벼는 일찍 거두고 늦벼는 늦게 거두듯 사람도 하나님이 그렇게 데려가신다고 여기세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참외도 먼저 익은 것은 먼저 따듯이... 따님은 좋은 곳에서 모친님을 위로하시지요. 모친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답니다.”
은부인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경청한다.
“친척들에게 연락은 다 하셨는지요?”
“연락할 곳도 없어요.”
“출상은 언제 하시려고 하시는지요?”
“금방 내일이라도 하려구 합니다만.”
“경비 들이지 말고 절약해서 치루세요. 그럼 그렇게 알고 가겠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전도사는 총총히 돌아간다.
상길이는 삽짝을 들어선다. 흰종이를 비닐종이에 싸서 들고 각목을 메고 들어온다. 그의 입술은 새파란하여 가지색을 띄었다. 입술의 파란물은 빠져나와 얼굴에도 다리에도 푸르뎅뎅하게 번졌다.
“빨리 다녀왔구나? 춥겠다.”
“괜찮아요.”
“어서 옷 갈아입어야지.”
은부인은 벽장에서 아들의 옷을 꺼내 준다.

저녁이 되었다. 웃목의 등잔은 방안을 밝히기 힘에 부쳐 비실댄다.
보는 사람까지 힘들게 한다. 등잔불을 심지를 돋우어 촛불만 하게 키웠다. 끄름은 천장까지 시커멓게 내 뻗었다. 바람 따라 시커먼 꼬리가 유들거린다.
어둠은 뺑돌거려 나가질 않는다. 마루에 매달린 유리등도 칠흙같은 어둠을 몰아내다 지쳐버렸다. 시골뜨기도 도시 사람 흉내를 내느라고 초상집에 사람이 보이질 않느냐고, 사람이란 원래 그런거냐고, 기가막혀 말을 잃었다고, 푸른 빛을 띠었다고 하는 것같다.
동네의 개들도 멍멍대지를 않는다. 귀뚜라미는 귀가 아리게 우짖는다.
한 놈이 울다가 지치면 딴 놈이 울고 이 구석에서 저 구석에서 열이의 죽음을 조상하는 소리 같다.

상길이 동생들은 아랫목에서 엄마를 의지하고 잠을 잔다.
“이런때 할머니가 집에 있었으면 좋을텐데...”
상길이는 우두커니 앉았다가 외로움이 달려들어 잡아끌자 끌려가다가는 뿌리치고 도망치다 다시 발목이 붙들리자 안간힘을 쓴다.
“할머니가 계시면 못보실 것을 또 보신단다. 고모네 집에 가서 계시길 잘하셨지.”
“이런 때는 집안에 식구가 많았슴 좋겠어. 그래야 덜 적적하지. 그래서 형제 많은걸 좋다구 하나봐.”
“우리 식구가 적으냐? 네 동생들이 저렇게 여럿인데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만 나중에는 울이 될 거다.”
“독신은 정말 외롭겠어.”

밤이 깊은 시간에 문 집사가 문상을 하고 돌아간다. 그들 모자는 산다는게 무엇인가 생각한다. 사람은 사람이 위로할 수 없다. 위로가 되지 못한다. 항상 외로운 것이라는 것을 씹느라, 헤아리느라, 기를 쓰다 아침을 맞는다.
상길네 집에서는 찬송가 소리가 행길까지 울려나온다. 망치 소리도 반주를 하는 소리마냥 뚝딱거린다.
한삼내에서 십여리 떨어진 덕곡교회 청년들이 상길네 집 헛간에서 관을 짜고 각목을 세워 관 덮개를 만든다. 이불 홑청으로 관 덮개를 감싸 못을 박는다. 그리고 흰종이로 사발꽃을 만들어 광목천에다 빈틈없이 매단다. 지붕에 올라다니는 사다리로 상여틀을 만든다.
“천국문에서 만나자. 그 아침이 될 때에 천국에서 만나자. 시간이 안늦도록...”

웃방에서는 은부인과 상길이가 열이의 옷을 갈아입힌다. 치마 저고리는 비단으로 만든 옷이다. 옷의 색깔은 깨끗해 보이질 않는다. 누렇게 물이 들었다. 저고리의 깃과 소매끝, 옷고름은 자주색이 좀 많이 바래졌다.
열이의 아랫도리는 흥건하게 젖어 있다. 웃목에 있는 화로에는 고추가 한주먹 그냥 들어있다.
은부인은 걸레로 오줌을 닦아 내고 젖은 속옷을 갈아 입힌다.
“체, 내가 이게 뭐야! 생각지도 않았던 누이를 내 손으로...”
“그러게 말이다...”
은부인은 아들의 말을 받으며 말끝을 잊지 못한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흐른다.
꾹꾹 잠겼던 것을 상길이가 터놓고 말았다.
“참, 엄니는 왜 울어요. 울고 있으면 어떡해요?”
“네가 그런 말을...”
열이의 얼굴로 눈물이 쏟아진다. 은부인은 두손으로 딸의 얼굴을 감싼다. 이마를 대고 비빈다. 그녀의 입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터지고 만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한동안 낭패한 얼굴로 지켜보던 상길이는 그의 어머니의 울음을 말린다.
“엄니, 그만 진정하세요. 옷을 갈아 입혀야 출상을 하지요.”
그들 모자에겐 울음도 설움도 토해낼 복을 타고 나지를 못한 것 같다.
은부인은 슬픔을 삼키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넘쳐 나오는 설움은 삐죽거린다.
상길이는 아무말도 안하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한다. 그가 시신을 들면 은부인은 옷을 밀어 넣어 갈아입힌다. 저고리까지 다 입혔다.
“이 옷은 못보던 옷이네요.”
“네 누이가 시집갈 때 해 가지고 간 옷이란다. 이 옷도 못 떨어뜨리고 죽었구나. 살아본다고 제품집에 다니다가 몹쓸병에 걸려...”
은부인은 목이 메어 띄엄띄엄 말을 잇는다. 그 설움 속에 딸의 머리를 빗으로 빗겨준다. 울면서 흰 홑이불로 딸의 시신을 덮는다.
상길이는 얼굴을 덮은 홑이불을 벗겨 열이의 얼굴을 불쑥 내놓는다.
“얼굴이 보여야지. 싫지 않아?”
“덮는건 시신에 바람 들지 말라고 덮는 거란다.”
그녀는 자식이 하는대로 내버려둔다.
출상하려는 점심 때까지 동네 사람들은 얼씬도 않는다. 관이 다 만들어질 때 동네에서 말깨나 한다는 수철이가 상길네 집에 찾아왔다.
그는 상길이에게 언제 출상하느냐고 묻는다. 그 말을 들은 상길이는 심드렁해진다. 왜 와서 귀찮게 구느냐는 말만 얼굴에 새기기만 한다.
조금 뜸을 들인 그는 아주 차게 말한다.
“오늘 합니다.”
“묘자리는 정했는가?”
그는 냉큼 대답을 안하고 상여 만드는 것만 내려다본다. 그의 얼굴엔 또 가소로움이 배어 나왔다. 너희가 도와주지 않아도 방안에서 송장 썩히지 않는다. 더러운 동네, 개같은 것들이 사는 동네란 소리 들을까봐 왔구나. 부끄러움과 창피를 분별 못하고 남의 슬픔을 외면하는 것들, 너의 더러움을 벗겨놓고야 말겠다는게 그의 얼굴에 돋아나와 있다.
“산의 일은 동네에서 하게 하지.”
“상관 마슈.”
그는 무우 자르듯 거절한다.
수철이는 당혹해한다. 그의 표정은 허리끈을 변소에 빠뜨리고 바지를 거머쥐고 나오는 사람을 생각게 한다.
교회 전도사는 잠자코 있다가는 상길이를 타이른다.
“동네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하면 도움을 받는게 보기에도 좋고 그래야 유대가 되는 거지.”
상길이는 아무 대답을 안한다.
수철이는 전도사를 붙들고 사정을 한다.
동네 사람은 무덤을 팔테니 시신 운구는 교회에서 해달라고 말한다.
그는 말을 하면서 얼굴을 붉힌다.
“그럼 어디로 갈까요?”
“예, 범덕골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지요.”
“예, 그렇게 알고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수철이는 겨우 일감을 얻어가지고 헛간을 나간다. 조금은 떳떳하지 못해 고개를 바짝 쳐들고 가지를 못한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은 배우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라고 하는 맘이 엿보이게 한다.
상여를 꾸며 놓았다. 관덮개 앞엔 십자가를 만들어 붙였다. 사람의 머리처럼 뾰족하게 올라앉았다. 그것은 흰종이로 하얗게 옷을 입혔다.
은부인과 상길이와 그의 동생들은 상여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청년들도 상여를 마주하고 서있다. 그들은 전도사의 집전으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린다.
“주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씻음 받아 천국에 갑니다. 남녀노소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장받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천당에 보내 준다고 언약하시고 그 증거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란 이름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외아들이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려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어서 사람 모양으로 오시고 사람들의 지은 죄를 짊어지고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죄의 값을 치루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이지요. 죄의 값은 생명으로만 대신 속할 수가 있고 딴 것으론 안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죄를 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곧 생명을 바쳐 죽으신 것입니다.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면 다시 살아나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 행복하게 하나님과 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삼일만에 부활하사 승천하셨습니다. 인간들의 역사가 증명한 것이랍니다.
여기 누워 있는 태열 자매도 마지막날 예수님이 부활시키십니다.
지금 그의 영혼은 예수님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그곳은 슬픔도 걱정도 아픔도 다시 죽는 일도 없는 곳이지요.
우리가 사는 동안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도 천당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인생은 나면서부터 죽음으로 쉬지도 않고 달려가고 있는데 그걸 사람들은 잊어버리려고 애쓰지요. 잊어버린다고 죽음이 안옵니까?
몰라도 오고, 알아도 오고, 높은 자리에 있어도 찾아오고, 배불러서 둥기적거리는 사람에게도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하지요.
그게 시간 정하고 옵니까? 그러니 준비를 하여 기쁨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자 이겁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요 사랑하는 자입니다. 살았을 때 회개하고 예수 믿는 자가 지혜자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란 말입니다.
사람들은 툭하면 하는 소리가 “나 하나 죽으면 돼, 그럼 끝이야.” 하는데 천만의 말씀, 난리 때 6.25난리 때 보니까 똥독에 제발로 기어들어가 코만 내놓고 목숨을 건지고 지금까지 산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려고 물도 씻어 먹는게 현실 아닙니까?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버둥거리는 이들이 말은 떵떵거리게 하면서 영원히 사는건 싫대요. 천당가는건 싫다니 딱하지요. 우리는 어리석게 그러지 맙시다.
우리는 흙이라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생명이 없어 먹으면 죽는 흙에서 나는걸 먹으니 흙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것 곧 생명을,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을 먹으면 영혼은 하늘 나라로 간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길 에수님 이름으로 빕니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없겠네
내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전도사의 설교가 끝나자 찬송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진다.
청년들은 서로 들어주고 메워줘서 상여를 둘러메었다. 상여는 비가 오는 속을 헤집고 삽짝 밖으로 나간다.
은부인은 큰 행길까지 따라나와 딸의 가는 길을 지켜본다.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 믿는 맘 가지고 가겠네
믿는자 위하여 있는 곳 우리주 예비해 두셨네...
며칠후...
이세상 작별한 친구들 하늘에 올라가 만날 때
인간의 괴롬이 끝나고 이별의 눈물이 없겠네...”
상여를 멘 청년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천천히 발을 맞춰 걸어간다.
상여를 따라가는 청년들도 찬송을 같이 부른다.
동네 사람들은 추녀 밑에서, 집안에서 상여를 구경한다. 그들의 눈에는 요상하게 보인다. 상여란 으레 울긋불긋하고 상여의 앞과 뒤에는 용이 한쌍씩 용트림을 하고 관 위에는 용이 네마리씩 올라 혀를 널름거려야 되는데, 왜 그것이 없냐고 왜 깨끗하냐는 얼굴들이다.
사람의 조상은 뱀이 죽게 했으니 사람은, 죽은 사람은 당연히 뱀이 끌고 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데 울며 탄식하는 건데 왜 너는 깨끗하게 차리고 찬송하면서 하늘나라 간다고 울지도 않느냐는 게 얼굴에서 뛰쳐나오느라 입들을 삐죽인다.

은부인은 상여가 보이지 않자 집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딸이 누워있던 방을 치운다.
“내가 바보짓을 하였지. 고추를 태우다니. 불이 내어서 연기만 쏘여두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나고...
얼마나 매웠겠냐?
네가 부모를 잘못만나 숨질 때도 고생을 하고 가는구나...”
그녀는 산다는게 서러워 메어지는 아픔을 이기느라 목을 놓는다.
애통을 한다. 그리고 고추가 담겨져 있는 화로를 방에서 내어다 잿간에 버린다.

상여를 멘 덕곡교회 청년들은 앞사람의 뒷꿈치를 자주 밟는다. 고무신이 벗겨져 맨발로 걷는다. 자갈길을 걷느라 절룩거리기도 한다.
벗겨지려는 신발을 붙드느라 발로 질질끈다. 상길이는 벗겨진 고무신을 주워들고 좇아가 신겨 준다.
상여는 범덕골로 들어가려고 도랑을 건넌다. 여덟 사람 모두가 물에 빠져 건넌다. 좁은 밭두덕에서 망설인다. 좁은 길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은다.
한쪽 사람은 밭두렁으로 한쪽 사람은 밭으로 곡식을 밟으며 뒤뚱거린다. 넝쿨진 콩도 고추도 논의 벼도 천방지축으로 밟힌다. 그들의 입은 다물어지고 찬송은 그쳤다. 땅만 내려다보기 급급해졌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상여는 모로 넘어지려고 자주 버둥거린다.
그들의 다리는 할퀴고 가시에 찔렸다. 상여를 따라가던 청년들은 옆에서 뒤에서 들어주고 밀어준다. 상길이는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느라 붉으락 푸르락이다. 동네 사람들이 애를 먹이느라 일부러 산골 끝까지 가서 구덩이를 판다고 치부해버린다.
젊은이들은 간신히 상여를 메고 산골 끝까지 왔다. 무덤을 파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평평한 곳에 상여를 내려 놓는다. 젊은이들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물로 뒤집어썼다. 바지 가랑이는 황토흙으로 짓이겨 발라졌다. 고무신은 찢겨져 너덜거리는 걸 발에 붙이고 있는 청년도 있다. 얼굴들은 새파랗게 물이 들었다.
덜덜거리며 땅파는 것을 지켜본다. 땅파는 맞은편에는 산등성이부터 중턱 아래까지 좁다랗게 뻘건 흙이 나와있다. 누가 큰 괭이로 할켜 확 긁어 놓은 것 같다.
“무덤과 산사태 난 곳과 일직선이 돼야 하네.”
“명당이 어디 있나. 지금 세상에.”
“그래두 그게 아니라니까.”
“명당 꽤 좋아하시네. 지관해 먹지.”
“자식이 없는데.”
“딸은 자식 아닌감. 아들 덕 보긴 어렵다구. 자넨 딸 덕보게나.”
동네 사람들은 아는 소리를 하느라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비오는 날 젊은 여자가 묻히는 무덤은 입으로 무덤을 쌓고 만들어야 된다고 작심이라도 한 것 같다. 비를 너무 맞아서 양심을 덮었던 것이 조금은 씻겼다고 희어졌다고 뽐내는 양이다. 떠드는 속에 열이는 땅에 묻혔다.

열이의 무덤 밑에는 흰종이 꽃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흰종이도 여기저기 널려졌다. 발길에 짓밟힌 꽃도 여러송이다. 관뚜껑은 웅덩이에 아무렇게 던져져 있다. 관을 덮었던 포장도 부서져 찌그러들고,달려있는 꽃은 홍수가 할퀴고 간 들판의 벼포기 같다. 왁자지껄 하던 골짜기는 조용해졌다.
은부인은 저녁상을 차려가지고 남편의 제청에 갖다 놓는다. 혼백 뚜껑을 조금 열어놓는다.
“당신은 열이보다 나중에 죽을까 보아 안달을 하더니 이제 보셨수? 못보셨수? 이게 당신의 죄, 내 죄때문이라우. 먼저 죽으면 다 해결이 되는 거유? 나한테 맡기고 갔으니 시원하겠구랴. 당신이 있으면 그렇겠수? 열이를 장사지내 준 사람들에게 맨 입으로 가게 했다우. 열이를 메고간 사람들은 비를 노백이 하고 점심도 굶고 그냥 가게 했다우. 당신이 없으니 별 수가 없었지요. 열이는 제청을 안하는 거래요. 위해 줄 사람도 없으니 잘됐지만...”
그녀는 슬픔이 너무 나와 말라붙어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열이가 땅에 묻힌지 사흘이 되었다. 하늘은 맑게 개어 푸르고 높기만하다. 은부인은 딸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의 손에는 호미가 들려 있다.
성냥도 들었다. 그녀는 막다른 골짜기까지 찾아왔다. 두리번거린다.
이내 새로생긴 무덤을 찾아낸다. 딸의 무덤을 둘러본다.
“여기에 누워 있냐? 사람 노릇도 못하고 마는 것. 에미가 너를 찾아야 하느냐? 네가 오느라 콩도 상하고 고추도 상했다고 욕들을 하더라.
그래 내가 물어준다구 하였구나.
여기 있는 꽃과 종이를 보구 기절초풍을 했단다. 밭에 왔던 아낙들이 무서워 도망쳤다는구나. 꽃이 활짝 피어 있어 어마 뜨거라 했다는구나. 벌건 대낮에 무서운게 없던 모양이더라.
넌 혼자 무서워서 어떻게 있냐? 산사람도 무서워 떠는데 너는 더 무서울 게 아니냐?”
그녀는 슬픔 속에 누워서 종이도 모으고 관덮개를 부스러뜨려 불을 놓는다. 은부인은 아들이 일러준 말을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딸의 무덤 왼쪽으로 이십여 걸음에 조그만 무덤을 찾는다.
‘바보 같은 것들이 꿍꿍이 속이 있었구먼. 총각 묻은 옆에 젊은 여자를 묻어 준다. 그렇담 왜 울고불고 한담. 범덕골 입구에 묻어 주면 찾아보기나 쉽지...’
그녀는 어이없는 얼굴을 짓고는 딸의 무덤 옆에 털썩이 앉는다.
건너편 산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글썽이는 눈엔 서마지기 논바닥이 자리를 잡고 앙탈을 부린다. 먹지도 말고 먹여 달래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란다. 그리고 두다리를 쭉 뻗는다. 그리고 드러눕는다.
“지난 봄에 백성이 임금을 쫓아내고 죽이고 죽고 피를 흘리구.
작년에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빼앗았는데 풍년이 들겠냐? 네 말마따나 내려갈 만큼 내려가면 멈추겠지. 다 내려가면 내려가는 소리가 나겠냐?
여자는 남편을 위해 죽고 자식을 위해 죽는게 보람이라구 그러더라만. 하기사 처녀로 죽는 여자에 비해야지. 나중에 또 오마.”
그녀는 딸과 농사를 걱정하던 말을 떠올려 복작거리는 눈을 씻는다.
그리고 일어나 범덕골을 나간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시들어있는 게 물기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몸을 아랫목 벽에 쿵 소리가 나게 부딪쳐 쓰러진다. 허공을 그냥 초점 없이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빨갛게 물이 들어 있다.
“나도... 아이들 따라 예배당에 가볼까!
죄없는 사람은 없대요. 조상이 죄인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죽으면 그만인줄 알았는데 사람은 죽지 않는대요. 육신은 죽어두 참사람인 영혼은 죽을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대요.
사람이 사는 목적은 먹고 입다가 죽는 게 아니래요. 넘에게 뽐내는것두 아니구요.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 불쌍하게 여기라는 것이래요. 인생의 목적을 알려주는 책은 성경밖에 없어요. 영생한다는 말은 천당간다는 말이고, 멸망받는다는 것은 지옥간다는 말이예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지요. 하나님을 찾게 하고 육신의 고통을 멎게 하고 겸손하게 만드니까요. 그렇다고 자살하는 건 큰 죄악이지요. 불쌍한 사람이고. 사람의 늙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하고 참회케 하고 스스로의 무력함을 인정케 하고요.
그리고 사람은 죽은 것만 먹으니 죽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도 살아 있는 것을, 죽지 않는 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녀는 딸이 일러주던 말이 떠올라 멋도 맛도 모르고 그냥 깨물어본다.
다음날 교회의 새벽 종소리는 그녀를 다시 깨우고 흔든다.
열이가 죽은 지도 두달이 넘었다.
주일날이 되었다.
은부인은 머리를 감아 빗는다. 옥길이와 만길이의 옷을 갈아 입힌다.
옥길이를 등에 업고 만길이의 손을 잡고 삽짝을 나간다.
그녀는 푸르기만 한 하늘을 보고 나서 발등을 보며 걷는다. 길을 내려다본다.
“저는 넘에게 해꼬지만 안하고 살면 되는 줄 알았어요. 남편을 미워하고, 남을 미워하고 ,억울할 때 저주하고 욕하는건, 남편이 방종하는걸 무관심하게 보고, 사위 자식이 딸 고생 시킨다고 죽으라고 하고, 남편을 원망하고, 시부모를 불만스러워 원망한 건 죄가 아닌 줄 알았어요. 남들은 저의 겉만 보고 효부라구 했어요.
나 같은 것도 믿음이 뭔지 알게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죄가 많아서 자식들이 요절을 하고 소년상이 생기고 나와 내 자녀들을 고생케 했다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저의 잘못으로 제 자녀가 복을 받는 일이 막히지 않게 해주세요.”
상길이는 저의 어머니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승길이는 성경책을 들고 저의 누나들과 까불거리며 앞서서 뛰어 가다가는 깡총거려 저희 엄마 앞으로 뛰어온다.
“엄마, 엄마도 교회가는 거야?”
“그래!”
“엄마! 엄마가 교회 가니 좋다. 그리고 우리 식구 모두 복 받겠지.
그렇지 엄마?”
“그럼!”
승길이는 신이 나서 누나들 곁으로 다시 뛰어간다.
은부인은 외양간에서 금방 뛰어나온 송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아들을 보며 눈에다 엷게 세상을 잠시 잊고 웃음을 담는다.

땡땡! 땡땡!
예배당 종소리는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 주곤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