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12.아들 노릇 딸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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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gbeome2
Date
2024-06-2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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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내 교회 사택 마루에선 젊은이들이 이야기 꽃을 피운다.
예배를 마친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겪었던 일들을 누구에게 뒤 질세라 열심히 이야기한다.
화제는 만천이 외삼촌 이야기로 바뀐다.
“성적들에 사는 만천이 외삼촌은 자기 어머니가 아파서 사경을 헤매일 때 자기 몸의 살을 베어서 약을 했대유. 그약을 먹구 살아났대유.”
일동이는 궁금하고 이상하다고 전도사에게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한다.
“죽을 사람이 살아 날리야 없겠지만 그 효심은 가상하구만유.”
전도사 부인은 남편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오르르 나선다.
“참으로 그 사람은 어려운 일을 했군요.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낼일인데 장하네요. 부모를 위한 정성 하나님께서 돌아 보셨다고 볼 수 있겠지요.”
“효자상두 탔대요.”
웅남이는 전도사가 말을 끝내자 한마디 거든다.
“그이가 부모에게 정성을 드린다고 노력한 것은 높이 살 만하군요. 살아계실 때 잘 해야지. 돌아가신 다음에 뉘우치고 제물을 푸짐하게 차려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자기 얼굴 생색 내는 거지.”
“순호는 어른스런 말을 하는데.”
전도사는 의외라는듯 그녀를 놀리듯 말한다.
전도사의 말에 순호는 얼굴을 붉힌다.
“그러고보니 우리 교회의 청년들은 양친이 다 계시는 사람은 몇이 안되는 것 같네. 일동이 선생도 어머니가 안계시고, 만천씨는 아버지가 안 계시고. 동미양도, 순호양도 어머니가 안 계시고....
외로운 사람만 모인 것 같네요.”
전도사 부인은 더듬어 찾듯 말한다.
상길이는 마루끝 벽을 기대앉아 교우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헤아려 본다.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 나을까? 어머니가 안 계시면 일동이처럼 그렇겠지. 일동이 아버지가 툭하면 작대기로 일동이를 때리는 것을 보아두....
일동인 지게 지우고.
배다른 동생은 중학교 보내구. 부모가 모두 계셔야 좋은데...
아버지에게 잘 해드리는 길은 회개하고 예수 믿고 천당가시게 해드리는 것 밖에 없는데.
그 완고하신 마음을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전도사는 그의 아내가 필요 이상의 말을 하여 청년들이 우수에 젖어 들자 분위기를 바꾸려 설교 아닌 설교를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욕심대로 모든 것을 소유하지는 못하는 거랍니다.
사람이던 물건이던 내 곁에 모두 붙들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좋은 일이 지나면 나쁜 일이 찾아들기 마련이니까. 어떤 사람은 고생스럽다고 혹은 고민하다가 죽으면 해결된다고 자살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지요. 그런 사람은 몰라서 그래요. 죽음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걸 몰라요.
내가 당하는 어려움, 슬픔, 질병의 고통, 마음의 고민 등은 우리의 죄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죄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한걸음 나아가 보면 ‘내가 아직도 미완성의 사람이라 하나님이 그런 것들로 나를 다듬어 사람 만드는 중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고 봐요.
한숨, 절망, 아픔이 있어야 나를 돌아보고 인생살이를 알고 겸손을 알고 절대자를 찾게 된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절대로 낙심해서는 안되지요. 좋은 학벌, 좋은 집, 많은 돈, 높은 지위 없어도 부끄럽고 또 부러워 할 게 없어요.
열심히 살면 넘이 뭐라든 내 나름대로 보람을 찾는 생활이 되어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찾는 생활이 되어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누리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요. 사람이란 누구나 이땅에서 자기가 할 일을 타고 났지요. 어떤 사람은 대학교를 나와야 사람 노릇 할 것 같으니까 대학 공부시키고, 어떤 사람은 국민학교만 나와도 사람 구실 넉넉히 한다고 보아 더 공부 안시켰다고 편하게 생각하면 돼요.
주위 사람들 한 번 둘러 보세요. 대학 다니면서도 불평, 불만이 쌓여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불쌍하게 자살하는 사람들을 봐요. 얼마나 불쌍한가?
인생은 지식, 돈, 명예를 놓고 저울질하여 훌륭하다 할 수 없지요.
동양사람, 성인이란 이들의 말에도 큰 부자는 하나님이 내고 왕도 하나님이 낸다고 했습니다. 그들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생사화복을 하나님이 주장한다고 말해요. 그러니 우쭐거릴게 없지요.
사람이란 진실하게 살면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내려다 보고 살면 마음이 편하지요. 나보다 못한 사람만 보면 간단한 거지. 올려다 보니까 불만이라 앙앙대지.
하나님이 이땅에 우릴 보내심은 내 고장, 내 이웃을 위해 겸손히 봉사하라는 겁니다.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기 바쁜판에 남의 일 간섭할 시간이 있는가요? 거짓없이 열심히 살면 하나님이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와 내 가정을 꾸며 주시지요. 내일을 모르고 사는 사람을 위해 우린 진실하게 오늘을 살아야 됩니다.”
전도사의 말이 끝나자 만천이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낸다.
“전도사님, 저는 넘들이 부모에게 잘 한다는 소릴 들을 땐 나두 그렇게 해야지 했다가두 어머니가 엉뚱한 말을 할 때는 나두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구 그뒤엔 후회를 해유.”
“만천이는 아직 자제력이 부족해서 그런건데 참고 또 참는 가운데 고쳐지지. 자기의 부족을 알고 그것을 메꾸려드는 사람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또 내일이 참 되지. 그런데 상길인 왜 앞산만 바라보고 있지?”
전도사는 이야기를 하라고 권한다.
“쟤는 먼산 바라기인걸유.”
만천이는 장난스레 말한다.
“그냥 생각을 했어요. 그래두 전도사님 이야기는 모두 들었어요.”
“밑두 없이 생각이냐?”
“너는 좀 빠져라. 너 같은 놈두 기특할 때가 있구나 했다. 쥐불알 만 한게 어른들 말에 촐랑거리면 못써요. 어른 혼 빠진다.”
상길이의 말에 모두 웃는다.
“저놈두 효자 흉내를 낸다니 기특하지. 별꼴이야.”
“태 선생은 웃지두 않구 웃기는 말을 잘 하네요.”
“뭘요. 저 놈은 나보다 한술 더 뜨는데요”
“내가 보기엔 두분이 아주까리와 진드기 같아서 모르겠어요.”
“그래유. 안경을 잡숫고두 그렇담 두 개를 쓰세유. 사모님!”
모두 웃음으로 시름을 씻는다.

상길이 할머니 라부인은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가누질 못하고 오리걸음을 친다. 막내 손자를 안고 신작로 건너편에 있는 오금이네 가게 앞 들마루에 가 걸터앉는다. 앞산을 멍한 눈으로 쳐다본다.
“상길 아베가 병들다니. 우람한 상길 아베가 병든다는 건 생각두 않은 일인데. 기운이 소 같은 사람도 병이 생기나? 키두 크구 목소리두 쩌렁쩌렁하여 오래오래 살 줄 알았는데 죽을 병이 들다니...
나는 복이 씨알머리두 없는 년인가. 남의 자슥 꼴도 못 볼 팔잔가?
서방 복이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는 건감? 늙으막에 나는 어째 살아간담? 사람 팔자 모른다더니 ...”
라부인은 윤공이 죽을 병이 든 것이 너무 억울하고 한심스러워 가슴을 태운다. 그녀의 얼굴은 검은 연기가 소리없이 잘도 모여든다. 가슴 태운 연기는 그녀의 눈을 할퀴고 쥐어 짠다.
“상길이 아버지 병세는 좀 어떠세유?”
가겟집 아낙은 시름없이 앉아 있는 라부인을 보고 측은한 얼굴로 묻는다.
“그냥 그렇지 뭐.”
“좀 낫지 않는가유?”
“낫기는, 낫기가 그리 쉬운가? 나으면 내가 얼마나 좋겠어.”
“쯧쯧.”
“집에서 지켜 볼 수가 없어서 나왔다우.”
“아드님이 위독하시니 오죽하시겠어유?”
“내가 먼저 죽어야 하는데...”
“아주머닌, 별 소릴 다 하시네유. 사람이 맘대루 못하는게 그일 아니겠어유.”
가겟집 아낙은 말을 하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잠시후 그녀는 조그만 상에다 김치와 조그만 유리잔을 얹어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는 진열장 선반에서 작은 소주병을 내려 상에 담아 들마루로 나와 라부인 앞에 내려놓는다.
“아주머니, 울적 하신디 술 한잔 하세유.”
“웬 술을 가져와, 비싼 것을.”
“조금 남은 건디유.”
“팔아야지.”
“사양 마시구 잔이나 받으세유.”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라부인은 고마워하며 술잔을 받아 든다. 가겟집 아낙은 술잔 가득히 술을 따른다. 라부인은 달아 오른 가슴을 식히기라도 하듯 단숨에 홀짝 마신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김치를 집어서 입에 넣고 씹는다.
가겟집 아낙은 라부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술꾼 같다고, 그러길래 얼굴도 찡그리지 않고 먹는다고 짐작을 한다.
“오금이 엄마두 한잔 하라구.”
라부인은 말을 하며 잔을 권한다. 가겟집 아낙은 잔 받기를 사양한다.
가겟집 아낙은 잔 받기를 사양한다.
“먹을 줄 알면서 일부러 그러지 말어. 정말 못먹어? 같이 늙으면서”
그녀들은 서로 잔을 권하고 비운다.
“술을 먹으면 이렇게 기분이 좋다구.”
라부인은 김치를 집어 입에 넣고는 손가락을 입술에 닦으며 걱정을 잊게 됐다고 말한다.
가겟집 아낙은 진열장에서 멸치를 한움큼 꺼내다 상에 놓는다.
“이렇게 대접을 받아서 어쩌지?”
“원, 별 소릴 다 하시네유.”
라부인은 멸치를 하나 집어 손자에게 쥐어준다.
“아줌마가 깜빡 잊었었구나.”
그녀는 말을 하며 진열장에서 과자를 하나 꺼내 옥길이에게 쥐어준다.
“할머니, 한잔 더 하세유.”
“아냐, 됐다구. 두 잔이면 됐어.”
“조금만 더 잡수세유.”
“그럴까?”
라부인은 잔을 받아 홀짝 마신다. 멸치도 집어먹고 김치도 먹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던 속은 목구멍이 좁다고 열기가 치밀어대기 시작한다. 서글펐던 것들도 덩달아 뭉클거리며 하나씩 기어 나온다.
가슴을 태우던 것들이 덜미를 잡고 밀치닥거려 주정을 부린다.
“오금이 엄마두 알지. 내가 상길이 친 할미가 아니란 걸.”
“할머니두, 참!”
“나는 팔자가 그런 사람이라구.”
“누가 뭐라나유.”
“내가 소리할테니 들어 보라구.”
“그러세유.”
“이내가슴 타는데는 연기도 아니 나오고, 한심한 이내 팔자 누가누가 알아주나. 애고 답답 내신세야. 어느 누가 알아 주랴. 남들은 팔자 좋아 희희낙낙 하건마는 이내몸 무슨 죄로 신세 타령 하는 건가?”
“할머니, 무슨 노래를 그렇게 하세유? 눈물이 나올려구 해유.”
라부인은 손을 들어 휘젓고는 노랫가락 같은 것을 계속한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이내 말좀 들어보소.
박복한 계집이라 죄가 많은 여자라서 자식 복두 없답니다.
이리가도 한숨이요.
저리가도 눈물이니,
어찌어찌 살아갈까?
어저다가 이리됐나?
가죽 속에 있는 팔자 모질게도 타고 났네.
이 내팔자 기구한 것 누가 있어 고쳐주나...”
라부인은 반은 우는 소리로 노래 아닌 사설을 끝낸다.
“나는 상길 아베가 나를 데릴러 스무번두 더 왔었다우. 저의 아버지와 살아 달라구 하두하두 그래서 팔자 고쳐 왔더니만 이 무슨 꼴이야. 나 죽으면 굴건제복한다더니 사람 일을 누가알아. 이 무슨 변이냐구.
난 이제 어쩜 좋겠어...”
라부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소리내어 엉엉 운다.
“애고애고, 내 인생아!
누굴 믿고 살아가나?
이럴줄 알았으면 정이나 들지 말지!”
그녀는 넋두리를 하며 운다.
“할머니, 할머니, 이러시면 안돼유. 참으세유. 넘들이 봐유. 어쩜 좋지...”
옥길이도 입을 삐쭉이다가 할머니 따라 울어버린다.
가겟집 길 건너에는 면사무소가 있다. 면사무소에 오고가는 사람들은 라부인을 바라보며 지나간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잠깐 쳐다보고는 못본 체 하고 지나간다. 동네 꼬마들은 멀찌기 서서 어른도 다 우느냐고 이상도 하다는 눈으로 구경을 한다.
오금이네와 창윤네는 물을 길러 상길네 집에 있는 샘물로 다닌다.
그들은 아침 한밤중을 가리지 않고 샘물을 길어간다. 창윤이 엄마는 상길네 집에 물 길러와서 두레박을 샘에 넣고 부엌에서 김칫거리를 다듬고 있는 은부인을 부른다. 은부인이 냉큼 알아듣지 못하자 다시 크게 부르려다가 안방에 누워있는 윤공을 보고는 두레박의 물을 부지런히 퍼올려 양동이에 쏟는다. 그리고 두레박을 우물 아구에 걸쳐놓고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간다.
“상길이 할머니가 오금이네 집에서 아주 슬프게 우시던데유.”
“술 잡수셨나?”
“할머니는 술 잡수시면 우시나유?”
“숭례야!”
은부인은 딸을 부른다.
승례는 삽짝 밖에서 놀다가 심퉁한 얼굴로 다가온다.
“아궁이에 불좀 때거라. 점심해야지. 엄만, 할머니 모시러 갈란다”
“어데 갔는데?”
열여섯살 난 승례는 말이 시원치 못하다.
약간 총명이 흐려있어 바보스럽게 보인다. 승례는 두 살때 약을 잘 못 먹어 생으로 그렇게 만들었다.
은부인은 승례를 불쌍히 여기며 늘 걱정해왔다.
“소금집에 계시단다.”
“맨날, 함니는 술만 먹나봐.”
은부인은 딸에게 보리죽을 끓이라고 맡기고 부지런히 오금이네 집으로 잰 걸음으로 간다.
“어머님, 어서 일어나세요.”
은부인은 칭얼거리는 옥길이를 등에 업고 한손으로는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부추긴다.
“옥길이 할머니가 이러실 줄 알았으면 술을 안 드리는건디...”
오금이 엄마는 옥길이 할머니에게 술대접한 것을 몹시 미안해 한다.
“술을 잡수시면 이러신다우.”
오금이 엄마는 은부인의 말에 미안해 하던 얼굴이 조금은 엷어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옥길이는 엄마의 등에 업혀서도 입을 삐죽거린다.
라부인은 며느리가 손을 잡아 끌자 잡힌 손을 빼내어 흐른 눈물을 치맛자락으로 닦고 코도 닦는다. 그녀는 다시 며느리의 손에 잡혀 집으로 따라간다.
“환갑두 될려면 아직 먼 양반이 시어미 대접은 짭잘하게 받누먼.
며느리 하나는 잘 만났지.”
오금이 엄마는 상길이 할머니가 걸어가는 뒤에다 중얼거린다.
라부인은 아들이 누워있는 안방으로 걸어간다. 삽짝과 안방은 엇비슷하게 마주한다. 방문은 양쪽으로 활짝 열어 놓았다.
윤공은 이불에 기대서 눈을 감은 채 비스듬히 반은 앉고 반은 누웠다.
그는 멀룽거리는 배를 아무렇게도 못하고 불거진 배에 잔뜩 눌려있다. 숨을 쉬느라 헐떡거린다.
라부인은 마루에 털썩 앉는다.
“상길아베, 어서 일어나야지. 누워있으면 어떻게 하냐구?”
윤공은 어머니의 소리에 눈을 힘겹게 떴다가는 눈꺼풀을 잠시도 이기지를 못하고 만다. 그의 눈은 십리가 여기라고 우묵하게 파여졌다.
“그러면 안돼. 그럼 정말 안돼.”
라부인의 목소린 착 가라앉아졌다.
윤공의 어쩌지 못하는 멀룽거리는 커다란 배는 그녀의 마음에 달겨들어 사정없이 짓눌렀다.
그녀는 아들 곁으로 앉은뱅이 걸음으로 다가간다. 아들의 잔뜩 부은 손을 쓰다듬는다.
“어머니, 왜 우세요.”
윤공은 겨우 떠듬거리며 입술로 말을 잇는다. 그리고는 눈을 떠 그의 어머니를 올려다본다. 그의 눈동자는 열기가 하나도 없이 식어 있다.
“어떻게 해야 일어나지? 응?... ”
“어머님은 걱정마세요. 저는 아들 노릇 못하지만 윤수가 잘 모실테니...”
윤공은 남아있는 기운을 모두 쏟아 어깨를 들먹여 어머니를 위로한다.
“이래가지구두 내 걱정이지, 어서 낫어.”
그녀는 마루로 나온다.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사랑방으로 건너간다. 그녀의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내가 이럴줄 알았으면 이집에 오지 않았을건데.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남편죽구, 또 영감죽구, 아들까지...”
“어머니, 오래만 사세요. 상길이두 어머니를 잘 모실 거예요.”
“너무 한거지. 하나님두 참 무심하지. 에구!”
라부인은 문지방을 넘기가 힘겨운듯 문지방에 걸치듯 쓰러진다.
은부인은 시어머니를 안아 들인다.
벽장에서 베개를 꺼내 베어준다.
“어머님, 걱정은 잊으시구 푹 주무세요..”
“그래! 어서 나가봐.”
은부인은 앞뒤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밖으로 나온다.
“내가 왜 이럴까? 술두 많이 먹지 않았는데...
내 이 무슨 기구한 팔자람. 영감을 둘이나 잡아먹구 상길아베 따라온게 엊그제 같은데...”
그녀의 뇌리에는 가슴타는 연기가 모락거린다. 그녀를 점점 시름속으로 몰고 간다.

라부인은 남편을 잃고서 하나밖에 없는 형숙이를 데리고 언니네 집에서 쓸쓸하게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날 저녁 때였다. 그날은 몹시 무더운 날이었다.
웬 낯선 젊은이가 시골사람 티가 안나게 한 차림으로 찾아왔다.
그 사람은 형숙이 이모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다.
라부인은 때마침 찬거릴 뜯으러 텃밭으로 소쿠리를 들고 나간다.
그녀는 나가면서 젊은이가 누군가? 언니네 친척인가? 조금 궁금한 채 열무를 솎아 내어 소쿠리에 담는다. 부추도 뜯어서 담고 가지도 따서 담는다.
“나는 다 안다우. 그런 소리 말아요.”
형숙이 이모의 거친 말소리에 라부인은 고개를 돌린다. 울타리 사이로 집안 동정을 살핀다. 젊은이는 먼죽한 얼굴로 두손을 모아쥐고 공손히 서있다. 형숙이 이모는 모로 서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차게 말한다.
‘친척이 아닌가? 언니가 왜 저러나?“
라부인은 언니가 큰소리로 매몰차게 말하는 것은 무슨 곡절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예의는 차릴 줄 아는 청년 같은데.
실수가 있었다고 들입다 생각해 버린다.
젊은이는 형숙이 이모에게 공손히 인사를하고 삽짝 밖으로 나간다.
라부인은 소쿠리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형숙이 이모는 어이없는 얼굴로 동생에게 말한다.
“오래 살다보니 별꼴을 다 보는구나!”
“무슨 일인데, 언니?”
라부인은 궁금히 여기고 있으면서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소리가 당기는 맛이 없다.
“이런 일을 당할 때 기가 차다구 하는갑다.”
라부인은 언니의 말에 빤히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냉큼 말을 꺼내지 않자 부엌앞 뜰방으로 가서 소쿠리를 내려놓고 쪼그리고 앉아 찬거리를 다듬는다.
“나하구 너하구 자기네 집에 오라더구나. 왜 가냐니까, 한 번만 다녀가란다. 글쎄 그러면 안대. 그래 말시키지 말라니까 자꾸 말을 시키더라. 한삼내에서 사는 태가라구 가면 식사 대접 해줄 모양이더라. 이렇게 찾아뵙게 된 것두 인연이라구 하길래 쏴줬다.”
“어데 사는 사람인디?”
“너두 어지간하구나. 내둥 말하니께. 한삼내란다.”
“한삼내가 어덴디?”
“여기서 십리가 조금 넘는다.”
“언니가 아는 사람이유?”
“몰라, 이야기만 들었지. 한삼내에서 태씨네라구 하면 효자, 효부라구 소문이 나 있어. 그냥 짐작만 했다.”
“언니네 집을 왜 찾아왔지?”
“그거야 뻔하지. 네 소릴 듣구 온게지.”
“젊은이가 왜?”
“몇년전에 젊은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구. 그후 그 사람은 아버지의 후실을 얻어주려구 한다는 소문이 있었지. 여자를 둘인가 맞이했다가 실패했다나. 하나는 그냥 나가구, 하나는 내보냈다는 말이 돌았었지.”
“그 집은 부잣집인가? 여자를 자꾸 얻게...”
“그냥 먹구는 살 만한가 보더라.”
“영감은 젊은가?”
“젊긴 오십이 훨씬 넘었다구 봐야지. 집안은 아들, 며느리 착하구 다 좋은데 영감이 너무 늙었다구 하더라. 영감은 성미가 불 같아 극성인 모양이구. 영감이 정작 좋아야 하는디. 너야 새파란데 신랑이 늙은이면 되겠냐?”
“언니두...”

다음 날 저녁때 어제 왔던 젊은이가 또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신문지로 싼 조그만 덩어리가 들려있다. 그는 종이 뭉치를 두손으로 마루 끝에 갖다 놓는다.
“밤 사이 안녕 하셨는지요?”
윤공은 형숙이 이모가 부엌에서 나오는걸 보고는 인사를 한다.
“또 왔수. 날두 더운데. 시끄럽게 하지말구 어서 가요.”
그녀는 아주 냉갈스레 말한다.
“땀이나 식혀가지고 가야지 그냥 갈 수 있나요. 날도 바람 한점 없으니, 원!”
그는 조금은 밉지 않게 마루 한쪽에 걸터앉는다. 그의 태도는 얄밉게 유들거리기만 한다.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집안 이곳 저곳을 자연스레 둘러본다. 마당 끝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손바닥같은 잎새를 활짝 펴고서 새파란 땡감을 받치고 있다.
“아주머님, 금년에는 감 많이 따시겠습니다. 감이 아주 싱싱하군요.”
“넘의 감이 무슨 상관이유?”
형숙이 이모는 마루에 앉지 않고 뜰방에 그냥 서서 시큰둥하게 말을 받는다.
“감이 싱싱하면 들농사도 잘 된다는 것 아닌가요?”
“내가 알우?”
“풍년이 들어야 인심이 좋지 않습니까?”
그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잇는다.
“제가 아주머니네 집을 찾게 된 것이 우연이라구 전 생각하지 않아요.
친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 아니고 왕래를 하다보면 친해지구..”
“그만 두구랴.”
“왜 겁을 내세요. 누가 어쩝니까? 우리집에 잠깐 오셨다가 가시면 큰 일이 나나요? 괜스레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우듯 하지 마세요.”
“누가 겁나서 그러나 소용 없으니께 그라지.”
“사람은 겪어봐야 소용이 있는지, 없는지 아시지요. 괜히 무슨 손해나 보실까봐 겁내는 분 같으시네...”
“실없이 그라지 말구 가기나 해요.”
“우리집에 오시면 좋은 구경 시켜드릴께요.”
“난 싫으니께, 원하는 사람이나 실컷 하시구랴.”
“나는 아주머니 형제분이나 대접하구 싶어요. 딴 사람은 소용없답니다.”
그는 마루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얼굴로 마루끝을 가리킨다.
“저것 제가 사온 것입니다.”
“그건...”
“나중에 보세요.”
윤공은 마당으로 내려선다.
형숙이 이모는 신문지 뭉치를 집어 주려고 서두른다.
“안녕히 계세요.”
윤공은 말을 하며 삽짝 밖으로 뛰어 나간다.

다음 날이다. 윤공은 라부인은 라부인을 초대하러 덕리로 향한다.
“안녕하십니까?”
윤공은 삽짝 밖에서 굵은 소리로 인사를 하며 삽짝으로 들어간다.
그는 마루에 걸터앉은 라부인을 보고는 아주 반가운 얼굴로 다시 인사를 정중하게 한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는 말을 마치고는 주저함이 없이 뜰방으로 성큼 올라 라부인과 거리를 두고 마루에 걸터 앉는다. 라부인은 웃음을 엷게 보이다가 흘린 웃음을 서둘러 주워 담으려 든다. 윤공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고개를 돌려 라부인을 본다.
“아주머니, 냉수 한 그릇 주시겠습니까?”
라부인은 대답없이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항아리를 들고 삽짝 밖으로 나간다. 윤공은 때맞춰 왔다고 쾌재를 부르며 급하게 뾰족수를 찾는다. 꼭 성사되길 다짐하고 빌어도 본다. 얼마후 그녀는 물항아리를 이고 들어온다. 이윽고 사기 대접에 냉수를 떠다 윤공에게 건네준다. 윤공은 일어나서 물 대접을 두손으로 받는다.
“고맙습니다.”
그는 냉수를 벌컥벌컥 다 마신다.
“물맛이 아주 좋은데요. 잘 먹었습니다. 큰 아주머니께선 어데 가셨나요?”
라부인은 아무 대답이 없다.
“아무리 산골 사람이지만 인사는 받을 줄 알아야 되는데 이건 너무 하잖아?‘
윤공은 속으로 씁쓸한 맛을 헤아리다 서둘러 털어 내버린다.
조그만 계집아이가 뛰어 들어온다.
“엄마!”
계집아이는 소리쳐 엄마를 부르며 좋아한다.
“넌, 뭐가 그렇게 좋으냐?”
그녀는 딸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마냥 다짜고짜 나무란다.
계집아이는 금방 풀이 죽어 고개를 떨구고 삽짝 밖으로 되돌아 나간다.
윤공은 조금 얼얼한 기분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찾으려 든다.
“따님을 아주 예쁘게 두셨네요?
아주머니가 미인이시라 따님도 깜찍하게 생겼는데요.”
“쓸데없이, 실없긴...”
라부인은 강제로 질질 끌려나와 입을 연다.
“오지 말라는데 왜 와서 사람을 귀찮게 구는지 모르겠네. 언니는 어데가서 오지 않는담. 늙은 영감쟁이에게 시집 갈 것 같은감. 누굴 뭘루 알아. 점잖게 대하니까 사람을 아주 우습게 보누먼.”
그녀는 혼잣말 하듯 지껄이다가 점점 억양이 높아지며 어르고 뺨친다.
윤공은 ‘너는 지껄여라. 그게 무슨 상관이냐. 그 정도는 이미 준비했다’ 는 얼굴이다. 아주 얄밉게 넉살이가 좋다.
“아주머니, 한번만 저희집에 오세요. 누가 두 번 오시랍니까?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저는 아주머니가 오실 때까지 오겠어요. 안 오시곤 못 배기실 걸요. 오실 준비하세요. 안녕히 계십시요. 또 올께요.”
그는 농담하듯 할 말을 술술 해 버린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삽짝을 나간다.
라부인은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벌리고 삽짝을 나가는 윤공을 넋나간 사람처럼 바라보고 앉았다.
“영감이 아들은 잘 두었는데. 영감두 아들 같겠지. 늙었으면 얼마나 늙었을까? 한 번 보았으면...”
라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호기심에 끌리고 있슴을 느낀다. 그리고 씁쓸해 한다. 형숙이는 이모가 들어오자 조잘거린다.
“이모! 이모! 누가 왔다갔어.”
“누가?”
“저기 있잖아. 키도 크구 또 안경쓰구 자전거 타구 왔던 아저씨 말야, 이모두 알잖아?“
“너에게 뭐라던?”
“아니. 그런디 왜 자꾸와?”
“이모두 모른다.”
“이상하다. 이모가 몰라?”
형숙이는 믿어지지 않는 소리 말라는 것 마냥 저의 이모를 빤히 쳐다본다.
“형숙이 저 년은 제 에미가 시집가려구 하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낯모르는 사람이 찾아와 저의 엄마와 이야기 하니까 생이별이라두 하는 줄 아는건가? 불쌍한 것. 저년이 머슴애만 같아두 얼마나 좋겠어.
아비복두 없는 년이 눈치는 한 번 빠르구먼.
아니, 그래. 세상에 별 사람 다 있지. 그만큼 면박을 당했으면 안 올건디. 능글맞기두 하지. 어림없는 수작을 부리구 있어. 늙은이가 그래, 새파랗게 젊은 여자 데려다 어쩐다는 거여? 제 욕심만 채울려구 여치마냥 처마 밑에 달아놓구 우는 소리만 듣겠다는 건가? 찌룩거리는게 불쌍하지두 않남...”
형숙이 이모는 자기 동생이 여치마냥 아이들 손에 붙들려 둥우리에 갇히는 신세가 되면 어쩌나 하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겁을 물키듯 한다.

하루 건너 사흘 건너 찾아오는 윤공의 얼굴은 얄미워하는걸 꼼짝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삽짝을 들어설 때 마다 싫지 않은 웃음을 담는다.
웃는 얼굴엔 침을 봇 뱉는다는 말을 실습하는 것 같다.
라부인과 그의 언니는 오겠슴 오구 가겠슴 가라 네 맘대루 해보라고 상대도 않는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가 되고 말았다.
“언니, 저렇게 찾아 왔싸서 귀찮아 죽겠어. 언니, 어떻게 했슴 좋겠어,”
“어떻게 하긴 제풀에 시들겠지.”
“언제까지 기다려?”
“그럼.”
“어디루 피신을 할 곳두 없구. 한 번 갔다오구 말지.”
“좋도록 하자. 나두 질렸다. 그렇지만.”
“단단히 약속해야지. 뭐!”
“네가 솔깃해졌나 보구나!”
“바람두 쏘일겸...”
“나두 내눈으루 영감택이가 어떻게 생겼나 꼴이나 봤으면 한다.”
라씨 자매는 윤공의 진실되고 성실한 태도에 자신들의 마음이 끌려들고 있슴을 알면서도 끌려가도 만다.
윤공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버지가 쓸쓸하게 지내고 계신 것이 민망스럽고 송구하여 어머니 될 사람을 모시려고 사방에 매파를 놓았었다. 그런 가운데 라부인의 소식을 듣고부터는 성심을 다해 덕리를 찾아 다녔던 것이다.

윤공의 아버지는 며느리로부터 라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보통내기가 아닌갑다. 계집이 그렇게 콧대가 세서 어데다가 쓰겠냐?
아, 애비보구 이젠 그만 다니라구 일러라. 난 그런줄두 모르구 늦게 다닌다구 야단을 쳤었지. 말을 해야 속을 알지.”
“그냥 두고 보세요.”
“더위에 좇아다니다 병날라. 됐다. 건너가 보거라.”
“예, 아버님.”
그는 며느리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중얼거린다. 그리고 미소를 담는다.

“이모, 오늘은 그 아저씨 안와?”
“넌 그 아저씨가 좋으냐?”
“응”
형숙이는 누가 시키기라도 한것 같이 이모에게 묻고는 삽짝 밖으로 뛰어나간다. 형숙이 이모는 형숙이의 말을 되새김하며 한숨을 짓는다.

윤공은 전매서에서 일이 끝나기가 바쁘게 덕리를 향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그의 옷은 땀에 젖는다. 그는 옷에 감긴 채 달린다.
“언제쯤이나 라씨가 우리집에 온다구 할까? 내가 아직 성의가 부족하여 라씨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데. 더 노력해야지.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언젠가는... 나중은 나중이고...”
그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느긋한 마음으로 땡감이 익으면 홍시되고 홍시되면 땅에 떨어진다고 여긴다. 그는 덕리 골목길을 걸으면서도 생각을 굴리느라 더위도 잊고 길따라 가는 사람이 됐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는.”
형숙이는 윤공을 보고는 부른다. 그는 자전거를 길 옆에 세운다.
“아저씨.”
그는 소리따라 고개를 돌린다. 동네 꼬마들이 사방치기를 하며 놀고 있는게 그의 눈을 감미롭게 만든다. 이어 그의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담아준다.
“형숙이구나. 아저씨가 너를 못 봤구나.”
“아까부터 불렀는데.”
“그랬어? 미안. 자, 이거 받아라.”
그는 주머니에서 사탕 봉지를 꺼내준다.
“너, 이것 좋아하지?”
형숙이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사탕 봉지를 받는다.
“그럼, 이따 만나자. 엄마 집에 계시냐?”
형숙이는 또 고개를 끄덕이곤 제 동무들에게로 뛰어간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걸음을 옮긴다.
“안녕하셨습니까?”
그는 인사를 하면서 삽짝을 들어선다.
“오늘은 안오나 해서 좋다 했는데. 당신두 어지간하구랴.”
형숙이 이모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띠고 앉아서 그를 맞는다.
“어쩌자구 사람을 달달 볶아? 누구 죽는꼴 보려구 그랴?”
형숙이 이모는 말을 안하고 있었던게 늦더위 기승하는 속에 잠긴것 같아 이젠 그러지 않기루 했다는 양 웃음을 곁들여 말을 받는다.
윤공은 그녀의 냉갈스런게 보이지 않는게 요상스러워 헛심만 잔뜩켠다. 그리고 먼저 더위 먹었다고 생각해 본다. 이어서 마루에 앉은 그녀를 요행을 바라는 눈으로 읽는다.
“오늘은 마당에 섰다가 가기루 했우?”
“아, 네!”
윤공은 벙벙한 자신을 감싸느라,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뜰방에 올라 마루에 걸터 앉는다.
‘수다를 떠는게 이상하지만 두고보는 수밖에...’
그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훔친다. 그리고 그녀들의 속을 헤집으려 열쇠를 만드느라 이리재고 저리재며 더듬거린다.
“저기...”
그는 말을 꺼내다가 멈춘다. 라부인이 삽짝을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녀는 옆구리에 바구니를 끼었다. 바구니 속에는 깻잎도, 애동호박도 보인다.
“밭에 다녀오십니까?”
윤공은 마루에서 일어나 그를 맞는다.
“또 왔군. 또 왔어.”
“예, 오늘은 우리집으로 아주 모시고 갈려구 왔습니다.”
“누가 따라간대?”
“그러니까 모시고 간다는 거지요.”
“가라지. 누가 말리남.”
“아주머님은 그렇게 무서우세요?”
“누가 무섭대?”
“그러시면.”
“태씨같은 귀신 만났다간 꼼짝없이 저승 구경하겠구먼.”
윤공은 찔끔한다. 산골 물이 쏜다는 말이 덤비기 때문이다. 배운 것은 없어도 입심은 너 같은 건 식은 죽 갓 둘러 먹기라고, 헛물이나 키다가 가라고 몰아세운다. 그는 다시 허리끈을 졸라맨다. 웃음을 쓰고는 버틴다.
“그나저나 우리집에 몇 번이나 왔어?”
“글쎄요.”
“우리집에 온 것만 쳐두 한달이 넘을거유. 내가 미치겠어.”
“그러니까 한 번만 오세요.”
“약속 지키는 거여.”
“여부가 있습니까. 소원을 푸는디.”
“그럼 모레가 그믐이니 그날 갈께.”
“정말이세요?”
“어디서 거짓말만 듣다가 왔나...”
“그냥...”
윤공은 어물쩡한다. 그는 형숙이 이모의 말이 농담으로 시작되어 그 역시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그녀가 정색을 하고 나서자 웃음을 지우고 마음을 추스린다. 예기치 못한 성취감에 빠진다.
“우리집 안 오는거 약속 지켜”
“아, 예. 그럼 형숙이 엄마께서도 오시나요?”
그는 라부인을 바라보며 다짐을 받으려든다. 그녀는 그냥 엷게만 웃는다. 윤공은 대답을 하라고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옮기지 않는다.
대답을 들어야 가겠다는 투다.
“한번만 가는 거여.”
“됐습니다. 그럼 그믐날 일찍 모시러 오겠습니다.”
“어둡기 전에 가기나 하셔. 우리도 길 아니께.”
윤공은 마루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내려선다. 그녀들은 삽짝까지 따라나온다.
“안녕히 계세요.”
“조심해 가시구랴.”
해가 떨어진지가 오래되어 땅거미가 깔렸다. 소나기가 금방 쏟아부을듯 시커먼 구름이 몰려든다. 윤공은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소나기가 한줄기 내렸슴 좋겠다. 이제 겨우 짚신은 추렸지. 이제부
터가 고비인데 모양나게 짚신을 삼아야지. 그녀가 아버님과 어울릴까? 저 여자들이 약속은 지키겠지. 혼사는 연분이 있어야 된다는데 힘닿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그는 중얼거리며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힘주어 밟는다.

윤공은 열려진 삽짝 안으로 들입다 들어간다. 자전거를 헛간에 세운다. 이내 사랑방으로 다가간다. 방문 앞에서 방안을 살핀다. 마른 기침을 한다.
“아버님 주무세요?”
그는 기침 소리 뒤따라 묻는다.
“오냐.”
“주무세요?”
“아니다. 이제 왔느냐?”
그는 말을 하며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등잔불은 바람 따라 넘실대다 달려나와 그를 맞는다.
“진지 잡수셨는지요?”
그는 말을 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그래 먹었다. 오늘은 너무 늦었구나. 오늘도 덕리에 갔었느냐?”
“예.”
“덕리는 뭣하러 자주 가느냐? 아직 저녁도 못 먹었겠구나?”
“들어가 먹겠어요.”
“괜히 늦게 다니다가 병 날라.”
“병 나기는요.”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대견스러움이 하나 가득 고였다.

은부인은 남편을 기다리느라 이제나 저제나 하다가 사랑방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자 딸에게 알려준다.
“아버지 오셨다.”
“어디에, 엄마.”
열이는 엄마의 무릎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난다.
“할아버지 방에 계시다.”
열이는 마당으로 뛰쳐 나간다.
“아버지!”
하고 부르며 사랑방으로 좇아 들어간다. 열이는 아버지 곁에 앉아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아버지, 저녁 잡숴요.”
그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어서 건너가거라.”
“예, 이버님 편히 주무세요.”
“할아버지, 안녕.”
“오냐! 잘자거라.”
“예.”

은부인은 저녁상을 차려 놓고 남편이 들어오길 기다린다.
“오늘 더웠지요?”
그녀는 방문을 열고 남편을 맞는다.
“아주 덥구먼, 씻어야겠는데.”
“마루에 물 떠다 놨어요.”
윤공은 세수를 하고 밥상을 받는다.
“너무 시장하시겠네요.”
“먹으면 되지.”
그는 밥상을 당기어 놓고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다. 그는 밥을 먹을 때는 말을 안하는 버릇이 있다. 밥을 먹을 때 말을 시키면 짜증을 낸다.
그녀는 남편이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앉아 궁금증을 다독거리며 남편의 얼굴을 헤아려본다.
‘이이가 오늘은 밝은게 좋은 일이 있었나 보군. 아무튼 일이란 잘되고 봐야지. 저이 성깔에 생병 나지. 덕리 일이 잘되면 좋으련만.’
“아버지!”
“응.”
“어데 갔다 왔어?”
“저 덕리 갔다 왔다.”
“응.”
“무슨 일인데?”
“응, 네가 더 크면 알게 될 거야.”
그는 밥그릇을 다 비운다.
은부인은 부엌으로 상을 내다 치우고 방으로 들어간다.
“여보, 내일 모레는 새벽에 밥해야겠어.”
“출장 가나요?”
“아니.”
“아버지, 어데 가는데?”
“덕리에 간다.”
“덕리는 아주 멀어?”
“아버지가 자전거 타고 남쪽으로 달려서 가야 되는 곳이란다.”
“언제 오는데?”
“점심때 손님하구 같이 오게 될 거다.”
“그럼 손님이 왜 와?”
“우리집 구경하러 오는데 네 동무도 올 거다. 손님이 오면 예쁘게 인사하는 거다.”
“으응!”
“이제 그만 자자.”
열이는 엄마가 궁금히 여기는걸 시키기나 한 것처럼 송알송알 가려운델 긁어 주듯 한다.
“그리구, 당신 모레 아침에 아버님 옷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시게 하구. 집안도 깨끗하게 해 놓으라구.”
“당신은 정말, 어서 주무시기나 하세요.”
윤공 내외는 잠을 청하느라 홑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참!! 당신, 아버님께 말씀 드렸어요?”
“아니.”
“궁금해 하시는데 알려 드리시지 않구.”
“미리 말씀드렸다가 안오면 실망이 크시게?”
“그러네요. 그동안 당신 고생이 많았어요.”
“고생이야 당신이 더하고 있지. 나야 다리 품을 조금 팔은 것밖에.”
“당신은 무던한 사람이유.”
“건 왜?”
“당신을 매일 만나 얼마나 쪼들렸으면 승낙을 했겠수.”
윤공은 아내의 말에 씽긋이 웃는다.
“그나 저나 이번에 속깨나 태웠구먼. 아버님이 쓸쓸해 하시는걸 뻔히 보면서 손만 비비는 꼴이라 죄송하구...”
“당신이 열심히 하시는데 보답이 있겠지요. 아버님은 어데서 라부인 이야길 들으시고 맘에 있어 하시는 것 같았어요.”
“열 효자가 아내만 못하다는 말대루지.”
“우리가 지성으로 청하면 오시겠지요.”
윤공부부는 밤 늦도록 기와집을 여러채 짓고 부순다.

라부인이 윤공네 집에 온다는 날이다. 은부인은 아침 일찍 깨끗한 한복을 농에서 꺼내들고 사랑방으로 건너간다.
“내가 옷을 갈아입은지가 며칠이 됐다구 그새 옷을 내왔느냐?”
“며칠 더 입으시면 빨래하기가 어중간하시니 지금 갈아 입으세요.”
“깨끗한데두 그러는구나.”
“오늘 빨래 하는 길에 모두 하려구요.”
그는 며느리의 권고에 못이겨 옷을 갈아입고 책을 읽는다.
그녀는 집안을 정돈하고 점심 준비를 부지런히 한다.
점심 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다.
윤공은 라부인 자매와 형숙이를 데리고 데리고 삽짝을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
은부인은 부엌에서 점심준비를 하다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마당으로 좇아나오며 그녀들을 반긴다.
“이렇게 찾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먼길에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요?”
그녀는 두손으로 라부인의 손을 감싸며 맞는다. 은부인의 태도는 고향 친구를 만나기나 한양 스스럼이 없다.
“어서 방으로 오르세요. 더운데 엄마따라 오느라 고생했구나.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 닮아 예쁘고 착하구나.”
그녀들은 조금은 긴장한 채 어색하게 미소로 답하며 방으로 오른다.
방에 앉아서도 가만 있질 못하고 뒷뜰도 조금 보았다 앞마당을 조금 보았다 손을 만지작거린다. 방안도 두리번거린다. 아랫엔 벽장문이 미닫이로 된게 포개져 있다. 벽에 박힌 여러개의 못에는 옷이 걸리지 않았다. 못에 걸린 옷들은 벽장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벽은 하늘색깔 닮았다고 여긴다. 뒷 방문 옆으로 낡은 커다란 괘종시계가 달각달각거린다. 그 소리는 썩어도 준치 준치 하는 걸로 그녀들의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은부인은 딸에게 과자를 담은 접시를 주며 형숙이하고 같이 먹으라고 말한다. 열이와 형숙이는 마루에서 조잘거리며 어울린다.
“언니, 이제 그만 가지요.”
“어떻게 그냥 가겠냐? 조금 더 있다 가자.”
“웬지 불안해 언니.”
그녀는 속삭여 언니에게 말한다.
“그럼 그러자꾸나.”
그녀들은 말을 하며 일어난다. 윤공은 당황한다.
“점심이나 잡숴야지...”
“폐 끼칠게 뭐 있나요.”
그녀들은 말을 하며 마루로 나온다. 은부인은 점심상을 차리다 말고 뛰쳐나온다. 그녀는 뜰방에 서서 라부인을 가로 막는다.
“그냥은 못 가십니다. 넘들이 우리를 뭐라구 하겠어요. 어서 들어 가세요.”
라부인은 뜰방으로 내려서다 떠밀려 마루로 올라간다. 라부인은 엉거주춤하여 고개를 돌려 언니를 쳐다본다.
“형숙아, 기왕 왔으니 점심 대접이나 받구 가자. 저렇게 막무가넨데 어쩌겠냐?”
라부인은 언니의 말에 고집을 꾸부리고 언니따라 다시 방으로 들어가 뒷문 곁에 앉는다.
은부인은 시아버지 점심상을 차려 사랑방으로 들고 간다. 그는 면느리가 밥상을 내려놓기를 기다려 입을 연다.
“누가 왔는데 안이 그리 소란하냐?”
“라씨라구 하는 부인네들을 지아비가 모셔왔어요.”
“그래 시끌했구나.”
“그분들이 오실지 확실히 몰라 미리 아버님께 말씀을 못드렸어요.”
“아니다. 네가 오늘 서두르는게 이상하다 했더니...”
그는 밥상을 앞에 놓고 라부인의 소식에 빠져든다. 며느리의 말속에서 보람을 찾고 흐뭇함을 파내느라 걸떡하여 수저 들 생각을 못한다.
“아버님 진지 잡수세요.”
“으응, 그래.”
그는 며느리가 나가자 밥상을 바짝 끌어당긴다. 그리고 수저를 들었다간 놓는다. 안마당 쪽을 흘끔하는걸 길게 한다. 벌떡 일어나 문턱을 넘으려다 주저한곤 뒷짐을 지고 안방을 왔다갔다 한다. 못이겨 안채를 기웃하곤 방으로 돌아와 앉는다.

은부인은 안방에다 밥상을 차려 놓는다. 방에서는 라부인 자매와 형숙이가 점심을 먹는다. 마루에선 윤공과 열이가 겸상을 하였다. 은부인은 대접 둘에다 물을 떠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가 라부인 밥상 옆에다 놓는다.
“반찬이 없어요. 염반이거니 하구 많이 잡수세요.”
“우리가 폐를 끼치네.”
“웬, 별 말씀을...”
“점심을 같이 하실걸?”
“나중에 먹지요.”
그들은 아까와 달리 밥수저를 크게 하여 체면을 밀어내고 서둘러 먹는다.
“에헴, 에헴!”
헛기침 소리가 안마당으로 좇아 들어간다. 조금 뜸을 들인 윤공의 아버지는 삽짝으로 들어선다. 윤공은 안마당으로 들어오는 그의 아버지를 흘끔한다. 그는 수저를 놓고 뜰방으로 내려선다.
“아버님, 진지 잡수셨는지요?”
“먹었다. 어서 먹어라.”
그는 아들에게 앉으라고 앉아서 어서 밥먹으라고 손짓을 한다.
방안에서 밥을 먹던 라부인과 그의 언니는 흘끔거리며 윤공의 아버지를 뜯어보느라 밥 먹는 것을 잊는다.
윤공의 아버지는 뜰방으로 올라서서 헛기침을 가볍게 하고는 인사를 한다.
“먼길에 오시느라 고생 하셨지유. 어서들 드시구려.”
라부인은 그를 훔쳐보다 눈이 마주치자 눈씨름을 한다. 눈씨름을 당한 윤공의 아버지는 당당한 기세를 쥐어뜯기고 잔뜩 꺾여 버렸다.
그리고 떠밀려 사랑방으로 밀려나 버린다.
‘젊은 여자가 라씬가본대, 나에겐 기울구먼 기울어. 십년만 젊었어두 되겠는데...
하긴 젊어질 수도 있다지. 젊은 사람과 살면 젊어진다구...’
윤공의 아버지는 꼬집힌 가슴을 설래설래 문지르고 다독거린다.

“늙은이가 장가 갈려구 꼬락서니를 보라지. 주책을 떨어두 분수가 있지. 누굴 데려다 생과부를 만들려구. 족제비마냥 욕심은...
젊은 것은 맥두 못추고 죽는게 억울하지. 젊은게 왜 죽남...”
형숙이 이모는 윤공의 아버지를 보고 나자 입맛이 싹 가신다. 괜히 화가 나고 속이 뒤집힌다. 죽어 버린 동생의 남편이 병신중에 병신, 바보라고 억지를 부린다. 성깔을 부릴 곳을 찾느라 눈꼬리가 작두꼴이 되었다.
은부인은 윤공에게 물을 갖다 주고는 마루에 걸터앉아 라부인을 눈여겨본다.
“두레박의 끈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게 여자인가? 우리집엘 다 오다니...”
잠깐 멍하던 은부인은 라부인의 언니가 수저를 아무렇게 놓는 것을 본다.
“더 잡수시지요.”
“많이 먹었다우.”
그녀는 볼먹은 소리로 말을 받는다. 그정도 먹은 것도 억지로 먹어줬다는 투다. 라부인도 영감을 보고부터 밥 맛을 잃고 끄적거린다. 언니따라 수저를 놓는다. 그녀는 언니보다 덜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텅빈다. 영감을 보았으면 하던게 자라나다가 송두리째 뽑혀 뿌리가 허옇게 자빠진다.
“흥! 누굴, 사내에 미친줄 아나...”

윤공은 그녀들이 수저를 놓는데 혼자 꾸역꾸역 먹을 흥이 나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가 왔을 때부터 그녀들의 표정을 따라다녔다.
‘하루가 멀다구 아들을 올려 보냈다구 괴롭혔다구 하겠지. 그건 내가 복이 없어서 그런 거라우. 맛을 본 사람이 자꾸 장가가고 시집가길 원하지 않겠오. 젊고 늙는 것은 금새 아니오? 젊다고 안늙고 오래 사는건 아니잖우. 맘을 먹다 마는 게 인생인 것을...’
윤공은 모자란 구석을 채우느라 속으로 지껄이고 만다.
그녀들은 물도 안 마시고 서둘러 일어난다.
“좀 노시지 않구...”
“점심 잘 먹었다우.”
형숙이 이모는 손을 내저어 은부인의 말을 막는다. 누가 끌어내기라도 하여 끌려 나가는 사람처럼 불쾌한 게 온 몸에 진하게 물이 들었다.
“앞으로 지나가는 길 있으면 찾아주세요. 아가, 너도 잘가거라.”
“가다가 과자 사먹어라.”
윤공은 형숙이에게 동전을 쥐어준다. 그리고 주머니에 천원짜리 두 개를 돌돌 말아 넣어준다.
“그럼 살펴 가십시다.”
윤공의 아버지도 면사무소 앞에 나와 서서 전송을 한다.

라부인과 그녀의 언니는 시큰둥거린다. 눈도 흘긴다. 풀섶 길을 가다 설사똥을 밟고 바지가랑이를 더럽힌 것 같은 기분 나쁜 게 트름하기 시작한다.
“흥! 그 주제에 장가? 누굴? 과부라니까 분수두 모르구...”
그녀들은 빨리 가지도 않고 소리를 크게 하여 윤공의 아버지 뒤통수를 때리는데 맛을 들인다. 이기죽 아기죽거리며 걷는다.
“그만 심술 부리고 길이나 재촉하면 좋겠우. 안 먹을 감이라구 이리저리 찔러대면 주인이 참겠우.”
윤공은 중얼댄다.
“덕리는 쌍골인 갑다. 그집 장맛 본놈이 흉본다더니 싫으면 그만이다. 누구 위해 사는 거냐? 모두 저 위해 사는 거지. 넘 위하는 게 저 위하는 거지. 그 정도는 알아야...”
윤공의 아버지도 쓴맛을 다시느라 중얼거린다.
“장가가 웃겠다. 아나 장가?”
형숙이 이모는 이말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는듯 멀리 있는 제 자식 이름 부르듯 한다.
“내가 늙어 실망해서 저러지. 나이 먹은 놈이 참아야지. 기대가 컷던걸 허물었다구 그라지. 누가 들으면 강제로 살자고 한줄 알겠다. 나 는 서러운 놈이다. 또, 그럼 그냥...”
그는 겨우 치미는 화를 누르고 다독거린다.
“장가가 웃는다.”
“아나, 장가?”
그녀들은 다시 약을 올려 종애를 골린다. 뜨거운 국맛 모르고 덤벼든다. 그리고 심술을 부리느라 크게 소리쳐 할퀸다.
윤공 아버지는 그녀들의 놀림을 되뇌어 본다.
“뭣이 어째?”
그는 동네가 찌렁하게 우짖는다. 그리고 불맞은 멧돼지처럼 돌진한다.
라씨자매는 벼락소리에 찔끔한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태근식이가 사납게 달려든다. 그녀들은 얼굴이 노래졌다. 그녀들은 허둥거린다. 형숙이는 엄마손에 잡혀서 끌려 도망간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걸 생각케 한다.
“네, 이년!”
윤공의 아버지는 포효를 하면서 드세게 좇는다. 형숙이 이모는 늙은 암사슴처럼 잔뜩 겁을 먹는다. 오금이 늘어지기만 한다. 한쪽 고무신이 벗겨진다. 버선발로 안간힘을 다해 뛴다.
“이 죽일년!”
윤공의 아버지는 사납게 소리치며 그녀의 등덜미를 거머쥔다. 그녀는 버둥거리며 맥없이 고주백이 넘어지듯 한다. 그녀의 얼굴은 더욱 노랗게 질렸다. 숨을 헐떡거린다.
“사람 살려!”
늙은 암사슴이 마지막으로 지르는 소리마냥 구슬프게 살려 달라고 사정하는 소리같다. 그녀의 외마디 소리는 겁에 질려 그녀의 등덜미를 거머쥔 윤공의 아버지나 겨우 듣게 한다.
“때리더라도 안 아프게 때려요.”
하는 것 같다.
그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마구 흔든다.
“혼인에 방해 놓는 년은 난장에서 때려 죽여두 죄가 안된다. 이년!”
그는 가랑이를 찢어 놓기나 할듯 덤빈다. 입에는 게거품이 북적거린다.
“뭣이 어쩌구 어째? 또 까불어라. 너보구 시집 오랬냐? 오래 살다 보니 내 더러워서. 너 같은 쌍것이 사람 축에나 끼겠냐? 고얀년! 망할년이 누굴 우세시켜!”
그는 용케도 때리진 않고 그녀의 발목만 잡고 흔든다. 입으로만 타작한다. 동네 아이들이 면사무소 앞으로 모여든다. 동네 아낙들도 신작로에 멀찍이 나와서서 구경한다. 윤공은 하늘을 봤다 땅을 봤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은부인은 라씨 언니가 붙잡혀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잰걸음으로 좇아간다. 시아버지의 팔을 잡는다.
“아버님! 아버님! 진정하세요. 원래가 배우지를 못한 것들이라 그런걸 탓해 무엇하겠어요. 아버님! 아버님이 참으세요.
이 분수두 모르는 여자야! 무식해두 그걸 몰라. 누가 너한테 욕먹구 싶대? 정신없는 것들 같으니. 참으세요. 아버님.”
그녀는 달래고 꾸짖는다.
그러나 윤공의 아버지는 막무가내다.
거름지게를 지고 가던 늙은이가 거름지게를 가까이 와서 벗어 놓는다. 그리고는 얕잡아 웃는 얼굴로 윤공의 아버지를 내려다본다. 그는 급하지 않게 다가간다.
“야, 이사람아! 넘이 보구있어.”
그는 말을 하며 태근식이의 손을 잡고는 우직하게 떼어낸다.
“욕 볼려구 그러냐?”
태근식은 친구의 손에 끌려서 면사무소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 글쎄 점심을 해 먹였더니 괜히 이년이 할퀴구 긁잖아...”
“알았네. 알았어. 그러기에 풀섶에선 뱀을 조심해야지.”
“내 참 더러워서.”
“그러니까 여자니. 자네 여자 이기는 사람 보았나?”
“사람 우습게 됐구먼.”
“웃을 게 없으면 무덤에 있는 사람이지. 안그래?”
“허......”
“다 굴러올 때 되믄 제발로 안오구 못 배겨.”
근식은 친구에게 끌려서 주막집으로 들어간다.
윤공은 궁리 끝에 라부인의 뒤를 따라간다. 그의 아버지를 피해 딴길로 돌아서 좇아간다. 상보 가는 길 중간 길가 옆 외딴집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서 있는 라부인을 만난다.
라부인은 윤공을 보고 대번에 싸늘해진다. 무서리가 금방 내릴 것같은 사나움이 서린다.
“흥! 대접 잘 한다더니 이럴 수가...”
“죄송합니다.”
“재수가 없을라니까? 별, 더러워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여자를 그렇게... 아유 분해...”
“용서하세요. 한 번만 용서하세요.”
“제까짓게...”
그녀는 씩씩거리느라 말을 잇지 못한다.
“한 번만 용서하세요.”
“보기 싫다구. 어서가. 누구 죽는꼴 볼라구 그래?”
“그럼 앞서 갈테니 천천히 오세요.”
윤공은 굽실거리곤 덕리쪽으로 걷는다.
형숙이 이모는 치맛단이 뜯어져 보기가 딱하기만하다.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를 두손으로 쓸어내리고는 튿어져 나온 치마를 거머쥔다.
은부인은 그녀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준다.
“어디 다치신데라두...”
“......”
“말하는데 돈 안 든다구 마구 하면 되나요? 그럴수록 조심해야지.
좌우간 사과합니다. 그냥 가면 되지 가만있는 사람 모욕줘두 한두번이지. 당신 같으면 가만 있겠수? 사람이 숨만 쉰다구 사는게 아녀요.
인연 있으면 또 만나리다. 잘 가세요.”
은부인은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집으로 들어간다.
태근식은 거나하게 취해서 자기집 삽짝으로 들어온다.
은부인은 서성거리며 삽짝에 정신을 쏟다가 시아버지를 보곤 달려가 부축하여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벽장에서 목침을 꺼내 놓는다. 창문도 활짝 열어 놓는다.
윤공의 아버지는 아랫목 벽에 기대어 앉았다.
“괘씸한 것들! 고얀 것들!”
그는 중얼거린다.
“산골에 사는 것들이라 배운게 없어서 버릇이 없어요. 저희들이 잘못하여 아버님 마음만 상하게 해드려 송구스럽습니다. 아버님.”
“아니다. 너희가 미안할 게 없다. 내가 죄가 많아서 그렇다. 나는 잘란다.”
그는 말을 하며 쓰러진다.
은부인은 시아버지를 부축하여 눕힌다.
“아버님 주무세요.”
“오냐.”
은부인은 밖으로 나와 우물로 걸어간다. 그녀는 두레박으로 물을 떠서 속을 식히느라 벌컥벌컥 숨도 안쉬고 마신다. 그리고 얼굴을 씻는다. 발도 씻는다.
‘이제 어데 가서 아버님 모실 분을 모셔오나...’

라부인은 언니가 허둥거리며 오는 것을 보고는 눈물을 글썽거린다.
“언니, 다치진 않았어?”
“다치긴 아무렇지두 않다.”
“언니는 나 때문에 챙피를 당하구...”
“그놈의 영감택이가 그냥....”
“내가 놀려 그렇지.”
“언니 죽이는 줄 알았어.”
“때리진 않더라.”
그녀는 동생을 위로해주며 안심시키는 말을 한다. 그녀의 말엔 서러움이 어렸다. 몸을 꾸부리고 치맛자락의 더럽혀진 곳을 비벼본다.
라부인은 언니의 등을 쓰다듬으며 쓸어낸다.
“망할 놈의 영감이 기운은 세더라.”
“언니가 큰소리로 약 올리니까...”
“여간 얄미워야지.”
“언니 속만 썩혀주구... 밥해 주는 데라두 찾아가야겠어.”
“그런 소리마라. 기다리면 좋은 자리가 나설게다.”
그녀들은 집을 향하여 원망스러운 자신을 꼬집으며 걷는다.

윤공의 아버지는 라씨를 사모하여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내 꼴이 이게 뭐람.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았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할건디. 성깔이 못 돼 먹어서 일을 그르치구 망신만 당하구...
얼마나 계집 생각이 간절하면 앙탈이냐구. 늙어두 계집은 새파랗게 젊은게 좋은게벼. 며느리 보기두 부끄럽지 않은가? 마누라 죽은게 몇 년이나 됐다구 그 야단이람. 동생 못준다구 해서 그랬다며? 글깨나 읽은이가 그래. 배운 사람이 더 한다더라. 보기엔 의젓하지. 아들을 매일 보냈다며? 데려오라구. 자식도 부모를 잘 만나야지. 자식이 중신애비구먼. 급한데 어쩔 거야. 저이는 입만 양반이지. 또 마누라 얻어서 내쫓게.’
그는 동네 아낙네들이 지껄이고 웃고 떠들고 히히덕거리는 소리가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르고 화끈거려 방구들 밑으로 기어든다. 허우적 거리지도 못하고 가라앉던 그는 겨우 입을 열고 비명을 내지른다.
“아가야.”
은부인은 시아버지의 부름에 사랑방으로 급하게 건너간다. 사랑방앞에 이른 그녀는 방안을 기웃한다.
“아버님 부르셨어요.”
“그래, 나 윤수한테 가야겠다. 윤수 이녀석이 공부를 어떻게 하구 있나 가볼란다.”
은부인은 시아버지가 갑자기 작은 아들한테 가려고 하는 심정을 헤아려본다.
“아버님, 더위나 지나면 가시지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만류한다.
“아니다. 내일 갈란다.”
“도련님한테 가시면 당장 진지가 불편하실텐데...”
‘걱정할 것 없다. 윤수와 같이 먹구 같이 자면 되지. 내일 아침 일찍 가게 해라.“
“예.”
그녀는 시아버지의 성격을 아는지라 더 이상 만류를 않는다.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누구의 간섭도 용납을 안하는 고집이 있기 때문이다.

저녁 때가 되자 윤공이 직장에서 해동갑을 하듯 돌아온다.
은부인은 남편에게 시아버지가 시동생에게 가려고 하신다고 말한다.
“더위도 가시지 않았는데 병이라두 나시면 어쩌려구 그러시나?”
“아버님은 어제 일로 집에 계실 생각이 없으신가봐요.”
“큰일 났구먼.”
“당신 말두 안듣구 옆집에서 싸돈을 얻어왔어요.”
윤공은 입맛을 쩍쩍 다신다.
“할 수 없지.. 아버님이 좋으신대루 하시는 거니까...
아버님이 마음이 좋아서 가시면 맘이 놓이겠는데...”
“별일이야 있겠어요.”

다음날, 윤공의 아버지는 새벽같이 작은 아들에게 가기 위해 집을 나간다. 그는 조그만 가방 하나만 들었다.
윤공은 그의 아버지를 전송하고 돌아온다. 그의 얼굴은 아쉬움이 어려 밝게 보이질 못한다. 그는 서모 모시는 일로 짓눌린 자신의 가슴을 부추기려 머리를 쥐어짠다. 그는 발길에 끌려 자기집 삽짝으로 들어간다.
“여보, 아버님이 얼마나 계실까요?”
“그걸 내가 어찌 알아?”
“아버님께 여쭤보지 않았수?”
“시끄러! 아침이나 가져와.”
그녀는 남편의 퉁명스런 소리도 개의치 않는다.
“당신 책임이 무거워졌어요.”
“빨리 밥이나 가져와.”
“예.”
그녀는 밥상을 갖다가 남편의 앞에다 놓고 못다한 말을 잇는다.
“아버님이 수원으로 가신 것은 어서 어서 마땅한 여자를 데려오라구 하시는 거라구요. 부자간에 자취하시는걸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되면 오죽 좋겠어.”
그는 아내의 말을 마지못해 들으면서두 마음은 바쁘게 돌아감을 어쩌지 못한다.
‘우리 아버지를 모셔 줄 여자는 없는 건지, 있다면 어디라두 찾아 모시겠다. 지성으루 모시겠다.’
그는 다짐하고 염원한다.

윤공의 아버지가 작은 아들을 찾아간 뒤 십여일이 지난 어느날이다.
“여보! 당신에게 좋은일이 생겼어요.”
“좋아봤자지. 밑두 끝두 없이...”
“당신은...”
은부인은 남편의 핀잔에 토라진다.
“이야길 꺼내다 말어?”
“당신은 고쳐야 돼요. 무슨 남자가 자기 부모 형제 일이라면 상냥하게 지껄이구. 내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윽박지르구 핀잔하기가 일쑤고 업신여기는 소리나 하구...”
“미안, 주의할께.”
“당신이 또 가보세요,”
“어딜 가는데?”
“어딘 어디유. 라씨네지.”
그녀는 심드렁해서 말한다.
“왜?”
“아프답디다.”
“어데가?”
“두부 만들다 자루가 터져서 데었답니다. 승호엄마가 친정에 갔다가 보았답니다. 엊그제 데었다던가? 발을 많이 데었다구 합디다.”
그녀는 금방 풀어 질듯 하다가 구둥거려 말한다.
“이제 그만 점잖게 말하지. 품앗이 했잖아?”
“메마른건 싫으슈? 그렇담 그럽시다.”
윤공은 져주는 웃음을 웃어준다.
“내가 찾아 갈 일이 생겼다 요거지 잉?”
은부인은 남편의 어울리지 않는 놀리는 말에 어처구니 없다고 싫지 않게 엷게 웃는다.
“안간다고 했는데 어찌 간당가? 참내! 당신이나 가보기요.”
“여자 말은 당신두 신용 않는데 그들이 신임 하겠수? 아플 때는 인정이 그리운 거니까 당신이 가시면 호감을 얻을 거예요.”
“앉아서 다 아시네”
“아버님이 라부인을 좋아 하시는 눈치셨어요.”
“별로 내키지 않는데.”
“당신이 가실 때 뜨거운 물에 덴데 바르는 약두 사구 고기두 사가지구 가요.”
“또 내가 지는구먼.”
윤공은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선다.
은부인은 행길까지 따라나오며 어젯밤의 말을 되새겨 준다.
“당신 덕리 가는거 잊지마세요.”
“알았어.”
“조심하세요.”
“응.”
그는 대답을 하며 그냥 걸어간다. 고개를 돌려 가벼운 흐뭇함을 보여주는걸 생각지 못한다.
“저이는...”
윤공은 그의 아내로부터 미욱한 것을 쥐어뜯기고 돋아나고 또 쥐어뜯긴다. 윤공은 퇴근시간을 앞당겨 조퇴를 하고는 약국으로 간다.
먹는약, 바르는 약을 사고 과자도 산다. 그리고 소고기 두근을 산다.
그리고 라부인 집을 향한다.
그는 자전거 폐달을 밟으며 흥얼거리며 흐르는 땀을 닦으며 띄엄띄엄 자전거 뒤에 매단 것들을 돌아보는걸 잊지 않는다.
‘내가 자기네 집에 들어가면 보자마자 욕을 할지 모르지. 욕을 한다면 딴전을 피우는걸 해야 되는데. 욕을 하는데 속없이 웃음이 나와야 되는데. 참는게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했는데. 난 그게 약점이야.
이렇게 힘들어서야...’
덕리에 이른 그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걷는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좋을까? 다시 안온다구 구러구선 또 왔냐구 한다면 그래야지...’
그는 고개를 주억대며 땀을 씻어내며 골똘하며 걷는다. 그는 라씨네 삽짝 앞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크게 심호흡을 한다.
“계십니까? 형숙아!”
그는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부른다.
형숙이는 감나무 밑에서 놀다가 윤공을 보고는
“엄마!”
저희 엄마에게 소리친다. 그리고 반겨 일어난다.
“시끄럽다.”
라부인은 매몰차게 나무란다.
형숙이는 엄마의 앙칼진 소리, 험한 얼굴에 좋아 반기던 얼굴이 금방 일그러지고 만다.
“형숙아, 이리 와라. 아저씨가 좋은 것 줄께.”
윤공은 안방 쪽을 흘끔 보고는 형숙이 곁으로 다가간다.
형숙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으로 땅을 끄적거린다.
윤공은 형숙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형숙인 참 착해. 아저씨가 괜히 와서 예쁜 형숙이만 엄마한테 혼났구나. 아저씨가 형숙이 줄려구 과자 사왔다. 이것 받아라. 참 착하지.
어서, 삐치는 사람은 바보다.”
그는 형숙이가 과자 봉지를 받지 않고 땅만 그리는걸 바라보다가는 과자 봉지를 형숙이 손에 쥐어 주고 일어난다. 그는 조금 열적은 웃음을 담은 얼굴로 안방으로 다가간다.
라부인은 앞문 문설주에 기대앉았다. 몸을 조금 틀어 열린 뒷방 문밖을 내다보고 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까딱도 않는다.
“저 왔습니다. 더위에 큰 고생하신다구 듣구 왔지요. 좀 어떠세요.?”
그는 라부인의 왼쪽 귓등에다 대고 인사를 한다.
“화상을 입으셨다는 소릴 어제 들었습니다. 진작 알았으면 일찍 왔을 건데...”
라부인은 약간 얼굴이 부었다. 땡감처럼 푸르땡땡하다.
‘네가 자주 땡감을 먹여서 가슴이 꼭꼭 막혔다. 이젠 돼지고기 가져왔냐? 새우젓이냐? 난 입도 눈도 붙어 버렸다.’
하는게 쌓여 도독하게 보인다.
윤공은 라부인을 조금 길게 바라보며 할 말을 찾는다. 마루에 엉거주춤 오른다. 무릎을 마루 중간에 세우고 구두 신은 발은 하늘로 향했다.
왼손은 문지방을 짚고 오른손 바닥은 마루를 짚고 방안을 들여다본다.
벌거벗은 벽은 무뚝뚝한게 집 주인을 닮았다. 있는대로 가리운 것이 없어 그냥 보여줌은 진실하다고 실겅이 곧게 뻗어 말해준다. 뒤따라 된장 냄새가 코를 찌른다.
라부인은 왼쪽 무릎을 세오고 오른쪽 다리를 방바닥에 길게 뻗었다.
종아리까지 깨끗지 않은 헝겊이 엉성하게 감겨 있다.
“된장을 붙이셨나요?”
“많이 다치셨군요.”
그는 뜰방으로 내려선다. 이내 삽짝 밖으로 나간다. 자전거에 붙들어맨 끈을 푼다. 큰 봉투를 가지고 마루로 가서 조그만 약 봉지를 꺼낸다.
“이 약을 바르시지요. 이 약을 바르시면 쉽게 낫는다고 하더군요.
물로 대강 씻으시고 이 약병의 약을 꺼내 바르세요. 이것은 봉투 속에 있는 헝겊 약인데 상처에 붙여 놓으세요. 이 약은 하루에 세 번씩 잡수세요. 그러니까 한 알씩 잡수세요. 그래야 곪지 않는대요. 식사하시고 조금 있다 잡수세요.”
그는 말을 하면서 한가지씩 문지방 너머로 들여놓는다.
“아주머니, 어서 약을 바르세요. 약마다 설명서가 쓰였어요. 약 안 잡수시면 큰일 납니다.”
그는 우물에 가서 세숫대야에 물을 떠 가지고 문지방 앞에 갖다 놓는다.
“약을 어서 잡숫고 바르고 하세요. 그럼 대번에 부드러워지십니다.
제가 있어서 못하시면 저는 물러갑니다. 몸조리 잘하세요.”
그는 일어나 마당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형숙이에게도 인사하는걸 잊지 않는다.
“형숙이도 안녕. 아저씨 간다.”
그는 측은한 눈빛으로 목젖 그 아래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다독거려 말한다. 형숙이는 고개를 잠깐 들어보이기만 한다.
“또 올께.”
그는 말을 하며 손을 들어 흔들며 삽짝을 나간다.
“아내말이 옳아. 아버님이 안계시면 이러고 싶어도 못하지...”
그는 아내의 고마운 마음으로 피곤함을 씻어내 버린다. 그의 마음은 외곬으로 그냥 성심을 그리며 집을 향해 달려간다. 그는 다음 다음날도 약을 사가지고 쌀도 두어말 가지고 라부인을 찾아가 위로한다.
라부인의 다리는 무섭게 꽈리같이 부풀어 올랐던 것이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짜부라져 쪼글거린다. 세월이 약이나 되는양 날마다 눈에 띄게 좋아진다. 라씨의 마음도 빨갛게 성이 났던게 데었던 다리마냥 조금씩 가라앉더니 이젠 파김치가 되었다.
“제가 아버님을 모신다고 해도 어머님이 안계시니까 어렵고 송구스러워 여간 마음이 눌리지 않더군요. 아버님 얼굴 뵐 때마다 죄스럽고 견딜 수가 없었지요. 어머님 상을 벗을 때쯤...
아버님 몰래 사방으로 어머님 되어 주실 분을 찾았으나 아버님 마음에 꼭 드시는 분을 모시질 못했었지요. 그러던 중에 누가 아주머니 이야길 하기에 혹시나 하고 아주머니네 집에 염치불구하고 불쑥 와 봤지요. 그랬는데 제 욕심이 앞서서 그랬어요. 우리 어머니가 되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니.....
나도 모르게 끌려다녔지요. 나중에 우리집에 오셔서 불상사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제가 약을 사가지고 다닌다고 부담스러워 하실 필요는 없어요. 속히 회복되시길 바라고만 있습니다. 다 나으시면 좋은 곳에서 혼처가 나와 남은 여생을 복되게 사시길 바란다고 아버님 말씀이 그러시더군요. 나으시면 제가 찾아올 일이 없겠습니다. 그럼 제가 서운하겠군요.“
윤공은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털어놓고 돌아간다.
‘어쩌면 저럴수가, 고맙기두 하지. 저런 아들을 둔 사람은 복인이지.
세상에 저렇게 착한 사람이 있다니...
자식이 어머니에게 하듯 하는구나. 젊은 사람이 자상두 하구...’
라부인은 그가 돌아간 뒤 윤공의 사람됨을 맛을 보고 또 본다. 맛은 발바닥 저 밑속까지 저리게 한다.
‘이제껏 찾아두 남편 될 사람을 못찾고 있는건 내가 남편 복이 없어서겠지. 강변에서 쓸만한 돌 찾기 어렵다고 사람이 있어야지. 남편 복이 없으니 청상과부 꼴이지. 그냥 과부로 혼자 살까? 그럼 형숙이 저것을 어찌 키운담. 혼자 사는 셈치고 태영감에게.....’
그녀의 마음은 이른 봄의 나무가 엄동설한의 아픔을 겪고 바람따라 물이 오르듯 한다. 메마른 줄기에 물은 자주 떠밀려 올라간다.
“언니, 나 태영감한테 가서 살을까?”
“얘두, 네가 그 젊은이에게 홀딱 했구나. 아무리 그 사람이 착해두 무슨 소용이냐? 아예, 그런 소리 말아라.”
“초분이 좋아야 후분이 좋은게 아니우?”
“너는 네 남편이 죽는 꼴을 보구두 징그럽지두 않든?”
“언제까지 언니네 집에 있을수두 없구.”
“괜히 맘 설레지 말구 진득암치 기다리면 때가 되면 짝이 생겨요”

며칠이 지났다. 그녀의 발은 다 나아가 걷기에 그런대로 불편이 없게 되었다. 라부인은 언니에게 맘먹은 것을 다시 털어놓는다.
“언니. 나는 후사나 의탁해야 될 것 같으우.”
“넌, 아주 윤공에게 빠졌구나.”
“그런 집안 만나기두 쉽지 않은 것 같아.”
“나는 네가 한 번 해본 소린줄 알았는데 정말이구나? 너 깊이 생각해야지. 정말 큰일났다.”
“그동안 나두 깊이 생각했다우.”
“사람은 잘해주는 정만으론 살기가 어려운 거여. 그래서 부부가 되는 거구. 순간 기분따라 사는게 아니라구.”
“언니네두 넉넉지 못한데 언제까지 눌러 있겠어. 가야지.”
“지금두 있는데 좀 더 있으면 안되겠냐? 네가 시집가구 싶어 병났냐?
네 나이가 지금 몇살인데 환갑이 다 된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시집간다구 그러냐? 넉넉잡구 십년뒤엔 또 과부될 것 아니냐. 그때 너는 몇살이구.”
“후회되지 않을 것 같아. 언니.”
“연분은 못 말린다더니만, 나중에 내 탓은 말아라. 네 일이니까.”
그녀는 동생의 마음이 굳어져 있음을 보고 입을 다문다.

저녁 때가 되었다. 윤공은 아쉬운 마음이 솟아남을 계속 퍼내며 덕리를 향한다. 오늘도 그의 자전거에는 쌀도 조금 실리고 쇠고기도 조금 실렸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내가 이길을 이렇게 오고 갈 줄이야.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언제 어디서 또 만나게 될런지. 그러다가 헤어지고 서운해하고...’
그는 삽짝 밖에 자전거를 세운다. 짐을 끄른다.
‘이제 이집 삽짝 출입도 오늘로서 마감하는 날이 되었구나...
묘하고 묘한 거야. 내가 내 정신으로 이 집을 다녔었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알고 지낸다. 친해진다. 정든다. 많은 사람 가운데 유독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는 어데 있는 것인가?’
그의 뇌리에는 내맘도 내맘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소리가 어렴풋 스치고 지나간다.
“또 왔습니다.”
그는 삽짝에서 부드럽게 소리치고 자루를 들고 제집 들어가듯 마당으로 걸어간다.
“이렇게 자꾸 신세를 져서 어쩌지?”
형숙이 이모는 부엌 문설주를 짚고 부엌에서 나오며 반긴다.
“이모님이 다 반기시네.”
“나두 고마운건 아는 사람이야. 어떡하믄 대접을 갚냐구?”
“그거야 쉽지요.”
“알려줘봐. 갚을게.”
“신세지는 길에 아주 신세지면 되는 거지요.”
그는 웃으면서 변죽을 치듯 말한다. 그리고 라부인을 바라본다.
“나보구 하는 소리구먼. 그럼 아들 노릇 하기 힘들걸.”
라부인은 말을 하며 웃는다.
“그렇담 행동으로 보이지요. 절 받으세요.”
윤공은 마루에 올라 라부인을 향해 너부죽이 절을 한다.
라부인은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가 당황스레 엉거주춤 절을 받는다.
그녀는 벌려지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녀는 윤공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그의 얼굴을 좇아다닌다. 거기엔 진지함이 어렸다. 조금 전의 얼굴이 아니다.
“지금부터 어머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집으로 가시지요.”
그의 말은 무겁고 송곳 같다. 라부인은 윤공에게 이끌려 따라 일어난다.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시집에서 찾으러 왔으니 이젠 시집으로 가야 된다고 하는 표정이다.
“형숙아, 어델 가려구. 말이 씨된다더니 저녁이나 먹고 내일 가거라.”
“이모님. 아무 걱정 마세요. 아직 어둡지 않은데요. 집에 가서 저녁 잡숴도 그리 늦지 않아요.”
라부인은 그의 언니의 붙드는 말에 뜰방에 서서 조금 망설인다.
“어머니, 어서 가시지요.”
“그래.”
라부인은 대답을 하고는 웃방으로 들어간다. 조금 후에 조그만 보따리를 들고 나온다.
“어머니, 그것 이리 주세요.”
윤공은 보따리를 자전거에 싣는다.
“언니, 잘 있어. 나중에 올게.”
“그래, 가서 잘 살아라.”
동생을 떠나보내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이 하느라 애를 쓰고 다듬어 설움 먹은 소리로 축원한다.
“언니, 그간 걱정시켜 미안해!”
“별소릴, 우리가 언제 또 만나겠냐?”
그녀는 동생의 어깨도 쓰다듬고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몰라한다.
등을 쓰다듬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소리없이 어깨를 들먹인다.
윤공은 그녀들을 바라보다 눈시울이 붉혀져 자전거의 보따리를 내려다 본다.
“형숙아, 이리온. 이모가 안아 보자.”
형숙이는 자전거 앞바퀴에 달린 방울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이모에게 달려가 이모의 팔에 매달린다.
“이 불쌍한 것.”
그녀는 형숙이를 와락 끌어안는다.
“너는 엄마와 잘 살아야 한다. 엄마 말 잘 듣구 잘 살아다오.”
그녀의 말소리는 돌에 매달려 자꾸만 가라앉는다.
“언니, 걱정마. 앞으로는 잘 살을께. 언니!”
“그래야지...
부디 잘 살아다오.”
“언니! 언니! 나좀봐. 언니!...
언니 동생만 혼자됐수? 열심히 살을께. 언니!”
라부인의 달래는 소리에 그녀는 형숙이를 놓고 허리를 꾸부려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다가 고개를 쳐든다.
“형숙아! 이모에게 절해야지.”
형숙이는
“이모 안녕.”
하곤 꾸벅한다.
“오냐! 잘가거라.”
“언니, 나중에 올게.”
“그래라. 부디 복 받구 살아라.”
“그럼, 이모님 안녕히 계세요. 종종 찾아 뵙겠습니다.”
“그러기가 쉬운가?”
“노력하지요.”
“믿어, 우리 집에서 한 말.”
형숙이 이모는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며 동생을 전송한다.
라부인은 언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자주 돌려 언니를 쳐다본다.

라부인은 착한 아들을 따라 팔자를 고쳐왔다. 그 믿었던 아들이 죽어가고 있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라부인은 영감이 죽었을 땐 이미 각오가 굳어져 있어 그런대로 체념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본적도 없는 일이 발등에 떨어짐에는, 눈 앞이 캄캄한 게 어리처 허둥대다 억울한 것 짚히면 꺼내고 야속에 발부리 채이면 넘어져 물에 빠진 꼴이 되고만다.
눈물 방울에 비친 천정 모서리에서 동아줄이 하나씩 내려온다. 동아줄은 그녀의 발과 손을 하나씩 묶는다. 그리고 올라간다. 허공에 매달려 옴짝달싹 못하는 자신을 바라본다. 남의 아들도 바라볼 자격이 없는가? 영감이 죽고, 아들이 따라서 죽고, 나는 죽는데만 찾아다니는 복을 탓구나. 죽기는 왜 죽나? 혼자만 편하려구. 나보곤 오래만 살으라구 하더니...
나는 원래 죄가 많은 년이라서 슬프구 아린게 좇아만 다니는구나.
아들보구 따라온게 죄가 되나? 얼마나 아프면 죽는 거냐? 이세상이 이렇게 좋은데 늙지두 않구 왜죽어? 일어나라구. 일어나. 일어나요.’
그녀는 중얼거리다 ‘아이고’ 땜을 놓는다.
은부인은 시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질겁을 하여 사랑방으로 서둘러 들어간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어머니가 이러시면 아들은 어떻겠어요. 이러시는 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겠어요.”
“상길 엄마, 우린 어떻게 살아...정이나 끊고 가지. 왜 죽어?”
은부인은 시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녀의 눈에도 뿌연한 게 올라와 움직이는 손끝이 가늘게 떤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진정하세요. 그리고 주무세요. 어머니가 이러시면 아무일도 할 수 없어요. 어머니!”
은부인은 라씨의 얼굴을 다시 닦아준다. 라부인이 잠이 든걸 보고는 시어머니 방을 나간다. 뜰방에 내려서서 신을 찾는 그녀의 어깨는 가늘게 떨고있다. 소매등으로 얼굴을 쓸어내고 신을 더듬어 찾아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