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10.꿈 찾는 아들)
Author
yeongbeome2
Date
2024-07-02 22:13
Views
72
상길이는 벌떡 일어난다. 그는 오고 가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뛰쳐나왔다.
“이거 내가 너무 늦잠을 잤는데. 일찍 일어난다구 한 것이 그만...
저기서 자던 사람은 어디루 갔네. 신신 백화점이 있나 물어보기나 하자.”
그는 옷을 툭툭 털고 흙이 마른 곳은 비빈다. 눈꼽도 떼어낸다. 조금은 부끄럼에 잠긴다. 망설이던 그는 교차로 쪽으로 걸어간다. 책가방을 들고가는 학생에게 신신 백화점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묻는 소리는 초조가 뒤섞여 학생의 눈치를 살피며 맘을 졸인다. 그리고 그의 눈은 학생의 입을 붙들고 사정을 한다.
“곧장 가면 있어요. 다음 교차로에서 물어 보세요.”
그는 금새 얼굴이 취직이나 한 것처럼 고마워하며 좋아라 걷는다.
그는 신신 백화점을 찾고 나서 신신 백화점 주위를 맴돌며 기웃거리며 백화점에서 조금 떨어진 황성관을 찾아낸다. 그는 이 음식점은 누나가 말하던 음식점이라고 어거지로 짐작한다. 그는 황성관 옆으로 뚫려진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찾아 들어간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건물들의 지붕 위를 쳐다보고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골목길을 다 벗어나 건너편 큰 길까지 나와 섰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몸뚱아리를 틀어 골목을 다시 들여다 본다.
어쩌면 좋은가! 어쩌나! 이럴수가 하는게 여드름처럼 얼굴에 덕지덕지 솟았다.
막다른 곳을 찾는 그의 눈은 십자가를 찾아 지붕 위를 이리뛰고 저리뛴다. 그는 초조가 집을 찾지 못하게 말리자 침을 자주 삼킨다. 그리고 발을 동동거린다. 입은 덩달아 “제기랄” 소리를 숨쉬듯한다.
“누님 말대로 하면 교회가 있어야 되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골목길을 다시 들어서는 그의 눈에 조그만 간판이 눈에 비친다.
간판을 더듬는 그의 눈에 초조가 서둘러 지워지기 시작한다. 담배표 크기 만한 흰 간판에 중앙교회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간판은 키큰 사람의 머리에 부딪칠 것 같이 달려있다.
상길이는 믿기지 않는듯 잠시 멍청히 서있다가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지붕을 두리번거린다. 십자가는 아까부터 그의 눈에 보이질 않는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당숙이 있어야 된다고 억지를 부린다. 예배당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예배당은 십자가가 뾰족하게 모두 달려있는데, 여긴 중앙교회라?”
그는 미덥지가 않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섰다. 그는 중앙교회란 간판을 달기가 쑥스러워 편지나 제대로 찾아오라고 문패 대신 달아 놓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는 그러고만 있을 수가 없는지 허름한 대문 사이로 안을 기웃한다.
판자로 만든 대문은 허구한날 날비를 맞아 낡아 빠진게 자빠져 눕는 것을 막느라 늙은이처럼 지팡이를 짚고 이마만 겨우 들었다.
안으로 큰 수레가 들어갈 수 있게 십여 미터 길이 뚫렸다.
오른편으론 빨간 벽돌로 담장이 쳐졌고 왼편엔 허술하고 낡은 벽이 담장을 대신한다. 그리고 판자가 이어져 담을 쌓았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현관문이 햇살을 받아 집안이 끌려나와 보일듯 한다.
쪽문을 발견한 그는 쪽문을 살며시 밀쳐본다. 쪽문은 맥도 없이 헐렁하게 열린다. 그는 허리를 꾸부리고 고개를 숙여 밀어넣고 집안의 동정을 살핀다. 그리곤 ‘여기서는 불러도 소용이 없겠다. 안에 있는 현관에서 물어 봐야겠다’ 고 마음을 먹는다.
마음을 다져 먹은 그는 조심스레 쪽문을 넘는다. 현관에 선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현관문을 가볍게 노크를 한다. 안에서는 아무 인기척이 없다. 그는 조심스레 다시 노크를 한다. 노크를 하는 그의 마음은 은근히 불안하기만 하다. 집주인이 짜증이나 내면 어쩌나 하는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기다린다. 집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그는 주저하다가 용기를 끄집어낸다. 이른 아침이지만 할 수 없다고 맘을 도사려 먹는다.
“계십니까? 말씀 좀 묻겠습니다.”
그는 소리쳐 불러본다. 현관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그는 다시 현관을 향해 소리쳐 찾는다.
“누구십니까?”
하는 소리가 등뒤에서 물어온다.
상길이는 소리따라 고개를 돌려 소리를 찾는다. 소리는 판자 울타리 속에서 넘어왔다고 여겨진다.
그는 다시
“말씀좀 묻겠어요?”
그리고 대답을 기다린다. 판자 울타리에 붙은 쪽문이 삐꺽 열린다.
“누구를 찾으시나요?”
경상도 억양이 물어 나온다.
“혹시 태윤구 목사님댁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저는 한삼내에서 사는 태상길인데요...”
“상길이라구!”
젊은이는 반가운듯 그제야 얼굴을 쪽문 밖으로 내어놓고 확인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안에다 알린다.
“한삼내에서 상길이가 왔습니더.”
하고 소리친다.
상길이는 아는 체 하는 젊은이가 이상하게 느껴져 어리둥절한 눈으로 실감을 찾느라 쪽문 안을 흘끔거린다.
“누가 왔다구?”
방안에서 묻는 소리가 자상스레 쪽문으로 좇아 나온다.
“한삼내에서 상길이가 왔어요.”
“아, 그래? 어서 올라 오너라.”
상길이는 그제야 맘을 놓는다. 인자한 저 목소리는 당숙의 모습을 찍어 나온 것이라고 기억을 확인하고는 환한 얼굴이 된다. 당숙네집을 찾았다는게, 마냥 좋고 아늑한게 그를 휘감는다.
그는 청년의 말따라 성큼 쪽문 안으로 들어선다. 그의 당숙은 마루로 나와서 상길이를 반긴다. 그는 당숙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어서 올라 오거라. 네가 여기를 다 오구, 이제 다 컸구나.”
상길인 당숙의 소개따라 당숙모에게 인사를 하고 젊은 육촌형에게 인사를 한다. 그는 수돗물로 세수를 하고 발도 씻는다. 그의 육촌형은 그에게 수건을 건네준다.
“여기 찾아 오느라 고생 안했냐?”
“고생했어요.”
“여기 찾기가 쉬운데...”
“제가 무턱대고 청량리에서 찾아 다녔어요.”
“고생했구나?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예.”
방으로 들어온 그는 당숙과 당숙모에게 절을 한다.
“그래 아버지, 어머니는 안녕 하시냐?”
“예”
“대전에 있는 삼촌댁은?”
“안녕들 하세요.”
“언제 서울에 올라 왔냐?”
“어제 새벽에 왔어요.”
“그래 어디서 잤느냐?”
“모르겠어요. 길에서 잤어요.”
“집을 못찾아 고생했구나.”
“서울은 주소를 갖고도 찾기가 어렵단다. 그럼 좀 쉬거라.”
인사가 끝났다. 상길이는 방안을 둘러본다. 방은 일곱자가 될까말까 한다. 벽지는 물이 빠져 푸르스름이 때처럼 끼었다. 천정은 방 넓이를 따르느라 키큰 사람은 함부로 뻣뻣하게 나서지 못할 입장이다.
웃목에 선반이 가냘프게 매달렸다. 선반 위에는 치약 두 개가 포개졌고 비누가 덩달아 포개졌다. 두껍지 않은 책도 손가방도 휴지타레도 자리를 잡았다. 도시락 크기 만한 빨간책이 상길이 눈을 자석처럼 끌어 당긴다. 눈을 팔던 그는 “밥 먹자” 는 소리에 끌려 나온다.
“너희 집은 농사를 얼마나 짓느냐?”
“아홉 마지기요.”
“중학교 졸업을 했슴 고등학교 보내 달래지.”
그의 당숙모는 수저를 들고서 또 물어 보느라 밥먹는 것을 잊는다.
“너희 삼촌이 공장하고 너희 집도 밥은 먹겠는데 와 못 가르치나? 그래 앞으로 뭘 할끼가?”
그녀의 목소리는 경상도 억양에 까랑까랑하기만 한 것이 억세게만 생겼다. 상길이의 얼굴엔 그만저만 하였으면 밥이나 먹거든 묻지 하는게 내비치기 시작한다. 상길이는 서울 온 목적을 그녀의 질문에 따라서 조심조심 꺼내놓는다. 그리고 기대를 가지려 든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 너의 당숙은 교회 일밖에 모르는 분이다.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 너희 삼촌보고 부탁하지. 그리구 서울은 살기가 힘든 곳이지.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게 제일 편하다. 내려가서 농사 짓거라이.”
그녀는 질겁을 하여 싸개를 놓는다. 상길이는 당숙의 얼굴도 살피느라 밥을 먹질 못한다.
“어서 먹어라.”
“예.”
그의 대답은 실망스러움이 말소리에 둥둥 떠다닌다.
‘말은 생각해서 잘 하시는구랴. 나두 서울에서 살고 싶어요. 지게다리 두드리면 등에 뿔납니다. 내가 여기에 계속 눌러붙어 있지 않는다구요. 남에게 인심 쓸데는 많지 않아요.”
하는 게 끓어올라 그의 얼굴에 배었다.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고마와하질 못한다. 반찬이 무엇인지 국이 무슨 국인지 생각이 비어진 채 먹고 마시고는 물러난다.
아침을 먹고 난 그의 당숙은 조그만 가방을 들고 심방 간다고 밖으로 나간다. 그의 육촌형도 볼일 보러 간다면서 뒤따라 나간다.
상길이도 집으로 간다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질이 가슴에서 불끈거린다. 고삐를 잡힌 송아지 꼴이 되어 옴짝달싹을 못하고 잃어버린 돈 생각에 분함이 가득한 채 당숙의 처분만 기다리기로 마음을 다진다. 상길은 억지로 마루에 걸터 앉아 집안을 살핀다. 예배당과 마루 사이는 너무 비좁고 답답하다고 여긴다. 담벼락에서 기어 나오느라 희게 벗겨진 수도 꼭지가 답답을 씻어낼듯이 물을 쏟는게 조금은 마음 속을 씻어 내준다.
의자 넓이 만한 마루는 아랫방 웃방을 엮었다. 부엌은 판자로 까작을 달아내어 겨우 가렸다. 그리고 비닐을 포장 씌우듯 했다. 그는 고개를 젓는다. 기둥을 본다. 그리곤 어이없어 한다.
“아이들 다리 같은게 용하네.”
그는 중얼거리며 생각을 굴린다.
“시골 우리집과 비교가 안되지만...”
그는 서울 산다는 걸 부러워 하는게 솟아남을 어쩌지 못해 지고 만다.
“심심하제? 서울 왔으니 창경원 구경이나 하고 가야제.”
“구경은요.”
“앗다!”
그녀는 백원짜리 두 개를 받으라고 뾰족히 쥐고 내어민다. 상길이는 마지못해 주저하다가 받고 만다. 그리고 등때기를 떠밀리어 창경원을 찾아간다.
그의 마음은 온통 취직이 되어 공장에 다니는 생각으로 덮여 그를 괴롭힌다. 그에게 창경원의 동물을 보아도 시내의 움직임도 아무 흥미가 일지 않는다. 그냥 침침하게만 보일 뿐이다.
동네를 휑 한바퀴 돈 듯한 그는 돈만 괜히 버렸다고 여긴다. 산다는게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되는 것인가를 배운다. 그러느라 고개를 떨구고 당숙네집을 향한다.
“아니, 그새 구경을 다 했나?”
“예, 별로 좋지두 않던데요.”
그는 호들갑스럽게 묻는 당숙모 말에 심드렁하게 정없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한다.
“넌, 별나구나! 구경을 싫어하고, 그래 가지고 서울 왔다간 기분이 나는가? 시내 구경 더 하거래.”
“어제 많이 했어요.”
“아참! 집 찾느라 고생했다 했지. 그럼 웃방에서 한숨 푹 자그라.”
“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지도 오래 되었다. 태 목사는 파김치가 되어 시커먼 손가방을 든 채 쪽문을 들어선다. 상길이는 그를 맞아 인사를 하고는 마루 한쪽에 앉는다. 그는 당숙이 저녁 식사를 끝내기를 기다린다.
‘아침에는 당숙모가 이야기할 때 아무 말씀도 안하셨는데 아무 곳에나 넣어 달라고 말을 해 보아야지’ 하며 벼른다.
저녁 식사를 끝낸 태 목사는 마루로 나와 앉아 부채를 들고 더위를 식힌다.
“서울 구경을 해보니 느낌이 어떻든?”
그는 부채를 들고 바람을 일구다 말고 상길이에게 묻는다.
“서울은 아주 큰 곳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대전보다야 크잖니?”
“예. 저를 어디다 넣어주세요.”
그는 주저하다 말을 서둘러 해낸다.
“글쎄다! 객지에 나오면 고생이란다. 아버지따라 농사나 지으려므나.
서울은 인심이 야박하여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저는 기술을 배우던지 심부름하며 야간학교에 다닐려고 왔어요.
농사짓는 일은 하기 싫어요.”
“부모의 가업은 이어 받는게 좋다. 개중에는 딴 직업도 갖길 원해서 너처럼 도시로 나오는 사람도 있지. 네 나이 때는 꿈도 많지. 그중에는 꿈을 이룬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지.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어느 곳에서나 열심히 살면 되는 거란다.
모든 사람이 자기 욕심대로 성취할 수는 없는 거지. 낙심 말고 열심히 살다보면 기회가 오는 거란다.
사람은 개중에 남을 위해 봉사하다가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으시대다가 마는 사람, 놀러만 다니다가 마는 사람, 먹다가 마는 사람, 돈만 번다는 사람도 있지.
넌 무엇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냐? 진실하게 사는게 너를 위하고 넘을 위해 사는 거란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너에게 일감을 주시고 너에게 복도 주신단다.
내가 이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긍지를 가져야 되고 환경이 변해서 딴 일을 하게 되면 비관할 것도 잘난 체 할 것도 없는 거지. 기한이 지나서 끝났다고 여기면 되는 게야. 하나님은 어느 사람에게나 그사람에게 맞는 일감을 주셨어. 남을 부러워하고 쳐다볼게 없는 것이지.
현재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자연히 보람도 생기는 거란다.”
상길이는 당숙이 일러주는 말이 도무지 관심있게 들려지질 않는다.
‘나는 앞길이 막막한 놈이니까, 아버지 말대루 가문이 비색한 놈이니까, 이젠 지게나 지고 산에 나무나 하러 다녀야겠지. 집에서 대접을 못 받는 놈이 나와서 어찌 대접을 받는담. 하긴 당숙이 나와 무슨 상관이람. 내가 더 사정을 해봤자 소용이 없을테고 그냥 저냥 살다가 마는 거지. 이럴줄 알았으면 서울에 오지 않는 건데. 친척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냐!’
그는 미워지는 삶을 동댕이칠 곳을 엿보고 못찾아 짜증이 부글거린다.
다음날 상길이는 허탈하게 마루에 걸터앉아 시간 지나기를 재촉한다.
점심 때쯤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하나, 둘 모여들어 예배당 마룻바닥을 가득 채운다. 상길은 육촌형을 따라 예배당으로 마지못해 들어가 맨 뒤에 앉는다. 그리고 두리번거린다. 그는 교인들의 모습을 흘끔거리며 그들을 따라 무릎도 꿇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자세도 취한다.
당숙의 설교를 듣는 것 같이 보일 뿐 그에겐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귀만 따가울 뿐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그의 목이 붙들어 매인 염소처럼 뱅뱅이를 친다. 당숙을 보고 커다란 의자 세 개를 보고 의자 등받이가 사람 키보다 높이 뽑아져 그 위에 십자가가 하나씩 뾰죽한걸 본다. 강대상에 조그만 십자가를 붙여 놓은걸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리곤 청년들이 초록색 가운을 입고 앉아 있는걸 보고 보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까 부른 노래는 듣기 좋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는 연보하라는 돈을 연보대에 넣는다.
예배가 끝나 그는 사람들 따라 밖으로 나와 마루에 걸터 앉는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내가 일할 곳 하나 구할 수 없다니...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는 취직 부탁을 못하는건가? 당숙이 교인들에게 부탁하면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해주기 싫어서 그런 거지.’
그는 야속스러움을 질겅거리다 뱉고 그리곤 질겅거린다.
“이거 내가 너무 늦잠을 잤는데. 일찍 일어난다구 한 것이 그만...
저기서 자던 사람은 어디루 갔네. 신신 백화점이 있나 물어보기나 하자.”
그는 옷을 툭툭 털고 흙이 마른 곳은 비빈다. 눈꼽도 떼어낸다. 조금은 부끄럼에 잠긴다. 망설이던 그는 교차로 쪽으로 걸어간다. 책가방을 들고가는 학생에게 신신 백화점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묻는 소리는 초조가 뒤섞여 학생의 눈치를 살피며 맘을 졸인다. 그리고 그의 눈은 학생의 입을 붙들고 사정을 한다.
“곧장 가면 있어요. 다음 교차로에서 물어 보세요.”
그는 금새 얼굴이 취직이나 한 것처럼 고마워하며 좋아라 걷는다.
그는 신신 백화점을 찾고 나서 신신 백화점 주위를 맴돌며 기웃거리며 백화점에서 조금 떨어진 황성관을 찾아낸다. 그는 이 음식점은 누나가 말하던 음식점이라고 어거지로 짐작한다. 그는 황성관 옆으로 뚫려진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찾아 들어간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건물들의 지붕 위를 쳐다보고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골목길을 다 벗어나 건너편 큰 길까지 나와 섰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몸뚱아리를 틀어 골목을 다시 들여다 본다.
어쩌면 좋은가! 어쩌나! 이럴수가 하는게 여드름처럼 얼굴에 덕지덕지 솟았다.
막다른 곳을 찾는 그의 눈은 십자가를 찾아 지붕 위를 이리뛰고 저리뛴다. 그는 초조가 집을 찾지 못하게 말리자 침을 자주 삼킨다. 그리고 발을 동동거린다. 입은 덩달아 “제기랄” 소리를 숨쉬듯한다.
“누님 말대로 하면 교회가 있어야 되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골목길을 다시 들어서는 그의 눈에 조그만 간판이 눈에 비친다.
간판을 더듬는 그의 눈에 초조가 서둘러 지워지기 시작한다. 담배표 크기 만한 흰 간판에 중앙교회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간판은 키큰 사람의 머리에 부딪칠 것 같이 달려있다.
상길이는 믿기지 않는듯 잠시 멍청히 서있다가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지붕을 두리번거린다. 십자가는 아까부터 그의 눈에 보이질 않는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당숙이 있어야 된다고 억지를 부린다. 예배당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예배당은 십자가가 뾰족하게 모두 달려있는데, 여긴 중앙교회라?”
그는 미덥지가 않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섰다. 그는 중앙교회란 간판을 달기가 쑥스러워 편지나 제대로 찾아오라고 문패 대신 달아 놓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는 그러고만 있을 수가 없는지 허름한 대문 사이로 안을 기웃한다.
판자로 만든 대문은 허구한날 날비를 맞아 낡아 빠진게 자빠져 눕는 것을 막느라 늙은이처럼 지팡이를 짚고 이마만 겨우 들었다.
안으로 큰 수레가 들어갈 수 있게 십여 미터 길이 뚫렸다.
오른편으론 빨간 벽돌로 담장이 쳐졌고 왼편엔 허술하고 낡은 벽이 담장을 대신한다. 그리고 판자가 이어져 담을 쌓았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현관문이 햇살을 받아 집안이 끌려나와 보일듯 한다.
쪽문을 발견한 그는 쪽문을 살며시 밀쳐본다. 쪽문은 맥도 없이 헐렁하게 열린다. 그는 허리를 꾸부리고 고개를 숙여 밀어넣고 집안의 동정을 살핀다. 그리곤 ‘여기서는 불러도 소용이 없겠다. 안에 있는 현관에서 물어 봐야겠다’ 고 마음을 먹는다.
마음을 다져 먹은 그는 조심스레 쪽문을 넘는다. 현관에 선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현관문을 가볍게 노크를 한다. 안에서는 아무 인기척이 없다. 그는 조심스레 다시 노크를 한다. 노크를 하는 그의 마음은 은근히 불안하기만 하다. 집주인이 짜증이나 내면 어쩌나 하는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기다린다. 집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그는 주저하다가 용기를 끄집어낸다. 이른 아침이지만 할 수 없다고 맘을 도사려 먹는다.
“계십니까? 말씀 좀 묻겠습니다.”
그는 소리쳐 불러본다. 현관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그는 다시 현관을 향해 소리쳐 찾는다.
“누구십니까?”
하는 소리가 등뒤에서 물어온다.
상길이는 소리따라 고개를 돌려 소리를 찾는다. 소리는 판자 울타리 속에서 넘어왔다고 여겨진다.
그는 다시
“말씀좀 묻겠어요?”
그리고 대답을 기다린다. 판자 울타리에 붙은 쪽문이 삐꺽 열린다.
“누구를 찾으시나요?”
경상도 억양이 물어 나온다.
“혹시 태윤구 목사님댁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저는 한삼내에서 사는 태상길인데요...”
“상길이라구!”
젊은이는 반가운듯 그제야 얼굴을 쪽문 밖으로 내어놓고 확인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안에다 알린다.
“한삼내에서 상길이가 왔습니더.”
하고 소리친다.
상길이는 아는 체 하는 젊은이가 이상하게 느껴져 어리둥절한 눈으로 실감을 찾느라 쪽문 안을 흘끔거린다.
“누가 왔다구?”
방안에서 묻는 소리가 자상스레 쪽문으로 좇아 나온다.
“한삼내에서 상길이가 왔어요.”
“아, 그래? 어서 올라 오너라.”
상길이는 그제야 맘을 놓는다. 인자한 저 목소리는 당숙의 모습을 찍어 나온 것이라고 기억을 확인하고는 환한 얼굴이 된다. 당숙네집을 찾았다는게, 마냥 좋고 아늑한게 그를 휘감는다.
그는 청년의 말따라 성큼 쪽문 안으로 들어선다. 그의 당숙은 마루로 나와서 상길이를 반긴다. 그는 당숙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어서 올라 오거라. 네가 여기를 다 오구, 이제 다 컸구나.”
상길인 당숙의 소개따라 당숙모에게 인사를 하고 젊은 육촌형에게 인사를 한다. 그는 수돗물로 세수를 하고 발도 씻는다. 그의 육촌형은 그에게 수건을 건네준다.
“여기 찾아 오느라 고생 안했냐?”
“고생했어요.”
“여기 찾기가 쉬운데...”
“제가 무턱대고 청량리에서 찾아 다녔어요.”
“고생했구나?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예.”
방으로 들어온 그는 당숙과 당숙모에게 절을 한다.
“그래 아버지, 어머니는 안녕 하시냐?”
“예”
“대전에 있는 삼촌댁은?”
“안녕들 하세요.”
“언제 서울에 올라 왔냐?”
“어제 새벽에 왔어요.”
“그래 어디서 잤느냐?”
“모르겠어요. 길에서 잤어요.”
“집을 못찾아 고생했구나.”
“서울은 주소를 갖고도 찾기가 어렵단다. 그럼 좀 쉬거라.”
인사가 끝났다. 상길이는 방안을 둘러본다. 방은 일곱자가 될까말까 한다. 벽지는 물이 빠져 푸르스름이 때처럼 끼었다. 천정은 방 넓이를 따르느라 키큰 사람은 함부로 뻣뻣하게 나서지 못할 입장이다.
웃목에 선반이 가냘프게 매달렸다. 선반 위에는 치약 두 개가 포개졌고 비누가 덩달아 포개졌다. 두껍지 않은 책도 손가방도 휴지타레도 자리를 잡았다. 도시락 크기 만한 빨간책이 상길이 눈을 자석처럼 끌어 당긴다. 눈을 팔던 그는 “밥 먹자” 는 소리에 끌려 나온다.
“너희 집은 농사를 얼마나 짓느냐?”
“아홉 마지기요.”
“중학교 졸업을 했슴 고등학교 보내 달래지.”
그의 당숙모는 수저를 들고서 또 물어 보느라 밥먹는 것을 잊는다.
“너희 삼촌이 공장하고 너희 집도 밥은 먹겠는데 와 못 가르치나? 그래 앞으로 뭘 할끼가?”
그녀의 목소리는 경상도 억양에 까랑까랑하기만 한 것이 억세게만 생겼다. 상길이의 얼굴엔 그만저만 하였으면 밥이나 먹거든 묻지 하는게 내비치기 시작한다. 상길이는 서울 온 목적을 그녀의 질문에 따라서 조심조심 꺼내놓는다. 그리고 기대를 가지려 든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 너의 당숙은 교회 일밖에 모르는 분이다.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 너희 삼촌보고 부탁하지. 그리구 서울은 살기가 힘든 곳이지.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게 제일 편하다. 내려가서 농사 짓거라이.”
그녀는 질겁을 하여 싸개를 놓는다. 상길이는 당숙의 얼굴도 살피느라 밥을 먹질 못한다.
“어서 먹어라.”
“예.”
그의 대답은 실망스러움이 말소리에 둥둥 떠다닌다.
‘말은 생각해서 잘 하시는구랴. 나두 서울에서 살고 싶어요. 지게다리 두드리면 등에 뿔납니다. 내가 여기에 계속 눌러붙어 있지 않는다구요. 남에게 인심 쓸데는 많지 않아요.”
하는 게 끓어올라 그의 얼굴에 배었다.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고마와하질 못한다. 반찬이 무엇인지 국이 무슨 국인지 생각이 비어진 채 먹고 마시고는 물러난다.
아침을 먹고 난 그의 당숙은 조그만 가방을 들고 심방 간다고 밖으로 나간다. 그의 육촌형도 볼일 보러 간다면서 뒤따라 나간다.
상길이도 집으로 간다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질이 가슴에서 불끈거린다. 고삐를 잡힌 송아지 꼴이 되어 옴짝달싹을 못하고 잃어버린 돈 생각에 분함이 가득한 채 당숙의 처분만 기다리기로 마음을 다진다. 상길은 억지로 마루에 걸터 앉아 집안을 살핀다. 예배당과 마루 사이는 너무 비좁고 답답하다고 여긴다. 담벼락에서 기어 나오느라 희게 벗겨진 수도 꼭지가 답답을 씻어낼듯이 물을 쏟는게 조금은 마음 속을 씻어 내준다.
의자 넓이 만한 마루는 아랫방 웃방을 엮었다. 부엌은 판자로 까작을 달아내어 겨우 가렸다. 그리고 비닐을 포장 씌우듯 했다. 그는 고개를 젓는다. 기둥을 본다. 그리곤 어이없어 한다.
“아이들 다리 같은게 용하네.”
그는 중얼거리며 생각을 굴린다.
“시골 우리집과 비교가 안되지만...”
그는 서울 산다는 걸 부러워 하는게 솟아남을 어쩌지 못해 지고 만다.
“심심하제? 서울 왔으니 창경원 구경이나 하고 가야제.”
“구경은요.”
“앗다!”
그녀는 백원짜리 두 개를 받으라고 뾰족히 쥐고 내어민다. 상길이는 마지못해 주저하다가 받고 만다. 그리고 등때기를 떠밀리어 창경원을 찾아간다.
그의 마음은 온통 취직이 되어 공장에 다니는 생각으로 덮여 그를 괴롭힌다. 그에게 창경원의 동물을 보아도 시내의 움직임도 아무 흥미가 일지 않는다. 그냥 침침하게만 보일 뿐이다.
동네를 휑 한바퀴 돈 듯한 그는 돈만 괜히 버렸다고 여긴다. 산다는게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되는 것인가를 배운다. 그러느라 고개를 떨구고 당숙네집을 향한다.
“아니, 그새 구경을 다 했나?”
“예, 별로 좋지두 않던데요.”
그는 호들갑스럽게 묻는 당숙모 말에 심드렁하게 정없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한다.
“넌, 별나구나! 구경을 싫어하고, 그래 가지고 서울 왔다간 기분이 나는가? 시내 구경 더 하거래.”
“어제 많이 했어요.”
“아참! 집 찾느라 고생했다 했지. 그럼 웃방에서 한숨 푹 자그라.”
“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지도 오래 되었다. 태 목사는 파김치가 되어 시커먼 손가방을 든 채 쪽문을 들어선다. 상길이는 그를 맞아 인사를 하고는 마루 한쪽에 앉는다. 그는 당숙이 저녁 식사를 끝내기를 기다린다.
‘아침에는 당숙모가 이야기할 때 아무 말씀도 안하셨는데 아무 곳에나 넣어 달라고 말을 해 보아야지’ 하며 벼른다.
저녁 식사를 끝낸 태 목사는 마루로 나와 앉아 부채를 들고 더위를 식힌다.
“서울 구경을 해보니 느낌이 어떻든?”
그는 부채를 들고 바람을 일구다 말고 상길이에게 묻는다.
“서울은 아주 큰 곳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대전보다야 크잖니?”
“예. 저를 어디다 넣어주세요.”
그는 주저하다 말을 서둘러 해낸다.
“글쎄다! 객지에 나오면 고생이란다. 아버지따라 농사나 지으려므나.
서울은 인심이 야박하여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저는 기술을 배우던지 심부름하며 야간학교에 다닐려고 왔어요.
농사짓는 일은 하기 싫어요.”
“부모의 가업은 이어 받는게 좋다. 개중에는 딴 직업도 갖길 원해서 너처럼 도시로 나오는 사람도 있지. 네 나이 때는 꿈도 많지. 그중에는 꿈을 이룬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지.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어느 곳에서나 열심히 살면 되는 거란다.
모든 사람이 자기 욕심대로 성취할 수는 없는 거지. 낙심 말고 열심히 살다보면 기회가 오는 거란다.
사람은 개중에 남을 위해 봉사하다가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으시대다가 마는 사람, 놀러만 다니다가 마는 사람, 먹다가 마는 사람, 돈만 번다는 사람도 있지.
넌 무엇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냐? 진실하게 사는게 너를 위하고 넘을 위해 사는 거란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너에게 일감을 주시고 너에게 복도 주신단다.
내가 이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긍지를 가져야 되고 환경이 변해서 딴 일을 하게 되면 비관할 것도 잘난 체 할 것도 없는 거지. 기한이 지나서 끝났다고 여기면 되는 게야. 하나님은 어느 사람에게나 그사람에게 맞는 일감을 주셨어. 남을 부러워하고 쳐다볼게 없는 것이지.
현재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자연히 보람도 생기는 거란다.”
상길이는 당숙이 일러주는 말이 도무지 관심있게 들려지질 않는다.
‘나는 앞길이 막막한 놈이니까, 아버지 말대루 가문이 비색한 놈이니까, 이젠 지게나 지고 산에 나무나 하러 다녀야겠지. 집에서 대접을 못 받는 놈이 나와서 어찌 대접을 받는담. 하긴 당숙이 나와 무슨 상관이람. 내가 더 사정을 해봤자 소용이 없을테고 그냥 저냥 살다가 마는 거지. 이럴줄 알았으면 서울에 오지 않는 건데. 친척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냐!’
그는 미워지는 삶을 동댕이칠 곳을 엿보고 못찾아 짜증이 부글거린다.
다음날 상길이는 허탈하게 마루에 걸터앉아 시간 지나기를 재촉한다.
점심 때쯤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하나, 둘 모여들어 예배당 마룻바닥을 가득 채운다. 상길은 육촌형을 따라 예배당으로 마지못해 들어가 맨 뒤에 앉는다. 그리고 두리번거린다. 그는 교인들의 모습을 흘끔거리며 그들을 따라 무릎도 꿇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자세도 취한다.
당숙의 설교를 듣는 것 같이 보일 뿐 그에겐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귀만 따가울 뿐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그의 목이 붙들어 매인 염소처럼 뱅뱅이를 친다. 당숙을 보고 커다란 의자 세 개를 보고 의자 등받이가 사람 키보다 높이 뽑아져 그 위에 십자가가 하나씩 뾰죽한걸 본다. 강대상에 조그만 십자가를 붙여 놓은걸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리곤 청년들이 초록색 가운을 입고 앉아 있는걸 보고 보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까 부른 노래는 듣기 좋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는 연보하라는 돈을 연보대에 넣는다.
예배가 끝나 그는 사람들 따라 밖으로 나와 마루에 걸터 앉는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내가 일할 곳 하나 구할 수 없다니...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는 취직 부탁을 못하는건가? 당숙이 교인들에게 부탁하면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해주기 싫어서 그런 거지.’
그는 야속스러움을 질겅거리다 뱉고 그리곤 질겅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