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6.만드는 본능)
작성자
yeongbeome2
작성일
2024-07-06 22:11
조회
21
윤수의 아내는 저녁을 지어서 아이들을 먹이고는 그녀의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그녀는 항상 남편이 늦게 돌아오나 일찍 돌아오나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다가 남편이 돌아와야 같이 저녁을 먹는다.
윤수는 볼일이 늦어도 친구와 어울리게 되어 늦어도 그의 머릿속에는 ‘아내가 기다린다, 기다리고 있다’ 는 글자가 새겨져 노란불을 껌벅인다. 그는 친목회다, 계다 하여 술자리가 벌어지고 저녁을 먹을수밖에 없는 때도 술은 마시면서 밥은 먹지를 않는다.
친구들이 밥을 먹으라고 권하면 술을 먹으면 밥을 못먹는 체질이라고 변명 아닌 거짓말을 하여 슬쩍 넘기곤 한다. 그럴 때 친구들은 사모님 모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네. 어떻게 그렇게 여편네 치맛자락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느냐? 마누라 잘 모시는 비결 좀 가르쳐 달라는 놀림을 받는다.
윤수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 왔다. 그는 문을 열어주는 아내에게 사과의 말을 한다.
“늦어서 미안해.”
“당신 몸 생각 하셔야지요.”
“어쩔수 없었다구.”
“시장두 안하셔요?”
“이제 먹으면 되지.”
윤수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우물에 나가 손을 씻고 세수도 한다.
윤수 아내는 밥상을 차려서 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밥상을 마주 하고 늦은 저녁을 먹는다.
“여보.”
윤수의 아내는 남편을 불러본다.
윤수는 수저를 들고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의 눈은 사랑스러움이 넘실댄다. 그는 아내의 얼굴에서 평상시와 같지 않은 진지한 것을 찾아 낸다. 윤수는 아내가 부르기만 하고 다음 말을 하지 않자 밥을 한수저 떠서 입에 넣고서 우물거리며 말을 어서 하라는 눈빛을 보낸다.
윤수 아내는 남편의 재촉에 서둘러 아무것두 아니라고 남편의 관심을 돌리려 한다. 그는 아내의 어색한 망설임을 보고 싱긋 웃는다.
“국이 오늘따라 좀 싱겁구먼.”
“안그런데.”
“임자를 닮았나봐.”
“당신두 참!”
그들 내외는 흐뭇함 속에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식사를 가볍게 끝낸 윤수 아내는 상을 부엌으로 내간다. 윤수는 곤히 자고 있는 딸들을 자상스럽게 바라본다. 아이들의 손도 잡아보고 머리도 쓰다듬는다. 윤수는 아쉬워하는 맘을 갖는다. 뒤따라 파고드는 허전함을 막으려고 기를 쓴다.
‘이녀석들 가운데 하나만 고추를 달고 나오지...
나는 아들 둘 복이 없는 것인가?’
그는 딸만 다섯 두었다.
그의 아내는 이따금
“나는 아들을 못 낳을 팔잔가봐요.”
아들두지 못하는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자기의 죄가 많다고 남편에게 미안해하였었다.
그때마다 윤수는 아내를 위로하곤 하였다.
“딸이면 어때. 남들 보니 딸만 두었어도 딸들이 아들 노릇 다 하던데 딸은 자식 아닌가? 우리도 아들 두는 날이 올테니 안심 놓으라구.
딸이 있어야 비행기를 탄다는 세상이라구.” 하며 위로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나도 아들을 하나 두었으면 하는 욕망이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아쉬움에 휘감겨 버린다.
그는 부엌문 여닫는 소리에 찔끔한다. 씁쓸한 기분을 지우느라 요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윤수는 이내 다정스런 아주 정이 가득 담긴 소리로 아내를 부른다. 그리고는 아까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 마저 하라고 말한다.
윤수 아내는 주저주저하다가 자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말을 냉큼 잇지 않는다.
“당신은 내가 아이들을 못 가르칠까봐 걱정인가 보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당신을 호강은 못 시켜도 아이들 교육만은 문제없이.
열명이라두 대학까지 가르칠 수 있어. 모두 가르쳐 시집 잘 보낼테니 안심하셔.
윤수는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을 하면서도 눈이 시린듯 눈을 내리뜨고 생각을 굴린다. 내가 딸만 두고 있으니까 내가 아들 두기 위해 바람이라도 피울까 보아서 맘이 놓이지 않아서 그러는건 아닌지. 혹시 내 행동이 아내가 볼 때 이상하게 보이는게 있어 오해하고 있는건 아닌가를 조목조목 맞추어 본다.
“아녀요. 오늘따라 당신이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요.”
윤수는 찔끔한다.
‘어떻게 내 생각을 뒤집어 본듯 말할 수 있담.’
그는 아내가 이마얹은 팔을 빗길까봐 팔에 힘을 주며 딴청을 부린다.
“별소릴 다 듣겠구먼. 쓸데없는 소리 말어. 괜히 청승맞은 소리하구있어. 나는 아들이나, 딸이나 구별 않는것 몰라서 그래? 나는 욕심 부리지 않아요. 내 복에 없는 자식을 누굴 탓해. 내가 언제 아들타령 했담.
당신답지 않게 왜 그래. 남편이 그만큼 이야기 했슴 그만둬야지.
내 입에서 계속 다짐을 받아 내야 맘이 놓이는 거야? 딸도 못두는 사람도 있는데....그런 사람에게 비기면 복이 과한게야. 당신이 단산할때 까지 낳아보고 나서 그때 어쩌구저쩌구 하자구. 미리부터 안달하지 말고. 그래봐야 기분만 상하잖아. 난 그런말 자꾸하기 싫어요.”
그는 얺짢은게 담겨진 말로 억양을 높였다간 부드럽게 한다.
“알아요. 당신은 아버님이 손자 못 본다고 새 장가 들으라고 하셨어도 당신은 나만 생각한 것 알고 있어요. 나는 누가 뭐래두 당신을 믿는다구.”
“그럼 걱정말구 잠이나 자지.”
“큰 집은 참 좋겠어요.”
“형님은 기쁘실거여. 늦게 또 아들을 두셨으니 마음 놓으시게 됐어.
형님은 원래 착하셔서 심덕이 좋은 양반이라 심덕으로 두신거라구.”
그는 이마 위의 팔을 잽싸게 내리고 신바람이 나서 좋아한다.
“당신은 그게 나빠요. 당신은 자기를 너무 학대하세요. 왜 그래요.
듣기 싫게. 당신두 남들이 그러는데 법 없어두 살 사람이라고 합디다.
그런데두 당신은 자신을 너무 비하하는 버릇이 몸에 배인것 같아요.
너무 그러니까 옆에서 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요. 넘에게 끌려만 다니는 사람 같다구요.”
“나는 형님과 비교가 안된다구. 난 형님처럼 그런 성품이 없어.”
“누가 당신 형님이 어떻다구 그러나요.”
“형님은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신다구. 당신두 알다시피 우리가 하루속히 잘 살아보라구, 기반을 세우라구 밀어주고 염려하시는데. 난 형님의 마음에 반에 반도 보답도 못한다구.”
“형제간에 그만한 우애도 없으면 되겠어요? 걱정되는게 있어요.
당신이 혹시 오해를 할까봐 아까부터 망설였는데. 들어볼래요? 화내지 말구.”
“밑도 끝도 없이 화는 왜. 걱정이란 뭔데?”
“당신 형제간에 그좋은 우애가 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어요.
그래서 말을 하기가 좀 뭣 해서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잠이나 자자구.”
“내가 괜히 그런 소리 하는 줄 아세요. 근거가 있다구요. 정말 모르세요. 우리 집과는 벌써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금이 가다니, 어째서?”
윤수는 눈을 곱게 뜨지 않고 재수없는 소리 그만 하라고 눈을 부라려 흘긴다.
“당신은 형님 형님 하면서 조카인 상길이는 넘 보듯 하는거요. 그 아이는 밤에 자다가 변소에 가기 싫어서 창문 열고 오줌을 싸고...”
“그거야 어려서 그렇지.”
“어리면 그런가요. 그애 말하는 소리 들어봐요. 어린가?
도시락을 싸서 줘도 반찬이 나쁘다고 안 가져가요. 우리 집에서 보고 들은 말을 고모네 집에 가서 모두 말하고, 그리고 내가 저에게 어떻게 한다는 소리 저희 집에 가서 죄다 말하는 아이라 큰 일이예요.
내가 보기엔 싹수가 노란 아이라구요. 아무리 우리가 애써서 가르쳐도 소용이 없어요. 글쎄, 수박을 먹으라고 제방에 두었더니 글쎄, 나나 제 동생들 보고 먹어보란 말 한마디 없이 저혼자 먹더라구요.”
“별걸 다 가지고 그러는구먼. 철 들면 안 그럴거여. 그러니까 가르치는거 아냐. 사람노릇 하라구. 다 알면 뭣하러 학교 보내.”
“그뿐인 줄 아슈? 먼젓 번에는 어데서 술을 먹고 들어와서 토하고 했다우. 그런데두 상관 없어요? 조그만게 벌써부터...
제 말엔 고모가 먹어보라구 해서 조금 먹었다구 합디다. 아이들에게 술을 먹으라는 이도 한심하구. 술을 가르치려고 하는건가? 누구를 골탕 먹일려구 하는 짓이지...
좌우간 큰 아버지가 우리에게 상길이를 맡길 때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잘 키우라고 맡기셨는데 당신은 책임질 수 있어요? 나는 책임을 못 진다구요. 더 이상 두고 보다간 무슨 원망을 들을른지 모르고...
내 자식 키우기도 힘드는 판에 속 건데기를 무슨 가르친담.
아버지 없는 조카라면 몰라두. 생각해 보세요. 당신 딸이 하나요, 둘이요.내자식 팔자타령 하면서 키우는 판에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냐구요. 고생을 하면 보람도 있어야지. 보람은 커녕 욕이나 먹고 원망만 듣게 생겼으니...
난 이제 몰라유. 모로 가던 바로 가던 난 손 떼기루 했으니까.”
윤수는 입맛을 다시며 고심을 한다.
“당신은 상길이 걱정 어지간히 하시고 당신 자식이나 걱정하세요.
내가 처음부터 뭐랬어요. 데리고 있음 나중에 좋은 소리 못 듣고 한다니까, 박박 우기더니 내 말대루 했슴 그때만 조금 서운하고 말것을 이건 두고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 시리게 듣게 생겼으니. 의리있네, 뭐네 하면서 감당도 못하면서...
상길이 그녀석에게 내가 욕먹고 당신이 욕먹고 있는 것 알기나 하는지. 원, 당신이 그애 보고 뭐라고 나무라면 내가 쏘세기질 해서 그런다구 할께 뻔하지.
시아주버님이 자식 버려놨다면 당신이 책임지세요. 형제간에 돕고 도움 받는건 형제간에 끝내야지. 자식을 바꿔서 가르치는게 뭐예요.
나는 지금도 그 점은 이해가 안가요. 형이 동생 가르쳤다고 동생은 조카 가르쳐야 한다는게 당치 않다구요.“
윤수는 아내가 졸지에 달려들어 할퀴듯 하는 소리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빠져 나갈 구멍도 보이질 않는다. 얼얼한 몸둥아리를 주체를 못해 다급히 소리친다.
“그럼 어떻게 하겠어?”
그의 급한 소리는 목구멍을 헐떡거리며 넘는다. 그리고 주저앉는다.
그리곤 기어나오느라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그의 얼굴은 ‘아내 이길 놈이 어데 있냐? 자고로 사내란 여편네에게 눌려서 뭉게지게 마련인데 너라고 별 수 있겠냐?’ 는 소리가 윤수 얼굴에 온통 칠해 있다.
“뻔한 것 아니유. 상길이를 데리고 있음 데리고 있을수록 의가 더 상하고 정이 벗어지니 피차 신경 쓰이지 않게 눈 딱감고 내보내세요.
그 수밖에 도리가 없어요.”
윤수는 아내의 손씻는 말에 손을 붙들려 씻기움을 당한다.
‘나를 형님이 키우고 가르치셨는데 내가 형수님을 보아서도 그럴 수는 없지. 내 집을 두고서 어찌 하숙집에 보내며 남의 집에 있게 한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 누이가 처음 왔을 때 같이 사업만 안 했어도 이 지경은 안됐을건데. 남보기도 쑥스럽고 한 판에 조카까지 내보내면 내입장이 뭐가 되겠나. 내 속을 누가 아나?....’
생각을 굳힌 그는 ‘알았으니까 잠이나 자자’ 고 하며 아내를 다독거린다. 다음날 아침 윤수는 상길이를 불러서 술 먹었던 일을 나무라고 다시는 누가 먹으라고 해도 절대 입을 대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학교에 보낸다.
국어 시간이다. 국어 선생님은 출석을 부른다. 그는 이름을 연속 부르다 잽싸게 교실 안을 핥듯 둘러본다. 그러곤 콕콕 파내는 소리로 출석을 확인한다. 학생들은 대답할 때부터 기합이 기분 잡치게 쑥쑥 들어옴을 부대껴 한다. 그는 출석부를 든 채 학생들을 뒤에서부터 앞자리까지 주욱 내리 훑는다.
“너희들 조용히, 선생님 이야기 잘 들어라. 알았냐?”
교실안은 무거운 공기가 학생들을 내리 누르기만 한다. 국어 선생님의 신경질적인 다분히 짜증이 배인 소리에 아이들은 지레 겁먹는다.
“우리 학교 졸업생 중에 지금까지 졸업장을 찾아가지 않은 놈이 있다.
칠팔년이 지났는데두. 그러니 그런것 들이 무얼 하겠나? 어이, 특공대, 그래 안그래?”
황명우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않는다. 특공대 별명은 국어선생님이 지어준 것이다. 그는 국어 선생님의 입에 언제부터인지 매달려 있었다.
“특공대, 일어섯!”
국어선생님은 점점 상기되는 얼굴로 지껄이다가 언성을 높여 못 먹을 것을 먹은 사람인양 버럭 소리친다. 그는 트집을 잡아서 혼내줄 아이를 꼬끄랑한 눈으로 연신 갈쿠리질 한다. 너희들도 그런 놈과 다름이 없는 놈들이라고. 이 가운데에 그런 놈이 끼어 있어서 찾아낸다고 번들거림이 쉬지를 못한다. 그리고 휘번덕거린다.
아이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국어선생님이 움직이는대로 그의 눈에 붙들려 끌려다닌다.
특공대는 고개를 떨구고 전전긍긍 한다.
“졸업장도 못 찾아 가는 놈이 뭘하겠냐? 제 자식 졸업장도 안 찾아주는 애비도 한심하지. 어때, 특공대.”
명우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국어선생님의 얼러대는 소리에 고개를 겨우 들고 겁이 잔뜩 실린 얼굴로 야속스럽게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떨군다.
국어선생님은 혀를 끌끌 찬다.
“너도 이놈아, 3학년인지 아냐?”
명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오른쪽 손가락만 꼼짝거린다.
국어 선생님은 유별난데가 있다. 그는 아이들을 훈계할 때 그냥 매로써 학생의 종아리를 때리지 않는다. 아이들을 세워놓고 따귀를 때리는 순간 어금니를 꽉 깨물어 양쪽 턱이 불거지고, 툭 튀어나올 것같은 눈은 왕방울만 해져 금방 쏟아지기라도 할 것처럼 기분 나쁘게 휘번덕거린다. 휘번덕거리며 기어나오려는 것을 밀어 넣느라 눈꺼풀은 쉬지도 않고 열심히 끔벅거린다.
그는 아이들이 한눈을 팔다가 혹은 웃다가 들키면 자리에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는 독이라도 뿜듯 한참을 노려본다. 그러다가는 용서할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어 선웃음을 친다.
“너, 나와!”
소리친다.
이어 손목시계를 끌러 강단위에 놓는다. 양쪽 팔꿈치를 잡고 소매를 조금씩 끌어올린다. 이를 꼭 깨물고 입술로 지껄인다. 무슨 뜻이 담겨 있다고 하는지 자신도 모르는것 같다. 학생들은 소리도 없는 구둥거림에 주목을 한다. 오늘은 안 걸리고 그냥 넘어갔다고 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쉰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도시락을 책상위에 꺼내놓고 밥을 먹는다. 상길이도 도시락 뚜껑을 연다. 고추장 냄새가 확 덤빈다. 고추장은 밥을 빨갛게 물감칠을 하였다. 밥알은 퉁퉁 불었다. 그의 코 에는 석유가 엎질러져서 역한 냄새가 나는 걸로 여기게끔 되었다.
그는 젓가락을 들고 창 너머 운동장을 먼산 바라기처럼 헤매다가 급우들이 밥먹는 것을 기웃거린다. 그는 젓가락으로 서너번 밥알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는 도시락을 덮어 가방에 쑤셔 넣는다.
‘이젠 질렸어. 딴 아이들은 고추장을 가지고 다녀도 내 밥처럼 이렇지는 않은데 볶아주면 되는데 물이 질질 흐르고, 국어선생은...누가 졸업장 찾아가기 싫어서 안 가져가남, 못 사니까 그렇지. 돈없으면 그런거라구. 욕을 왜 해? 너도 없어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공부 더 못 하면 못한대로 살면 되지.’
상길이는 짜증을 내고 야속스러워 하다가, 앞날을 그리다가 집어던진다. 그리다가 헤집느라 턱을 괴고 앉았다.
“얘좀 봐라.”
갑자기 소리친다.
점심 먹던 아이들은 눈이 휘둥글해서 소리난 곳을 찾는다. 명우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당황해 한다. 교실 안의 눈들은 교실 중간에 서서 있는 명우에게 쏠리다가 그가 가리키는 곳을 찾는다.
명우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의 몸은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오른쪽 손은 젓가락을 쥔 채 높이 들려졌다. 젓가락 하나가 빠져나와 교실 바닥으로 떨어진다. 뒤를 이어 또 하나가 떨어진다. 그의 입은 연신 씰죽거린다. 입속에 들어갔던 밥알들이 뭉기적거리며 기어나와 앞자락을 어지럽힌다. 교실 바닥도 더럽힌다.
씰룩거림에 늦침도 따라나와 질질거린다.
책상 위의 도시락은 교실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한다. 책상이 총오를 따라 쓰러진다. 그의 얼굴은 노란물이 들여졌다. 입에서는 거품이 북적댄다. 입술 밖으로 수북하게 개구리알 같은게 풍선처럼 쌓인다.
그의 눈은 얼이 빠져나가 활짝 열려진 게 나간집 같다.
아이들은 모두 두려움에 잠겨 들었다. 맨 뒤에 앉아 있던 키가 큰 학원이가 용기를 내어 총오 앞으로 다가간다. 그를 일으킨다. 책상도 일으켜 세운다. 명우는 학원이를 거든다.
총오는 지랄병 짓거리를 멈췄다. 의자에 앉혀진 채 죽은 사람 같다.
담임선생님께 보고하러 가는 아이도 있다. 얼마쯤 있다가 총오는 깨어났다. 얼굴엔 핏기가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무슨 병일까? 총오는 다리도 불구이고 그런 병까지 있으니...
그래두 집안은 잘사는 것 같던데...
나처럼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걱정은 안하는 모양이던데.
참, 안됐어. 난 있을 곳도 없고...‘
상길이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국어선생님의 말, 총오의 일이 꼬리를 물고 나서는 통에 괴로워한다.
책가방을 든 어깨가 축 늘어져서 비지땀을 흘리며 대문을 들어간다.
그는 열려진 안방을 흘끔 본다. 그리곤 책가방을 마루끝에 올려놓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상길이는 아버지께 넙죽 절을 한다.
윤공은 자식의 모습을 살핀다. 이녀석이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혹시 어데가 아픈 것은 아닌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하며 생각을 굴린다. 절을 받고난 윤공은
“네 방으로 가자.”
하며 일어난다.
그는 자식의 뒤를 따라 자식이 공부하는 방으로 건너간다. 그는 방에 앉으면서 그동안 공부한 것 모두 내어놓으라고 이른다. 상길이는 공책을 모두 꺼내어 아버지 앞에 쌓아 놓는다. 윤공은 공책을 하나하나 검사를 한다.
“너, 요즘 열심히 공부 안하는구나. 금전출납부 쓰고 있느냐?”
“예.”
“가져와라.”
상길이는 책상 서랍에서 수첩 같은 출납부를 꺼내어 놓는다. 그는 출납부를 한장 한장 넘기면서 살핀다.
“너는 공책이나 연필은 사서 쓰지않구 빵만 사서 먹냐?”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자식을 노려본다.
“그래, 이녀석아, 빵만 사 먹어?”
“야! 이놈아! 그렇게 배가 고프데?”
그는 언성을 높이며 자식을 꾸짖는다.
상길이는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벌렁거린다.
“빵만 사서 먹는 놈이 공부는 무슨 공부냐?”
그는 책상 위에 있는 넓적한 주판을 잽싸게 집는다. 그리고 무릎을 갈긴다. 상길이의 눈에서 불이 번쩍한다. 몸뚱아리가 들썩하고 주판을 따라 올랐다 떨어진다. 이내 상길이의 입에서 “아이쿠‘ 소리가 튀긴다. 또 한 차례의 비명에 송판을 바쳐서 만든 묵직한 주판이 쩍 소리를 내지르고 쪼개진다.
“이 정신없는 놈아!”
상길이의 몸이 또 들썩한다.
양복 단추 같은 주판알이 사방으로 쇳소리를 내며 튕겨진다.
상길이는 입을 벌리고 신음을 한다. 신음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용서를 빈다. 그는 자식이 비는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판이 산산 조각이 나서 더 때릴 수 없게 되자 손을 멈춘다. 그리고 씩씩댄다.
상길이는 덜덜거린다. 두 손으로 오른쪽 무릎을 쓰다듬는다. 그이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지고 귓부리까지 빨개졌다.
고통이 더해감에 아버지에게 용서를 비는 말도 못하고 신음소리만 낸다.
윤공은 자식을 씩씩거리면서 노려본다. 그러다가는 천정을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뱉는다. 그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래, 이놈아! 왜 하라는 공부는 않고 속을 썩이느냐? 삼촌, 숙모의 말을 잘 들고 해야지 앞으로 어른들 말 잘 듣겠냐?”
“예.”
그는 부드럽게 말을 만들어 내느라 또 한 번 꺼질듯한 한숨을 토한다.
“돈이란 있을때 아껴야지. 없으면 못 아낀다. 알았냐?”
“예.”
“나가 세수해라.”
“예.”
상길이는 대답만 하고 성큼 일어나지를 않는다. 무릎을 만지작거린다. 그리곤 맞지 않은 왼쪽 무릎을 세운다. 책상 모서리를 잡고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선다. 중풍병자처럼 오른쪽 다리를 펴지 못하고 발을 끌면서 방을 나간다.
윤공은 뜨끔한다.
‘내가 미련하게 닦달했지. 분을 삭인 후에 때릴 것을...’
상길이는 마루를 짚어가며 쉬엄쉬엄 우물로 간다. 우물에 나온 그는 무릎을 주무르고
‘내가 삼년동안 먹은 것 모두 갚을테니 내가 겪은것 너희들도 당해야...
뭐가 있어야 아끼지. 없는데 뭘 아껴...
내가 이런 집안에 생겨나서...’
그는 세상에 생겨난 자신을 한스러워 한다. 인생을 저주한다. 그의 무릎은 퉁퉁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의 마음은 멍이 새까맣게 들여져 버렸다.
윤수는 볼일이 늦어도 친구와 어울리게 되어 늦어도 그의 머릿속에는 ‘아내가 기다린다, 기다리고 있다’ 는 글자가 새겨져 노란불을 껌벅인다. 그는 친목회다, 계다 하여 술자리가 벌어지고 저녁을 먹을수밖에 없는 때도 술은 마시면서 밥은 먹지를 않는다.
친구들이 밥을 먹으라고 권하면 술을 먹으면 밥을 못먹는 체질이라고 변명 아닌 거짓말을 하여 슬쩍 넘기곤 한다. 그럴 때 친구들은 사모님 모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네. 어떻게 그렇게 여편네 치맛자락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느냐? 마누라 잘 모시는 비결 좀 가르쳐 달라는 놀림을 받는다.
윤수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 왔다. 그는 문을 열어주는 아내에게 사과의 말을 한다.
“늦어서 미안해.”
“당신 몸 생각 하셔야지요.”
“어쩔수 없었다구.”
“시장두 안하셔요?”
“이제 먹으면 되지.”
윤수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우물에 나가 손을 씻고 세수도 한다.
윤수 아내는 밥상을 차려서 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밥상을 마주 하고 늦은 저녁을 먹는다.
“여보.”
윤수의 아내는 남편을 불러본다.
윤수는 수저를 들고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의 눈은 사랑스러움이 넘실댄다. 그는 아내의 얼굴에서 평상시와 같지 않은 진지한 것을 찾아 낸다. 윤수는 아내가 부르기만 하고 다음 말을 하지 않자 밥을 한수저 떠서 입에 넣고서 우물거리며 말을 어서 하라는 눈빛을 보낸다.
윤수 아내는 남편의 재촉에 서둘러 아무것두 아니라고 남편의 관심을 돌리려 한다. 그는 아내의 어색한 망설임을 보고 싱긋 웃는다.
“국이 오늘따라 좀 싱겁구먼.”
“안그런데.”
“임자를 닮았나봐.”
“당신두 참!”
그들 내외는 흐뭇함 속에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식사를 가볍게 끝낸 윤수 아내는 상을 부엌으로 내간다. 윤수는 곤히 자고 있는 딸들을 자상스럽게 바라본다. 아이들의 손도 잡아보고 머리도 쓰다듬는다. 윤수는 아쉬워하는 맘을 갖는다. 뒤따라 파고드는 허전함을 막으려고 기를 쓴다.
‘이녀석들 가운데 하나만 고추를 달고 나오지...
나는 아들 둘 복이 없는 것인가?’
그는 딸만 다섯 두었다.
그의 아내는 이따금
“나는 아들을 못 낳을 팔잔가봐요.”
아들두지 못하는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자기의 죄가 많다고 남편에게 미안해하였었다.
그때마다 윤수는 아내를 위로하곤 하였다.
“딸이면 어때. 남들 보니 딸만 두었어도 딸들이 아들 노릇 다 하던데 딸은 자식 아닌가? 우리도 아들 두는 날이 올테니 안심 놓으라구.
딸이 있어야 비행기를 탄다는 세상이라구.” 하며 위로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나도 아들을 하나 두었으면 하는 욕망이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아쉬움에 휘감겨 버린다.
그는 부엌문 여닫는 소리에 찔끔한다. 씁쓸한 기분을 지우느라 요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윤수는 이내 다정스런 아주 정이 가득 담긴 소리로 아내를 부른다. 그리고는 아까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 마저 하라고 말한다.
윤수 아내는 주저주저하다가 자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말을 냉큼 잇지 않는다.
“당신은 내가 아이들을 못 가르칠까봐 걱정인가 보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당신을 호강은 못 시켜도 아이들 교육만은 문제없이.
열명이라두 대학까지 가르칠 수 있어. 모두 가르쳐 시집 잘 보낼테니 안심하셔.
윤수는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을 하면서도 눈이 시린듯 눈을 내리뜨고 생각을 굴린다. 내가 딸만 두고 있으니까 내가 아들 두기 위해 바람이라도 피울까 보아서 맘이 놓이지 않아서 그러는건 아닌지. 혹시 내 행동이 아내가 볼 때 이상하게 보이는게 있어 오해하고 있는건 아닌가를 조목조목 맞추어 본다.
“아녀요. 오늘따라 당신이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요.”
윤수는 찔끔한다.
‘어떻게 내 생각을 뒤집어 본듯 말할 수 있담.’
그는 아내가 이마얹은 팔을 빗길까봐 팔에 힘을 주며 딴청을 부린다.
“별소릴 다 듣겠구먼. 쓸데없는 소리 말어. 괜히 청승맞은 소리하구있어. 나는 아들이나, 딸이나 구별 않는것 몰라서 그래? 나는 욕심 부리지 않아요. 내 복에 없는 자식을 누굴 탓해. 내가 언제 아들타령 했담.
당신답지 않게 왜 그래. 남편이 그만큼 이야기 했슴 그만둬야지.
내 입에서 계속 다짐을 받아 내야 맘이 놓이는 거야? 딸도 못두는 사람도 있는데....그런 사람에게 비기면 복이 과한게야. 당신이 단산할때 까지 낳아보고 나서 그때 어쩌구저쩌구 하자구. 미리부터 안달하지 말고. 그래봐야 기분만 상하잖아. 난 그런말 자꾸하기 싫어요.”
그는 얺짢은게 담겨진 말로 억양을 높였다간 부드럽게 한다.
“알아요. 당신은 아버님이 손자 못 본다고 새 장가 들으라고 하셨어도 당신은 나만 생각한 것 알고 있어요. 나는 누가 뭐래두 당신을 믿는다구.”
“그럼 걱정말구 잠이나 자지.”
“큰 집은 참 좋겠어요.”
“형님은 기쁘실거여. 늦게 또 아들을 두셨으니 마음 놓으시게 됐어.
형님은 원래 착하셔서 심덕이 좋은 양반이라 심덕으로 두신거라구.”
그는 이마 위의 팔을 잽싸게 내리고 신바람이 나서 좋아한다.
“당신은 그게 나빠요. 당신은 자기를 너무 학대하세요. 왜 그래요.
듣기 싫게. 당신두 남들이 그러는데 법 없어두 살 사람이라고 합디다.
그런데두 당신은 자신을 너무 비하하는 버릇이 몸에 배인것 같아요.
너무 그러니까 옆에서 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요. 넘에게 끌려만 다니는 사람 같다구요.”
“나는 형님과 비교가 안된다구. 난 형님처럼 그런 성품이 없어.”
“누가 당신 형님이 어떻다구 그러나요.”
“형님은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신다구. 당신두 알다시피 우리가 하루속히 잘 살아보라구, 기반을 세우라구 밀어주고 염려하시는데. 난 형님의 마음에 반에 반도 보답도 못한다구.”
“형제간에 그만한 우애도 없으면 되겠어요? 걱정되는게 있어요.
당신이 혹시 오해를 할까봐 아까부터 망설였는데. 들어볼래요? 화내지 말구.”
“밑도 끝도 없이 화는 왜. 걱정이란 뭔데?”
“당신 형제간에 그좋은 우애가 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어요.
그래서 말을 하기가 좀 뭣 해서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잠이나 자자구.”
“내가 괜히 그런 소리 하는 줄 아세요. 근거가 있다구요. 정말 모르세요. 우리 집과는 벌써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금이 가다니, 어째서?”
윤수는 눈을 곱게 뜨지 않고 재수없는 소리 그만 하라고 눈을 부라려 흘긴다.
“당신은 형님 형님 하면서 조카인 상길이는 넘 보듯 하는거요. 그 아이는 밤에 자다가 변소에 가기 싫어서 창문 열고 오줌을 싸고...”
“그거야 어려서 그렇지.”
“어리면 그런가요. 그애 말하는 소리 들어봐요. 어린가?
도시락을 싸서 줘도 반찬이 나쁘다고 안 가져가요. 우리 집에서 보고 들은 말을 고모네 집에 가서 모두 말하고, 그리고 내가 저에게 어떻게 한다는 소리 저희 집에 가서 죄다 말하는 아이라 큰 일이예요.
내가 보기엔 싹수가 노란 아이라구요. 아무리 우리가 애써서 가르쳐도 소용이 없어요. 글쎄, 수박을 먹으라고 제방에 두었더니 글쎄, 나나 제 동생들 보고 먹어보란 말 한마디 없이 저혼자 먹더라구요.”
“별걸 다 가지고 그러는구먼. 철 들면 안 그럴거여. 그러니까 가르치는거 아냐. 사람노릇 하라구. 다 알면 뭣하러 학교 보내.”
“그뿐인 줄 아슈? 먼젓 번에는 어데서 술을 먹고 들어와서 토하고 했다우. 그런데두 상관 없어요? 조그만게 벌써부터...
제 말엔 고모가 먹어보라구 해서 조금 먹었다구 합디다. 아이들에게 술을 먹으라는 이도 한심하구. 술을 가르치려고 하는건가? 누구를 골탕 먹일려구 하는 짓이지...
좌우간 큰 아버지가 우리에게 상길이를 맡길 때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잘 키우라고 맡기셨는데 당신은 책임질 수 있어요? 나는 책임을 못 진다구요. 더 이상 두고 보다간 무슨 원망을 들을른지 모르고...
내 자식 키우기도 힘드는 판에 속 건데기를 무슨 가르친담.
아버지 없는 조카라면 몰라두. 생각해 보세요. 당신 딸이 하나요, 둘이요.내자식 팔자타령 하면서 키우는 판에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냐구요. 고생을 하면 보람도 있어야지. 보람은 커녕 욕이나 먹고 원망만 듣게 생겼으니...
난 이제 몰라유. 모로 가던 바로 가던 난 손 떼기루 했으니까.”
윤수는 입맛을 다시며 고심을 한다.
“당신은 상길이 걱정 어지간히 하시고 당신 자식이나 걱정하세요.
내가 처음부터 뭐랬어요. 데리고 있음 나중에 좋은 소리 못 듣고 한다니까, 박박 우기더니 내 말대루 했슴 그때만 조금 서운하고 말것을 이건 두고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 시리게 듣게 생겼으니. 의리있네, 뭐네 하면서 감당도 못하면서...
상길이 그녀석에게 내가 욕먹고 당신이 욕먹고 있는 것 알기나 하는지. 원, 당신이 그애 보고 뭐라고 나무라면 내가 쏘세기질 해서 그런다구 할께 뻔하지.
시아주버님이 자식 버려놨다면 당신이 책임지세요. 형제간에 돕고 도움 받는건 형제간에 끝내야지. 자식을 바꿔서 가르치는게 뭐예요.
나는 지금도 그 점은 이해가 안가요. 형이 동생 가르쳤다고 동생은 조카 가르쳐야 한다는게 당치 않다구요.“
윤수는 아내가 졸지에 달려들어 할퀴듯 하는 소리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빠져 나갈 구멍도 보이질 않는다. 얼얼한 몸둥아리를 주체를 못해 다급히 소리친다.
“그럼 어떻게 하겠어?”
그의 급한 소리는 목구멍을 헐떡거리며 넘는다. 그리고 주저앉는다.
그리곤 기어나오느라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그의 얼굴은 ‘아내 이길 놈이 어데 있냐? 자고로 사내란 여편네에게 눌려서 뭉게지게 마련인데 너라고 별 수 있겠냐?’ 는 소리가 윤수 얼굴에 온통 칠해 있다.
“뻔한 것 아니유. 상길이를 데리고 있음 데리고 있을수록 의가 더 상하고 정이 벗어지니 피차 신경 쓰이지 않게 눈 딱감고 내보내세요.
그 수밖에 도리가 없어요.”
윤수는 아내의 손씻는 말에 손을 붙들려 씻기움을 당한다.
‘나를 형님이 키우고 가르치셨는데 내가 형수님을 보아서도 그럴 수는 없지. 내 집을 두고서 어찌 하숙집에 보내며 남의 집에 있게 한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 누이가 처음 왔을 때 같이 사업만 안 했어도 이 지경은 안됐을건데. 남보기도 쑥스럽고 한 판에 조카까지 내보내면 내입장이 뭐가 되겠나. 내 속을 누가 아나?....’
생각을 굳힌 그는 ‘알았으니까 잠이나 자자’ 고 하며 아내를 다독거린다. 다음날 아침 윤수는 상길이를 불러서 술 먹었던 일을 나무라고 다시는 누가 먹으라고 해도 절대 입을 대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학교에 보낸다.
국어 시간이다. 국어 선생님은 출석을 부른다. 그는 이름을 연속 부르다 잽싸게 교실 안을 핥듯 둘러본다. 그러곤 콕콕 파내는 소리로 출석을 확인한다. 학생들은 대답할 때부터 기합이 기분 잡치게 쑥쑥 들어옴을 부대껴 한다. 그는 출석부를 든 채 학생들을 뒤에서부터 앞자리까지 주욱 내리 훑는다.
“너희들 조용히, 선생님 이야기 잘 들어라. 알았냐?”
교실안은 무거운 공기가 학생들을 내리 누르기만 한다. 국어 선생님의 신경질적인 다분히 짜증이 배인 소리에 아이들은 지레 겁먹는다.
“우리 학교 졸업생 중에 지금까지 졸업장을 찾아가지 않은 놈이 있다.
칠팔년이 지났는데두. 그러니 그런것 들이 무얼 하겠나? 어이, 특공대, 그래 안그래?”
황명우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않는다. 특공대 별명은 국어선생님이 지어준 것이다. 그는 국어 선생님의 입에 언제부터인지 매달려 있었다.
“특공대, 일어섯!”
국어선생님은 점점 상기되는 얼굴로 지껄이다가 언성을 높여 못 먹을 것을 먹은 사람인양 버럭 소리친다. 그는 트집을 잡아서 혼내줄 아이를 꼬끄랑한 눈으로 연신 갈쿠리질 한다. 너희들도 그런 놈과 다름이 없는 놈들이라고. 이 가운데에 그런 놈이 끼어 있어서 찾아낸다고 번들거림이 쉬지를 못한다. 그리고 휘번덕거린다.
아이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국어선생님이 움직이는대로 그의 눈에 붙들려 끌려다닌다.
특공대는 고개를 떨구고 전전긍긍 한다.
“졸업장도 못 찾아 가는 놈이 뭘하겠냐? 제 자식 졸업장도 안 찾아주는 애비도 한심하지. 어때, 특공대.”
명우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국어선생님의 얼러대는 소리에 고개를 겨우 들고 겁이 잔뜩 실린 얼굴로 야속스럽게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떨군다.
국어선생님은 혀를 끌끌 찬다.
“너도 이놈아, 3학년인지 아냐?”
명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오른쪽 손가락만 꼼짝거린다.
국어 선생님은 유별난데가 있다. 그는 아이들을 훈계할 때 그냥 매로써 학생의 종아리를 때리지 않는다. 아이들을 세워놓고 따귀를 때리는 순간 어금니를 꽉 깨물어 양쪽 턱이 불거지고, 툭 튀어나올 것같은 눈은 왕방울만 해져 금방 쏟아지기라도 할 것처럼 기분 나쁘게 휘번덕거린다. 휘번덕거리며 기어나오려는 것을 밀어 넣느라 눈꺼풀은 쉬지도 않고 열심히 끔벅거린다.
그는 아이들이 한눈을 팔다가 혹은 웃다가 들키면 자리에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는 독이라도 뿜듯 한참을 노려본다. 그러다가는 용서할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어 선웃음을 친다.
“너, 나와!”
소리친다.
이어 손목시계를 끌러 강단위에 놓는다. 양쪽 팔꿈치를 잡고 소매를 조금씩 끌어올린다. 이를 꼭 깨물고 입술로 지껄인다. 무슨 뜻이 담겨 있다고 하는지 자신도 모르는것 같다. 학생들은 소리도 없는 구둥거림에 주목을 한다. 오늘은 안 걸리고 그냥 넘어갔다고 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쉰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도시락을 책상위에 꺼내놓고 밥을 먹는다. 상길이도 도시락 뚜껑을 연다. 고추장 냄새가 확 덤빈다. 고추장은 밥을 빨갛게 물감칠을 하였다. 밥알은 퉁퉁 불었다. 그의 코 에는 석유가 엎질러져서 역한 냄새가 나는 걸로 여기게끔 되었다.
그는 젓가락을 들고 창 너머 운동장을 먼산 바라기처럼 헤매다가 급우들이 밥먹는 것을 기웃거린다. 그는 젓가락으로 서너번 밥알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는 도시락을 덮어 가방에 쑤셔 넣는다.
‘이젠 질렸어. 딴 아이들은 고추장을 가지고 다녀도 내 밥처럼 이렇지는 않은데 볶아주면 되는데 물이 질질 흐르고, 국어선생은...누가 졸업장 찾아가기 싫어서 안 가져가남, 못 사니까 그렇지. 돈없으면 그런거라구. 욕을 왜 해? 너도 없어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공부 더 못 하면 못한대로 살면 되지.’
상길이는 짜증을 내고 야속스러워 하다가, 앞날을 그리다가 집어던진다. 그리다가 헤집느라 턱을 괴고 앉았다.
“얘좀 봐라.”
갑자기 소리친다.
점심 먹던 아이들은 눈이 휘둥글해서 소리난 곳을 찾는다. 명우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당황해 한다. 교실 안의 눈들은 교실 중간에 서서 있는 명우에게 쏠리다가 그가 가리키는 곳을 찾는다.
명우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의 몸은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오른쪽 손은 젓가락을 쥔 채 높이 들려졌다. 젓가락 하나가 빠져나와 교실 바닥으로 떨어진다. 뒤를 이어 또 하나가 떨어진다. 그의 입은 연신 씰죽거린다. 입속에 들어갔던 밥알들이 뭉기적거리며 기어나와 앞자락을 어지럽힌다. 교실 바닥도 더럽힌다.
씰룩거림에 늦침도 따라나와 질질거린다.
책상 위의 도시락은 교실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한다. 책상이 총오를 따라 쓰러진다. 그의 얼굴은 노란물이 들여졌다. 입에서는 거품이 북적댄다. 입술 밖으로 수북하게 개구리알 같은게 풍선처럼 쌓인다.
그의 눈은 얼이 빠져나가 활짝 열려진 게 나간집 같다.
아이들은 모두 두려움에 잠겨 들었다. 맨 뒤에 앉아 있던 키가 큰 학원이가 용기를 내어 총오 앞으로 다가간다. 그를 일으킨다. 책상도 일으켜 세운다. 명우는 학원이를 거든다.
총오는 지랄병 짓거리를 멈췄다. 의자에 앉혀진 채 죽은 사람 같다.
담임선생님께 보고하러 가는 아이도 있다. 얼마쯤 있다가 총오는 깨어났다. 얼굴엔 핏기가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무슨 병일까? 총오는 다리도 불구이고 그런 병까지 있으니...
그래두 집안은 잘사는 것 같던데...
나처럼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걱정은 안하는 모양이던데.
참, 안됐어. 난 있을 곳도 없고...‘
상길이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국어선생님의 말, 총오의 일이 꼬리를 물고 나서는 통에 괴로워한다.
책가방을 든 어깨가 축 늘어져서 비지땀을 흘리며 대문을 들어간다.
그는 열려진 안방을 흘끔 본다. 그리곤 책가방을 마루끝에 올려놓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상길이는 아버지께 넙죽 절을 한다.
윤공은 자식의 모습을 살핀다. 이녀석이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혹시 어데가 아픈 것은 아닌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하며 생각을 굴린다. 절을 받고난 윤공은
“네 방으로 가자.”
하며 일어난다.
그는 자식의 뒤를 따라 자식이 공부하는 방으로 건너간다. 그는 방에 앉으면서 그동안 공부한 것 모두 내어놓으라고 이른다. 상길이는 공책을 모두 꺼내어 아버지 앞에 쌓아 놓는다. 윤공은 공책을 하나하나 검사를 한다.
“너, 요즘 열심히 공부 안하는구나. 금전출납부 쓰고 있느냐?”
“예.”
“가져와라.”
상길이는 책상 서랍에서 수첩 같은 출납부를 꺼내어 놓는다. 그는 출납부를 한장 한장 넘기면서 살핀다.
“너는 공책이나 연필은 사서 쓰지않구 빵만 사서 먹냐?”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자식을 노려본다.
“그래, 이녀석아, 빵만 사 먹어?”
“야! 이놈아! 그렇게 배가 고프데?”
그는 언성을 높이며 자식을 꾸짖는다.
상길이는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벌렁거린다.
“빵만 사서 먹는 놈이 공부는 무슨 공부냐?”
그는 책상 위에 있는 넓적한 주판을 잽싸게 집는다. 그리고 무릎을 갈긴다. 상길이의 눈에서 불이 번쩍한다. 몸뚱아리가 들썩하고 주판을 따라 올랐다 떨어진다. 이내 상길이의 입에서 “아이쿠‘ 소리가 튀긴다. 또 한 차례의 비명에 송판을 바쳐서 만든 묵직한 주판이 쩍 소리를 내지르고 쪼개진다.
“이 정신없는 놈아!”
상길이의 몸이 또 들썩한다.
양복 단추 같은 주판알이 사방으로 쇳소리를 내며 튕겨진다.
상길이는 입을 벌리고 신음을 한다. 신음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용서를 빈다. 그는 자식이 비는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판이 산산 조각이 나서 더 때릴 수 없게 되자 손을 멈춘다. 그리고 씩씩댄다.
상길이는 덜덜거린다. 두 손으로 오른쪽 무릎을 쓰다듬는다. 그이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지고 귓부리까지 빨개졌다.
고통이 더해감에 아버지에게 용서를 비는 말도 못하고 신음소리만 낸다.
윤공은 자식을 씩씩거리면서 노려본다. 그러다가는 천정을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뱉는다. 그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래, 이놈아! 왜 하라는 공부는 않고 속을 썩이느냐? 삼촌, 숙모의 말을 잘 들고 해야지 앞으로 어른들 말 잘 듣겠냐?”
“예.”
그는 부드럽게 말을 만들어 내느라 또 한 번 꺼질듯한 한숨을 토한다.
“돈이란 있을때 아껴야지. 없으면 못 아낀다. 알았냐?”
“예.”
“나가 세수해라.”
“예.”
상길이는 대답만 하고 성큼 일어나지를 않는다. 무릎을 만지작거린다. 그리곤 맞지 않은 왼쪽 무릎을 세운다. 책상 모서리를 잡고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선다. 중풍병자처럼 오른쪽 다리를 펴지 못하고 발을 끌면서 방을 나간다.
윤공은 뜨끔한다.
‘내가 미련하게 닦달했지. 분을 삭인 후에 때릴 것을...’
상길이는 마루를 짚어가며 쉬엄쉬엄 우물로 간다. 우물에 나온 그는 무릎을 주무르고
‘내가 삼년동안 먹은 것 모두 갚을테니 내가 겪은것 너희들도 당해야...
뭐가 있어야 아끼지. 없는데 뭘 아껴...
내가 이런 집안에 생겨나서...’
그는 세상에 생겨난 자신을 한스러워 한다. 인생을 저주한다. 그의 무릎은 퉁퉁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의 마음은 멍이 새까맣게 들여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