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5.아들의 고민)
작성자
yeongbeome2
작성일
2024-07-07 22:10
조회
20
대전에서 사는 열이는 생활이 좀 나아져 변두리에 조그만 방 한칸을 얻어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다. 열이의 남편도 건강이 좋아져 조금씩 돈벌이를 한다. 열이의 세 살 먹은 딸은 시어머니가 데리고 있다.
열이는 점심을 먹은 후 집을 나온다.
‘그동안 상길이는 잘 있는지 할머니도 안녕하시겠지...
삼촌네 집에 별로 가고 싶지도 않지만...
시골 소식도 궁금하고...’
열이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걷는다.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열이를 마중한다. 열이는 빠끔히 열려진 대문을 기웃하고는 살며시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뜰방에는 고무신이 하나 가득 널렸다. 조금 망설이던 그녀는 뜰방에 올라선다. 그녀는 헛기침을 하고는 마루로 올라 방문 고리를 잡아당긴다.
방안에는 한방 가득히 부인네들이 앉아 있다. 이야기를 하던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열이에게로 쏟아진다. 열이의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뜯어보려고 다투어 자리를 잡느라고 법석거린다.
“어서 오너라. 고생이 많지?”
“그간 안녕하셨어요?”
열이는 인사를 하면서 문턱을 넘는다.
“이리와 앉아라.”
“예, 안녕들 하셨어요?”
아낙네들은 앉은 자리를 좁히느라고 궁둥이를 들썩거리며 게걸음을 친다. 열이는 웃목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이리 내려오지 않구.”
“괜찮아요.”
“그래, 네 신랑은 어데 다니냐?”
“곧 다니게 될 것 같아요.”
“고생을 모른 네가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 네 신랑이 똘똘하다면 걱정두 않겠다마는 고생도 바라볼게 있어야 하는데 뭐 볼게 있어야지.
너야 어디다 내놔도 빠지지 않지만...
내가 너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서방은 희망이 없는 사람 같더라. 네 생각은 어떠냐?“
“작은 엄마는 별 소릴 다 하세요.”
“그래두 신랑이라구 듣기 싫은 모양이구나?”
“그렇겠지, 제 식구를 흉보는데 좋다고 할까?”
“나두 딸년 하나가 시집 잘못 간 것이 있는데 지금 아주 뼈가 빠지게 고생고생 하는데 걱정이구먼. 신랑이라구 아주 건달이야. 일할 생각은 안하고 싸움질만 하고 돌아다닌데. 기가 차서. 내 속 타는걸 모른다구. 딸년 보고 갈라서라구 했더니 그 못난 것이 갈라설 맘이 없나봐.
제 고생 제가 짊어지고 다닌다구. 열녀상을 받으려는지.”
아랫목에 앉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가 낚시에 끌려나오듯 푸념을 늘어 놓는다.
“언니는 춘희 그애 때문에 바삭바삭 늙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딸년은 너 나 없이 시집을 잘 보내야지. 한 번 잘못 매이면 생사람 머리가 쉬인다구.”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 형편따라 살면 되지. 누구 위해서 사는건 아냐.”
“인생살이는 기다린다구 복이 오질 않는거여. 그러니 찾아 나서야지.”
“어떻게 그런 말씀들을 하세요. 어른들이 할말이 없어서 그런 말을 말이라고 하세요? 누가 그런 소릴 들으려고 온줄 아세요.”
열이는 화가 난 얼굴로 쏘아 부치고는 방을 휑하니 나간다.
방안의 여자들은 먼죽하니 앉아서 잠시 말을 잊는다.
“내가 저 위해서 한 소리지. 놀리려고 그런줄 아나? 기가 막혀서...
저것은 성깔이 저 모양이라서 제 고생 안고 다니는거여...
답답해서, 쯧쯧.”
“자격지심에 그런거지, 뭐.”
아낙네들은 열이 뒤통수를 흘기느라 한마디씩 비아냥거린다. 그리고 머쓱한 얼굴을 훔쳐내느라 입을 삐죽거린다.
열이는 땅벌레를 만나 쏘이고 쫓기느라 가시나무에 할퀴고 넘어져 마음도 붓고 손도 아프다고 억울해 한다.
“내가 저희보고 그런 소리 했다면 죽자사자 할 것들이 저희 일이 아니라고 찧고 까불고 야단이야. 흥!
인두겁을 쓰고 서방이 병들었다구, 병든 서방 만났다구, 손 씻어 버리라구...못배워 못났다. 내 소박하면 잘 되겠구먼. 더럽게는 살 수 없단다. 너희나 죽도록 그런식으로 살려므나. 흥!
붙어 살것 없다구? 그런 심보라, 자빠지면 코 닿는데두 선 한 번 안봤누나! 그러길 바란 모양이구나. 절로 째진 입이라구 삐죽거리긴 제 얼굴에 똥칠하는것두 모르고, 제집 지니고 먹을 걱정 않는다구 입이 근질거려. 남 애가 닳아 하는 게 꽤나 보기 좋은 모양이지...
내가 저희 신세 지러 왔남. 모이기만 하면 흉이니...
단 두 집밖에 없는 형제간에 왜들 저러는지. 한심하다구. 할머니를 어떻게 모셔왔는데. 나이로 해서두 친 엄마뻘두 넘는데. 시어미를 식모 취급하기가 일수고 툭하면 풀먹은 개지천하듯 하는 꼬락서니 하구는. 상길이가 저런 틈바구니 속에서 공부 한다는건 쉽지 않지. 공부가 되기나 하겠어? 그애 상길이는 저런 꼴은 못보는 성깔인데 있을맘이 있겠어? 그 애가 잘 돼야 집안을 꾸려 나가는데... 내 코가 석자가 넘으니...”
열이는 역겨워 울렁이고 치미는 가슴을 달래느라 혼잣말로 지껄이며 걷는다.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진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다.
상길이는 책가방을 들고 삼촌네 집을 향해 큰길로 걸어온다. 상길이는 누나가 마주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누나를 부른다.
“누나! 누이!”
상길이는 큰소리로 부른다.
열이는 소리따라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손을 들고 반가워하는 동생을 보고는 빙긋이 웃음을 담는다.
“학교 갔다가 지금 오냐?”
“응, 어데 갔다가 오는거여?”
“삼촌네 집에 갔다 오는 길이다.”
“더 놀다 가지.”
“이제껏 놀다 가는 길이란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나 누이네 집에 갈께.”
“그래라.”
상길이는 삼촌네 집을 향해 뛰어간다. 그는 책 가방을 제 방에 들여놓고는 안방 앞으로 좇아 와서
“학교 갔다왔습니다.”
하고 보고를 한다.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상길이는 누나와 같이 걷는다. 철길을 건너서 개천 뚝 길을 따라서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접어든다.
열이는 동생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상길이는 마치 남의 이야기 하는 것처럼 힘도 들이지 않고 그냥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제 고등학교 진학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해도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쩌려고 그러냐? 네가 공부하는 방도 따로 있는데 공부 안하면 큰일이구나. 그럼 고등학교엔 안 갈 생각이냐? 너 무슨 고민거리 있니?”
“고민은...난 고등학교 가기 글렀어. 난 삼촌집에 있기가 싫다구. 여태껏 억지로 있었어.”
“얘두, 딴 아이들은 자취하면서 공부하는데 넌 뭣이 불만이 그렇게 많냐? 넌 공부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
“공부시키지 싫으면 그만 가라지. 붙들고 골탕을 먹이니까 그라지 뭐.”
열이는 어이없는 얼굴로 동생을 딱하게 쳐다본다.
그들은 시커먼 시궁창 물이 흘러가는 개울을 건너느라 출렁거리는 판자 다리 위에 올라서자 말이 없다. 다리는 지네를 잡아서 뒤집어 걸쳐 놓은 것 같다. 넓지 않은 판자를 발을 엮어 놓아 걸음따라 꿈틀거리길 자주해서 발걸음이 늦어진다.
다리를 건넌 그들은 손수레도 다니지 못하는 좁은 골목길을 오른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 하며 얼마동안 오르락 내리락하며 걷는다.
상길이는 기분이 아주 주저앉아 버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에게 덜미를 잡혀 질질 끌리는 몰골에 반갑던게 흐려져 지워졌다. 열이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찾아 헤매느라 할 말을 잊고 길만 따라간다.
막다른 골목에 오른쪽으로 초가집이 덩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여기가 누나네 집이란다.”
상길이는 초가집을 이리보고 저리본다. 길 옆에 조그만 판자문이 달려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잔뜩 꾸부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문이다. 판자문은 헌 옷을 누덕두덕 기워 놓은 것 같다. 두꺼운 조각, 엷은 조각, 길다란 조각, 검고 허여끄름한 것, 페인트가 묻은것이 이리저리 포개져 살을 겨우 가린양이다.
지붕은 처음부터 해이기만 했다고 살이 찐 돼지 볼기짝 같고 기둥은 땅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꼴이다.
벽은 아예 흙담을 쳐 버렸다. 자잘하고 커다란 돌을 섞어서 쌓은 게 가는 세월 붙잡고 실랑이 했다고 돌덩이는 들쑥날쑥 뻐드렁니가 돼버렸다. 아이들이 놀자고 하였다간 금방 뛰쳐나올 낌세다.
담벼락 틈바구니를 비집고 가쁜숨을 몰아쉬는 숨구멍같은 창문이 모양없이 뚫려져 찌그러진 채 상여를 두는 상여집이 아니라고 헐떡이는 소리로 변명을 하려든다.
열이는 두덕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쪽문은 덜그럭 소리도 못낸다. 상길이는 오른손으로 문을 잡고 허리를 꾸부려 문안을 기웃하고 들여다본다. 아궁이 위에는 사발보다 조금 크다고 뻐기는 양은솥이 앙증스레 앉았다.
상길이는 부엌을 보며 소꿉장난 하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시골집 부엌과 비교를 해본다. 그는 누나의 뒤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한다.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미닫이 문은 무엌문보다 깨끗하고 커 보인다.
상길이는 조카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다가 누나의 말에 끌려 방으로 들어간다. 그는 방에 들어가서도 방안을 두리번거린다. 눈을 계속 껌벅거린다. 그는 소극장에 들어왔다고 하는양이다. 방안의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누나, 불 좀 켜지.”
“그래.”
그녀는 전등을 켠다.
어둠은 뻘건 전등빛에 금방 탈색이 되고 만다. 방은 두사람이 누우면 어깨가 포개지게 생겼다. 안쪽 벽에는 홧대보(벽이나 옷을 가린 넓게 만든 천)가 걸려 있다. 웃목에는 고리가 놓였고 고리 위에는 이불이 올려져 있다.
키 큰 사람이 누우면 죄진 사람이라고 멍덕입게 생겼다. 그렇지 않음 왜 오금을 피지 못하느냐고 되잡겠다.
“누나, 이런데서 어떻게 살아?”
“이 방이 어떻다고 그러냐?”
“큰 방을 얻어서 살지.”
“밥 먹고 꼬부리고라도 잠만 자면 되지. 형편대로 살아야지 없으면서 큰 방 찾겠냐?”
열이는 웃음을 어설프게 주워 담은 얼굴로 동생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의젓하려든다.
“누나는 답답하지 않아? 나는 숨이 막히는데...”
“지금은 괜찮단다. 처음에는 나도 어떻게 사나 했는데 며칠이 지나니까 괜찮더라.”
“누나, 나도 방얻어서 자취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공부 할 맛도 나고...
난 대전 오던 날부터 삼촌한테 미움을 받았다구. 그래서 있기가 싫다는거여.”
“자취가 그렇게 쉬운줄 아냐? 네가 밥이나 해 먹겠어?”
“우리반에 자취하는 아이들 많다구.”
“넌 너무 편해서 그러는구나.”
“내가 작은 집에서 학교 다니지 않음 안되나 뭐?”
“그렇지 않구. 네가 삼촌네 집에서 학교 다니게 아버지께서 다 해 놓으셨는데 넌 딴청이냐?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공부만 하면 되는거여.
넌 공부하러 대전에 온거다. 삼촌 위해서 삼촌네 집에 있는거 아녀!”
“난, 하루도 더 있기 싫다구. 시골로 전학을 시키던지 하숙을 시키던지 해야 공부하지 난 못하겠어.”
“넌 조건도 많구나.”
“질리고 정나미가 떨어져서 참고 있을 수가 없어. 누나는 몰라서 그래. 합격 발표 날부터 밉상였다구.”
“무슨 합격?”
“중학시험 발표날에 새벽에 학교 가보지 않고 늦잠 잔다고 궁금치도 않느냐고 옆집 아저씨가 와서 떠들기에 일찍 가보면 떨어진게 붙느냐고 했더니 괜히 삐죽이더라구. 집에 가려면 맘대로 가라는 식이여.
그러구 월사금도 주지 않아. 아버지도 주지 않고 삼촌도 그러는데 무슨 공부를 하라는거여. 졸업이나 제대루 할라나 몰라.”
“네가 작은 엄마에게 상냥하게 굴어봐라. 네가 자꾸 등지니까 그렇지.
부지런히 청소두 하구...”
“기술이나 배워야 지게질을 면 할것같아. 언뜻 들으니까 남의 자식은 소용없다. 딸이라두 내속으루 나온거라야지. 넘의 새끼는 가르치고 공들여도 소용없다더라구. 누가 자기네에게 자식 노릇 한다나? 더러워서.... 노골적으로 너는 싫다. 어서 가라는 투인걸 뭐...”
“그건 네가 오해한거야.”
“누가 저희 집에서 살고 싶다나 기가 막혀서...공책에다 숙모가 잘못한걸 썼는데 그걸 보구는 버릇 없고 싸가지 없는 놈이래.”
“너는 그게 탈이라니까. 그러니 미워하지 않겠냐? 공부시키려고 하겠어?”
“못하면 말지 뭐. 내쫓으면 좋겠어. 붙들고 말려 죽일 참인가봐.내가 없으면 하는 이가 왜 안 내보내? 병신 아냐?”
“어른보고 누가 욕 한다든.”
“고모네와 서로 트집을 못 잡아서 야단들이야. 글쎄, 나보고 고모네 집에 가지 말래. 내가 고모네 집에 가면 어때서?”
“너는 어른들의 하는 일에 참견 말아라. 무슨 말을 들어도 모른 체 하려므나. 그런 일에 신경쓰지 말고 공부만 하면 되고 삼촌이나 숙모가 가지 말라면 가지 않음 되지. 어기고 꾸역꾸역 다니니 미워하지.”
“가끔 하는 소리가 뭐라는 줄 알어? 빌어먹게 생긴 애를 데려다가 공장 차려주니까 돈에 미쳤대. 고모부가 미쳤대요. 글쎄 고모네 집은 갈 때마다 순 꽁보리밥만 먹던데 자기들은 쌀밥 먹으면서 고모네를 나쁘다니까 내가 욕을 하지 뭐.”
“그러다가 삼촌 눈에 나면 공부 못한다. 너.”
“제가 안 시켜도 아버지가 시키지.”
“삼촌이 아버지에게 네가 어떻다구 해봐라. 아버지가 가만히 계시겠냐?”
“없는 소리 지껄이면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구. 이미 글렀는데. 심술 부릴거나 있나 뭐? 고소 하겠지. 나만 답답하게 살건가? 저희들도 답답하지. 집안에 똑똑한 놈 하나가 없으면...
누구 위해 가르치나? 나만 급급한가? 우둥갱이 꺾으면 제 자식도 꺾이는걸 알아야지. 명심보감에 보니까 심는대루 난다던데...
누나, 나 갈꺼여.”
상길이의 얼굴은 붉다 누렇다가 오고 간다. 어둠이 자릴 잡는다.
“그말 하려고 왔냐?”
“그건 아니지만...”
“저녁이나 먹고 자지...”
열이는 부엌문 밖에서 아쉬움을 달래고 서 있는 자신이 안스럽기만 하다. 동생의 걱정을 덜어줄 아무런 힘도 없고 방법도 없고 그냥 가는대루 구경만 겨우 해야 한다니...
‘너는 남자이면서 나를 닮아가면 쓰겠느냐? 어린 것이 조숙하여서 모르는 것이 없구먼...
안타깝게 어른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너도 참!
열이는 점심을 먹은 후 집을 나온다.
‘그동안 상길이는 잘 있는지 할머니도 안녕하시겠지...
삼촌네 집에 별로 가고 싶지도 않지만...
시골 소식도 궁금하고...’
열이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걷는다.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열이를 마중한다. 열이는 빠끔히 열려진 대문을 기웃하고는 살며시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뜰방에는 고무신이 하나 가득 널렸다. 조금 망설이던 그녀는 뜰방에 올라선다. 그녀는 헛기침을 하고는 마루로 올라 방문 고리를 잡아당긴다.
방안에는 한방 가득히 부인네들이 앉아 있다. 이야기를 하던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열이에게로 쏟아진다. 열이의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뜯어보려고 다투어 자리를 잡느라고 법석거린다.
“어서 오너라. 고생이 많지?”
“그간 안녕하셨어요?”
열이는 인사를 하면서 문턱을 넘는다.
“이리와 앉아라.”
“예, 안녕들 하셨어요?”
아낙네들은 앉은 자리를 좁히느라고 궁둥이를 들썩거리며 게걸음을 친다. 열이는 웃목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이리 내려오지 않구.”
“괜찮아요.”
“그래, 네 신랑은 어데 다니냐?”
“곧 다니게 될 것 같아요.”
“고생을 모른 네가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 네 신랑이 똘똘하다면 걱정두 않겠다마는 고생도 바라볼게 있어야 하는데 뭐 볼게 있어야지.
너야 어디다 내놔도 빠지지 않지만...
내가 너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서방은 희망이 없는 사람 같더라. 네 생각은 어떠냐?“
“작은 엄마는 별 소릴 다 하세요.”
“그래두 신랑이라구 듣기 싫은 모양이구나?”
“그렇겠지, 제 식구를 흉보는데 좋다고 할까?”
“나두 딸년 하나가 시집 잘못 간 것이 있는데 지금 아주 뼈가 빠지게 고생고생 하는데 걱정이구먼. 신랑이라구 아주 건달이야. 일할 생각은 안하고 싸움질만 하고 돌아다닌데. 기가 차서. 내 속 타는걸 모른다구. 딸년 보고 갈라서라구 했더니 그 못난 것이 갈라설 맘이 없나봐.
제 고생 제가 짊어지고 다닌다구. 열녀상을 받으려는지.”
아랫목에 앉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가 낚시에 끌려나오듯 푸념을 늘어 놓는다.
“언니는 춘희 그애 때문에 바삭바삭 늙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딸년은 너 나 없이 시집을 잘 보내야지. 한 번 잘못 매이면 생사람 머리가 쉬인다구.”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 형편따라 살면 되지. 누구 위해서 사는건 아냐.”
“인생살이는 기다린다구 복이 오질 않는거여. 그러니 찾아 나서야지.”
“어떻게 그런 말씀들을 하세요. 어른들이 할말이 없어서 그런 말을 말이라고 하세요? 누가 그런 소릴 들으려고 온줄 아세요.”
열이는 화가 난 얼굴로 쏘아 부치고는 방을 휑하니 나간다.
방안의 여자들은 먼죽하니 앉아서 잠시 말을 잊는다.
“내가 저 위해서 한 소리지. 놀리려고 그런줄 아나? 기가 막혀서...
저것은 성깔이 저 모양이라서 제 고생 안고 다니는거여...
답답해서, 쯧쯧.”
“자격지심에 그런거지, 뭐.”
아낙네들은 열이 뒤통수를 흘기느라 한마디씩 비아냥거린다. 그리고 머쓱한 얼굴을 훔쳐내느라 입을 삐죽거린다.
열이는 땅벌레를 만나 쏘이고 쫓기느라 가시나무에 할퀴고 넘어져 마음도 붓고 손도 아프다고 억울해 한다.
“내가 저희보고 그런 소리 했다면 죽자사자 할 것들이 저희 일이 아니라고 찧고 까불고 야단이야. 흥!
인두겁을 쓰고 서방이 병들었다구, 병든 서방 만났다구, 손 씻어 버리라구...못배워 못났다. 내 소박하면 잘 되겠구먼. 더럽게는 살 수 없단다. 너희나 죽도록 그런식으로 살려므나. 흥!
붙어 살것 없다구? 그런 심보라, 자빠지면 코 닿는데두 선 한 번 안봤누나! 그러길 바란 모양이구나. 절로 째진 입이라구 삐죽거리긴 제 얼굴에 똥칠하는것두 모르고, 제집 지니고 먹을 걱정 않는다구 입이 근질거려. 남 애가 닳아 하는 게 꽤나 보기 좋은 모양이지...
내가 저희 신세 지러 왔남. 모이기만 하면 흉이니...
단 두 집밖에 없는 형제간에 왜들 저러는지. 한심하다구. 할머니를 어떻게 모셔왔는데. 나이로 해서두 친 엄마뻘두 넘는데. 시어미를 식모 취급하기가 일수고 툭하면 풀먹은 개지천하듯 하는 꼬락서니 하구는. 상길이가 저런 틈바구니 속에서 공부 한다는건 쉽지 않지. 공부가 되기나 하겠어? 그애 상길이는 저런 꼴은 못보는 성깔인데 있을맘이 있겠어? 그 애가 잘 돼야 집안을 꾸려 나가는데... 내 코가 석자가 넘으니...”
열이는 역겨워 울렁이고 치미는 가슴을 달래느라 혼잣말로 지껄이며 걷는다.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진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다.
상길이는 책가방을 들고 삼촌네 집을 향해 큰길로 걸어온다. 상길이는 누나가 마주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누나를 부른다.
“누나! 누이!”
상길이는 큰소리로 부른다.
열이는 소리따라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손을 들고 반가워하는 동생을 보고는 빙긋이 웃음을 담는다.
“학교 갔다가 지금 오냐?”
“응, 어데 갔다가 오는거여?”
“삼촌네 집에 갔다 오는 길이다.”
“더 놀다 가지.”
“이제껏 놀다 가는 길이란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나 누이네 집에 갈께.”
“그래라.”
상길이는 삼촌네 집을 향해 뛰어간다. 그는 책 가방을 제 방에 들여놓고는 안방 앞으로 좇아 와서
“학교 갔다왔습니다.”
하고 보고를 한다.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상길이는 누나와 같이 걷는다. 철길을 건너서 개천 뚝 길을 따라서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접어든다.
열이는 동생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상길이는 마치 남의 이야기 하는 것처럼 힘도 들이지 않고 그냥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제 고등학교 진학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해도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쩌려고 그러냐? 네가 공부하는 방도 따로 있는데 공부 안하면 큰일이구나. 그럼 고등학교엔 안 갈 생각이냐? 너 무슨 고민거리 있니?”
“고민은...난 고등학교 가기 글렀어. 난 삼촌집에 있기가 싫다구. 여태껏 억지로 있었어.”
“얘두, 딴 아이들은 자취하면서 공부하는데 넌 뭣이 불만이 그렇게 많냐? 넌 공부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
“공부시키지 싫으면 그만 가라지. 붙들고 골탕을 먹이니까 그라지 뭐.”
열이는 어이없는 얼굴로 동생을 딱하게 쳐다본다.
그들은 시커먼 시궁창 물이 흘러가는 개울을 건너느라 출렁거리는 판자 다리 위에 올라서자 말이 없다. 다리는 지네를 잡아서 뒤집어 걸쳐 놓은 것 같다. 넓지 않은 판자를 발을 엮어 놓아 걸음따라 꿈틀거리길 자주해서 발걸음이 늦어진다.
다리를 건넌 그들은 손수레도 다니지 못하는 좁은 골목길을 오른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 하며 얼마동안 오르락 내리락하며 걷는다.
상길이는 기분이 아주 주저앉아 버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에게 덜미를 잡혀 질질 끌리는 몰골에 반갑던게 흐려져 지워졌다. 열이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찾아 헤매느라 할 말을 잊고 길만 따라간다.
막다른 골목에 오른쪽으로 초가집이 덩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여기가 누나네 집이란다.”
상길이는 초가집을 이리보고 저리본다. 길 옆에 조그만 판자문이 달려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잔뜩 꾸부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문이다. 판자문은 헌 옷을 누덕두덕 기워 놓은 것 같다. 두꺼운 조각, 엷은 조각, 길다란 조각, 검고 허여끄름한 것, 페인트가 묻은것이 이리저리 포개져 살을 겨우 가린양이다.
지붕은 처음부터 해이기만 했다고 살이 찐 돼지 볼기짝 같고 기둥은 땅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꼴이다.
벽은 아예 흙담을 쳐 버렸다. 자잘하고 커다란 돌을 섞어서 쌓은 게 가는 세월 붙잡고 실랑이 했다고 돌덩이는 들쑥날쑥 뻐드렁니가 돼버렸다. 아이들이 놀자고 하였다간 금방 뛰쳐나올 낌세다.
담벼락 틈바구니를 비집고 가쁜숨을 몰아쉬는 숨구멍같은 창문이 모양없이 뚫려져 찌그러진 채 상여를 두는 상여집이 아니라고 헐떡이는 소리로 변명을 하려든다.
열이는 두덕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쪽문은 덜그럭 소리도 못낸다. 상길이는 오른손으로 문을 잡고 허리를 꾸부려 문안을 기웃하고 들여다본다. 아궁이 위에는 사발보다 조금 크다고 뻐기는 양은솥이 앙증스레 앉았다.
상길이는 부엌을 보며 소꿉장난 하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시골집 부엌과 비교를 해본다. 그는 누나의 뒤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한다.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미닫이 문은 무엌문보다 깨끗하고 커 보인다.
상길이는 조카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다가 누나의 말에 끌려 방으로 들어간다. 그는 방에 들어가서도 방안을 두리번거린다. 눈을 계속 껌벅거린다. 그는 소극장에 들어왔다고 하는양이다. 방안의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누나, 불 좀 켜지.”
“그래.”
그녀는 전등을 켠다.
어둠은 뻘건 전등빛에 금방 탈색이 되고 만다. 방은 두사람이 누우면 어깨가 포개지게 생겼다. 안쪽 벽에는 홧대보(벽이나 옷을 가린 넓게 만든 천)가 걸려 있다. 웃목에는 고리가 놓였고 고리 위에는 이불이 올려져 있다.
키 큰 사람이 누우면 죄진 사람이라고 멍덕입게 생겼다. 그렇지 않음 왜 오금을 피지 못하느냐고 되잡겠다.
“누나, 이런데서 어떻게 살아?”
“이 방이 어떻다고 그러냐?”
“큰 방을 얻어서 살지.”
“밥 먹고 꼬부리고라도 잠만 자면 되지. 형편대로 살아야지 없으면서 큰 방 찾겠냐?”
열이는 웃음을 어설프게 주워 담은 얼굴로 동생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의젓하려든다.
“누나는 답답하지 않아? 나는 숨이 막히는데...”
“지금은 괜찮단다. 처음에는 나도 어떻게 사나 했는데 며칠이 지나니까 괜찮더라.”
“누나, 나도 방얻어서 자취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공부 할 맛도 나고...
난 대전 오던 날부터 삼촌한테 미움을 받았다구. 그래서 있기가 싫다는거여.”
“자취가 그렇게 쉬운줄 아냐? 네가 밥이나 해 먹겠어?”
“우리반에 자취하는 아이들 많다구.”
“넌 너무 편해서 그러는구나.”
“내가 작은 집에서 학교 다니지 않음 안되나 뭐?”
“그렇지 않구. 네가 삼촌네 집에서 학교 다니게 아버지께서 다 해 놓으셨는데 넌 딴청이냐?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공부만 하면 되는거여.
넌 공부하러 대전에 온거다. 삼촌 위해서 삼촌네 집에 있는거 아녀!”
“난, 하루도 더 있기 싫다구. 시골로 전학을 시키던지 하숙을 시키던지 해야 공부하지 난 못하겠어.”
“넌 조건도 많구나.”
“질리고 정나미가 떨어져서 참고 있을 수가 없어. 누나는 몰라서 그래. 합격 발표 날부터 밉상였다구.”
“무슨 합격?”
“중학시험 발표날에 새벽에 학교 가보지 않고 늦잠 잔다고 궁금치도 않느냐고 옆집 아저씨가 와서 떠들기에 일찍 가보면 떨어진게 붙느냐고 했더니 괜히 삐죽이더라구. 집에 가려면 맘대로 가라는 식이여.
그러구 월사금도 주지 않아. 아버지도 주지 않고 삼촌도 그러는데 무슨 공부를 하라는거여. 졸업이나 제대루 할라나 몰라.”
“네가 작은 엄마에게 상냥하게 굴어봐라. 네가 자꾸 등지니까 그렇지.
부지런히 청소두 하구...”
“기술이나 배워야 지게질을 면 할것같아. 언뜻 들으니까 남의 자식은 소용없다. 딸이라두 내속으루 나온거라야지. 넘의 새끼는 가르치고 공들여도 소용없다더라구. 누가 자기네에게 자식 노릇 한다나? 더러워서.... 노골적으로 너는 싫다. 어서 가라는 투인걸 뭐...”
“그건 네가 오해한거야.”
“누가 저희 집에서 살고 싶다나 기가 막혀서...공책에다 숙모가 잘못한걸 썼는데 그걸 보구는 버릇 없고 싸가지 없는 놈이래.”
“너는 그게 탈이라니까. 그러니 미워하지 않겠냐? 공부시키려고 하겠어?”
“못하면 말지 뭐. 내쫓으면 좋겠어. 붙들고 말려 죽일 참인가봐.내가 없으면 하는 이가 왜 안 내보내? 병신 아냐?”
“어른보고 누가 욕 한다든.”
“고모네와 서로 트집을 못 잡아서 야단들이야. 글쎄, 나보고 고모네 집에 가지 말래. 내가 고모네 집에 가면 어때서?”
“너는 어른들의 하는 일에 참견 말아라. 무슨 말을 들어도 모른 체 하려므나. 그런 일에 신경쓰지 말고 공부만 하면 되고 삼촌이나 숙모가 가지 말라면 가지 않음 되지. 어기고 꾸역꾸역 다니니 미워하지.”
“가끔 하는 소리가 뭐라는 줄 알어? 빌어먹게 생긴 애를 데려다가 공장 차려주니까 돈에 미쳤대. 고모부가 미쳤대요. 글쎄 고모네 집은 갈 때마다 순 꽁보리밥만 먹던데 자기들은 쌀밥 먹으면서 고모네를 나쁘다니까 내가 욕을 하지 뭐.”
“그러다가 삼촌 눈에 나면 공부 못한다. 너.”
“제가 안 시켜도 아버지가 시키지.”
“삼촌이 아버지에게 네가 어떻다구 해봐라. 아버지가 가만히 계시겠냐?”
“없는 소리 지껄이면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구. 이미 글렀는데. 심술 부릴거나 있나 뭐? 고소 하겠지. 나만 답답하게 살건가? 저희들도 답답하지. 집안에 똑똑한 놈 하나가 없으면...
누구 위해 가르치나? 나만 급급한가? 우둥갱이 꺾으면 제 자식도 꺾이는걸 알아야지. 명심보감에 보니까 심는대루 난다던데...
누나, 나 갈꺼여.”
상길이의 얼굴은 붉다 누렇다가 오고 간다. 어둠이 자릴 잡는다.
“그말 하려고 왔냐?”
“그건 아니지만...”
“저녁이나 먹고 자지...”
열이는 부엌문 밖에서 아쉬움을 달래고 서 있는 자신이 안스럽기만 하다. 동생의 걱정을 덜어줄 아무런 힘도 없고 방법도 없고 그냥 가는대루 구경만 겨우 해야 한다니...
‘너는 남자이면서 나를 닮아가면 쓰겠느냐? 어린 것이 조숙하여서 모르는 것이 없구먼...
안타깝게 어른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너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