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아들 (EP2.마음따라 가는 몸)

작성자
yeongbeome2
작성일
2024-07-10 22:08
조회
92
열이는 대전시에서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한 산동네에 다다랐다.
귀가 걸려 찢어져 터진 실이 겨우 한가닥 걸린 길동에 얹혀져서 사는 한산 이씨네 집이다. 이씨네 집은 새 며느리 맞이 할 준비를 하느라고 북적거린다. 일가 친척들이 기쁨을 나누려고 이씨네집으로 모여든다. 이웃집 아낙네들도 이씨네 집안을 기웃거린다. 이씨네집은 생긴 것이 보는 사람의 눈에서 측은케하는 걸 끌어낸다. 쭉지를 활짝 펴 달아나려 둥기적거리다 붙들렸다고 인정 사정없이 발등에 시커먼 말뚝을 박아 놓은 듯 가느다란 기둥은 말뚝따라 땅 속으로 기어 들었다.
골목에서는 기어 들어오라고 추녀 끝이 이마와 형님 동생을 하자고 추근댄다. 지붕은 두꺼운 종이로 씌워놓고 검은 도료를 발라 놓았던 것이 허옇게 바랬다. 희끄무레한 곳도 있고 거무티티한 곳도 있다.
지붕 위에 뿌려 놓은 왕모래가 빗물을 이기지 못해 띄엄띄엄 너부러졌다. 머리를 들고 날지 못하게 기를 죽이느라고 넓적넓적한 소똥같은 돌멩이를 듬성듬성 얹어놓았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이씨네 집을 찾아오는 사람은 저절로 기가 꺾여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마당은 한사람이 왕래 할 정도밖에 안된다.
마당가에는 조그만 쇠말뚝을 대여섯개 박아 놓았다. 쇠말뚝에는 철사줄을 매어 울을 만들었다. 세가닥의 가시철사는 어설프기만 하다.
어깨높이 넘어 아래로는 채전고랑같은 골목길이 지나갔다.
이씨네 집앞을 지나는 사람은 집안을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아도 집안을 속속들이 보기 마련이다.
하늘에는 시커먼 비구름이 끼였어도 비가 그쳤다. 골목길은 반죽되어 미끄럽기만 하다. 발길을 따라 흙탕물이 뛰어올라 옷을 더럽히려 심술을 부린다.
열이는 신랑 뒤에 멀찍이 서서 신랑을 따라 간다. 그녀는 치마자락을 두손으로 잔뜩 거머쥐고 미끄러질세라 땅을 보며 엉금거려 걷는다.
“신랑은 어데서 저렇게 예쁜 색시를 구해오슈?”
“헌건스럽게 생겼어. 신랑은 색시복이 많구만.”
“아주 튼튼하게 생겼는데. 일도 잘하겠네.”
동네 아낙네들은 신랑 신부를 부러워하듯 칭찬을 한다.
열이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어 집안 식구들이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가 방석 위에 다소곳이 앉는다. 집에서 차를 타고 떠나올 때 못마땅해 하던 그녀의 얼굴은 빗물에 벗어진 것 같다. 그렇다고 활짝 개인 얼굴도 아니다.
시부모에게 인사를 드리고 시집 식구들과 인사를 나눈다. 인사가 끝나 자기방에 앉아 있는 그녀의 뇌리에는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오고 가느라 부산하기만 하다.
‘새 며느리 얻어 오고 집안이 일어난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야지. 며느리 얻고나서 집안이 기운다는 소리, 우애가 끊어졌다는 소릴 듣게된다면 어머니 아버지에게 욕되게 할테니 몸가짐을 바로 가져야지.
판잣집 판잣집 하더니 너무나 비좁구먼. 웅크리고 살 수밖에...’

이씨네는 시장에서 소금장사를 하며 근근히 먹고산다. 조그만 손수레 위에다 소금 가마니를 싣고서 한 되도 팔고 두 되도 판다. 이씨는 아들이 셋이고 딸은 하나 두었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집에서 빈둥거리고 셋째 아들은 고등학교에 다닌다. 열이는 점심을 싸가지고 시장으로 나간다. 그녀는 시어머니 따라서 시장에 몇 번 왔었다.
“열무 사요. 열무요.”
“감자요, 감자.”
“마늘 사요, 마늘 한접에 천원 천원.”
시장 사람들은 고래고래 소리친다.
열이는 사람들을 헤집으며 시장 가운데로 들어간다. 그녀의 모습은 병든 남편에 눌리고 먹고사는 일에 눌리고 장사꾼들의 떠드는 소리에 주눅이 들었다. 마치 주인 잃어버린 강아지가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흘끔거리며 발발거리는 모양을 그리게 한다.
“소금이요, 백 소금.”
열이는 소금 수레 옆에서 걸음을 멈춘다.
“아버님, 진지 가져 왔어요.”
열이는 죄송해서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한다.
“소금 사요! 소금이요!”
“아버님!”
두리번거리며 신나게 떠들던 이씨는 그제야 며느리를 보았다.
“어, 왔냐? 오느라 수고했다. 사람사는 게 이렇구나.”
이씨는 둘째 며느리가 곁에 와서 있는 것도 모르고 소금 파는데 정신을 팔렸던 자신이 조금은 열적은 것 같은 얼굴이 된다.
“시골은 조용하지?”
“예.”
“농사짓고 사는게 편한데...”
이씨는 부끄러운 일이나 한 듯 중얼댄다.
열이는 밥을 싼 보자기를 끌으려 한다.
“아니다, 그냥 이리 다오. 이따가 먹을란다. 두고 가거라.”
“시장 하실텐데, 어서 진지 잡수세요.”
“괜찮다. 조금 있다가 배고플 때 먹을란다.”
“아버님, 제가 볼테니 진지 잡수세요.”
“그럴래? 그럼 예좀 섰거라.”
“예.”
이씨는 보자기를 들고 시장안 구석을 찾아간다. 시장 바닥은 질척거리고,질펀하기만 하다. 열이는 소금 가마니 곁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흘끔거린다.
‘사람이 먹고 사는 것도 여러 가지구나. 농사만 지어야 먹고 사는줄 알았는데, 저렇게 떠드는 사람은 목도 아프지 않은지. 나도 저이들 처럼 떠들어 볼까? 말이 나와야지. 그이는 허구헌날 집에만 있으니 어른들 보기에도 죄송하고. 노인양반이 이렇게 힘들여 버시는걸 젊은 것들이 납죽납죽 받아만 먹고 있다니. 이런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부터 시장에 나와서 장사하는 법을 배워두었으면 좋았을건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담. 나같은 것은 농사짓는 사람한테 시집가야 하는데...
도시가 뭐가 좋다고, 도시 사람은 그냥 사나? 새벽부터 일어나 밤늦도록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데. 그걸 보면 부지런한 사람만 모인곳이 도시를 이룬 것도 같고...’
그녀는 시장가운데 자기 혼자만 덩그렇게 버려져 있는 것 같은 까마득하고 망막한 길을 어떻게 하면 헤집고 나갈수 있을까를 골똘히 생각해본다.
“맛있게 잘 먹었구나.”
열이는 시아버지 소리에 깜짝 놀란다. 그녀는 미안한 얼굴로 시아버지로부터 밥그릇 보자기를 건네 받는다.
“아버님, 제가 장사를 할께요.”
열이는 시아버지가 시장에서 혼자 장사를 하시느라 애쓰는 것이 보기도 민망하고 죄스러워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네가 무슨 장사를 하겠냐? 그런 걱정은 하지 마라. 장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어서 가렴.”
“아버님, 일찍 들어오세요.”
“오냐.”
열이는 시아버지의 당혹스런 얼굴을 뒤로 하고 빈 그릇을 들고 시장을 나온다.
그이는 매일 저러고만 있으니 어떡하나? 일자리를 알아보아 무슨 일이라도 열심히 하여 우리가 먹는 것만이라도 벌어야 될텐데. 일자리를 찾아서 다녀보자구 해도 집에만 있으니. 답답도 하고, 뭐라고 입만 벌리면 입벌리기가 무섭게
‘누가 일하기 싫어서 안하냐? 돈벌이 되는 일자리가 있어야 일을 하지. 게으름 피우느라 가만 있남. 그러면 당신이 부지런좀 떨게 해봐. 그러면 돈 많이 벌어다 줄께’
‘저 같은 시골뜨기가 어디가 어딘줄 알아서 당신이 일할곳을 찾겠어요. 당신 일자리는 그만두고 제 일자리나 구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언제까지 부모님 밑에서 이러고만 있을수 있나요? 우리도 앞날을 생각해야지요.’
‘걱정말아. 쥐 구멍에도 볕 들날 있다는 소리 듣지도 못했어? 기다려 보라구. 사람 팔자 시간문제야.’
열이는 어제 밤에 남편이 키큰 소리 하던일. 그 소리를 듣던 자신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며 자신의 몸뚱아리를 자꾸만 충동질 하는 것에게 으름장으로 호령 못하는 자신이 딱하게만 여겨진다.
‘큰 소리만 치는 그이. 내가 그이에게 너무 지나친 말을 했어. 아직도 병색이 가시지 않은 그이에게 내가 너무 한거지. 바가지를 긁었으니..... 나보다도 더 안타까워할 그이인데. 그이 말대로 우리 가정에도 빛이 찾아오는 날이 있겠지. 우리라고 항상 이렇게 살으라는 법은 없을테니까. 그날이 오기까지 사는게 힘이 들고 하겠지만 기다려보자.
그이가 몸이 건강해져서 막노동이라도 한다면 괜찮아지겠지. 내가 바느질이라도 배워서 다만 얼마라도 벌어야지.’
열이는 잡초를 하나씩 뽑으며 거기에 꿈을 심고 그리며 걸어간다.

이씨네 집에서는 이씨의 외동딸이 예수를 믿는다. 그녀는 열이에게 가끔 말하고 졸라댄다.
“언니, 나하고 같이 교회 가요. 교회 가면 참 좋아요. 맘이 포근하지요. 근심되는 일이 있어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거짓말처럼 걱정이 안되고 맘이 조마조마 하던게 확 풀어져 버려요. 믿기지 않는 사실이예요.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요. 그리구 언니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매일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어주신다구 하셨어요.”
“나도 고모따라 교회 가보고 싶지만 내가 갈수가 있나요. 고모나 다녀요.”
“내가 엄마에게 말할께요.”
열이는 시누이가 교회 가자고 할 때마다 솔깃하여 시누이를 따라서 교회 구경을 가보고 싶으나, 집안 어른들의 눈치가 보아져 교회에 가지 못했다. 열이의 시누는 교회에서 공부를 시켜줘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다음에 여자 전도사가 되겠다고 올캐에게 입버릇처럼 자랑을 하곤 한다. 그녀가 자랑할 때는 구김살이 하나도 없이 말하므로 듣는이들이 덩달아 좋아한다. 그녀는 모든걸 좋게만 생각한다. 마치 오늘 고생은 행복의 씨를 심은 것으로 여긴다.
열이는 시누이와 같이 있을 때는 암울한 것이 스러지고 꿈이 돋아나서 자라고 있는 것을 찾아내곤 한다. 그리고 다시 쥐어뜯어 내어버린다.
‘예수 믿으면 사람의 생각이 넓어지는 것인가? 고생도 즐거움의 시작으로 여기는 생활 태도를 갖게 되는건가? 이런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노래가 나오다니...’
열이는 이상스럽게만 여긴다. 교회 다닌다, 예수 믿는다는 말은 열이에게 아주 낯이 설기만 하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교회가 들어오지 않은 곳에서 쭉 자라다가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여 조금 다니다가 6.25 난리통에 그만 집에만 있었다. 너무나 바깥 세상을 모르고 자랐다. 그녀의 조부는 세상을 등지고 살다시피 하여 자손들도 따라서 어두워지고 폐쇄성이 쌓였다.
‘여자는 남자만 바라본다.’ 는 말이 그녀를 물들였다.
‘나 같은 여자가 어떻게 교회에 다니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팔자가 좋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지.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시간이나 보내려고 다니는 곳이지...
어림없지. 내 몸 내가 행실을 바르게 하면 되지. 부모 공경하고, 형제간에 화목하면 되는거지. 사람이 더 바랄게 뭐 있나? 그리되면 법 없이도 사는거지. 시누는 ‘사람은 누구나 몸속에 영혼이 있다’ 고 하는데 그게 있을까? 그렇담 귀신도 있을 것 아냐? 귀신들이 법석을 떠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말인가?
사람은 죄인이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참회하고, 개과천선해야 된다는 말인데...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려고 몸소 사람의 형체를 입고 오신분이 예수라는 분이라. 그분을 믿어야 죄를 용서함 받는다. 사람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죄가 있고 저 자신이 지은 죄가 있어서 그 죄 때문에 사람들이 병들어 고생하고, 울고 불고 애를 태우고, 서로 죽이고 죽는다. 죄가 쌓여서 전쟁이 일어난다는데...
모두가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라구. 내 주제 꼴에 그런 저런 생각으로 한눈 팔 겨를이 있남. 그냥 부녀의 도를 따르기도 쉽지 않은데,
시누는 성경을 읽어 보라구 권하는데. 읽으면 사람을 안다는데 읽을 여가가 있어야 읽어보지.
나 같은 사람은 억지로 약을 먹듯 읽으면 효과가 난다니.....
그녀는 어이없어 하며 떠오르는 궁금함에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걷는다.